난 리비아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카다피라는 사람도 최근에 기사를 읽고서야 알았다. 재미삼아 통계 숫자를 비교해보던 지리부도엔 나와있을지언정, 내 삶 속에 존재하지는 않았던 국가다. 잘은 몰라도, 리비아에 관해선 나 정도가 한국 평균이리라 싶다.

 

하지만 이집트에 이어 리비아 민중들의 저항 소식이 알려지면서 누구나 리비아 전문가가 되었다. 정의감에 불타는 글들이 올라온다.(사실 인터넷 댓글들은 정의감 보다는 훨씬 차원 낮은 즉흥적인 감정배설도 많긴 했다. 어쨋든 그런 글들이 아니어도, 정말 리비아 민중을 걱정하는 듯한 말들도 많았고, 또 많은 호응을 얻었다.) 그 글들은 카다피를 절대악쯤으로 그려내는 언론들의 기사를 그대로 인용하며 한점 의심 없이 단호하게 카다피 타도를 주장했다.

 

그런데 우선 리비아를 언론이 다루는 방식이 대단히 불쾌했다. 이집트 항쟁에 대해서는 '사태' 쯤으로 표현하던 주류 언론들이 리비아에 대해서는 독재자를 몰아내는 혁명적인 저항이라고 추앙했다. 의지가 부족해 객관적으로 비교해보지는 못했지만, 얼핏봐도 할애하는 지면의 양이 달랐다. 명시적이진 않지만 리비아에 북을 대입시키는 게 어렵지는 않다. 카다피가 현재는 일개 독재자일지 모르지만 한때는 민족주의적(사회주의) 혁명을 이끌었고 그로인해 리비아는 미국중심의 세계질서에서 벗어나 있는 국가로 남아있다. 리비아의 붕괴를 축하하는 이들에게는 이 또한 현실사회주의가 타락한 한 모습이며 자유!민주! 자본주의 체제의 우월함과 승리를 증명하기 위해 이용할 수 있는 도구가 된다. 이 잣대는 한치의 수정도 없이 언제든 북에게 적용될 것이다.

 

지금 전세계에서 리비아는 이런 식으로 소비되고 있다고 생각했다. 리비아 민중에게 해방을, 참 올바르고 착한 구호다. 그런데 이렇게 인류애와 정의감에 가득차 카다피를 끌어내려야 한다고 주장하던 이들은 리비아에 대해 언제부터 관심을 가지고 있었을까? 그들의 삶 속에는 리비아가 존재하고 있었을까? 그들의 리비아는 언론 기사 몇 개로 며칠 사이에 만들어진 게 아닌가? 그 알량한 지식으로 수많은 민중을 구원하겠다 드는 것은 오만하지 않은가? 그 발언이 현실에서 어떤 효과를 남길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없는 이상, '난 올바른 사람', '난 착한 사람'이라는 자기만족을 얻기 위한 발언이 될 뿐이다.

 

물론 모조리 알아야만 발언할 수 있다면 발언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다는 거야 안다. 수많은 노동자들의 투쟁에 발언하지만, 그 개별 사안과 노동자들을 나는 얼마나 알고 이해하고 있을까. 하지만 그렇게 발언할 수 있는 것은 내 발언에 책임질 수 있고, 언제든 그 현실에 뛰어들 수 있다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난 리비아에 대해서는 도저히 그럴 수 없고, 리비아에 대해 내가 보고 듣고 있는 것이 리비아 전체 모습 중 어느만큼인지도 갸늠할 수 없었다.

 

그리고 지금 미국, 프랑스, 영국군 등이 트리폴리를 공습하고 있다. 조선일보 치들은 애초 생겨먹은 게 저러니 그렇다 치고, 정의감에 불타 리비아 민중의 편에 서겠다던 이들은 아직 아무말도 없다. 트리폴리에는 인간이 없는건가? 왜 이렇게 불공정할까. 불공정한 게 아니라 다만 그곳에서는 인간을 보지 못하는 것이리라. 그들의 인간은 현실의 구체적 인간이 아닌 뇌내망상 인간이라, 망상을 위해선 재료가 필요하다. 하지만 지금 트리폴리에서는 재료가 공급되지 않잖은가.

 

그런데 그런 치들은 언제나 있어왔다. 알량한 휴머니즘에 기대 보이지 않는 모든 인간을 걱정하는 이들. 구체적 인간을 시야에서 잃어버리고 산재해있는 이미지들을 좇아 연대 혹은 타도해야할 대상을 뇌내망상한다. 이 망상은 자신이 현실에서 어떤 효과를 남기는지에 대해서는 무지하다. 리비아 민중 편에 선다던 그네들의 생각과 뱉은 말은 지금 공습과 직접 이어져 있다.

 

말은 말에서 그치지 않고 효과를 가지며, 그 효과는 말의 지시적 의미와 대개 일치하지 않는다. 자기가 가진 생각과 내뱉은 말이 현실에서 어떤 결과를 이끌지 고민하지 않는다면 실상 카다피 같은 독재자가 세상에 미치는 영향과 별반 다르지 않기 싶상이다. 유물론과 관념론 사이의 뿌리깊은 투쟁은 여기서도 반복된다.

 

"현실에서 실현시킬 이야기를 뱉고 고민하라"가 마르크스 이래 정초된 유물론적인 세계관이며, 이와 구별되는 여타 세계관이 관념론이라고 이해하고 있다. 리비아 민중과 연대하기 위한 구체적인 실천이 준비되지 않은 이상, 트리폴리에 공습이 시작됐는데 심지어 '말'조차 꺼내지 않는 이상 그동안 리비아에 대해 넘쳐났던 말들은 그저 유희에 불과했다고 생각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말로 세상이 바뀌었다는 얘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tv에서 동물농장이란 프로그램을 보니, 산속에 새끼를 낳아 기르고 있는 개를 '구조'한다. 춥고 배고픔으로부터 구조하겠단다. 저대로 두면 죽을 수도 있고 '들개'가 될 수도 있기 때문에 구조한단다. 그래서 '구조'하기 위해 그 개들을 삶터에서 강제로 끄집어내 추위와 배고픔이 없는 인간들의 따뜻한 품으로 안겨준다. 저 오만한 친절이 구역질난다. 리비아를, 북한을 다루는 사람들의 시각은 저기서 얼마나 다를까? 식민주의는 지금 이곳에 있다. 리비아에 공습이 시작되었고, 한반도는 언제나 표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