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간다여러 한글(hwp)파일 일괄 합치기(병합)

파일 끼워넣기로는 한 번에 한 개씩 밖에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좌절.

수백개의 파일을 하나로 합치기 위해서 방법을 궁리.

한글의 스크립트를 이용해서 해결.

 

먼저 파일 목록 생성.

dir /o-n > dir.txt

한글에서 파일 끼워넣기를 하면 커서가 끼워넣은 파일 앞쪽에 위치한다. 그래서 스크립트를 이용할 때 뒤로 가야할 파일부터 먼저 끼워넣기 해야 한다. 파일 이름이 순서대로 정리되어 있다면 이름 역순 정렬을 이용하여 파일 목록을 만든다.

이 txt 파일을 열어서 한글에 붙여넣는다. f4 블록을 이용해 파일이름 앞 내용은 모두 삭제한다.

맨 윗줄은 엔터를 한 번 누른다.

바꾸기를 누르고

찾을 내용은 ^n

바꿀 내용은 
HAction.GetDefault("InsertFile", HParameterSet.HInsertFile.HSet); with (HParameterSet.HInsertFile) { FileName = "C:\\병합할 파일이 있는 폴더 위치

모두 바뀐 다음에 바꾸기를 한 번 더한다.

찾을 내용은 hwp

바꿀 내용은

hwp"; KeepSection = 1; KeepCharshape = 1; KeepParashape = 1; KeepStyle = 1; } HAction.Execute("InsertFile", HParameterSet.HInsertFile.HSet);

 

만들어진 스크립트를

한글 스크립트 창에 집어 넣는다.

이를테면 아래와 같다.

 

function OnScriptMacro_script01()
{
HAction.GetDefault("InsertFile", HParameterSet.HInsertFile.HSet); with (HParameterSet.HInsertFile) { FileName = "C:\\temp\\temp0001.hwp"; KeepSection = 1; KeepCharshape = 1; KeepParashape = 1; KeepStyle = 1; } HAction.Execute("InsertFile", HParameterSet.HInsertFile.HSet);
}
2019/09/14 21:25 2019/09/14 21:25

분류없음최저임금

최저임금 인상이 고용에 미치는 영향 관련하여 자료를 찾아보고 있다.

최저임금 인상이 고용에 부정적 영향을 미쳤다는 결론의 논문인 '최저임금 인상의 고용효과'의 일부분이다. 여성의 최저임금 적용률(영향률)은 연령이 높을수록 비례하여 높아지는데, 이를 고학력 여성일수록 남성 배우자의 소득이 높아 경제활동 참여 유인이 낮기 때문에 저임금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은 경향을 보인다고 해석한다. 보통 이 그래프를 보면 경력단절, 저평가된 여성노동 등이 먼저 떠오르지 않나?

여성의 경우에는 20대 후반의 적용률이 높은 것은 남성과 유사하지만 30대 중반 이후에는 적용률이 꾸준히 높아지는 패턴을 보이고 있다. 이와 같은 남녀별 차이는 남성과 달리 여성의 경우 고학력일수록 결혼 이후의 경제활동 참여율이 낮아지는데서 발생하는 것으로 사료된다. 고학력 여성일수록 비근로소득(남성 배우자)이 높아 경제활동 참여 유인이 낮기 때문에 30대 이상에서 연령이 높을수록 여성 근로자 가운
데 저임금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은 경향을 보이며, 이로 인해 적용률이 연령에 따라 단조 증가하는 양상이 발생되는 것으로 판단된다.사용자 삽입 이미지

최저임금 인상의 고용효과, 김대일.이정민, 2019

 

2019/08/18 22:58 2019/08/18 22:58

한국사 관련

봉건제론:역사학 비판

한국사

한국역사(한국역사연구회, 1992)는 한국 역사 입문(한국역사연구회, 1995-1996)의 축약본. 한국사강의(한국역사연구회, 1989)를 대체한 것. 한국역사는 생산양식과 사회구성체에 주목, 한국사강의는 계급투쟁과 민족해방운동에 주목. 한국역사연구회가 개정판 준비하고 있지는 않음.

다시 찾는 우리 역사(한영우, 1997)의 축약본인 간추린 한국사(한영우, 2011) 같은 한국 통사 참고할 필요. 시민을 위한 한국역사(한영우 등, 1997)는 외국인을 위한 한국통사.

한국사학사

한국사학사의 대표작은 역사학의 역사(한영우, 2002). 한국사학사 대요(박인호, 1996)도 참고.

한국역사연구회는 한국사학사에 대한 입장을 제시한 적 없음. 20세기 한국사학사에 대한 입장은 한국사 연구와 과학성(이세영, 1997) 참고.

한국사에서 사관수사(史館修史) 전통은 고려왕조에 의해 확립. 고려왕조가 편찬한 정사는 신라주의와 고구려주의의 논쟁을 해결하지 못함.

사관수사(史館修史) : 관찬사서 지향. 고려는 삼국시대 이래의 개인편찬사서체제(個人編纂史書體制)를 지양하고, 국초부터 당제(唐制)를 본받아 사서분찬제(史書分纂制)를 시행하였다. 사서분찬제란 사관(史官)이 사관(史館)에 모여 사서를 나누어 편찬하는 체제이다.

기전체 정사의 효시는 삼국사였는데 실전됨. 삼국사는 고구려주의를 복권시켰다는 특징. 광종이 칭제한 사실과 관련.

삼국사를 대체한 새로운 기전체 정사는 신라주의를 부활시킨 삼국사기. 삼국사는 묘청의 입장을 정당화한 반면 삼국사기는 김부식의 입장을 정당화한 것. 김부식은 사마광의 영향을 받음. 묘청은 풍수도참설을 신봉한 승려.

원과의 대결 지향한 무신정권은 고구려주의를 주장. 불교를 존숭하는 입장에서 팔만대장경을 간행. 원간섭기에 고조선, 발해, 말갈까지 포함한 삼국유사를 사찬. 신화와 전설을 집대성.

고조선-고려를 대상으로 한 최초의 편년체 통사는 동국통감. 동국통감은 삼국사절요, 고려사절요를 계승. 삼국사절요는 신라주의와 고구려주의를 절충. 고려사절요는 신권주의적 기전체 정사 고려사와 왕권주의적 용비어천가를 절충.

중종 때 박상은 동국통감을 1/10로 축약한 동국사략을 사찬. 신라주의를 채택. 정도전이 아닌 정몽주를 중심으로 사림의 계보를 정리. 이익, 성혼, 송익필, 윤근수의 학통을 계승한 서인의 역사관은 동국사략으로 소급.

왜란 직후 한백겸은 동국지리지에서 만주의 고조선과 한반도의 삼한이 병존했다는 주장을 제기(북자북남자남설). 고구려는 고조선을 계승한 반면 백제, 가야, 신라는 각각 마한, 변한, 진한을 계승했다는 설을 주장. 그 자신은 고구려주의를 주장.

호란 직후 서인이 조선중화주의를 창도하면서 신라주의가 강조됨. 유계가 고려와 요금원의 관계를 중심으로 여사제강을 사찬. 제강은 강목과 동일한 의미로 자치통감강목(조사연)에서 유래. 주희, 조사연은 춘추의 경과 전처럼 강과 목을 구별하면서 정통론의 관점을 강조.

김성일, 유성룡의 학통을 계승한 영남남인, 정구의 학통을 계승한 기호남인도 서인과 거의 동일한 입장.(김성일, 유성룡, 정구는 이황의 수제자) 영남남인 홍여하는 신라 중심으로 고려 전사를 정리한 동국통감제강을 사찬. 기호남인 이익은 고조선-한-삼국-통일신라-고려라는 계보를 제시했는데, 그의 제자 안정복이 사찬한 동사강목이 강목체 통사였음.

정약용은 아방강역고에서 북자북남자남설을 계승하지만, 고조선보다 한(마한)이 발전한 사회라고 주장. 고구려가 쇠퇴한 것은 상무(尙武)정신이 해이해진 탓이라고 주장. 모순적.

기호남인 중 고구려주의를 주장한 대표적 경우는 유득공. 발해고에서 신라의 삼국통일을 부정하고 남북국시대라는 관점을 제시. 대조영이 고구려 유민이라고 주장.

기호남인 한치윤이 해동역사(海東繹史)를 사찬. 동국문헌비고, 중국 일본의 사서를 토대로 한 고려왕조까지의 기전체 통사. 繹史는 역사에 대한 고증이라는 의미. 성혼의 학통을 계승한 소론 이긍익은 연려실기술 사찬. 기사본말체를 기사체로 보충한 조선왕조의 야사.

메이지유신 이후 동경제국대학에서 식민사관 출현. 한일강제병합 이후에는 경성제국대학과 조선사편수회에서 발전하여 조선사로 완성.

식민사관에는 일선동조론, 만선동조론, 유교망국론, 당쟁망국론이 포함. 식민사관의 핵심은 봉건제결여론, 조선정체론. 이는 독일역사학파 후예인 후쿠다(福田三德)가 제기한 주장. 봉건제가 결여되어 조선이 정체할 수 밖에 없었다는 것.

식민사관 비판이라는 맥락에서 신라주의와 고구려주의의 논쟁 지속. 신채호는 강유위, 양계초의 사회진화론을 수용하면서도 독일의 낭만주의적 민족주의를 채택. 정신적 유기체로서 국수라는 민족(Volk) 개념을 고수. 신채호는 신라주의를 비판하고 고구려주의를 복권시키기 위해 한국사를 만주의 부여족(主族)과 한반도의 한족(客族)의 투쟁으로 서술. 1910년대에 대종교를 수용하면서 배달겨레(단군족)에 예맥족(부여족), 한족, 말갈족도 포함. 왜(倭)만 배제한 것은 일선동조론 주장 때문. 식민사관에는 만선동조론도 있었으므로 그의 비판은 정곡을 찌르지 못한 것. 1920년대에 아나키즘으로 전향한 다음에도 사회진화론과 국수주의를 고수. 조선상고사에서 역사를 '아와 비아의 투쟁'으로 정의. 

최남선은 단군을 단국의 군주가 아니라 무당으로 해석. 인도-유럽문화권, 중국문화권과 구별되는 독자적인 불함문화권이 발칸-중앙아시아-만주-한반도-일본열도까지 존재했다고 주장. 이는 식민사관과 친화성이 있는 일만선동조론.

안확은 조선문명사에서 부족-국가-통일국가라는 정치적 발전을 기준으로 한국사의 시대를 상고-중고-근고-근세로 구분. 안확은 조선이 일종의 입헌군주정인 제한군주정이었다고 평가. 붕당정치를 긍정적으로 해석하면서 신권주의를 주장한 서인은 자유주의정파, 왕권주의를 주장한 남인은 보수주의정파였다고 주장. 탕평정치의 귀결로서 외척세도정치가 망국의 원인이라고 주장한 셈.

안확의 후예인 이병도, 김상기, 이상백이 주도한 진단학회와 신채호의 후예인 문일평, 안재홍, 정인보가 주도한 조선학이 1950년대 남한사학계 주류의 연원. 그들은 세종이 창제한 훈민정음, 정약용이 집대성한 실학을 강조함으로써 문화주의적 민족주의를 창도.

신채호, 안확의 식민사관 비판은 역부족. 가장 유력한 비판은 후쿠다의 제자 백남운(연희전문학교 교수)이 조산사회경제사, 조선봉건사회경제사에서 제시. 백남운의 평전은 한국 근현대사상사 연구:1930-40년대 백남운의 학문과 정치경제사상(방기중)을 참고. 백남운의 부친은 송시열 후손 송병선의 제자.

백남운에 따르면, 삼국은 노예제, 통일신라-조선은 봉건제. 고려가 가장 전형적인 봉건제. 고조선은 원시공동체에서 노예제로의 이행기였는데 확정적 판단은 유보. 유럽적 봉건제와 차별화된 아시아적 봉건제의 특징으로 토지국유제와 그 결과로서 지대와 조세의 통일성을 강조.

일제강점기부터 해방, 분단정국까지 마르크스주의자들 사이에서 백남운의 시기구분을 둘러싸고 사회사 논쟁 전개. 이청원은 삼국부터 고려까지는 노예제, 조선은 봉건제였다고 주장. 일본공산당 주류 강좌파와 친화성 가졌던 그는 아시아적 원시공동체론을 수용하여 아시아적 봉건제론 기각.

강좌파는 1868년 이래의 메이지유신에도 불구하고 농촌의 봉건적 또는 반봉건적 관계가 존속하고 있다고 봤다. 따라서 절대주의 천황제를 타도하는 부르주아 민주주의혁명이 당면한 과제라며 2단계 혁명노선을 제출했다. 정치적으로 보면 코민테른의 정치방침과 이를 추수하는 일본공산당의 입장 즉 정통파를 대변하는 것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_id=201209232058325

전석담(경성고등상업학교 교수)은 노예제의 존재를 부정. 노예제의 부재로 인한 원시공동체의 장기적 존속으로 인해 삼국부터 시작된 봉건제로의 이행이 완만하게 진행될 수밖에 없었다고 주장. 백남운의 아시아적 봉건제론을 지지.

1960년대 이후 등장한 신세대는 서울대 한우근, 김철준 교수. 그들의 후계자가 한영우 교수. 김철준 교수가 '한국적 민족주의론'으로 유신을 정당화한 대가로 박정희가 한국사학계를 물심양면 지원.

진단학회 핵심성원 이상백 교수는 미국의 원조로 서울대 사회학과 창설. 그의 학통은 최문환 교수를 거쳐 김진균, 신용하 교수로 계승.

북한사학계를 주도한 사람은 경성제국대학 사학과 출신 김석형과 박시형. 1960년대 북한사학계는 고조선은 노예제, 삼국시대 이후는 봉건제였다는 결론 도출. 백남운, 진석담의 아시아적 봉건제론은 견지. 1970년대에는 주체사상이 득세하면서 고조선-고구려-발해 계보 강조하는 주체사관 출현. 역사의 추동력을 계급투쟁, 민족해방투쟁에서 발견하면서 생산양식과 사회구성체 개념은 상대화.

1975년, 사회경제사를 거부하던 서울대 국사학과에서 연세대 사학과로 이적한 김용섭 교수가 백남운 학통을 계승하여 조선후기 사회경제사를 연구. 한국사 인식과 역사이론(김용섭교수정년기념한국사학논총 간행위원회, 1997) 참고.

서울대학교 경제학과/경제학부는 전석담의 학통 계승하지 못함. 박현채 선생 교수로 부임하지 못했고, 안병직 교수는 전향. 이대교, 진백달 같은 마르크스주의 이론가가 부재.

고려대 사학과 강만길 교수가 분단사관, 민족통일사관을 제기. 한국사회성격 논쟁에서 민족해방(NL)론의 일각으로 계승. 민족해방론의 주류는 주체사관에 충실.

깅용섭 교수 입장을 비판적으로 수용한 한국역사연구회는 PD론적 입장과 친화성을 갖는 한국통사를 집필. 통일신라 이후에 봉건제 출현했다고 주장. 한국사에서는 노예제 발견할 수 없음을 인정. 주체사관, 분단사관 아닌 사회경제사관 타당하다는 것이 내(윤소영) 생각.

 

이처럼 정여립 사건과 관련되어 등인들은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이 사건에 대한 선조의 분노가 어떠했는지는 동인의 엉수인 이발이 뚜렷한 연루 혐의도 없이 조사를 받다가 죽은 데서도 알수 있다. 뚜렷한 물증은 없었지만 사건은 날로 확데되었고 억울한 희생자는 크게 늘어 갔다. 이 사건은 정철과 이발, 그리고 류성룡 등이 모두 죽고 난후에도 남인과 서인 사이의 끝없는 논쟁거리가 되있다. 이발이 죽을 당시 정철이 위관이었는가가 논쟁의 핵심이었다. 서인들이 당시 위관은 정철이 아니라 동인인  류성룡이었다고 주장했지만 남인측은 정여립 반란 사건 내내 위관은 정철이었다고 주장했다. 그럼 정여립 사건 당시 위관은 누구였던가? 류성룡이 위관이있던 적이 있있을까? 류성룡이 위관이었나는 증거는 없다. 다만 정여립 사건의 수사기록인 기축옥안已丑獄案이 임진왜린 때 불타버린 것을 이용해 서인들이 자기들이 살육한 정치보복을 동인 류성룡에게 뒤집어 씌운 정치공세였다. 이 사건은 조선의 당쟁이 피행으로 가는 첫 관문이었다. 사건의 진상은 모호한채 뚜렷한 물증도 없이 수많은 동인들이 죽어 갔다.

이덕일, 조선 선비 당쟁사


정철과 유성룡의 대화를 기록한 김장생의 ‘송강행록’이 조작이라고 이 소장은 주장했습니다. 선조 23년에 위관(委官)은 정철이었는데, 마치 유성룡인 것처럼 김장생이 기록하여 이발의 노모와 아들을 유성룡이 죽인 것처럼 덮어씌웠다는 게 그의 주장이었습니다. 저는 이 일이 선조 23년이 아닌 선조 24년의 일이었다고 바로잡아 그의 오류를 지적했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여전히 ‘광해군 9년(1617) 생원 양몽거(楊夢擧)의 상소’와 ‘아계 이상국(이산해) 연보’를 근거로 선조 23년이 옳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인조반정 이후의 서인들 기록에서부터 ‘선조 24년’으로 바뀌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양몽거의 상소는 광해군 9년이 아니라, 60년 뒤인 숙종 3년(1677)의 일이었습니다. 그 뒤 이 양몽거의 상소에 대해, 신묘년(선조 24년)을 경인년(선조 23년)으로 잘못 보았다는 다른 이들의 비판이 이어집니다. ‘아계 이상국 연보’도 광해군 때가 아니라 인조반정 이후에 편찬된 것입니다. 이것이 ‘장황한 판본 조사’가 중요한 이유입니다. 이발의 노모와 아들들이 죽은 시기는 분명 선조 23년 5월이 아니라 유성룡과 이양원이 위관을 맡았던 선조 24년 5월입니다.

이덕일 소장은 ‘가장 중요한 것은 사건의 기본 성격을 파악하는 것’이라고 논조를 바꿉니다. 아니지요. 기본 성격은 바로 이러한 사실들에 대한 면밀한 검토에서 도출되는 것입니다. 이 소장과 같은 방식으로 사료를 인용하면서 주장하는 ‘기본 성격’을 저는 신뢰하지 않습니다.

저는 이덕일 소장에게 편견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편견의 기반은, 식민사관에서 시작되어 근대주의적 역사관, 즉 ‘자본주의맹아론-실학’ 구도에서 강화된 당쟁론입니다. 제가 ‘콩쥐-팥쥐’ 프레임이라고 부르는 한국지성사의 안타까운 일면입니다. 이런 점에서, 이 소장은 비장하리만큼 자신과 ‘주류학계’를 구별하려고 하지만, 제가 보기에 그는 ‘주류학계’의 충실한 일원입니다.

- 오항녕, http://m.hani.co.kr/arti/culture/book/369753.html

 

 

2019/07/21 15:46 2019/07/21 15:46

듣는거음악이론

대위법

정선율 : 대위법에서 악곡의 처음을 시작하는 기본적인 선율. 대위법은 이 정선율에 다른 선율을 결합시키는 것. 정선율에 따라나오는 선율은 대위선율.

음악은 크게 수직적인 관점과 수평적인 관점에서 분석 할 수 있다. 두관점 중 어느 것이 좀 더 강조되느냐에 따라 다성 음악(polyphony) 양식과 화성 음악(homophony) 양식으로 나눌 수 있다. 다성 음악 양식은 9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 16세기까지의 음악에 적용되고, 화성 음악 양식은 17세기부터 18세기 중반까지 두 양식의 혼합기를 거쳐 18세기 후반부터 19세기까지의 음악에서 많이 볼 수 있다. 이 단원에서는 먼저‘화음과 화성법’에서는 여러 가지 화음의 구성과 울 림, 그리고 그 화음들의 연결 체계인 화성법과 그 진행의 효과를 공부하게 된다. 이어서‘선율과 대위법’에서는 각각의 선율이 지닌 아름다움과 또 다 른 여러 성부와의 조화에 대해 이해하고, 시대별 대위법에 대해 알아보도록 한다. 이 단원을 통해 작품에 대한 음악적 이해의 폭을 넓히고, 나아가 음악적 깊이를 더 할 수 있을것이다.

교학사 음악이론 교과서

16세기 대위법

#선율 진행에 관한 규칙과 화성에 관한 규칙
1) 선율 진행에 관한 규칙
① 순차 진행과 도약 진행을 적절히 혼합하여 사용하되 순차 진행을 많이 사용한다.
② 선율의 음정
가) 가능한 음정: 장음정, 단음정, 완전 음정이 가능하나, 단6도를 초과하는 것은 좋지 않다. 단, 완전8도는 가능하다.
나) 금하는 음정: 반음계적 음정, 모든 증·감음정, 단6도를 초과하는 음정 이다(단, 완전8도는 제외).
③ 단6도나 옥타브 도약을 할 때 도약 전음 혹은 후음이 도약 음정 안에 들 어가도록 한다(도약 전이나 도약 후에 반진행시킬 것).
④ 선율 진행 중 같은 음을 반복하지 않는다.
⑤ 음형의 반복이나 음역의 변화 부족으로 인한 단조로움은 피한다
⑥ 선율의 적절한 위치에 최고점이나 최저점을 만들어 클라이맥스를 만든다.

2) 수직 음정에 관한 규칙
① 외성 간의 반진행은 할 수 있다.
② 완전1·5·8도의 완전 어울림 음정과 장3·6도, 단3·6도의 불완전 어 울림 음정은 수직적으로 모두 어울림 음정으로 취급되고, 완전4도, 장2·7도, 단2·7도, 모든 증·감음정은 수직적으로 안어울림 음정으로 취급된다.
③ 병행 1·5·8도와 은복 1·5·8도는 금한다
④ 인접된 성부 간의 간격은 두 옥타브 미만으로 한다.
⑤ 동음(unison)은 약박에서 허용되며 강박에서는 피하는 것이 좋다. 단, 첫마디와 끝마디는 강박에서의 동음이 가능하다. 

2019/06/08 10:56 2019/06/08 10:56

지나간다민주노동자 전국회의 출범선언문

민주노동자 전국회의 출범선언문

오늘 우리는 자주촵민주촵통일과 노동자 해방세상의 염원을 안고 민주노동자전국회의 출범을 선언한다. 백여 년 전 이 땅에 뿌려졌던 갑오농민군의 반외세촵반봉건 투쟁정신은 제국주의 식민통치와 조국분단이란 고난의 역사 속에서도 민족해방과 계급해방을 향한 선배노동자들의 영웅적인 투쟁으로 이어져 왔다. 광주민중항쟁으로 되살아나고 87년 노동자 대투쟁을 통해 노동자가 사회변혁과 역사발전의 주체로 당당하게 섰음을 선언한 이후 민주노조운동의 역사로 오늘에 이르렀다.

오늘 우리의 현실은 어떠한가? 1945년 점령군으로 들어온 미국은 정치, 군사, 경제, 문화 등 모든 결정권을 손아귀에 틀어쥔 지 오래고, 반세기 넘게 세계 유일의 분단체제를 강요하며 민족의 자주권과 민중의 인간다운 삶을 빼앗아가고 있다. 우리 경제는 IMF를 앞세운 제국주의 경제침탈로 인해 껍데기만 남게 되었고, 경제주권마저 주장할 수 없는 미국의 경제식민지로 전락해 버렸다. 노동자는 구조조정과 비정규직화로, 농민은 농축산물 개방에 의한 농가부채로, 빈민은 살인적인 철거정책으로 죽음의 문턱으로 몰려있다. 800만이 넘는 실업자가 넘쳐나고 한 달에 수십 명의 노숙자가 굶어 죽어가고 있다. 결국 싸우지 않으면 죽을 수밖에 없는 것이 민중들의 참담한 현실이다. 외세와 분단체제에 빌붙어 기득권을 유지해 온 사대매국세력들은 민족의 자주적 통일보다는 굴욕적인 외세와의 공조를 강조하고 국가보안법 철폐불가를 강변하며 여전히 활개치고 있다.

그러나, 얼음장 밑으로 봄은 오듯이 예속과 억압에 맞서 투쟁으로 전진하고 있는 노동자 민중의 가슴마다에 해방세상은 가까이 다가오고 있다. 이 땅 모든 착취와 억압의 근본 원인이 제국주의 미국이라는 사실이 더욱 선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자주와 통일의 기운은 이제 거스를 수 없는 큰 물줄기가 되어 가고 있다. 바로 그 해방의 길에 노동자계급이 투쟁으로 힘차게 떨쳐나서고 있다.

현장조직운동은 어용노조를 민주화하여 민주노조를 세우고 지켜내면서 오늘의 민주노조운동을 있게 하였다. 그리고 이제 새로운 시대에 걸맞는 역할을 요구받고 있다. 단위사업장에 안주하고 경제적 권익과 노조집행부 교체에 두었던 활동의 중심을 한 단계 높여내야 한다. 올바른 사상과 강고한 실천투쟁으로 현장을 더욱 강화하고 지역과 전국차원의 조직활동으로 사회변혁을 위한 실천적 대안으로 나서야 한다.

이에 우리는 현장조직운동의 성과를 계승하고 그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현장활동가들의 전국조직인 민주노동자전국회의 깃발을 힘차게 올린다. 우리의 출범은 일천삼백만 노동자들에 대한 뜨거운 동지적 약속이다. 그리고 칠천만 민중에 대한 굳건한 연대의 약속이다. 민주노동자전국회의! 그 자랑스런 어깨 위에 민주노조운동의 앞날이 달려 있음을 한시도 잊지 말자. 투쟁 속에서 체득한 자주촵민주촵통일의 위업을 현장대중 속에서 구현해 나가자. 비타협적 투쟁으로 노동자의 계급적 요구를 쟁취하고 노동계급의 통일단결과 전 민중의 연대로 우리 사회의 참된 민주변혁과 우리 민족의 자주화와 통일을 안아 오자. 반드시 이루고야 말 노동자 해방세상 그날을 위해 민주노동자전국회의가 앞장서 싸워 나갈 것이다.

2001년 4월 21일

민 주 노 동 자 전 국 회 의 

2019/05/08 14:23 2019/05/08 14:23

스티브 제이 굴드, 리처드 도킨스, 테리 이글턴

스티브 제이 굴드를 비판하는 글들을 더러 읽었다.

이덕하라는 사람이 쓴 글은, 자신의 몰이해를 알아차리지 못한 비방에 가까웠고 -

어쨋든 굴드와 도킨스의 가장 큰 갈림은 '적응'에 있을 터다.

굴드는 삼각소간과 같이 의도치 않은 부산물이 있을 수 있다는 입장이라면, 도킨스는 모든 게 적응의 결과라는 입장이다. 유전자가 진화의 기본단위라고 치더라도, 한 유전자가 한 표현형만 발현시키는 게 아니라는 것은 진즉 규명되었다. 한 표현형을 발현시키는 유전자가 단수가 아니라는 사실도 규명되었다.

한국의 무당개구리가 전세계에 퍼져나가면서 같이 퍼진 곰팡이균 때문에 각지 양서류가 많이 죽는다 한다. 아마 몇 세대가 지나면 그 곰팡이균 면역을 획득한 개체들이 다수를 점하게 될 것이다. 그 면역과 관련된 유전자가 단순히 곰팡이균 면역 형질만 발현시킬까? 이건 너무 단선적인 시각이다.

'핀치의 부리'를 계속 읽고 있는데, 우선 미세한 변이를 추적하고, 종분화가 어느 시점에 일어나는지 추적하는 부분까지 읽고 있다. 읽는 속도가 잘 안나는데, 굴드의 책일 읽으며 익숙했던 진화의 개념과는 확연히 달라서다. 전문가가 아니다보니 어떤 대목에서 어떤 쟁점이 있다는 걸 정밀하게 서술하지는 못하겠는데, 진화를 적응의 결과로 전제하는 데에 가장 큰 차이가 있는 듯 하다. 생존에 유리한 형질이 더 많이 살아남는다는 건데, 부리의 길이에 초점을 맞춰서 연구한다. 표현형과 유전형이 1:1로 대응하지 않는다는 점, 생존에 영향을 미친 부리의 길이 외 다른 표현형(부리의 길이와 상관관계가 높은)이 있을 수 있다는 점 등이 의문이다. 지금 읽는 대목은 변이의 축적이 종분화로 도약하는 신비에 관한 것인데, 생각해보면 변이의 축적과 종분화는 특별한 관계가 있긴 어렵다. 새롭게 탄생한 종이 갖고 있는 형질이 그 시점의 환경에서 생존하는데 유리해서 더 많이 생존했다는 게 자연선택의 결론일 것이다.

나머지는 더 읽고나서 보충해야지.

테리 이글턴의 도킨스 비판과 스티브 제이 굴드-리처드 도킨스 사이의 의견 차이는 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예전에도 이걸 정리해보고 싶다는 글을 쓰지 않았을까 싶은데, 여전한 바람이다.

2019/04/27 23:29 2019/04/27 23:29

2019/03/16

'과학적 속물주의'에 반대하는 '황빠'식의 데마고기

- 이게 대체 무슨 말일까. 황빠가 과학적 속물주의에 반대한다는 유언비어가 있다는 뜻일까? 그런 유언비어가 있었나? 이거야말로 데마고기인데..

아니면 '황빠'라는 게 데마고기였고, '과학적 속물주의 반대'가 황우석을 비판하면서 등장한 '황빠'라는 담론과 유사한 유언비어라는 뜻일까? 그렇다면 과천은 황우석의 작업을 과학으로 인정하는 것인가?

이것도 아니면, '과학적 속물주의'에 반대하는 것이 황우석에게 맹목적이었던 '황빠'들 식의 유언비어와 비슷하다는 것일까? 당시 맥락상 이쪽일거라고 짐작해 보는데, 정말 이런 의도로 쓴건지 확신이 안선다. 하도 괴랄한 입장을 많이 봐와서.. 과학적 속물주의에 반대한다는 건 당시 한겨레 신문엔가 실렸던 칼럼일 거다. 

그리 중요한 맥락은 아니긴한데, 아무튼 도통 이해가 안돼서.

출처는 일반화된 마르크스주의와 대안노조 p17.

 

그리고 p18에서는 리민치를 참고하라고 각주를 달아놓는데, 리민치의 분석은 노동자연대의 평대로 상당히 어설프고, 난 읽으면서 중화주의가 이런것인가 하는 인상을 받았다. 중국에 대한 과도한 무게중심을 두는 결론들이다. 이 중에도 참고할 부분은 있겠으나, 제로 이윤율이라는 전제도 그렇고 현실에 발딛지 않은 글이라고 생각한다.

 

중국의 부상과 자본주의 세계경제의 종말
중국의 부상과 자본주의 세계경제의 종말
리민치
돌베개, 2010
일반화된 마르크스주의와 대안노조
일반화된 마르크스주의와 대안노조
윤소영
공감, 2008

 

2019/03/16 09:49 2019/03/16 09:49

지나간다2019/03/01

우라우문떼야/어려서 편가를 때마다 했던 구혼데, 그 뜻이 항상 궁금했었다. 일본어 잔재가 아닐까 짐작만 했을 뿐. 위키백과를 보니 나온다. 우라와 오모떼가 어원인가 보다.
2019/03/01 09:35 2019/03/01 09:35

지나간다2019/02/20

어제는, 새벽에 자다 문득 깼다.

불안감이 엄습했다.

해야할 일들을 마무리 짓지 못하는 것에 대한 불안감.

모든 것이 무너질 것 같고, 대책이 없을 것만 같은.

 

아침에 일어나니 평온한 마음이다.

아주 오랜만에 느껴보는 불안이다.

그동안 꽤나 건강하게 살았구나..하는 안도감(?)과

상황과 조건은 그 새벽이나, 아침이나 다를 게 없으니 엄습했던 불안은 결국 마음이 만들어내는 것이라는 원효대사의 깨달음과.

 

이런 징조를 무시하지는 말일이다.

2019/02/20 12:06 2019/02/20 12:06

지나간다보호주의는 세계 공급 사슬을 위협하고 있었다, 트럼프 이전에.

https://voxeu.org/article/protectionism-was-threatening-global-supply-chains-trump

 

보호주의는 세계 공급 사슬을 위협하고 있었다, 트럼프 이전에.

 

Figure 1 Simple average MFN applied tariffs 1995-2015, by Import product category

a) G20 high-inco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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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 G20 emerg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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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ure 2 Temporary trade barrier import coverage, 1995-2016

a) G20 high-income, TTB coverage of imports from Chi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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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 G20 high-income, TTB coverage of imports from non-Chi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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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 G20 emerging,* TTB coverage of imports from Chi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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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 G20 emerging,* TTB coverage of imports from non-Chi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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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2/20 11:59 2019/02/20 11: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