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게시물에서 찾기자유로운 영혼

[코뮤니스트 15호] 인플레이션은 이웃마다 다르다

인플레이션은 이웃마다 다르다

 

 photo_2021-01-04_14-28-21.jpg

 

인플레이션이 모든 사람에게 같은 방식으로 영향을 준다는 주장은 진실이 아니다경제 데이터는 현재 인플레이션이전 세계적으로노동에서 자본으로그리고 가장 약한 자본에서 가장 집중된 자본으로의 소득의 실질적인 이전을 숨기고 있다그러나 노동자와 가장 약한 자본에 속하는 농촌의 소자본가계급(쁘띠부르주아지)이나 운송업자의 반응은 정반대이다노동자는 기본적인 필수품에 대한 보편적인 접근을 요구하지만소규모 토지 소유자는 그들이 고용하는 노동자의 임금과 고용 조건을 줄일 수 있기를 요구한다.

 

인플레이션과 노동자 

 

1. 유럽의 모든 국가에서 압도적 다수를 차지하는 소득 하위 20%는 수입의 35%에서 51%를 기본적인 필수품에 소비한다반면에 소득 상위 20%는 필수품 구입에 소득의 20%도 쓰지 않는다다시 말해서가격 상승은 계급에 불평등하게 영향을 미친다다시 말해 가격 상승에서 필수품의 상대적 비중이 클수록 노동자에게 미치는 영향도 더 크다.

 

2. 그리고 사실 이것이 정확히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인플레이션은 필수품에 집중되고 있다그리고 연료를 제외하더라도필수 소비재와 시중에 유통되는 나머지 상품 사이 가격 상승의 차이가 크다기초 곡물의 국제 가격이 급격히 오르고 있다밀은 이미 21% 올랐고보리는 33% 올랐다.

 

3. 그 결과 인플레이션의 영향을 소득수준별로 세분화하면소득 상위 20%(소자본가와 자본가)와 소득 하위 20%가 겪는 인플레이션은 공통점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유럽 전체적으로노동자의 대다수가 속한 소득층이 최대 4배 이상의 인플레이션 고통을 겪고 있다.

 

그리고 이것은 단지 부분에 불과하다.

 

4. 왜냐하면 고려해야 할 또 다른 요소는 소득의 변화이기 때문이다프랑스를 제외한 모든 유럽 국가에서 인플레이션은 가처분 소득보다 더 많이 증가했고평균적으로 사회는 더 가난해졌다하지만 계급별로 보면 결과는 매우 달라진다보기를 들어 프랑스와 스페인 모두에서 노동계급이 버는 실질 임금은 지난 10년 동안 떨어졌다노동자는 2019년 위기 이후 소득이 더욱 감소했고자본은 유럽 대륙에서 노동자 가정의 구매력을 더욱 떨어뜨릴 '소득 협약'을 준비하고 있다.

 

소득 상승은 노동계급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에서 일어난다그곳에서는 가정 가처분소득이 증가하고 있고이는 노동자로부터 소자본가와 자본가로의 소득 이전을 숨긴다스페인과 이탈리아처럼 소득이 하락한 국가에서는 2019년 위기 이후 GDP의 하락분과 거의 같다상장기업들은 2019년보다 훨씬 더 많은 배당금을 주주에게 분배하고 있다이는 위기로 가장 "불행히도 타격을 받은국가에서는 자본가의 자본증식을 가능하게 하는 소득 이전이 노동자에게만 국한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소자본가도 소득이 대규모 자본으로 이전되어 소득이 감소했고 실질 구매력이 감소했다.

 

photo_2021-01-04_14-28-03.jpg

 

 

인플레이션과 소자본가

 

문제는 인플레이션이 소자본가계급에 만들어내는 효과와 입장이 인플레이션이 노동계급에서 만들어내는 효과와 입장과 완전히 다르다는 것이다우리는 지난 몇 주 동안 프랑스의 어부들과 스페인의 소규모 운송업자들의 봉쇄를 보아왔는데이제는 중간 규모 소유자들도 합류할 것으로 보인다그리고 이것은 농민의 동원에서 훨씬 더 명확했다소규모 토지 소유자의 항의는 특히 에너지 요금의 인상에 촉발되었다그러나 그들의 요구는 한 가지를 더 추가했는데그것은 바로 직원의 임금과 근무 조건이다.어제 보수 성향의 일간지 ABC가 시위의 주최자와 참가자를 상대로 수집한 메시지에서 그 의미는 분명했다한 젊은 토지 소유자는 이렇게 주장했다.

 

우리는 스페인의 농촌이 겪고 있는 억압적인 상황 때문에 여기에 있습니다정부가 단행한 모든 조치보기를 들어 노동개혁 조치로 인한 계약모델이 직원과 고용계약 체결에 영향을 미칩니다우리는 직원을 고용한 작은 회사입니다물론노동자는 자신의 권리나 조건이 악화하는 것을 방관할 수 없겠지만이 모든 것이 가족 비즈니스의 지갑에는 부정적 영향을 미칩니다.”

 

photo_2021-01-04_14-28-17.jpg

 

인플레이션에 반대하는 모든 시위가 똑같지는 않다.

 

따라서 물가 상승에 반대하는 모로코 노동자의 시위가 아무리 똑같은 척을 하더라도 스페인의 소자본가의 시위와 같지 않다소자본가는 투입비용의 상승으로 인한 이윤의 상실을 어업이나 농업 분야에서 대규모 자본을 유치하기 어려운 조건에서 이미 최악의 임금을 받는 노동자의 임금과 노동 조건을 악화시켜 보충하고자 한다.

 

게다가그들은 이제 질소 비료와 살충제의 집중적이고 과도한 사용이 인구와 환경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에도 불구하고소규모 자산을 자본화하기에 유리한 집약적인 농업과 축산업으로 돌아가기 위해 탄소배출 총량제와 온실가스협정에 따른 규제를 회피할 수 있게 되기를 요구하고 있다.

 

반면에노동계급은 그들 자신의 사회적 위치 때문에 그들 자신뿐 아니라 모두를 위한 기본적인 필요의 충족을 위한 접근을 요구하는 것 이외에는 다른 것을 추구하지 않는다그들은 모든 사람의 필요를 만족시키기 위한 물질적 기초가 모든 사람의 시야에 있는 손이 닿을 수 있는 곳에 있고인간의 보편적인 필요를 충족시키는 기준이 현 시스템과 그 작동이 우리에게 부과하는 수익성보다 우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2022년 3월 21

해방(EMANCIPATION)

옮긴이 우연이

 

photo_2021-01-04_14-28-12.jpg

 

<출처https://en.communia.blog/inflation-varies-by-neighborhoods/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코뮤니스트 15호] 선거, 부르주아 통치의 화려한 사기 전술

선거부르주아 통치의 화려한 사기 전술

 

 photo_2021-01-03_01-51-54.jpg

 

들어가며

 

대통령선거와 지방선거뿐만 아니라 자본주의 국가에서 행해지는 모든 선거는 노동계급의 현실과 고통을 감추고 쇠퇴하는 자본주의의 환상을 퍼트린다밤에 태양보다 촛불이 더 밝다고 태양의 존재는 사라지지 않는다하지만 부르주아 선거판을 넘어 사회 곳곳에서는 촛불이 진리고 암흑을 비추는 등대로 자리 잡았다부르주아 독재는 자유민주주의로간접민주주의는 의회민주주의로민족주의는 진보로()노동주의와 반()여성주의는 공정과 정의로 포장되었다부르주아 민주주의는 교과서를 벗어나 보편타당한 진리로 둔갑했다자본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파렴치한 언행뿐만 아니라 그들이 만든 법도 개정하고 없던 법도 만드는 국회는 박물관에나 존재하여야 할 소수정귀족정이나 다름없지만, 의회민주주의라는 화려한 치장으로 현혹하고 있다.

 

이쯤 되면 부르주아 정치는 치졸한 사기술이기도 하다한 시대의 지배적 사상은 늘 지배계급의 사상이었듯이 부르주아의 사기는 이데올로기 기관을 통해 재생산화되고 일상 곳곳에 파상적으로 침투해있다그 정점에 선거판이 있다이 글은 자본주의 국가의 각종 선거가 어떤 역할을 하며 지배계급이 선거를 통하여 어떤 이익을 얻는지에 대한 비판과 노동계급의 역할에 대해 밝히고자 한다.

 

선거 옛것이 새것으로

 

어느 때보다 치열했던 지배계급 분파의 20대 대통령선거는 언론과 검찰 권력의 비호를 받는 분파가 승리했다윤석열은 아직 취임도 하지 않았지만서서히 그리고 노골적으로 노동자에 대한 공격 본성을 드러내고 있다최저임금 업종별 차등 적용각종 부동산 규제 완화각종 경제 규제 완화차기 정권 인사에 시장주의자와 비리 인물 내정 등 본색을 조금씩 드러내고 있다그렇다고 문재인 정권이 반자본/친노동적이지는 않았다그들 역시 시장주의자 등용과 친자본 정책을 추구했다선거 후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문재인 정부의 정규직 전환 약속은 수많은 노동자에 대한 사기였다새 정부는 일터가정사회의 모든 구성원의 노동이 사회적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도록 하는 노동자 관점의 정책법제도 등을 만들어 달라라며 올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첫 일정에서 공공부문의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국민건강보험센터발전 비정규직가스공사 비정규직인천공항 비정규직법원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앞장서 싸우겠다라고 주장하고 있다.1)

 

결국 문재인 정권과 윤석열 정권과의 차이는 완화된 표현을 사용하느냐 아니냐의 차이일 뿐 노골적인 친자본/반노동의 본질은 같다지난 5년 문재인 정권의 부동산 가격 폭락 방지책임신 중지를 범죄로 낙인찍는 모자보건법의 개정안디지털/그린 뉴딜 같은 전형적인 자본 이윤추구 정책과 반()노동 정책은 자본의 이해관계에 대한 철저한 반영이다남 대 여정규직 대 비정규직지역주의민족주의 등의 갈라치기 통치방식은 정국의 고비 고비마다 요긴하게 이용되고 재생산되었다그런데도 선거판은 옛것(자본 이해관계에 대한 옹호와 적대적인 노동정책과 인물제도 등)을 새것으로 둔갑시키고 환상을 퍼트린다이것은 현존하는 각종 위기의 원인인 자본주의에 생명 연장 장치를 달아주는 꼴이다.

 

전쟁기후 위기대유행경제위기(부동산값 폭등청년실업빈부격차 가속임금과 이윤 격차 증대등 자본의 위기로 발생한 상황을 감추기 위해 지배계급은 선거에서 피지배계급의 편을 가르고 경쟁하는 지배계급끼리의 비방전으로 본질을 감추고자 했다자본의 위기에서 비롯된 여러 가지 불만을 선거판을 통해 갈라치기와 흑색선전가짜뉴스를 통해 체제에 위협적이고 위기의 원인을 피지배계급의 특정 집단을 적으로 만들어 본질을 가렸다결과적으로 자본주의는 각종 위기에 대한 진단 능력도극복할 능력도 의지도 없다따라서 지배계급은 이런 위기를 자신들에 대한 도전으로체제에 대한 도전으로 나아가는 것을 막고자 여러 환상을 퍼트리는데 선거는 아주 중요한 수단 중 하나이다이번 대선에서도 자본주의에 대한 투쟁과 코뮤니즘에 대한 지향을 차단하고 노동자에게 환상만 심어준다는 것을 다시 확인했다.

 

사기 공약과 자유주의적 시각

 

자본주의적 방식으로는 경제위기를 비롯한 각종 위기를 해결할 수 없다그렇기 때문에 선거 공약은 처음부터 지켜질 수 없는 헛공약이 남발된다문재인 정권이 지난 4년간 달성한 공약 이행률은 17.5%이다공약 이행률이 저조했던 건 문재인 정권만이 아니다역대 정권 중 공약 이행률이 50%를 넘은 정부는 단 한 곳도 없다물론 특정 정권을 공약 이행률 수치로 평가하는 것은 단면적이다공약 이행률보다 더 중요한 것은 특정 집단의 표심을 얻기 위한 공약의 이행여부다가령 문재인 정권은 탈원전최저임금 1만원비정규직의 정규직화언론/검찰 개혁 등의 공약으로 개혁적 이미지로 미화하려고 했다하지만 위 공약은 말뿐인 공약이었다그 이전의 민주당 정권 역시 마찬가지이다반면 친자본 정책은 철저하게 이행되고 시행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이쯤 되면 노동자에게는 헛공약이 아닌 사기 수준이다.

 

기만적인 공약은 노동자에게는 사기이지만 지배계급에는 정권 쟁취와 유지의 핵심이고 통치 철학이다그것은 처음부터 끝까지 자본의자본에 의한자본을 위한 정권이었다자본주의 체제에서는 불가능한 공약을 들고 선거판에 뛰어든 운동 세력과 진보정당이 자본주의 좌파 일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그럼 왜 사기 공약인 줄 알면서 지지와 환호를 보내는 것인가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핵심은 성장이데올로기이다성장이데올로기는 경쟁적으로 경제공약을 내놓는 기반이고 자본주의 모순을 감추는 특효약이다.

 

선거 때마다 복지를 포함한 경제는 늘 핵심 이슈였다경제와 복지 공약은 성장이데올로기를 전제로 정책을 내놓고 집권한 시기에도 경제성장률은 핵심 선전 내용이 된다여기에는 성장 위에서만 분배복지 등의 논의가 가능하다는 인식이 전제되어 있다지배계급은 파이가 커지면 조각도 커진다.’라는 논리로 빈곤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선전한다하지만 이 논리로는 빈곤을 해결할 수 없고 오히려 격차가 더 가속화될 뿐이다왜냐하면 자본주의에서는 성장과 착취수탈은 결코 분리되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노동에 대한 착취가 없다면 자본주의는 지탱될 수 없기에 이런 의도는 자본의 이해를 정치적으로 표현하는 이데올로기일 뿐이다성장이데올로기의 허구는 자본축적의 상징인 고층빌딩과 빈곤의 상징인 슬럼가가 동시에 존재하는 모습을 통해 명확히 드러난다슬럼은 첨단 건축 재료를 사용하고 근대 이전에 존재하지 않는 근대의 산물이다슬럼가 사람들은 고층빌딩 청소부경비 등으로 경제체제에 결합하여 빌딩을 더 고층화하기 위한 이윤 창출의 수단으로 복무하는 철저한 착취 속에 있다결국 경제성장이 슬럼을 고층 빌딩화한다는 것은 속임수이며 문화적으로 다양한 사회를 고층슬럼으로 이원화하는 데 불과하다.

 

또한성장이데올로기의 전제는 정치와 경제를 따로 분리하는 자유주의적 이분법에 기초해 있다이런 시각의 바탕에는 억압적 사회구조들은 독재로 상징되는 잘못된 정치가 없었다면 아무 문제가 없다는 점을 전제로 하고 있다그래서 모든 문제의 근원은 국가의 권위주의적 개입에 기인하므로 국가의 경제개입 배제 및 시장원리가 보장된다면 문제는 없어지고 이후에 경제성장은 민주주의를 위한 토대가 된다고 보는 것이다.

박근혜에 대한 지지의 핵심은 박정희에 대한 신드룸이었다박정희 신드롬의 핵심은 성장이데올로기이다또한 성장이데올로기는 문재인 정권의 핵심이기도 하다이런 점에서 이명박-박근혜 정권의 탄생의 배경은 민주당을 비롯한 자유민주주의 정당들과 이른바 진보 인사라고 지칭되는 자유주의 이데올로그진보 정당들과 일부 운동 세력을 비롯한 자본주의 좌파들이다윤석열 정권의 등장 배경 역시 이와 다르지 않다선거를 통해 더욱 확실히 공고화되는 자유주의 시각과 성장이데올로기는 이렇게 자본주의에 대한 생명 연장과 기대를 상승시킨다이런 맥락에서 박정희 신드룸윤석열 정권의 탄생은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라 자유민주주의 토대에서는 당연한 것이다.

 

자본주의 국가에서 자유민주주의 본질

 

자유주의의 기원은 부르주아가 봉건제적 질서에 대항하는 과정에서 사적 소유권 보장과 개인 간의 자유로운 계약의 보장을 요구하면서 성립되었다자유주의는 자유와 평등의 이념에도 불구하고 재산권에 의해 차별받는다유산계급만이 자유와 평등이 적용되었다프롤레타리아트는 1789년 프랑스대혁명을 기점으로 차별적 자유와 평등의 문제를 제기하였다따라서 자유주의는 자본주의 생산양식으로 확립하려는 계급적 이념이고 민주주의는 신분 질서에 대항한 정치영역에서의 투쟁으로 성립되었다이는 부르주아에게 자유주의 내에서 민주주의적 요구를 수용하라는 압박으로 작용했다그래서 정치적 자유를 확대하면서 부르주아의 권리 체제를 유지하는 방안을 모색하였다자유주의를 고수하면서 자본과 노동계급의 타협된 정치 기제를 제도화하였다이런 상황에서 부르주아는 그들에게 위험한 민주주의를 제한하기 위해 대의제차등 대표제를 제안하였다이런 과정에서 자유주의는 민주주의를 변질시키고자 평등을 자유와 조화라는 개념으로 변화시켜 자유민주주의로 결합하였다.

 

이처럼 자유민주주의는 자본주의 발달에 힘입어 자유주의적 가치에 기반을 둔 정치체제로 형성해 왔다이는 철저하게 자본의 이해 보호와 대중에 대한 무시와 불신을 전제로 하고 있다특히 20세기 이후에는 대표 선출 기제나 절차로서만 파악하는 것으로 변했다그러나 대표가 될 수 있는 자유와 경쟁이 보장된다고 하더라도 기회조건의 불평등이 구조화되었기 때문에 자유민주주의는 부르주아의 이해를 옹호하는 장치에 불과하다지배계급의 이러한 인식은 차기 정권 외교부 장관 내정자인 박진을 통해서도 확인된다미국 기밀문서 폭로사이트 위키리크스는 2008년 6월 이명박 정권 당시 박진은 미국 관료에게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에 대해 "한국은 너무 많은 민주주의를 갖게 됐다"라며 불만을 토로했다고 폭로했다.2)

 

이처럼 자유민주주의 하의 국가기구는 철저히 부르주아의 부와 지위를 재생산하고 프롤레타리아트의 권리를 배제하는 부르주아 독재에 불과하다또한 부르주아적 권리를 국가도 침범할 수 없는 국민의 기본권으로 보호하는 국가체제로서오직 부르주아적 개인들의 대표기구가 합법적으로 위임하는 바에 따라 국가 행위가 이루어진다결국 자유민주주의는 노동자에게 정치적 패배주의만을 조장하며 경제적 불평등을 무시하고 있다.

 

나오며 선거는 부르주아 독재의 통치술

 

의회 제도는 부르주아 국가의 폭력적 통치를 은폐하여 상대적으로 덜 야만적인 폭력을 사용하고주기적인 선거제도를 통해 지배계급의 분파 사이에서 정권을 교체할 수 있게 한다선거와 의회제도는 노동계급에 대한 부르주아지의 합법적인 지배를 보장해주는 장치가 되었다이것은 노동계급에 자신을 다스릴 사람을 직접 선출하고 자신이 정치권력에 참여하고 있다는 환상에 빠지게 한다하지만 노동계급의 권력 장악과 완전한 정치참여는자본주의와 그 국가기구의 파괴를 통해서만 달성될 수 있다부르주아지는 국가의 폭력을 통해 전 사회를 지배할 뿐만 아니라 그것을 이용해 노동계급을 착취하는 특권을 가졌기 때문에어떤 특권이나 착취도 필요가 없는 노동계급은 지배계급의 국가를 그대로 이용할 수 없다따라서 노동계급은 자본의 국가기구나 그 제도장치 등을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그에 맞서 자신의 계급영역에서 투쟁해야 한다.” (국제주의코뮤니스트전망, ‘()의회주의 혁명전략’, 코뮤니스트정치원칙)

 

이처럼 지배계급은 선거를 통해 자유주의의 재생산과 자본주의의 위기를 왜곡하고 있는 것을 확인했다부르주아 선거판은 부르주아 사회의 모든 정치적 장치를 유지하고노동자의 혁명성을 제거하는 수단이다간접 민주주의는 부르주아지의 독재를 위장하는 껍데기에 불과하다따라서 노동계급에는 자본주의 국가의 모든 기구와 제도(의회/선거제도 포함)를 파괴하는 것이 혁명의 출발점이다.

 

부르주아 독재 파괴하고 노동자민주주의를!

자유주의 환상을 퍼트리는 부르주아 선거 거부!

선거가 아닌 계급투쟁을!

 

2022년 4

국제주의코뮤니스트전망 ┃ 윤태상

 

 

 

<>

1. 윤석열 당선에 노동계일제히 우려비정규직 투쟁 선포’, 참세상, 2022. 03. 10.

2. 박진 후보자가 미국에 한 말 한국은 민주주의가 지나치다”, 오마이뉴스, 2022. 04. 14.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코뮤니스트 15호] 전쟁이 아닌 계급전쟁으로 - 리버플 -

전쟁이 아닌 계급전쟁으로

리버플 전단 -

 

photo_2021-01-03_01-36-52.jpg

 

전쟁빈곤위기와 질병자본주의 체제의 진정한 얼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세계는 폭발 일보 직전에 가까워지고 있다다시 한번 전 세계의 노동계급은 우리가 얻을 것도 없고 잃을 것도 없는 충돌에서 한 편을 들도록 요청받고 있다한편으로 러시아는 소련 붕괴 이후 잃어버린 것을 되찾으려 하고 있다반면에 나토는 우크라이나를 자기 영향력 안으로 끌어들이려고 한다그 배경에는 유럽연합(EU) 국가들이 미국 뒤에 집결하고 러시아가 중국으로 눈을 돌리는 등 제국주의 결속이 굳어지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일반화된 전쟁으로의 확대를 의미하지만현재 우크라이나는 유일한 전쟁터가 아니다그곳이 시리아든예멘이든팔레스타인이든 자본가계급은 전 세계에서 노동자들을 서로 싸우게 하고 있다이 모든 것은 재정 수입원자재값싼 노동력을 찾기 위한 것이다분열과 통치의 이데올로기 무기인 민족주의는 우리에게 우리가 아닌 다른 목적을 위해 죽이고 죽도록 요구한다.

 

또한기후 위기를 상기하자홍수화재극단적인 기상현상으로 점차 지구 전체가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으로 변하고 있다지배계급은 지구 생명체의 생물 다양성과 환경적 토대에 대해 거의 고려하지 않고 지구를 개인 뒷마당처럼 계속 취급한다그리고 현실을 직시하자코로나19를 발생시키고 확산해 수백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자본주의 조건들은 여전히 유효하다미래의 전염병 위협이 크게 다가오고 있다.

 

전쟁빈곤위기질병은 야만적인 경향을 가진 체제로 인해 전 세대에 걸쳐 상처 입은 사람들(난민병에 걸려 장애를 얻거나 죽은 가족과 친구실직자와 홈리스 등)을 만들어내고 있다.

 

이것은 모든 노동자와 인류의 미래에 대한 여러 전선에서의 전쟁이다하지만 우리는 저항할 수 있다우리의 생활과 노동 조건을 방어하려는 시도는 사유재산임금노동화폐 및 국가의 존재를 특징으로 하는 현재의 생산 체제인 자본주의가 문제의 근원임을 인식하는 더 넓은 운동의 씨앗을 뿌릴 수 있다우리는 이윤이 아닌 필요에 따라 생산이 이루어지는 사회국가와 국경이 사라지고 노동계급이 만든 독립적인 기관(노동자평의회)이 인류가 직면한 문제를 집단적으로 해결하기 시작할 수 있는 세계 공동체를 만들 수 있는 사회적 질문과 가능성을 제기해야 한다.

 

마찬가지로러시아에서의 반전(反戰)시위우크라이나에서의 명령 불복종 군인들영국과 이탈리아 부두 노동자들의 선적 처리 거부벨라루스 철도 노동자들의 사보타주 등 지금까지 보고된 흩어져 있는 반전 행동은 한쪽 또는 다른 쪽에 도구화되지 않도록 진정한 반전이 되기 위해 노동계급의 관점을 가져야 한다이 분쟁에서 러시아나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는 것은 전쟁에 대한 지원을 의미한다이 악몽을 끝내는 유일한 방법은 노동자들이 국경을 넘어 계급적이고 우호적인 연대로 전쟁 기계를 전복시키는 것이다민족주의 선전을 믿지 말자!

 

이것이 우리가 전쟁이 아닌 계급전쟁으로를 주장하는 이유이다지배계급은 이미 우리와 지구를 상대로 전쟁을 벌이고 있다대안을 만드는 것은 전 세계의 노동자즉 그들이 없으면 모든 것이 중단되는 절대다수의 노동자에 달려 있다.

 

 photo_2021-01-03_01-33-31.jpg

 

우리는 무엇을 위해 싸우는가?

 

세계 자본주의는 장기적이고 심화하는 위기에 처해 있으며우리를 일반화된 전쟁의 길로 이끌고 있다오늘날 60개 이상의 국지전이 벌어지고 있다서로 다른 갱단들이 통치권을 위해 투쟁하는 동안이들 모두는 우리 노동계급의 삶을 파괴한다이러한 전쟁의 대부분은 주요 제국주의 강대국의 고객 사이에서 발생한다그들은 공개 무역전쟁과 함께 더 넓은 세계 분쟁의 전조인 대리 제국주의 전쟁이다전쟁 책동은 자본주의 체제 자체의 작동 결과이다그것은 일부 미치거나 나쁜 자본주의 지도자들에 의한 결과가 아니며자본주의 체제의 전복만이 전쟁을 막을 수 있다우리가 직면한 진정한 대안은 전쟁이냐 혁명이냐이다.

 

전쟁이 아닌 계급전쟁으로의 지지자들은 노동계급에 의한 자본주의의 혁명적 전복과 새로운 전 지구적 생산체제 창설을 목표로 하고 있다우리는 모든 사람의 필요를 직접적으로 충족시키는 공유 소유를 기반으로 하는 체제를 지향한다이것은 노동자평의회의 세계 체제를 통해 노동계급이 민주적으로 통제할 것이다이윤을 위한 생산과 국가 및 국경의 체계는 없어질 것이다그 과정에서 자본주의 지구 오염은 역전될 것이며 인류는 지속 가능한 발전을 계획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달성하기 위해 우리는 세계적인 규모로 조직하고 새로운 사회를 만들 필요성에 대한 이해와 그것을 달성하는 방법에 대한 의식을 확산해야 한다노동계급은 이 과제를 위해 혁명가들로 구성된 국제적 정치 조직을 만들어야 한다.

 

필요한 출발점은 우리 자신의 이해관계 방어를 강화하고지배계급이 우리에게 지원을 요구하는 전쟁을 포함한 지배계급 의제를 거부하는 것이다이 모든 전쟁은 자본의 일부를 위한 제국주의 전쟁이다전쟁이 아닌 계급전쟁으로는 노동계급을 기반으로 전쟁에 반대하기 위해 존재하며지배계급의 일부만이 아니라 가난질병재난에 의해 천천히 또는 전쟁의 빠른 속도로 세계 노동자들을 죽음파괴불행에 빠뜨리는 전체 썩은 체제에 반대한다.

노동자에게 조국은 없다이른바 '민족해방또는 '()제국주의전쟁은 위장한 제국주의 전쟁일 뿐이다우리는 제도권 정당과 노동조합 그리고 사이비 혁명의 늪에 빠진 그들의 추종자와 같은 자본주의 좌파의 어떠한 자본가 꼭두각시와도 공동전선을 만들지 않는다그들은 모두 자본가 체제에 들어가 있고 평화와 전쟁에서 그것을 지지한다.

 

전쟁이 아닌 계급전쟁으로!

우리가 나서서 부르주아 전쟁과 긴축에 맞선 계급투쟁을 전면화하자!

 

전쟁이 아닌 계급전쟁으로는 이러한 정치 입장을 지지하는 그룹과 개인의 조직이다우리는 지지하는 이들의 가입과 "전쟁이 아닌 계급전쟁으로"를 위한 계급투쟁에서 선전물을 제작 배포하고 개입할 수 있도록 도울 것이다.

 

 

전쟁이 아닌 계급전쟁으로(리버플)

 

<출처> https://nwbcwliverpool.wordpress.com/pdf/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코뮤니스트 14호] 볼셰비키 중 가장 비타협적인 인물 : 가브릴 미아스니코프(Miasnikov), 「노동자 그룹」과 러시아혁명의 퇴보Ⅰ

볼셰비키 중 가장 비타협적인 인물 :

가브릴 미아스니코프(Miasnikov)노동자 그룹과 러시아혁명의 퇴보

 

photo_2021-01-04_19-35-14.jpg

 

코뮤니스트 좌파 가브릴 미아스니코프그리고 러시아 코뮤니스트당 노동자 그룹의 새로운 전기 -

 

가브릴 일리치 미아스니코프(Gavriil Il'ich Miasnikov)는 종종 잊힌 볼셰비키의 이름이다우랄 출신의 금속 노동자였던 미아스니코프는 그야말로 비타협적인 혁명가였다그의 삶은 여러 면에서 혁명적 사회주의자의 최고를 보여주었다그는 공장위원회와 소비에트의 설립을 도왔고차르의 동생인 미하일 대공의 처형에 관여했다그는 레닌과 트로츠키의 동맹이자 비평가였으며지노비예프의 맹렬한 적이었고칼 코르쉬루스 피셔(Ruth Fischer), 프랑스 아나코-생디칼리스트의 친구였다그는 볼셰비키당에서 제명당했고미쳤다고 낙인찍히고고문을 당하고 추방되었다다른 많은 혁명가와 마찬가지로 미아스니코프도 스탈린주의 감옥에서 생을 마감했다.

 

가브릴의 신념이 그가 권력자들과 영원히 대립하게 하였다그는 노동계급을 위해 무엇이 옳은지 결정할 권리는자신의 당을 포함하여노동자 자신 외에 아무도 없다고 믿었다그는 추방되었을 때 볼셰비키 내부의 작은 반대파인 러시아 코뮤니스트당 노동자 그룹을 창립했다노동자 그룹은 흔히 노동자 반대파민주중앙집중주의좌익 반대파의 유산에 가려져 있다그들은 새로운 소비에트 국가의 정점에 대한 주변 관계를 고려할 때아마도 거의 알려지지 않았을 것이다그러나 노동자 그룹의 이야기는 코뮤니스트 독재정권에 대한 초기 투쟁에서 그들과 러시아 노동계급과의 관련성을 입증한다다른 반대파들이 여전히 당 회의에서 비판하고 속닥이고 있는 동안노동자 그룹은 공장 안에서 노동자들의 행동을 촉구하고 있었다.

 

다른 반대파들과는 달리 노동자 그룹은 프롤레타리아라는 거의 독점적인 구성과 코뮤니스트 운동의 퇴보에 대한 초기의 분명한 반대파로 정의되었다가장 중요한 것은 그들이 해외와 러시아에서 퇴보하는 상황에 도전할 수 있는 유일한 세력으로 노동자들을 움직이게 하려 했다는 점이다미아스니코프의 삶을 살펴보면 우리는 그를 코뮤니스트 운동의 역사에서 비록 저평가되기는 했지만중요한 독립적인 인물로 위치시키는 전기(傳記)를 만들 수 있다이를 통해 우리는 오늘의 혁명가를 위한 전환점과 정치적 교훈을 강조하는 상을 그리면서 보다 광범위한 혁명적 상황을 탐구할 수 있다.

 

수많은 혁명적 실마리에 천착한 삶

 

1889년 2월 25가브릴 미아스니코프는 러시아 치스토폴(Chistopol)에서 태어났다러시아혁명의 첫 번째 리허설과 같은 해인 1905년 미아스니코프가 16세가 되기 전까지 알려진 것은 거의 없다그는 이미 우랄에 위치한 페름(Perm)시의 공장에서 일하고 있었다우랄은 러시아 서부를 가로질러 북쪽에서 남쪽으로 뻗어 있는 산악 지대이다여기서 미아스니코프는 금속 수습공으로 일하고 있었다. 1905년 봉기 하는 동안 그는 페름의 더 큰 지역 중 하나이자 금속공업의 기반인 모토빌리카(Motovilikha)에서 지역 소비에트를 설립하는 것을 도왔다. 1906년 러시아 사회민주노동당의 볼셰비키분파에 합류했으나 차르의 탄압으로 체포되어 시베리아로 추방되었다그는 그곳에서 7년 동안 머물렀는데, 10대 후반과 20대 초반을 고된 노동을 하면서 보냈다이 기간 그는 그 상황에서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저항적이었다. 7년 동안 가브릴은 총 75일 동안 단식 투쟁을 했으며경비원들에게 말대꾸 했다는 이유로 끊임없이 구타를 당했다그리고 심지어 세 번이나 가까스로 탈출할 수 있었다매번 그는 지하에서 볼셰비키에 다시 입당했지만다시 체포되었다.

 

1917년까지 미아스니코프는 2월혁명이 일어났을 때 모토빌리카의 공장에서 일하면서 감옥에서 벗어나게 된다다시 한번 그는 활동하기 시작했고 공장위원회를 설립하고 지역 소비에트를 재건하는 것을 도왔으며대표로 선출되었다이곳에서 그는 1918년 1월 10일부터 18일까지 열린 제3차 전국 소비에트대회에 대표 자격으로 파견되었다우랄 지역을 대표하는 미아스니코프는 다른 혁명가들과 함께 제헌의회를 해산하고 소비에트를 러시아 전역의 유일한 정치세력으로 만들기 위한 투표에서 선출되었다.

 

소련 정부가 브레스트-리토프스크 조약에 서명한 것은 제3차 대회 직후였다이 조약으로 발트해 국가인 폴란드에스토니아벨로루시핀란드라트비아와 우크라이나를 포함한 대규모의 영토 통제권을 독일에 넘겨주면서 전쟁은 종식되었다이것은 소비에트 권력의 공고화를 위한 '숨 쉴 공간'을 허용한다는 논리였다그러나 우크라이나의 상실은 러시아 제국에서 가장 비옥한 지역이 적의 수중에 떨어졌고새로 설립된 소비에트가 무너졌다는 것을 의미했다.

 

이 시점에서 미아스니코프는 볼셰비키 당내에서 반대파 투사로 처음으로 인정받게 되었다페름에서 열린 지역당 대회에서그는 공개적으로 이 조약에 반대한다고 말했다. (레닌에 대한 볼셰비키 반대파아브리치그의 입장은 부하린과 같은코뮤니스트 좌파들'과 일맥상통했다그는 이 조약이 제국주의에 대한 항복이며 세계혁명을 저해할 것이라고 주장했다좌파 사회혁명당도 비슷한 입장을 취했다사실 그들은 너무 완강해서 새로 구성된 소비에트 정부에서 사임하고 볼셰비키에 대항하는 운동을 시작했다이러한 일이 발생하기 전에좌파 사회혁명당은 볼셰비키와 함께 권력을 공유하는 유일한 당이었다아나키스트들 또한 대체로 혁명전쟁을 방어하는 입장을 지지했다물론 반()브레스트-리토프스크 혁명가들 사이에는 미묘한 차이점이 있었다어떤 이들은 즉시 카이저(Kaiser)를 전복시키기 위해 붉은 군대를 독일로 보내야 한다고 믿었다스투코프(Stukov)와 많은 아나키스트와 같은 다른 사람들은 무장을 한 사람들만이 방어적인 당파전쟁에서 외세의 침략에 저항할 수 있다고 믿었다. (러시아혁명의 아나키스트아브리치이 혁명가들에게는 노동자 자신이 상비군이 아니지만무장하는 것이 필수적이었다우크라이나의 아나키스트 나바트(Nabat)가 좌파 사회혁명당들도 참여했던 반란군의 당파적 모델을 장려한 것은 그러한 입장이었다. (러시아혁명의 아나키스트아브리치시베리아와 같은 일부 지역에서는 지역 소비에트가 심지어 그 조약을 인정하기를 거부했다대신에 그들은 여전히 전쟁 중이라고 선언했다! (레닌 하의 레닌주의리브만미아스니코프는 '무장한 사람들경향에 속했고당파적인 '혁명전쟁'을 지지하기 위해 조약에 서명하는 것에 반대했다.

 

1918년에미아스니코프는 더 많은 악명을 얻게 되었다. 7월 12일 그는 동료들을 이끌고 차르의 동생인 미카엘 대공의 아파트로 갔다그들은 위조된 "체카(Cheka)" 문서를 제시하면서공작을 체포하고 처형했다페름(Perm)당 지부장은 이러한 행위를 자경단이라고 비난했지만레닌이 가브릴에게 부여한 비밀 임무였다는 증거가 있다. (볼셰비키 레닌 반대파아브리치사실미아스니코프는 공작을 처형하기까지의 일련의 사건들에 대한 책을 썼다그러나 그것은 러시아어라 번역해야 한다.

 

내전 기간 미아스니코프의 행동에 대한 기록은 거의 없다우리는 그가 당의 규율을 다시 준수했고아마도 페름에 남아 공장에서 당의 일을 계속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을 뿐이다. 1920년 반동 반대 투쟁의 완전한 혼란에서 벗어나면서러시아의 상황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해졌다생산은 정체되었고많은 노동자는 도시를 떠났으며경제는 거의 제 기능을 하지 못했다소비에트는 '속 빈 강정'이 되었다많은 사람이 모임을 중단했을 뿐만 아니라그들의 모임은 훨씬 더 줄어들었다훨씬 적은 수의 노동자들이 참여했고정치적으로 아주 활동적인 사람 중 많은 수가 내전에서 죽었다. 1917년과 1920년 사이에 750만 명의 러시아인들이 추위와 굶주림가난으로 죽었는데1차 세계 대전 중 전사한 400만 명과 비교된다. (레닌 하의 레닌주의리브만볼셰비키당의 대다수에게 그러한 상황은 그들이 딜레마에 직면했다는 것을 의미했다오직 계급의 '선진 인자'로서 코뮤니스트당의 독재만이 노동자들 사이에 있는 농민소부르주아그리고 비()볼셰비키적 요소에 대한 규율을 작동시킬 수 있었다이것은 혁명이 선진 산업국가로 확산하기 전까지 사회주의를 보장하는 유일한 미봉책으로 여겨졌다

 

1918년 3월 18일에서 30일 사이에 모스크바에서 열린 제8차 볼셰비키당 대회에서 레닌은 "소비에트는... 사실상 노동자 전체에 의한 것이 아니라 프롤레타리아트의 선진적인 인자에 의한 노동자를 위한 정부 기관"이라고 인정했다이것은 지노비예프가 "노동계급의 독재는 전위적인 코뮤니스트당의 독재를 통해서만 실현될 수 있다"라고 선언했던 바로 그 대회였다. (레닌 하의 레닌주의리브만이러한 이론적 인정은 정당 기반의 성격 변화를 반영된 것으로 볼 수 있다. 1920년 9월까지 총 35,226명의 당원 중 6,441명이 적군(그중 2,500명만이 현역)에 소속되어 있었고, 9,684명이 정부 관리에 고용되었고, 1,930명이 당 조직원이었으며, 1,042명은 노동조합 간부 및 회계 직원이었다! (퇴보하는 러시아혁명피라니) 3만 5000명 중 거의 2만 명의 당원이 생산 과정에 직접적으로 관여하지 않았다당의 물질적 토대는 노동자보다는 차라리 소비에트 국가와 동일시된 자신의 이익을 공고히 하는 쪽으로 변화하기 시작했다심지어 트로츠키도 혁명 초기부터 그런 경향이 존재했다는 것을 알았지만이제 당의 사상적 퇴보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그러나 모든 혁명가가 이것을 불가피한 것으로 보았던 것은 아니었다.

 

1920년 3월 제9차 당 대회에서 미아스니코프는 페름 지부 선전부를 운영하는 임무를 맡았고지역당 위원으로 승진했다미아스니코프는 제9차 당 대회에서 당내에 이미 진행된 퇴보의 수준을 깨달았다러시아혁명 이후 한 세기 동안 이론가들은 볼셰비키혁명이 "몰락한 순간"이 언제인지에 대해서 많은 날짜를 제시해왔고그 순간만큼이나 많은 이유를 제시했다자주 관리에 더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게 이것은 1918년 제1차 경제위원회 회의 또는 1인 경영과 테일러주의 도입(1920때부터라고 얘기한다다른 사람들에게는 독일 3월 행동의 패배(1921), 크론슈타트 진압(1921), 분파 금지(1921), 소련에서 1927년 트로츠키 추방 등 국제적 요인이 결정적인 순간이다.

 

그러나 미아스니코프의 견해는 독특했다그는 1920년 볼셰비키당 제9차 대회를 혁명의 종말이 시작된 것으로 확인했다그의 말에 따르면 :

 

러시아 프롤레타리아트에 대한 세계 부르주아지의 공세는 계급 세력 간의 관계 균형을 이동시켰고그것을 프롤레타리아트에서 소부르주아로 이동시켰다이것이 바로 이러한 소부르주아 쿠데타를 초래한 것이었다러시아 코뮤니스트당(볼세비키9차 대회의 결정으로 아직 존재하던 소수의 소비에트 노동자 대표들이 해산되었다프롤레타리아트는 지배적인 지위에서 강등되었고, 11월 혁명의 주춧돌인 "노동자 국가의 필수 핵"(러시아 코뮤니스트당 강령)인 노동자·농민 대표 소비에트는 해체되고 관료제로 대체되었다.”(코뮤니스트 노동자 인터내셔널 강령 조안)

 

관료집단이 권력을 장악하고 노동계급에 대한 당의 권력을 확립했다는 것이 미아스니코프의 이해였다9차 당 대회에서 페름으로 돌아온 가브릴은 볼셰비키의 잘못된 부분을 자신의 지부와 공장의 동료 노동자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비난하면서 당 관료주의에 대항하여 투쟁을 벌였다미아스니코프는 투명성과 책임성만이 소비에트 민주주의를 보장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미아스니코프 자신이 진정한 혁명가가 된 것은 내전이 끝날 무렵이었다그는 당시만 해도 이미 상당히 제한되었던 정당 민주주의의 회복소비에트의 완전한 자치권 그리고 언론의 자유를 요구했다이미 비슷한 요구를 했지만훨씬 더 조직적인 것은 노동자 반대파와 민주중앙집중주의」 그룹이었다이 두 그룹은 당의 주요 분파로 존재했다. 1921년에 결성된 페니우킨스(Peniuchkins) "소비에트당"과 같은 다른 생각들이 오고 갔고소비에트 비밀경찰인 체카에 의해 즉각 진압되었다그러나 미아스니코프는 여러 가지 이유로 이들 분파에 가입하는 것을 거부했다노동자 반대파는 주로 노조 관료(슐리아프니코프메드베데프루토비노프)에 기반을 두고 있었고그것을 대변하는 사람들은 콜론타이 같은 중산층 지식인들이었다그들이 반대하는 주요 강령은 노동조합이 경제적 생산을 운영해야 한다는 것이었다레닌은 그들의 사상을 '아나코 생디칼리스트의 일탈'이라고 일축했다아나코 생디칼리스트들이 노동조합에 반대하고 대신 공장위원회를 만드는 데 주력하고 있었음에도 말이다!

 

 

다른 주요 반대파를 대표하여 민주중앙집중주의」 그룹인 미샤 샤피로(Misha Shapiro)는 노동자 반대파」 강령은 단지당 관료주의의 손에 의해 생산의 통제권을 넘겨받았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실리가레닌역시;). 만일 노동자 스스로 생산을 통제하지 않는다면 의미가 없다또 다른 민주중앙집중주의」 그룹의 발레리안 오신스키(Valerian Ossinky)는 1918년에 다음과 같이 경고했다. "프롤레타리아트 자신이 사회주의 노동 조직에 필요한 전제조건을 만드는 방법을 모른다면아무도 그것을 위해 할 수 없을 것이다... 사회주의 조직은 프롤레타리아트 자신이 설립하거나그렇지 않으면 아예 설립되지 않을 것이다다른 무언가-국가 자본주의가 될 것이다." (코뮤니스트, 2, 1918년 4월 2이러한 통찰에도 불구하고민주중앙집중주의」 그룹은 제공할 것이 거의 없었다그들의 강령은 전적으로 당내 민주주의를 쇄신하는 것에 바탕을 두고 있었다오신스키 자신은 1938년 당에서 숙청되어 결국은 생을 마감했다.

 

그 당시 미아스니코프스가 노동자 반대파와 진행한 주요한 논쟁은 노동조합 문제에 관한 것이었다이즈음에 노동조합에 대한 그의 입장은 다소 모호했다같은 길단지 다른 방법(1920), 이라는 제목의 글에서그는 노동조합은 모든 노동자의 이익을 대변하는 것이 아니라특정 산업이나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만의 이익을 대변하고 있을 뿐이라고 비판했다노동조합은 러시아 사회에서 큰 역할을 한 적이 없었으며혁명 이후 그들은 이제 자신들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이 시점에서 그는 노동자 반대파가 제안한 것처럼 생산을 관리하는 데도레닌이 생각했던 것처럼 당의 '전달 벨트', 또는 관료주의에 대항하는 노동자들의 방어기제로서도그들이 중요한 역할을 하지 않았다고 보았다오히려 그는 해외 사회주의자들이 그들의 해체에 반대할 것이라는 다소 약한 근거로 노동조합 유지를 지지했다.

 

노동조합의 실질적인 역할에 대한 그의 분석에서 미아스니코프의 입장은 극좌파 KAPD(독일코뮤니스트노동자당)의 독일 코뮤니스트들의 입장과 관련이 있다표면적으로는 비슷하지만독일인들은 미아스니코프스와는 다소 다른 상황과 다소 다른 이유로 비판이 이루어졌다독일혁명 기간 노조는 국가와 사회에 훨씬 더 많이 통합된 대체로 반()혁명 조직이었다그들은 노동자들을 동원하여 사회민주주의(따라서 자본주의 국가)를 방어하고전체 프롤레타리아트보다는 부문의 이익을 옹호했다전통적인 노동조합은 자본주의하에서 그들 존재의 본질에 의해 형성되었다그리고 또한 그 논쟁은 계속되었다노동조합과 그들의 지도자들이 임금 노동 관계를 유지하는 데 내재한 관심이 있었던 바와 같이 노동조합의 역할은 자본가와 노동자들 사이에서 협상하는 것이었다따라서 KAPD의 입장은 노동조합에 참여하는 것을 자제하는 것이었다그러나 미아스니코프는 세계 자본주의가 극복되지 않는 한 코뮤니스트들이 노동조합 안에 계속 참여해야 한다고 믿었다. KAPD의 눈에는 혁명적 봉기 하는 동안 형성된 공장 위원회가 노동조합과 극명한 대조를 이루었고그들은 이 위원회를 AAUD로 조직하려고 노력했다근본적으로 여전히 노동조합이지만무역이나 산업이 아닌 작업장에 기반을 두고 있었다그리고 혁명적인 투쟁 기간 모든 노동자를 끌어들이려고 했다레닌은 KAPD뿐 만이 아니라 영국·이탈리아 코뮤니스트 좌파들을 겨냥한 그의 팸플릿에서 이러한 노동조합 기권주의에 대해 맹렬히 비판했고노동자들에 대한 집단적 영향력을 개량적인 지도자들에게 넘겨주기보다는 코뮤니스트들이 노조에 참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농민 문제에 관한 한 미아스니코프는 아나키스트들과 우파 사이에 있는 입장을 지지했다아나키스트들과 마찬가지로 그는 농민들이 자신의 조합을 결성해서 집단의 이익을 방어하도록 장려되어야 한다고 믿었다따라서 협력과 연대를 향한 그들의 경향을 강화해야 한다고 믿었다.(소련의 정책을 통해 부유한 농민의 출현을 막거나 규율하는 동안그는 농민들을 강제적으로 집단화하거나 엄청난 부자가 되는 것을 허락하는 것이 아니라생산력을 발전시키고 사회주의가 그들의 삶을 더 편안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서서히 입증함으로써만 농민들을 설득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우리의 사회주의혁명은 사회화자치화국유화를 선언함으로써가 아니라 사회주의의 진보적인 도입을 통해 낡고 불리한 방법을 희생시키면서 현대적 생산 방법의 의식적이고 일관된 투쟁에 의해 소부르주아적인 생산과 소유권을 파괴할 것이다이것이 바로 자본주의 필요에서 자유로운 사회주의로 도약하게 되는 본질적인 부분이다.”(미아스니코프러시아 코뮤니스트당 노동자 그룹 선언)

 

이 단계에서 미아스니코프는 또한 궁극적으로 모든 노동자 정당의 완전한 언론집회선거의 자유를 허용하는 독립적인 소비에트에 의해서 생산과 소비를 가장 잘 관리할 것이라고 제시했다.

 

마지막으로 노동자 반대파와 민주중앙집중주의」 그룹과는 대조적으로 미아스니코프는 당의 이러한 실수를 당내에서 정치적인 논쟁만으로 해결하려 하지 않았다혁명가들의 가장 좋은 전통인 노동자들을 동원하는 쪽으로 그는 방향을 선회했다그는 여전히 볼셰비키에 대한 충성심을 유지하면서자신이 다니는 공장과 지역 소비에트에서 당의 문제에 대해 공개적으로 계속해서 말했다이것 때문에그는 1921년 페트로그라드로 소환되어 당의 감시를 받아야 했다그가 도착했을 때모든 것이 겉보기와는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페트로그라드에 왔을 때 도시는 축제 분위기였다… 페트로그라드 산업은 자유롭게 숨쉬기 시작했다하지만 그러한 곳은 포템킨 마을뿐이었다자세히 살펴보니 .... 페트로그라드에서는 모든 것이 좋지 않아 보였다제분소와 공장들은 끊임없이 파업했고코뮤니스트당의 영향력은 부족했다그리고 노동자들은 정부에 대한 참여의식이 없었다그것은 멀리 있는 것 같았고 그들 자신의 것이 아니었다그것으로부터 무언가를 얻기 위해그들은 압력을 행사해야 했다압력 없이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었다" (G.P 막시모프작업장의 단두대에서 인용)

 

여기서 미아스니코프는 1921년 초 급증한 파업 물결을 언급한다볼셰비키의 영향력은 약해지기 시작했고대신 일부 노동자들은 멘셰비키 좌파좌파 사회혁명당아나키스트들의 선동에 주목하기 시작했다이전에 그의 정치에서 더 사려 깊었던 레닌은 그들의 탄압을 정당화하기 위해 이 단체들을 반()혁명가들과 융합하기 시작했다. (레닌 하의 레닌주의리브만그러나 정치적 반대에 대한 탄압에도 불구하고 파업 물결은 계속되었다.

 

"모스크바페트로그라드우랄 지역의 모든 공장에서 노동자들은 코뮤니스트들을 아주 불신하고 있다당파적이지 않은 집단이 모여 있을 때 코뮤니스트들이 접근하게 되면 집단은 곧 흩어지거나 화제를 바꾸게 된다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가이즈호르스키(Izhorsky) 공장에서 노동자들은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포함하여 회의에서 모든 코뮤니스트를 추방했다페트로그라드에서 사실상의 총파업이 일어나기 바로 전날 (크론슈타트 직전모든 부서에 코뮤니스트들이 있었지만파업이 임박한 줄도 몰랐다고 말했다. (미아스니코프, G.P 막시모프작업장의 단두대에서 인용)

 

비록 이러한 인용문들이 코뮤니스트당에 대한 반란을 조장하는 데 관심이 있는 사람으로 읽힐 수 있지만당시 볼셰비키에 대한 미아스니코프의 깊은 헌신에 대해서는 기억할 만한 가치가 있다그는 당과 노동자 사이의 결별을 과장하는 것이 아니라 해결할 방법을 모색했다미아스니코프는 노동자들이 공장에서 '코뮤니스트 세포'라는 별명을 코뮤니스트 탐정이라고 불렀다고 덧붙였다확실히, 1921년까지 볼셰비키와 그들의 방법에 대한 불신은 아주 깊어졌다그는 1918~1920년 부르주아지를 억압하는 데 사용된 것과 같은 방법이 이제 노동자들에게 사용되고 있다고 믿었다.

 

국제적인 부르주아지를 타파하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문제는 당신이 부르주아지에 손을 들어서 노동자를 때리는 것이다()혁명 혐의로 체포된 사람 중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는 계급이 누구인가? (G.P 막시모프작업장의 단두대에서 인용)

 

그래서 가브릴은 침묵하지 않고페트로그라드의 노동자들이 굶주리는 동안 호화롭게 사는 지역당 지도부를 비난했다아마도 당은 대중을 먹여 살리기 위해 완전한 독재체제를 유지할 필요가 있었지만그런데도 많은 양의 식량을 당 간부들이 가져갔다특히미아스니코프는 지노비예프의 방탕과 부패에 넌더리가 났다.

 

당원들은 아주 작은 죄인 페카딜로(peccadillos)에 대해 말할 수 있지만큰 죄를 저지른 사람들에 대해서는 조용히 해야 한다중앙위원회에 대한 책임은하지만 '소년들중 한 명인 지노비예프 동지가 있다. (G.P 막시모프작업장의 단두대에서 인용)

 

미아스니코프의 설명에 따르면페트로그라드의 노동자들이 굶주리고 있는 동안지노비예프와 지역당 위원회는 과도하게 탐닉하며 호텔에 몸을 숨겼다그들은 술 마시고파티하고일반 노동자들이 접근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이 먹고도시 주변에서 당 소유의 개인 교통수단을 남용했다코뮤니스트당원으로서 미아스니코프는 당 위원회가 노동자에 대한 책임을 다하는 것을 보고 싶어 했다.

 

결국지노비예프는 미아스니코프의 불복종에 격분했다. 3개의 당 지역회의 앞에서 그는 미아스니코프에게 말했다. "당신이 얘기를 그만두지 않으면 우리는 당신을 당에서 쫓아내야 할 것이다당신은 사회혁명주의자이거나 병자이다." 그 두 사람은 앞으로 수년간 서로 싸울 것이다.

 

1921년 3미아스니코프는 자신이 매우 외롭다고 느꼈다페트로그라드의 파업 노동자들을 지지했던 것처럼그는 크론슈타트 반란을 비난하는 것을 거부하는 볼셰비키(크론슈타트 해군기지의 당원은 제외중에 거의 혼자였다트로츠키는 1921년의 수병들이 1917년의 수병들이 아니며그들은 반()혁명적 음모에 자극받았다고 맹비난했다그러나 빅토르 세르주가 지적했듯이 "1921년의 당은 1918년의 당과 같았는가?" (빅토르 세르주회고록미아스니코프의 입장은 심지어 반군에 대항하기 위해 동원된 노동자 반대파로부터 그를 분리했다.

 

노동자 반대파는 다른 볼셰비키들과 함께 자신의 동지들과 싸웠고 사실상 자신의 운명을 봉인했지만미아스니코프는 반란이 소비에트와 당 사이의 관계에 대한 개혁의 필요성을 상징한다고 선언하는 편지를 전국의 신문에 발표했다레닌은 봉기가 "불타는 돌발"(크론슈타트레닌)이라고 말했지만그의 유일한 해결책은 관료주의적이었다모든 면에서 어려움에 봉착한 러시아와 해외의 많은 혁명가는 볼셰비키가 계속해서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권위주의적인 방법을 사용하는 이유에 공감했지만크론슈타트의 진압은 또 다른 문제였다당은 노동자들과 수병들의 요구에 대해 노골적으로 거짓말을 했고당 지도부는 반군과의 협상을 거부했다.

 

이제 당 지도부는 미아스니코프에게 화가 났다그들은 그를 침묵시키는 데에 실패하고서 그를 집으로 돌려보냈다지도부는 그가 이미 많은 반란이 있었던 페트로그라드보다는 페름에서 문제를 덜 일으킬 것이라고 믿었다그래서 우랄로 돌아온 미아스니코프는 중앙 권력에 대항하여 그의 지역 지부와 공장 노동자들 사이에서 선동하기 시작했다주요 요구는 언론의 자유였다이러한 활동은 레닌의 분노를 사게 되었다세르주의 견해에 의하면 가브릴은 자유주의적 방식으로 이 요구를 공식화했다그는 "극단적인 아나키스트에서 다른 극단적인 군국주의자들까지 모든 사람을 위한 언론의 자유를 원했다. (세르주혁명의 기억)

 

미아스니코프는 백군조차 그들의 생각을 전파하는 것을 허용한다면 노동자들이 반혁명 세력에 속아 넘어가지 않을 것이라고 믿었다그는 다소 공정하게 이상주의자라고 비난받았다레닌은 1921년 8월 1일에 그에게 편지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어디서나 부르주아 적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러시아 소비에트 연방 사회주의 공화국(RSFSR)의 언론의 자유는 부르주아지의 자유를 의미한다우리는 자살하고 싶지 않다.” 아나키스트들조차 부르주아에 대한 언론의 자유를 지지하지 않았다그러나 그는 재빨리 요구의 계급적 기반을 인정했고여전히 모든 혁명적 노동자 정당들과 조직들은 언론의 자유를 누릴 자격이 있다고 주장했다가브릴은 공문에서 레닌에게 이렇게 반박했다. "당신은 내가 부르주아지를 위한 언론의 자유를 원한다고 말한다반대로 나는 15년 동안 담에 몸담았던 프롤레타리아인 나 자신을 위해서 언론의 자유를 원한다!"

 

미아스니코프는 필요한 만큼 충분하다고 판단했다.

 

특별한 형태의 코뮤니스트가 진화하고 있다그는 전진하고분별력이 있으며가장 중요한 것은 윗사람을 기쁘게 하는 방법을 알고 있다는 것이다이 코뮤니스트가 노동자들 사이에 영향력을 가졌는지는 그에게 약간의 걱정거리다중요한 것은 그의 윗사람들이 기뻐하는 것뿐이다.”(G.P 막시모프작업장의 단두대에서 인용)

 

레닌과 논쟁을 한 후에 미아스니코프는 당내에서 공식적으로 반대파를 조직하기 시작했다이즈음에 당은 이미 분파를 금지했다크론슈타트 봉기는 당 대회 기간에 발생했는데그곳에서 전국의 반란에 직면하여 당은 엄격한 집행 규율을 제출했다권력에 대한 편집증적인 집착은 많은 사람들이 해외 혁명의 마지막 희망으로 보는 독일의 3월 행동의 실패로 인해서 악화하였다.

 

다른 분파들은 불법화되었다가브릴은 자신이 그저 불장난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그런데도 그는 "러시아 코뮤니스트당의 노동자 그룹"이 될 동맹 세력을 찾기 시작했다분파의 생각은 그것이 합법적이고지상에서 그리고 당내에 충성스러운 반대파가 될 의도였다는 것이었다그는 주로 노동자 반대파의 전 구성원들 사이에서 친구를 찾았다그러나 한 가지 중요한 차이가 있었다그들은 지식인이나 노조 관료보다는 거의 전적으로 분파의 실제 노동자들이었다.

 

1922년 2월 미아스니코프는 볼셰비키 정당에서 제명된다사실 그는 분파 금지에 이어 당에서 추방된 첫 번째 당원이었다그들의 차이에도 불구하고슐리아프니코프(Shlyapnikov)는 그를 변호해 온 유일한 볼셰비키였다.

 

일주일도 채 지나지 않아 슐리아프니코프는 미아스니코프가 서명했던 '22인의 항소’ 초안을 작성했다볼셰비키당의 오랜 구성원인 22명의 반대파는 코민테른 집행부에 공개서한을 보내 자신의 조직 지도부를 능가했다이 서한은 통일 전선의 전략을 공격하면서 당을 새롭게 구성한 "40%의 노동자와 60%의 비()프롤레타리아"를 반영하고 있다고 주장했다그들은 또한 "프롤레타리아 대중을 정부에 더 우호적으로 만들기 위해 반대파에 대한 모든 비판은아나코 생디칼리즘"으로 선언되고그 옹호자들은 박해를 받고신용을 잃는다고 불평했다이것은 부분적으로 미아스니코프 자신에 대한 언급이었다또한 노동자의 자발성이 억압되고당원들이 항상 자신의 지도부를 선출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으며마침내 이미 명백하게 드러난 출세 제일주의에 혐오감을 느낀 노동자들이 당을 떠나고 있었다. (슐리아프니코프22인의 항소)

 

코민테른 위원회는 항소를 기각했지만페름의 노동자들은 그에 따르지 않았다미아스니코프가 일했던 공장에서는 반대파 노선을 택한 다수파가 있는 새로운 노동자 위원회가 선출되었다그들은 심지어 22명의 항소에 찬성하는 결의안을 통과시켰다게다가 볼셰비키당의 한 분파는 정권의 당 지도부와 관료주의를 공개적으로 비난했다.

 

1922년 3월 27일과 4월 2일 사이에 열린 제11차 당 대회에서 22인의 항소와 미아스니코프의 "악행"이 논의되었다. 22명은 질책을 받았고그중 2명은 당에서 제명되었다트로츠키는 미아스니코프가 당에 대한 비판을 발표함으로써 "적에게 도움을 주었다"라고 선언했다당 대회에 이어미아스니코프는 소비에트 최초의 볼셰비키 죄수가 되어 게페우(GPU)에 연행되었다체포되는 동안 한 요원이 그를 암살하려 했으나 실패했다일단 감옥에 갇히자 미아스니코프는 즉각적으로 단식 투쟁을 선언했다그는 2주 만에 풀려났다. (볼셰비키 레닌 반대파아브리치)

 

감옥에서 풀려난 후미아스니코프는 모스크바로 돌아갔다여기서 그는 노동자 그룹을 본격적으로 결성하기 시작했다호소문에 서명했다는 이유로 11차 대회에서 추방된 쿠즈네초프(Kuznetsov)를 포함한 소수 노동자는 노동자 그룹을 지하 조직으로 공식화하는 데 동참했다위의 법적 반대에 대한 시도는 비밀스러운 전략을 강요했지만이러한 부분이 미아스니코프와 새로운 노동자 그룹이 볼셰비키 당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막지는 못했다. "노동자의 권력으로 가는 길"이라는 그들의 글은 주로 공장 노동자들에게 배포되었지만일부는 당원들에게도 배포되었다노동자 그룹은 슐랴프니코프가 이끄는 노동자 반대파의 지하 조직원들과 비밀회의를 가졌다그들은 처음에는 금속노동조합과 연계하였다두 반대파의 운동가들이 가끔 작업장에서 함께 일하는 동안그들은 정치적 합의점을 찾기 위해서 고군분투했다슐랴프니코프는 미아스니코프가 사실상 '별도의 정당'을 창당했다고 비난했지만미아스니코프는 권위주의 정당 지도부 앞에서 노동자 반대파가 너무 소심하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또한 두 그룹의 정치 강령의 중심인 생산의 재편성에 대한 정치적 문제에 대해서도 근본적으로 의견을 달리했다슐랴프니코프의 전기 작가인 역사가 바바라 알렌(Barbara Allen)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마이스니코프는 소비에트를노동자 반대파는 노동조합을 지지했다슐랴프니코프는 본질적으로 농민조합의 조직을 의미했으며 소비에트를 통한 경영계획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바바라 알렌알렉산더 슐랴프니코프, 1885~1937 : 늙은 볼셰비키의 삶그는 러시아의 압도적인 농민 인구를 감안할 때국가가 노동계급이 아닌 계급의 지배 아래 놓이게 될 것이라고 걱정했다비록 노동자 반대파가 완전히 붕괴하면 많은 사람이 노동자 그룹으로 들어갈 수도 있겠지만이러한 근본적인 차이점 때문에 두 집단은 분리되었다여기에는 미하일 미하일로프(Mikhail Mikhailov)가 포함되었다그리고 항공우주산업 출신의 A.I. 메드베데프(Medvedev), G.V. 쇼카노프(Shokhanov)와 K.D. 라지빌로프(Radzivilov)도 포함되었다. (피라니러시아혁명, 1920-24노동자 그룹으로 넘어간 많은 노동자 반대파들은 매력적인 좌파 기둥이 끌어당겼기 때문에 그렇게 했다반면에 반대파는 중앙위원회의 입장을 수용하기 위해 오른쪽으로 움직였다.

 

이듬해인 1923년 4월 17일부터 25일까지 열린 제12차 당 대회에 앞서 미아스니코프는 "러시아 코뮤니스트당 노동자 그룹 선언"의 초안을 작성했다이 선언에서 노동자 그룹은 러시아의 관료주의당의 퇴보그리고 신경제 정책(그들은 이것을 '프롤레타리아에 대한 새로운 착취'라고 불렀다)뿐만 아니라 코뮤니스트 인터내셔널의 전략과 전술도 비판했다이는 레닌이 뇌졸중으로 무력해진 후 열린 첫 번째 당 대회였으며당 역사에서 중요한 전환점이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러시아혁명을 구할 기회의 열쇠는 국경을 넘어 혁명의 물결이 퍼지는 것이었다러시아 혁명은 고립 속에서 살아남을 수 없었다이를 위해 볼셰비키는 제인터내셔널을 설립했다볼셰비키는 제인터내셔널의 개량주의와 결별하여 전 세계의 혁명적 사회주의 조직(일부 혁명적 생디칼리스트 포함)을 결집하려 의도했는데인터내셔널이 혁명을 확산하는 데 중요한 무기가 되기를 희망했다.

 

그러나 러시아혁명이 고립되면서코민테른은 다른 지역의 국가 이익보다 러시아의 이익을 빠르게 강요하기 시작했다러시아의 혁명적 명성은 외국에 대한 그들의 세력을 악화시키는 데 도움이 되었을 뿐이다시간이 지남에 따라독일과 이탈리아 지부에서는 이 문제에 대해서 강력하게 반대하였고스페인 CNT와 같은 혁명적 생디칼리리스트 단체들은 초기부터 가입을 거부했다. (대신 그들만의 국제인 IWA를 결성했다독일 코뮤니스트 좌파 펨페르트(Pfemfert)는 인터내셔널이 자신을 특정 국가의 중앙 권력의 도구로 내세운다면 그 자체로 죽음의 씨앗을 품게 되고 세계혁명의 걸림돌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펨페르트레닌의 유아적 무질서)

 

그렇다면 가브릴과 노동자 그룹은 코민테른에 대해 더 광범위하게 무엇을 만들었을까그가 조직과 전략을 지지했다고 언급할 만한 것은 거의 없다그러나 그들은 독일인들이 했던 것과 비슷한 역할을 수행하게 되었다인터내셔널은 러시아 정권에 너무 단단하게 묶여 볼셰비키의 전략전술규칙은 세계의 혁명적인 노동자들이 아닌 러시아 국가의 이익을 대변하게 되었다미아스니코프는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전쟁과 혁명의 고통 속에서 태어난 제인터내셔널은 프롤레타리아트를 지도자로 만드는 데 필요한 모든 요소를 가지고 있었지만, 11월 러시아혁명의 운명에 얽매여 있었기 때문에그것은 곧 이상과 특별한 방법을 채택한 관료주의 인터내셔널이 되었다그것은 노동자 국가가 아니라 국가 자본주의를 위해일당 행정 체제를 가진 국가와 관료적 통치를 위해부르주아지와 제인터내셔널에 맞서 싸운다계급으로서 조직된 프롤레타리아가 아니라 관료주의로 대체하기 위해 부르주아지를 전복시키려 한다. (미아스니코프노동자 그룹 선언)

 

독일혁명의 실패 이후 1921년에 채택된 '통일 전선전술은 특히 가브릴의 화를 돋우었다그는 독일 코뮤니스트들이 룩셈부르크와 리프크네히트를 살해한 바로 그 사회민주당과 화해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에 대해 코민테른 간부를 비난했다. "반란군 프롤레타리아트를 승리로 이끌어야 하는 전술은 사회주의 통일전선의 전술이 될 수 없다... 러시아 프롤레타리아트는 사회혁명가포퓰리스트멘셰비키와 동맹을 맺음으로써가 아니라 그들과 맞서 투쟁함으로써 승리했다.' 그는 노동계급의 적들...과 협력하는 것은 러시아 혁명의 경험과 공공연한 모순이다."라고 말했다이것은 단순히 진부한 말이 아니었다오히려미아스니코프는 러시아의 경험에 근거한 포괄적인 규칙을 부여함으로써코민테른이 세계 코뮤니스트 운동에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올 교리를 확립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코민테른은 다른 모든 국가의 코뮤니스트당이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사회주의 통일전선의 전술을 따르도록 요구하고 있다그리고 이는 각국의 여건에 따라 실질적인 과제를 해결하는 데 방해가 되며 프롤레타리아 혁명운동 전반에 걸쳐서 의심의 여지 없이 해를 끼치는 독단적인 요구이다”.(미아스니코프러시아 코뮤니스트당 노동자 그룹 선언)

 

미아스니코프는 특히 그의 오래된 적 지노비예프를 겨냥했다; "얼마 전 지노비예프 동지가 우리를 제인터내셔널 장례식에 초청하였는데이제 우리를 결혼 잔치에 초대한다." (러시아 코뮤니스트당 노동자 그룹 선언모든 코민테른 계열 정당들은 국가의 상황과 관계없이의회에 참가하라는 명령을 받았다유명한 독일의 천문학자이자 맑스주의자인 안톤 판네쿡이 지적했듯이이것은 "불만에 찬 사회주의 단체들이 새로운 기회주의적 의회주의에 이끌려 모스크바 인터내셔널에 가입하도록 유도되었다는 것을 의미했다. (판네쿡노동자평의회)

 

따라서 1922년 독일 KAPD는 그들이 막 추방되었던 바로 그 조직인 KPD와의 합병 명령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코민테른으로부터 축출당했다이 극좌파 코뮤니스트들은 추방의 수용을 거부했고유럽혁명의 물결을 유지하려는 그들의 절박함에 따라 1922년 "코뮤니스트 노동자 인터내셔널"을 설립했다그러나 이것은 오직 서류상으로만 존재했고독일과 네덜란드 코뮤니스트 조직만이 가입했다. (리차드 곰빈급진적인 전통몇 년 안에 코민테른은 또한 해외에서 이탈리아 지부의 지도력 전복을 조직할 것이다당이 급여를 지급한 당 조직자를 해고하겠다고 위협하는 등 일련의 의심스러운 공작과 함께그람시와 코민테른 사람들이 낙하산으로 투입되었고 대다수의 좌파는 효과적으로 무력화되었다.

 

국제 정세에 의해 코민테른의 입장에 강요된 퇴보는 코뮤니스트들 사이에 단순한 정치적 책략과 내부 투쟁 이상의 파문을 가져왔다러시아 무역 거래를 확보하고 외국의 군사적 이익을 약화하기 위해 반()제국주의가 노동계급의 혁명보다 우선했다. 1921년 아타튀르크(Ataturk)가 터키 코뮤니스트당의 당원들을 학살했을 때소련 정권은 침묵으로 방관했었다. 1922년 소련 정부는 바이마르 공화국과 비밀협정을 맺어 러시아에 독일군 장교들을 위한 훈련 학교와 독일군을 위한 포탄과 탱크를 생산하는 공장을 설립하였다. (리브만레닌 하의 레닌주의물질적 상황은 볼셰비키의 손을 잡도록 강요했다그러나 양측을 모두 상대하는 것은 러시아의 이익을 위해 많은 국제적 운동을 희생시키는 매우 위험한 게임이었다.  <다음호에 계속>

 

2021년 9월 12

Tommy Lawson

옮긴이 ┃ 이명수

 

 photo_2021-01-04_19-35-27.jpg

<참고문헌>

 

책 :

스탈린주의 이전소련 민주주의의 흥망성쇠사무엘 파버

알렉산더 슐랴프니코프, 1885-1937볼셰비키의 삶바바라 알렌

레닌 하의 레닌주의마르셀 리프만

작업장의 단두대, G.P 막시모프

노동자평의회안톤 판네쿡

1920-24년 러시아혁명사이먼 피라니

무장을 한 예언자아이작 도이처

크론슈타트레닌트로츠키 외

레닌그리고안톤 실리가

러시아혁명의 아나키스트폴 아브리치

급진적 전통리처드 곰빈

러시아혁명로자 룩셈부르크

러시아 내전 속 네스토르 마흐노미하엘 말레

혁명가의 회고록빅토르 세르주

러시아 교도소 국제 정치범 위원회로부터 온 편지

 

기사 :

볼셰비키 좌파와 노동자 권력’, 미셸 올리버

레닌의 유아적 무질서’, 프란츠 펨페르트

레닌에 대한 볼셰비키의 반대파’, 폴 아브리치

코뮤니스트’ 1918년 4월 2일자

‘1920년 이후 러시아의 코뮤니스트 좌파’, 이안 헤베스

 

미아스니코프 원본 저작 :

같은 길단지 다른 방법, 1920년 12

러시아 코뮤니스트당 노동자 그룹 선언, 1923년 2

코뮤니스트당 국제노동자 연서 초안, 1930년 3,

최근의 속임수, 1930년 10

좌파 코뮤니스트 가브릴 미아스니코프의 최후의 유언, 1945

22인의 호소슐리아프니코프콜론타이미아스니코프 등, 1922

 

<출처>

http://libcom.org/history/most-intransigent-bolsheviks-gavril-miasnikov-workers-group-degeneration-russian-revolut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코뮤니스트 14호] 개혁개방 이후 팬데믹까지, 중국 노동자운동의 현황과 과제

개혁개방 이후 팬데믹까지중국 노동자운동의 현황과 과제

 

 

중국의 개혁개방 노선은 한편으로는 경제를 비약적으로 성장시켰지만인민들을 자본주의 착취의 길로 안내했다개혁개방으로 시장화와 프롤레타리아트화가 급속히 진행된 중국에서 자생적인 노동자운동의 출현은 일찍이 예견된 것이었다이를테면 1993년 광둥성 선전의 쯔리 장난감 공장에서 발생한 화재 사고(深圳致丽玩具厂火灾)는 서구 사회가 격찬하던 개혁개방 노선의 이면에 무엇이 감춰져 있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1993년 11월 19일 13시 25광둥성 선전시 쿠이용현에 위치한 작은 공장에서 일어난 화재로 87명이 죽고, 51명이 크게 다쳤다당시 이 공장을 운영하던 자본가는 공장의 모든 문과 창을 잠그고 하루 종일 갇힌 채 일하도록 강요했다다수를 차지했던 여성 노동자들은 완전히 잠긴 공장 안에서 하루 16시간씩 일해야 했다이 공장은 글로벌 자본주의의 첨단 도시 홍콩 자본이 세운 것이었다.

 

남방의 외국자본 공장에서만 모순이 드러난 것은 아니었다. 90년대 초반까지 동북3(랴오닝성헤이룽장성지린성)과 허베이성 등에는 국유기업 개혁이라는 명목 하에 평생직장에 대한 대규모 정리휴직 조치(下岗)가 이뤄졌다말이 휴직이지 실제로는 해고나 다름없었고정부는 아주 약간의 생활 보조금을 지급할 뿐이었다. 90년대 후반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 수는 통계에 따르면 적게는 수천만 명많게는 1억 명에 달했다. 1990년대 중반 중국 북방에서 노동자들의 대규모 시위는 매우 일상적이었는데, 1995년에만 30여 개 공업 도시에서 110만이 넘는 노동자들이 시위에 참여했고,1)1998년에는 그 수가 360만 명에 다다랐다.2) 이로 인해 중국의 사회안정이 크게 위협되는 상황이 빈발했다.

 

이와 함께 연안 지대(중국 남해와 동해를 면하고 있는 광둥성푸젠성저장성 등 개혁개방 이후 급속도로 발전한 공업도시 밀집지역)에는 농촌 출신의 노동자를 지칭하는 농민공들이 대규모로 이주해왔다농민공은 크게 호구로 등록된 성(바깥으로 이주하는 외출농민공(外出农民工)과 해당 지역 내 도시로 이주하는 본지농민공(本地农民工)으로 나뉘어 지는데외출농민공 숫자는 1990년부터 급속도로 증가했다(그래프1). 1989년 6월 톈안먼 사건(天安门事件)3)은 학살로 종식되고, 90년대 내내 국유기업에서 대규모 정리해고가 이뤄지면서 동시에 산업전환이 일어난 것이다.

 

 photo_2021-01-05_12-28-31.jpg

 

90년대 국유기업 구조조정의 목표는 명실공히 고용의 유연화와 노동계약제의 전면화였다모든 직공(국유기업 노동자)들을 단위체제로 묶고 이들에게 어느 정도 현장에 대한 통제권을 부여했던 종신고용 시스템은 해체됐다이것의 귀결은 경영권의 확대와 민간 대자본의 양성나아가 전통적인 사회보장제도의 상품화였다결과적으로 이는 노동-인민의 삶을 파편화하고 공동체를 서서히 와해시켰다.

 

중국 정부는 외국자본의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국제 노동시장에서 아주 저렴한 축에 속하는 중국의 농촌 인구를 도시로 끌어와야 했고이 과정에서 약 28년에 걸쳐 엄청난 규모의 이주가 이뤄졌다. 1988년 약 12천만 명이었던 농민공 숫자4)는 30년이 지난 2018년 28,836만 명을 기록했다.5)

 

개혁개방 이후 중국 경제는 모든 면에서 기록적인 성장을 이뤄왔다개혁개방 원년인 1978년부터 40년 사이 GDP는 224배 늘었고, 1인당 가처분소득을 기준으로 했을 때에도 152배 성장했다(그래프2). 그러나 이런 비약적인 성장은 모두 노동자계급에 대한 극심한 착취를 바탕으로 이뤄진 것이다하루 16~17시간에 달하는 장시간 노동일터에서 횡행하는 구타와 욕설억압적 노동통제 환경은 노동자들의 인내심을 시험하기에 충분했다.

 

photo_2021-01-05_12-28-33.jpg

 

 

자생적 노동자운동의 출현

 

2010년 폭스콘 공장에서 일어난 연쇄 자살 사건은 이와 같은 착취가 임계점에 다다랐다는 것을 방증한다아이폰과 아이패드 등 애플 브랜드의 제품들을 조립 생산하는 이곳은 당시 약 40만 명의 노동자들이 일하고 있을 정도로 세계적인 규모의 공장이다단지 내에 노동자 직업훈련학교와 병원축구장기숙사 등 모든 시설이 갖추어져 있지만대다수 조립공들은 이른 새벽에 출근해 자정께 퇴근해 기숙사방에 돌아와야 했을 정도로 노동착취가 심했다. 2010년 1월 23일 새벽4시에 일어난 자살 사건에서 시작된 연쇄 자살은 그해 11월 열네번째 사람이 죽을 때까지 계속됐다. 18살에서 29살의 젊은 농민공들은 아무리 뼈 빠지게 일해도 빠져나갈 수 없는 출구 없는 삶과 비인간적 착취에 반발해 스스로 기숙사 건물 옥상에서 뛰어내렸다참사 이후 일어난 사회적 비난 여론에 폭스콘의 창업주 궈타이밍(郭台铭)과 애플의 CEO 팀 쿡(Tim Cook) 등 자본가들은 책임 면피를 위한 변명과 가짜 대책들을 늘어놓기에 급급했다.6)

 

참사가 반복되던 그해 5선전 인근 포산시에 위치한 혼다자동차 부품공장에서 대규모 파업이 일어났다난하이혼다 공장에서 일하던 신세대 농민공 주도의 파업이 그것이다스무살 남짓의 이곳 노동자 수천 명은 임금 인상과 처우 개선기업공회 대표 직선 등을 요구하며무기한 파업에 들어갔다농민공 집단이 세력화되어 있지 않다고 여겨진 당시 중국에서 이는 초유의 사건이었고전 사회를 놀라게 했다처음에는 약간의 임금 인상과 주동자에 대한 해고파업 참가자 구타 등으로 투쟁을 짓밟고 무마하려던 사측은 노동자들이 멈추지 않고 싸우자 34% 임금 인상에 합의함으로써 비로소 상황을 정리할 수 있었다.7) 비공식적인 통계에 따르면, 2010년 5~6월 중국 내에서 약 1,000건의 파업이 발생했다이 시기 파업 참가자 수는 1백만 명을 넘었다.

 

2010년 이래 수년간 연안지역에서는 자생적인 노동자운동이 봇물처럼 이어졌다중국의 노동법은 쟁의권을 규정하고 있지 않지만그렇다고 해서 파업을 명확하게 금지하는 법률도 없기 때문에 법제도상 파업은 불법도 합법도 아니다연쇄 파업의 물결은 노동조건과 임금 향상으로 이어졌는데, 2011년 이후 제조업 농민공 평균임금은 2010년 월 1,331위안에서 2019년 현재 월 3,732위안으로 3배 가까이 올랐다.

 

개혁개방 시작과 함께 대도시로 몰려온 농민공들의 자녀 세대에 해당하는 신세대 농민공에 대한 다양한 수식은 대개 긍정적이고 진취적이란 인상을 줬다기성세대 노동자에 비해 권리의식이 강하고, SNS를 통한 소통에 능숙했다동시에 이들은 중국 경제를 지탱하는 연안지대 수출산업의 핵심 노동력이면서도 낮은 임금을 받았으며노동조건은 열악했다베이징 노동자의집(北京工友之家연구활동가 뤼투(吕途)는 농촌으로 돌아갈 수도도시에 머무를 수도 없는 이들의 이중적인 처지나아가 노동자로서의 자긍심을 긍정하는 차원에서 이들을 신노동자로 지칭해야 한다고 제기한 바 있다.8)

 

2018년 노동절에 벌어진 타워크레인 노동자들의 동시 파업은 전국적인 네트워킹 사례 중 하나다이들은 공회로 조직되진 않았지만모바일앱을 통한 연결에 성공했다파업을 통해 공론화에 성공한 타워크레인 노동자들은 공회라는 조직 형식을 우회해 일종의 클럽(俱乐部)’을 결성했다노동자들의 자주성과 민주성을 담보하지 못하는 공회가 아닌 새로운 전술을 고민한 것이지만동시에 이는 중국 노동자운동의 고전적인 조직 형식이기도 했다.

 

2000년 이후 제조업 영역을 위주로 발생했던 노동쟁의 비율은 지난 5년 동안 지속적으로 변화하고 있다중국노공통신(中国劳工通讯)의 쟁의지도에 따르면 2014년 41%였던 제조업 노동쟁의 비율은 2018년엔 16%를 차지했다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하는 건 건설업으로 45%였고운송업은 제조업과 같은 16%를 차지했다파업 원인으로는 공장 이전과 임금 체불이 80%를 차지했는데이는 중국 제조업의 불안정한 상태를 반영한다. 2018년에 기록된 파업 1,701건 중 73.3%인 1,246건이 중국 내 민영기업에서 일어났고, 11.6%는 국영기업, 2.9%는 외자기업에서 발생했다규모와 기간 측면에서 대부분단기간에 소규모로 이뤄진 시위가 대부분이며, 100명 이하의 참가자가 일주일 이내로 시위를 진행한 케이스가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한다쟁의 규모는 작지만 빈도는 잦았고 범위는 전국적이다광둥성·허난성·장쑤성 등 경제규모가 큰 지역의 쟁의가 가장 많지만서부 내륙의 쟁의도 늘어나는 양상이다이는 중국 경제가 서부 개발을 지향하는 것과 맞닿아 있다.

 

이런 가운데 공회가 노동자들의 현실을 대변하지 못하고노동NGO 등이 공회가 해야 할 일을 대신하다 보니 공회 개혁의 목소리도 높아졌다파업에 참가한 노동자들이 기업공회 대표의 직접 선출을 요구하기 시작하자 일부 지역공회에서 쟁의 현장에 대한 적극성과 공회 개혁의 실험을 유도했고중화전국총공회(中华全国总工会개혁의 목소리도 대두됐다.

 

노동자운동과 민간좌파에 대한 탄압과 포섭

 

시진핑 집권 초기 반부패 캠페인이 어느 정도 마무리되기 시작한 시점부터 노동자운동에 대한 전 방위적인 공격이 시작됐다이로 인해 공회 개혁은 노동자운동을 성장시키는 방향으로 이뤄지지 않았다. 2016년 11월 9일 시진핑 국가주석 주관 하에 개최된 중앙 전면심화개혁 영도소조회의는 총공회 개혁 시행방안을 심의통과시켰다이는 당중앙이 결의했던 ‘4개 전면’ 전략을 대중 조직의 개혁 과제로서 실천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이듬해 2월 당 중앙과 국무원에 의해 추인된 신시기 산업노동자대오 건설개혁 방안’ 역시 이와 비슷한 맥락의 정부 방침을 담고 있다일련의 흐름은 노동자계급에 대한 당의 지도력과 영향력을 강화하고현장을 효과적으로 통제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이를테면 지도부를 구성하는 과정에서 공회 간부 중 모범 노동자와 현장 노동자 비율을 높이고모바일앱을 통한 가입을 가능케 해 공회 조직율을 높여 신세대 농민공의 가입을 제고하고기층으로 내려가는 공회 예산의 비중을 높여 기층 조직의 강화를 시도했다. 2021년 당국이 플랫폼 노동자들에 대한 조직화 성과를 발표하고음식배달 노동자들의 배송 수수료를 높이도록 조치한 것은 이런 맥락에 있다아래로부터의 저항은 철저하게 짓밟되자율적 저항이 조직되지 않도록 어느 정도 수준의 불만은 관리하는 방식이다.

 

중국 정부의 탄압과 통제 정책으로 인해 최근 민간 차원의 노동자운동은 급속도로 위축되고 있다노동NGO를 비롯한 농민공과 연대해온 활동가 그룹심지어 기층공회까지 국가가 관리·통제 가능한 수준에서는 용인되던 운동이 언젠가부터 강력한 탄압에 직면했다. 2017~2019년 가장 많이 알려진 사건이 바로 자스커지 노동자들의 공회 설립 투쟁이 직면한 공권력의 탄압이다.9) 이 사건에 적극적으로 관여한 자스커지노동자성원단만이 아니라광둥성의 신세대(新生代)’투더우공사(土逗公社)’ 등 운동 그룹들도 석연치 않은 이유로 연달아 구속되거나 집중적인 탄압에 맞닥뜨려야 했다선전의 신세대 농민공을 대상으로 한 독립매체 신세대의 커청빙(柯成兵), 웨이쯔리(危志立), 양정쥔(杨郑君등 활동가들은 2019년 1월 8일과 3월 20일 긴급 체포됐는데, 2021년 가을인 현재까지 구속 상태다그밖에 10년 가까이 왕성하게 활동해온 정페이양(曾飞洋등 저명한 노동운동가들도 연달아 체포됐다. 2010년 이후 광둥성 노동자운동을 주도했던 활동가들이 재기하려면 꽤 오랜 시간이 걸릴지도 모른다.

 

중국에는 공산당 바깥에서 활동하는 민간좌파’10) 그룹들이 존재한다이들은 정권과 중국의 국가자본주의 노선에 비판적이지만각자의 전술적 견해차로 활동방식을 달리한다그러나 각기 다른 견해에도 불구하고 대체로 공감하는 바가 있다면중국 사회가 이미 자본주의적 모순에 고통 받고 있고좌파의 역할은 노동자계급의 정치적 성장을 점진적이든 급진적이든 이끌어 내야 한다는 점이다물론 일부 마오좌파’ 활동가들은 현재의 시진핑 노선에 비판적 거리를 두면서도 동시에 세계 자본주의 체제에서 중국은 반()주변부 국가이며, “핵심 국가가 될 수 없다고 인식하기도 한다이와 같은 정세 인식의 차이는 중국 안팎의 사회주의자들 사이에서 쟁점이 되고 있다.11)

 

코로나19 이후의 실업

 

코로나19 바이러스는 농민공에게도 차별적인 피해를 안겨주었다중국농촌발전연구원의 언급에 따르면 전체 농민공의 약 10%인 2,500만 명 정도가 실업 상태에 빠졌으며, 2020년 중국 농민공 총수는 28,560만 명으로전년대비 1.8% 하락했다코로나로 인해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들이 대거 농촌으로 돌아갔기 때문이다물론 여전히 많은 수의 농민공들은 반실업 상태로 대도시에 남아있고농민공들이 입은 피해는 대도시에 호구를 갖고 있는 시민들에 비해 훨씬 크다.

 

올해 중국에서는 인구 문제가 크게 쟁점이 되기도 했다출산율과 사망률이 크게 떨어지면서 고령화와 저출산농촌공동화를 야기하고 있는데자본의 입장에서 이는 노동수급의 어려움으로 이어진다실제 코로나 이후 중국 일부지역산업계층에서 나타나는 노동력 부족과 구인난 등 문제는 꽤 심각한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노동가능인구가 감소하면서 노동공급 규모가 감소하였고대학 진학률이 높아지면서 노동가능인구의 노동시장 진입이 과거에 비해 늦어지는데 반해청년의 노동시장참여율은 줄고 있다팬데믹 이후 노동시장은 점진적으로 회복되고 있지만소비와 투자수출 등 총수요는 급격히 둔화됐고노동자들의 상황은 크게 위축됐다전문대졸 이상의 청년실업률은 전년동기대비 급격하게 상승했다.

 

중국노공통신이 2020년 1년간 수집한 쟁의는 총 800건인데이 중 건설 노동자 파업이 358건으로 가장 많았다이어서 운수물류업 156서비스업 144건이었으며비대면 소비가 늘면서 배송 플랫폼 노동자의 투쟁이 34건 발생했다올해 3월 1일 선전에서는 1천 명 규모의 음식 배달 플랫폼 노동자들이 파업을 벌였고그즈음 베이징에서는 음식배달 노동자 천궈장이 체포됐다.12) 온라인상에서 전국적인 음식배달 노동자 조직화를 시도하고 있던 이 현장 노동자에 대한 체포는 1천만 명에 달하는 중국 음식배달 플랫폼 노동자들의 자기 조직화와 투쟁을 당국이 예의주시하고 있다는 것을 반영한다.

 

청산이 있는데 땔감을 걱정하랴

 

중국 속담 중 청산이 있는데 땔감을 걱정하랴(留得青山在不怕没柴烧)’는 말이 있다아무리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긴 안목과 객관적인 조건 하에서 완전히 망할 일은 없다는 의미다오늘날 중국 민간좌파들의 태세가 대개 이러하다비교적 자유로웠던 후진타오 시기에 노동자운동은 매우 폭발적인 성장을 이루었다그러나 시진핑 시기에 접어들면서중국공산당은 체제의 구조적인 불안정성에 대해 우려하였고이는 강력하고 권위적인 정치통제 분위기를 형성하게 했다따라서 중국 노동자운동 역시 한동안 어두운 시기를 겪을 수밖에 없다그러나 이런 혹독한 시기에도 불구하고 신세대 농민공을 위시한 노동자계급은 전국 곳곳에서 아래로부터의 투쟁을 그치지 않고 있다이 시기를 어렵사리 통과하며 살아남고또 다시 있을 기회를 탐색하는 것이 살아남은 이들의 몫이자 과제이다.

 

동아시아 인근 국가의 사회운동 세력은 점증하는 타국 민중에 대한 혐오 정서에 적극 대응하면서중국 대륙의 노동자운동과 연대의 길을 탐색하고 시도하는 노력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 ‘세계의 공장에서 저항하는 노동자들의 행동은 동아시아그 너머 세계 노동자계급의 미래와 무관하지 않기 때문이다.

 

2021년 10

홍명교 플랫폼활동가

 

 

<>

 

1. 中国官方报道说有数百万的人卷入工人抗议活动FBIS-CHI-96-007Foreign Broadcast Information Service),1996년 4월 19

2. South China Morning Post》 1999년 3월 26

3. 톈안먼 사건의 구조적인 연원과 노동자 투쟁의 역할 등에 대해서는 하남석의 <1989년 천안문 사건과 그 이후역사의 중첩과 트라우마의 재생산>, 역사비평(2020 여름), 이홍규의 <1989년 천안문 운동의 성격과 역사적 의미 : ‘사회주의민주의 구현을 위한 체제 내 민주화 운동>, 중국지식네트워크(1414참조톈안먼 사건의 구체적인 전개 과정에 대해서는 조영남의 저서 톈안먼 사건(민음사) 1부 참조.

4. 吴俊松, <1980年代农民工总人数约1.2亿 75%出自乡镇企业>, 南方日报, 20110701

5. 2018年农民工监测调查报告国家统计局

6. 폭스콘 공장에서 일어난 착취의 구체적인 양태와 공장 내부의 동학에 대해서는 제니 챈마크 셀던푼 응아이의 저서 아이폰을 위해 죽다(나름북스참조.

7. 난하이혼다 공장 파업에 대해서는 장영석의 난하이혼다 파업과 중국 노동운동에 대한 함의중소연구』 35권 3호 참조.

8. 국내에도 뤼투의 저작들이 번역 출간되어 있다나름북스에서 출간된 중국 신노동자의 형성우리들은 정당하다중국 신노동자의 미래등 참조.

9. 2018-2019년 자스커지 투쟁에 대해서는 박민희의 중국 딜레마(한겨레출판중 4부 선멍위沈夢雨 중국은 과연 사회주의인가?’ 또는 본 필자의 사라진 나의 중국 친구에게(빨간소금참조.

10. 민간좌파 개념에 대해서는 첸리췬과 국내 학자들과의 대담을 엮은 전리군과의 대화 중국의 사회주의자본주의 그리고 민주주의(한울아카데미참조.

11. 최근에는 서구 좌파들과 대만과 홍콩 등 중화권 좌파 사이에서도 중국 사회 성격을 둘러싼 논쟁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12. 이 사건에 대해서는 플랫폼c가 발행하는 동아시아 사회운동 뉴스레터 3월호 <중국 음식배송 라이더들의 상징적 인물이 구속되다참조http://platformc.kr/2021/04/eastasia-social-movement-202103/

 

 

 

<편집자 주이 글은 본지의 요청으로 싣게 된 소중한 기고 글로 국제코뮤니스전망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코뮤니스트 14호] 오늘날 노동조합의 역할 : 노동계급의 규율과 통제

오늘날 노동조합의 역할 노동계급의 규율과 통제

  photo_2021-01-04_12-36-34.jpg

 

영어권 목록에 올라 있는 노동조합에 대한 논의는 비록 관련이 있기는 하지만사실상 별개의 두 가지 논의인 것 같다하나는 오늘날 노동조합의 역할에 관한 것이다노동조합은 노동계급의 적()이며자본의 정치경제적 그리고 이데올로기적 기구의 필수 부분이다또 다른 관심사는 혁명가들이 어떻게 노동계급과 연계를 구축하고투쟁에 참여하며노동자들이 벌이는 투쟁에서 적극적인 요소가 되는가 하는 문제다이 두 문제는 혼동해서는 안 된다비록 우리가 반드시 그렇게 결론지어야 한다고 믿고 있는 바와 같이 노동조합은 계급투쟁의 전개에 엄청난 걸림돌이며계급에 적대적인 기구이다그리고 혁명가들이 노동계급과 어떻게 연계를 구축해야 하는지에 대한 문제는 반드시 직면해야 하는 문제이다동시에노동계급과 연계를 구축하기 위해 혁명가들이 어떤 식으로든 노동조합(그곳에 노동자들이 있어서안에서 일해야 한다고 결론을 내려서는 안 된다오늘날 노동조합의 역할에 관한 우리의 결론은그래도 이해가 가는 부분이 있지만계급투쟁에 물리적으로 참여하기 위해 추진되어서는 안 된다오히려계급투쟁에 대한 우리의 개입 방식은 대부분 자본의 실질적 지배가 이루어지고 있는 현시대에 노동조합이 하는 역할에 관해 우리가 도출한 결론에 따라 이루어져야 한다.

 

노동조합의 역할 문제를 언급하기 전에 한 가지 더 짚고 넘어가고자 하는 것은나는 의도적으로 노동조합의 "본성"이라는 계급의 언어를 사용하거나 그들의 "본질"에 대해 말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노동조합과 같은 한정된 기구의 역할은 역사적 발전으로 형성되며고정된 본성이나 본질로 축소될 수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맑스주의는 유전적 또는 계보적 이론이다그것은 혁명적 개입을 목적으로 한정된 기구의 역사적 역할사회적 관계의 역사적 궤적을 분석하고 설명한다따라서 보기를 들어 노동조합의 경우계급투쟁의 역사적 전개에서 노동조합이 수행하는 역할과 지배적인 사회관계의 재생산 관계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자본주의가 노동의 자본에 대한 형식적 포섭에서 실질적인 포섭으로 이행함에 따라 변화하는 역할에 맞춰져야 한다노동조합의 계보가 필요하지만이 글은 지난 세기 노동조합 발전의 광범위한 개요를 보여주는 것 이상은 할 수 없다더 철저한 유전적 설명이 남아 있다.

 

만일 우리가 20세기의 첫 10년으로 되돌아간다면사회 지형은 각각 노동계급의 기관인 두 가지 유형의 노동조합이 포함되어 있었는데그것은 투쟁의 도구이다미국에는 미국노동총연맹(AFL)으로 대표되는 노동조합이 있었는데그들은 자본주의 체제 내에서 개혁 투쟁(임금 인상노동시간 단축노동 조건 개선)으로 그들 자신을 제한했다그리고 미국의 세계산업노동자동맹(IWW), 프랑스의 노동조합총연맹(CGT), 스페인의 전국노동조합총연맹(CNT) 등의 대표적인 혁명적 생디칼리스트 노동조합이 있었는데이들은 자본주의 국가와 임금노동 체제로 결정되는 사회관계를 전복시키기 위한 계급투쟁을 벌였다노동조합은 생디칼리스트 조직과는 달리 혁명적이지 않았지만그들은 계급투쟁의 기관이자 노동계급의 표현이었으며아직 자본 기구의 필수적인 부분은 아니었다.

 

20세기의 첫 30년 동안두 유형의 노동조합은 자본의 정치경제적이데올로기적 기구에 통합되었는데 이 과정은 자본의 형식적인 지배에서 실질적인 지배로의 전환과 통합적으로 연결되어 있다(이 과정에 대한 분석을 통해 더 자세히 알아보기 위해서는 노동조합이 어떻게 우리의 적이 되었나?라는 샌더(Sander)의 글을 참고). 노동조합의 이러한 변화는 (1차 세계대전의 발발과 함께하루아침에 일어난 것이 아니라수십 년에 걸쳐서 한 시대를 채웠다보기를 들어혁명적 생디칼리즘의 경우세계산업노동자동맹(IWW)은 아마도 미국의 혁명적 물결의 절정인 1919년 시애틀 총파업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그리고 1923년의 센트레일리아 파업또는 1926년 콜로라도의 탄광노동자 파업그리고 "유혈의 할란"에서도 세계산업노동자동맹(IWW)은 비록 쇠퇴 국면의 계급투쟁이지만여전히 계급투쟁의 도구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1914년 이후 혁명적 생디칼리즘의 활력의 또 다른 보기를 들자면독일의 노동자총연맹(AAUD)과 노동자총연합-단일조직(AAUD-E)은 수만 명의 혁명적 노동자들을 보유하고 1920년대 초에 걸쳐 대규모 투쟁을 벌였다. (AAUD는 독일코뮤니스트노동자당과 연계되었다.)

 

그러나 1920년대 말까지 (아마도 1936년 스페인 내전에서 공화국을 지지하기로 한 전국노동조합총연맹(CNT)의 결정으로 스페인에서 마지막 숨을 거둔생디칼리스트 노동조합은 대중적 노동조합과는 반대로 1930년대 초 독일의 코뮤니스트노동조합(KAUD)이 그랬던 것처럼 혁명적 정치조직(KAUD의 회원 수는 수백 명이었다.)이 되었다또는 프랑스 노동조합총연맹(CGT)과 같은 거대한 산업노동조합이 되었고이 경우 자본의 기구에 통합되었다(CGT의 경우 스탈린주의당의 기관으로). 이 시대의 전형적인 산업노동조합이자 자본주의 포드주의 시대의 산업노동조합의 모델인 미국의 산업별노동조합회의(CIO)는 그들의 조직화 투쟁이 낳은 산업 노동계급의 노동조합화에 대한 자본가계급 일부의 격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바로 그 시작부터 자본의 기관이었다헨리 포드와 철강 귀족들이 원래 산업별노동조합회의(CIO)와 싸웠다면루즈벨트 행정부는 불황에서 벗어날 방법을 찾고 전쟁을 준비하면서 산업노동조합이 자본주의의 필수적인 요소임을 인식했다케인즈주의가 경제 이론과 정책에서 자유방임주의를 지배했던 것처럼후자의 경향이 우세했다.

 

그 결과 노동계급의 규율과 통제를 역할로 하는 산업노동조합이 출현했다그것이 바로 현시대의 노동조합의 현실이며그들의 기원이 미국노동총연맹(AFL)의 직업노동조합이든프랑스 노동조합총연맹(CGT)의 혁명적 생디칼리스트 노동조합이든산업별노동조합회의(CIO)의 대중 산업노동조합이든 간에 다양한 방법으로경제정치이데올로기적으로 자신을 현실에서 드러내고 있다.

 

물론 노동계급을 규율하고 통제해야 할 필요성은 자본의 문제였다형식적인 지배의 시대에자본은 노동력을 통제하기 위해 사설탐정과 회사 경찰의 잔인한 폭력과 함께교회와 가부장적 사회관계와 같은 이데올로기적 통제의 전통적인 수단에 의존할 수 있었다. (19세기 후반 미국의 여러 주들은 일단의 법률제정 작업을 통해 회사가 자체경찰력을 창설하거나 기존의 경찰조직과 계약을 체결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이에 따라 설치된 회사경찰은 구사대의 역할을 수행했다독립경찰조직이었던 사설탐정은 열차경호열차강도 검거반노동조합 활동 등 다양한 업무를 수행했다. [역자]) 그것이 실질적인 지배의 시대에생산과정에서 기술이 차지하는 비중이 커짐에 따라 자본의 유기적 구성이 극적으로 변화하면서더욱 정교한 규율과 통제 수단이 필요하게 되었다필요한 수준의 규율과 통제를 보장하기 위해 외부 세력(교회 또는 깡패)에 의존할 수 없다대신 내부 수단즉 노동자가 주체로서 "구성"되고 이데올로기적으로 개입된 방식(자본에 종속됨)은 자본이 노동계급을 훈련하고 통제하는 진정한 기반이 된다노동조합은 이 과정에서 중요한 요소즉 노동계급의 물리적 계급 내부에서 자본의 무기가 되었다이것은 경제정치그리고 이데올로기 영역에서 볼 수 있다경제적으로노동조합은 자본주의 기업(보기를 들어가장 큰 기업의 이사회에 노조 대표가 앉아 있는 독일의 공동 경영)과 "그들"의 조합원을 고용하는 회사의 중요한 주주(보기를 들면스웨덴에서는 법적으로 의무화된 노동조합연금의 투자 덕분에 노동조합이 대기업에서 최대 주주 중 하나)의 경영에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정치적으로노동조합은 그들이 우세한 역할을 하는 좌파 정당을 통해 대부분의 자유민주주의 정권에서 정부에 들어가서특히 노동 문제에 관한 정책을 만들었다(경제 위기 기간 노동계급에 대한 긴축 시행전쟁 중에 군대 동원). 법적으로노동조합이 협상하고 시행한 노동 계약은 그 기간 "노동 평화"를 보장하여 노동조합을 자본주의 국가의 법적 기구에 직접적으로 통합시켰다이데올로기적으로노동조합은 헌법에 충실하고 국가에 헌신하는 민주 국가의 시민으로서 노동자를 종속시키는 특권적 수단이 되었다사실노동조합은 기관으로서 선천적으로 계급투쟁의 가장 강력한 두 가지 걸림돌인 국가와 민족주의와 연결되어 있다.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영속화가 인류 전체를 재앙으로 위협하는 시대에 노동조합은 세계 노동계급의 감소하는 부분에 더 나은 계약을 체결할 수 있는 능력과 자본이 계속 지구를 황폐화할 수 있도록 하는 노동평화에 대한 대가로서가 아니라자본의 기구에 통합되어 노동계급을 규율과 통제하는 역할에 근거하여 판단해야 한다.

 

확장 가능성이 있는 자주적 계급투쟁만이 자본주의의 혁명적 전복을 위한 토대가 되는 시대에 노동조합은 (비록 지금은 돌이킬 수 없지만역사적으로 자본의 기관노동계급의 적이 된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이 점을 명확히 하지 않으면혁명가들이 노동자들에게 계급투쟁에 개입할 방법을 제시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노동조합의 현 역할에 대한 논의의 아주 중요한 부분은 바로 여기에 있다.

 

맥 인토시(MAC INTOSH)

국제주의자 전망(IP)

 

 

<출처>

https://libcom.org/library/trade-unions-pillars-capitalism-internationalist-perspective

 

<편집자 주>

이 글은 지난 2021년 8월 27일 세상을 떠난 국제주의자 전망」 맥 인토시 동지의 글이다. ‘계급투쟁에 참여하는 것이 전부였던 투사이자 혁명적 맑스주의자였던’ 동지를 추모하고동지가 장려한 비판적 사고와 코뮤니스트 좌파 운동에 대한 공헌을 기리며 이 글을 소개한다.

 

맥 인토시(Mac Intosh) 동지를 추모하며

http://communistleft.jinbo.net/xe/index.php?mid=cl_bd_04&document_srl=340947

 

 

 

<관련 글>

터키 노동계급이 왜 노동조합 투쟁을 넘어야 하는가?

http://communistleft.jinbo.net/xe/index.php?mid=cl_bd_04&document_srl=342315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지방선거에 부쳐 - ‘선거 환상’을 넘어서자

지방선거에 부쳐 - ‘선거 환상을 넘어서자

 

 photo_2021-01-05_12-29-52.jpg

 

대선에 이어 또 하나의 선거가 시작되었다이번엔 지방 권력과 교육감을 뽑는 선거다부르주아 선거라는 측면에서 대통령/국회의원 선거와 지방선거는 본질에서 같다오히려 경제적인 이해관계와 일상생활과 관련된 정치에서는 중앙정치보다 계급적이라 볼 수 있다.

 

이번 지방선거는 노동자들에게 전혀 특별한 것이 없지만일부에서는 부르주아 양대 분파에 대한 심판과 자신들을 대변할 세력을 선출하는 장으로 여길 수 있다하지만 투표는 속임수일 뿐이다우리가 정규직이든 비정규직이든 실업자이든 퇴직자이든 현재의 선거는 노동자의 삶의 조건을 변화시키지는 못한다지난 4년 전에도, 8년 전에도그 이전에도 정치인들은 선거에서 수많은 약속을 해왔다노동자들이 조금 더 참고 함께 위기를 극복한다면 머지않아 우리의 생활과 노동조건은 좋아질 것이라 약속했었다말 그대로 4년 후, 8년 후 변화된 상황이 찾아왔다하지만 그것은 나빠지는 쪽으로의 변화였지개선이 아니었다끝 모를 경제위기는 모든 노동자에게 중압감을 느끼게 했고그것에 대한 혹독한 대가를 지불하게 했다복지와 연금은 줄어들고주거와 생활비용은 비싸져만 가고상시적인 해고 위협과 불안정한 일자리장기적인 실업불안정 노동의 증가는 다수의 노동자가 겨우 먹고살 수 있는 정도만 허락하고 있다이것이 그들이 약속한 변화의 전부였다.

 

1987년 대통령직선제그리고 1991년 부활하여 1995년부터 본격적으로 치러진 지방선거 이래 30여 년이라는 기간여러 차례 정권이 바뀌고 정치인이 바뀌고 노동자 출신이 정치무대에 등장하기도 했지만노동자들의 삶은 나아지지 않았다오히려 후퇴하거나 누구도 안정적인 삶을 보장받을 수 없는 매우 위험한 사회에서 살아가게 되었다여전히 생존권 위협과 각종 차별에 직면해 투쟁하는 것 말고는 어떠한 해결책도 없으며투쟁할 권리조차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정치인들의 약속은 이제 지키지 못할 약속의 상징이 되어버렸다그것은 선거로 세상을 바꾸겠다는 이른바 진보-노동 정당들이 자신들에게 투표하고 집권할 때까지 기다려달라는 약속도 마찬가지이다그들은 노동자를 팔아 정치판에 뛰어들어 엄청난 재정적인적 자원과 시간을 낭비하면서도 투쟁을 발전시키는 게 아니라 오히려 노동자들에게 환상과 좌절만 안겨주었을 뿐이다.

 

그래서 우리는 부르주아 선거를 서커스나 환상이라 부른다왜냐하면선거에 참여하는 순간 사람들은 자신들이 선출한 정치인에게 권력을 위임했다고 생각하며투표행위로 자신도 권력 일부로 참여한다고 착각하기 때문이다하지만 일단 선출된 정치인들은 유권자들의 직접 통제를 받지 않으며 선거기간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유권자와 분리되어 행동한다이 나라의 주권이 국민에게 있고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조항은 몇 년에 한 번 돌아오는 선거라는 이벤트에서만 적용된다는 이야기다.

 

또한부르주아 선거는 기본적으로 자본주의 지배 질서를 강화하거나 재편하기 위한 목적이 있기 때문에이를 넘어서 자본주의 지배 질서 자체를 바꾸거나 착취와 억압제도를 폐지하는 것을 절대 허용하지 않는다부르주아 선거라는 무대에서는 원래 무대의 주인인 대중이 아니라 무대의 설치 관리자인 국가권력이 이를 주도하기 때문에그들이 정한 시간과 장소그들이 정한 순서와 프로그램에 따라 움직일 수밖에 없으며대중들도 무대를 벗어날 수 없다따라서 자본주의를 넘어서겠다는 정치세력이 선거에 참여하는 것은 지배계급이 차려놓은 서커스 공연에 곡예사로 참여하는 것 이상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것이 없다이들이 선거에 참여하면서 선거를 통해 투쟁을 확산시킨다거나 후보를 내세워 투쟁의 구심을 세우겠다는 발상 역시 또 다른 환상에 불과하다.

 

유권자의 측면에서도 부르주아 선거판에서 투표하는 행위는 노동계급을 자신의 주장이나 목소리 없이 정해진 규칙과 객관식 선택지 안에서의 수동적인 개인들로 축소시킨다개별의 투표함과 투표소 안에서 노동계급은 작업장회사의 동료들과도 투쟁 현장의 동지들과도 차단된 채자본가를 포함한 얼굴도 모르는 지역주민과 섞여 분간하기도 힘든 1개 정당이나 정치인을 자신의 대표로 뽑아주어야 한다이러한 부르주아 선거판의 투표 속에서는 그 어떠한 계급연대도 찾을 수 없다그리고 이런 투표행위를 두고 지배계급은 우리 국민(주민)’들이 이 정부를 위해 투표했으니 따르라는 것을 임기 내내 홍보하고 협박해 댈 것이다.

 

그런데 왜 의회 제도를 부정하는 사회주의자 또는 자칭 혁명 세력조차 선거에 참여하거나 선거 전술을 사용하는 것일까정말 선거로 자본주의 체제를 넘어설 수 있다고 생각해서인가아니면 합법적인 사회주의 선전선동의 연단이 선거시기에는 열리기 때문인가?

 

결론부터 말하면 하나는 거짓이고 하나는 환상이다사회주의자들의 선거 참여는 사실은 지금으로부터 100여 년 전 레닌과 코뮤니스트 인터내셔널의 선거에 대한 입장과 1930년대 트로츠키의 투항 전술이 혁명적 의회주의’, ‘선거 전술이라는 논리로 포장되어 지금까지 변하지 않는 원칙으로 받아들여져 온 결과이기도 하다이른바 선거 전술에 대한 오해와 왜곡이 현재까지도 전혀 시정되고 있지 않다.

 

이러한 역사적 논쟁의 본질은 의회 전술 자체에 대한 논쟁이 아니라자본주의 발전 상황과 그에 따른 적용 문제즉 러시아의 후진적 정치 상황에 적합한 볼셰비키의 의회 전술을 일반화하여 유럽 국가들에도 적용하려는 코뮤니스트 인터내셔널과 부르주아 민주주의가 일정 수준 괘도에 올라 의회의 이용 자체가 혁명운동에 걸림돌이 된 유럽 코뮤니스트 좌파들의 반()의회 혁명 전략의 대립이었다당시 서유럽은 이미 사회민주주의가 부르주아계급 일부가 되어버렸고이들이 진출한 의회가 오히려 노동계급을 학살하는 역할을 하는 상황에서혁명적 코뮤니스트들은 의회를 이용하기보다는 의회를 타도할 목적으로 반()의회 노동자평의회 운동을 광범위하게 전개하고 있었다.

 

과거의 논쟁은 그렇다고 하더라도오늘날에도 선거 전술과 의회의 혁명적 이용이 가능해지려면현재의 부르주아 선거제도에서 의회 제도를 부정하고 파괴하는 연단을 열 수 있어야 하며의회제도의 활용이 계급의식의 발전에 도움이 되어야 한다그런데 역사의 경험은 그것과는 반대되는 결과만을 보여주었다. ‘혁명적인 의원단은 의회를 내부로부터 파괴할 수 없으며설사 그러한 전략이 있는 정당이었더라도 부르주아 정치에 적응하면서 타락하여 결국 자본주의에 흡수되는 결과만을 가져왔다물론 이들에게 표를 던진 노동자들은 혁명적 경험이 아닌 타락의 경험만을 갖게 되었다과거부터 지금까지 한국의 부르주아 의회와 민주주의는 혁명적 의원?’을 절대 용납하지 않으며애국가를 강요하고 헌법 질서를 수호해야 한다는 철의 원칙을 더욱 강화하고 있다의회제도의 활용은 바로 이런 것을 대중에게 보여주는 것이다.

 

노동자들이 부르주아의 민주주의 규칙과 선거제도에 복종하고 놀아나는 한자본주의를 결코 넘어서지 못할 것이다그러나 이것은 소극적이거나 투표를 거부하는 것만으로는 실현할 수 없다노동자들은 부르주아 선거보다 훨씬 민주적이고 계급적인그리고 삶에 직접 도움이 되는 투쟁을 위한 파업위원회투쟁위원회를 구성하기 위한 행동에 나서야 한다노동계급의 미래는 노동계급 스스로 일어서는 것에 달려있기 때문에 누가 대리해 주거나 다른 계급과 뒤섞임 속에서는 가능하지 않다다가올 지방선거에서 선거운동과 선거 정책의 시시비비를 가리는 일에 동원되거나 힘을 낭비하지 말고투표소가 아닌 투쟁의 현장에서 투쟁의 쟁점을 걸고 파업을 위한연대를 위한저항을 위한 행동을 준비하자고립되거나 장기간 투쟁으로 지쳐있는 우리의 노동자 투쟁에 하나의 계급으로 연대하자.

 

자본주의 쇠퇴기 모든 부르주아 선거는 사기와 다름없다매일 세계 곳곳에서 수백 번 넘는 투쟁이 일어나고노동자들은 1년에만 수만 번의 투쟁을 벌인다하지만고작 몇 년에 한 번 치루는 선거만으로 노동계급은 자신이 누려야 할 권력을 빼앗기고일상의 대부분을 지배받는다이것이 노동자들이 선거를 통해 노예가 되는 민주적인 권리의 실체다노동자들이 이러한 부르주아의 정치와 선거제도에 복종하는 한자본주의를 결코 넘어설 수 없다.

 

노동계급의 정치는 투표소가 아니라 저항하고 투쟁하는 곳에서만 가능하다.

노동자들이 살아 숨 쉬며 토론하고 행동하는 곳계급적으로 연대하고 단결하는 곳에서만 가능하다.

 

2022년 5월

국제주의코뮤니스트전망(ICP)

 

 

이 글은 코뮤니스트」 4호에 실린 글을 축약하여 재발행한 글이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터키 : 노동계급이 왜 노동조합 투쟁을 넘어야 하는가?

터키 노동계급이 왜 노동조합 투쟁을 넘어야 하는가?

 

photo_2021-01-11_18-42-25.jpg

 

지난 기사에서 우리는 많은 부문에서 발생한 파업을 언급했다.(1) 알파인 삭스(Alpin Socks) 공장, BBC 터키트렌드욜(Trendyol)의 노동자들은 이미 파업으로 쟁취했고다른 파업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또한 우리는 노동자들의 서면 및 시청각 인터뷰에서 연대에 대한 흥미로운 사례도 들을 수 있었다보기를 들면미그로스(Migros) 식료품 창고 노동자들이 파업에 돌입하자미그로스 회사는 인근 지역에서 새로운 노동자들을 데려와 파업을 막으려 했지만새로 들어온 노동자들 역시 파업노동자들을 지원하기 시작했다많은 부문의 노동자 단체들이 서로에게서 얻은 용기로 파업에 돌입했다고 차례로 선언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노동자들은 때때로 경찰의 공격을 받는다미그로스 창고 노동자의 경우가 그랬는데, 150명 이상의 노동자가 구금되고 250명이 해고되었다이것을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가 파플러스 오토모티브(Farplas Automotive)라고 생각한다터키 진보노동조합총연맹(DISK)산하 금속노조연합(UMW)이 조직한 코자엘리-게브제(Kocaeli-Gebze) 파플라스 공장 노동자들이 노조 권리를 요구하며 파업에 돌입했다그 결과, 150명의 노동자가 해고되었다이에 교대 근무 중인 노동자들이 공장을 점거하고 노조 권리와 동료들의 복직을 요구하며 농성에 돌입했다경찰이 공격을 준비하자노동자들은 공장 옥상에 올라가 요구사항이 수용되지 않으면 뛰어내리겠다고 선언했다그 결과, 200명의 노동자가 연행되었다이 상황은 자본주의가 노동계급을 늪으로 끌어들인 것을 보여주지만노동조합이 투쟁을 가두는 '법적 한계'가 노동계급을 억제하기에는 역부족이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이는 결정적인 순간에 노동조합의 '법적한계를 넘어선 노동자들이 자신만의 투쟁 방식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보기를 들어 미그로스(Migros), 트렌디욜(Trendyol)과 예멕 세페티(Yemek Sepeti) 노동자들이 파업하는 동안 이들 회사에 대한 보이콧 요구가 있었다불매운동은 노동자들에게 빠른 성과를 얻을 수 있는 도구를 주는 장점이 있지만다른 한편으로 파업을 지역적이고 법적인 관점으로 축소한다게다가불매운동에 대한 대다수의 지지는 미그로스가 노동자들에게 권리를 보장하지 않았다는 사실 때문이다따라서 싸워야 할 적()이 자본주의 자체의 문제라고 보기보다는 권리를 무시하는 소수의 자본가 회사로 전락한다자본과 노동계급의 '중재자'로서의 노동조합의 역할은 궁극적으로 노동계급을 '타협'으로 이끌며투쟁을 부르주아지에 대한 노동계급의 권리를 위한 투쟁'으로 여기게 만든다. '권리 투쟁'은 노동계급의 투쟁을 자본주의 체제의 법적 테두리 안에서 유지하게 하고투쟁의 정당성은 부르주아지 법이 규정한 틀 안에서 유지하게 한다정치적으로 '권리'는 부르주아지의 경제정치적 위기 상황에서 노동계급이 얻을 수 있는 몇 가지 법적물질적 '이익'을 넘어서지 않는다이것이 트렌디욜(Trendyol) 노동자들이 투쟁으로 38.8%의 임금 인상을 쟁취했음에도 불구하고이른바 독립노조 대변인이 앞으로의 투쟁에서 불쾌한 행동은 멀리하겠다.’라고 말할 수 있는 이유다.

 

한편 예멕세페티(Yemeksepeti) 택배노동자를 조직한 나클리야트(Nakliyat) 운송노동조합은 노동자들의 투쟁에 경의를 표하며 나클리야트의 지도 아래’ 노동자들이 승리할 것이라고 말했다부르주아 좌파와 노동조합은 현재 터키에서 벌이는 행동에서 자신을 계급으로 대체하고 노동자들의 진정한 투쟁을 무시함으로써 그들의 스탈린주의적 반영을 보여주고 있다노동자가 쟁취한 성과는 노동조합 방식이나 자본가개량주의 좌파의 조직과 정당을 통해서가 아니라 노동자 자신의 용기연대단결을 통해 이루어진다코뮤니스트로서 우리의 임무는 노동계급의 의식을 혁명적 수준으로 높이고노동자 투쟁을 대중적으로 광범위하게 확산시키고노동계급 자신의 당인 세계혁명당을 건설하기 위해 투쟁하는 것이지계급을 대신하여 투쟁을 그늘에 남겨두거나 계급과 분리된 지도력으로 행동하는 것이 아니다.

 

노동계급이 왜 노동조합 투쟁을 넘어야 하는가?

 

 

전체 노동자-노동조합-자본주의 삼각관계에서노동자 투쟁의 첫 번째 수단이 노동조합 안에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법적인 투쟁에서 가장 접근하기 쉬운 영역은 노동조합이다생존 위기에 몰린 경제위기 상황에서 노동조합의 법적 틀은 해고를 두려워하는 노동자에게 유용한 선택으로 여겨진다그러나 이러한 투쟁을 통해 노동자들이 얻은 성과는 자본주의 위기가 계속되는 상황에서 오래가지 못할 것이다그러나 자본주의의 본질과 이데올로기 공격을 인식하고중재 도구(자본가 정당노동조합선거 등과 같은)의 역할과 기능에 대한 인식을 통해 국제적 차원으로 투쟁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음으로써 노동자들은 계급 없는 사회를 위한 투쟁에서 영구적인 이익을 얻을 것이다이것이 바로 우리가 투쟁에서 맑스주의의 가장 중요한 도구인 비판을 활용하는 이유이다.

 

또 다른 맥락에서 맑스가 말했듯이, “만약 사물의 현상과 본질이 같다면 과학이 더는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우리가 보고 있는 현상 뒤에 무엇이 있는지 설명해야 한다노동조합 문제를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전혀 다른 현실이 드러난다.” (2)

 

노동조합은 역사적으로 항상 중재자’ 역할을 해왔지만과거에는 여러 가지 이유로 이것이 항상 명확하지는 않았다이제는 중재자로서의 주된 역할이 '타협'이지만항상 자본가에게 유리하다는 것을 숨길 수 있는 걸림돌은 없다개량주의자들은 노동조합의 유일한 문제가 지도자나 관료화에 있다고 보고노동조합을 혁명가들이 장악해야 하는 투쟁의 장이라고 주장한다하지만 이것은 노동조합을 이끄는 사람이 누구든 같은 방식으로 행동해왔다는 수많은 경험으로 거듭 반박되었다따라서 노동조합의 구체적인 특징이 아니라 역할과 기능을 살펴봐야만 문제를 이해할 수 있다.

 

노동조합이 자본과 노동 사이의 중재자라는 사실은 역사적으로 평가되어야 할 요소이다. 19세기에 등장한 노동조합은 노동자들이 직접 만들었다. 19세기 후반까지 노동조합은 불법이었다그러나 자본주의 모순이 고조되고 제국주의의 시대로 접어들면서 국가는 체제를 유지하려는 과정에 점점 더 빠져들었다그 일환으로 노동조합이 착취율을 고정시키는 '중재자'로서의 역할은 점차 자본주의에 긍정적인 것으로 인식되었다국가는 노동조합을 인정했을 뿐만 아니라 법적 지위도 부여했다따라서 노동조합 역시 '합법성'의 틀 안에 갇혔다그리고 그들은 1차 세계 대전 중에 파업을 중지하고 각 국가 자본의 전쟁 목표에 대해 지지를 선언함으로써 모든 자본주의 국가에 보상했다그리고 그 이후 노동조합이 이 체제에 대한 충성을 다짐할수록노동자에게 여기저기서 약간의 부스러기를 주면서그들은 더욱 관료적으로 되었고노동자의 진정한 이익을 점점 더 대변하지 못하게 되었다노동조합이 이렇게 변한 것에 대한 비판적 이해는 노동조합을 떠나라라는 추상적인 주장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우리는 혁명가로서 노동조합의 (낮은 지위를 포함하여어떠한 공식 지위도 거부하지만우리는 항상 노동자들이 있는 곳에 있다우리는 관료주의에 얽매이지 않을 때만 노동자의 진정한 이해관계를 표현할 수 있다우리는 모든 분야에서 노동계급의 투쟁을 지지하지만노동자들이 자신의 집회와 선출된 파업 위원회에서 자신만의 투쟁 형태를 만들 때만 발전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우리는 노동조합 투쟁의 한계를 극복함으로써 계급이 자신감을 얻고 광범위한 대중에게 투쟁을 확산시켜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자 한다위기 속에서 다시 일어선 계급투쟁은 스스로 '권리'와 개혁을 강요하는 부르주아 이데올로기에 갇힌 좌파를 피해야 한다노동계급은 오직 혁명적인 국제 계급투쟁만이 계급 없는 사회를 만들 수 있고지구의 운명이 우리 손에 달려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자본주의의 고조되는 위기는 이 투쟁이 그 어느 때보다 시급하다는 것을 보여준다우리에게는 쟁취할 세계가 있다!

 

 

2022년 218

미미와 메두사(Mimi and Medusa)

터키의 국제코뮤니스트경향(ICT) 지지자

 

 

<>

 

<사진> 사진 속 현수막과 피켓에는 “DISK가 우리를 속였는가?” “노동조합은 노동자의 불행을 초래하는 지방자치단체와 손을 잡고 있다.” 등이 적혀 있다.

 

(1) 터키노동자들은 전 세계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찾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https://www.leftcom.org/en/articles/2022-02-02/turkey-workers-are-trying-to-find-their-own-voice-all-over-the-world

 

(2) 노동조합 그들은 누구의 편인가?

https://www.leftcom.org/en/articles/2010-03-01/unions-whose-side-are-they-on

 

<출처>

http://www.leftcom.org/en/articles/2022-02-18/turkey-the-trade-unions-are-an-obstacle-to-all-workers-struggles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우크라이나에서의 제국주의 충돌 : 자본주의는 전쟁이다. 자본주의와의 전쟁을!

우크라이나에서의 제국주의 충돌

자본주의는 전쟁이다자본주의와의 전쟁을!

  photo_2021-01-06_12-04-54.jpg

 

유럽이 전쟁에 돌입했다이것은 1939~45년 제2차 세계대전의 대학살 이후 처음이 아니다. 1990년대 초()유고슬라비아를 전쟁이 휩쓸어 14만 명이 사망했고, 1995년 7월 스레브레니카(Srebrenica)에서는 인종청소라는 명목으로 민간인 대량학살을 저질러 청소년을 포함해 8천 명의 인명이 냉혹하게 살해되었다우크라이나에 대한 러시아군의 공격으로 이제 막 발발한 전쟁은 아직은 치명적이지는 않지만결국에 얼마나 많은 희생자가 발생할지 아직 아무도 모른다지금으로서는 구()유고슬라비아 전쟁보다 규모가 훨씬 더 크다오늘날 서로 싸우고 있는 것은 민병대나 작은 국가들이 아니다현재의 전쟁은 각각 1억 5천만 명과 4천 5백만 명의 인구를 갖는 가장 큰 유럽국가 사이에서 일어났고러시아에서 70우크라이나에서 25만의 거대한 병력이 동원되어 있다.

 

더욱이 강대국들이 이미 구()유고슬라비아 대결에 가담했다면그것은 간접적인 방식이거나 유엔 휘하의 개입군에 참여하는 것이었다오늘날 러시아와 맞서고 있는 것은 우크라이나뿐만이 아니라 나토에 속한 모든 서방국가다서방국가들은 직접적으로 전투에 관여하지 않았지만우크라이나에 무기를 보내기 시작함과 동시에 러시아에 대한 중대한 경제 제제를 가했다.

 

그래서 이제 막 시작된 전쟁은 무엇보다도 유럽뿐 아니라 전 세계에 매우 중요한 극적인 사건이다이 전쟁으로 이미 수천 명의 양측 군인과 민간인이 희생되었다전쟁은 수십만 명의 피난민을 거리로 내몰았다전쟁은 에너지와 곡물 가격의 추가 상승을 야기해 추위와 굶주림을 증가시킬 것이다세계 대부분의 나라에서 착취당하고 가장 가난한 사람들은 이미 인플레이션에 직면해 생활 조건의 붕괴를 겪고 있다늘 그랬듯이 세계 주인들의 전쟁 행동에 가장 큰 대가를 치르는 것은 사회적 부의 대부분을 생산하는 계급인 노동계급이다.

 

이 전쟁이 비극은 지난 2년간의 전 세계적 상황즉 대유행경제 위기의 심화환경 재앙의 증가 등과 분리될 수 없다이것은 세계가 야만으로 빠져들고 있다는 명백한 징후이다.

 

전쟁 선전의 거짓말

 

모든 전쟁에는 대대적인 거짓 캠페인이 수반된다국민특히 착취당하는 계급이 그들에게 요구되는 끔찍한 희생즉 전선에 보내진 군인에게는 생명의 희생그들의 부모파트너자녀들의 애도민간인들의 공포궁핍과 착취의 심화를 받아들이도록 그들의 머리를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로 채울 필요가 있다.

 

푸틴의 거짓말은 조잡하고 정치경찰과 첩보조직인 KGB 장교로 경력을 시작한 소련 정권의 거짓말을 반영한다그는 대량학살의 희생자인 돈바스 주민들을 돕기 위해 특수 군사작전을 벌이고 있다고 주장하며제제를 구실로 언론에 전쟁이라는 단어의 사용을 금지한다그에 따르면 그는 우크라이나를 지배하는 나치 정권으로부터 우크라이나를 해방시키고 싶어 한다우크라이나 동부지역의 러시아어권 주민들이 종종 나치 정권에 향수를 느끼는 우크라이나 민족주의 민병대에 의해 박해를 받는 것이 사실이지만대량학살은 없었다.

 

서방 정부와 언론의 거짓말은 일반적으로 더 교묘하다물론 항상 그렇지는 않다미국과 동맹국들이른바 "민주주의적영국스페인이탈리아그리고... 우크라이나(!)를 포함한 많은 동맹국은 2003년 이라크 개입을 사담 후세인의 손에 든 대량살상무기라는 완전히 꾸며낸 위협의 이름으로 우리에게 팔았다그 개입으로 수십만 명의 사망자와 2백만 명의 이라크인 난민이 발생했으며 수만 명의 연합군 사망자가 발생했다.

 

오늘날, "민주주의적지도자들과 서구 언론은 악한 괴물’ 푸틴과 착한 소년’ 젤렌스키 사이의 싸움이라는 우화를 우리에게 전한다푸틴이 냉소적인 범죄자라는 것을 우리는 오랫동안 알고 있었다게다가 그는 그것에 어울리는 외모까지 갖고 있다젤렌스키는 푸틴과 같은 전과가 없고정치에 입문하기 전에 인기 있는 희극배우(결과적으로 조세회피처에 큰 재산을 소유한)였다는 이점을 갖고 있다그러나 그의 코미디 재능은 이제 18세에서 60세 사이의 남성이 가족과 함께 해외로 피난을 떠나는 것을 금지하고 우크라이나인들에게 조국을 위해즉 우크라이나 부르주아지와 과두 체제를 위해 죽을 것을 요구하는 군사령관이라는 새로운 역할에 활기차게 몰입해 있다왜냐하면집권당의 색깔이 무엇이든연설의 어조가 무엇이든모든 국가는 피착취계급과 다른 민족 부르주아지와의 경쟁에서 무엇보다 착취계급민족 부르주아지의 이익을 옹호하기 때문이다.

 

모든 전쟁 선전에서각 국가는 침략자로부터 자신을 방어해야 하는 침략의 피해자로 자신을 나타낸다그러나 모든 국가가 사실상 강도들이기 때문에 결산에서 어떤 강도가 먼저 발포했는지를 묻는 것은 무의미하다오늘은 푸틴과 러시아가 먼저 발포했지만과거에는 나토가 미국의 지도 아래 그 자체의 진영으로 동구권과 소련의 붕괴 전에 러시아가 지배했던 여러 나라를 통합해왔다전쟁을 시작함으로써강도 푸틴은 특히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을 저지함으로써 그의 나라의 과거 권력을 어느 정도 회복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사실, 20세기 초반부터 영구 전쟁은 그것이 초래하는 모든 끔찍한 고통과 함께 자본주의 체제와 분리될 수 없게 되었다자본주의 체제는 기업 간의 경쟁과 국가 간의 경쟁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상업 전쟁은 무장 전쟁으로 이어지고경제적 모순과 위기의 악화는 훨씬 더 많은 전쟁과 같은 충돌을 일으킨다이윤과 생산자에 대한 가혹한 착취에 기반을 둔 이 체제에서 노동자들은 땀으로는 물론 피로도 대가를 치러야 한다.

 

2015년 이후 세계 군사 지출은 급격하게 상승하고 있다이 전쟁은 이 과정을 노골적으로 가속했다이 치명적인 소용돌이의 상징으로 독일은 2차 대전 이후 역사상 처음으로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공급하기 시작했다최초로 유럽연합은 우크라이나의 무기 구매와 조달에 자금을 지원한다그리고 러시아 대통령 블라디미르 푸틴은 자신의 결단과 파괴력을 증명하기 위해 핵무기를 사용하겠다고 공개적으로 위협했다.

 

우리는 어떻게 전쟁을 끝낼 수 있을까?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보다 훨씬 더 강력한 군대를 보유하고 있을지라도 현재 전쟁이 어떻게 전개될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오늘날 전 세계적으로그리고 러시아 자체에서도 러시아의 개입에 반대하는 많은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그러나 이러한 적대행위를 끝내게 만드는 것은 이러한 시위가 아니다역사는 자본주의 전쟁을 끝장낼 수 있는 유일한 세력은 피착취계급즉 부르주아계급의 직접적인 적()인 프롤레타리아트임을 보여주었다. 1917년 10월 러시아의 노동자들이 부르주아 국가를 전복했을 때그리고 1918년 11월 독일의 노동자와 군인들이 반란을 일으켜 정부가 정전협정에 서명하도록 강제했을 때가 이런 경우였다만약 푸틴이 우크라이나에 맞서 수십만 명의 군인을 보내 죽게 만들 수 있다면만약 많은 우크라이나 사람들이 오늘날 조국의 수호를 위해 목숨을 바칠 준비가 되어 있다면그것은 세계의 이 지역에서 노동계급이 특히 약하기 때문이다. 1989년 사회주의’ 또는 노동계급이라 주장했던 체제의 붕괴는 세계 노동계급에 잔인한 타격을 주었다이 타격은 프랑스이탈리아영국 같은 나라에서 1968년부터 1970년대까지 열심히 싸웠던 노동자들에 영향을 미쳤다하지만 1980년 8월에 대대적으로 그리고 대단한 결의로 투쟁해서 정부가 억압을 포기하고 그들의 요구를 수용하도록 강제했던 폴란드의 노동자들처럼 이른바 사회주의’ 국가의 노동자들에게 훨씬 더 많은 영향을 미쳤다.

 

우리가 전쟁의 희생자민간인 그리고 총알받이로 변한 군복 입은 프롤레타리아들인 양측의 군인들에게 진정한 연대를 가져다줄 수 있는 것은 "평화를 위한시위가 아니다다른 국가에 대항하여 한 국가를 지지하기로 선택함으로써가 아니다유일한 연대는 모든 자본주의 국가를 규탄하는 것이런저런 국기 아래 모일 것을 요구하는 모든 정당평화와 국민 사이의 좋은 관계라는 환상으로 우리를 유혹하는 모든 세력을 규탄하는 것이다그리고 진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유일한 연대는 세계 도처에서 대대적이고 의식적인 노동자 투쟁을 전개하는 것이다그리고 특히 이러한 투쟁은 점점 더 인류를 위협하는 모든 야만과 전쟁에 책임이 있는 체제즉 자본주의 체제의 전복을 위한 준비라는 사실을 의식해야만 한다.

 

오늘날노동자 운동의 오랜 슬로건, 1848년 코뮤니스트 선언에 나타났던 그 슬로건이 그 어느 때보다도 더 중요한 현안이 되었다노동자에게 조국은 없다전 세계의 노동자여단결하라!

 

국제 프롤레타리아트 계급투쟁의 발전을 위하여!

 

2022년 2월 28

국제코뮤니스트흐름(ICC)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코뮤니스트 13호] 코뮤니스트 정치원칙을 제안하며

코뮤니스트 정치원칙을 제안하며 

 

  photo_2021-01-06_00-39-06.jpg

 

2021년 자본주의는 치명적인 위기에 처해 있다감염병 대유행장기적인 경제 위기제국주의 대립과 전쟁 위기기후 위기,.. 세계 부르주아지의 온갖 처방에도 불구하고 위기는 더욱 악화하고 있고그 부담은 세계 프롤레타리아트의 어깨에 무겁게 떨어졌다코로나19 대유행 이후 자본주의 주요모순은 더욱 분명하게 드러났다이윤이라는 이름으로 인간에 의한 인간의 착취를 바탕으로 한 이 사회에서 인간관계의 실체를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자본주의 쇠퇴기 장기적 위기 상황에서의 대유행은 세계 프롤레타리아트에 전쟁과 야만인 자본주의의 지속인가 아니면 계급전쟁을 통한 코뮤니스트혁명인가의 선택을 다시 한번 제기하고 있다이제 코뮤니즘은 유령이 아니라 현실에서 반드시 필요한 노동계급 투쟁의 무기이자해방된 인류의 미래로 제시되고 있다.

 

1917~1921년 세계 노동계급의 혁명적 투쟁이 패배한 이후 노동계급은 오랜 기간 암흑의 침체와 반()혁명 시대를 거쳐 1968년 역사의 무대에 다시 등장하였다노동계급은 1970년대 초 제국주의적 긴장과 격렬함이 세계전쟁으로 확산하는 것을 멈추게 할 만큼 세계 곳곳을 휩쓸며 광범위하고 강력하게 부활하였다하지만 수십 년간 볼 수 없었던 전투적 투쟁에도 불구하고노동계급은 자기해방의 전망인 코뮤니스트혁명으로까지 나아갈 수는 없었다.

 

1차 세계대전으로 자본주의는 진보적인 생산양식이기를 멈추고인류에게 두 차례에 걸친 위기와 세계전쟁 그리고 파괴와 재건다시 새로운 위기를 반복하면서 쇠퇴의 길을 걷고 있다자본주의는 전 세계적으로 1차 대전까지 계속 확장되었고그 이후 파괴의 시기(1914-1945)를 지나 더 높은 생산 수준으로의 재건의 시기가 있었으나다시 새로운 위기가 발생했고 세계적 축적조건을 재구축하려는 시기를 거쳐 왔다세계 자본주의는 영국이 주도하던 축적국면을 지나미국이 세계자본주의를 주도하면서 80년대 이후 쇠퇴의 국면을 지속하고 있다.

 

2007~2008년의 금융위기로 촉발된 자본의 최대위기는 단순한 주기적’, ‘순환적’ 의미의 경기침체를 넘어 자본주의 체제 자체의 모순으로부터 생겨난 피할 수 없는 위기와 파국을 맞이했음을 보여주었고, 2020년 코로나19 대유행이 방아쇠를 당겨 위기를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한편으로 부르주아지의 무능과 분열을 보여주는 현재의 위기는, 2007년 미국발 금융위기의 시작과 더불어 우연히 출현한 것이 아니다이미 쇠퇴에 빠진 자본주의 경기침체가 40여 년 전부터 1974, 1981, 1991, 2001년에 차례로 있었다수십 년간 실업은 사회의 지속적인 현상의 하나가 되었고그동안 노동계급은 생활 수준과 생존 자체에 대한 공격이 점점 더 심해지는 것을 경험해왔다.

 

만일 자본주의가 위기에 처해 수많은 사람이 견딜 수 없는 빈곤에 빠지고 기아에 직면하게 된다면그것은 자본주의 체제가 충분히 생산하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오히려 판매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상품을 생산하기 때문이다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물품은 넘쳐나지만세계인구의 절대다수는 생산된 상품을 살 구매력이 없다그동안 자본은 이러한 위기 상황을 인위적인 시장의 창출을 통해 잠시 비켜 가곤 했으나부채에 의지한 위기의 탈출은 신용의 대대적인 상환의 시기가 오자 모래성처럼 무너져 내렸다장기적으로 지속해온 경제 위기는 부르주아지가 대유행에 대해서도 부적절하고 무질서하게 대응하도록 내몰았고봉쇄와 생산 중단은 경제 위기를 더욱 악화시켰다대유행의 주요 원인 중 하나는 과잉 생산이라는 자본주의의 고질적인 위기로 인한 지속적이고 가속적인 환경 파괴에 있다이는 자본주의가 인간사회의 필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시장과 이윤을 위해 생산하는 체제이기 때문이다.

 

그동안의 위기는 이러한 자본주의 법칙이 바로 체제의 재앙이 되었다는 것을 보여준다이번 대유행에 따른 보건 위기에 대한 지배계급의 부적절한 대응은 각 나라 내부에서 부르주아지와 국가가 사회에 대한 정치적 통제력을 점점 더 상실해 가는 경향을 드러냈다더욱이 자본은 이러한 위기 대응 실패를 오히려 노동계급에 전가하며 더욱 깊은 공황의 나락으로 향하고 있다이는 자본주의 체제가 치명적인 불치의 병에 걸려 진정한 회복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현재의 노동계급은 쇠퇴하는 자본주의 아래감염병 대유행 재앙 속에서 심각한 경제적 고통에 짓눌리고 제국주의 전쟁의 위협에 직면해 있으면서도아직 이에 맞서 적극적 투쟁으로 나서지 못하는 계급 역관계의 커다란 불균형 상태에 머물러 있다생산과 분배에 대한 자본의 실질적 지배는 전체 사회정치적 관계에 대한 총체적 지배를 더욱 넓혀가고 있다.

 

불행하게도 자본주의 이데올로기는 부르주아지뿐 아니라 그들과 자본주의 국가를 함께 구성하고 있는 노동/진보/사민주의 정당과 노동조합 기구를 통해서도 노동계급에 이미 깊숙이 스며든 상태이다이들은 그동안 자본주의에 비판적이었지만한편으로는 부르주아지가 노동자 투쟁을 억누르는데 실질적 도움을 주었고결과적으로 자본주의를 유지하는 역할을 해왔다.

 

이제 자본은 자신이 만든 위기를 노동계급에 전가하는 것에만 머물지 않고방역을 빌미로 한 봉쇄와 탄압으로 저항하는 노동계급의 투쟁을 싹부터 잘라내려 하고 있다하지만 쇠퇴기에 접어든 자본주의 절체절명의 위기는 노동계급에 자본주의 이데올로기를 깨고자본주의를 혁명적으로 전복할 가능성을 다시 한번 열어주고 있다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자본주의 세계는 온갖 종류의 사회적 반란과 전쟁 위협이 고조되고 있고세계 곳곳에서 균열을 일으키기 시작했다이 위기는 계급 대결의 새롭고 전례 없는 가능성과 경로를 열어주었다. ‘코뮤니스트혁명이냐 아니면 야만이냐의 의제가 세계의 프롤레타리아트에 피할 수 없는 현실이 되었다자본주의 위기 전가에 맞선 투쟁은 세계 곳곳에서 지금보다 훨씬 자주치열하게 벌어질 것이다.

 

이것은 대대적인 계급투쟁의 파고가 갑작스럽게 일어날 가능성이 커졌다는 의미이며혁명당은 이에 대해 준비를 해야 한다노동계급이 다시 계급투쟁의 주도권을 잡고 부르주아지에 맞서 전면전을 시작할 때혁명당은 모든 자본주의 수호 세력에 맞서 정치적조직적 전투를 벌일 위치에 서 있어야 한다.

 

자본주의 모순은 코뮤니스트혁명 이전에는 결코 해결될 수 없다또한자본주의 모순이 사라지지 않은 한 억압받는 계급의 저항과 투쟁의 물결은 끊임없이 이어질 것이다다만 자본에 맞선 모든 투쟁은 오직 코뮤니스트 강령이 계급 속으로 깊이 뿌리내릴 때만 비로소 혁명을 향한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자본주의 아래서 노동자들이 일상적 투쟁의 과정에서 얻게 된 계급의식은 혁명적 의식으로 진전될 수도 있지만투쟁의 시기가 지나면 다시 후퇴할 수도 있기에노동계급에는 계급의 모든 역사·이론적인 성과와 경험을 온전히 담아내는 강령을 가진 혁명당이 필요하다따라서 노동계급에 과거의 경험으로부터 교훈을 얻게 하고미래의 혁명적 투쟁을 준비할 수 있게 하는 것이 혁명당의 과업이다혁명가/코뮤니스트는 계급의식을 발전시키고 일반화하는 일에 결정적 역할을 한다또한혁명가들의 개입은 노동계급이 자신의 정치적 전망을 설정하고 혁명적 무장을 준비하는 데 필수적이다.

 

 

지금은 비록 세계 노동계급의 투쟁이 방어적 투쟁으로 나타나지만투쟁 물결이 지구적 규모로 확장되고 있고계급영역 내의 기본투쟁으로 진전되고 있음을 주목해야 한다동시에 부르주아지의 이데올로기 공세가 인종주의민족주의 외피를 쓰고 노동계급의 심리와 의식을 왜곡시켜 부르주아지 함정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을 항상 경계해야 한다여기에 코뮤니스트와 혁명당의 역할이 중요하다저항혁명운동의 방향을 제시하고세계 프롤레타리아트와 함께 전쟁억압착취의 고리를 끊어내고자유로운 개인이 연합하는 코뮤니스트 세상을 세계혁명으로 만드는 길이 코로나19 대유행이후 시대의 역사적 임무이다.

 

코뮤니스트혁명이 모든 투쟁의 순간에 구체적으로 가능한 것은 아니지만오늘날 투쟁하는 노동계급이 세계적으로 부활하고세계 곳곳에서 새로운 계급투쟁의 장이 열리고 있는 것은코뮤니스트혁명의 실재적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이에 혁명가들은 전 세계 노동계급의 단결과 통일을 위해 반드시 혁명당을 건설해야 한다이것은 세계혁명을 위해 세계적 수준에서 개입하여 전 세계의 혁명진영을 재규합하는 혁명적 인터내셔널 건설의 과정과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이에 우리 코뮤니스트는 새로운 인터내셔널(세계혁명당건설을 위해 투쟁하며노동계급의 자기해방을 위한 혁명당을 건설하고자 한다우리는 모든 혁명적 사회주의자/코뮤니스트들과 전투적 노동자 동지들에게 코뮤니스트 강령과 혁명당 건설의 기초가 되는 코뮤니스트 정치원칙을 제안하며 코뮤니스트혁명의 길에 함께 할 것을 호소한다.

 

2021년 5

국제코뮤니스트전망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