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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주를 멈춰라??

어쨌든 한미FTA는 지금 이 순간 벌어지고 있는 초유의 화제고 협상은 3차 정도까지 진행을 시켰다. 여기저기서 반대론이 넘쳐나지만 군대에서 매일 보던 중앙일보는 노무현 정부가 집권 후 유일하게 최초로 합리적인 정책을 펴고 있다면서 반대론자들을 침소봉대의 정신병자들로 몰아붙였다. 조선이나 동아는 안 봐서 모르겠지만 대충 비슷했을 것 같고 한국의 정치인들이나 외교를 담당하는 사람들의 경제학적인 마인드나 능력은 애시당초 신뢰할 수 없는 수준이라는 걸 대부분의 사람들일 잘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쩔 수 없이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은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정보가 차단된 현실 속에서 한 칠레 FTA 정도의 과거 사안들에 대해서 생각해보는 단순한 생각 이외에는 해 내지 못했다.

 

제대를 해서 자료를 접하고 결국 책을 사서 읽었다. 우석훈 이라는 경제학자가 쓴 녹색평론의 책이었다. <한미FTA, 폭주를 멈춰라>. 신자유주의를 가장 싫어하는 녹색평론의 책에 당연히 신뢰감을 가지고 산 이 책을 지금 아주 즐겁게 읽고 있다. 여하튼 확실한 것은 이 한미 FTA는 이제까지의 어떤 국제협약과는 차원이 틀리다. 이 정도 사안이면 정말이지 목숨걸고 반대할 사안이라는 것을 굉장히 뒤늦게 인식하게 된다. 자칭으로 좌파적 마인드를 가지고 있다는 나는 군대를 빌미삼아서 정말로 둔한 정세인식과 더불어서 생각없는 하루 하루를 보내고 있었던 셈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학생운동 생각을 한다. 과거 나의 학생운동은 대중 상대의 운동이 아니었다. 사람들이 읽으라고 내놓은 대자보에 성명서를 써서 내놓는 건 올바른 방식도 예의도 아니었다. 그리고 논리구조는 있으되 근거도 빈약했고 내놓은 근거는 대중의 시각이라고 말하기도 힘들었다. 사실대로 말해서 옛날 "철도 파업 완전히 정당하다!" 에서 그들의 정당함을 말하는 논거는 면밀하지 않았다. 공공부문 민영화로 인한 교통 요금 및 각종 서비스의 약화에 대한 위험성을 부각시키는 선전은 집약적으로 될 수 있었지만 역시나 대다수의 학생 및 시민 분들에게 신뢰성을 가지게 할 만큼의 논거를 갖다대지는 못했다는 말이다. 거기다가 플러스 해서 나와서 함께 싸우자거나 동의를 구하기 위해서 학생들에게 호소를 하고 부탁을 해야 하는데 저런 식의 대자보를 적어낸 것은 자살행위가 아닐 수 없었다.  적어도 이 책은 그러한 우를 드러내 보이지 않는다. 

 

우리의 언어를 가지고 우리의 말을 주장하는 것은 잘못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의 언어가 굳이 번역이 필요하고, 번역을 해야만 소통 가능하다면 번역하지 못할 이유도 없지 않은가. 친구를 만날 때 상대방의 방식에 맞춰주지 않고서 내 말을 들으라고 말할 수 없다. 논리와 근거가 명확하고 예의를 갖추어서 소통을 시작할 수 있다면 어떻게든 다시금 해 볼 만 하다. 안타깝게도 지금 세상에 마치 볼셰비키를 연상케 하는 성명서식 대자보는 사람들의 실소를 자아내기 딱 좋은 일이다.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이 당연한 원칙이 운동판에서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이유는 사람은 일단 없고 시간은 아마도 있겠지만 완벽하게 효율적으로 사용하기도 힘들고 무엇보다도 매번 글을 단위 내에서 생산해내야 하는 어려움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성명서 형식은 베껴쓰기도 편하고 예의를 갖출 필요도 설득을 열심히 할 필요도 없는 가장 편한 선전 문구 방식이다.

 

그런 방식 때문 만이라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여하튼 내가 돌아갈 건대의 학생운동 상황은 계속해서 나빠져 온 건 사실이다. 내가 없는 동안은 정확하게는 모르지만 결코 내가 있던 시절보다 낫지는 않은 듯 하고 내가 있던 시절에도 과거보다는 분명히 안 좋은 상태인 것은 확실했다. 완전히 모든 것을 새로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하지 않으면 안 된다.

 

내가 매일 가는 부산대학교의 학생운동가들은 무언가를 하고 있긴 한데 열심히 한다고 느껴지지는 않는다. 선전물이 한달이 되도록 바뀌지 않고 찢어지고 부서지고 있음에도 그들의 모습은 웬만해서는 보이지 않는다. 총학생회라는 게 하나의 사안에 집중하기 어려운 단위 역량을 가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아마도 그들은 사람 없는 가운데에서 학생회 운영만으로도 힘겹게 버텨나가고 있을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선전물을 지속 생산해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바로 그래서 현 시점에서 들어오는 사람도 없고 선배도 점점 없어져 가는 학생운동이라는 게 어렵다. 학생회 운영을 하고 있는 이상 학생운동에 성실하기는 사실대로 말하자면 힘든 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보건대, 그러한 구조적인 문제 이외에도 확실히, 지금의 학생운동가들은 전반적으로 게으른 사람이 많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는 학생운동은 매우 심각하게 성실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이 빌어먹을 자본의 세상에 대적할 운동은 못한다. 적들을 상대하다가 적들을 닮아간다고 하지만 여하튼 신자유주의 시대의 지배계급들은 정치적으로는 무능하지만 물리적으로는 굉장히 유능하기 짝없는 인간들이고 그들의 질서에 편입해서 살고 있는 대다수 - 어쩌면 우리 자신들 마저도 - 도 끊임없이 유능해질 것을 강요받고 부지런할 것을 강요받고 있는 만큼 저들의 무장은 강력하고 그것을 깨기 위해서는 그것에 대적할 수 있는 실력이 필요하며 그런 와중에서 학생운동가들은 신자유주의 질서에 더 노골적으로 던져진 것이나 매한가지이다.

 

실력을 기르잡시고 앉아서 공부만 하자는 게 아니다. 당면한 투쟁을 외면하지 않고 집회에 나가고 최대한 들이받고 싸우고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선전을 자기 스스로 생산해야 하고, 자기 스스로 활동을 만들고, 자기 개인의 능력을 키우기 위해서 공부해야 한다. 이론도 필요하고, 기능도 필요하다. 운동권이 공부 안 한다는 이미지를 쇄신하기 위해서 운동권도 학교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한다 라는 논리가 아니다. 하지만 이왕이면 할 수 있는 만큼은 수업도 잘 들어줄 필요가 있다. 자기 개인에게도 필요한 일일 수 있지만 수업을 잘 듣고 수업 시간에 학생들을 만나야 운동가들이 불성실한 인간이고 자기 앞가림도 못 한다는 인상을 주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돌아가서 해야 할 운동은 무엇보다도 불성실하고 무기력한 분위기를 일신하는 것으로 시작해야 할 것이다. 한미 FTA가 문제시 된 건 어제 오늘이 아니지만 학교에 선전 대자보 하나 없었던 기억이 여전하다. 그 때는 말년 병장 기분에 아무 생각 없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그것이 더 문제다.

 

가장 두려운 것은, 한미FTA의 폭주를 저지해야 할 활동가들, 그 중에서도 활동에 대한 전망과 지식과 경험이 일천한 이들이 자기 본의 아니게 활동가를 빙자한 백수생활로써 폭주를 시작하는 것이다. 솔직히 그러기 쉬운 일 아닌가. 부끄러운 일이지만 나 역시도 그랬던 적이 없지 않다. 집회만 나가고 있지 하는 게 없었고 하는 게 없으니 힘들었다. 그래서 아직 제대한 지 얼마 안 된 나로서는 절대적으로 해서는 안 되는 생활이 그런 생활이다.  

 

지금 남아 있는 학생운동가들 사이에서 많은 사람들은 운동에 대한 전망을 찾지 못한 채 실의에 빠진 사람도 많고 무언가를 해야 하는데 무기력해진 사람도 많으며 아직도 성명서 대자보와 전투 플랑만을 날리며 예의를 갖추지 못하는 일들이 분명히 있으리라 생각한다. 어떤 면에서는 상상이지만 과거 실의에 빠졌던 내 모습이나 간간이 보여대는 사람들의 모습을 볼 때 전혀 망상만은 아닌 듯 하다. 바로 그래서 이제까지 있었을 무기력, 무능력, 무전망의 3무 운동의 폭주를 멈추라고 말해야 하며, 멈추도록 해야 한다. 한미FTA만 폭주를 멈출 일이 아니다.

 

아무 것도 안 하면서 무슨 말이 그렇게 많냐고 따져대면 할 말이 없다. 하지만 돌아간다. 그리고 아무 것도 안 하면서 무슨 말이 많냐고 물어대는 사람이 있다면 그 때 해보고 나서 사죄를 하던지 아니면 도로 따져대던지 다시 말해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뻔한 비판이라 할 지라도, 스스로와 누군지 모를 타인에게 이런 경고를 보내야 한다.

 

정말로 최선을 다해서 살아야 한다. 운동가를 자임하면서 제대로 살려면 더욱 더. 적어도 도서관에 틀어박혀 있는 학생들보다는 부지런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게으른 운동의 폭주는 멈춰야만 한다. 이왕이면 책 제목처럼 한미FTA도. 그리고 덧붙여서 더 바라자면 빌어먹을 신자유주의 천국이야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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