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Ⅲ. 80년대 중반 민중가요의 변화
1. 84년과 85년이라는 시기
‘시의 시대’에서 ‘소설의 시대’로 단조 행진곡을 중심으로 단조 스탠다느풍의 서정가요가 보족적 위치를 차지한 80년대 초 민중가요의 변화를 보이는 이 시기는 비단 민중가요뿐 아니라, 민족극, 민족문학 등 진보적 예술운동 진영의 여러 장르에서 동시적으로 작품 경향의 변화를 보였던 시기라는 점에서 주목을 요한다.
84년은 이른바 유화국면, 자율화국면이 시작된 해이다. 80년 패배의 충격으로부터 학생운동을 비롯한 민민운동진영이 일정한 세력의 회복을 하게 된다. 각 이념써클의 조직적 회복으로 운동권의 수가 증가하며, 시위의 회수와 강도도 높아진다거나 학도호국단에 학생운동이 침투한다거나 대학축제를 대동놀이 등 연행예술운동의성과로 채운다거나 하는 일이 늘어났고, 이에 따라 5공화국 정군의 일보후퇴가 이루어졌다. 제적생의 복교와 총학생회의 부활, 대학 내의 대중집회 허용, 상주 기고낭원의 철수 등이 이루어지고, 이른 바 재야단체라고 불리는 민민운동단체들이 발족하게 된다.
83년 가을, 민주화운동청년연합 발족(의장 김근태), 84년 4월 민중문화운동협의회 발족을 시발로, 84년 한국노동자복지협의회, 자유실천문인협의회, 민족미술협의회, 민주언론운동협의회, 한국출판운동협의회, 민주교육운동협의회 등 수많은 단체들이 만들어졌다. 85년 3월 이러한 민민운동단체들의 협의체적 연합인 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이 발족되었다. 84년이야말로 80년대 초반의 패배를 딛고 상승하는 분위기의 최절정이었다고 할 수 있다.
단조행진곡, 마당극, 시 등 80년대 초반의 민족예술의 성과가 최절정에 도달한 것도 역시 84년이었다. 80년대 초반부터 84년까지의 예술작품들은 격정적이며 주장이 단순하고 뚜렷하였다. 주장이 뚜렷하다는 것은 타도 대상이 분명하며, 이에 대한 타도 의지가 강하고, 이 이외에는 다른 생각을 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른 생각을 할 여유가 없었으며, 할 필요도 없었고 이를 타도해야 한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는 당위의 시절이었다.
84년 무렵까지의 민중가요 역시 이런 배경으로 인하여 감정의 선이 굵고 뚜렷하며 의미 단위가 짧고 단순했던 것이 주요한 특징이다. 예를 들어, <전진가> 같은 경우 음악적으로 2마디가 기본이며, 8마디에서 모든 노래가 끝난다. 가사도 ‘가자’, ‘나가자’, ‘단결하세’ 식으로 단순한 의미가 기본을 이루는 노래도 많았다.
그러나, 85년 하반기부터 운동의 발전속도가 둔화하게 된다. 85년 하반기부터 정부측의 탄압이 강화되고, 다시 제적생, 구속자가 늘어나게 되었다. 이에 따라 운동의 발전속도가 눈에 띄게 둔화되었고, 84년까지 이루어낸 한 단계의 발전을 딛고 새로운 단계의 방향을 모색하는 일종의 과도기적인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예술운동에서도 여태까지와는 전혀 다른 태도와 정서를 갖게 되었다. 가자, 나가자 식의 단순한 주장이 더이상 호소력을 갖지 못하게 되었고, 열정을 가라앉히고 객관적 사실을 있는 그대로 보고자 하는 태도가 싹 텄으며, 이를 바탕으로 한 보다 복잡하고 다기한 논리를 요구하게 되었다. 대학에서 앞으로의 운동방향을 둘러싸고 비합법문건들을 통한 격렬한 논리투쟁, 사상투쟁이 벌어지는 것도 이때였다.
진달래, 오월, 붉은 꽃잎 등의 시어들만으로도 무엇을 이야기하고자 하는지 알 수 있었고, 감동스러웠던 시(時)의 시대가 가고 소설(小說), 특히 장편소설이 유행하기 시작하였다. 또한 선 굵은 집단적 정서를 바탕으로 하고 있었던 마당극에 대한 비판이 이루어지기 시작한다.
2. 민중가요의 작품경향 변화
1) 행진곡 중심에서 서정가요 중심으로
대중의 정서가 변화함으로 인해, 단순하고 선 굵은 정서의 행진곡보다는 보다 개인적이고 복잡하고 많은 생각을ㄹ 하게 하는 서정가요를 더 요구하게 되었다. 물론, 행진곡은 계속 만들어졌으나 그 전만큼 인기를 주도하지는 못하였다.
<이 산하에>는 빠르게 인기를 얻지는 못했지만, 85년에 들어서면서 서서히 큰 인기를 얻어갔고 이 뒤를 이어 <부활하는 산하>(이성지 작사․작곡), <의연한 산하>(작자 미상), <노래 2>(김남주 시․김경주 작곡) 등 서정가요 계열의 긴 노래들이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이러한 서정가요의 인기는 대학 노래팀들이 84, 85년간 집중적으로 만들어졌다는 데에 그 한 원인이 있다고도 할 수 있다. 공연을 통한 서정가요의 집중적인 보급이 이루어진 것이다.
2) 행진곡의 길이가 길어짐
80년대 중반의 행진곡은 노랫말이 길어지고, 논리가 복잡해지는 시기였다. 대표적으로는 <전진하는 오월>, <민족해방가 1>을 들 수 있다.
3) 장조 서정가요의 시작
80년대 중반 민중가요작품의 중요한 변화 중의 하나로 꼽을 수 있는 것은 장조 서정가요의 등장이라고 할 수 있다. 장조 서정가요는 단조행진곡과 단조 서정가요에서 드러나는 격정적 감정을 자제하고, 보다 절제되고 이성적이려는 태도를 가지고 있었다.
<그날이 오면>(85년, 문승현 작사․작곡)이 86년에 들어서면서 널리 불려짐으로써 장조 서정가요들은 차츰 대중들의 인기를 얻기 시작한다. <그날이 오면>은 80년대 장조 서정가요의 시발을 이루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 작품적 특징을 살펴보면 우선 긴 의미단위를 갖고 있으면서 낭만적 격정을 내면에 감춘 절제된 감정을 운용하고 있고, 고전적인 차분한 화성과 선율을 전개하고 있어서 매우 부르기가 어렵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단조 서정가요가 60년대 단조 스탠다드의 전통을 이어받고 있다면, 이들 장조 서정가요는 찬송가와 가곡, 포크의 영향을 강하게 받고 있다. 그리고 올겐 반주나 혼성합창의 편곡이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문승현은 그의 또하나의 역작 <이 산하에>로 민중가요의 중심으로 진입하는 데에 성공했고, 이 노래로부터 민중가요의 경향을 미리 짚고 선도하는 데에 이르게 되었다.<이 산하에>의 뒤를 이어 추모곡이면서도 장조의 노래인 <벗이여 해방이 온다>(86년, 이성지 작사․작곡/김세진, 이재호 열사 추모곡)가 발표되어 대중들에게 많이 불리워지면서 장조 서정가요의 경향을 확정짓게 되었다.
4) 개사곡의 급격한 퇴조
학생운동의 상승이 뚜렷했던 83년부터 대학에서 개사곡의 붐이 일었다. 그 이전의 노동자들의 개사곡(노래가사 바꿔부르기)이 주로 노동자들이 부를 민중가요의 부재로 인해 수요와 공급이 맞지 않음으로서 생겨난 것이거나 노동자 교육용 프로그램(즉, 자기 생각을 표현하기, 주체적으로 사고하기 등을 위한)으로 만들어진 것이라면, 대학생들의 개사곡은 주로 반전의 재미를 중심으로 하는 풍자적인 개사곡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대표적인 개사곡으로는 (원곡:독도는 우리땅), <아, 대한민국> 등이 있다.
즉, 기존에 익숙하게 알고 있는 노래를 가져와서 가사의 몇 부분을 바꿈으로써, 기존의 노래가 가지고 있는 의미와 새로운 의미 사이의 부조화로 인한 충돌과 긴장을 만들어내는 일종의 노래장난으로서 개사곡이 83년부터 대학가에서 붐을 일으켰던 것이다.
이런 류의 개사곡들은 비록 민중가요의 주도적인 노래는 아닐지라도, 일반 민중가요로서는 채워주지 못하는 희극성, 풍자의 재미를 만끽하는 노래로서 독자적인 존재가치를 가지고 있었다.
3. 기층 민중의 삶을 다룬 작품과 노동자가 부르는 민중가요
1) 70년대 이래 연민주의적 시선
지식인이 만들어낸 노동자나 농민의 삶의 모습은 가난하고 슬프며 무력하다. <서울로 가는 길>, <공장의 불빛>(김민기), <황혼>, <까치길>(안혜경), <하얀 비행기>(김제섭), <약수 뜨러 가는 길>(정종수), <소>(한돌), <갈 수 없는 고향>, <땅> 등의 노래들은 지식인들에게 여태까지 한 번도 적극적인 관심의 대상이 되지 못했던 기층 민중, 소외된 사람들의 삶에 대한 애정어린 관심의 시작이었고, 이러한 연민은 못사는 사람들에 대한 지식인의 양심의 발로였다. 그들의 삶의 어려움을 설명하려고 들면서도 직설적인 설명을 피하려고 형상화한 흔적이 역력했고, 또 이미 그들의 삶을 설명하려고 한다는 것은 그들 노동자나 농민 등 기층민중의 삶을 모르고 있는 사람들이 부를 것을 전제로 하여 창작을 하는 것이며, 그런 의미에서도 이들 노래는 대부분은 그 양식이 포크가 주를 이루었으며, 이들 노래는 포크적 질감과 태도를 가짐으로써 이러한 현상은 더욱 심화되었다.
2) 극복, 탈피의 노력
그러나 80년대 초반 이후, 실제의 노동자들과 접하게 되면서 실제의 노동자의 모습이 지식인들이 책에서 일고 머리속에서 그려온 민중들의 모습과는 다르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고, 따라서 기층민중에 대한 연민주의적 시선을 탈피하고자 노력하였다. 이러한 노력의 한 결과로 우선 그 양식에서 민요풍의 노래가 등장을 하는데 이는 민요풍의 노래가 민요가 지니고 있는 민중성과 역동성(직설성에서 오는)을 빌어온다는 점에서 자연히 이전의 포크풍의 노래와는 다른 질감을 가질 수 있었다. (<작업장 타령>(안혜경, 85년경), <서울길 2>(김지하 시․오용복 작곡, 82년) 등) 그러나 아직 이들 노래 역시 여전히 설명적이었다.
85년 이후, 노동자들의 삶의 구체적인 모습을 활보하려는 노력들이 기울여지기 시작한다. 이러한 노력들의 대개는 노동자들과의 직접적인 접촉을 통해 이루어졌는데, 이러한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 노래들로는 <귀례이야기>(이성지 작사․작곡), <깜박잠>, <우리 이야기>(김보성 작사․작곡), <밥, 자유, 평등, 평화>(김보성 작사․김용수 작곡), <대결>(박노해 시․김보성 작곡)과 노래로 하는 라이프 스토리라 할 수 있는 <살아온 이야기>(노동자 공동창작․김용수 정리) 등을 들 수 있다.
이들 노래들은 70년대와 80년대 초반의 노래에 비해 구체성이 확보되었고, 투젱적인 노래가 한 두곡씩 나오기 시작한다는 점에서 의의를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역시 노동자의 일상을 힘들면서도 역동적이고 힘차며, 비참함의 표현에 있어서도 직설적이면서 질기디 질긴 생명력의 느낌을 가지지 못하고, <깜빡잠>처럼 여리고 곱고 연약하며 무력하게 표현하고 있다. 여전히 양식은 포크에 묶여 있고, 그 포크의 연약함과 비생활성의 영향을 받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따라서 이들 노래의 몇몇 곡들은 노동교회를 통해 노동자들에게로 보급되기도 하였지만, 노동자들보다는 역시 대학으로 더 많이 퍼져 나갔다.
본격적인 노동가요가 만들어지기는 아직은 어려운 여건이었다고 할 수 있다. 반면, 실제 노동자들이 좋아한 노래는 <사노라면>과 <불나비> 등과 같이 대중가요 중에서도 보다 더 대중적인 (그런 의미에서 통속적이라고 할 수 있는) 양식을 차용한 노래들이었다. 특히 <불나비>는 70년대 말, 80년대 초의 대학가요제풍의 속화된 록을 그 양식으로 차용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노동자들이 실제로 좋아하며 즐겨불렀던 노래들은 그 가사가 설명적이지 않으면서도 노동자의 감수석에 잘 맞았고, 일상적 낙관성과 역동성이 잘 살아 힘들지만 힘차게 살아가는 모습이 드러나고 있다. (투쟁이 일상화될 수 없었던 80년대의 중반이므로 어차피 일상의 표현이 중요했음) 또한, 표현은 직설적이며 외향적이다. 이러한 일상적이면서도 직설적이며 외향적인 것은 이전의 포크를 중심으로 한 작품이나 단조 스탠다드의 비일상적으로 비장한 서정가요 작품으로는 감당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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