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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항쟁에 대한 나의 기억 (3)

 하루 종일 잤다. 집이라는 게 꿈같았다. 저녁에 막내가 방으로 들어와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낸다. “사실은...” 경찰들이 찾아와서 집을 막 뒤지고 했다고... 자기 방도 들어왔었다고...자기가 화를 냈다고, 왜 그러냐고... 하지만 정말 겁났었단다. 침대 밑에 있는 자료들을 들킬까봐... 그 사람들 웃긴다고 했다. 언니 책꽃이에서 책을 다 집어갔는데, 난쏘공도 가져가더라고, 그 책은 자기네 반 학급문고에도 있는 책인데...

밤에 무서워서 아빠한테 이야기를 했단다. 아빠가 그 자료를 꺼내서 뒤적거리더니 전부 들고 지하실로 내려가 보일러통에 넣어 모두 불살랐단다.

기가 막혔다. 몇 년간 써온 일기책들도 전부 있었는데... 하지만 동생이나 아빠를 탓할 순 없었다. 혼자 몰래 지하실에서 가슴 졸이며 책들을 태웠을 아빠의 마음을 생각하곤 아무소리 안했다.


 하루를 쉬고 학교에 갔다. 이미 소문은 나있었다. 몇몇 선배가 물었다. 어디까지 불었는지, 무슨 낌새는 없는지.. 그저 나는 알리대로 말했고, 별 일 없을 거라고 했다. 당분간은 사람들 만나지 말라고 했다. 써클 후배들하고 술 한잔 간단히 하고 집에 왔다. 집에 오니 그 형사한테서 전화가 왔다. 내일 오후에 만나잔다. 명동 로얄호텔 커피숍에서...

“왜요?” “학교 생활 잘 하나 당분간 만나서 확인해야 하니까... 낼 나와” “네”

학교에 갔다가 그 이야기를 하고 명동으로 갔다. 그 자는 학교 동향을 물었다. 그 선배 봤냐고... 안 나타난다고 했다. 무슨 일이 있으면 연락을 하란다. 알았다고 했다. 그는 사우나 갔다 들어간다고 나보고 먼저 가란다. 그러기를 한 달 정도... 불쑥 불쑥 전화를 집으로 걸어 만나자고 하거나 내가 없으면 엄마나 아빠한테 다음날 약속을 전하기도 했다. 만나서는 별 쓰잘데기 없는 이야기를 하다가 가끔은 술한잔 하자고도 했고, 이상한 술집같은 데 들어가자고도 했다. 나는 번번히 순진한 척 이런 델 왜 가냐고, 도망치듯 헤어지곤 했다. 

집에서는 서로 눈치를 봤다. 학교에선 사람들을 만나기가 겁났고, 또 힘들었다. 모든 선이 끊어졌다. 무슨 수를 써야 했다.

어느 날 작정을 하고 아빠한테 이야기를 했다. 나는 그 놈 때문에 못살겠다고... 학교가도 친구들이 형사따라붙으니까 이상하게 보고, 또 만나면 자꾸만 이상한 데 데려가려고 한다고... 아빠가 전화오면 이야기 좀 하라고, 나 이제 그런 거 안하니까 그만 만나라고 하라고. 아빠의 얼굴이 굳어졌다.

다음 날 또 나오라고 해서 이번엔 남영동 쪽에서 만났다. 그동안 고생했다고, 학교 생활 열심히 하고, 이런 짓은 절대 하지말라고... 어쩌구... 하더니 마지막인데 술 한 잔 하고 헤어지 잔다. 아빠가 전화를 하셨나 보다...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그러마 하고 대답했다. 조금 걸어나오니 술집이 즐비하다. 숙대 입구니까... 아무데나 들어가자고 했더니 이런 분위기는 싫고 어쩌고 하면서 자꾸만 걸어간다. 널린 게 호프집인데 뭘 찾는지... 용산 쪽으로 걸어가다가는 술집들은 사람도 많고 번잡하니 여관방을 잡아서 조용히 술을 한 잔 하잔다. 기가 막혔다. 미쳤냐고... 그런 델 왜가냐고. 벌컥 화를 냈다. 내가 그 자에게 처음으로 화를 낸 것 같다.

그게 아니고... 하면서 길에서 실갱이를 벌이다가 화가 나서 그냥 가겠다고 인사하고 돌아서서 뛰어왔다. 따라오면 어쩌지? 이판 사판이지 뭐...하면서 뛰었다. 그는 따라오지 않았다.


이렇게 해서 그 사건은 끝이 났다. 그런데 학교에서 다시 선을 연결해 뭘 하기가 힘들었다. 한창 사투가 치열하게 벌어질 때라 문건을 구해 읽어야 하는데 힘들었다. 가끔씩 어렵게 선배에게 문건을 몇 개 받아서 집으로 가져가 침대 밑에 숨겨놓고 읽었다.

어느 날 밤 아빠가 술에 취해 집에 들어와 내 방 문을 열었다. 난 읽고 있던 자료를 이불 속에 넣었다. 아빠는 화를 냈다. 이런 짓을 또 하다니.. 네가 정신을 못차렸구나.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결국은 또 싸우고 말았다. 아빠는 돌아서며 “차라리 나보고 죽어 없어지라고 해라.” 하셨다.

혼란스럽고 괴로운 나날이 계속되었다. 학교에서도 자리를 잡지 못하고 집에서도 늘 서로 눈치만 보고... 동기들 몇 명과 가끔씩 술을 한 잔 하며 학내 상황에 대해 전해 들었다.

그렇게 또 며칠이 갔다. 동기와 술 한잔 하고 그리 늦지 않은 시간에 집으로 들어왔다. 그날따라 친구가 데려다 준다해서 버스 정류장에서 같이 걸어 올라가고 있는데, 저 앞에 막내가 뭔가를 가슴에 끌어안고 내려오고 있었다. “야, 어디가?” 하고 내가 불렀다. 막내는 날 보자마자 엉엉 울었다. “왜 이제와? 어디갔었어? 아빠 돌아가셨어” “뭔 소리하는거야, 너 왜 그래?” “아빠가 아까 돌아가셨단말야!!!”

친구한테 인사도 안하고 나는 동생과 택시를 잡아탔다. 서안복음병원 영안실...

어이가 없었다. 무슨 일인지 영문을 몰랐다. 엄마는 들어서는 날 붙잡고는 “에고,에고... 이 박복한 것들...” 하고는 오열을 토했다.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그저 멍 할 뿐.

조금 있다가 작은아빠가 들어와 아빠의 유서를 내게 주었다.


장례를 치르고 우리 집은 이사를 했다. 빚이 많아 팔 수 있는 건 다 팔았다. 이사를 하던 날 큰 고모가 오셨다 가시며 나를 불렀다. 내 손을 꼭 잡고는

“느이 아빠가 네 걱정을 젤 많이 했다. 너 거기 붙잡혀 갔을 때 네 아빠, 회사일 다 팽개치고 너 찾는다고 여기저기 안알아보고 다닌 데가 없다. 니들은 잘 모르겠지만 그 때 느이 아빠가 거기 병원 공사 시작할 때 잖니? 그 중요한 일을 다 팽개치고 다녔으니 회사 일이 문제가 생겨도 생겼지. 그것 때문에 밤잠을 못잤다. 오죽하면 그 자존심 강한 니 아빠가 고모부를 찾아와 도와달라고 했겠니. 그런데 고모부도 안좋을 때라서, 진작 이야기를 했으면 좋았을텐데... 결국...훌쩍, 아뭏튼 잘 살아야 한다. 네가 집안 잘 보살피며 살아야 한다.”

회사가 부도나기 하루 전 아빠는 바로 아래 동생과 엄마에게 시장을 보고 오라고 했다. 날도 많이 덥고 하니 입맛도는 맛난 것 좀 사오라고... 애들 좋아하는 것 좀 많이 사오라고.

엄마와 동생은 시장을 보러 갔고, 그날따라 통닭을 먹고 싶다는 동생의 말에 닭 튀기는 동안 이것 저것 구경하며 돌아다녔다고 한다. 집에 돌아와 아무리 벨을 누르고 두들겨도 문을 열어주질 않았단다. 잠이 깊이 드셨나 싶어 옆 집에 이야기를 하고는 들어가 담을 타넘어 동생이 대문을 열었단다. 현관에 들어서 안방으로 가도 아빠는 안계셨고, 이방 저방 열어봐도 안계셨다. 구두도 그대로 있으니 슬리퍼 신고 요 앞에 담배 사러 나가셨다 싶어, 동생이 화장실에 갔다. 문을 열자마자 동생은 비명을 지르고 자지러졌다. 아빠는 화장실에서 목을 매셨다.

유서는 짧았다. ‘미안하구나, 못난 아빠를 용서해라. 엄마랑 부디 다들 행복해라’


87년 박종철 열사의 고문치사 사건이 공개되면서 학교 안팎이 술렁거렸다. 남영동 치안본부 대공분실에서 ‘탁! 하고 책상을 치니까, 억! 하고 죽었다’고 했다. 숨이 컥 막혔다.

아빠의 죽음 이후 난 학교에 복학을 했고, 반 년간 조직생활을 하지 않고(못하고) 살았었다.  그런데 박종철 열사의 죽음을 접하고 전기충격을 받을 것 같았다.

나는 살아남았고, 박종철 열사는 돌아가셨다.

나는 살아있고, 아빠는 돌아가셨다.

잊고 있던, 아니 잊을 수 없었던, 그러나 깊이 묻어버리고 싶었던 기억들이 치솟아 올랐다.

살아있는 게 너무 비겁하고, 미안했고, 또 부끄러웠다. 죄책감도 들었다.

술을 왕창먹고 대성통곡을 했다.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며 그 동안 틀어막아놓았던 소리를 터뜨렸다.


나 때문이야, 내가 아빠를 죽였어, 아빠가 그날 '차라리 아빠보고 죽으라고 해라' 하고 돌아설 때, 아니야, 아빠, 나 사실 아빠 좋아해, 사랑해... 근데 아빠 속상하게 해서 미안해... 라고 가서 아빠를 안고 이야기를 했더라면,

아니, 세상 모든 고민 혼자 떠 안은 듯 잘난 척, 밖으로만 돌고 심각한 척 하지 말고, 한 마디라도 같이 나눴더라면,

아니, 그날... 내가 술 먹지 말고 그냥 집에 일찍 들어만 갔더라면,

아니야... 내가 그 때 죽었어야 해. 물 고문 받다가 콱 죽어버렸어야 해. 비겁하게 살고 싶어 울며불며 매달리지 말고 그냥 버티다 죽었어야 해.

그러면 아무 일도 안 일어났을지도 모르잖아.

난 원래 죽고 싶어했었어. 늘 죽고 싶다고 해놓고 고작 그 정도도 못견디고 살겠다고 비겁하게, 살려 달라고 구차하게...

내가 죽었어야 해. 내가 죽었어야 한다구...


술집 바닥을 데굴 데굴 구르고 발버둥을 치며 울었다. 그리곤 정신을 잃었는지, 필름이 끊겼는지...

나는 다시 활동을 시작했다. 그 전에 학생운동 안에서 조직 선을 맡았던 언더 팀 선배들은 대부분 구속되었다. 수소문 끝에 써클 선배가 소개를 해주었다. 문화운동단체의 언더 조직을 만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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