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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세에 대한 주인집 아줌마의 항변

지난 번 옥탑방 아저씨의 죽음과 전기세에 대한 민망한 일이 있은 후

담날 저녁 술한잔 마시고 집에 들어가는데 집앞에서 주인집 아주머니와 마주쳤다.

그 아주머니는 나를 보자 대뜸 전기세 받기로 했냐고 물으셨다.

나는 벌컥(술 한 잔 먹은뒤라 다혈질인 내 성질 그대로) 화를 냈다.

무슨 전기세를 받냐고, 아저씨 돌아가셨다는데, 그 이야기를 안해주고 전기세만 받으라하면 어떻게하냐고,

아줌마가 받아주시든지 했어야지, 얼마나 민망했는지 아느냐고,

또, 아무리 딸이라지만, 아주머니 같으면 같이 살지도 않았고, 돌아가신 분 전기세 대신 내고 싶겠냐고

으다다닥... 해댔다.

전기세 안받는다고 했느니 신경쓰지 마시라고...

 

며칠 뒤 아침 출근길에 집앞에 나와 앉아계신 아주머니와 또 마주쳤다.

가볍게 인사를 하고 가는데 부르신다.

"저기..."  괜스리 주변을 살피신다. 그리곤 아주 수줍고 부끄럽게 웃으신다.

볼도 살짝 상기된 느낌이다. "전기세 내가 줄께" 하신다.

나는 "됐어요. 그럴려고 말씀드린 거 아니예요. 그냥 저는 아저씨 돌아가신 줄도 모르고

전기세 받겠다고 전화한 게 너무 민망하고 그래서 그랬어요" 했다.

"아니, 내가 아저씨 돌아가셨다고 이야기 했는데..., 그리고 내가 줄께. 줄건 줘야지"

"아니예요. 됐어요. 신경쓰지 않으셔도 돼요"

 

아주머니가 악의가 있으신 분은 아니고 아주 순박하신 분인건 알고 있었는데

순박하다 못해 뭘 잘 모르시기도 했지만...

기양 내가 술김에 좀 심했다 싶기도 했다.

 

또 며칠이 지났는데 아주머니가 부르신다.

"전기세는 이번 달에 수도세하고 정화조 청소비 나오면 그거 계산하고 나머지 내가 줄께" 하신다.

"아니라니까요... 괜찮아요"

"그게 아니라 나도 사실 그집에서 못받은게 많은데 전기세는 그 딸한테 내가 내라고 했어.

근데 나한테 주라하면 내가 받아놓고 안줬다고 할까봐... 어른이면 모르겠는데 어리더라고.

괜스리 내가 중간에서 떼어먹은 것 같은 오해 받을까봐 직접 주라고 한거야. 

그리고 그 집은 엄마도 있고 아파트도 자기네 거래잖아."

덧붙여 그 아저씨의 사생활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아주 모질게 말씀하신다.

돌아가신 양반을 놓고 별소리 다한다 싶었지만 마땅히 대꾸하기도 그래서 가만히 듣기만 했다.

 

어쨌든 아주머니의 이야기를 듣고 나름대로 그럴 수도 있었겠구나... 싶어서 그냥 알겠다고 했다.

주면 고맙지. 안줘도 그만이고... 싶지만 쫌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아저씨 일찍 돌아가시고 아들하나 키우며 30년을 혼자 사셔서

뭘 잘 모르고, 그저 착하고 순박하기만 한 분이지만

그러다보니 고지곧대로만 생각하시고 이해 못하는 것도 또 많은가보다.

하여간 우여곡절 끝에 서로의 오해는 약간 풀린 것 같다. 

마음은 좀 홀가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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