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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산 일제고사 저지 1인시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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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거부하고 체험학습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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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참 별나다!!

촛불항쟁이후 "운동권이 경직되었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나도 촛불문화제에 참석하면서 " 내가 너무 관성적인가?"라는 자문을 많이 해보았다.

 

나는 운동권이다.

대학때부터 40이된 지금까지 학생운동, 노동운동, 지역운동, 정치운동을  (별로 잘하지는 못하지만) 옆도 보지않고 달려왔다.

 

운동권 활동의 핵심은 조직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요즘 '조직'을 어떻게 해야할지 참으로 난감하다.

 

내가 쓰는말,행동, 겉치레가 너무 운동권적이어서 사람들이 '너 참 별나다'라거나

 

'너 지금 무슨말하고 있는거니?' 하고 있는것을 많이 목격한다.

 

이웃아줌마들로부터 아이학교에서 만나는 엄마들로부터, 오늘 참석한'NIE 교육' 강사들과 교육생들로부터...

 

오늘 아침 이런일이 있었다.

 

요즘 'NIE교육'을 일주일에 한번씩 받고있다.

 

그런데 강사가 중앙일보 연구위원이란다.

 

오늘 강사는 조선일보와 중앙일보신문을 들고와서 교육생들에게 돌아가면서 소리높혀 읽어보란다.

내가읽은 대목 [ 이런 비뚤어진 마음이 유독 심해진 것은 두 말할것 없이 지난 노무현 정권시절이었다. 그시에 우리 사회의 지도층, 그들이 보유한 부, 명예,지위,권위는 그자체로 적개심의 대상이 되었다. 대기업,강남,서울대,조중동등이 모두 타파되어야할 권력이었다.  능력과 성실함으로 부,지위,명예를 얻은 이들에게까지 기득권층, 특권층,수구꼴통, 비윤리적 집단 같은 딱지가 붙여졌다. 그 결과 정당한 성취에 대한 인정과 존중,권위 부여 등 우리 사회를 떠받쳐온 삶의 도덕적 토대가 청저히 부정되었다.  이렇게 형성된 비틀린 사회심리의 저류는 정권교체와 무관하게 거대한 썩은 물처럼 ~~] - 윤석민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 조선일보 51판 10월 8일

 

첨 읽을때도 짜증났고 다시봐도 짜증난다.

 

나는 강사의 교육방법과 기술을 문제제기했고 강사는 심히 기분이 나빴을 것이다.

 

내가 중요하게 생각했던것은 교육생들의 반응이었다.

 

나는 나의 주장을 좀더 합리적이고 재치있게 하고싶었는데 화난감정을 숨기지 못하고  " 이런 신문을 일일히 읽게만드는것에 대해 심히 기분나쁘다"라는 식으로밖에 주장하지 못하였다.

 

말하면서도 짜증났다.

 

강사는 화려한 말로 NIE 기법이니 뭣이니  어려운말을 한참 해댔다.

 

나는 역시 논쟁은 빵점 수준이다.

 

마지막으로도 " 이런걸 읽게 해서 강의시간내내 불편했다'라고 밖에 못했다.

 

교육생들은 나를 별난 사람으로 보는것 같았다.

 

같이간 후배는 나와 같은 생각이었지만 끝까지 웃고있었다.

 

나는 우리동네 통장과도 사이가 좋지 않다.  잘 친하던 이웃언니도 이명박을 찍어줄

 

때부터 서먹서먹 해졌다. 큰아이 선생님도 나를 별난엄마라고 생각한다.(단기방학

 

문제로 옥신각신...) 둘째아이 원장과 선생님들과도 서먹하다(최근 어린이집 입학문

 

제로 의견이 서로 달랐다)

 

나를 좋아하던 동네 할머니들도 요즘 나를 '별난 인간'으로 보기시작한다.

 

이러다 나는 운동권들만 만나면서 살아가게 되는걸까?

 

나는 '고집쟁이'로 늙고싶지 않은뎅... 여유롭고 포용적인 늙은이가 되고싶은뎅.... 

 

사람들이 자꾸 나를 고집불통, 말도 안통하는 사람, 무서운사람으로 보고있는것같아

 

마음이 불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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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산학부모, 이제 평등교육을 말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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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멍난 바지

입고다니는 청바지가 낡아서 구멍이 났다.

찢어진 청바지를 입고다니는 다른 멋진 **들을 생각하면서

구멍난 바지가 멋져보인다.

 

다른 면바지가 낡아서 구멍이 생겼으면..

아마 버렸을 것이다.

찢어진 면바지를 입고다니는 멋진 **들은 보지못했기 때문이다.

 

관습은 만들기 나름이고

생각은 하기 나름이다.

새로운 길도 만들기 나름이다.

 

오늘 내가 낡았지만 찢어진 바지를 입고나갈수 있는것처럼

오늘 나의 활동이 다른이들에게 하나의 길이 될수있었으면..

하는 생각으로

오늘도 물을 거슬러올라가는 연어처럼 살아가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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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스톱

어제 모처럼 사람들이 모여 술한잔하고 판을 벌였다.

내가 한판 치려니까 나를 따라온 영찬이가 심심해 한다.

그래서 영찬이보고 고스톱을 치라고 하고 나는 포카를 쳤다.

 

신나게 치고 마시고 재미있게 놀다가 왔다.

오늘 영찬이가 내게 하는말

 

영찬 : 엄마 설날이 언제야?

 

엄마 : 내년 2월이야,왜 세배돈 빨리 받고 싶어서?

 

영찬 : 아니 그때 고스톱 치자고 했거든, 빨리 왔으면 좋겠네

 

엄마 : 하 하 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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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이주문화제 (안산, 9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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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19일 안산촛불문화제


박성호 원태조 열사의 투쟁은 꽁꽁 얼어붙었던 노태우 군사독재정권의 서슬 시퍼런 공안정국을 뚫고 뜨겁게 타오르는 횃불이 된 것이다.









1980년 강원도 태백 철암고등학교 졸업


1961년 11월 25일 강원도 태백 철암에서 출생

고등학교 졸업 후 국가유공자인 아버지를 대신해 태백 동원탄좌에 입사

탄광노동자의 길을 걷다.


1987년 노동자 대파업투쟁과 88년 故 성완희 열사 투쟁을 보며 노조와 사회현실에 눈을 뜸.


태백의 노동단체에서 주최하는 노동교실에 참가해 학습을 하고 선전물을 챙겨 꼼꼼히 읽어가며 새로운 세상에 대한 꿈을 키우다.


1989년 7월 1일 새로운 세상에 대한 꿈을 안고 고향을 떠나 경기도 안산 반월공단 내 잘나가던 철강파이프 제작회사인 금강공업에 입사.


회사의 동료들을 끌어안으며 노조 결성 준비모임을 주도함.

1990년 8월 10일 노조결성 당시 노조부위원장으로 선출됨.


1990년 8월 30일 전날 밤 회사는 안산의 기관단체장회의에서 노조파괴 계획을 세우고 야밤에 공장기계와 자재를 빼돌림.


이를 저지하기 위한 조합원들은 물론 부인과 자녀까지 동원해 정문 앞에서 밤을 새워 대치를 하였으나 각본에 따라 투입된 공권력의 폭력적 진압에 맞서 투쟁하다 전신 70%의 화상을 입다.


1990년 9월 11일 오후 7시 45분


다시 일어나 자신처럼 어려운 처지에 놓인 노동자들을 위해 싸우겠다는 투쟁의지를  끝내 펼쳐 보지 못하고 한강성심병원에서 운명하다.


열사는 죽어서도 공권력의 만행으로 한 줌 재로 이름 모를 야산에 뿌려지다.

1953년 7월 7일 부산시 동래구 온천동에서  출생


고등학교 졸업 후 배도 타보고 한 때는 방황도 하였으나 결혼 후 인생의 새 출발을 다짐.


1985년 금강공업 김해공장에 입사, 전무의 권유로 이후 안산공장으로 옮김.


노사협의회 위원으로 그리고 노사협의회위원장으로 묵묵히 활동 하였으나 회사의 술책으로 동료들의 불신만 사게 됨.


그러나 노조 결성에 즈음해 그 동안 회사에 속아왔던 자신의 모습을 반성하며 예상되는 회사의 탄압에 온 몸을 던져서라도 맞서겠다는 의지를 불태움.     

마지막으로 자신의 신변을 정리, 부인과 이혼을 함


1990년 8월 10일 노조결성 당시 복지후생부장으로 추대되어 노조활동에 헌신함.


1990년 8월 30일 박성호 열사와 함께 회사 정문 앞에서 포위망을 좁혀오는 공권력에 맞서 신나를 끼얹고 공권력 철수와 기자재 반출 중단을 요구하다 전신80%의 중화상을 입음.


1990년 9월 18일 오전 6시30분


분신 후 자신의 병상을 지켜오던 늙은 모친에게조차 한 마디 말도 남기지 못하고 투병 중이던 한강성심병원에서 한 많은 노동자의 삶을 마치다.


당시 열사의 노모는 한강성심병원을 끝까지 지키며 금강공업노동자 집단 살상 경찰폭력 분쇄 전국공동대책위원회와 함께 투쟁함. 


열사는 현재 부산시 기장군 장안읍 정관면 대정공원묘지에 누워 계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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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된 시간

주말이면 신경질이 난다.

가족이 함께있으면 둘째놈이 나한테만 달라붙는다.

그리고 먹거리를 공급해야하는 처지이다.

 

남편은 아이를 함께본다고 생각하겠지만

나는 아니올시다이다.

 

그래서 어제 오늘(토,일) 공간을 달리하는 독립된 시간을 갖기로 했다.

어제는 2시간, 오늘도 2시간..

 

너무 좋다.

 

앞으로도 집에있지말고 나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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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영화제 안보는 이유

어제 집앞 예술의 전당에서 독립영화제를 상영했다.

서울에서 독립영화제할때 몇번이나 가려고 했는데 시간이 나질않아

못가서 이번에는 맘먹고 갔다.

 

6편의 독립영화를 보는내내 맘이 편칠 못했다.

장애, 이주,성소수자, 청소년을 주제로  10분에서 15분정도의 짧은영화인데

2시간짜리 영화보다 보기 어려웠다.

 

나도 모르게 헐리우드 영화, 사랑영화에 중독이 되었나보다.

찌질이도 못난 우리네 삶을 그대로 옮겨놓은 영화는

참으로 재미도 없고 짜증만 났다.

 

척박한 그들의 삶과 내삶이 분리될수 없기에.........

 

영화를 보면 현실도 잊고 가벼운 흥분도 느끼고 환상도 가질수 있어야하지 않을까???!!!

역시 나는 우리를 중독시키려는 그들에게 중독되었나 보다.

 

어쩐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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