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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의 이론과 현실 혹은 이론같은 현실

  • 등록일
    2009/08/10 15:09
  • 수정일
    2009/08/10 15:09

야구는 이른바 '데이터의 경기'이지만, 세상만사처럼 꼭 그리되진 않는 경우가 많다.

예컨데 이런 식이다.

한 투수가 27명의 타자(3명 X 9회)를 아웃시키기 위한 '최소' 투구수는 몇개일까.

 

답은 '0개'다.

보크를 네번 연속으로 범하면 볼넷으로 타자가 출루하게 되므로 투구수는 '0이다.

그 뒤에 견제구로 출루한 주자를 잡아내면 아웃카운트는 하나 늘어나지만 여전히 투구수는 '0'이 되며, 이 과정을 27번 반복하면 경기가 끝났다는 것.

투수가 포수로부터 공을 넘겨받은 뒤 12초가 넘도록 투구하지 않아도 '볼'이 주어지므로, 보크를 범하기 귀찮은 투수는 이 방법을 택해도 된다. 그냥 계속 공을 쥐고 서있으면 될 일.

다소 황당하지만, 이론상 그렇다는 말이다.

 

[사진] 뉴욕 메츠의 투수 마이크 펠프리. 그는 지난 5월 샌프란시스코와의 경기에 등판해 무려 3개의 보크를 범했다. 한 경기에 3개의 보크를 선언받은 선수는 1994년 알 라이터 이후 펠프리가 처음이었다.

 

그런데 때로는 이론상으로나 가능할 것 같은 일들이 일어나는 곳이 또 그라운드다.

지난 8월8일 Cincinnati Reds와 San Francisco Giants의 경기.

결과적으로 이날 경기는 레즈가 자이언츠를 10대 5로 격파했지만, 이 '5점'이 나게 된 과정이 황당했다.

 

9회초 레즈 공격.
- 9번 타자 드류 서튼, 3루수 앞 번트 안타, 0아웃-주자 1루

- 1번 타자 윌리 타베라스,  투수 앞 희생 번트, 1아웃-주자  2루.
- 2번 타자 알렉스 곤잘레스, 볼넷, 1아웃-주자 1-2루.
- 3번 타자 조이 보토, 볼넷, 1아웃-주자 만루.
- 4번 타자 브랜든 필립스, 볼넷, 1아웃-주자 만루, 1득점
- 5번 타자 스캇 롤렌, 3루수 땅볼 뒤 홈송구를 포수가 놓치며 올 세이프, 1아웃-주자 만루, 1득점
- 6번 타자 블라디미르 발렌틴, 3루수 땅볼 뒤 홍송구가 주자 등에 맞으며 역시 올 세이프, 1아웃-주자 만루, 1득점.

- 7번 타자 랜스 닉스, 투수 폭투, 1아웃 주자 2-3루, 1득점.
- 7번 타자 랜스 닉스, 중견수 희생플라이, 2아웃-주자 2루, 1득점.
- 8번 타자 라이언 해니건, 2루수 땅볼, 3아웃.
 

[사진] 샌프란시스코의 3루수 파블로 산도발. 상대팀인 신신네티가 안타 하나로 5득점을 하는 데에 일등공신 중 하나였다. 몸매와 3루 수비 모두가 이대호를 닮은 이 선수의 별명은 '쿵푸 팬더'로, 원래 포수 출신이지만, 올해 메이저리그로 승격되며 3루 수비를 보고 있다.

 

결과적으로 레즈는 타순이 한바퀴 돌 동안 '3루 앞 번트 안타' 이외에는 단 하나의 안타도 기록하지 못했지만, 무려 5점을 얻어냈다. 외야로 나간 공은 7번 타자 랜스 닉스가 기록한 '희생플라이' 단 하나 뿐이었다.

 

말이 나온 김에 보크에 대해서 좀 더 이야기를 해보자면, 개인적으로 보크야말로 야구의 특성을 가장 잘 드러내는 규칙이 아닐까 한다.

사전적 의미의 보크는 '부정투구로 인한 투수의 반칙행위'를 말한다. 여러가지 경우가 있을 수 있지만 견제동작에서 많이 나타나는데, 한 마디로 하자면 '투구동작에 돌입한 뒤 이를 멈추는 행위'가 대표적이다. 메이저리그에서는 1898년 보크 제도가 처음 도입됐다.

즉 보크는 '상대방을 속인 죄값'인 셈이다. '신사들의 경기'임을 자부하는 야구문화가 만들어 낸 규칙이라고 할 수 있는데, 야구선수복이 불편한 상의 단추와 하의 허리띠를 고집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한다.

보크가 선언되는 대표적인 경우는 아래와 같다.

 

- 투수가 투수판을 밟지 않고 투구에 관련된 동작에 돌입한 경우.

- 투수가 공을 갖지 않고 투구판을 밟거나 걸터섰을 경우.

- 투수가 정규의 투구자세를 취한 후 실제로 투구하거나 루에 송구할 경우를 제외하고, 공에서 한쪽 손을 뗐을 경우,

- 투수판에 축족을 대고 있는 투수가 공을 떨어뜨렸을 경우.

- 투수가 세트 포지션으로부터 투구할 때 완전히 정지하지 않고 투구했을 경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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