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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야구 소사(小史) : 8월19일

  • 등록일
    2009/08/19 16:40
  • 수정일
    2009/08/19 16:40

= 최단신 프로야구 선수

 

- 오늘로부터 58년 전인 1951년 8월19일, 세인트 루이스 브라운스(St.Louis Browns)와 디트로이트 타이거즈(Detroit Tigers)의 경기가 열렸다. 1회말 공격에 나선 브라운스는 선수교체를 요청한 뒤, 1미터 9센티미터 체중 30킬로그램의 에디 게이델(Eddie Gaedel)을 대타로 내보냈다. 서커스단의 ‘난장이’였던 26살 청년 게이델은 ‘1/8’을 등번호로 달고 대타로 나와 당시 최고의 스타 중 한명인 조 디마지오의 타격폼을 흉내내며 타석에 섰다. 디트로이트 포수 밥 스위프트(Bob Swift)는 계속해서 낮은 공을 요구했지만, 투수 밥 케인(Bob Cain)은 그렇게 좁은 스트라이코 존 안으로 공을 집어넣을 재간이 없었다. 게이델은 결국 연속으로 볼 네 개를 얻어 출루한 뒤 대주자와 다시 교체됐다.

 

[사진] 1951년 8월19일 타석에 들어선 게이델. 스트라이크존이 말 그대로 '김 한장'이다.

 

- 상대팀인 디트로이트는 ‘게이델은 부정선수’라며 항의했다. 이에 대해 세인트 루이스는 경기 당일 ‘연봉 1백달러’에 게이델과 정식 계약을 맺었다고 밝혔고, 이는 사실이었다. 경기 이틀 뒤인 8월21일, 아메리칸리그 사무국은 게이델이 맺은 계약을 무효화했다. 결국 게이델은 한 타석에 들어선 대가로 1백달러를 번 셈.

 

- 이 해프닝은 세인트 루이스의 구단주 빌 빅(Bill Veeck)의 아이디어였다. 당시 유료관중 감소에 따라 경영난을 겪고 있던 빌 빅은 관중동원과 함께 아메리칸리그 창단 5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깜짝 행사로 이를 기획했다고 한다. 빅은 게이델을 존재를 알리지 않기 위해 클럽하우스로 데려올 때에도 큰 나무상자에 숨겨 담아왔다. 빅은 훗날 자서전을 통해 “경기 시작 전 게이델에게 몇 시간에 걸쳐 타격자세를 가르친 뒤, ‘타석에 서면 절대로 스윙을 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고 밝혔다.

 

[사진] '게이델 사건'의 주역 빌 빅. 호방하다, 호방해.

 

- 빌 빅은 ‘흥행의 대가’라 불릴만 했다. 아버지 윌리엄 빅(William Veeck)이 작고한 뒤 아버지 소유 프로야구단인 시카고 컵스 경영에 참가한 빅은 지금까지도 야구장 최고의 명물 중 하나로 자리 잡은 리글리 필드 외야벽의 담쟁이 넝쿨을 기르도록 한 장본인이다. 야구장에 파이프 오르간을 들여와 응원 때 연주토록 한 것도 빌 빅이며, 관중에게 나눠주는 사은품이나 유니폼에 이름을 세겨넣는 것도 빌 빅이 그 시초다. 1947년 클리블랜드 단장 시절에는 당시 주류를 이루고 있던 인종차별주의자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아메리칸리그 최초로 흑인 선수 래리 도비(Larry Doby)를 영입하기도 했다. 이후 래리 도비는 미국 야구사상 최초로 월드시리즈에서 홈런을 기록한 흑인선수가 됐다.

 

[사진] 시카고 컵스의 홈구장인 리글리 필드의 명물 담쟁이넝쿨. 외야 벽 전체를 수놓은 이 담쟁이 덕분에 리글리필드는 지금도 '가장 아름다운 야구장'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 게이델은 ‘깜짝 등장’ 이후 전국적으로 유명세를 타며 일약 스타덤에 올랐지만, 1961년 술집에서 싸움이 붙어 구타를 당해 사망했다. 그의 유니폼은 명예의 전당에 전시돼 있다.

 


= 황당한 퇴장 이유

 

- 1941년 8월19일, 피츠버그와 브룩클린의 더블헤더 2차전 경기. 피츠버그 파이러츠(Pittsburgh Pirates)의 감독 프랭클린 프리시(Frankie Frisch)가 주심으로부터 퇴장명령을 받는다. 퇴장 이유는 ‘경기장에 우산을 쓰고 나타났다’는 것.

 

- 프리시 감독은 비가 와 엉망이 돼버린 구장에서 경기를 강행하는 주심에 항의하기 위해 우산을 들고 나오는 ‘퍼포먼스’를 감행했고, 이를 자신에 대한 조롱으로 받아들인 심판이 퇴장을 명하게 된 것이다. 이 논쟁은 8년 뒤인 1949년 유명 화가 노만 록웰(Norman Rockwell)에 의해 그림으로 재현됐으며, 이 그림 역시 명예의 전당에 전시돼 있다고 한다.

 

[그림] 프리시 감독의 퇴장사건을 모티브로 노만 록웰이 그린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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