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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야구 소사(小史) : 8월17일

  • 등록일
    2009/08/17 18:03
  • 수정일
    2009/08/17 18:03

 

- 지금으로부터 109년 전인 1900년 8월17일, 신신네티 레즈의 투수 빌 필립스는 필라델피아 필리스와의 경기에서 8회 필리스의 외야수 로이 토마스를 상대로 빈볼을 던져 퇴장당했다. 빈볼에 이은 퇴장이야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나, 문제는 필립스가 빈볼을 던지게 된 이유다. 필립스는 토마스가 자신의 공 12개를 파울로 커트하자 짜증이 치밀어 올라 그만 몸을 맞추고 만 것.

 

[사진] 12개째 파울을 맞고 차라리 몸을 맞춰버린 빌 필립스 투수. 난 그를 이해한다.

 

- 구타유발자 로이 토마스는 명예의 전당에 오른 선수도 아니며, 특출한 기록을 보유한 선수도 아니다. 하지만 그의 선구안 하나는 끝내줬다. 데뷔 첫 해인 1899년 115개의 볼넷으로 내셔널리그 볼넷 부분 2위에 오른 것을 시작으로, 1900년부터 1907년까지 8년 동안 무려 7번이나 '볼넷왕'에 올랐다. 토마스는 뛰어난 선구안을 바탕으로 1900년 .451의 출루율(리그 2위)을 기록하며, 그해 득점 1위(132점)도 마크했다. 당시 득점 2위였던 필라델피아의 지미 슬래글(115점)과의 격차도 17점에 이르렀으며, 볼넷 2위였던 빌리 해밀턴(107개)과의 차이는 8개였다. 특히 그의 득점능력은 매우 뛰어났다고 볼 수 있는데, 2위인 슬래글과 10위 지미 콜린스와의 득점 차이가 불과 11점에 불과한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사진] 구타유발자 로이 토마스. 아마도 그를 기억하지 못하는 야구팬이 훨씬 더 많겠지만, 내가 스카우터라면 이런 선수부터 뽑고 볼 것이다.

 

- 이 해 로이 토마스는 모두 15개의 몸에 맞는 공을 기록하며 이 부문 리그 공동 6위에 랭크됐다. 이 부문 1위는 세인트루이스의 댄 맥간(24개).

 

- 알렉산더 카트라이트가 처음 만든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 1845년 야구규칙에 따르면,  당시 투수의 역할은 타자가 쉽게 치지 못하도록 던지는 지금과 달리, 타자가 치기 쉬운 공을 던져주는 것이었다. 따라서 속도가 빨라지는 오버핸드 투구는 불법이었으며, 오직 언더핸드로만 던지도록 했다. 당시 타자들은 투수에게 자기가 치기 좋은 특정한 곳으로 던져줄 것을 요구할 권리도 있었다.

 

- 문제는 치기 좋은 공도 타자가 치지 않을 경우였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타자가 치라고 준 공을 세 번 헛스윙하면 아웃'이라는 규정이 만들어 졌다. 그렇다면, 만일 투수가 '치기 좋지 않은 공'만 뿌려댄다면?

 

- 이를 위해 프로야구는 1871년 만일 투수가 치기 좋지 않은 공을 아홉 번 줄 경우에는 1루 진루를 허용하는 규칙을 채택했으며, 이후 진루에 필요한 볼의 숫자는 시간이 갈수록 줄어들기 시작했다. 1880년에는 '볼 여덟'이 됐고, 이후 일곱개(1882년), 여섯개(1884년), 다시 일곱개(1886년), 다섯개(1887년)을 거쳐 1889년 비로소 지금과 같은 '볼넷'이 됐다. '치기 좋은 공'과 '치기 어려운 공'을 구분하기 위해 '스트라이크 존'이 생겨난 것은 1887년에 이르러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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