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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야구 소사(小史) : 9월1일

  • 등록일
    2009/09/01 19:37
  • 수정일
    2009/09/01 19:37

= 볼드윈 ‘제3자 개입’ 체포사건

 

- 오늘로부터 117년 전인 1892년 9월1일, 파이러츠(Pirates)의 투수 마크 볼드윈(Mark Baldwin)은 팬실베니아주 홈스테드에 있는 그의 자택에서 긴급 체포됐다. 체포이유는 그가 당시 미국을 뒤흔들었던 홈스테드 철강파업의 공범이라는 혐의에 따른 것이었다. 볼드윈은 2천 달러의 보석금을 내고 석방된 뒤 자신은 주동자가 아닌 단지 구경꾼이었음을 주장했고, 오래지 않아 다시 팀에 복귀해 26승 27패로 시즌을 마쳤다.

 

[사진] 홈스테드 철강소 파업주동 혐의로 긴급체포 당했던 볼드윈 선수. 따지고 보면 제3자 개입으로 잡혀간 셈이다.

 

- 홈스테드 철강파업은 미국 노동운동사에서 매우 유명한 사건이다. 카네기는 1872년 미국 최대규모의 홈스테드 철강소를 세운 뒤, 4,000여명의 비숙련 노동자를 고용해 하루 12시간 씩 노동을 강요했다. 그 대가로 지불한 임금은 고작 주당 9달러였다. 1892년 임금삭감과 노조불인정, 공장폐업 시도가 이어지자 800여명의 조합원과 3,000여명의 비숙련공 노동자들이 연대해 파업에 돌입했다. 4개월 동안 이어진 이 파업은 카네기 자본과 주정부에 의해 무자비하게 진압됐는데, 이 과정에서 노동자 10여명이 숨지고 수백명이 부상을 당했다고 한다. 파업 뒤 홈스테드 철강소에서 8시간 노동제는 사라졌으며, 다시 12시간 맞교대제가 도입됐다.

 

[사진] 홈스테드 철강노동자 파업 당시의 충돌장면을 찍은 사진. 지금으로 보면 정규직-비정규직 관계와 유사한 숙련공과 비숙련공이 함께 한 이 파업에서 10여명의 노동자가 사망했다. 4개월의 투쟁 끝에 노조는 사실상 파괴됐으며, 8시간 노동제는 사라지고 12시간 맞교대가 다시 실시됐다. 


 

= 찰리 존스 임금체불과 블랙리스트

 

- 1880년 9월1일, 보스턴 레드 캡스(Boston Red Caps) 구단은 ‘경기출장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외야수 찰리 존스(Charley Jones)를 제명하고, 블랙리스트에 등재했다. 존스는 이에 앞서 보스턴 구단이 자신의 임금 378달러를 체불한 것을 폭로하고, 소송을 제기하며 “체불임금이 지급되기 전에는 그라운드에 서지 않겠다”고 밝혔었다.

 

- 불행히도, 법정의 배심원들은 구단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자 보스턴 구단이 이에 대한 보복으로 제명과 1881년부터 1882년까지 블랙리스트 등재를 발표한 것. 이것으로도 모자라 보스턴 구단이 속해있던 내셔널리그(National League) 구단주들은 1881년 12월 열린 연례회의에서 존스의 복권을 부결했다.

 

[사진] 임금체불에 블랙리스트 등재까지 당한 불운의 야구선수 찰리 존스.

 

- 하지만 존스는 1882년 다시 선수생활을 시작할 수 있었는데, 새로 창설된 아메리칸 어소시에이션(American Association)가 경쟁관계였던 내셔널리그의 블랙리스트를 무시하겠다는 방침을 발표하며 신신내티 레드 스타킹스(Cincinnati Red Stockings)와 계약했기 때문이다. 존스는 1883년 신신내티 소속으로 10개의 홈런을 때려내며(당시 홈런 1위는 14개) 화려하게 재기했다.

 

- 특이하게도, 존스의 사망과 관련한 기록은 아무 곳에서도 찾을 수 없다. 다만 만일 그가 생존해 있다면 150살이 넘었을 것이기에, 사람들은 그가 사망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을 뿐이다.

 


= 이건 뭐 동네야구도 아니고...

 

- 1906년 9월 1일 시카고 컵스(Chicago Cubs)와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St.Louis Cardinals)의 경기에서 황당한 일이 벌어진다. 심판 2명이 경기 직전 식중독에 걸려 드러눕자, 컵스의 칼 룬드그렌(Carl Lundgren) 투수와 카디널스의 피트 누난(Pete Noonan) 포수가 각각 심판으로 출장한 것.

 

[사진] 심판이 식중독에 걸려 대신 심판으로 나서야 했던 룬드그렌. 팀 동료에게 아웃을 선언해야 하는 그 마음이 얼마나 아팠을까. 그의 마음을 떠올리는 내가 다 눈물이 날 지경이다.

 

- 이날 경기에서 컵스는 장애로 손가락 세 개만을 가진 투수 모데카이 브라운(Mordecai Brown)의 호투를 앞세워 8대 1로 승리하며 14연승을 이어갔다. 하지만 컵스는 룬드그렌이 다시 심판으로 나선 다음날 경기에서 5대 2로 패하며 연승행진을 멈췄다.

 


= 폭투의 제왕

 

- 1886년 9월 1일, 에드 크레인(Ed Crane) 투수는 한 경기에서 14개의 볼넷과 5개의 폭투를 기록하며 15대 2 대패를 당했다.

 

- 1884년 타자로 데뷔한 크레인은 12개의 홈런을 기록하며 이 부문 리그 2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그러나 1886년 극도의 타격부진에 빠지며 투수로 전업했지만, 이 해에 그는 투수로서도 리그 최악의 수준이었다. 크레인은 1886년 뉴욕 자이언츠(New York Giants)에서 투수로 선수생활을 다시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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