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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의 탐구

형은 좀 별난 구석이 있었다.

그러니까 보통의 그 나이 또래의 다른 사람들이랑은 무언가 달라보였다.

가끔 비가오는날 형을 마중나가거나 형이 빌려놓은 책을 반납하러 도서관에 갈때면 형의 친구들을 만나곤 했는데 그들은 항상 TV에서 볼수 있는 여느 고등학생들의 모습과 다를게 없었다. 어쩌면 형을 많이 안다고 생각해서 더욱 그렇게 보려고 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형이 빌리는 책들을 무심코 들여다 볼때면 정말 이 사람이 별나구나 하고 확신하게 되버리는 것은 어쩔수 없었다.

 

형은 악보를 빌려봤다. 처음에는 베토벤이니 쇼팽이니 하는 유명한 음악가의 악보를 빌려보다가 점점 내가 알지 못하는 어느 작곡가의 악보를 빌려왔다. 이상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은 당장 우리집에는 피아노한대 없었을 뿐 아니라 그 흔한 오디오도 없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그저 음악에 관심이 많나보다 하고 말았지만 

악보는 연주를 하기 위해 존재한다는 상식아닌 상식을 지니고 있는 나로서는 도통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하루는 도저히 궁금해서 참을 수 없는 나머지 형에게 왜 악보를 빌려보냐고 물었다.

그러자 이제 중학교에 갓 들어간 어린 동생이 이해할 수 있는 대답을 찾는 표정을 한껏 짓더니 곧 수더분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감정을 알고싶어서 그래"

나는 더이상 물어볼 수 없었다. 일단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지 알 수 없었던 것도 있지만 그것보다 형히 나를 놀리려는 수작이 분명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사실 정말 악보를 보는지도 의심스러웠다. 형은 항상 학교가 끝나면 도서관에 들렸다가 밤늦게 집에 돌아왔다. 한번은 큰아들이 거짓말을 하고 다니는 것은 아닌지 못된 애들의 꼬임에 빠져다니는 것은 아닌지 걱정만 하던 어머니가 나를 도서관에 보내 형이 뭐하는지 보고 오라고 한적이 있었다. 나도 사실 되게 궁금했던터인데다 뭔가 첩보영화의 주인공이 되는 것 같아서 무척 흥분한채로 도서관에 잠입 했었다.

도서관에 들어가자마자 형을 만나서 약간 김이 새버리긴 했지만 도서관 근처 숲속 벤치에 앉아 형이랑 대화를 나누게 된 것은 기분 좋은 일이었다. 

 

형과 같이 초등학교를 다닐때는 여름에 물놀이도 같이 하고 동네애들과 어울리기도 하고 피시방에서 같이 게임을 하기도 했다. 형이 중학교에 들어갈때만 해도 그렇게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다만 시험준비를 해야한다며 정해진 시간동안만 게임을 하는 것과 하루 이틀씩 도서관을 들른다는 것을 빼고는 크게 변한 것은 없었다.  교복을 입고 머리를 자른 것은 그다지 낯설게 없었다. 성기 주변에 털이 나기 시작한 형이 징그러워지기는 했지만 나도 언젠가 저럴 것이라는 것을 알았기에 그저 신기하게만 생각했다.

평범하다면 평범한 어느 남학생이라고만 생각했던 형이 별나게 다가온 것은  고등학교에 들어가면서 부터였다. 형은 말수가 급격히 적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표정이 어두워진 것은 아니었다. 어쩌면 그것이 형을 더욱 이상하게 보이게 했는지도 모른다. 원래 형은 잘 웃었다. 그런데 고등학교에 입학하고나서는 점점 웃기만 할뿐 말은 잘 하지 않으려 했다. 답답한건 부모님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특별히 비행을 저지르는 것도 아닌데다가 학교성적도 우수했기에 그저 사춘기겠거니 생각하셨다. 그렇게 서로 말이 없이 지내던 차에 형이 말을 건낸것이 내심 반가웠다.

 

도서관은 참 좋은 곳이다. 나는 여러모로 형을 통해 많은 것들을 알게 됐지만 도서관에 익숙해진 것 만큼 고마운 것도 없다. 형과 멀어지는 것만 같았던 나는 주말이면 뭐 시킬일 없냐는 듯이 형 주위를 맴돌곤 했다. 처음에는 그저 웃기만 하던 형이 예의 그 수더분한 목소리로 책을 대신 반납해줄수 있냐며 나에게 부탁을 했다. 형은 주말엔 TV를 보거나 컴퓨터만 하던지라 빌린 책의 반납일이 주말일때면 책만 반납하러 도서관에 갔다 오곤 했다.  그게 귀찮았던 것인지 아니면 나의 어리광을 받아주려고 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나는 주말이면 도서관에 자주 가게 되었다. 그리고 본의 아니게 오랜 시간동안 있다 오곤 했다. 

 

"엄마가 가보래?"

형이 벤치에 앉으며 물었다. 나는 그저 고개만 끄덕였다. 몰래 갔다오라던 어머니의 임무를 져버린 듯한 생각에, 아니면 오자마자 들켜버린 나의 허술함이 민망했는지 말이 잘 나오지 않았다. 

"학교는 다닐만 해?"

나는 또 고개로 대답했다. 그리고 기분이 나빠지기 시작했다. 형은 나에 대해 별로 궁금한게 없는 것 같았다. 학생들을 대상으로 누구나 할 수 있는 질문이라고 생각했다. 

"실은 말이야...."

내 생각을 읽기라도 했는지 형은 갑자기 미간을 찌푸리며 별로 본적 없는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엄마한테는 비밀이다."

나는 얼른 고개를 위아래로 흔들었다.  기분도 금새 좋아졌다. 형제들끼리 공유하는 비밀. 나는 약간 떨리기 시작했다. 

"실은 말이야 책을 쓰고 있어"

나는 그제서야 형의 눈을 정면으로 바라봤다. 

"무슨 책?"

"음 그건 아직 말해줄 수 없어"

"왜?"

"아직 다 못썼거든"

"소설이야?"

"아니 소설이라고 보기는 힘든 것 같다."

"악보야?"

형은 갑자기 크게 웃기 시작했다. 맨날 악보만 보는 것 같아서 그렇게 물었는데 마치 황당한 질문을 듣기라도 한 것처럼 웃는 것 같아  나는 또 기분이 나빠졌다.

"악보는 좋은 책이지만 내가 쓸수 있는 그런 건 아니야"

"그럼 뭐야?"

"말했잖아 아직 말해줄 수 없다고"

나는 스무고개따위를 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별로 궁금하지도 않았다. 책을 쓰는 지도 몰랐던데다가 내가 원한건 그 나이 또래 남자들이 나누는 그렇고 그런 수다였다. 좋아하는 여학생까지는 아니더라도 요즘 재밌는 게임이라든가 몰래봤던 야동이라든가 그것도 아니면 성적에 대한 고민 혹은 진로에 대한 조언같은 것을 원했다. 

"조만간 알게 될거야"

나는 멍하니 앞의 나무들만 바라봤다. 그리고 잠시 말이 없는 순간이 지나고 형이 이제 돌아가라며 나를 도서관 정문까지 바래다 주었다. 

 

그날 이후 나는 형이 뭘하든 별로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형이 미워진것은 아니었지만 내가 궁금하다고 해서 말해줄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한 이후로는 형에게 다가가거나 말을 건네는 일이 없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형이 쓴다는 그 책에 대한 생각도 가물가물해져갔다. 

 

형은 고3이 되고 몇달 안되서 자살했다. 그리고 다시 몇달후 형의 방을 정리하던 나는 두꺼운 노란색 표지의 노트를 발견했다. 형에게 물어볼 수 없으니 확신할 수 없었지만 아마 그 노트가 형이 쓴다던 그 책인 것 같았다. 왜냐하면 다른 노트랑 다르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노트에는 제목이 있었다. 

 

[감정의 탐구] 

 

나는 형이 조만간 들어오기라도 할 것인 마냥 조심스레 표지를 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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