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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9/05/25
    맞지 않는 옷
    kirehiais
  2. 2009/05/23
    뻔뻔하지 못한 사람
    kirehiais
  3. 2009/05/20
    맘에 드는 사람
    kirehiais
  4. 2009/05/15
    바람과 나
    kirehiais
  5. 2009/05/13
    황구라에게 (1)
    kirehiais
  6. 2009/05/11
    흉내쟁이
    kirehiais
  7. 2009/05/04
    염세의 마왕
    kirehiais

맞지 않는 옷

옷장을 열었다.

 

검은 내가 서있다.

 

옷이 맞지 않는다.

 

 

이상하다.

 

난 더이상 자라지 않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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뻔뻔하지 못한 사람

뻔뻔함이란 적어도 이런게 아닐까?

 

대통령직을 그만두는게 너무 싫어 헌법을 유린하거나

 

자신의 권력을 위해서라면 시민을 살해하는 것조차도 당연한 일이고

 

선거에 당선되기 위해서라면 정치적 소신 따위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것이며

 

시민들에 의해 물러나는 것조차도 민주주의의 발전이라는 수사를 다는 따위들

 

 

전직 대통령이 죽었다는 사실이 황당함으로 다가오는 것이 씁쓸하기만 하다.

 

 

내가 알고 지내는  소위 진보적인 지식인이라 일컬어 지는 어떤 교수는 노무현을 싫어하고 배신감을 느낀다고 했다. (물론 죽기전에 일이지만) 

 

마치 그런 개량적인 정치인에 낚였던 자기자신에 대한 분노 쯤이라고 생각할때쯤

 

오바마 당선에 미소를 지으며 '이제 됐다' 그러더라

 

대체 뭐가 됐는지 모르겠지만 여튼 한번 낚였던 사람은 계속 낚이는 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어 주더라

 

 

 

대통령하나가 바꼈다고 바뀔 세상이었으면 옛저녁에 바뀌었겠지, 그리고 그것은 정당정치에도 해당된다.

 

 

권력이라는 것이 워낙 허무한 것이라 언젠가는 뒤바뀌고 교체되는 것인데 

 

마치 이번에는 절대 놓치지 않겠다는 듯이 발악하고 있는 이명박을 바라보고

 

내 사타구니까지 와닿을 정도로 가까워진 그의 정책들이 새로운 상식틀을 만들고 있는 요즘

 

 

이제 이상한 시민이 되어가는 듯한 느낌을 떨치기 어려울때 쯤

  

결국 자살한 대통령을 마주하게 됐다.

 

 

 

죽음을 택하기전 노무현에 대한 내 느낌은 뻔뻔함이었는데

 

적어도 뻔뻔하지는 못한 사람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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맘에 드는 사람

주는 것 없이 미운 사람

 

누군가가 나에게, 내가 누군가에게

 

 

삶이 연장될수록 늘어난다.

 

 

실망을 안겨주는 사람

 

믿었던 누군가가, 믿음받던 내가

 

 

말이 많아지면 늘어난다.

 

 

언제나 맘에 드는 사람

 

바라는 누군가를, 내가 원하는

 

 

지나칠때만 늘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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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과 나

 

김광석을 처음본건 중학교 2학년 때였다.

 

당시 제주대학교에서는 해마다 가요제를 열었는데

 

그 가요제(아라가요제) 초대가수가 바로 김광석이었다.

 

친하게 지내던 친구가 김광석을 무척 좋아했다.

 

나는 녀석이 빌려준 시디와 테이프로 몇 번 들었지만 그렇게 좋아할 정도는 아니었다.

 

어쨌든 대학교 축제도 구경할 겸 놈을 따라서 가요제를 보러 갔다.

 

 

 

당시(1994년)만 해도 운동권 문화가 전반적이었던 터라 여기저기 걸린 구호들이며 낙서들이

 

신기하게 다가왔고 친누나 형없이 자란 나에게 대학생들의 모습과 행동들은 유별난 열정으로 보였다.

 

가요제가 끝나고 초대가수인 김광석이 무대에 앉아 기타를 잡자 공연장은 정말 엄청난 환호로 가득했고

 

나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그의 노래를 지켜봤다.

 

그냥... 그랬다. 대단한 호응에 대한 반감이 들었는지 그렇게 좋은 노래와 가수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저 누나 형들이 이런걸 좋아하고 대학생들은 이런 분위기를 즐겨야 하는 것으로 나름 합리화 했다.

 

그래야 이 세계에서 이방인이 안 될 것 같았다. 아니 그냥 친구가 좋아하니까 그랬는지 모른다.

 

 

 

그리고 김광석 3집을 다시 듣게 되었다.

 

 

 

무언가를 좋아하게 되는 것은 필연이 아니라 우연이다.

 

아니 좋아하는 마음은 항상 우연을 기다린다.

 

 

 

유명한 노래는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애당초 그랬는지 모른다. 김광석도 그의 노래를 듣는 사람들도

 

그래서 나 또한 그랬는지 모른다.

 

그때 이후로 난 항상 김광석 노래 테이프를 미니카셋트에 꼽고 다녔다. 처음으로 빨리 감기 없이 누군가의 앨범을 들었다.

 

 

 

그리고 여름에 4집 앨범이 나왔다.

 

 

 

방과 후 버스를 탔다. 집에서 두정거장 정도 되는 곳에서 내렸다. 아직 노래가 끝나지 않았다.

 

귀에서 이어폰을 때고 싶지 않았다.

 

그날 이후 한 번도 다시 그래 본적은 없다.

 

 

 

 

대학로 1000회 기념 콘서트가 진행됐다. 전국 순회공연이었다.

 

제주도에 내려온 김광석을 보는 것은 이제 당연한 일이 되어있었다.

 

그게 마지막 모습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이런 이야기를 했다.

 

 "서울에 대학로에 학전 블루라는 조그만 소극장이 있습니다. 여기 보다 많이 작죠. 사람들도 많이 오지 않아요. 그래서 항상 공연이 끝나면 뒤풀이를 합니다. 관객들과 함께 말이죠. 그냥 재밌어요. 여러분들도 서울에 오시면 꼭 한번 오세요."

 

대학로? 학전 블루? 소극장? 뒤풀이? 생경한 단어들이 스쳐지나 갔지만 하나도 잊지 않고 꼭 기억했다.

 

'3년 뒤에 대학이라는 곳에 가게 되면 꼭 서울에 있는 대학에 가리라, 그리고 대학로라는 곳에 가서 학전 블루라는 소극장을 찾고 공연을 보고 뒤풀이도 할 것이다. 뒤풀이가 뭘진 모르지만.......'

 

 

 

어머니가 책장을 옮기 자고 하셨을 때 난 귀찮은 맘에 투덜댔다. 한번 옮길 생각을 하시면 기어코 옮기시기에 더 이기지 못하고 어머니를 도와 그 큰 책장을 들으려고 할 때 옮겨 놀 그 자리에 김광석 공연 포스터가 붙여져 있는 것을 봤다.

 

지금도 그렇지만 붙여논것을 때려고만 하면 꼭 찢어 논다.

 

그때도 그랬다.

 

생각보다 많이 찢어진 터라 다시 새로 구할 생각에 그냥 버렸다.

 

나한테 화가 나선지 마구 구겼던 기억이 난다.

 

 

 

 

다음날 일 나가신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아들이 좋아하는 가수의 죽음이 당신에게도 이슈였다.

 

왜 그렇게 울었는지 모른다.

 

 

 

 

서울에 대학도 오고 학전블루에도 가보고 대학로도 누비고 다녔다.

 

모든 게 다 내 뜻대로 됐다.

 

내 의지가 관여할 수 없는 것만 빼고

 

 

 

 

88학번 선배와 술자리를 갖고서 여지없이 또 노래방으로 다들 향했다.

 

당시가 1999년이니까 그 분은 32살쯤 됐을 것이다.

 

32살....정말 웃기지도 않는다.

 

그때는 왜 그렇게 30대가 거대해 보였는지

 

그분 스스로도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았다.

 

술자리에서 대학 때 무용담을 끊임없이 늘어놓더니

 

나를 보며 격세지감을 느끼는 듯 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는 연신 시절이 좋아졌다는 얘기를 허무한 톤과 염세적인 수사로

 

치장하며 늘어놓고 있었다.

 

 

 

 

김광석 노래만 부르기에 나도 왠지 용기가 나서(노래방에서 잘 부르지 않았다.)

 

답가랍시고(사실 이렇게 마음가짐을 가진 것부터가 문제였다.)

 

한 곡 불렀다.

 

나를 째려보더라.

 

 

 

96학번 선배누나가 나를 끌고 나왔다.

 

내 마음을 이해한댔다. 그리고 그 선배를 이해해달란다.

 

잘 기억은 안 나지만 나도 이해하는 척을 했다. 아니 그렇게 됐다.

 

그때 이후로 습관처럼 그렇게 돼버렸다.

 

 

 

 

몹쓸 생각이 머리에 붙었다.

 

김광석 노래를 잘 안 부르겠다고 그러니 니네들도 어설프게 부르지 말라고

 

짜증나니까

 

 

 

군대를 가고 대학에 복학하고 선배들은 사라졌다. 난 어느새 고학번 선배가 됐다.

 

김광석 노래를 부를 일도 부르는 사람들도 없어져 갔다.

 

후배들과 되도 안 되는 이야기들로 감정적인 싸움만 되풀이 하고 있었다.

 

난 그래도 내가 부끄럽진 않았다.

 

적어도 그렇게 믿고 싶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영상을 하게 됐다.  

 

처음 만져보는 카메라와 편집프로그램이 낯설고 미디어 운동과 교육이란 영역에 대한 이해도도 많이 부족했다.

 

그리고 새로운 사람들도 알게 됐다.

 

김광석 얘기를 하는 것이 좋았다.

 

그리고 나의 몹쓸 생각을 자랑스럽게 이야기하고 다녔다.

 

하지만 이내 핀잔을 받거나 진지한 문제의식을 마주해야 했다.

 

나는 아마 나를 이해해 줄 거라는 환상에 사로잡혔는지 모른다.

 

아니 김광석에 대한 나의 오만함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런 유아적인 감정이 나의 행동의 대부분을 지배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집착은 사람을 독선으로 이끈다. 독선은 아집으로 통하고 아집은 이성을 갉아 먹는다.

 

갉아 먹힌 이성은 착각을 불러오고 착각은 환상을 일으킨다.

 

그러다 결국 현실에서 멀어진다.

 

 

 

 

 

지금은 많은 것들이 변했다. 김광석 노래를 부르는 것도 가벼운 일이 되었다.

 

자주 있는 일은 아니지만 누군가가 부르는 것을 보는 것도 이젠 익숙해졌다.

 

요즘도 혼자 있을 때면 그런 생각을 한다. 김광석이 살아있었다면 어땠을까?

 

정말 뒤풀이 하러 갔을까? 친해질 수 있었을까? 인정받기위해서 바동거리지 않았을까?

 

뭐가 됐던 가장 끝자리에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지고 같은 가수를 좋아하는 사람들과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했을 것이다.

 

그랬다면 이렇게 바보 같은 반성을 하지도 않았을 것이고

 

허황된 감정에 휩쓸릴 일도 없었을 것이다.  

 

 

 

 

하하하, 그랬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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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구라에게

어느날 고궁을 나오면서

                                        김수영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

저 왕궁 대신에 왕궁의 음탕 대신에

50원짜리 갈비가 기름덩어리만 나왔다고 분개하고

옹졸하게 분개하고 설렁탕집 돼지 같은 주인년한테 욕을 하고

옹졸하게 욕을 하고


한번 정정당당하게

붙잡혀간 소설가를 위해서

언론의 자유를 요구하고 월남파병에 반대하고

자유를 이행하지 못하고

20원을 받으러 세번씩 네번씩

찾아오는 야경꾼들만 증오하고 있는가.


옹졸한 나의 전통은 유구하고 이제 내 앞에 정서로

가로놓여있다

이를테면 이런 일이 있었다.

부산에 포로수용소의 제14야전병원에 있을 때

정보원이 너어스들과 스폰지를 만들고 거즈를

개키고 있는 나를 보고 포로경찰이 되지 않는다고

남자가 뭐 이런 일을 하고 있느냐고 놀린 일이 있었다.

너어스들 옆에서


지금도 내가 반항하고 있는 것은 이 스폰지 만들기와

거즈 접고 있는 일과 조금도 다름없다

개의 울음소리를 듣고 그 비명에 지고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애놈의 투정에 진다

떨어지는 은행나무잎도 내가 밟고 가는 가시밭


아무래도 나는 비켜서있다 절정 위에는 서있지

않고 암만해도 조금쯤 옆으로 비켜서있다

그리고 조금쯤 옆에 서있는 것이 조금쯤

비겁한 것이라고 알고 있다!


그러니까 이렇게 옹졸하게 반항한다.

이발쟁이에게

땅주인에게는 못하고 이발쟁이에게

구청직원에게는 못하고 동회직원에게도 못하고

야경꾼에게 20원 때문에 10원 때문에 1원 때문에

우습지 않으냐 1원 때문에


모래야 나는 얼마큼 적으냐

바람아 먼지야 풀아 나는 얼마큼 적으냐

정말 얼마큼 적으냐.......

 

김수영.... 그의 시를 볼때마다 느낀다.

나는 너무 가볍게 살지 않나?

나는 너무 함부로 글을 쓰지 않나?

나는 너무 쉽게 생각하지 않나?

 

 

구라쟁이들이 넘치는 문학계야

반성하는 척 하지마라.

적어도 반성이란 이런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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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내쟁이

롤플레잉게임의 고전 파이날 판타지 시리즈

 

스퀘어(제작사)의 효자 상품으로 영화로도 제작될 정도로 유명해진 이 게임은

 

현재 13탄 이 플스 3로 나올 정도로 꾸준히 인기를 끌고 있는 타이틀이다.

 

 

하지만 모든 시리즈가 다 극찬을 받은 것은 아니다. 골수의 팬층이 많이 생겼다는 것은 그만큼 유저들의 눈높이도 많이 올라갔다는 것을 의미하는바 아직도 최고의 시리즈가 몇탄인가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다.

 

어쨌든 개인적으로는 당시 슈퍼패미콤의 성능을 넘어섰다는 평을 받는 6탄을 제일 좋아한다. 뭐 끝까지 깬것도 이게 유일하다. ㅋ

 

나랑 대부분 취향이 비슷해선지 어쩐지 골수팬들은 한글화 작업마저 이뤄내며 게임강국의 면모를 과시하기도 했다.

 

덕분에 옛 추억을 떠올리며 한글판 파이날 판타지 6를 '공짜'로 플레이하는 광영을 누리기도 했다.

 

게임에는 여러 캐릭터들이 나오는데,

 

가장 인상깊었던 캐릭터는 고고란 이름의 캐릭터였다. (이미 5탄에서 모습을 드러냈던)

 

아마도 그 능력때문인 듯 싶은데 그 능력이란 다름아닌 다른 사람을 흉내내는 것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유저들은 고고란 이름대신 흉내쟁이로 불렀다.

 

 

흉내쟁이... 말그대로 모든 걸 흉내낸다. 마법, 필살기, 스킬 등등

 

해본사람은 알겠지만 하나의 마법을 터득하고 필살기를 외우는 과정은 한번에 이뤄지지 않는다.

각각의 캐릭터의 사연이 이어지는 것은 물론이려니와 지난한 레벨 노가다, 그리고 (나중에는 익숙해지긴 하지만) 정교한 조이패드 조작을 요구한다.

 

그런데 갑자기 게임 중후반에 등장해서는 한번 본 동료의 기술을 똑같이 흉내내는 캐릭터의 임팩트는

희열과  허무의 혼합 같은 감정을 느끼게 해줬다.

 

뭐랄까? 뭐 이런 놈이 다있나? 하지만 내가 조종하니 다행이야 뭐 이런 느낌? ㅋㅋ

 

 

여튼 흉내쟁이의 흉내능력을 계속 시전하면서 한결 편하게 게임을 플레이 했다.

 

그리고 뭐든 흉내내는 그녀석의 능력이 부러웠다.

 

아무런 노력없이 그 어떤 대가없이 무언가를 얻는다는 환상은 어린 나를 들뜨게 하기에  충분했다.

 

정말 그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보기싫은 책을 안봐도 되고 하기싫은 일을 안해도 되고....ㅎㅎㅎ

 

 

 

...그렇지만 기쁘지는 않겠지.... 그냥 흉내내는 것일뿐이다.

 

 

지금은 이렇게 심각해져서 이야기한다. 바보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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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세의 마왕

 

 

나는 사실 이런 이야기들이 별로 의미가 없다는 것에 대해서 신경쓰지 않는다.

 

 

흔하게 우리들은 우연히 만나는 사람들을 놓치고 지나치며 미워하고 좋아한다.

필연이라는 것이 있다면 정당한 합리화란 것도 있겠지.

 

 

그리고 어떤 일이 일어나도 개의치 않으려는 노력을 하는 것이 무정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솔직한 마음을 드러내는 것이 증오로 점철되어져야 한다면 차라리 분노를 곱씹으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이 낫다.

 

 

허물을 갓 벗은 뱀이 햇볕을 피하듯 차갑고 여린 것은 어두워 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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