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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od body

 

연극을 보고 

 

참으로 오랜만에 연극을 봤다. 제목은 굿바디.

'버자이너 모놀로그'로 유명한 이브 앤슬러의 작품이란다.

연극을 보고나서야 생각해보니,

전에 대학로에 갔을 때 버스정류장에선가 

이 튀는 포스터를 보고 무슨 내용일까-"모 아니면 도잖아"-궁금해했었던 기억이 났다.

 

연극은 이브 앤슬러가 만났던 여러 여성들의 'body'에 대한 이야기들을

인터뷰 형식으로 꾸며놓았다.

사실 이런 형식, 딱히 '재미가 있다'고 말하긴 어려울 것 같다.

그리고 너무나 많은 여성들의 입이 되어 '쏟아내는' 방식이 다소 정신없고

관객의 입장에서는 진부하게 느껴지지 않을까("니 몸을 사랑하라!") 싶기도 하다.

 

하지만,

연극이 끝나고 나오자마자 대학로를 뒤덮고 있는 광고들을 보면서

미친듯이 '착한 몸매'- 44사이즈에 대문자 S라인-를 포교하는 이 세상을 생각해보면

여전히 '다른 목소리'를 드러내고 진부할정도로 강조할 필요가 있잖아, 라고 생각했다.

 

연극은 무엇보다 나부터 성찰해보는 계기가 되었으니까.

쪽팔리지만, 내 얘기를 끄적여보자면.

 

 

나는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skinny 라고 말할 정도로

아주 마른 여성들을 '예쁘다'라고 생각해왔다.

나는 그 사실을 내 친구가 말해줘서 알게되었는데, 그러고 생각해보니,

내가 좋아하는 배우, 모델들의 공통점이었다.

마른 그녀들은 내 눈엔 '뭘 입어도' 매우 스타일리쉬하다.

물론 그렇다고 내가 세상 모든 사람들이 'skinny' 하길 바란다던가

내 스스로 그렇게 되고 싶어 다이어트 같은 걸 해본적은 없다.

그렇지만 내 사고가 정말 문제가 있는 것 같다.

요즘 들어 그런 생각을 자꾸 하게 된다.

"예쁘다고 생각되는 걸 어떡해" ....아님 "사회적 시선이 내면화된것" 일뿐인걸까.

 

생각해보니 나도 그런 스트레스를 안 받은 건 아니다.

나는 술 취한 남자들의 시비거리가 될 정도로 키가 매우 큰편인데 그것도 문제다.

아무리 요즘 키 큰 사람들이 잘나간다 해도, 여자는, 남자보다는(!) 크면 안된다.

한편으로는 그렇게 큰 내가 마른 몸을 갖고 있어서 사람들도, 나도 '다행'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왜냐하면 키큰데 살까지 있으면  '덩치있어보인다' '한 등발 한다'는 이유다.

하지만 여자가 덩치있으면 왜 안되나. 키 크면 덩치 있는게 당연한데 말이다.  

키가 크면 발도 커서 큰 신발을 신어야 하는데도 구두는 250 사이즈도 찾기가 힘들다.

미국 중산층 여성들은 마놀로 블라닉,지미추를 신으려고 발을 깎는다는데

난 길거리에서 파는 만원짜리 구두를 신으려다가 발이 꺾인다.

심지어 얼마전에 등산화를 사러갔는데도 여성용은 245까지밖에 안나오더라.

등산화는 5mm에서 10mm를 크게 신어야하는걸 감안해보면 235까지만 여자란 말이냐. 

 

나는 외모에 관심이 많은 편이다.

이 기준은 매우 상대적인 거지만, 또 알고보면 사람들은 모두 자기 방식으로 '꾸미지만',

운동을 할때에도 전형적인 '운동권 여성'의 이미지와는 거리가 있었던 것 같다.

(이건 두가지 측면이 있을 것 같은데 그런 '전형'stereo type을 설정하는 인간들도 문제이고,

여성들을 남성화/무성화하는 운동권 문화도 문제다..)

 

재미있는 건 페미니스트-여성학/운동 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미지도 '전형'이 있다는 거다.

계속 그런 전형에서 '빗나가고' 있는 내 자신을 맞추어보려고도 했지만,

그건 이미 내가 아닌 것 같아, 그런 쓰잘데기 없는 시도는 이제 완전히 단념했다.

 

그래도 계속 이런 고민은 든다.

"나는 왜 화장을 하는 걸까? 그걸 정말 단순히 자기 만족이라고 할 수 있는건가?

다른 사람들을 내 잣대로 보고 있지 않나? 나도 내 몸에 불만을 갖고 있는가?

나는 도대체 뭐야!"

 

내 몸은 내 자신이다

 

여자, 여자의 몸을 갖고 있다는 건 한편으로 참 슬픈 일이다.

내 몸이 어떻게 생겼는지, 내 보지를 내가 제대로 본 적도 없는데

내 몸에 만족하고 내 몸을 사랑한다는 건, 더더욱 어려운 일이다.

자신이 원하지 않아도 누군가의 시선의 대상이 되어야 하며,

게다가 그 시선은 아주 짜증나게 이중적이니까.

가슴이 없으면 절벽, 크면 머리가 비어보인다 그러고. 화장은 하되, 한듯 안한듯 해야하고...

그런 시선에서 완벽하게 벗어난다는 것 자체가 미션 임파서블이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그만큼  일종의 '자기 검열'을 부단히 해야하고

내 몸을 내 자신으로 받아들이도록 노력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것 같다.

생각을 하더라도 잘 안되는 어려운 일이다.

 

모 대학에서 여성학 강사를 하고 있는 언니가 외모 컴플렉스에 대한 수업을 진행하면서

자기가 들은 외모에 대한 코멘트를 100개 적어오라는 과제를 내준적이 있다고 했다.

놀라운건 그때 어떤 학생은 하루에 들은 내용만 100개가 넘었다고 했다.

"차려입었네, 어디 가?" "오늘따라 초췌해보인다"

무심히 내 던지는 말들과 시선들이 실은 외모에 대한 코멘트이며

누군가에겐 분명 스트레스일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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