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7월 오픈에스이 노동건강실태 발표회 발제문

 

자본의 신자유주의 전략과
불안정노동자의 건강권 위기 및 대응방향

 

 

공유정옥 (평등사회를 위한 민중의료연합 노동자건강사업단)

 


우리나라 전체 임금노동자 가운데 임시직 혹은 일용직 노동자는 1995년 41.9%, 1999년 51.7%, 2001년 52.04%로 점차 증가하고 있다. 절대적인 숫자도 1995년 535만4천명에서 2001년 709만1천명으로 대폭 증가하였다(통계청, 2001). 게다가 임시직, 일용직이 아닌 상용직으로 분류되어온 노동자 가운데 수십만명은 사실상 비정규직에 해당하는 기간제고용, 파트타임, 호출근로, 독립도급 등에 해당하고 있어 실제 비정규직에 해당하는 수는 훨씬 클 것으로 예상된다(한국비정규노동센터, 2001).

 

이러한 노동구조의 변화는 크고작은 노동조건의 변화를 가져왔다. 그 결과, 대우캐리어(사내하청), SK인사이트코리아(위장도급)등 대기업이나 KBS(파견노동), 한국통신(계약직), 상시위탁집배원(계약직) 등은 물론, 보험모집인·건설운송노조 등 특수고용 노동자, 이주·장애 노동자 등 수없이 많은 곳에서 비정규직 노동자의 투쟁이 이어져왔다.

 

비정규직 노동자, 불안정 노동자는 무엇 때문에 투쟁하고 있는가. 불법파견 등 각종 불법과 부당노동행위에 맞선 투쟁은 물론, 노동자로서의 기본적인 단결권과 최소한의 인간다운 노동조건조차 싸우지 않고는 쟁취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비정규직 노동이란 단지 고용조건 상의 변화가 아니라 노동의 불안정화, 노동자의 삶에 대한 변화를 뜻하기 때문이다. 여기에서는 그 가운데에서도 노동자의 건강권에 관하여 살펴보기로 한다.

 

 

 

1. 불안정노동의 의미

 

1) 자본의 노동시장 유연화 전략

 

20세기 후반에 시작된 전세계 자본주의의 변화는 신자유주의라는 한마디로 표현할 수 있다. 자본의 움직임을 가로막는 국내외 장애물을 없애는 탈규제와 노동시장의 유연화가 바로 그것이다.

 

노동시장의 유연화란 기존의 노동시장이 지나치게 경직되어 자본의 이윤추구를 방해한다는 생각에서 비롯된 표현이다. 정부와 자본은 유연화가 "국가경쟁력 강화"를 위한 것이며, 이를 통해 경쟁력이 증진되면 보다 많은 안정적 일자리를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에 실업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 본질은 "자본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 비용절감방안일 뿐이며 노동조건에 대한 사회적 규제의 기준을 "노동자가 얼마나 인간적인 삶을 누리느냐"가 아니라 "자본가의 장사가 얼마나 잘되느냐"로 옮겨버리자는 것이다. 즉, 장사가 안될 때는 모든 노동자에게 언제나 평생고용, 최저임금, 기타 노동복지 등을 제공하기가 어려우니 이에 대한 규제를 완화하고, 장사가 잘될 때는 일시적으로 좀더 많은 노동이 필요하니 노동시간에 대한 규제를 완화하고, 소비자의 다양한 기호에 맞추어 생산을 해야하니 노동자 한사람이 여러 가지 일을 해내거나 여러명이 한가지 일을 쪼개어 하고 임금도 쪼개어 주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유연화를 노동자의 입장에서 표현하면 곧 "불안정화"가 된다. 임금의 유연화는 임금의 불안정, 노동시간의 유연화는 노동시간의 불안정, 직무의 유연화는 직무의 불안정, 인력고용의 유연화는 고용의 불안정... 마치 동전의 양면과도 같다. 다만 누구의 입장에서 보는가에 따라 표현이 다를 뿐이다. 그리고 이것을 이해하는 순간, 우리는 자본의 위기가 고스란히 노동자에게 전가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장사하기 힘들다" → 노동시장 유연화 → 노동의 불안정화 → "먹고살기 힘들다"
 (자본의 위기) (노동의 위기)

 

 

 

2) 불안정노동과 비정규노동

 


일반적으로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구분하는 기준은 △고용의 지속성 여부(임시직노동자) △통상 노동시간의 적용여부(단시간노동자) △고용관계와 노동제공대상의 일치여부(간접고용노동자) △형식적 고용관계의 존재여부(특수고용노동자) 등이다. 이를 기준으로 비정규직의 개념을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민주노총 등, 2001.5).

 

○임시·계약직 : 일정한 사업의 완료, 일시적 결원의 대체, 계절적 근로가 필요한 경우 등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사유와 조건에 의하여 고용계약기간을 정하여 그 기한의 만료로 인하여 자동적으로 고용관계가 종료되거나, 앞으로의 장기적인 계속근로에 대한 명시적 또는 묵시적 합의가 없는 경우.

○단시간노동자 : 단일한 사용자에게 고용되어 주당 30시간 미만을 일하는 임금노동자.

○아르바이트 : 정규 교과과정을 이수하는 학생으로서 일시적으로 주 30시간 미만으로 일하는 노동자.

○파견노동자 : 근로자파견법에 의해 설립된 파견업체에 고용되어 그 업체와 계약을 맺은 사용업체에서 노무를 제공하는 노동자.

○용역노동자 : 청소, 경비, 물품제조 등의 분야에서 노무 또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체에 고용되어 그 업체와 계약을 맺은 다른 업체의 사용자를 위해 일하는 노동자.

○호출·일용노동자 : 건설업과 서비스업 등에서 그때그때 필요한 경우에 따라 이를 매개하는 업체 또는 개인의 알선을 통해 수주, 또는 하루 단위로 일하는 노동자.

○개인도급(특수)노동자 : 개인사업자 형태로 모집·판매·배달·운송의 업무를 통해 고객에게 물품이나 서비스를 제공하고 수당이나 성과급, 수수료 명목의 소득을 얻거나 스스로 고객을 찾아 물품이나 서비스를 제공하고 그 일한 만큼 소득을 얻는 노동자.

○재택근로 노동자 : 자택에서 작업을 행하되 업무수행에 관한 사용자의 지휘, 명령을 받는 자.

○자영노동자 : 자신 외에는 별도의 종업원이 없이 사업을 영위하는 개인.

 

 

그런데 이러한 여러 가지 형태의 노동은 칼로 무자르듯 나뉘기 어렵다. 한명의 노동자가 용역업체에 고용되어 있으면서 재택근로나 자영노동을 한다거나, 어제까지 계약직이었던 노동자가 오늘부터 호출·일용노동자로 지내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비정규직 노동자의 정확한 규모나 분포를 파악하는 것은 대단히 어려우며, 일반적으로 정규직(단일 사용자와 기간을 정하지 않은 항구적인 고용계약을 맺고 전일제로 일하는 고용관계로서 노동법상의 해고보호와 정기적인 승급이 보장되며 고용관계를 통한 사회보험 혜택이 부여되는 경우)이 아닌 모든 임금노동자는 비정규직 노동자로 간주할 수 있다. 그리고 여기에 더하여 이주노동자, 장애노동자, 여성노동자 등 이른바 "2차 노동시장"의 구성원들이 있다.

 

게다가 노동시장의 유연화는 쉼없이 진행되고 있어 정규직 노동자들조차 비정규직으로의 전환이나 해고에 대한 걱정에서 놓여날 수가 없는 것이 현실이다. 다시 말해서 비정규직 노동자와 정규직 노동자는 현상적으로 별개의 집단처럼 보이지만 모두가 본질적인 불안정성에 직면하고 있다는 점에서 '불안정 노동자'라는 말로 아우를 수 있다. 불안정노동이라는 것은 특정 집단의 노동자가 일시적으로 맞닥뜨리는 문제라기 보다는 신자유주의가 추구하는 유연화된 노동시장에 속한 모든 노동자들의 문제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3) 노동시장 유연화와 빈곤

 


일부 몰지각한 이들은 노동시장의 유연화가 자본과 노동 양측에 모두 이득을 준다고 주장한다. 파트타임으로 일하면서 여가와 자기개발에 좀더 많은 시간을 투자할 수 있을 것이라고도 말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파트타임 노동자들은 상용직의 경우 53.3%, 임시직의 경우 92.8%가 월 100만원에 미치지 못하는 저임금에 허덕이고 있다.

 

유럽에서도 불안정노동에 종사하게 되는 가장 큰 이유는 여전히 "정규직 일자리를 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최근 미국의 경우 식당 종업원, 대형매장 종업원, 호텔 룸메이드 등 동시에 두 가지의 파트타임 일을 하는 여성노동자가 자기자신의 의식주조차 꾸려갈 수 없는 현실이 폭로되기도 하였다(빈곤의 경제, 2002). 오스트리아의 한 연구에서는 기간제 고용 노동자들이 정규직보다 수입이 적고, 업무만족도가 낮으며, 향후 직업선택에 불리하다는 결론을 얻었다.

 

2. 불안정노동과 노동자건강

 

1) 더 적은 돈을 받고, 더 오래 일하기

 

카드회사의 전화상담, 독촉, 판매 등을 담당하는 파견노동자들의 경우 하루 평균 13시간의 노동을 한다. 백화점이나 할인점에서 일하는 파견노동자들은 재고정리 등을 이유로 새벽 한 두시까지 일하고도 시간외수당을 받지 못하는 일이 허다하다.

 

시설관리 노동자의 경우 대부분 연중무휴 맞교대로 일하고 2-3일에 한번씩 야간근무를 한다. 주당 평균 72∼80시간을 일하는 셈이다. 방송사에서 일하는 영상제작보조 등 파견노동자들도 대개 하루 11시간 이상을 일하고 1년에 약 20일 밖에 쉬지 못하지만, 월 70만원 가량의 임금을 받는다. 사내하청이나 영세사업장은 이보다 더욱 열악한 경우가 많다.

 

2000년 현재 정규직의 주당 노동시간은 평균 47.1시간, 비정규직은 평균 47.52시간으로 파트타임 및 재택근로 이외의 모든 경우에서 비정규직의 노동시간이 더 길지만, 경제적 노동조건을 살펴보면 비정규직의 월평균임금은 84만4천원에 불과하여 정규직의 157만1천원에 비해 절반수준에 머무르고 있으며, 비정규직 가운데 11.1%에 해당하는 84만2천여명은 최저임금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2) 사회보장제도의 사각지대

 

사회보험이란 실업이나 질병 등의 문제로 발생하는 부담을 개인에게 전가시키는 것이 불합리하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위험을 분산시키기 위해 만들어졌다. 그런 점에서 노동조건 및 사회적 제반여건이 상대적으로 취약한 비정규노동자에게 더욱 절실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정작 사회보험 적용비율을 비교해 보면 국민연금, 건강보험, 고용보험 적용비율이 정규직의 경우 각각 88.0%, 90.7%, 74.2%인데 비하여 비정규직은 각각 22.1%, 24.6%, 22.6%에 불과하다(한국비정규노동센터, 2001.8).

 


3) 더 나쁜 환경에서, 더 위험한 일을

 

「유럽연합 보고서」에서는 프랑스, 스웨덴 등의 임시계약직 노동자들이 소음, 진동, 위험물질, 반복작업 등 열악한 노동환경에 더 많이 노출되고, 그 결과 더욱 심각한 수준의 산업재해를 경험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1997년 금속업체의 원청과 하청 사업장의 작업환경을 비교측정한 결과 소음, 분진, 중금속, 유기용제 등 각종 유해인자들의 허용농도 초과율이 하청업체에서 더욱 높은 것으로 드러났다(김재영, 1998).

 

대형 제조업체가 덩치를 줄이기 위하여 각 생산부문별로 하청, 용역 따위로 외부화하는 과정에서 특히 고위험 유해작업을 외부화하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영세 제조업체에서는 프레스로 인한 절단사고나 소음, 환기불량에 의한 각종 유해물질 등이 노동자들을 만성적으로 괴롭히지만 작업환경개선비용을 개별 영세자본이 감당하기 어려워 거의 개선되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원청의 납품기일을 맞추기 위하여 안전장비나 조치를 무시한채 목숨을 걸고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는 경우도 있다.

 

시설관리 용역노동자들의 경우에는 감전사고의 위험을 뻔히 알면서도 한쪽에서 전기를 다루는 동안 고압전선 바로 옆에서 다른 작업을 하거나, 숙련되지 않은 보일러공이 전기시설을 손보는 등 여러 가지 작업을 처리해야만 한다. 그 이유는 업체들이 용역단가를 낮추기 위하여 인원을 30%가량 줄이고 난 뒤, 더 적은 수의 노동자들에게 이전과 똑같은 내용과 똑같은 양의 일을 강요하기 때문이다.

 

이런 현실 속에서 결국 비정규직 노동자는 보다 많은 산업재해로 건강과 생명을 잃어가고 있다. 1997∼99년 5인미만 사업장의 안전보건 실태를 조사한 연구에 의하면 98년 현재 영세사업장의 재해율은 비제조업에서 4.0%, 제조업에서 4.6%로 전체 산업의 재해율 0.68%에 비해 크게 높았다. 사망재해의 경우도 비제조업에서 천명당 1.83명, 제조업에서 0.93명으로 전체 산업의 사망천인율 0.29명에 비해 5배이상 높았으며, 이러한 추세는 98년 이후로 점차 심화되어 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4) 산업재해, 직업병에 대책이 없다

 

하청노동자가 산업재해를 당하면 대개 하청업체 사장이 개인적으로 보상하게 된다. 5인 미만 사업장에서 산재를 제대로 처리한 경우는 제조업에서 23.5%, 비제조업에서 7.6%에 불과하다(한국산업안전공단, 2000). 더욱 심한 경우에는 하청노동자 개인이 감당하게 되는데, 위 산업안전공단의 조사결과에 따르면 노동자 개인의 의료보험으로 처리하는 경우가 비제조업 20.4%, 제조업에서는 40.5%에 달하며, 개인이 전액부담하는 경우도 비제조업 32.0%, 제조업 20.4%에 이른다고 한다.

 

비록 하청업체가 산재보험에 가입해 있더라도 산재발생이 알려지면 원청과의 재계약시 불리해지고 산재보험료율이 인상되기 때문에 산재를 공상처리하거나 개인의 책임으로 돌려버리는 것이다. 이에 산재처리할 것을 요구하는 노동자는 해고 등 고용상의 불이익을 당하기일쑤이다. 따라서 비정규노동자는 산재를 당하여도 웬만한 중대재해가 아니고서는 스스로 산재보상의 권리를 포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하물며 치료기간 중의 임금이나 치료종결 이후의 장해보상 등은 그림의 떡일 수밖에 없다.

 

눈에 보이는 재해가 이러할진대, 보이지 않는 각종 질병들-특히 뼈마디가 아픈 각종 근골격계 질환들-의 경우에는 더욱 쉽게 은폐된다. 일반인구에서도 전체의 60%가량이 매년 요통의 증상을 경험할 만큼 흔하지만 요통을 이유로 진찰을 받거나 일을 쉬는 경우는 소수에 불과하다. 결국 살아가기 위해 묵묵히 죽도록 일하고, 마침내 자신의 건강과 생명을 잃게되는 일이 날마다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5) 산업안전보건법의 사각지대

 

산업안전보건법에는 노동자들의 건강과 안전을 위해 지켜야 할 여러 가지 내용들이 포괄되어 있고 이는 모든 노동자들에게 적용되어야 마땅하지만, 비정규 노동자에게는 실제로 거의 해당되지 않는다.

 

사업주는 노동자에게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불의의 사고나 노동자가 다루게 될 유해물질에 대해 교육을 실시해야 하지만 이런 교육을 받고 업무를 시작하는 노동자는 정규직에서조차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작업장에서 꼭 필요한 안전보호구를 제대로 지급하지 않는 것도 일반적인 일로서, 심지어 자동차 조립공장의 심한 소음공정에서 가장 간단한 보호구인 귀마개조차 받지 못하는 실정이다.

 

건강진단은 한순간 개인노동자의 건강상태를 점검하는 것뿐 아니라 한 사업장 전체의 보건실태를 파악하는데 활용할 수 있다. 그러나 비정규노동자는 고용기간이 짧아서 연속적인 건강진단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하며, 이로 인하여 그 사업장의 노동과정이 노동자 건강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미처 발견하지 못하게 된다. 그 사업장에서 가장 고되고 위험한 작업을 하던 노동자가 2-3년만에 해고되어 나간다면, 나중에 그 노동자가 암에 걸리건 허리통증에 고생을 하건 직업관련성을 알 수 없게 된다. 다른 한편으로 노동자의 입장에서 볼 때 건강진단에서 좋지 않은 판정을 받으면 다음번 취업때 불리해질 것을 두려워하여 검진을 회피하거나 질병을 숨기는 경우도 생각할 수 있다. 이 모든 것들은 노동의 불안정성에 맞서 생존하기 위해 노동자 자신의 건강과 생명을 맞바꾸어야 하는 기막힌 모순을 보여주고 있다.

 


6) 고용불안 그 자체가 건강을 망친다

 

고용상태가 불안정하면 노동과정에서 주어지는 업무의 부담은 높아지는 반면, 자신의 노동과정에 대한 통제력은 구조적으로 낮아지기 때문에 정신적인 노동조건이 악화된다. 이러한 조건은 스트레스를 증가시키며 그 결과 뇌혈관 및 심장질환의 위험이 높아진다. 즉 고용의 불안정은 곧 노동의 특성을 변화시키고, 이로 인하여 육체적 정신적 부담을 증가시켜 노동자의 건강을 갉아먹는 것이다.

 

외국의 한 연구에서는 공무원 764명을 대상으로 노동의 특성, 사회적 관계 및 음주나 흡연 등 건강관련행동의 변화를 조사하였다. 그 결과 노동조건의 특성(육체적 업무부담의 증가, 고용불안 증대, 기술적 자율성 저하, 직장내 의사결정에 대한 참여기회 감소 등)이 불안정 노동자의 건강을 악화시키는 주요 요인이며, 결코 노동자 자신의 무책임한 행동이나 주위 사람들의 사회적 지지 부족이 원인은 아니라는 것을 입증하였다.

 


7) 건강과 고통의 불평등

 

다른 나라의 경험에서 고용불안정은 소득불평등의 증가를 낳았다. 미국의 경우 1977년에서 1988년까지 전 인구 중 하층 80%의 가족수입은 감소한 반면 상층 10%의 가족수입은 16.5%가 증가하였으며, 상층 5%에서는 23.4%, 상층 1%에서는 49.8%나 증가하였다. Wilkinson은 여러 국가들에 대한 연구를 통하여 기대여명이 사회전체적 부의 "수준"이 아니라 소득의 "분포"와 더욱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준 바 있다. 이는 미국의 경우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영국의 한 연구에서는 경제활동인구를 전문직·경영인집단, 중간관리직 집단, 숙련 육체노동자 집단, 반숙련·개인서비스·비숙련 육체노동자 집단 등 4개의 계층으로 분류하여 20년 이상 이들의 고용과 실업, 건강의 관계를 조사하였다. 1975년 전후에는 모든 계층의 고용율이 90%를 웃돌았지만 80년대에 들어서면서 실업이 증가함에 따라 각 계층간의 고용율 차이가 나타나기 시작하여 대규모 실업이 발생한 1992∼3년에는 첫 번째 집단의 고용률이 93%, 두 번째 집단은 90%, 세 번째 집단은 84%, 네 번째 집단은 72%로 현저한 차이가 관찰되었다.

 

또한 동일 집단 내에서 만성질환을 가진 노동자와 건강한 노동자의 고용률을 비교한 결과 첫 번째 집단보다는 네 번째 집단의 만성질환 노동자의 고용률이 훨씬 큰 폭으로 하락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것은 건강상태에 의한 고용불평등 및 이에 대한 계층별 불평등이 이중으로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8) 불안정노동자 자신을 넘어선 파급효과

 

불안정노동의 영향은 불안정노동자 자신을 넘어서 그 가족들과 피부양자 및 아직은 안정적으로 고용되어 있는 다른 노동자들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외국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고용불안상태의 노동자 가족들은 그렇지 않은 가족들에 비하여 병원을 더욱 자주 이용하며, 가정 내에서의 긴장감이 증가하고, 여성 노동자의 경우에는 저체중아 출산이 증가함으로써 가족의 건강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또한 1921년부터 1995년까지 영국 일반인구집단에서의 자살률은 영국 전체실업률의 변화와 그 양상을 같이하는 것을 밝힌 연구도 있었다.


3. 불안정노동 철폐를 위한 투쟁을 위하여

 


1) 자본의 분할지배전략에 맞선 단결

 

  노동시장의 유연화를 통해 새롭게 출현하게 된 비정규·불안정노동의 형태는 실로 여러가지가 있다. 이러한 복잡다양한 형태는 단지 장사가 잘될 때는 더 많은 인원을, 장사가 덜 될 때 더 적은 인원을 사용할 수 있는 "경영의 합리화"에만 기여하는 것이 아니다. 전체 노동자계급은 물론 한 사업장 내에서조차 노동자들을 구분하고 쪼갬으로써 자본의 신자유주의 전략은 또하나의 목적, "노동자의 분할통제"를 달성하는 것이다.

 

  하나의 공장에서 같은 제품을 생산하더라도 이쪽은 원청소속, 저쪽은 하청소속으로 나뉘게 한다든가, 비정규직 노동자의 임금을 줄여서 대규모 흑자를 창출한 공장에서 정규직 노동자들에게 흑자의 일부를 분배하여 비정규직 노동자와의 연대를 차단하는 등, 노동자의 단결을 무력화하려는 다양한 시도들이 진행되어 왔다.

 

  또한 자본은 이러한 분할전략에 맞선 노동자들의 단결을 온갖 수단으로 방해해왔다. 2001년 노사정위원회에서 다룬 "기업의 인수·합병시 고용승계, 노조승계, 단협승계"에 관한 문제는 결국 기업을 구조조정함으로 인해서 확대되는 간접고용 노동자들이 원래 있었던 노동조합에 가입할 수 없도록 하고, 단협을 적용받지 못하게 하여 열악한 노동조건으로 추락시키려는 시도였다.

 


2) "비정규보호"의 또다른 얼굴에 돌을 던지자

 

  지난 5월 6일 노사정위원회 비정규특위는 <비정규직 근로자 대책에 관한 노사정 1차 합의문>을 발표하였다. 여기에서는 △비정규 노동자의 규모와 통계산출 방식 △근로감독강화△사회보험적용 확대 및 복지확충에 대한 언급이 있었으나 부실하고 실효성 없는 내용 뿐이었다.

 

  뿐만 아니라 노사정위에서는 비정규직의 보호보다는 이를 제도적으로 확산시키기 위한 방안 모색에 부심하고 있는데, 가령 기간제노동 기간을 2년에서 3년으로 연장시킨다거나 불법파견의 경우 합법파견으로 유도하겠다는 것이 그것이다. 기간제노동을 연장시켜서 기존의 1년미만 단기계약직 노동자들의 고용기간을 연장시키겠다는 발상은 노동시장 유연화 전략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것인지 아니면 고의로 외면하는 것인지를 혼란스럽게 한다. 자본가로서는 당연히 기존 단기계약직은 그대로 두고 정규직 가운데 취약한 노동자나 신규채용 노동자들을 2, 3년제 계약직으로 전환할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불법파견 사업장을 합법파견으로 유도하여 법의 적용을 받도록 하면 파견노동자들이 법의 보호를 받게 되리라는 것 역시 기만적이다. 사업주들에게 아무런 걱정없이 불법파견을 실시하라는 부추김일 뿐인 것이다.

 

  근로자파견법 제1조에는 이 법의 목적을 "파견근로자의 고용안정과 복지증진에 이바지하고 인력수급을 원활하게 함"이라고 밝히고 있으나, 실상은 파견노동을 법적으로 정당화하기 위함이었다. 파견법 덕분에 수많은 노동자들은 매2년마다 해고당했다가 다시 고용되는 불안정한 고용조건 아래 놓이게 된 것이다.

 

  법원 역시 다르지 않다. SK인사이트코리아 소속 파견노동자 가운데 사직 및 계약직 전환 종용에 맞서 투쟁했던 파견노동자들이 해고된 뒤, 해고노동자들은 파견법상 2년이 경과한 파견노동자는 직접고용된 것으로 간주되므로 부당해고임을 주장하였다. 이에 대하여 법원이 내린 판결은 다음과 같다.

 

"SK가 형식적으로는 인력파견업체와 도급 계약을 통해 이들을 근무하게 했지만 사실상 근로자 파견이었다. 그러나 파견을 허용한 업무가 아닌 다른업무에 대한 파견은 불법이고, 불법파견시 파견법상 직접고용 조항을 적용할 수 없다"

 

  이러한 법원의 판결에 따라 사업주는 불법파견에 대한 벌금 몇 푼만 지불할 뿐이고, 노동자들은 생존의 기반을 모두 잃었다. 바로 이것이 소위 비정규직 노동자 보호를 위한 법과 제도의 역할이다.

 


3) 노동기본권 / 건강권 / 생존권 쟁취 투쟁

 

  이와같이 노사정위, 파견법 따위 기만적인 제도의 이면에는 쉼없는 비정규·불안정화 양산의 음모가 숨겨져 있으므로, 자본에게 "비정규정책을 합리적으로 운용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마음대로 비정규노동을 양산하라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더군다나 자본은 쉬지않고 분할통제전략을 실행에 옮기고 있으므로, 이에 맞선 노동자 계급의 동질성 회복을 위한 투쟁이 배치되야만 한다.

 

  노동자의 단결과 불안정노동으로부터의 자유를 가로막는 장애물은 과연 어디에 있는 것인가. 안정되지 못한 고용관계로 인하여 투쟁에 나서지 못하는 비정규직의 소심함도 아니요, 자신의 이익을 지키는 데 급급한 정규직의 이기심도 아니다. 그러한 소심함이나 이기심은 자본이 의도한 바로 그 분할지배전략이 제대로 먹혀들고 있다는 증거일 뿐이며, 떨쳐버려야 한다는 공염불을 수없이 반복한다고 해서 타파될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구분, 사업장의 구분, 성별과 인종의 구분 등을 모두 떠나 전체 노동자의 목소리를 하나로 모으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차별없는 노동기본권의 쟁취, 현실적인 생존권의 쟁취를 위한 구체적인 투쟁을 조직하는 것부터 시작되어야할 것이다.

 

  노동자건강사업단에서는 지난 봄 집배원 노동자에 이어 이번 오픈에스이 노동자의 건강실태를 조사하면서 육체적·정신적·사회적 건강과 생명의 위협이 정규직·비정규직, 장애·비장애 노동자에 별다른 차이없이 나타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실제로 극히 소수의 몇몇 사업장을 제외하고는 우리나라의 전반적 노동조건이 결코 인간적이지 못하기 때문에 거의 모든 노동자들이 직업병과 산업재해의 위험에 무차별적으로 노출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러한 문제들은 결코 개인의 건강관리나 훌륭한 의료진의 건강진단으로 해결될 수 없는 것들이다. 현장의 노동자들이 노동조건을 개선하기 위한 투쟁, 목숨을 걸어야 할만큼의 과밀노동·장시간노동을 없애고, 골병들지 않고 일할 수 있는 작업환경을 만드는 투쟁, 그러한 건강권 쟁취투쟁에 나설때만이 비로소 건강한 노동을 쟁취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투쟁에서는 비정규·불안정노동자의 구별도 갈등도 있을 수 없다. 내 옆에서 일하고 있는 동지의 건강권을 지킬 수 없다면 그것은 곧 나의 생명을 지킬 수 없다는 것을 뜻하므로.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13/02/06 10:37 2013/02/06 10: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