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책 2013년 5월호를 위해 쓴 글

 

1월 삼성반도체 화성공장 안에서 불산이 새어나왔다. 밤늦도록 이를 수습해야 했던 협력업체 STI 노동자들 중 한 명이 숨졌다. 2월, 대우조선에서 한 노동자가 26미터 높이에서 떨어져 숨졌다. 입사한 지 2주일 밖에 안 된 열 아홉 살의 하청 노동자였다. 얼마 뒤에는 여수 대림산업에서 폭발사고가 일어났다. 숨진 여섯 명 모두 정비 보수 협력업체인 유한기술 소속의 노동자들이었다. 하청 노동자들이 죽고 있다.

 

사실 하청 노동자들의 산재 사망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가까이는 2011년 이마트 탄현점에서 냉동기를 고치다가 질식사한 노동자 네 명도 하청 노동자들이었고, 2008년 이천 냉동창고 공사장 화재로 떼죽음을 당한 사십 명도 모두 하청 노동자들이었다.

 

하청 노동자 몇이 죽건 벌금이나 과태료는 몇 푼 안된다. 이마트의 경우 네 명이 죽었는데 벌금 백만원을 물었다. 참고로 작년 한 해 이마트 영업이익은 7천 759억원이었다. 대림산업은 8억 4천만원의 과태료를 물어야 하는데, 2012년 이 회사의 연매출은 10조가 넘고 순이익만 해도 4천억원이 넘는다. 2천 건에 달하는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때문에 삼성반도체가 낸 과태료는 2억 5천만원으로, 작년 순이익 23조원의 10만분의 1도 안된다.

 

(아 참, 여기에 유족들에게 보상금도 얼마간 주었을지 모른다. 대림산업과 삼성전자의 등기 임원 한 명 연봉이 평균 6억, 52억이라고 하는데, 하청 노동자는 자신과 가족의 인생 전부를 탈탈 털어 과연 얼마의 보상을 받았을까.)

 

오래 전부터 큰 회사들은 위험하고 해로운 일들을 하청 노동자들에게 떠넘겨왔다. 특히 건설업과 조선업에서는 1990년대부터 위험작업 하청화 문제의 심각성이 터져나왔다. 하지만 나아진 건 하나도 없다. 오히려 1996년 정리해고, 파견, 변형근로시간을 합법화하는 노동법 날치기 통과 덕분에 기업들은 ‘목숨 내놓고 해야 하는’ 위험작업들을 당당하고 합법적으로 외주화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산업안전보건법을 통해 몇 가지 위험하고 해로운 작업들의 도급을 규제하고 있기는 하다. 그런데 이 규제는 도금이나 중금속 제련작업과 법에서 특정한 유해물질 취급 작업에만 한정된다. 그렇다면 마음대로 도급을 주지 못하도록 법에서 규제하는 유해물질은 몇 개냐. ‘무려’ 열 세 가지나 된다. 불산이나 벤젠, 포름알데히드처럼 악명높은 독성 화학물질들은 쏙 빠져있다. 2003년에 이 목록을 만든 뒤 한번도 개정한 적이 없다고 한다.

 

뿐만 아니다. 법으로 정하고 있는 유해물질이라고 해도 도급을 줄 수 있다. 산업안전보건법에는 이러이러한 작업은 고용노동부장관의 인가 없이 도급을 줄 수 없다고 되어 있는데, 바꾸어 말해서 인가만 받으면 하청업체로 넘겨버릴 수 있다는 얘기다. 인가고 뭐고 다 귀찮아서 그냥 도급을 넘겨버려도 큰 사고가 나지 않는 한 들킬 위험은 별로 없다.

 

억세게 운이 나빠 불법 도급을 준 사실을 들키면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원 이하의 벌금을 물어야 하지만, 이런 일로 징역살이를 갔다는 사업주 얘기는 들어본 적 없다. 2007년부터 3년 동안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으로 적발된 사업주 중에 사법처리된 경우는 5% 뿐이다. 구속까지 이른 경우는 3년 동안 딱 다섯 번 있었다. 벌금? 몇천만원이야 대기업의 경우 껌 값 아닌가. 가만 보면 산업안전보건법은 노동자의 건강권과 생명권을 지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업주가 법을 어겨도 큰 탈이 나지 않도록 알아서 뒤를 봐 주기 위해 만든 법 같다.

 

이렇게 사업주들은 살 판, 하청 노동자들은 죽을 판으로 짜여져 있으니 해마다 하청 노동자들의 산재사망이 줄을 잇는 것은 이미 예견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바꾸어 말해, 그냥 이대로 내버려두면 하청 노동자 산재사망은 결코 줄어들지 않는다는 위기감이 든다. 판을 깨버리거나, 뒤집어 엎거나, 아니면 최소한 흔들어보기라도 해야하지 않을까. 이를 위해 더 늦기 전에 딱 두 가지만, 제대로 시작해보면 어떨까.

 

첫째는 기업살인법을 만드는 일이다.

삼성반도체에서 딸을 백혈병으로 잃은 아버지가 이런 말을 했다. “삼성은 산재가 아니라고 주장하는데, 사실은 산재 아니예요. 살인이예요. 한명도 아니고 두명도 아니고, 수십 명이 병들고 죽는데 그걸 내버려두는 게 살인이지 뭐가 살인이겠어요.” 기업살인법은 말 그대로 노동자가 일터에서 자꾸 죽거나 많은 수가 병들고 다칠 경우 그 책임을 엄하게 묻자는 취지다. 당연히 원청 사업주를 포함해서.

 

둘째는 작업중지권을 복원하는 일이다.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르면 사업주는 급박한 위험이 있을 경우 작업을 중단시키고 노동자를 안전하게 대피시킨 다음,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만 한다. 노동자 자신도 작업을 중단하고 대피할 권리가 있다. 하지만 사업주는 절대로 작업을 중지시키지 않는다. 노동자들도 하청 노동자는 물론, 원청 소속이라도 작업 중지권을 제대로 행사해본 경험은 거의 없다. 죽어있는 법이다. 그러니 다시 살아 숨쉬게 해야 한다. 아차 하면 추락할 위험이 있는 건설 현장, 정체를 알 수 없는 화학물질 냄새가 풍기는 공장, 어떻게 다뤄야 안전할지 정확히 교육받지 못한 기계를 사용해야 하는 작업장에서 노동자들이 작업을 중지하고 적절한 조치를 요구하자는 게 작업중지 운동의 요지다. 산업안전보건법을 제대로 바꾸긴 해야겠지만, 그때까지 그냥 목숨 내놓고 일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물론 원청 노동자들도 작업 중지는 대단히 어려운 일이니 하청 노동자들로서는 훨씬 더 힘든 일이다. 이런 경우 명예산업안전감독관이 나설 수 있다. 명예산업안전감독관은 ‘근로자, 근로자단체, 사업주단체 및 산업재해 예방 관련 전문단체에 소속된 자 중에서’ 고용노동부가 위촉하는 제도로, 사업주와 당사자 말고 작업중지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법으로 보장되어 있다.

 

그리고 또 뭘 해볼 수 있을까. 누구든 지혜와 힘을 모아보면 좋겠다. 정말 이제는 뭐라도 해봐야지 않을까. 위험하고 해로운 작업을 하청으로 하청으로 내모는 이놈의 폭탄돌리기에 브레이크 한번이라도 걸어야 하지 않을까.

 

일터에서 떨어져 죽고 끼어 죽고 터져 죽고 병들어 죽어간 모든 산재 사망 노동자들을 생각하며 4월 28일 세계 산재사망 노동자 추모의 날이면 언제나 외치는 구호를 되새겨본다.

 

“죽은 이를 위해 애도하자, 그리고 살아있는 이를 위해 싸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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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4/17 20:50 2013/04/17 20: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