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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안]노동운동의 올바른 이해 2003-채만수

 

노동운동의 올바른 방향에 대해서


채 만 수

(한국노동이론정책연구소 소장)




1. 내부의 이견과 그 해결, 그리고 ‘학습’의 중요성


우선, 여타의 모든 일에서와 마찬가지로 노동운동에서도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느냐”, 혹은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느냐, 아니냐” 등등의 결단이 요구되는 상황에 수시로 부딪히게 되고, 그럴 때마다 당연히 내부에서는 이견과 대립이 발생하기 마련.


이렇게 이견과 대립이 발생할 경우, 어떻게 해야 하는가?


1) 가장 먼저 제시되는 대답은 : “민주적인 방식으로!”

   그렇다. 내부에 이견이 발생하면 ‘민주적인 방식으로’, 그러니까 충분한 토론과 이견의 조정, 그리고 다수결의 원칙을 통해서 그 이견을 해소해 가야 한다.


2)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 이견을 ‘민주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그 이전에 이견을 일으키고 있는 문제 자체에 대한 객관적이고 올바른 이해가 전제되는 것.

   ― 예컨대, ‘말의 어금니가 몇 개인가’라는 문제는 ‘토론과 다수결’만으로는 올바른 답을 찾을 수 없는 것.


따라서 조합 활동 등 노동운동 과정에서 발생하는 이견과 대립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형식적이고 절차적인 ‘민주주의’는 물론이고, 문제 자체에 대한 객관적인 이해가 요구되는 것.


그러면, 문제 자체를 객관적으로 올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 당연히, 진지하고 가능한 한 체계적인 ‘학습’이 요구된다.


― 추상적으로는 ‘학습’과 ‘실천’이 함께 요구되지만, 현실적으로는 우리의 일상의 삶과 여러 조합 활동, 파업 등이 모두 ‘실천’이기 때문에, 그러나 체계적인 ‘학습’이 없이는 그 실천은 맹목적적인 것으로 돼 버릴 뿐이기 때문에, 의식적으로 강조되어야 하는 것은 ‘학습’.


― ‘학습’의 중요성은, “자유는 필연 속에 있다”(Hegel)는 명제로 요약될 수 있다.


2. 노동운동 내부의 두 개의 대립적인 노선


노동운동 내부에는, 크게 보면, 전통적으로 두 개의 대립적인 노선이 존재한다. 즉 ‘개량주의적 노선’과 ‘변혁적 혹은 혁명적 노선’의 대립이 그것.


이 두 노선의 대립은 정치적이고 이론적일 뿐만 아니라, 예컨대 ‘파업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 ‘파업을 어떻게 하고, 어떻게 매듭지을 것인가’, ‘파업에서는 무엇을 얻어 낼 것인가’ 등등, 노동운동의 과정에서 부딪히는 사실상 거의 모든 문제에 대한 이견과 대립을 낳는데, 이는 문제에 대한 이해 및 태도가 다르기 때문.


이 대립은 결국 자본주의적 생산의 본질과 구조, 그리고 그 운동법칙에 대한, 그리고 좀 특수한 문제로서는 ‘국가’의 본질과 기능에 대한 이해의 차이를 반영하는 것.


* [예-1] 97년 말 - 98년 초 경제위기시의 태도, 특히 ‘노사정위원회’에 대한 태도.


그런데, 노사정위원회란?


최장집 (김대중 정권, 대통령자문정책기획위원회 위원장) : “노사정위원회는 김대중 정부가 신자유주의 정책을 시행하면서 노동의 동의를 구하려 만든, 제도적 개선을 위한 고안물이라 할 수 있어요. 노동시장 유연화 등 노동자에게 직접적인 불이익을 초래하는 문제들을 노동의 동의를 얻어 관철시켜 사회적 저항을 피하기 위해 만든 장치입니다. 물론 다른 측면도 있습니다. 신자유주의를 관철시키는 도구로 기능하는 한편, 노동이 중요한 정책결정에 참여하는 제도적 장치이기도 했습니다만, 후자의 성격이 제대로 기능하지 못했습니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 󰡔노동사회󰡕 제52호, 2001년 3월호)


* [예-2] 과학기술혁명에 즈음한 노동운동의 기본적 노선에 관한 태도.


임영일 : 70년대 오일쇼크에서 시작된 장기불황의 국면을 거치면서 이 체제내화된(길들여진) 노동운동에 대한 자본의 공세는 자본이 개발한 계급투쟁의 새로운 무기를 통해 새로운 방식으로 구조화되기에 이른다. 이제 자본은 더 이상 더 많은 노동력의 동원이 곧 더 큰 가치생산으로 이어지지 않는 새로운 생산방식을 계발해간 것이다. 우리가 그동안 ‘신경영전략’이라고 이름지었던 온갖 것들󰠏󰠏일본적 생산방식, 린 생산방식, 팀작업, JIT, 신노동문화, 신인사제도, 경영혁신 등등󰠏󰠏이 이 시기에 자본이 개발한 새로운 계급투쟁의 물질적 기초라면, 소위 ‘신자유주의’는 바로 그것의 이데올로기적 기초라 할 수 있다. 이제 자본은 불황이나 경제위기의 국면에서는 물론이고 호황의 국면에서도 노동에 대한 ‘자본의 양보’가 아니라 자본에 대한 ‘노동의 양보’를 강제할 수 있는 공세적 무기를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자본은 이제 ‘고용을 수반하지 않는 성장’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발견했고 이를 받아들일 것을 노동에게 강요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소위 ‘세계화’로 일컬어지는 세계 자본주의체제의 변화가 배경이 되고 있었다. (“공황기의 한국 노동운동의 과제”, 영남노동운동연구소 편, 󰡔연대와 실천󰡕 1998년 8월호, pp. 6-7.)


결국, 임영일 교수의 핵심적인 메시지는 “이제 한국의 노동운동도 과거의, 따라서 시대에 뒤떨어진 전투적인 노선을 버리고 타협적이고 개량주의적인 길, 사회민주주의적인 길을 가야 한다”는 것으로서, 그 논거를 위 인용문에서 보듯이 ‘과학기술혁명’과 그에 의해서 개발된 ‘새로운 생산방식’에서 찾고 있는 것.


즉, “이제 자본은 (과학기술혁명을 통해서) 더 이상 더 많은 노동력의 동원이 곧 더 큰 가치생산으로 이어지지 않는 새로운 생산방식”을 개발했기 때문에, “이제 자본은 불황이나 경제위기의 국면에서는 물론이고 호황의 국면에서도 노동에 대한 ‘자본의 양보’가 아니라 자본에 대한 ‘노동의 양보’를 강제할 수 있는 공세적 무기를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지요. 그리하여 노동자들이 저항하고 투쟁해 봤자 아무 일도 될 일이 없으므로 “노동이 양보”하여 타협적이고 개량주의적인 길을 가야 한다는 것.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자본주의적 부(富)의 기본요소인 ‘상품’에 대한, 그 가치에 대한 무지의 소산.


― 가치는 사회적인 것이어서 ‘인간의 노동만’이 가치를 생산하는 것이기 때문.


― 부르주아 경제학자들이 말하는 이른바 ‘아담 스미스의 역설’에 대해서, 즉 공기나 물의 가치와 다이아몬드의 가치에 대해서 보자.



3. 사회 문제를 보는 기본적 시각 혹은 방법


이상 예에서 든 혼란과 오류는 결국 주어진 문제를 올바로 객관적으로 이해하지 못한 데에서 오는 것인데, 주어지는 사회적 문제를 올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1) 역사적인 관점에서,


   2) 제반 사항과의 관련 속에서, 즉 다른 명제와의 관련 속에서,


   3) 그리고, 역사의 구체적 경험과 결부시켜서 고찰해야.


예컨대, 레닌은 ‘국가’의 문제를 논하면서 이렇게 말하고 있음.


이 문제를 가능한 한 과학적으로 다루기 위해서는 국가가 어떻게 하여 발생하고, 또 어떻게 해서 발전해 왔는가를 대략 역사적으로 회고하지 않으면 안 된다. 사회과학의 문제에서 가장 확실한 것, 또 이 문제를 올바르게 다루는 습관을 들이고, 수많은 사소한 것이나 서로 다투고 있는 천차만별의 의견 속에서 미궁에 빠져버리지 않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문제를 과학적 관점에서 다루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기본적인 역사적 관련을 잊지 않는 것이고, 어떤 현상이 역사상 어떻게 하여 발생했는가, 이 현상은 그 발전에서 어떠한 주요한 단계를 거쳐왔는가 하는 관점에서 어떤 문제나 고찰하는 것이고, 그 현상의 이러한 발전이라는 관점에서 그 사물이 오늘날 어떻게 되어 있는가를 고찰하는 것이다. ("국가에 관하여"(스베르드로프 대학 강의, 1919), 󰡔레닌전집󰡕 29, p. 478.)



4. 노동운동의 올바른 방향 설정을 위해 기본적으로 고찰해야 할 문제들


노동운동의 올바른 방향을 설정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다음과 같은 문제들에 대한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이해가 요구된다. 이들 문제에 대한 과학적인 이해가 없을 경우, 주관과 자의, 그리고 허위의 선전․선동이 운동을 지배.



  1) 자본주의란 무엇인가?


  ― ‘자본-임노동’ 관계로서의 자본주의적 생산의 역사적 성격


  ― 임금, 잉여가치, 이윤, 지대, 이자 등등


    * 특히 임금이란 무엇이고, 잉여가치, 이윤 등은 어떻게 생산되는가?


         * 이른바 ‘무노동 무임금’론이 말하는 임금



  2) 자본주의적 생산의 위기, 혹은 공황


  ― 경제위기 = 공황의 원인


    * 노동자들의 파업 등에 의한 과소생산(過小生産)이 아니라 과잉생산(過剩生産)이 경제위기의 원인이다.


  ― 경제위기가 노동자계급에 미치는 영향


    * 자본주의적 생산과 상대적 과잉인구, 산업에비군의 문제



  3) 국가


  ― 국가의 역사성과 계급성


    * 인류사회의 계급적 분열과 국가의 발생


    * 다시, ‘노사정위원회’에 대해서

      ― 허위의 선전과 주관적인 관념․소망에 기초해서가 아니라 과학적인 이론과 구체적인 경험에 근거해서 판단해야.



5. 자본주의 세계경제의 최근의 경향, 과학기술혁명 등


1) 신자유주의의 경제적 배경과 공기업 사유화, 노동의 유연화 등의 정책


 * 20세기의 자본주의의 역사, 특히 1930년대의 대공황, 제2차 대전, 전후 호황, 1970년대 이후의 전반적 위기의 재격화 등을 이해해야.


2) 과학기술혁명과 자본주의적 생산의 위기 등에 대한 이해가 중요.


 * 과학기술혁명과 그에 따른 생산력의 비약적인 증대는 그만큼 생산력과 생산관계과의 모순, 즉 자본주의적 생산의 위기를 심각하게 격화시킨다.


 * 따라서 ‘생산력을 발전시키는 것만이, 혹은 경쟁력을 키우는 것만이 경제위기를 극복하는 길이다’라는 식의 주장은 경쟁에 맹목적적인 개별기업적 관점일 뿐 객관적으로는 경제위기를 심화 혹은 격화시키는 것.



6. 노동운동의 올바른 방향?


기타, ‘한국’의 특수 상황을 반영하여, 한․미 및 한․일 관계와 분단 문제, 즉 이른바 ‘민족문제’ 혹은 ‘민족모순’에 대한 이해도 필수적으로 요구되나, 여기에서 상세한 논의는 생략.


다만, 한 가지만 언급하자면, 이른바 ‘민족문제’와 ‘계급문제’는 별개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의 문제. 즉, 민족문제는 계급문제의 한 현상형태.


당장 민주노총의 차기 대의원 대회에서는 아마 ‘노사정위원회’ 참여 여부 문제가 중요한 의제로 등장할 것으로 예상. 현명한 판단을 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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