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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5/07/13
    민주노총 토론회 산별노조 단체교섭 토론문
    다예지예
  2. 2005/07/01
    단결하여 투쟁할까 아님 투쟁하는 동지들만 단결할까 ?
    다예지예

민주노총 토론회 산별노조 단체교섭 토론문

 

‘복수노조, 산별노조 체계하의 단체교섭’

토 론 문


김태균 사무금융연맹 전국축협노동조합 정책기획실장


1. 조용만 교수(비례 대표제 방안)

◦ 교섭창구 단일화의 취지에 대해

교섭 창구 단일화 취지 : ‘안정적이고 효율적인 교섭 체계를 구축’하고 ‘근로조건을 통일화’

=> 교섭 창구 단일화 방안이 안정적이면서 효율적인 교섭체계를 구축하고 근로조건을 통일 시키는데 절대적 조건은 아니다.

교섭 창구의 일원화와 다원화의 경우의 수를 보면 상대적 개념일 수밖에 없다. 문제는 복수노조를 허용하면서 교섭창구 단일화를 법제화함으로 자주적 단결권의 정신을 훼손한다는 점이다.

결국 자주적 단결권의 정신을 올 곧게 이어 간다면 다수의 노조들 모두에게 교섭권한을 부여해야 하며 다수의 교섭권한을 가진 복수 노조들이 교섭창구를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 스스로 결정하게 해야 한다.


◦ 교섭 창구 단일화 방안 모색에 대한 기본 원칙

=> ‘1) 헌법에 취지에 부합 2) 노동법의 기본원리에 반하지 않은 방안 3) 노사관계의 안정화라는 현실적 목표의 달성에 기여’ 라는 조용만 교수의 방안 모색을 위한 기본 원칙에 우선 동의한다. 동의를 전제로 한다면 교섭창구 단일화 방안을 법, 제도적으로 모색하는 것이 아니라 교섭창구 단일화, 다원화 방안에 대해 노동자들에게 맡겨야 되는 것은 아닌가? 라는 질문을 던진다.


◦ 단체교섭권에 대한 침해의 최소화

=> 노동조합 결성조차 부정이 되어 있는 현실을 끊임없는 투쟁을 통해 극복해온 역사가 바로 한국의 민주노조운동의 역사이다. 전교조 동지들의 투쟁과 공무원 노조 그리고 민주노총의 합법화 및 2007년 산별노조가 바로 그것이다. 결국 단체교섭권에 대한 침해의 최소화가 아니라 끊임없이 노동 기본권이 확대로 나아가야 하며 산별노조 시대의 교섭창구 방안 모색도 이러한 정신과 기조 속에서 고민이 되어야 한다.


◦ 노동조합간의 평등권 보장

=> 소수 노조의 교섭권조차 배제되는 다수 대표제 방안보다는 형식상 비례 대표제가 노동조합 간 평등권을 보장한다는 것에 동의 함.

그러나 결국 비례 대표제 방안 또한 교섭 전 과정 속에서 합의해야 하는 범주에 있어 내용상 소외 당 하는 소수노조의 교섭권을 보면 결국 평등권을 완벽하게 보장하지는 못하는 방안임.

평등권은 출발점이라 판단이 됨. 노동조합이면 당연하게 교섭권이 보장되어야 함이 바로 평등권이고 각각의 교섭권을 가지고 있는 노동조합들이 각각의 실력을 통해 현장 노동자들의 이해와 요구에 어떻게 복무 할 것인가? 에 따라 다수 노조 또는 소수 노조로 구분되어질 것임.


◦ 노사 자치 원칙에의 부합

=> ‘노사자치원칙’은 집단적 노사관계법의 기본 원칙임을 동의한다. 문제는 교섭창구 단일화 방안(비례 대표제 방식)이 노사자치원칙을 적용하고 있느냐 하는 점이다. a라는 노동자가 스스로 선택한 A노동조합이 사용자를 상대로 체결한 단체협약이 만약 b라는 노동자가 가입한 B노동조합의 단체협약보다 떨어진다면 당연하게 a 노동자는 A노동조합을 탈퇴하고 B노동조합을 가입할 것이다. 결국 노동자의 이해와 요구를 얼마만큼 수렴하느냐? 그리고 얼마만큼 내부 민주주의를 확립하느냐에 따라 처음에는 난립되어 있던 노동조합들이 하나 또는 둘 등으로 집중될 것이다.

결국 교섭창구 단일화 방안(비례대표제 방식)에서의 노사자치원칙 적용보다는 교섭창구를 노동자들이 선택하게 하는 방안이 노사 자치 원칙을 분명하게 적용하는 것.


◦ 현실적 근거

=> 기존의 교섭 경험 활용이라는 측면에서 다수대표제 방식보다 비례대표제 방식이 더 가깝다고 주장을 했는데 어디에 비례대표제 방식 적 경험이 있는가? 결국 ‘현실적 근거’측면에서 보자면 두 방식 모두 마찬가지임. 기업별 노사 교섭과 초기업별 단위노조 및 회사의 합병 과정 속에서의 복수노조의 경험이 대부분이 한국 노동조합 운동의 경험은 어찌 보면 다수대표제나 비례대표제 등 교섭 창구 단일화 방안이 아니라 교섭창구를 노동자의 자율에 의해 정해지는 방식이 더욱 더 경험적인 교섭 방식이다.


◦ 참여, 통합적 노사관계의 확립과 기여

=> 소수 노조도 교섭에 참여하는 비례대표제 방식이 참여와 통합의 노사관계의 확립과 기여한다는 주장에 대해 물론 형식상 소수노조도 일정 지분을 가지고 교섭 테이블에 앉을 수는 있으나 노동조합 교섭단내 합의 과정에서 다수노조 교섭단에 의해 배제되는 과정을 예상한다면 결국 형식상 참여와 통합임.


◦  사업장내 복수노조 관련 교섭 창구 단일화 대상

=> ‘근로 조건의 유사성’에 의해 동일한 사업장(기업?)내 복수 노조는 교섭창구 단일화 대상으로 의견을 제시하고 있는데 ‘근로조건의 유사성’이란 무엇인가 ?

예) 농축협 : 생산직 노동자, 금융 노동자, 유통, 판매 노동자, 농기계 수리 서비스 노동자, 의사, 간호사, 수정사 기타 등 등

다양한 직능, 직급, 근로조건 속에서 ‘유사성’의 개념은 무엇인가? 결국 이러한 판단 기준은 현장 노동자들의 스스로의 판단에 맡겨야 됨.


2. 이승욱 교수(다수 교섭 대표제 방안)

◦ 교섭 창구 단일화 방안의 전제

=> 이승욱 교수는 국제 노동기준과 다른 나라의 사례들을 들어 교섭 창구 단일화 방안(다수 교섭 대표제 방안)을 제시하고 있는데 조용만 교수 발제문에 대한 토론에서도 지적을 했듯이 다수의 복수노조 하에서 교섭 창구를 단일화 할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음.


◦ 교섭 창구 단일화 방안의 적용 대상

=> 하나의 사업장에서 복수 노조의 경우 모두 단일화 방안의 적용 대상이 된다(물론 복수의 초기업별 단위노조의 경우는 제외)고 의견을 제시했는데 복수노조 허용의 취지에서 본다면 각 교섭 창구 단일화가 아니라 각 개별 노조에게 교섭권을 부여해야 마땅한 것임.


◦ 교섭 단위의 결정

=> 원칙적으로 하나의 사업(사업장)으로 하면서 예외적으로 별도의 교섭 단위를 설정하는 방안 - 이에 대한 판단을 노동위원회에서 판단  ====> 우선적으로 교섭창구 단일화 그 자체를 반대함을 제외하더라도 노동위원회 중립성이 역사 속에서 확인이 되었는데 현 노동위원회에게 그 판단을 맡기자는 것은 동의하기 어려운 의견 임.


◦ 자율적 교섭 대표의 선정

=> 복수 노조가 자율적으로 교섭 대표를 선정하고 만약 선정이 안 될 시 노동위원회로부터 법정 교섭 대표 선출 절차에 의거 선출이 되는데 결국 복수 노조의 교섭 대표 선출 권한이 노동위원회로 넘기자는  의미임.


◦ 법에 의한 교섭 대표의 선출

=> 과반수 조직화 된 노조가 없으면 관련 조합원 과반수 출석, 출석 조합원 과반수 찬성을 받는 노동조합이 교섭 대표권을 가지는 것은 결국 과반수를 조직한 노조가 있건 없건 다수노조가 교섭대표권한을 가진다는 것을 의미함, 가입에 자유가 전제되는 복수노조에서는 현장 조합원들의 판단에 의해 다수노조가 대표교섭권을 가지는 것은 인정이 되지만 이를 법률로 강제할시 악용의 소지가 충분함.


3. 결론

◦ 교섭창구 단일화 방안은 노동3권을 심대하게 훼손하는 방안이다.

복수노조 시대의 단체교섭 방식은 철저하게 노동3권의 보장을 전제로 해야 한다. 노동조합 결성의 자유가 보장(복수노조)됨에도 불구하고 단체교섭 권한을 제한 한다면 결국 자주적 단결권의 심대한 훼손을 가져오는 결과를 낳는 것이며 또한 교섭이 결렬 되어야만 단체행동권이 보장되어 있는 현행 노동법상 단체교섭 권한을 제한하는 그 자체가 단체행동권을 제한하는 결과를 낳기 때문에 결국 교섭 방식은 철저하게 각 개별노조(기업별 노조, 초기업별 노조 구분 없이)별 교섭 권한을 부여해야 하며 노동자 스스로가 개별적 교섭을 할 것인지 아니면 스스로 대표 교섭단을 구성할 것인지를 결정할 수 있도록 법률로 강제해서는 안 되며 법률로 강제 규정할 것은 오로지 사용자측의 교섭의무 뿐이다.


◦ 노동자 스스로가 복수노조 시대에 노동조합을 선택한다.

노동조합은 노동조합 조합원들의 이해와 요구에 의해 조직 운영 되고 있다. 보다 높은 임금수준과 보다 폭 넓게 보장되는 근로조건이라면 결국 현장 노동자들은 그러한 노동조합으로 집중화 된다. 즉 모든 노동조합에게 단체교섭권을 부여할시 우려 된다고 주장하는 복수노조 난립 현상은 복수노조 초창기의 순간적 과정일 뿐이다.


◦ 전국축협노동조합(초기업별 단위노조)은 통일교섭, 집단교섭, 대각선 교섭 등 다양한 교섭 방식을 선택하고 있다.

지난 99년 초기업별 단위노조로 설립된 전국축협노동조합은 156개 축협 13000여명의 노동자들 중 66개 축협 7000여 명의 조합원으로 출범을 한 이후 00년 48개 축협 사용자들이 전국적 사용자 교섭단을 구성하여 단일한 단체협약을 체결한 바가 있다, 물론 매 2년마다 갱신 투쟁을 전개하고 있으며 현재는 66개 사업장에 있는 조합원 전체가 규정받는 단체협약을 가지고 있다.

이 과정 속 에서 새롭게 결성되는 사업장 지부는 본조가 직접 대각선 교섭을 통해 통일 교섭 틀로 모아내고 있으며 해고자 등 사업장내 특수한 경우는 노조 자체 판단에 의해 대각선 교섭을 진행하고 있다.

이러한 교섭 방식은 법으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한 다기 보다는 노동조합 스스로 판단하고 이를 현장의 힘으로 강제해서 만들어가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 노동자 스스로가 노동조합을 선택하고 있다.

이와는 별도로 99년 이전 결성된 기업별 단위노조 일부가 초기업별 단위노조인 전국축협노동조합으로 결합하지 않고 독자 활동을 진행하고 있으나 노조 결성 6년이 흐르면서 점차 전국축협노동조합으로 모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이유는 전국축협노동조합이 현장 조합원들의 이해와 요구를 수렴할 노동조합이 기업별 노조가 아니라 초기업별 단위노조(전국축협노동조합)이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 복수노조 시대를 받쳐주는 못하는 노동법

끝으로 전국축협노동조합이 초기업별 노동조합 활동의 경험을 토대로 복수노조 시대의 단체교섭을 진행함에 있어 현행법의 문제점 몇 가지를 지적하면서 마무리 하고자 한다.


우선 첫 번째로 조정 관련한 노동위원회의 역할이다. 노동위원회법 제3조 4항에 의거하여 초기업별 단위노조의 조정 사건이 중노위 위원장의 판단에 의해 각 지노위로 이첩이 되면서 동일한 조정 사건의 조정 결과를 달리 나오는 경우의 수이다.


두 번째로 금속노조와 보건노조의 실례에서도 나타나고 있듯이 초기업별 단위노조(산별노조)의 사용자 교섭단 구성의 문제이다. 2-3년이 되어가고 있는 금속노조와 보건노조의 사용자 교섭단 구성의 문제는 사무금융연맹내 증권노조, 생보노조, 농협노조등과 마찬가지로 법적 강제 규정이 전혀 없는 상황이며 전국축협노동조합 또한 단체교섭을 매년 2월부터 시작하여 7월 8월이 넘어서야 사용자측 교섭단이 구성되어 실 교섭은 여름이 넘어가면서 시작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산별노조 시대에 필요한 법 조항은 교섭창구 단일화 방안이 아니라 노동조합및노동관계조정법내 기업별노조에서 사용자들의 교섭 의무 조항을 산별시대에 걸맞게 수정 조정해 들어갈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어는 기업별 노조 시대나 복수노조(산별노조)시대나 마찬가지인데 단체협약 위반 관련한 단체행동 불허 규정이다. 단체교섭의 과정에서 결렬시 단체행동권이 보장되어 있지만 체결 이후 일상적 단체협약 위반 사례에 대해서는 결국 법과 제도적으로 보호 받을 수 있는 경우는 진정과 고소 고발의 경우뿐인데 실제적으로 현장에서는 빈번하게 벌어지고 있는 경우이다.


◦ 마지막으로

끝으로 복수노조 금지조항 철폐 투쟁은 기간 한국 노동조합운동 역사 속에서 매우 중요한 투쟁의 요구였고 복수노조 금지 조항으로 인해 수많은 노동자들이 노동조합 결성조차 못해보고 해고와 부당한 취급을 당하는 사례들이 빈번했다. 이러한 선배 노동자들의 피 어린 투쟁을 통해 쟁취한 복수노조 금지조항 철폐 투쟁은 노동3권의 진정한 실현을 그 목적으로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복수노조를 허용하는 대신 교섭창구를 단일화 한다는 발상은 결국 노조는 인정하되 단체교섭권의 제한을 통해 노동3권을 제약하겠다는 의도 그 이하고 이상도 아닌 것이다.

교섭창구 단일화를 전제로 한 비례대표제 방식이나 다수 교섭 대표제 방식이나 결국 법으로 단체교섭권한을 제약하겠다는 또 다른 형태의 노동조합운동을 제한하고자 하는 의도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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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결하여 투쟁할까 아님 투쟁하는 동지들만 단결할까 ?

 

단결하여 투쟁할까 아님 투쟁하는 동지들만 단결할까 ?

 

6월 30일,

장마가 시작된다는 일기예보로 인해 장대 같은 장마비에 만전을 기하기 위해, 그리고 솔직히 한판 싸움 준비를 위해 우비며 마스크며 기본적인 장비를 갖추고 전국 노동자 대회가 열리는 청주 체육관 앞으로 달려갔다. 이게 웬걸, 내릴 것 같은 장마비는 온데 간데 없고 한여름 늦더위보다 더 뜨거운 햇살이 내리 찌면서 집회에 참석했던 수많은 동지들의 얼굴에 땀방울을 쏟아 붓고 있는 것은 아닌가?

어째든 경찰 측에 의해 집회 장소 사수를 위해 예정된 15시보다 30여분 늦게 시작된 “비정규직 정규직화 하이닉스-메그나칩지회 투쟁 승리를 위한 전국 노동자 대회”는 5천여 명의 동지들이 뜨거운 햇살이 내리는 청주체육관 주차장을 가득 메운 가운데 시작이 되었다.


사회자 동지의 선창에 의해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구호를 외치며 시작된 전국 노동자 대회는 이 수호 위원장의 대회사로 힘차게 포문을 열었다.

노사정위원회 직권 참여와 비정규직 관련 민주노총 요구안이 인권위 안으로 둔갑시켰다는 선입감 때문에 이 수호 위원장이 또 무슨 이야기를 할까 하는 생각에 뜨거운 주차장에서도 꾹 참고 대회사를 경청했었다.

‘70만 조합원의 이해와 요구에서 노동자 계급의 이해와 요구를 위해 민주노총 조합원 동지들이 단결하고 투쟁해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아무런 힘도 없고 단지 있다면 단결하고 투쟁하는 것뿐이며 노동자 계급의 유일한 무기는 바로 단결하고 투쟁하는 것뿐입니다. “라는 내용으로 시작된 이 수호 위원장의 대회사는 오랜만에 듣는 시원한 내용이었다.

정말 단결하고 투쟁뿐이다. 대의원 대회 의결을 거치지 않았다는 절차상 민주주의의 하자를 차지하더라도 단결하고 투쟁하지 않고 자본과 정권의 새로운 신자유주의적 노사관계 재편에 일조하는 노사정위원회에 참여하고 있는 민주노총의 수장인 이 수호 위원장이 이제는 단결하고 투쟁하자라고 주장을 하고 있다.

변화된 것인지 아니면 또 다른(?) 무엇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째든 민주노총의 위원장이 이제는 단결하고 투쟁하자고 전국 노동자 대회 대회사에서 목 터지게 외치고 있는 현실이 이제는 진짜 새로운 판짜기가 가능하겠구나 하는 순진한(?) 생각을 했었다.

이 수호 민주노총 위원장의 대회사 이후 언제나 힘들고 어려운 조건 속에서나마 항상 우리에게 힘과 투쟁의 의지를 주고 있는 민중연대 상임대표 정광훈 동지의 연대사(격려사인가?)가 진행이 되었다.

노동자, 농민, 학생 등 전체 민중을 다 때려잡는 불량국가는 전 민중의 강철 같은 연대투쟁으로 바꾸어 내야 한다는 민중연대 대표의 연대사는 결국 노동자계급의 대중조직인 민주노총의 단결투쟁과 맞물려 새로운 세상 건설을 위해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 지를 압축적으로 제시하고 있는 듯 했다.


장소 문제로 늦게 시작되고 뜨거운 태양 때문에 압축적으로 진행하고자 했던 진행 팀의 의도 때문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어째든 청주 체육관 앞에서 진행된 전국 노동자 대회는 5천여 동지들의 일사불란 함께 빠르게 진행이 되었다.

전체 대회가 마무리가 된 이후 참석 대오는 충북도청까지 행진 투쟁에 들어갔는데 행진대오 선두가 40여분을 행진했음에도 불구하고 후미 대오는 아직까지 체육관 주차장을 벗어나지 못하는 장엄함을 보면서 새삼 노동자 계급의 당당함을 느낄 수가 있었다.


행진 마무리 시점에서 대회 주최 측인 민주노총은 도청 앞에서 마무리 집회를 진행했으나 여전히 전체 대오가 행진의 과정에 있으면서 약간 어수선함을 느꼈다.


“싸움이 벌어졌어요. 쨍쨍한 마이크 소리 속에서 가냘프게 울려 퍼지는 어느 여성 동지의 외침이 마무리 집회에 집중했던 선두 대오의 동지들을 뒤 돌아 보게 하였다.

대오 중간 중간마다 놓이고 있는 쇠파이프와 함께 전경들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게 돌아가는 가운데 약간의 긴장감마저 돌았다.

“동지들 행진대오 중간을 경찰들이 막았습니다. 대오가 끊기면 우리 동지들이 다칩니다. 경찰들과 대치합시다.” 라는 동지들의 외침에 긴장감속에서 대오의 동지들이 한두 명씩 쇠파이프로 무장을 하기 시작했고 나 또한 주머니 안에 있던 마스크를 쓰고 한판 투쟁을 위한 준비에 들어갔다.


엥 이게 무슨 일인고?

행진 대오 중간에는 경찰에 의해 끊긴 전체 대오를 사수하기 위해 쇠파이프와 최소한의 무기로 무장을 하고 있는데 저 멀리 도청앞 에서는 긴장감과는 무관하게 마무리 집회가 진행되고 있고 노래가 울려 퍼지고 있는 것은 아닌가?


“어? 단결하고 투쟁하자고 했는데, 이제는 우리에겐 단결하고 투쟁뿐이라고 했는데”

불현듯 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이 수호 위원장의 대회사 구절이 울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회 주최 측인 민주노총은 조합원 동지들의 경찰과의 대치와는 무관하게 마무리 집회를 진행하고 있었다.


단결하고 투쟁해야 하는가? 아니면 투쟁하는 동지들이라고 단결해야 할까?

결국 전국 노동자 대회에서 내가 느꼈던 것은 단결하고 투쟁하는 것도, 투쟁하는 동지들이 단결하는 것도 아니라 투쟁하는 동지들이 앞장서서 단결을 조직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아니, 투쟁하는 자만이 단결을 이야기 할 수 있고 투쟁하는 노동자야말로 진정으로 단결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이번 노동자 대회에서 알게 되었다.


결국, 저 멀리 대오 앞에서는 주최 측의 마무리 집회가 진행이 되고 대오 중간에는 쇠파이프로 무장한 노동자 계급의 군대가 자본과 정권의 군대인 경찰들과 대치를 하는 매우 이상한 모습이 설정되었다.


마침 마무리 집행 장소 쪽에서 들려오고 있는 강승규 부위원장 동지의 “노동자들이 대화를 요구하고 있는데 대화마저도 거부하고 있는 노무현 정권은 도대체 누구의 정권이란 말입니까? 라는 내용의 발언과 함께 나의 시야 속에서는 더욱더 힘껏 쇠파이프를 움켜쥐는 동지들의 모습이 보였다.

“참 청주는 덥구나. 라면서 중얼거리는 나를 툭 치면서 ”야 김동지 머해? 가자구 투쟁해야지“ 하는 선배 노동자의 손을 다시금 맞잡고 뛰어가는 나의 모습을 보면서 또 이렇게 노동자 대회는 마무리 되고 있음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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