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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물

 

선물


요즘 남쪽 사람들이 이북으로 선물을 많이 보내는 것을 보면 마음이 흐뭇하다. 옛날에는 사냥하는 사람들과 열매를 채취하는 원주민들이 씨족사회처럼 살았다고 한다. 자기들끼리 선물을 교환하는 식으로 말이다. 이것은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개인의 이익을 위해 사람과 자연을 억압하고 착취하는 것과 매우 대조적이다. 서로에게 필요한 것을 선물로 교환하는 방식이니 말이다.


아프리카 원주민, 남북미 인디언, 멜라네시아와 폴리네시아계 원주민 그리고 에스키모인들은 모두 호혜식으로 물건을 교환했고, 오늘날까지도 자본주의가 그들의 지역에 파고들어가지 않는 한 그 방식을 지켜 나가고 있다.

인류학자들에 의하면 북미 서북쪽 인디언들의 포틀래치(potlatch : 선물을 분배하는 의식)는 참으로 독특하다. 족장은 자기 부족뿐만 아니라 적대관계에 있는 부족까지 초대하여 너그럽게 먹이고, 가죽제품, 말, 구슬, 조개와 같은 귀중한 선물을 나누고 나서도 남는 물건이 있다면 자신들의 관대함을 보여주기 위하여 이것들을 모두 태워버린다고 한다. 이 축제의 최고 덕목은 관대함이며 인색함은 죄로 여겼다. 누가 더 관대한지를 겨루는 것과 같다. 한국에서도 이 같은 제도를 찾아볼 수 있는데 장례식에 오는 사람이면 누구에게나 잘 대접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우리는 선물을 받게 되면 당연히 보답하려는 마음이 생긴다. 그만큼 너그러움에는 힘과 매력이 있다. 보답하지 않으면 비인간적이고 체면을 손상하며 소외를 초래하게 된다. 선물을 교환하는 민족에게는 세 가지 자유로운 정신이 있었다. 곧 주는 것, 받는 것, 보답하는 정신이었다.


이러한 제도를 연구하여 1924년 <선물>이라는 유명한 책을 발간한 프랑스 인류학자 마르셀 마우스에 의하면 선물에는 그것을 주는 사람의 마음이나 기가 붙어 있다고 한다. 그래서 당연히 그러한 정신이나 기가 선물을 준 사람에게로 복귀하려 한다는 것이다. 특히 선물을 받은 사람이 또다시 누군가와 선물을 교환해 더 많은 사람들이 나누었으면 한다. 이렇게 사람들은 보답하지 않으면 벌을 받는다고 생각한 것이다. 누구나 감사하지 않거나 보답하지 않는 것을 가슴 아프게 여겼으며 또한 그것을 싫어한다.

이번에 북한에 식량을 보내는 것은 무엇을 받기 위함이 아니다. 북한 사람들에게서 무엇을 기대하거나 그들이 보답하지 않으면 무슨 손해를 볼까봐 의심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남북한 사람들 모두 같은 마음으로 선물을 주고 있으니까 뭔가 잘 될거라고 기대하는 것이다.


남아프리카의 한 부시맨은 선물제도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최고로 재미없는 것은 선물을 주지 않는 것이다. 서로 좋아하지 않을 때라도 한쪽이 선물을 주면 한쪽은 좀 받아야 하기 때문에 평화가 생길 수 있다. 우리는 가진 것을 준다. 그렇게 같이 살고 있다.”


이러한 제도와 자유시장 경제 논리 사이에 얼마나 큰 차이가 있는지를 알려면 식량 보내기 운동을 보면 알 수 있다. 이 운동에 참여하고 있는 이들은 종교계 지도자들과 보통 국민들이며, 자본주의를 지지하는 정부와 재벌은 느리게 움직이고 있다. 사실 정부와 재벌은 굶주리는 동포를 외면한 채 북한에 대한 투자와 투기에만 급급해 있다. 종교계는 자본주의 돈 문화에 빠져 있는데도 각자 할 일에 대해 일치하고 있다.

예수님은 호혜와 상호부조를 강조하셨다. 밤중에 빵을 부탁하는 이웃이 너무나 귀찮아 도움을 주는 사람 이야기를 하셨는데 무엇보다 놀라운 말씀은 보답을 기대하지 말고 달라는 대로 그냥 주라신 것이다. 이런 정신에 따라서 성인들은 남에게 무엇을 줄 때 그것을 어떻게 쓰는지 알려고 하지 말라고 했다. 불교식으로 말하면 놓고 가는 것이다. 북한 사람들이 우리가 주는 선물을 제대로 쓰는지 남용하는지, 지나치게 걱정하지 말자. 왜냐하면 선물을 어떻게 쓸지 소심하게 따지면 주지 않는 것만 못하기 때문이다.


어제 신문에는 북한 동포를 돕는 이야기가 나오면서 또 다른 한편에 ‘자주포 브라질에 수출 가능성, 한미 내국용 제한 수정 협상’이란 표제가 눈에 들어왔다. 왜 이런 무기가 브라질에 필요한 것일까? 혹시 없는 사람들을 억압하고 땅을 착취하기 위하여, 혹은 아마존 강가에 살면서 선물을 주고받는 원주민을 억압하는 데 그런 무기가 필요한 것일까? 이 무기 판매에서 삼성은 1억6천만 달러를 벌어들일 것이라고 한다. 혹시 미국의 허락 하에 이런 장사가 되는지도 모른다. 아! 우리는 언제나 배울까? 선물을 주고받으며 살았던 우리 조상들 앞에서 서슴지 않고 원주민들을 야만인이라고 하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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