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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5/10/07
    2005년 9월 26일 (월)
    금금
  2. 2005/10/07
    배추
    금금
  3. 2005/10/07
    매산리에서
    금금
  4. 2005/10/07
    무지개, 하느님이 노아와 맺은 계약
    금금
  5. 2005/10/07
    그리고 하느님 보시기에 참 좋았다
    금금
  6. 2005/10/07
    난 기계를 싫어한다
    금금

2005년 9월 26일 (월)

 

2005년 9월 26일 (월) 겁나게 좋은 날씨


추석 때 온 고뿔이 여전히 있다.

몸에 힘이 없고 식은땀이 삐질삐질 난다.

엄마가 집에 안 쓰는 옥매트가 있다며 가져가라고 해서 숙소에 갖다 났다.

옥매트를 깔고 솜이불을 덮고 자는데 조금 있으면 후덥찌근 한 것이 견디기가 힘들다.

이불을 걷어차고 잠시 지나면 다시 몸이 서늘해진다. 그래서인지 밤새도록 선잠이다.

 

누워있는 것에 지쳐서 눈이 떠졌다.

아침 7시다. 속옷은 땀으로 축축한데, 갈아입기가 곤란하다.

코끝으로 찬 기운이 느껴져서 차마 이불을 박차고 일어날 엄두가 나지 않는다.

그러기를 한 시간. 큰맘 먹고 일어나 거실로 나가 속옷을 갈아입었다.

혼자 있으면서 아파 본 사람은 안다. 얼마나 서러운 가를.....

밥을 하고, 차마 먹히지 않는 밥을 입속으로 우겨넣는다.

더 이상 서럽지 않기 위해.....


고한에 내려와서 처음으로 사우나에 갔다.

얼마 전 손님이 와서 몇 번이나 사우나에 가려고 했는데,

시간이 지났거나, 수도가 고장이 났거나 하는 이유로 못 갔다.

사전에 알아본바 골프장에 있는 사우나가 좋다고 해서,

숙소에서 나와 골프장 길로 들어섰다.

 

차를 타고 갈 생각도 했었지만 땀도 뺄 겸 걸어가기로 했다.

여러 번 다녔던 길이라 30분이면 넉넉할 거라 생각했는데 오판이었다.

조금 걸으니 숨이 탁탁 막혀왔다. 거듭 쉬기를 반복한 끝에 한 시간 반이 걸렸다.

옷이 땀에 다 젖었다. 갈아입을 옷도 없는데...


후즐근한 모습으로 사우나를 찾는데, 실수 연발이다.

언제 호텔 사우나를 가봤어야지?

지하에 있겠거니 하고 갔더니 식당 밖에 없다.

다시 1층으로 올라와서 프론트에 가서 “사우나가 어디예요?” 하고 물으니,

남자 직원 눈이 동그랭져서 되묻는다.

 

“나훈아요?”

 

빌어먹을! 내 치아가 아무리 부정교합이라고 하더라도 사우나와 나훈아는 심하잖아!


드디어 사우나를 찾았다.

그런데 프론트에 사람이 없다. 왔다갔다를 한 십 분 했나.

아저씨 한 분이 와서 왜 그러냐고 묻는다. 프론트에 사람이 없다 했더니, 1층 프론트에서 요금을 내고 키를 받아와야 한단다. 다시 1층으로 올라가서 칠천 원을 내고 키를 받아왔다.

처음부터 똑바로 알려줄 것이지 사람 아픈데 똥개 훈련시키는 것도 아니고......


곡절 끝에 들어간 사우나는 내가 다녀본 목간 중에서 젤로 좋았다.

습식과 건식 사우나도 훌륭했고, 나무의자와 나무로 만든 물통은 예술이었다.

역시 호텔 목간이 다르긴 달랐다.

칠천 원이란 요금이 비싸긴 했지만 우트하겠는가. 지역주민은 사천 원이란다(나도 지역주민이라고 했더니 신분증을 보잔다. 신분증에는 서울로 되어 있다고 했더니, 남자 직원 딱 잘라 안 된다고 하더만)


아담한 크기의 사우나에 손님은 달랑 나 혼자 뿐이었다.

느긋하게 반신욕을 하고 잠시 눈을 붙일 생각으로 이리저리 둘러보니 호텔 목간이라 그런가. 누워 있을 만한 곳이 전혀 없다.

그래도 본전은 뽑을 생각으로 감은 머리 다시 감고, 씻은 얼굴 다시 씻었다.


내려오는 길, 멀리 겹겹이 둘러싼 산 능성이 보인다. 계단식 논처럼 깍아 만든 골프 코스는 이질감을 느끼게 하지만 그런대로 봐줄만 하다.

햇빛은 비추지만 따갑지는 않고, 적당히 부는 바람에 파란 필드에는 아줌씨 네 명이

퍼터를 쥐고 구멍을 노리고 있다.

월요일 아침 이유야 어쨌든 간에 사우나 하고 나온 이 몸이나 필드에서 운동을 즐기는 당신들이나 모두 상팔자 중에 상팔자다.


서러운 것이 싫어 며칠 째 똑같은 반찬일망정 점심을 먹었다.

속옷 몇 개를 빨아서 베란다에 내다 걸었다.

 

아! 햇볕이 몸서리 쳐지게 좋다.


집에 있으면 또 잠이나 퍼질러 잘 것 같아. 카메라를 챙겨들고 밖으로 나왔다.

버스를 타고 사북으로 갔다. 사북역에서 이것저것 찍고 있는데, 지나가던 경찰이 뭐하냐고 묻는다. 비디오 찍는다고 했더니 “참 좋은 취미를 가지고 있네요.”한다.

대꾸한답시고 “아저씨, 딱지 끊고 있어요.” 했더니 아무 말도 안하고 그냥 가버린다.


사북 다음에 고한이 나오는데 버스를 타면 10분 정도 걸린다. 걸어서도 한 시간이면 넉넉한 길을 실제로 걸으면 서너 시간은 족히 잡아야 한다.

주변이 온통 도로공사중이라 공사용 덤프트럭이 좁은 길을 다녀서 가다 서다를 반복하기 때문이다. 주말에는 카지노에 오는 차량들이 많아서 걸어 다닐 엄두를 내지 못한다. 평일에도 걸어 다니는 사람은 거의 없다.

꼬부라진 길을 만나면 앞뒤로 차가 오는지 안 오는지를 보고 재빨리 뛰어서 지나가야 한다. 관광버스라도 만나면 크락션을 마구 눌려댄다.


고한 초입에서 아는 사람을 만나 물냉면을 같이 먹고 숙소까지 차를 얻어 타고 왔다.

사실 촬영할 것이 남아 있었지만 성의를 무시하면 안 되지 싶었다.


몸이 나아지면 내일은 증산까지 가볼 생각이다.

도로공사 하는 것을 촬영할 계획이다.


어느 영화였더라? 박중훈이 한 대사 중에 이런 것이 있다.

“밥들 다 먹었으면 이제 슬슬 전쟁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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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추

 

배추


11월 말이면 김장철에 대비해 밭에서 배추를 뽑아낸다. 내가 사는 마을에서는 몇 년 전부터 서울 본당과 직거래 운동에 참여하는 집은 농약을 쓰지 않기 때문에 배추벌레를 손으로 잡아주어야 한다. 이것은 귀찮고 어려운 작업이지만 땅과 사람을 살리려는 운동으로 세상에서 이보다 더 훌륭한 사명이 있겠는가?


대개 대림절 첫 주일에 서울 본당에서 배추를 파는 전통이 생겼다. 올해도 그렇게 하니까 교회 달력의 마지막 주일 목요일부터 배추를 뽑아 쌓아놓았으며, 날씨가 추울 것에 대비해 보온 덮개와 비닐로 덮어두었다.


배추를 토요일에 꼭 내보내기 위해서는 트럭 기사에게 부탁해야 한다. 강원도 기사들은 그곳 배추 수송이 끝나면 조금씩 남쪽으로 내려오는데 이맘때쯤이면 충청남도로 온다.


농사를 짓는 데는 무엇보다도 날씨가 가장 중요한 조건이다. 누구보다도 농사꾼들은 자연에 의탁한다. 왜냐하면 자연의 변덕과 일시적 기분을 잘 알고 있으므로 농사꾼들은 종교가 없더라도 자연을 다스리는 하느님께 믿음을 가지기 때문이다. 물론 낭만적으로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 자연은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다. 날씨가 좋으면 괜찮지만 그렇지 않으면 많은 손해를 보기 때문에 농부들은 자연을 존경하고, 무의식적이라도 하느님께 모든 것을 내맡긴다. 이렇게 땅과 가깝게 일하는 사람들은 알게 모르게 하느님과 가까워진다.


그런데 금요일 밤에 많은 눈이 내렸고 온 세상이 얼어붙었다. 토요일 오후 1,2시가 되어서야 강원도 기사와 트럭이 예정보다 늦게 도착했다. 그런데 그 시간에는 햇볕에 땅이 녹아 트럭이 밭에 들어갈 수가 없었다. 하는 수 없이 트랙터 트레일러로 배추를 싣고 와서 트럭에 배추를 옮겨 싣는 작업을 했다. 기사는 말투도 재미있었고 배추 쌓는 기술도 좋았다. 키가 트고 빼빼한데 점퍼 없이 그냥 검은 바지와 긴팔 스웨터를 입은 모습이 옛날 미국 서부 영화에 나오는 사나이 같았다. 나는 배추를 순조롭게 트럭에 싣는 것을 보고 참으로 모든 직업에는 요령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후 4시쯤 배추를 다 싣고 포장을 덮은 후 그 위로 고무 밧줄을 위로 넣어 ‘어이샤, 어이샤’란 소리와 함께 당기고 묶고 하는 데 날씨가(?) 심상찮게 변했다. 검은 구름이 모여들면서 다시 눈이 내리면서 회오리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그런데 트럭 위에서 밧줄을 묶느라 왔다 갔다 하던 강원도 아저씨가 바람에 날려갈 뻔했다. 다행히 그는 무사히 내려와 직거래 운동을 담당하는 젊은 아줌마와 함께 서울을 향해 출발을 서둘렸다. 그런데 한 가지 큰 문제가 생겼다.


밭에서 약 70미터 떨어진 큰길까지 가려면 좁은 논길을 지나가야 했다. 이 길은 눈이 녹아 질퍽거렸는데 그 위에 다시 눈이 내리고 얼어 매우 미끄러웠다. 조심스럽게 논길을 올라가도 바퀴는 뱅글뱅글 돌아 그때마다 아저씨가 차에서 내려 부지런히 삽질을 해야 했다.


그런데 약 10미터만 더 가면 큰 길이 나오려 하는데 아니, 이제 ‘다 왔다!’ 하는 순간에 트럭이 쭉 미끄러지면서 오른쪽 뒷바퀴가 경사진 논으로 들어가 버리고 말았다. 그러더니 앞바퀴가 들리면서 트럭이 서서히 뒤로 넘어가자 기사 아저씨가 “아줌마, 빨리 내 앞으로 해서 이쪽 문으로 뛰어내리세요. 차가 넘어가기 직전이에요” 하고 소리쳤다.


아줌마가 뛰어내리고 그 다음 기사가 재빨리 뛰어내렸고 트럭 앞 왼쪽 바퀴가 점점 올라가기 시작했다. 앞바퀴가 1미터쯤 들리자 배추 주인 할아버지는 두 손과 발을 후들후들 떨었고 젊은 며느리는 “어머니, 큰일 났어요” 하고 고함을 지르면서 집으로 뛰어 들어갔다. 우리의 주인공 기사 아저씨는 눈이 휘둥그레지더니 숨을 몰아쉬었다. 순간 그는 온 힘을 다해 트럭 옆구리에 나란히 묶인 고무밧줄을 힘껏 당겨 순식간에 밑고리에서 고무밧줄 세 개를 풀었다. 평소에는 도저히 상상할 수도 업는 괴력이었다. 그러자 트럭에 쌓여있던 배추들이 한꺼번에 논으로 쏟아져 내렸고 올라가던 앞바퀴가 천천히 한숨을 쉬듯 ‘턱’하고 내려왔다. 집주인과 아들 그리고 아줌마는 여전히 후들후들 떨고 있었다. 참으로 큰일날 뻔했다.


트럭이 기울어져 더 이상 갈 수가 없자 직거래 담당 아줌마는 서울 본당에 연락해 화요일까지 배추 팔기를 미루었다. 주일날 포크레인으로 트럭을 큰길까지 끌어냈고 다행히 날씨가 풀려 월요일에 배추를 다시 싣고 서울로 올라갔다.


김장철이 되면 많은 사람들이 알게 모르게 고생을 많이 한다. 특히 그 중에서도 노총각인 강원도 아저씨를 잊을 수 없다. 위기의 순간에 재빨리 밧줄을 풀던 그 용기를 말이다!


깨끗하고 싱싱한 배추 냄새. 바쁜 김장철은 한국에서 대림절과 관련이 있다. 이 세상에는 어렵고도 고통스런 문제가 많지만 하느님께서 인간이 되심으로써 우리의 가장 큰 문제, 곧 당신에게서 인간이 떨어져 나간 것을 완전히 해결하셨다. 아기 예수님의 뜨거운 사랑의 열을 받아 우리는 자신 있게 모든 문제와 악을 이겨낼 수 있게 되었다. 이를 굳게 믿자!


*편집자주 : 이날 눈보라 때문에 함께 작업하던 신부님의 눈썹과 수염에는 눈과 고드름이 하얗게 얼어붙었다. 신부님은 집으로 돌아가 군불을 때고 따뜻해진 방에서 몸을 녹이며, 그날 작업을 회상했다고 한다. 가끔 영화 장면 같은 일들이 우리 안에 일어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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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산리에서

 

매산리에서


지난 몇 해 동안 매산리에 살면서 한국 농민들의 문제를 가까이에서 접하게 되었다. 이곳에서 이렇게 살게 된 것은 서울 대신학교를 졸업한 마리아를 알게 되면서부터다. 그 사람은 농민의 권리와 농촌생활의 개선을 위해 조직된 가톨릭 농민회원으로 일하고 있었다. 그녀는 농촌 사람들과 함께 살면서 그들과 함께 생활을 나누는 것이 소기의 목적 달성을 위해 보다 나은 수단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요즈음 농촌에는 점점 빈집이 늘어가는 실더이기 때문에 그녀는 우선 서울에서 약 두 시간 가량 떨어진 곳에 위치한 서해안 지역에 빈집을 구해 살고 있었다. 마침 그 당시에 골롬반회에서는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과 함께 일하는 것을 우리의 목표로 결정했고 한국의 농민들이 이런 부류에 속하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에 나는 마리아의 초대를 받아들이기 위해 필요한 골롬반 선교회 승낙을 받을 수 있었다. 우리가 의도한 바는 50세대 가량 되는 마을 사람들과 함께 살고 일하며 예배드리는 것이었다. 제일 먼저 놀랍게 여기는 사람들은 대체로 나이가 많고 보수적인 신자들이었다. 더욱이 신부가 농촌에 살면서 직접 농사일을 한다는 사실에 그들은 몹시 놀라는 기색이었다.


마리아와 나는 작은 집 주변에 야채를 심고 가꾸었다. 전통적인 흙집이라서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했다. 방바닥은 나무나 볏짚에 불을 지펴서 구들을 데우는데, 추운 겨울에 난방을 하려면 밖으로 나가야만 한다. 중앙난방식과 달리 직접 몸을 움직여 땔감을 마련해야 하고, 가마솥 아궁이 앞에 앉아 불을 지피면서 불의 신비를 접하게 된다.


맑은 공기를 호흡할 수 있고 모터를 이용하여 수정같이 맑은 지하수를 끌어올려 마신다. 식료품은 우리가 직접 재배한 것이나 마을 사람들이 재배한 것을 먹는다. 마을 사람들은 쌀과 김치를 넉넉하게 가져온다. 김치는 여러 가지 양념이 가미된 발효식품으로 배추나 무로 만들며, 밥과 김치 이 두 가지는 한국 식사의 주종을 이룬다. 우리는 해변에 살기 때문에 조개와 또 다른 해산물도 먹을 수 있다. 이곳의 별식으로는 개장국이 유명한데, 여름 삼복더위를 물리치기 위해 필요한 음식이라고 한다. 우리는 이 지역 농민들을 도와줌으로써 그들이 화학비료를 사용하지 않고 살충제나 제초제도 사용하지 않는 유기농법을 보급하고 있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모내기를 한 후에 적어도 세 번 논매기를 해야 하는데, 발이 푹푹 빠지는 논에서 하루 종일 엎드려 논을 매고 나면 여간 허리가 아픈 게 아니다. 그 밖에도 모판과 모상자를 준비해 논에 옮겨 심는다. 그 다음으로는 가을에 벼를 베고, 볏단을 묶고 그것을 모아 타작한다. 그 밖에도 우리는 담배 ․ 당근 ․ 양파 ․ 마늘 ․ 상추 ․ 시금치 ․ 콩 ․ 고추 ․ 토마토를 심고, 배추와 무와 쪽파와 갓도 심는다. 그리고 과수원 일도 했는데 필요 없는 사과 봉오리는 미리 따주는 접과를 하고, 가을에는 사과 따는 일을 도와준다. 몇 년 후에 육체적 노동을 못할 때가 되면 농사일이 나의 늙은 몸에는 힘들겠지만, 지금까지는 튼튼해지고 건강해지기 우해 농사일이 적절하다는 사실은 말할 나위가 없다. 우리가 도시 본당과 인연을 맺은 이후부터 무공해 야채를 직거래할 수 있도록 조정해 주는 일을 도와주고 있다. 주민들은 농촌 일손이 모자라는 때라 더욱이 우리의 도움을 환영하고 있다.


주로 지방 성당에서 행해지는 전례 행사에서는 지방에서 밀려올라간 도시 빈민을 위한 정의와 노동자 ․ 농민 ․ 양심수(적어도 감옥에 2천 명이 있다)들의 정의를 찾아주고, 농업의 가치와 문화의 보존과 진정한 민주주의를 강조하고 있으며, 창조의 순수성 등도 강조하고 있다. 특히 후자가 가장 급소를 찌르는 대목이지만 앞에 언급한 것들은 하느님 나라의 가치다. 농민들이 화학비료를 사용하지 않을 경우 향후 5년간 수확량의 30퍼센트가 감소할 것이다. 이 기간 동안 토양은 휴식이 필요하며, 종자와 환경은 독성 화학품 없이 해충을 견뎌낼 수 있도록 적응해야 할 것이다. 소출 감소는 곧바로 소득 감소로 이어지기 때문에 유기농가는 경제적 타격을 받게 된다. 세계적 추세대로 이런 환경공학적 문제는 시간과 세심한 배려와 교육을 요구한다. 우리는 가정을 돌며 미사도 드리고 있다. 그때 그날의 복음을 토론하면서 그 내용이 오늘의 삶에 적용되며, 농민들의 문제에 적용되는지를 서로 나눈다. 문제는 다양하다. 젊은 층은 적절한 수입이 없어서 도시로 떠나지 않으면 안 되는 실정이다. 도시에 가서도 그들은 도시 빈민의 일부로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면서 호화 주거생활에 제물이 되고, 공해와 도시생활의 모든 윤리적 문제를 물려받게 된다. 시골에 사는 부모들은 자녀들이 교회에 나가지 않고 교회 밖에서 결혼하게 될 것을 우려하며, 자녀들의 구원을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부모들은 가톨릭적 양심에 고심하지 않을 수 없다. 부모들은 교육비 부담은 물론 학교교육의 질에 대해서도 염려스럽게 생각한다. 시골 학교조차도 대학입시를 목적으로 공부를 하고 있어서 좋은 직장을 얻는 데서만 인생이 성공한다는 관점에서 대학입시 공부에 전념하는 교육의 문제점을 우려하고 있다. 이러한 입시 중심의 교육은 협동정신보다는 경쟁을 기본으로 삼는다. 농사짓는 일은 낮게 취급되고 선생들도 학생들이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아 대학 진학을 못하게 되면 부모들처럼 가난한 농부로 전락한다고 위협하면서 아이들에게 열심히 공부하라고 독촉한다. 자녀들 학비 부담이 화학농법을 유기농보다 먼저 택하는 이유가 된다. 농부들은 음주와 도박에 방치되어 있고, 나약한 자화상은 저소득으로 인해 삶에 대한 용기를 저하시키며, 힘든 농사일에 대한 경멸로 인해 농촌은 점점 더 서구화되어 간다. 시골 사람들에게 무슨 일을 하는지 물어보면 그들은 아직 농사를 짓고 있다라고 말하기보다는 놀고 있다라고 말한다. 서구 문명은 텔레비전 뉴스나 드라마나 광고 등을 통해 호화스러운 생활, 사치스러운 의복과 화장품, 증권 거래를 통한 이윤 등 일반적으로 달콤한 생활을 조장한다. 농민들은 단순하고 너그러우며 따뜻하고 친절하며 열심히 일하며 어린아이 같은 외모를 지니고 있다. 이런 성격은 대중매체가 쉽게 무시해 버리지만 농민들의 순박한 모습은 친근한 이웃처럼 매혹적이다. 기계화는 공동작업 정신을 파괴했다. 그 한 예로 돈 많은 사람들은 돈 없는 사람들에게 높은 임대료를 받고 콤바인과 트랙터를 세내어 쓰게 한다. 많이 판매하고 돈을 많이 소유하게 되면 더 많이 소비한다. 농산물 가공 시설이 곳곳에 들어서고 있다. 이제 농촌에는 나이든 사람들만 남아 있어 누가 농사일을 계속할 것인지를 염려하게 되었다. 한국인 4천만 명 중 천만 명이 아직 농촌에 살고 있는데 정부는 2000년대에 가서는 농촌 인구를 7백만으로 감소시키려 하고 있다. 정부의 이런 제안은 농촌에서 살려는 사람들에게 경제적으로 불가능하게 만든다. 정부 농정의 부족으로 농산물 가격파동이 심해 농민들은 무엇을 심어야 하고, 언제 내다 팔아야 할지 항상 걱정이다. 최근 국제 자유무역을 장려하는 우루과이라운드 협약은 도처에서 농민들의 원한을 사고 있다. 대부분 값이 싼 수입 농산물은 한국 농산물 값과 생산을 하락시켰다. 부유한 업자들은 유통과정과 판매에서 엄청난 이윤을 얻고 있다. 식량 자족도는 1960년대에 80퍼센트에서 오늘의 35퍼센트로 하락한 까닭은 변모되어 가는 식생활과 농산물 수입에 기인한다. 한국은 거의 모든 수입을 미국에 의존하고 있고, 이 모든 심각한 결과로 마치 미국 경제 속국 같은 인상을 주어 지역적 자유와 독립성에도 심각한 영향을 미친다. 서방의 밀가루와 육류제품 선전과 시장 확보가 쌀과 김치와 같은 전통적 식품 소비를 저하시켜 농민들의 경제 사정을 크게 악화시켰으며, 모든 문화적 측면에 해로움이 극심하다. 내가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김치 소비가 급격히 줄어들어 매년 몇 십만 평의 밭에서 배추가 썩어가고 있다.


도시 소비자들도 이제는 한국동란 당시 미국 병사들처럼 김치 냄새를 불평하고 있다. 과자류 ․ 빵 ․ 사탕류 ․ 음료수 ․ 햄버거 ․ 케첩 ․ 프렌치프라이 등에 맛들이며 자라난 아이들은 밥과 김치 맛을 잃어버렸다.


고도로 대기오염을 유발시키는 각 공장은 농촌 지대로 이전중이며, 화공약품으로 오염된 수질을 더욱 악화시티고 있다. 공기와 수질은 오염되었고 도시 문화가 농촌 전통 문화속으로 침투하고 있다.


농지는 점점  골프장 ․ 휴양지 ․ 고속도로로 흡수되어 가면서 농민들에게는 만족을 주지 못하지만 특권층에게는 만족을 주고 있다. 도시에 비해 농촌 의료시설이 미흡한 사실도 농민들을 걱정스럽게 한다. 이사야 예언자는 억압에서 멀어진 예루살렘을 예언하면서 “너희는 두려워할 것이 아무것도 없다.”(이사 54,4 참조)라고 했다. 우리도 이렇게 실현되도록 기도한다. 견고하게 번창하는 농촌사회와 이런 사회적 가치 없이는 진정한 민주주의는 지속될 수 없다라는 것이 토머스 제퍼슨의 신념이었다. 나는 농촌에 머물러 있는 동안 이런 신념이 실현되기를 바란다. 매산리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하느님의 거룩한 뜻과 농촌생활 개선을 위해 전국농민운동에 가입했다. 우리는 모든 자연과 모든 생명체의 창조주이신 하느님과 함께 깨끗한 식품생산에 헌신할 복음 공동체를 구성하고자 한다. 우리는 성서가 가르치는 대로, 그리스도의 몸이 상징하는 대로 그들의 기쁨과 슬픔을 함께하고자 한다. 이 지역 본당 신부님은 우리의 노력을 평가하고 협조해 준다. 올해 우리는 본당에 소속된 6개 마을공소에 작은 성서 모임을 구성하려고 한다. 농촌의 미래는 불투명하며 농민들은 개선을 요구하는 농촌정책을 제시했으나 최루탄 가스를 맞았고 투옥되었다. 일반적 불만은 절망을 가져온다. 사람들은 뛰쳐나가 무엇이든지 가장 적절한 방안을 모색하고 싶어 한다. 보수적인 사람들은 가장 좋은 방법은 기도를 해서 하늘을 움직이는 것이고, 세상 흐름과 합세하는 편이 더 낫다고 주장한다. 그렇지만 예수님은 부활하셨고 성령이 활동하시니 우리는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도 아직 농촌에 남아 있는 남녀노소는 예수께서 살아 계시고 갈릴래아로 그들보다 먼저 가신다는 것을 믿고 있다.


* 편집자주 : 이 글은 88, 89년 농민들의 수세싸움 ․ 고추싸움 ․ 우루과이라운드 저지 투쟁과 같은 농민들의 생존 투쟁이 정점에 올랐을 때의 상황이다. 신부님은 농촌 현장에 살았기 때문에 현장에서 농민들이 회의하고 싸움을 준비하고 투쟁하는 그 과정에 항상 함께했다. 그리고 이미 그 이전부터 유기농에 대한 중요성을 계속 강조해 왔다. 아무도 귀기울이는 사람이 없어도․․․․․․․. 그 후 10년 동안 농촌은 빠른 속도로 해체되었고, 한국 농업은 주변 산업으로 밀려나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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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 하느님이 노아와 맺은 계약

 

무지개, 하느님이 노아와 맺은 계약


인류를 파괴시킨 다음 하느님이 노아와 약속하시기를 “이제 나는 너희와 너희 후손과 계약을 세운다. ․․․․․․나는 너희와 계약을 세워 ․․․․․․ 다시는 홍수로 땅을 멸하지 않으리라. ․․․․․․ 내가 그름 사이에 무지개를 둘 터이니, 이것이 나와 땅 사이에 세워진 계약의 표가 될 것이다.” 하셨다.(창세 9,9-13) 우리는 이 아름다운 무지개를 볼 때마다 이 계약을 기억하라는 지시를 받았을 뿐 아니라 무지개를 복의 표시로 여긴다.

어렸을 때 무지개 끝에 금항아리가 있다는 속담을 자주 들었다. 또 사람들은 무지개를 행운이라고 했다. 나는 미국 나이아가라 폭포 가까운 곳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그래서 그곳 폭포에서 떨어지는 이슬에서 생겨나는 무지개를 자주 보면서 자랐다. 햇빛이 이슬방울에 반사됨으로써 수많은 색깔을 내는 것이 바로 무지개다. 색채는 셀 수도 없을 정도로 미묘한 차이를 가지고 서로 흡수하고 침투하기도 한다. 얼마나 신비스럽고 놀라운 일인가!

무지개는 온 창조와 비유될 수 있다. 천지만물은 하느님의 아름다움과 빛을 반사한다. 예를 들면 이 세상에 살고 있는 사람 중에 똑같은 사람은 없다. 구별은 어렵지만 일란성 쌍둥이라도 똑같을 수는 없다. 성질과 성품뿐만 아니라 몸을 구성하는 세포 또한 얼마나 다른지 모른다. 솔직히 세포가 무지개의 수많은 색깔처럼 똑같을 수는 없다. 세포를 구성하는 원자와 핵산(DAN)도 마찬가지다. 이처럼 각 민족의 말과 문화에도 차이가 있다. 필리핀에서는 한 2백 가지 말을 쓰고 있고, 한국은 한 가지 말을 하고 있지만 지방마다 방언이 있고 악센트와 말씨가 다르다. 하지만 무지개처럼 서로 흡수하고 침투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지도를 보고 똑 이 동네에서 저 동네까지 전라도 말을 한다고 할 수는 없다. 문화도 마찬가지다. 식사 ․ 예의 ․ 옷 ․ 음악 ․ 오락 ․ 춤 등은 공통적 인간성을 버리지 않으면 서로 미묘하게 다르다. 모든 사람과 민족, 말과 문화는 하느님의 무한한 앎과 좋으심을 유한하게 번쩍번쩍 반영하여 나타내는 것이다.

생태계는 어지러울 정도로 피조물의 규모 ․ 질 ․ 양 ․ 모습 ․ 색깔 등에 차이가 있다. 정원의 장미들도 색깔은 같아도 모양이 다르듯이 말이다. 이 모든 창조물은 서로에게 음양으로 여향을 미친다. 밤과 낮 사이에는 서서히 밝아오고 어둠이 내린다. 누가 봄의 시작을 과학적으로 자세하게 가르칠 수 있는가? 잎이 나고 떨어지고 흙이 되고 다시 자라듯6 모든 것은 놀랄 정도로 상호 조화를 이룬다.

그런데도 우리는 모든 것을 과학적으로 보는 데만 익숙해져 자연의 이 놀라운 능력을 많이 잃어버리고 사는 것 같다. 단지 유전공학적으로 아름답고 똑똑한 인간으로만 만들려고 한다. 과학적 농사와 축산으로 식물과 동물을 표준화하려고 한다. 하느님이 만들어 주신 이 지구를 시멘트와 아스팔트로 포장하려고 한다. 문화도 마찬가지다. 문화도 한 가지로 통일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모든 것을 획일화하려고 한다. 서울에 가든지 카이로에 가든지 뉴욕에 가든지 비슷비슷하다. 여러 가지 말을 쓰는 나라의 정부에서는 억지로 표준어를 배우게 한다.

이처럼 무지개를 밋밋하게 하고 다양한 생태계를 뭉개버리는 인간의 어리석음을 깨닫게 하는 사례가 많지만 한 가지만 예를 들어보겠다. 아산만 근처에 사는 노인들의 옛날이야기다. 공업화와 개발 이전 아산만에는 수없이 많은 종류의 물고기가 살았다고 한다. 마치 물고기들의 이름은 천주교회에서 쓰는 성인의 호칭기도만큼이나 길었다. 계절에 따라 새로 들어오는 물고기도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만을 이루는 갯벌을 간척함으로써 많은 논이 생겨났지만 물고기는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지금은 쌀 농사만으로는 살 수 없기 때문에 아산만 주변의 노인 양반들은 발전과 개발에 대해 다시 생각한다고 한다. 지금도 그 바다에 물고기들이 살고 있다면 어떨까?

무지개에서 여러 색채를 빼버리면 아름다움은 그만큼 없어져 마지막에 흰색과 검정색만 남게 된다. 이것은 초등학교 1학년 꼬마 아이들도 아는 사실이다. 그러나 흑과 백은 진짜 색깔이 아니다. 공해 ․ 윤리 ․ 교육 ․ 문화 ․ 경제문제로 골치 아플 때는 하느님이 노아와 계약을 맺으셨던 무지개를 기억하자. 이 계약은 하느님께서 사람과 맺으셨을 뿐만 아니라 땅과도 맺으신 계약이다. 무지개가 흐릿하면 그만큼 하느님의 아름다움과 선은 그 빛을 잃게 된다. 그렇게 되면 우리에게 무엇이 남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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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하느님 보시기에 참 좋았다

 

그리고 하느님 보시기에 참 좋았다


자연세계는 서로 공존하기 때문에 아름답고 경이롭다. 봄날 잎사귀에 반짝이는 햇빛은 우리의 눈을 즐겁게 해준다. 자연이 내는 소리. 부드러운 빗소리로부터 새들의 합창까지 대부분의 소리는 우리를 차분하게 해주는 참 소리다. 도시에서 들려오는 귀를 찢는 듯한 비명에 가까운 소리가 아니라 자연을 감싸고 있는 것들―공기 ․ 물 ․ 햇빛 ․ 흙 그리고 다른 창조물은 이지구에서의 우리 삶을 지탱해 준다. 우리는 시인 ․ 음악가 ․ 미술가 ․ 과학자로부터 자연에 관하여 많은 것을 배워야겠다. 그리하여 아이들에게 자연의 신비를 가르쳐 자연의 심오함을 이해하고 친숙하게 지낼 수 있도록 이끌어야겠다. 이 섬세한 자연교육은 자기들이 살고 있는 지역에 대한 공부로 시작되지만 점점 자라면서 다른 나라, 다른 민족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도록 해야 한다. 자연과 친숙해지려는 우리의 이러한 노력에 유다―그리스도교 전통이 주는 지혜의 풍요로움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먼저 무엇보다도 성서는 자신의 창조를 사랑하는 인격적 하느님에 의하여 세상이 창조되었다는 사실을 강조한다.(창세 1,1 참조) 특히 이 사실은 중요하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고대 중동 아시아 문화는 지구가 썩어 죽어가는 것이므로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악령에 의해 창조되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은 오늘날 그리스도인에게서도 볼 수 있다. 그래서 그들은 일말의 양심의 가책도 없이 지구를 파괴하고 소모시키는 데 한몫을 하고 있다.

성서는 열렬하게 세상이 악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창세기 1장 1-25절에서 하느님은 당신이 창조한 것을 보고 끊임없이 관상하시며 “하느님께서 보시니 참 좋았다”고 하셨다. 또한 성서는 우리 일상생활에서 체험하는 하느님이 우주의 근접하기 어려운 어떤 곳에 숨어 계시지 않는다고 확신한다. 우리가 시편 저자처럼 신앙의 눈으로 본다면 창조세계는 하느님의 현존과 함께 살아 있는 세계로 보게 될 것이다.


        하늘은 하느님의 영광을 속삭이고

        창공은 그 훌륭한 솜씨를 일러줍니다.

        낮은 낮에게 그 말을 전하고

        밤은 밤에게 그 일을 알려줍니다.(시편 19,1-2)


바오로 사도 역시 창조세계를 통하여 하느님을 느끼고 깨달을 수 있다고 했다.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창조하신 때부터 창조물을 통하여 당신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과 보이지 않는 특성을 나타내 보이셔서 인간이 보고 깨달을 수 있다고 있게 하셨습니다.”

(로마 1,20)

어떠한 자연환경도 하느님의 모습을 감싸고 있는 베일은 매우 얇다. 예를 들면 이스라엘 민족은 사막에서 하느님과 씨름하고 시험받는 동안 그분의 백성으로 자라났다. 어디를 보아도 지평선뿐인 광활한 모래땅 같은 자연의 냉혹함, 그리고 밤하늘의 침묵과 광대함은 이스라엘 민족과 하느님과의 만남을 원활하게 해주었다. 인간의 정신과 마음을 꼬드겨서 집요하게 하느님과의 만남을 가로막는 것들은 사막에서 거의 찾아볼 수 없다.(호세 2,14 참조) 그러나 사막만이 하느님을 만날 수 있는 유일한 자연은 아니다. 엘리야는 호렙산으로 가는 순례길의 한 동굴에서 작은 소리를 들었다.(1열왕 19,12-14 참조) 또 옛날 수도자들은 고도에서, 산꼭대기에서, 숲속에서, 바다 한가운데서 하느님을 발견했다.

하느님과의 만남이 이루어지는 이 모든 자연환경은 인간의 정신을 다스리고 성숙하게 한다. 이처럼 자연은 하느님의 실제에 우리 마음을 열게 해줄 뿐 아니라 우리의 육체를 지탱해 주고 활기를 불어넣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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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기계를 싫어한다

 

난 기계를 싫어한다


며칠 전 남부 터미널에서 송탄 가는 버스를 타려고 하는데 사람이 표를 파는 것이 아니라 기계가 팔고 있었다. 몇 분 동안 이리저리 살펴보고 나서야 천 원짜리 두 장을 차례로 요금 구멍에 넣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송탄 누름 단추가 있고 그 옆에 두 사람 세 사람 등 단추가 있어 표를 한 장만 사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라 망설였다.

나는 약간 똑똑하기 때문에 표하나만 사려면 송탄 누름 단추만 누르면 된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 다음에 천 원짜리 두 장을 주머니에서 꺼내 하나씩 요금 구멍에 넣었는데 첫 번째 것은 순조롭게 들어갔고, 두 번째 놈은 어쩐지 들어갔다 다시 나왔다. 다시 넣었지만 또다시 나왔다. 몇 번을 만복한 다음 나는 공학박사는 아니지만 혹시 돈이 삐둘어져서 그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천 원짜리를 살펴보니까 아니나 다를까, 한쪽이 접혀 있어 그것을 바르게 편 다음 다시 넣으니까 잘 들어갔다.

5분 정도 지나서야 나는 마음 놓고 한숨을 쉬며 표가 나오는 기적을 기대했다. 그러나 표는 나오지 않았다. 이 엉뚱한 괴물이 두려웠지만 나는 화가 나서 주먹을 힘껏 쥐고 기계를 두드렸다. 옆에 있던 사람들이 큰소리에 놀랐는지 나를 이상하게 쳐다보았고 순간 내 행동은 부끄러움으로 변했다. 그리고 거스름돈이 땡, 땡, 땡, 3백 원만 나와야 하는데 7백 원이 나왔다. 기계가 미안해서 많이 주었나?

그런데 표가 나오는 구멍은 텅 비어 있었다. 울고 싶은 심정으로 ‘아이고’를 중얼거리는데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오듯이, 파란색 상의에 넥타이를 맨 직원이 나타나 기계처럼 별 표정없이 주머니에서 엄청나게 많은 열쇠 꾸러미를 꺼내 기계 앞판을 열어 떨어지지 않은 표를 무표정하게 나에게 건네주었다.

이렇게 되고 보니 나는 너무 당황스럽고 부끄러워 죄인처럼 빨리 터미널을 떠나, 죄를 저지른 자리를 떠나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고속도로로 빠져 나갈 때쯤 마음이 조금씩 가라앉았다. 나는 어릴 때부터 기계를 다루는 데 소질이 없었는데 자동판매기가 기계를 싫어한다는 걸 아는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화가 나서 쾅쾅 쳤지만 다음에 남부 터미널에 가면 어떻게 기계에 사과해야 할지, 혹은 기계가 생명이 없기 때문에 때려도 죄가 되지 않는지 지금까지 궁금하다. 또한 거스름돈보다 4백 원이 더 많이 나왔는데 그것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누구에게 갚아야 하는지도 조금은 걱정이 된다. 하여튼 나는 기계를 싫어한다.

나는 시골에서 살고 있는데 시골도 시끄럽다. 기계 때문이다. 트랙터는 경운기보다 덜 시끄럽지만 너무나 무거워 논두렁에 깊은 바퀴자국과 함께 길을 망쳐놓고 무너뜨린다. 트랙터자국 때문에 자전거 몰기가 힘들어지고 걷기조차 불편하다. 트랙터가 너무 무거워서 논밭에 들어가면 드러내 놓고 흙의 생명을 질식시킨다고 한다.

몇 주일 전부터 농부들이 논을 갈고 있었는데 한 논에는 물이 많았기 때문에 경운기나 트랙터가 들어갈 수 없었다. 할 수 없이 농부는 소를 끌고 쟁기를 지게에 지고 나섰다. 마을 가게에서 이 모습을 보면서 나는 이것이 마지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게 주인은 사진기를 재빠르게 들고 나와 지나가는 농부와 소를 찍었다. 그도 이 광경이 마지막임을 알고 기록으로 남겨두려는 것 같았다. 한 시대가 지나갔다는 생각이 들면서 마음이 좀 섭섭했다.

나중에 그 농부와 옛날식으로 논을 가는 것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가 소를 이웃에서 빌렸으나 몇 년 동안 일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소는 논에 들어가 말을 잘 듣지 않았고 ‘기술’이 떨어져 쟁기 끄는 요령이 거의 없어졌다고 한다. 사람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하여튼 시끄럽다. 지금 논에 나가면 자가용 ․ 오토바이 ․ 트랙터 ․ 트럭 ․ 갤로퍼 ․ 무쏘 등이 다니고 있다. 모랫바람이 심한 곳은 먼지가 솟아나고 사막처럼 길 앞을 보지 못할 정도다. 곳곳에서 포크레인이 땅을 파고 서해안고속도로 공사로 덤프트럭이 시끄럽게 왔다 갔다 하며, 레미콘 ․ 대형 덤프트럭이 동네나 학교 앞을 직주하는 걸 qrhh 있노라면 ‘아! 참으로 기계는 사람보다 중요하고 귀중한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제 모내기와 뜬모가 끝났으니 조행해질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웃 밀밭에서 밀을 쪼아먹는 참새 떼를 향해 폭탄 터지는 소리를 내는 기계를 세워놓고 새벽부터 펑! 펑! 펑! 요란한 소리가 들려온다.

오, 하느님! 우리에게 인간을 위하여 기계를 쓰기 위한 지혜를 주시고 욕심과 과속에서 우리를 구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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