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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 울리는 ‘거꾸로 주택정책’


영구임대주택은 건설 중단… 국민임대주택은 임차료 비싸

 

 

 

《2일 서울의 대표적인 쪽방촌인 용산구 동자동의 한 골목길. 어른 한 사람이 겨우 지나갈 정도의 좁은 골목길을 따라 9.9m²(3평) 정도의 쪽방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곰팡이가 핀 쪽방 안에서는 퀴퀴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A(71) 씨가 살고 있는 쪽방에는 먹다 남은 사과 조각과 물병, 전기밥솥 등이 이부자리 주변에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10년 가까이 중풍으로 고생한 A 씨는 “정부에서 보조금 32만 원을 받아 월세 15만 원을 내고 나머지 돈으로 근근이 생활하고 있다”고 말했다. 경기 과천시에 있는 비닐하우스촌인 ‘꿀벌마을’에 사는 B(45) 씨는 자녀들을 학교에 보내기 위해 주소를 서울 서초구 방배동으로 옮겼다. 꿀벌마을이 불법 주거지로 간주돼 2004년부터 주소가 없어지고 전기와 수도 공급마저 끊겼기 때문이다.》

 

 

 

B 씨는 “위장전입 사실이 탄로 날까봐 간혹 아이가 돈이 떨어져도 친구들한테 차비도 못 빌린다”며 “3시간씩 걸어 남태령 고개를 넘어 집에 오는 아이를 보면 가슴이 미어진다”고 말했다.

 

현 정부가 서민의 주거안정을 주요 국정과제로 추진해 왔지만 오히려 극빈층을 중심으로 한 상당수 서민들은 정부의 주거복지정책에서 소외되고 있다. 대한주택공사가 짓고 있는 국민임대주택은 임차료가 비싸 ‘그림의 떡’이 된 데다 영구임대주택은 건설이 중단됐기 때문이다.

 

○국민임대주택 ‘그림의 떡’

 

주공이 짓고 있는 국민임대주택은 전용면적 36∼59m²(약 11∼18평) 규모로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의 경우 임대보증금은 1387만∼3446만 원, 월 임차료는 13만1000∼26만8000원 선이다.

 

관리비까지 포함하면 면적이 큰 아파트는 주거비가 40만 원까지 올라가기 때문에 서민들은 높은 임차료를 감당할 수 없어 허덕이고 있다.

 

주공 산하 주택도시연구원이 올해 상반기 내놓은 ‘2006년 국민임대주택 입주자 주거실태조사 결과 보고서’에 따르면 ‘현행 임차료가 부담이 되느냐’는 항목에 대해 조사 대상의 57.2%가 “부담하기 힘들다”라고 응답했다.

 

반면 임차료가 싼 영구임대주택에는 입주대기자가 몰리고 있다. 건교부가 2일 국회 건설교통위원회 김석준(한나라당)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달 말 현재 전국의 영구임대주택 입주대기자는 7만1124명, 입주대기 기간은 전국 평균 23.7개월이었다.

 

영구임대주택은 1993년 공급이 중단돼 재고물량이 19만77채로 제한돼 있는 데다 입주 조건이 까다롭다. 하지만 월평균 임차료가 4만3000원가량으로 싼 탓에 한 번 입주하면 좀처럼 나오지 않으려고 한다.

 

○거꾸로 가는 주택정책

 

건교부가 올해 5월 내놓은 ‘쪽방·비닐하우스촌 주거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정부가 주거 문제에 대해 어떤 대책을 마련했으면 좋겠느냐”는 항목에 대해 쪽방 거주자의 56.2%와 비닐하우스 거주자의 72.7%가 “저렴한 공공임대주택 제공”을 최우선 순위로 꼽았다.

 

그런데도 정부와 주공은 임차료 부담이 상대적으로 큰 국민임대주택 건설 정책을 고수하고 있다. 2003년부터 10년간 100만 채를 짓는 계획을 현재 추진 중이며, 2013년부터 2027년까지 100만 채를 추가로 짓는 방안도 갖고 있다.

 

이 때문에 일부 지방에서는 미()임대가 급증하는 등 부작용이 속출하고 있는데도 주공은 물량 채우기식 공급 정책을 밀어붙이고 있다. 더욱이 주공이 지방자치단체의 반발을 이유로 국민임대주택의 크기를 계속 키우고 있어 ‘서민에 부담 주는 서민주택’이라는 지적도 많다.

 

건교부가 올해 5월 작성한 ‘국민임대주택 미임대 해소 및 예방대책’ 보고서에서도 “임차료 및 관리비 부담이 큰 신규 아파트 건설 위주의 공급 방식으로 인해 최하층이 주거복지정책에서 소외되고 있다”고 시인할 정도였다.

 

이것도 모자라 정부는 수급 조절용으로 사용한다며 올해부터 2017년까지 중형 규모의 비축용 임대주택 50만 채를 추가로 짓는 계획까지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가 중산층을 위해서까지 중형 임대주택을 짓는 것이 적절한지에 대한 논란이 일면서 올해 초 국회에 제출된 임대주택법 개정안이 아직도 통과되지 못하고 있다.

 

 

동아일보 11/3 이태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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