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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살이'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08/11/24 잊혀질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2. 2008/02/25 새해에는 절대 일어나선 않되는 일 (4)

잊혀질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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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질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이땅에 여러분들의 끊임없는 수고가 있기에 그나마 작은 희망은 꺼지지 않는가 봅니다. 그러나 잊혀져 가는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나 또한 잊혀질 것 같은 두려움이 엄습해 올때 구속노동자후원회로부터 편지와 함께 보내준 후원은 절망의 망망대해에서 작지만 큰 구조의 손길처럼 느꼈습니다” - 서울구치소에 수감된 최용근님의 글

 


몇차례에 걸쳐 이곳에 내 빵살이를 실었더니, 나름 인기가 있었다는 천윤미 기자의 감언이설에 속아 다시 옥살이를 떠올려 봅니다. 그러면서 그동안은 쓰지 않았던 옥살이 동지들의 아픔을 써볼까 합니다.

거의 대부분의 동지들이 옥살이동안 밖에 있는 동지들이 걱정할까봐 면회장에 나와서는 밝은 모습을 하고 걱정 말고 힘내라며 용기를 북돋아 줍니다. 쪽 팔릴까봐? 아님 힘든 모습을 보이면 밖의 동지들이 더 힘들어 할 까봐? 아님 정말 즐거워서? 셋중 하나일테지요. 어떤 마음일지는 동지들이 판단해 보시면 됩니다.
그나마 저는 참 행복한 빵살이를 했습니다. 지역에서의 활동도 오래했고, 나름 동지들이 끔찍이 생각을 해주어 거르지 않고 면회를 와주었습니다. 그런데도 돌아서서 방으로 돌아가는 길은 천길 만길 이었습니다. 특히나 제가 있던 청주교도소 1사는 2층 복도 끝에서 보면 면회를 마치고 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괜찮은데 면회를 마친 나이든 노모가 축 쳐진 어깨를 하고 돌아가시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하루종일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던 것이 사실입니다.

처음 청주흥덕서에서 청주교도소로 이감되어 가던 날. 당당해 지자던 다짐과는 달리 훤히 켜진 형광등(교도소는 제소자의 자해행위 등의 방지를 위해 하루 종일 불을 켜 놓는다) 밑에 눈을 감고 있노라면 주마등처럼 많은 것들이 지나갑니다. 그러면서 그 좁아터진 방구석에서 가슴터질 듯한 분노와 질식속에 잠을 이루지 못합니다. 그러기를 며칠이 지나서야 좀 안정이 되었습니다. 물론 그 사이 분출하기 위해 단식을 하고 그렇게 싸워나갑니다.
하루하루의 단식 역시 참 우울했었습니다. 단식을 한다고 아무것도 달라지는 것 같지도 않고, 사실 단식이란 것이 자신과의 싸움이지만 반드시 상대는 있는 법, 저놈들이 쪼는 기세라도 보여야 할 맛이 나는 것이니까요. 아무런 변화가 없어 보일때는 혹시 질까 하는 두려움이 엄습했었습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이게 저놈들이 소위 ‘간’ 보는 과정이랍니다. 그래 니가 공안수라고 깝치는데 얼마나 버티나 보자. 제풀에 꺽이겠지... 이 고비를 넘어서면 공안수로서의 대접을 받는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일반 잡범취급 당하며 절절매야 한답니다. 다행이 저는 그 선을 넘었나 봅니다.

공안수가 항상 넘쳐나는 서울구치소를 빼고는 많은 우리 동지들이 빵투쟁에 대한 것을 잘 알지 못합니다. 집단이 아닌 홀로 생활을 하다보면 우왕좌왕 하다가 억울하게 살아가기도 합니다. 특히나 각오한 빵살이가 아닌 집회 투쟁 등을 하다 현행범으로 들어온 동지들은 더 합니다. 그럴때 주위에서 제대로 빵 수발을 해주어야 합니다. 그렇지 못하면 빵투쟁은 고사하고, ‘내가 잊혀져 가고 있다’는 심각한 우울증에 빠져들기도 합니다. 밖에서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할 지라도 안에 있는 동지들의 크건 작건 그 두려움이 항시 존재합니다. 미결수와 아내와 아이들이 있는 경우 더욱 심하겠지요. 이런 어려움 속에 교도소 측의 간보기에 걸려들면 질 수 밖에 없고 험란한 빵살이가 이어집니다. 그러면 우울증이 스스로의 투쟁에 대한 회의와 더 나아가 패배주의로 스스로를 죽여갑니다. 실제 같은 교도소에 있었던 동지가 심각한 우울증과 패배주의로 출감이후 운동을 떠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밖에 있는 동지들은 당신이 혼자가 아니라는, 두려움을 없애주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동지들의 투쟁은 정당했고, 이렇게 우리는 밖에서 동지에게 빚지지 않게 열심히 싸우고 있노라고. 동지를 믿고 힘있게 빵투쟁 하라고... 스스로 가슴속에 다짐만 말고 보여주셔야 합니다. 면회가고, 힘들면 요즘 인터넷 빵빵 터지지요. 법무부 홈페이지가서 인터넷 서신 한통씩 보내시면 됩니다. 서신 한통 한통이 안에 있는 동지들에게는 큰 힘이 됩니다. 절망의 교도소가 희망의 노동자 학교가 됩니다.
이 ‘잊혀져 간다’는 두려움만 극복하면 빵생활 그리 힘들지는 않습니다.

제가 이글을 쓰는 이유는 이후 빵에 들어갈 동지들에게 헤메이지 않을 길잡이를 조금이나마 제시하고자, 그리고 밖에 있는 동지들에게 부탁을 드리고자 함 입니다. 양손을 다 뻗을 수 없는 0.75평 독방에서 살다보면 모든 것이 딱 그만큼입니다. 보고 듣고 말하고 생각하는 것이 모두 딱 그만큼입니다. 설혹 안에 있는 동지들이 편협한 이야기를 하더라도 섭섭해 말고 이해해 달라는 부탁을 드리는 겁니다. 아! 출감해서도 사람마다 다르지만 적응하는 시기에도 이해하려고 노력 바랍니다. 저는 나와서 6개월동안 편협한 사고로 인해 주변 동지들 참 힘들게 했습니다. 동지들이 잘 받아주어 다행이었습니다.

오늘도 어렵고 힘든 빵살이를 하고 있는 모든 동지들에게 관심과 동지애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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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1/24 12:54 2008/11/24 1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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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에는 절대 일어나선 않되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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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에 절대로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

옥살이라는 것. 감옥 안에 있는 사람이나 밖에 있는 사람이나 고통이다.
안에 있어봤으니 안에 있는 사람들의 심정 한번 이야기 해봐야겠다. 사실 안에 있는 사람들의 경우 밖에서 걱정할까봐, 약해보이기 싫어서, 당당해 보이기 위해서, 다들 “뭐 휴양하는 셈 치지” 이러며 밖에 있는 사람들을 안심시킨다. 실상은 나가고 싶은 맘이 굴뚝이지만 말이다.

그러면서도 나름대로 공안(양심)수라며 당당함을 유지하기 위해 교정당국과 거의 매일 촉각을 곤두세우며 소위 빵투쟁을 벌여나간다. 사실 그 안은 나 빼놓고는 다들 적이라고 보면 되니까 말이다. 교도관들의 경우 한순간이라도 꺾이면 계속 꺾으려고 하는 게 본성이기 때문이다. 소장이나 보안과장이 바뀔 때면 꼭 한판 붙기 마련이다. 뭐 결과는 뻔히 우리들의 승리지만... 피 말리는 기싸움을 통해 자신의 권리를 지키고 넓혀나가는 게 그 동네의 생리다. 남들은 뭐라 할지 모르지만 이런 투쟁을 통해 타 제소자 보다 많은 권리를 누리는 게 사실이다. 교도관들이 나를 부를 때 ‘넘버 쓰리’라 불렀다. 소장, 보안과장 다음으로 김용직이라고...

빵생활은 긴장의 연속이다. 교도관들과 제소자들과의 기싸움. 그리고 8.15라든지 한두 달 빨리 내보내 주는 가석방 제도하의 유혹...
참 재수 지지리도 복 없는 빵살이를 했다. 남들은 8.15 때 남은 형기 절반을 감형 받고, 한 달 가석방을 먹어 7개월을 빨리 나왔느니, 12. 25 성탄특사로 3개월을 빨리 나왔느니 하지만 난 꼬박 1년 6개월 만땅을 다 채우고 나왔다.

정말 기억하기 싫은 일이지만 만땅을 채운 이유가 있다. 뭐 언론이란 놈들 다 그렇지만 우리 투쟁에 온통 깽판을 부리는데... 이런 건 다 참고, 아니 오히려 제소자들에게 실상을 알리고 하면 되는데, 안되는 게 있다. 바로 노동조합 간부들의 비리다.

나 역시 그 놈의 한 달 정도 더 빨리 나갈 수 있다는 가석방 심사란 걸 받았다. 청주보호관찰소에서 나왔다는 놈이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더니 덜컥 물어본다. “민주노총 간부들의 월급은 얼마나 되나요?” “많이 올라서 130-140만원 정도는 될 걸요” “그거 받아서 생활이 되요?” 하며 걱정을 해 준다.
그러더니... “아! 민주노총 간부들은 뇌물 받지!”

강승규 사건이다. 아킬레스건을 찔렸다. 가석방을 위해서라면 꾹 참아야 하는데, 이 놈의 성질머리가... “이런 씨×놈이. 뭐라고 야 이 개×끼야. 너 뒤질래?” 하여간 그 동네가 발칵 뒤집혔다. 가석방 심사는 중단되고 사방에서 몰려와 말린다. 그러면서 지들끼리 하는 말. “쓰벌 담당한테 미리 좀 알려주지. 왜 벌집을 쑤시고 지랄이야.”

이래서 한바탕 뒤집고 그래도 분이 안 풀려 소장실로 쳐들어갔다. 소장한테 사과 받으려 하니 소장은 “우리 청주교도소 직원이 아니라서... 청주보호관찰소 직원이라 어렵네요” 결국 재심사에 타협하고 그 놈을 국가인권위에 제소하는 걸로 마무리했다. 당연히 재심사는 뻔 한 결과였다. 내가 가석방 미끄러졌는데 교도관들이 더 분개한다. 청주보호관찰소 그 놈들이 나쁜 놈들이라고... 그러면서 이런저런 위로를 해준다. 좋아해야 하는 건지 말아야 하는 건지...

하여간 나뿐만이 아니라 감옥에 있던 많은 노동자들이 그런 사건 한번 터질 때면 쥐구멍을 찾고 싶다. 뭐 밖에 있는 사람들도 다 마찬가지겠지만... 자본주의 사회에 살고 있으니 그런 유혹에 늘상 시달릴 꺼다. 그것도 잘 나가는 노조간부라면 그런 유혹 한두 번 안 당해 봤겠나? 그렇지만 노동자의 자존심으로 버틴다.

김용철 변호사가 이야기했단다. 이병철이 이건희에게 남긴 말이다. “공무원 놈들 아홉에 한 놈은 뇌물 줘도 안 받는다. 여덟 놈은 주면 덥석 받는다. 한 놈은 왜 안 주냐고 지랄을 한다. 돈이면 다 된다”고…….

우리 노조 간부들은 “열에 아홉은 주면 그 자리에서 돈 준 놈 죽이려 한다. 그런데 꼭 한 놈은 슬쩍 받아 쳐 먹는다.” 우리 자신이 계속 교육이든 뭐든 통해 ‘받으면 죽일 놈’이란 걸 세뇌시켜야 한다. 그리고 절대 있어서는 안 될 일. 절대 그런 놈 용서해 주면 안 된다. 노동자 전체를 팔아먹은 놈이다. 이런 놈들 인정과 과거를 내세우며 용서를 해주는 경우가 간혹 있다.

민주노총 강승규 전 수석부위원장이 대표적인 인간이다. 강승규는 2005년 택시운송사업조합연합회로부터 8천여 만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되어, 징역 1년 실형과 추징금 7천800만원을 선고받았었다. 이 사건으로 당시 민주노총에 대한 노동자들의 신뢰는 바닥으로 떨어지고, 이 사건에 항의하며 많은 활동가들이 민주노총을 떠나기도 했다.

그런데 당시 돈 받아 처먹고 택시노동자들을 사납금 구렁에 몰아넣은 그 강승규는 감옥에서 나오자 마자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택시살리기 전국연대”라는 걸 만들어서 자신이 집행위원장을 맡았다. 개인택시를 대표한 김남배 전 전국개인택시연합회장, 법인 택시를 대표해서 구수영 민주택시노조 위원장, 이용시민을 대표해서 이수호 전 민주노총 위원장과 민만기 녹색교통운동 사무처장 4인이 공동대표를 맡았다. 이 사람들은 어차피 한통속이니까 그러려니 한다. 그런데 민주택시노조의 노동자들은 이들과 함께 해서는 안 된다. 택시 노동자들을 팔아먹은 놈을 다시 동지로 인정한다는 거다. 앞으로도 계속 택시노동자 등쳐먹을 놈에게 말이다.

말 참 많았다. 몇 마디면 될 걸 가지고...
절대 돈 받아 쳐 먹지 말자. 그 돈 먹고 잘 된 놈 하나도 못 봤다. 그리고 절대 용서하지 말자. 한번 받아 먹은 놈은 다음에도 꼭 또 받아 먹는다. 절대 잊지 말자. 새해에는 절대로 이런 일을 반복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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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2/25 20:58 2008/02/25 2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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