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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질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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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질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이땅에 여러분들의 끊임없는 수고가 있기에 그나마 작은 희망은 꺼지지 않는가 봅니다. 그러나 잊혀져 가는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나 또한 잊혀질 것 같은 두려움이 엄습해 올때 구속노동자후원회로부터 편지와 함께 보내준 후원은 절망의 망망대해에서 작지만 큰 구조의 손길처럼 느꼈습니다” - 서울구치소에 수감된 최용근님의 글

 


몇차례에 걸쳐 이곳에 내 빵살이를 실었더니, 나름 인기가 있었다는 천윤미 기자의 감언이설에 속아 다시 옥살이를 떠올려 봅니다. 그러면서 그동안은 쓰지 않았던 옥살이 동지들의 아픔을 써볼까 합니다.

거의 대부분의 동지들이 옥살이동안 밖에 있는 동지들이 걱정할까봐 면회장에 나와서는 밝은 모습을 하고 걱정 말고 힘내라며 용기를 북돋아 줍니다. 쪽 팔릴까봐? 아님 힘든 모습을 보이면 밖의 동지들이 더 힘들어 할 까봐? 아님 정말 즐거워서? 셋중 하나일테지요. 어떤 마음일지는 동지들이 판단해 보시면 됩니다.
그나마 저는 참 행복한 빵살이를 했습니다. 지역에서의 활동도 오래했고, 나름 동지들이 끔찍이 생각을 해주어 거르지 않고 면회를 와주었습니다. 그런데도 돌아서서 방으로 돌아가는 길은 천길 만길 이었습니다. 특히나 제가 있던 청주교도소 1사는 2층 복도 끝에서 보면 면회를 마치고 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괜찮은데 면회를 마친 나이든 노모가 축 쳐진 어깨를 하고 돌아가시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하루종일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던 것이 사실입니다.

처음 청주흥덕서에서 청주교도소로 이감되어 가던 날. 당당해 지자던 다짐과는 달리 훤히 켜진 형광등(교도소는 제소자의 자해행위 등의 방지를 위해 하루 종일 불을 켜 놓는다) 밑에 눈을 감고 있노라면 주마등처럼 많은 것들이 지나갑니다. 그러면서 그 좁아터진 방구석에서 가슴터질 듯한 분노와 질식속에 잠을 이루지 못합니다. 그러기를 며칠이 지나서야 좀 안정이 되었습니다. 물론 그 사이 분출하기 위해 단식을 하고 그렇게 싸워나갑니다.
하루하루의 단식 역시 참 우울했었습니다. 단식을 한다고 아무것도 달라지는 것 같지도 않고, 사실 단식이란 것이 자신과의 싸움이지만 반드시 상대는 있는 법, 저놈들이 쪼는 기세라도 보여야 할 맛이 나는 것이니까요. 아무런 변화가 없어 보일때는 혹시 질까 하는 두려움이 엄습했었습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이게 저놈들이 소위 ‘간’ 보는 과정이랍니다. 그래 니가 공안수라고 깝치는데 얼마나 버티나 보자. 제풀에 꺽이겠지... 이 고비를 넘어서면 공안수로서의 대접을 받는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일반 잡범취급 당하며 절절매야 한답니다. 다행이 저는 그 선을 넘었나 봅니다.

공안수가 항상 넘쳐나는 서울구치소를 빼고는 많은 우리 동지들이 빵투쟁에 대한 것을 잘 알지 못합니다. 집단이 아닌 홀로 생활을 하다보면 우왕좌왕 하다가 억울하게 살아가기도 합니다. 특히나 각오한 빵살이가 아닌 집회 투쟁 등을 하다 현행범으로 들어온 동지들은 더 합니다. 그럴때 주위에서 제대로 빵 수발을 해주어야 합니다. 그렇지 못하면 빵투쟁은 고사하고, ‘내가 잊혀져 가고 있다’는 심각한 우울증에 빠져들기도 합니다. 밖에서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할 지라도 안에 있는 동지들의 크건 작건 그 두려움이 항시 존재합니다. 미결수와 아내와 아이들이 있는 경우 더욱 심하겠지요. 이런 어려움 속에 교도소 측의 간보기에 걸려들면 질 수 밖에 없고 험란한 빵살이가 이어집니다. 그러면 우울증이 스스로의 투쟁에 대한 회의와 더 나아가 패배주의로 스스로를 죽여갑니다. 실제 같은 교도소에 있었던 동지가 심각한 우울증과 패배주의로 출감이후 운동을 떠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밖에 있는 동지들은 당신이 혼자가 아니라는, 두려움을 없애주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동지들의 투쟁은 정당했고, 이렇게 우리는 밖에서 동지에게 빚지지 않게 열심히 싸우고 있노라고. 동지를 믿고 힘있게 빵투쟁 하라고... 스스로 가슴속에 다짐만 말고 보여주셔야 합니다. 면회가고, 힘들면 요즘 인터넷 빵빵 터지지요. 법무부 홈페이지가서 인터넷 서신 한통씩 보내시면 됩니다. 서신 한통 한통이 안에 있는 동지들에게는 큰 힘이 됩니다. 절망의 교도소가 희망의 노동자 학교가 됩니다.
이 ‘잊혀져 간다’는 두려움만 극복하면 빵생활 그리 힘들지는 않습니다.

제가 이글을 쓰는 이유는 이후 빵에 들어갈 동지들에게 헤메이지 않을 길잡이를 조금이나마 제시하고자, 그리고 밖에 있는 동지들에게 부탁을 드리고자 함 입니다. 양손을 다 뻗을 수 없는 0.75평 독방에서 살다보면 모든 것이 딱 그만큼입니다. 보고 듣고 말하고 생각하는 것이 모두 딱 그만큼입니다. 설혹 안에 있는 동지들이 편협한 이야기를 하더라도 섭섭해 말고 이해해 달라는 부탁을 드리는 겁니다. 아! 출감해서도 사람마다 다르지만 적응하는 시기에도 이해하려고 노력 바랍니다. 저는 나와서 6개월동안 편협한 사고로 인해 주변 동지들 참 힘들게 했습니다. 동지들이 잘 받아주어 다행이었습니다.

오늘도 어렵고 힘든 빵살이를 하고 있는 모든 동지들에게 관심과 동지애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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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1/24 12:54 2008/11/24 1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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