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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통운'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09/06/22 우리를 특별한 사람으로 만들어준 화물노동자 박종태
  2. 2009/05/11 박종태 열사 추모결의대회 열려
  3. 2009/05/08 [인터뷰]故 박종태 지회장 부인 하수진 씨

우리를 특별한 사람으로 만들어준 화물노동자 박종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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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특별한 사람으로 만들어준 화물노동자 박종태

 

“편안히 잘 가요. 당신의 동지였음이 부끄럽지 않도록 살겠습니다”

 

천윤미 미디어충청 기자 (moduma@cmedia.or.kr)

 

그를 떠나보내는 날도 어김없이 비가 내렸다

하수진씨는 박종태 열사의 관을 붙잡고 하염없이 흐느꼈다


 


박종태 열사를 추모하는 문화제가 열리는 주말에는 어김없이 대전에 비가 내렸다. 20일, 52일 만에 박종태 열사를 보내는 택배노동자들과 그를 기억하는 많은 이들은 내리는 비를 맞으며 눈물로 그를 떠나보냈다.

20일 오전 9시, 빈소가 차려져 있던 대전중앙병원 장례식장에서 발인제를 마친 ‘노동열사 고 박종태 전국노동자장 장례위원회’는 대전시 대덕구 대한통운 대전지사 앞에서 영결식을 진행했다. 이 자리에 모인 노동자, 시민, 정당 관계자 천 여명은 박종태 지회장을 고 박종태 열사로 만들었다는 자책감과 후회로 고개를 들지 못했다. 어느 누구도 박수를 치지 않는 영결식이 진행되었다.

떠나보내는 가족들은 위원회에서 배포한 유인물 속 고 박종태 지회장의 얼굴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흐느꼈다. 마냥 엄마 손을 흔들며 그림을 그리던 두 아이는 많은 사람들이 아빠의 이름을 부르자, 그제야 울음을 터뜨렸다.

유인물 속 아빠의 얼굴을 보며 장난치고 있는 아이들, 많은 사람들이 아빠의 이름을 부르며 울자 아이들이 눈물을 흘렸다.



차마 가까이 가지 못하고 주저않아 울고 있는 조합원



"택배에 얼마만한 땀이 실려 있는지 알았다면 박종태 동지가 살았을 거 아닙니까"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은 조사에서 “노동조합 하면서 딴 건 힘든 게 없는데 아이들이랑 자주 못 놀아 주는 게 제일 미안하단 얘기. 팔불출처럼 들리겠지만 우리 애기들이 참 겁나게 이쁘단 얘기. 그 아이들을 두고 어찌 가셨습니까. 아빠가 이 세상에서 최고로 좋다는 그 아이들을 놓고 차마 어찌 가셨습니까”라며 울부짖어 많은 이들을 울렸다.

또 “그동안 가만히 앉아서 택배를 보내고 받으면서 거기에 얼마만한 땀이 실려 있는지 미처 몰랐습니다. 920원 생명이 실린 무게라는 것도 몰랐습니다. 우리가 지불하는 택배비 몇 천원 중에 당신들에게 돌아가는 몫이 920원이라는 것도 몰랐습니다. 그 돈으로 세금내고 기름값 내고 새끼들 키우고 그렇게 다리가 후들거리도록 허덕거려야 생존이 유지된다는 것도 몰랐습니다. 그걸 알았다면 박종태 동지가 살았을 거 아닙니까. 그걸 알았다면 그 아까운 사람이 그렇게 죽진 않았을 거 아닙니까”며 목 놓아 울었다.

박 지회장의 부인 하수진씨는 “마지막 가는 길을 외롭지 않게 만들어준 동지들, 동지들이 보내준 사랑과 의리를 영원히 잊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남편이 진정 원했던 세상으로 바꾸지 않는 한 남편의 죽음은 가슴에 묻혀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대전중앙병원 장례식장에서 발인제를 마친 ‘노동열사 고 박종태 전국노동자장 장례위원회’는 대전시 대덕구 대한통운 대전지사로 운구를 옮기고 있다 / 사진 이상현 기자


 


운수노조 화물연대 김달식 본부장은 “이 자리에 함께 하고 계신 분들이 비정규직, 특수고용직 없는 세상, 특별하지 않은 사람이 더 이상 죽지 않아도 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투쟁해 나갈것”을 부탁했다. 임성규 민주노총 위원장은 “소중한 동지 하나도 지켜내지 못했던 못난 사람들, 우리 모두는 특수고용노동자 노동기본권을 쟁취하자는 소망도 끝까지 싸워 이겨달라는 부탁도 아직 다 이뤄내지 못한 한없이 못날 사람들”이라고 자책했다. 이어 “끝까지 싸워 이겨달라는 동지의 넋이 남은 자의 함성으로, 산 자의 투쟁으로 이어져 이뤄질 수 있도록 해 그때 다시 동지의 영전 앞에 승리를 바치겠다”고 약속했다.

또 민주노동당 강기갑 대표는 “당신은 이미 나와 우리 모두의 가슴에 남은 특별한 사람”이라며 “살아생전 함께 하지 못한 미안함과 동지를 죽음으로 내몬 간악한 자본과 정권에 맞서 살아있는 자로서 도리를 다하겠다”고 밝혔다.

일부 조합원 지도부 헌화 가로막고 책임 묻기도
대한통운 대전지사 “회사방향으로 무대 쌓지 마”


생전 박종태 열사가 마지막으로 부른 민들레처럼을 부르던 민중가수 지민주 씨는 고 박종태 지회장의 영정을 바라보며 오열했다. 지 씨는 “꿈속에서 입관하던 고인이 눈물을 흘렸는데, 그 눈물의 의미는 여러분이 잘 알 것”이라고 말했다. 조용히 낮게 웅얼거리던 노래소리가 점차 참가자들의 흐느낌으로 변해갔다.

이날 영결식이 끝난 뒤 참가자들의 헌화가 이어졌다. 일부 화물연대 조합원들이 지도부의 헌화를 막으며 고 박종태 지회장의 죽음에 대한 책임과 대한통운과의 합의 외에 다른 방법은 없었는지를 항의했다. 조합원들은 “택배노동자들의 투쟁에 지도부가 신속하게 대처했더라면 박종태 열사는 지금도 우리와 함께 하고 있었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또 “총파업이 잘 안된다고 판단해 서둘러 대한통운과 합의를 한 것 아니냐”고 꼬집었다.

박종태 열사는 광주 망월동 묘지에서 52일 만에 영면에 들어갔다.

그의 주검이 발견된 아카시아 숲을 조합원들이 지나가고 있다/사진 이상현 기자


대한통운 분회, 아니 박종태분회 조합원들의 차량이 운구 행렬을 뒤따르고 있다/사진 이상현 기자



"살아남은 우리 모두가 박종태다"/사진 사진 이상현 기자


화물연대 광주지부 제 1지회장 박종태 열사는 지난 3월16일 대한통운 광주지사의 택배기사 78명이 대한통운을 상대로 건당 배달수수료 30원 인상 약속 이행을 요구하다가 해고되자 복직투쟁을 이끌었다. 그러나 지난 달 3일 “끝까지 싸워서 반드시 이기자”는 유서와 함께 대한통운 대전지사 맞은편 야산에서 차가운 주검으로 발견되었다.

한편, 이날 오전 대한통운 대전지사는 영결식 무대가 “회사방향은 안된다”고 말해 주최측과의 가벼운 실랑이가 벌어졌다. 이와 관련 무대를 준비하던 주최 측 관계자는 “어떻게 끝까지 이럴 수 있느냐”며 “고인에 대한 예를 갖추기를 바랬던 건 무리였냐”고 한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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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22 16:05 2009/06/22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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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태 열사 추모결의대회 열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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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태 열사 추모결의대회 열려

“화물노동자 총파업 투쟁 반드시 사수”

 

천윤미 미디어충청기자

 

[1신: 오후 2:30]“살려내라 살려내라 박종태를 살려내라”
고 박종태 열사 투쟁 승리 결의대회 참가자 5천 명 이상


‘노동기본권 보장, 비정규직 철폐, 노동탄압 중단, 운송료 삭감 중단, 해고자 원직복직, 고 박종태 열사 대책위원회’는 9일 오후 2시부터 대한통운 대전지사 앞에서 ‘고 박종태 열사 투쟁 승리를 위한 총력투쟁 결의대회’를 열었다.

 


이날 결의대회에는 5천명 이상의 노동자, 시민, 학생들이 모여 대한통운 앞 도로를 가득 채웠다. 대책위는 “전국에서 동지들이 달려오느라 시간이 지연되고 있다”고 밝히며, 고 박종태 동지가 즐겨 부른 민들레 처럼을 부르자고 제안했다.

참가자들이 어깨를 서로 걸고 민들레 처럼을 부르고 있는 시간, 경찰 병력들은 모의 진압을 진행하고 있었다. 집회 주변은 서울과 경기 등 전국에서 모인 약 8천 이상의 경찰 병력이 곳곳에 대기하고 있고, 이중 대한통운 정문 내에 위치한 병력은 입구를 막은 버스 뒤에서 모의 진압을 연습하고 있다.

 

사진 김용직 현장기자


참가자들은 “살려내라, 살려내라. 박종태를 살려내라”며 오늘 투쟁에 대한 결의를 다지고 있다.
오후 2시 30분, 민중의례를 시작으로 결의대회가 시작되었다.
한편, 지난 6일 연행된 화물연대 광주, 충남 지역의 두 조합원은 7일 열린 영장실질심사결과 구속 되었다.

사진 김용직 현장기자

 

[2신: 오후 5:00]“고인의 유서대로 악착같이 싸워주세요”
화물연대 16일 총파업 결의 총회 지침 발표


“여보, 당신이 그토록 간절히 바라던 세상을 위해 작은 힘이지만 보태고 있어”
고 박종태 지회장 미망인 “고개 숙이지 마세요. 죄인은 대한통운”


고 박종태 지회장의 미망인이 편지를 읽고 있다. 용산 참사 유족들이 미망인의 낭독을 듣다가 눈물을 터뜨렸다.


집회에 참가한 용산참사에서 목숨을 잃은 고 이상림 씨 며느리 정영신 씨는 “저희에게는 너무나 소중한 가족이자 동지가 목숨을 잃었다. 노동자가 없으면, 서민이 없으면 저 건물은 어떻게 세워지며 이 나라는 어떻게 돌아가냐”고 운을 떼며 “이 정부는 노동자와 서민을 모두 없애야만 직성이 풀리냐”고 반문했다. 이어 “용산 참사가 100일이 넘었건만 아직도 진상조차 제대로 규명되지 않았으며, 고인들 역시 눈을 감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여기 계신 분들이 이제 더 이상 고인이 생기지 않도록 해야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고 박종태 지회장 미망인 하수진 씨가 검은 상복을 입고 무대에 올랐다. 마음이 떨려 써온 글로 인사를 대신한다는 수진 씨가 크게 숨을 들이셨다.

“여보 오랜만에 불러보네. 우리 아이들처럼 나는 아직까지 실감이 안나. 병원에 걸린 사진을 보면 당신이 튀어나올 것 같아...당신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걸 지금 보게 되어서 늦었지만 당신 좋은 사람이었다는 거...”

“여보, 아직 믿기지도 않고 믿고 싶지도 않지만 걱정하지마. 나 아직 잘 견디고 있고 당신이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과 함께 당신이 그토록 간절히 바라던 세상을 위해 작은 힘이지만 보태려고 노력하고 있어. 당신이 정말 만족하며 편안한 세상으로 갈 수 있도록 그래서 우리 아이들이 당신을 좋은 사람이라 간직하고 기억하도록, 당신이 가는 길 더 이상 외롭지 않도록, 당신의 선택이 헛되지 않도록 열심히 살아갈게.”

수진 씨가 말을 잇지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다문 입술 위로 수진 씨의 눈물이 흘렀다. 그러나 수진 씨는 참가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며 다시 고개를 들었다. 수진 씨는 “한 가정의 가장을 궁지로 몰아넣고도 정신을 못 차리고 밥줄을 끊어 놓는다는 등 길가에서 비키라는 등 헛소리를 하는 저들이 인간입니까, 사람을 죽여 놓고도 잘못 없다는 대한통운, 금호자본은 누구를 위해 아름다운 기업이냐”고 소리쳤다.

이어 “남편이 사랑했던 대한통운, 화물연대 조합원들 죄인처럼 고개 숙이지 마십시오. 죄인은 저 뒤에 뻔뻔히 버티고 있는 대한통운입니다. 싸워주십쇼. 고인의 유서대로 악착같이 싸워주십쇼. 남아있는 우리 가족들이 살아남는 방법은 여러분들에게 달려 있다”고 강조했다. 수진 씨의 외침에 고개를 숙이고 있던 참가자들은 고개를 들고 “열사의 이어 받아 끝까지 싸우자”고 외쳤다. 무대를 내려간 수진 씨는 한참을 울며 구호를 외치는 참가자들을 바라보았다.

 

참가자들이 눈물을 터뜨리자, 오만근 조합원이 "투쟁 승리 후에 맘껏 울고 지금은 울지 말라"고 외쳤다.


“종태야, 빨리 와. 그렇게 기다리던 동지들이 지금 이 도로를 꽉 채웠어”

박종태 지회장의 발냄새가 그립다 말하는 화물연대 광주지부 오만근 조합원은 참가자들에게 “나는 그 사람이 가정도 없는 사람인 줄 알았다. 매일 집회 가고, 한밤 중에 깨어나 옆을 보면 웅크리고 자던 박 지회장, 그 사람이 내게 ‘형 나 양말 두 켤레 만 빌려 줘’라고 말해 그거 쥐어준 게 마지막 이었다”며 “우리가 지회장을 얼마나 찾아 헤맸는지 종태, 너는 모르지? 우린 종태 너를 기다렸단 말야”라고 소리쳤다.

또 “종태 지회장 네가 그렇게 힘들었으면 ‘형 나 고민있어’라고 말하지, 우리에게 말하지, 왜 그 무거운 짐 너 혼자 지고 갔니. 나는 아직도 네가 저 아카시아 숲 속에서 우리 투쟁하는 모습 지켜보고 있는 것 같아서 자꾸만 그 곳을 바라보게 돼”라며 박종태 지회장이 혼자 짊어진 것들에 대해서 말했다. 이어 “기다렸다. 우리 외롭게 싸웠다. 박종태 지회장 빨리 와. 지회장이 그렇게 기다리던 동지들이 지금 이 도로를 꽉 채웠어. 보이지? 빨리 오란 말이야”라며 아카시아 숲을 향해 소리쳤다. 또 손짓했다.

참가자들이 눈물을 터뜨리자, 오 조합원은 “지금은 울 때 아니다. 추모할 때가 아니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이어 “승리하지 못하면 추모할 수 없다. 승리하지 않으면 눈물을 보여선 안된다. 승리한 뒤에 그 때 지회장 얼굴 바라보며 맘껏 울고 추모하겠다”고 강조했다.

“종태야, 빨리 와. 그렇게 기다리던 동지들이 지금 이 도로를 꽉 채웠어”, 사진 김용직 현장기자


화물연대 본부장, 16일 총파업 결의 긴급총회 소집 투쟁지침 발표

화물연대 김달식 본부장은 “울지 안으려고 수백 번도 어금니를 더 깨물어 본다. 2003년 4월30일, 저는 화물연대 포항지부장으로 사랑하던 고 박성준 동지를 보냈다. 그리고 그해 5월 우리 노동자들의 처절함을 알려내고자 한 총파업에서 고귀한 목숨을 또 잃었다”고 침통한 어조로 말을 꺼냈다. 이어 “정말 알량한 유로 보조금을 도저히 생활고가 어려워 세금을 납부 못한 화물노동자다. 최소한 우리가 먹고 사는 것에, 최소한 내 자식이 학교생활에서 최소의 조건을 갖출 수 있는 상황은 지켜내야 하지 않겠냐”고 되물었다.

이날 집회에서 김 본부장은 화물연대 노동자들에게 처음으로 투쟁지침을 발표했다. 김 본부장이 “지침을 이행하지 않는 것은 조합원의 의무를 포기하는 것으로 간주하고, 오는 16일 긴급총회를 이 자리에서 소집하겠다. 안건은 총파업 결의 건”이라 밝히자 화물연대 조합원들의 박수와 함성이 터졌다. 김 본부장은 “조합원들이 결의해 준다면 할 수 있는 모든 전술을 통해 대한민국을 멈추어 버리겠다. 죽기를 각오하고 투쟁할 것”이라 밝혔다.

이후 참가자들은 고 박종태 지회장이 숨진 아카시아 숲 속에서 상징 의식을 마친 뒤, 고인이 안치되어 있는 대전 중앙병원으로 행진을 시작했다.

 

[3신: 오후 6:30]“화물노동자 총파업 투쟁 반드시 사수”

 

행진하는 참가자들과 이를 막고 있는 경찰/ 사진 김용직 현장기자


결의대회 이후 박종태 열사 대책위와 화물연대 광주지부 조합원들은 고인이 발견된 아카시아 숲으로 올라갔다. 그 곳엔 무장한 경찰 병력이 앉아서 쉬고 있었다. 이를 본 대책위는 “나가! 당신들이 사람이면 어떻게 이곳에 있을 수 있어! 나가라고”라며 소리를 질렀다.


사진 김용직 현장기자


경찰 병력이 뒤로 빠진 뒤, 대책위들은 고 박종태 지회장이 목을 맨 나뭇가지에 투쟁 소원지를 묶었다. 소원지를 묶던 조합원 한 명이 나무를 붙잡고 흐느꼈다. “종태야, 종태야, 종태야.”

이들이 소원지를 묶는 상징의식을 진행하는 동안에 도로에 있던 참가자들은 행진을 준비하고 있었다. 이들은 고 박종태 지회장의 사진을 선두로 만장을 세우며 행진이 시작되길 기다렸다.

순간, 집회 대오 뒤쪽에서 경찰 병력과 참가자들 간의 몸싸움이 벌어졌다. 이 과정에서 화물연대 조합원 두 명이 경찰이 던진 돌에 맞아 부상을 입었다. 광주지부 목포지회로 확인된 2명의 조합원 중 한 명은 눈 주변에 부상을 입었고, 다른 한 명은 머리를 다쳤다. 이들은 긴급히 대전 중앙병원으로 이송되어 응급 치료를 받았다. 머리를 다친 조합원은 머리 부위를 세 바늘 꿰매고 나왔으나, 눈 가를 다친 조합원은 부상이 심해 충남대 병원으로 이송됐다.

경찰이 던진 돌에 맞아 피를 흘리고 있는 노동자, 그 옆에서 돌을 던지지 말라고 만류하는 노동자 / 사진 김용직 현장기자


이날 참가자들은 순조롭게 고 박종태 지회장이 머물고 있는 대전 중앙병원까지 행진을 마쳤다.

68개 중대로 꾸려진 경찰 병력은 집회 참가자들과 무리한 싸움을 하지 않았으나, 대한통운 주변과 중앙병원 앞 도로를 포위하고 참가자들의 행진을 막았다. 7천여명의 참가자들은 “경찰은 부끄러움도 모르냐, 사람이라면 비키라”고 외쳤으나, 병력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이에 무대 근처에 머물던 몇몇 조합원들이 만장으로 경찰 버스를 내리치며 항의 했다.

참가자들은 “16일 화물연대 총회를 다 같이 지켜보고, 만약 이날 화물 노동자들에게 탄압이 진행된다면 우리가 막겠다”고 다짐했다. 또 “고 박종태 동지의 한을 풀고 편안히 눈 감을 때까지 투쟁하겠다”고 결의했다.

 

빈소 앞에 붙여진 선전물을 바라보고 있다/ 사진 김용직 현장기자


한 시민이 고 박종태 지회장이 남긴 유서를 읽고 있다/ 사진 김용직 현장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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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5/11 10:52 2009/05/11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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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故 박종태 지회장 부인 하수진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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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정하는 당신이 짠하고 나타날 거 같데”

 

[인터뷰]故 박종태 지회장 부인 하수진 씨

 

천윤미 미디어충청기자 (moduma@cmedia.or.kr)

 

“오늘이 둘째 생일인데, 아빠의 죽음을 알렸어요. 둘째는 아직 어려서 잘 이해를 못해도 안 좋은 일이 생겼다는 건 알아요. 첫 째는 알긴 아는데 자기가 못 받아들이고 있어요. 아빠가 장난하는 거 같고 나중에 짠하고 나타날 거 같다고…….”

“여보! 당신 곁에도 동지들이 있고 그야말로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혜주와 정하가 있잖아. 너무 힘들어서 잠시 어딘가에서 스스로 다짐을 하고 있을거라고 믿어"

6일 대전 중앙병원에 마련된 빈소에서 만난 하수진(38. 고 박종태 씨의 부인) 씨가 아이 생일 날 아빠의 죽음을 알렸다며 나지막하게 말했다. 혈색이라고는 찾아 볼 수 없는 얼굴 위로 눈물이 흘렀다. 수진 씨는 조용히 눈물을 찍어냈다.

고 박종태(38) 씨는 화물연대 광주지부 지회장으로 3월 16일부터 택배 노동자 78명을 집단해고 한 대한통운에 맞서 파업투쟁을 진행해 왔다. 그러다 지난 4월 29일 아침 “끝까지 싸워서 반드시 이기자”는 글을 남기고 사라진 뒤, 30일 민주노동당 홈페이지에 “조직을 사수할 수 있다면, 투쟁을 반드시 승리할 수 있다면 바쳐야지요. 무엇이든지..”라며 자신의 선택을 암시하는 글을 남겼다.

수진 씨는 “별 일이 아니길 바라기도 하고, 화도 나기도 하고. 왜 네가 꼭 그래야만 했는지 하는 생각도 들었고. 조합원들에게 남긴 글이나 인터넷에 올라온 글 보면서 마음을 고쳐먹길 바랬어요. 혹시 아이들 이야기 하면 마음 돌리지 않을까 해서” 글도 남겼다.

수진 씨는 “여보! 당신 곁에도 동지들이 있고 그야말로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혜주와 정하가 있잖아. 너무 힘들어서 잠시 어딘가에서 스스로 다짐을 하고 있을거라고 믿어”라고 말하며 연락이 오길 기다리고 또 기다렸단다.

그러나 박 지회장은 그로부터 3일 후 대한통운이 마주 보이는 야산에서 차가운 시신으로 발견되었다. 수진 씨는 10살, 7살의 두 남매에게는 차마 아빠의 이야기를 하지 못하다가 7살 아들의 생일인 6일, 아빠의 죽음을 알렸다.

 

"당신은 내 친구였어 동갑내기 친구가 아니라 내가 아플 때, 어렵게 투쟁할 때, 길을 잘못 가거나 힘들어 할 때, 다른 곳에 있지 않고 언제나 내 곁에 있었던 소중한 친구 말야. 잘나가지도 못한 나에게 당신은 항상 힘이 되고 의지할 등받이였어"


한 조문객이 커피와 맥주를 한 캔씩 따서 박 지회장의 영정 사진 옆에 올려놓았다. 이를 본 수진 씨가 “커피는 잘 모르겠는데, 술 참 좋아했어요. 사람도 좋아하고”라며 또 다시 눈물이 맺힌 눈가를 찍어내며 낮은 한숨을 내쉬었다. 같은 학교 다른 동아리에서 만났지만, 동갑이라서 자주 보다보니 친해져 부부의 연을 맺게 됐다는 수진 씨는 지금 당장이라도 두 아이들의 이름을 부르며 박 씨가 들어설 것 만 같다고 한다. 웃으며 돌아와 장난이 심했지라고 말하며 할 것 같단다.

눈물과 서러움을 몸 가득 끌어안고 앉아 있던 수진 씨는 “자살로 보일수도 있지만, 사회적 타살이예요. 대한통운과 정부 그리고 경찰에게 항의의 표시를 한 거지, 자살 아니예요. 그래서 경찰 부검도 거부하고 있어요”라고 힘주어 또박또박 말했다.

“세상 원망스럽기도 하고 어이없기도 하고. 그래도 남편은 우리 아이들을 지금보다 더 좋은 세상에 살게 하려했다는 걸 믿어요. 남편의 빈자리를 누가 대신 해주겠냐만은 우리 가족들이 이겨내야죠. 다른 분들도 아픔은 어쩔 수 없어요. 다들 이겨내야죠. 살아있는 많은 분들이 지금 함께 나누고 있는 뜻 이룰 때까지 항상 함께 해야죠.”

눈가에 눈물이 맺힌 수진 씨가 고개를 돌렸다. 수진 씨의 시선이 닿은 그 곳엔 영정사진 속의 박종태 지회장이 환하게 웃고 있었다.

 

고 박종태 지회장이 가족에게 남긴 유서

1.
사랑하는 친구 수진에게

당신은 내 친구였어 동갑내기 친구가 아니라 내가 아플 때, 어렵게 투쟁할 때, 길을 잘못 가거나 힘들어 할 때, 다른 곳에 있지 않고 언제나 내 곁에 있었던 소중한 친구 말야.

잘나가지도 못한 나에게 당신은 항상 힘이 되고 의지할 등받이였어, 못 먹고 못 입고 맘 편히 나들이 한번 못가는 재미없는 10년 결혼 생활 견뎌줘서 고맙고 미안해... 어찌 보면 응석받이라 해도 탓하지 못할 만큼 당신 앞에선 왜 이리 작아 보이든지, 그래서 당신 앞에서 오기피우고 자존심을 세웠던 거 같네.

항상 미안하다고 하면서 또 미안하다고 해야 할 거 같애.
내 삶이 여기까지 인가봐 아니 사랑하는 당신과, 어여쁜 혜주 정하와의 인연이 여기까지 인가보네. 쉼 없이 걸어왔던 노동운동 세상을 바꿔보겠다며 희망을 만들기 위해 동지들과 함께했던 소중한 시간과 인연도 여기까지 인가보네.

이렇게 밖에 생각하지 못하는 나를 당신이 어떻게 생각할지 두려워, 잘 놀아 주지도 못해 아빠가 안들어 오는게 좋다며 장모님을 더 찾는 정하가 아예 아빠를 영영 잊어버릴까 두려워 아빠가 없어 심심하다는 예쁜 혜주가 학교에서 기죽고 살지나 않을까 두려워.
항상 어머니 이상으로 미운 동생 뒷바라지 했던 누님이 쓰러지지 않을까, 큰형과 형수님이 나의 생각을 이해하지 못하면 어쩔까 걱정돼서 두려워.

하찮은 존재인 나의 죽음이 결국 수천만중의 한사람으로서 취급되면 안되는데...
여보 하지만 짧은 생각에, 아니 착각인지 몰라도 본부와 동지들이 이번 싸움에 개입하고 힘을 모을거라 믿어.

말이 막히네 원래 내가 말주변이 없잖아.
당신이 잘 하는데 그치..
전화하면 항상 말문이 막히는 건 나고 당신이 계속 애기 하던거 알지? 그건 그만큼 당신이 나에 대해서 관심갖고 지켜주고 있었다는 것일거야.

내 좋은점 보았다면 잊지말고 간직해줘.
혜주 정하가 눈에 밟혀 뭐라고 애기하지?
정하야, 혜주야 아빠가 없더라도 기죽지 말고 엄마가 울지 않게 늘 엄마 곁에 있어야 됀다.
엄마가 건강도 좋지 않은데 힘들지 않게 엄마 보살펴 줘야 된다.
항상 그랬지만 혜주하고 정하는 든든한 내 아이들이자 친구야.

여보 이제 가야돼.
앞뒤 안 맞는 글 몇자로 엄청난 일을 설명하지는 못하지만 당신이 십수년동안 이해해
주며 살았듯이 마지막 나의 선택을 받아 주었으면 하네.

사랑하는 수진씨 그럼 안녕

- 못난 남편 어린 친구 종태가 -...

2.
몇시나 됐을까
닭발에 소주한잔 마시는데 온 몸이 부르르 떨려
내가 살아온 날들 중에 좋은 것은 생각 안나고 나쁘게 산것만 떠올라 정말 미치겠다.
낮에 계룡산에 갔었어, 맘먹고 올라갔는데 당신한테 말을 남겨야 할 것 같아서 종이하고
볼펜가지고 다시 내려왔어 경찰한테 힘없이 밀리는 동지들을 지켜보면서 억장이 무너지더라.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를 보니 박종태 별거 아닌데도 지켜보는 조합원들 보니

여보 미안해! 사랑해 자기가 세상에서 최고야
죽음의 문턱에서 하는 말이 아니라 당신을 나의 생애 최고의 여자요 친구였어
박종태란 못난 남편을 빨리 잊어

3.
2시 45이네
내가 맘을 잘 먹은 걸까 정말 내가 죽어서 조직이 지켜지고 쫗겨난 조합원들이 눈치 안보고 서로를 의지하면서 조합을 잘 간수할 수 있을까? 그럴 수 있겠지?
본부가 나를 일개 조합원으로 일개조합원으로만 보지 않고 최선두에서 나서겠지?

애들한테 말하고 싶은게 진짜 많은데...
시골에서 살고 싶었어, 나 진짜 농장하고 싶었거든
당신은 아닌데, 나는 그랬어 평온해.
이제 안쓸거야 하고 싶은 말이 막 생각나도 참을께, 해봐야 소용없으니까.

당신 우리 애들 생각도 육체도 건강하게 키워줘, 할 수 있을 거야 난 믿어.
주문 오는 손님들한테 보낼 닭발 열심히 굽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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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5/08 11:14 2009/05/08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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