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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민주주의의 척도는 노사관계

 

민주주의의 척도는 노사관계

- 서울행법 2007. 12. 27. 2007구합19300 부당징계구제재심판정취소 -


화투(花鬪), 꽃들의 싸움. 꽃들이 아름답다고 해도 싸움은 싸움이다. 나고 피고 지고 떨어지는 4계절 속에 담겨있는 치열함이 바로 삶, 그 자체다. 게다가 화투가 제 마음대로 되나. 뒤집은 패가 쩍쩍 달라붙는 놈이 있는가 하면 지질이도 안 붙는 놈도 있다. 이게 인생이다. 실력은 ‘끗발’의 동생친구의 친구동생뻘이다. 더구나 단 한 번, 잘 못 던진 패는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가져온다. 왜? 화투계의 법치주의, ‘낙장불입(落張不入)’ 때문. 우리 근대사도 낙장불입의 폐해를 충분히 경험했다. 식민지 이후 한국전쟁으로, 군부독재와 외환위기로 이어지는 광박과 피박의 역사. 여태껏 우리는 광박과 피박을 벗어나려고 몸부림쳐왔다. 광박이나 피박이야 벗어날 구멍이나 있었지만. 근데 이번 정부, 불길하다. 연 경제성장률 7% 공약. ‘멍박’은 열끗 7장, 둘 다 쉽지는 않지만. 진짜 ‘멍박의 시대’가 도래하는 건 아닌지.


사건의 배경

이 사건의 두 주인공을 모시겠다. 한쪽은 철도노조의 조합간부 3명. 이들이 원고다. 이중 1명이 선정당사자가 되어 소송을 진행했다. ‘선정당사자’란 소송의 편의상 동일한 사건에 대해 한 사람이 총대를 메는 것이다. 물론 총대 멘 사람에게 내려진 판결의 효력은 나머지 두 사람에게도 고스란히 전달된다. 아참, 다른 한쪽은 한국철도공사.

일단 이 사건의 배경부터 살펴보자. 때는 200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철도산업’은 정권이 식칼을 잡는 순간 제일 먼저 도마 위에 올리는 주요 메뉴라는 사실, 다 아실게다. 노태우씨가 주방장 하실 때부터 현 봉화마을 주민 노무현씨에 이르기까지 민영화 논란이 줄곧 이어졌다. 결국 공사로 전환되면서 면영화 논의는 일단락되는 듯 했지만, 이명박 정부는 이미 팔을 걷어 붙였다. 여하간 2005년 철도청이 철도공사로 전환되면서 철도공무원들의 신분이 일반 근로자로 바뀌게 된다. 신분 전환, 타격 크다. 임금부터 퇴직연금까지 줄빠따로 영향있다. 게다가 조직개편과 경영혁신에 따른 불만이 고조되어 갔다. 결국 노조는 한 번은 들이박아야 할 상황에 직면했다고 판단한다. 사실 ‘내 속에 정부있다’라고 뇌까리는 철도경영진에게 ‘쨉’만 던져서는 철도 경영진이 움직일 리 만무하다. 내장을 진동시켜야 뭔가 뱉어낸다. 이러한 대정부투쟁, 철도노조는 이미 2003년에도 결행한 바 있다. 이러한 얼개는 철도노사관계를 단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알파이자, 오메가다.


사건의 내용

사건의 내용, 비교적 간단하다. 조합간부 3명의 부당징계를 다투는 이 사건. 그러나 본질은 직권중재의 문제다. 우선 철도노조 파업으로 거슬러 올라가자. 당시 철도노조가 총파업에 돌입하기 전, 중앙노동위원회는 ‘총 3번’에 걸쳐 중재회부 보류를 결정을 내린다. 교섭이 계속 진행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노사의 입장 차이가 커 최종합의에는 이르지 못한다. 결국 노조는 2006년 3월 1일 총파업 깃발을 올린다. 이에 공사는 최종 긴급업무복귀지시를 내린다. 이 지시에 불응한 조합원 2,754명에 대하여 직위해제 처분을 내리는 강경책을 선택한다. 직위해제 처분을 받은 이들 중 원고들도 포함되어 있다. 이러한 직위해제 처분은 철도노조의 파업이 ‘정당하지 못한 것’이라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따라서 파업이 정당성을 가지는지를 따져보아야 징계 또한 정당한지를 한 큐에 알 수 있다.


주장과 판단

원고들은 중앙노동위원회의 중재회부 결정에 하자가 있음을 주장하고 있다. 주장의 요지는 두 가지다. 첫째는 특별조정위원회가 조정안을 제시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필수공익사업장은 일반 사업장과 달리 ‘특별조정위원회’가 조정을 담당한다. 당시 특별조정위원회가 철도노사의 조정과정에서 조정안을 제시하지도 않았으며, 게다가 동 위원회의 권고결정도 없이 중재회부 권고를 했고, 이 권고를 받아 중앙노동위원회가 직권중재를 때렸기 때문에 중재회부 결정은 무효다, 이게 원고측의 주장이다. 둘째는 특별조정위원회가 중재회부 권고를 ‘조건부’로 했는데, ‘조건부 중재회부 결정’은 법적 근거가 없다, 그래서 위법하다는 게 원고들이 주장하는 요지다. 

이에 대해 법원은 노동위원회 규칙(제48조 제6항)에 의해 부득이한 사유가 있는 경우, 특별조정위원회가 조정안을 제시하지 않아도 위법하지 않으며, 중재회부 시기를 조정하여 권고하는 조건부 중재회부 결정권한도 있다고 봤다. 결국 파업은 ‘불법파업’이라는 말이다. 안 봐도 비디오, 안 들어도 오디오다.


징계 최소화 합의, 구색 맞추기였나

철도노사는 파업 이후 단체교섭을 계속한다. 그리고 2006년 4월 1일 단체협약을 체결하기에 이른다. 이 합의서에는 조합원들의 징계를 최소화하는 것도 포함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직위해제 처분 이후 징계위원회가 십 수차례 열렸다. 물론 징계가 일부 완화되거나 감경된 부분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07년 8월까지 2006년 3월 1일 파업에 대한 징계처리가 계속되었다. 특히 중징계를 받은 395명 중 303명이 중앙노동위원회에 재심을 청구하고, 취하자 30명을 제외한 273명 중 57명이 부당징계 판정을 받는다. 그러나 공사는 57명에 대하여 재징계를 결정한다.

노사가 단체협약을 체결하면서 공사는 징계를 최소화하겠다는 합의서에 싸인을 했다. 물론 징계를 최소화하겠다는 것이 징계를 하지 않겠다는 것은 아니다. 공사 입장에서 볼 때 불법파업이니깐 징계, 할 수 있다. 다만 ‘최소화’ 하라는 것이다. 최소화의 의미는 ‘수와 정도를 가장 작고 적게’, 이거다. 왜? 공사도 불법파업에 대한 자기 책임을 없다고 할 수 없으니깐. 따라서 징계를 최소화한다는 의미는 징계 받은 자의 죄를 사해주심이 아니라 징계한 자의 과오도 있으니 ‘똔똔’하고 넘어가자는 것이다. 또 싸울 순 없지 않나. 근데 아직도 싸우고 있다. 원래 처지가 비슷하면 똔똔하는 거지, 한 쪽으로 힘이 쏠리면 똔똔할 이유, 없다.


자율적인 분쟁해결 운운하면서

작년 11월 16일에도 철도노조가 파업을 예고했었지만, 불발에 그쳤다. 이때도 중앙노동위원회는 직권중재 결정을 내린 바 있다. 사실 파업 3일전인 11월 13일, 직권중재를 폐지하고 ‘필수유지업무’로 대신하는 노조법 시행령이 국무회의를 통과했다. 이게 자뻑이 아니고 뭔가. 직권중재 폐지는 자율적인 분쟁해결을 위한 디딤돌이었다. 근데 국무회의에서는 직권중재 없애자, 해놓고 딴 데에서는 직권중재 결정을 내리는 건 뭔가.

물론 갈등적인 노사관계, 좋아하는 사람 없다. 하지만 조합원 3만, 3만 명의 근로조건이 왔다 갔다 하는 마당에 노사관계 협조가 안된다, 이런 어불성설도 없다. 당연히 싸움이 생길 수밖에. 문제는 해결방법. 3만의 근로조건 문제, 쉽게 볼 문제가 아니다. 왜냐, 3만 개의 우주가 그 밑에 딸린 어림잡아 10만개 밥숟갈을 쥐락펴락하기 때문이다. 협조, 협조 노래를 부르는데, 유럽의 노사관계 역사가 200년이라고 싸움 안하는가. 우린 ‘노사관계’라는 걸 겨우 20년 경험했다. 아직도 180년 남았다. 게다가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드는데 좋은 근로조건은 옵션인가. 이번 정부가 기업에게만 ‘싹쓸이’할 수 있는 여건만 고려하는 건 옳지 않다. 근로자들의 삶의 질도 고려하기를 바란다. 노사관계는 게임이 아니라 민주주의의 척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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