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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옹성

발전노조, 2002년. 서천화력지부. 이복하 지부장으로 기억된다. 기억의 출처는 이호동 위원장이다.

 

이호동 위원장과는 가끔 만나, 술을 곁들인다. 여하간 조직관리의 중요성을 깨닫는다. 이복하 지부장은 근 20년 지부장을 역임한 사람이었다고 한다. 소위 어용이다. 그러나 이 양반, 조직관리 탁월했다. 그가 관리하는 방식, 어떻게 보면 전근대적이라고 할 지 몰라도 사람을 관리하는 방식이 세련되었다고 해서 더 잘 관리되는 것은 아니다. 사람이 쉽게 관리될 수 있는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2002년 발전 파업 당시, 몇 개 대오가 무너지려고 할 때 그 중 서천화력도 그랬었다. 그 당시 사측의 농간이 점점 심해지고 조합원들이 하나 둘 무너지는 상황을 보고 받은 이복하 지부장은 잠시 구석으로 가 왼손으로 전화를 잡고 오른손으로 입을 가린 상태에서 말했다.

 

고르지도 않은 억양으로 "왜 그려?" 그 한 마디에 조합원들은 다시 파업대오에 복귀한다. 또 한 명의 조합원이 흔들린다. 전화가 온다. 그러면 동일한 방식으로 이복하 지부장은 그 조합원에게 전화를 건다.

 

"그러면 아안되지(안되지)", 딱 이 한 마디만 한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없다. 그리고 또 한 명의 조합원이 돌아왔다. 그가 조합원들을 관리하는 방식이라는 건 별 거 없다. 조합원들의 대소사를 챙기는 것, 그리고 오전 중에 지부 사무실에는 전화를 받지 않는 것, 그 이유는 매일같이 현장을 순회하기 때문이다. 이 두 가지를 꾸준히 해왔다. 그리고 그 위력은 파업에서 나타났다.

 

사소한 것이 나중에 얼마나 큰 위력을 갖는가를 보여준다. 사소한 것, 사실 굉장히 피곤하고 번거로운 일이기는 하지만, 지금 우리들의 노조가 과연 이렇게 사소한 것을 챙기고 있는지 되묻게 된다. 조직력, 리더십, 백번 천 번 얘기해도 결국 현장과 살이 맞닿아 있지 않은 채 "조직의 한계"를 실감했다는 건, 결국 성실성 부족의 반증과 다름없다.

 

그렇게 서천 화력은 철홍성과 같이 사측의 공세를 막아냈고, 결국 95%가 넘는 조합원이 일거에 노조 지침에 따라 복귀했다. 물론 우리 지부는 다 같이 한 날 한 시에 100%복귀했지만. 철옹성이 되기 위해서 그 성의 재질이 문제가 아니라 그 성을 지키는 자들의 정신이 가장 중요하다. 그들을 다독이는 것이 결국 수장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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