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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2/02
    봉제사와 의사
    공돌
  2. 2008/02/02
    착한 사람이야기
    공돌

봉제사와 의사

 

찢어진 상처를 꿰매거나 혈관 등을 서로 잇는 일을 천직으로 하는 의사들이 있습니다. 외과의사들이 이런 봉합 혹은 문합하는 일을 하는데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 바로 ‘바느질’ 기술입니다. 예전에 ‘성공시대’라는 TV프로그램에서 국내에서 최초로 심장이식 수술에 성공한 ‘송명근 박사’가 소개된 적이 있었습니다. 그 분은 좀 더 빠른 수술을 위해 왼손을 사용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담요에다 왼손으로 거의 수를 놓다시피 연습을 합니다. 그것이 결국 많은 사람을 살리는 의술로 발전하는 거름이 되었지요.

이러한 의사들과 비슷한 일을 하는 사람이 바로 봉제사입니다. 똑같이 바느질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바느질만으로 의사가 될 수 없듯이, 봉제사들도 봉제로만 진정한 봉제사가 될 수 없습니다. 의사가 해부학을 공부하듯, 봉제사들도 패턴을 알아야 제대로 된 옷을 지을 수 있습니다. 의사는 사람을 살리는 바느질을 하고, 봉제사들은 사람을 살리는 의사들이 입는 옷을 만듭니다.

위대한 기술은 그 자체만 보면 보잘것 없습니다. 그러나 그 보잘것 없다는 기술이 죽어가는 사람을 살아서 걷게 하고, 옷 한 벌로 품위가 나게 만듭니다. 의사는 사람을 살리고, 봉제사는 살아있는 사람을 빛나게 합니다. 봉제가 저임노동이라는 사회적 인식을 깨기 위해 수다공방은 한  발짝 더 도약하려 합니다. 살아있는 사람들의 옷을 만들기 위해, 생명을 잇는 정성으로 한 발짝 더 나아갈 수 있는 2008년이 되기를 간절히 기대합니다.

 

2008년 1월호에서는 2007년까지 오도엽 선생님께서 맡아 주셨던 우리 봉제사들의 이야기들을 이어서 편집장이 대신하였습니다. 수다공방 소식과 참 신나는 소식을 아울러 담았습니다. 올해부터는 회원님들의 글과 소식을 담을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려고 합니다. 회원님들의 글과 소식을 기대합니다. 그리고 미싱으로 다져진 손으로 보낸 글들도 대환영, 대환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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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사람이야기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참으로 많은 시련이 닥치게 됩니다. 거기에 그것을 잘 극복하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이 있습니다. 질펀하게 말하면 독한 국물이 줄줄 흐르는 놈과 물러 터져 질질 흐르는 놈이 있다는 말이죠. 더군다나 힘들 때 잔머리 굴려 요리조리 피하는 사람과 그대로 정면으로 ‘꽝’하고 현실과 맞붙어 버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조금만 약아도 두 다리 정도야 뻗고 살 수 있습니다. 근데 그걸 못해서 힘들게 사는 분들, 제 주변에 몇 명 있습니다. 현대인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그래도 제 소신 하나 붙들어 쥐고 사는 사람들이 있다는 말이지요. 이번 호는 그 분들 중 한 분을 소개해 보겠습니다. 제 친구 이야깁니다.

 

이 친구, 왕고집으로 세계적인 사람입니다. 일단 제 스스로 지켜야 겠다고 하는 건, 목숨 걸고 지킵니다. 목숨, 참고로 저는 목숨 여러 번 끊겼다가 살아난 사람입니다. 헌데 그 친구 목숨, 여지껏 단 하나였습니다. 대단한 뚝심의 소유자라는 말이죠.

 

횡단보도 파란불은 기본, 쓰레기는 쓰레기통에, 쓰레기통 없으면 집에까지 들고 갑니다. 요건 약과죠. 쓰레기를 아예 줍습니다. 육교에 소쿠리통에 돈 넣는 것도 취미입니다. 젓가락, 복주머니, 복조리 파는 외국 젊은 이들, 무슨 청각장애인 기부함을 들고 있는 할머니, 지하철이나 서울역에서 차비달라는 사람. 다 줍니다.
술 취한 사람, 길거리에 누워 있으면 집에까지 보내줍니다.

 

지하도에 할머니, 봇짐을 머리에 이고 한 손에는 신문지 뭉치를 들고 갑니다. 당연히 그냥 갈 수 없지요. 일단 그 친구, 양 손에 봇짐과 신문지 들고 계단을 오릅니다. 어린이가 길 물어 봅니다. ‘자, 다 왔어요. 빨리 들어가세요.’

여기까진 좋다. 착하다고 해두자. 문제의 발단은 이 친구 30살 먹고도 직장이 없다는 사실. 그래서 언제나 논란의 중심에서 빠지지 않았죠.
어느 날, 술자리에 그 친구가 왔습니다. 친구들은 그 친구를 도마 위에 얹어놓고선, 요리 뒤집었다 저리 뒤집었다, 엎었다가 매쳤다가, 끼웠다가 뽑았다가 난리도 아닙니다. 그러다 ‘천사논쟁’, 일어납니다.

“니가 천사가? 뭐 할라꼬......참나.”, “그냥 니는 목사나 스님해라.” “그거 다시 수능봐야 돼서 안된다카니깐.”

 

“점마 보면 내는 술맛 떨어진다” “마셔, 마셔” “니는 술도 안묵나?” “빨리 장가가야지” “부모님 좀 생각해라”. 이 모든 이야기, 그 친구 위해서 한답시고 하지만 사실 면박주는 이야기들입니다.
아, 술? 안먹는 친구입니다. 그냥 친구들이 몰아쳐다는 잡소리에 그냥 광대뼈를 들었다 내렸다 할 뿐 미동도 없습니다. 오히려 제가 이런 얘기 듣는 동안 불편했습니다. 그리고 술자리가 끝나고 먼저 일어나 집으로 간답니다. 그리고 친구들은 밤 12시가 다되어서야 술집을 나섭니다. 계산? 물론 돈도 없는 녀석이 계산을 해뒀습니다. 친구들은 그냥 그런모양이다, 하고 잊어버렸습니다.

 

그리고 한 1년 정도 연락이 없었습니다.
1년 뒤 그 친구는 뇌종양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자신의 몸을 다른 이에게 기부하고 말이죠. 그리고 친구들은 매년 그 친구와 고등학교 때 노래를 불렀던 그 곳에 모여 그 친구를 회고합니다. “그 때 잘해 줄 껄”하고 후회하면서 말이죠. 지금은 제 친구들, 열심히 봉사활동하고 살고 있습니다. 그 친구의 마지막을 지키려는 것처럼.

“남 돕는 기 피해주는 기 아이면 내는 그거 하는 기 부끄럽다는 생각 않안다. 사람들도 알끼다. 그렇게 저거들도 하고 싶어도 부끄러버서 몬한다는 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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