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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루신(정운영 선생의 소개글)

<참고>정운영의 평론을 읽어보자.

 

『팡시앙뚱(房向東)의 '루쉰, 욕을 하다'(휴먼필드, 2004, 432쪽, 1만3800원)는 당대의 작가와 지식인들에게 퍼부은 루쉰의 욕을-무례한 평론을-서술한 책이다. 1920년대 중반 린위탕은 "중국에는 '플레이' 정신이 매우 드물다. '페어' 정신은 더더욱 말할 것도 없다. 간혹 '우물에 빠진 사람에게 돌을 던지기를' 거부하는 경우에서 그런 의미를 발견할 수 있을 뿐"(258쪽)이라고 썼다.

 

여기 우물에 빠진 사람에는 패배한 군벌과 그의 어용 지식인도 들어간다.
이에 루쉰은 "물에 빠진 개들에게서도 사람 냄새가 나고 그들이 '페어'를 주장할 줄 알 때 페어 플레이를 시행해도 늦지 않다"고 받아쳤다. "개혁의 반대자들이 개혁자들을 해칠 때는 잠시도 느슨한 적이 없었고 그 수단의 혹독함도 이를 데가 없었다. 개혁자들만이 여전히 깊은 꿈속에 빠져 항상 손해를 보았다. 그래서 중국에는 개혁이 없었던 것"(259쪽)이라고 했다. 그 개한테서 지명 수배를 당한 뒤 린위탕은 물에 빠진 개는 두들겨 패자는 루쉰의 주장에 동조한다.

 

 

그러나 1930년대 돌연히 린위탕은 개잡이 '깡패' 기질을 청산하고, 고상한 취미 소유자를 위해 유머와 풍자 제작에 몰두하는 '신사'로 변신한다. 일제가 만주를 유린하고 전쟁 위협이 고조되는 속에서 기껏 흡연.음주.음다가 인류 역사상 가장 걸출한 발명이라고 예찬하는 따위의 파적으로 성령소품(性靈小品) 문학을 제창했다. 반면에 루쉰은 구국과 망국, 혁명과 반동의 갈림길에서 목숨 걸고 싸우는 국민에게 필요한 것은 '비수와 투창'이지 유머와 한적(閑寂) 타령이 아니라면서, 린위탕을 빗대어 중국인이면서 외국인인 척하는 '서양 똘마니' 몰골을 공격했다.

 

그러나 린위탕의 차녀 린타이이(林太乙)의 '현실+꿈+유머:린위탕 일대기'(휴먼필드, 2005, 724쪽, 1만9500원)는 분위기가 전혀 딴판이다. 중국 청년의 영혼을 쟁취하려는 공산당은 그 공략에 넘어갈 대상으로 루쉰을 지목했고, 루신은 기꺼이 거기 투항했다는 것이다: "루신은 공산당이 진작부터 그들의 영웅각(英雄閣)에 자신의 위패를 모셔 놓으리라는 사실을 익히 알고"(232쪽) 그들이 준비한 왕관을 받아 썼다고 혹평했다.

 

 

1936년 루쉰이 타계하자 린위탕은 '공산당 투항자'를 향해 "그와 지기가 된 것을 기뻐하였고, 루쉰이 나를 버렸을 때도 유감이나 후회가 없었다"(234쪽)고 애도했다. 생전에 루쉰도 가장 뛰어난 시인으로 후스(胡適)를 치고, 가장 훌륭한 산문가 셋 중의 하나로 '서양 똘마니' 린위탕을 꼽았다. 루쉰과 린위탕의 관계는 두 책 내용의 일부일 뿐이지만, 내게는 특히 그 험난한 시대에 그들이 나눈 '비판 속의 우정'이 몹시 부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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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신

희망이란 본래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다. 그것은 마치 땅 위의 길과 같은 것이다. 본래 땅 위에는 길이 없었다. 한 사람이 먼저 가고걸어가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것이 곧 길이 되는 것이다. - 루쉰의《고향》중.

 

욕하면 떠오르는 사람, 바로 루신이다. 전현동, 임어당, 호적, 곽말약, 고힐강 등 당대의 내공있다는 사람들 15명과 설전을 벌인 적이 있는 사람이다. 물론 대사상가임에 두말할 나위가 없다.

 

어느 하나에 얽매이지 않으면서 누구의 편을 들지도 않으며, 또한 자신 또한 혹독하게 바라보고 단단하게 매질한다. 심지어 민중의 편에서 민중을 매질하고 민중을 비판한다. 그래서 나를 용서할 수 없는 자들에게 나도 저들을 용서하지 말라고 한 루신. 나 또한 그렇게 루신을 닮아 살고 싶다. 그게 자유라면 그것을 선택하겠다. 루신은 거친 세상에서 잠시 황색바람을 일으킨 자가 아니라 영원히 나에게 붉은 노을로 남아 있다.

 

뱀발: 루신의 글을 박홍규 교수가 모아서 묶었다. 제목은 '자유인 루신'.  읽기좋게 팔고 있다. 읽을 만하다.

 

2005.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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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념없는 노조

내가 개인적으로 재수없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이들 중 자신의 존재와 위치를 정확하게 잘 모르는 사람이 그에 속한다. 얼마전 친구와 같이 술자리를 가졌는데, 그 친구는 사실 친구만 아니었어도 영원히 쫑낼 수 있었다. 부모자식 관계가 소 힘줄과 같다면 친구와의 관계는 기다란 까만 고무줄 같다. 이 둘은 강도는 다르지만 본질은 잘 안끊어진다는데 있다.

 

친구의 개떡같이 말씀을 들어보자.

 

"XX공사에 초봉이 4,100만원이야. 그 정도 받으면 충분한 것 아니야? 사실 그 공사 직원들 거의 놀아. 우리 아버지도 거기서 일했잖아. 근데 임금인상? 노조도 쓰레기 노조야. 개념이 없어. 개념이."

 

거의 빠짐없이 기억해서 적었다. 이럴 때는 거의 부처님의 제자 아난다 수준으로 기억한다.

여하간 본론으로. 좀 어려운 이야기부터 꺼내보자.

'자신의 존재'와 현재 '사회적 위치'를 알면 스스로의 행동반경을 인식하고, 그 인식은 조금씩 확장되기도 한다. 다시 말하면 쓸데없는 기대를 할 필요가 없이 행동하는 그 자체가 인식이 되기 때문에 결국 자신에게 가장 적합한 삶의 형태를 찾아나서게 된다는 말이다.

 

친구의 말은 크게 두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초봉이 4,100만원이라는 사실. 둘째로 그런 임금을 받는 노동자들이 거의 논다는 사실. 일단 반박은 얼러가면서 해야 하지만 그렇게 얼러도 돈많이 받는 인간은 밉게 보이는 법이다.

 

요렇게 말하지는 않았다.

 

그 친구는 먼저 자신의 아버지의 임금에 대해서도 더 이상의 임금인상을 긍정해서는 안된다. 근데 그럴 것 같지는 않다. 지금쯤이면 퇴사했을테니깐. 그리고 자신의 아버지도 그 회사에서 놀았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근데 그럴 것 같지는 않다. 직위가 높았기 때문에 일반 직원과 달리 격무에 시달렸을 거라고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가 아무리 노동연구원에 찾아 물어도 입사초봉이 4,100만원 되는 회사는 아직 보도 듣고 못했다. 오바다. 그 친구가 말한 회사. 공사다. 하후상박의 임금구조다. 이런 건 모른다고 하더라도 일단은 15년 근속 노동자가 얼마 받는지는 말 안했다.

 

자, 위의 반박은 이성적이도 않고, 대화를 계속 진행할 수 있는 가능성을 상실케하고 다음 술자리에 대한 기대를 희박하게 한다. 그렇다면 아주 논리적으로? 사실 그건 다 큰 어른들 사이에서 잘 통하지도 않는다. 안들으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먼저 초봉이든, 연봉이 높은 회사에서 일하는 사람은 격무에 시달려야 하는가? 꼭 그렇지 않다. 우리나라 임금체계나 구조면에서, 다른 나라와 비교해봐도 우리나라 노동자의 임금수준이 유독 높다고 할 수는 없다. 왜냐면 대부분 낮은데다가 일부 대기업 노동자들의 임금수준이 높다고 하는 학습효과에 기인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높은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는 없다.

 

사실 중소기업과 비교해보자. 어떤 중소기업이 대기업 만큼이나 일을 한다고 치자. 그런데 임금은 대기업의 70%수준이라고 치자. 그러면 그 중소기업에게 30%만큼 노동자에게 주라고 말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대기업에서 30%이상의 임금을 중소기업보다 더 받는다고 해서 그 비율대로 더 일해야 할 이유는 없다. 소위 좋은 회사는 가는 이유. 이유있다.

 

이런 생각의 저반에는 다음과 같은 생각이 깔려있다.

 

"우리집 식구가 많이 받고 적게 일하는 것은 괜찮다. 그러나 남의 식구나 나보다 일도 적게하면서 많은 임금을 받는 것은 속 쓰려서 못보겠다."

 

이렇게 생각해 보자.

 

>>결국 과학적으로 접근할 수도 있지만 그럴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일단 유식하게 좀 떠들어 보자. 대기업이라도 같은 반도체를 생산하는 노동자가 회사마다 똑같은 임금을 받지 않는다. 기업마다 임금의 지불에 대한 체계가 다르기 때문이다. 특히 임금지불과 관련된 체계나 구성, 그 수준을 회사가 미리 정할 수도 있지만 노조가 있는 경우에는 노조가 단체교섭을 요구하기 마련이다. 결국 임금교섭에 의해서 임금이 결정된다. 자, 위의 전제가 이렇게 배치될 때 사람들은 어떠한 반응을 보일까.

 

1) 나는 100만원 받는 노동자다. 그리고 하루에 10시간씩 일한다. 그래서 만땅 챙겨도 한달에 150만원을 못넘는다. 그런데 김씨네는 일단 하루 8시간에 잔업수당 등은 우리보다 당연히 많다. 그리고 한달에 약 350만원 정도 받는다. 김씨네 노조는 이번에 임금 10%인상을 내걸었다.

 

2) 나는 100만원 받는 노동자다. 그리고 하루에 10시간씩 일한다. 그래서 만땅 챙겨도 한달에 150만원을 못넘는다. 그런데 김씨네는 일단 하루 8시간에 잔업수당 등은 우리보다 당연히 많다. 그리고 한달에 약 350만원 정도 받는다. 김씨 회사는 노조가 없다. 사장님이 너무 좋은 분이라 이번에 임금을 10%나 인상해 주었다고 한다.

 

1)과 2)사이에서 당신들은 어느 것을 비난할 것인가. 그 친구는 당연히 1)이다. 왜냐면 노조가 맘에 안들기 때문이다. 그 친구를 탓할 수 없다. 노조가 싫은 것을 어떻게 해야 하나. 캐나다에 있는 내 동생도 캐나다 친구들이 대부분 계약직인데, 대공장 노조가 임금인상을 요구하면 그렇게 달갑게 보지 않는단다. 이걸 가지고 "당신들은 몸은 비정규직에 대기업 이사의 정신머리를 탑재한 기형아"라고 이야기할 수만은 없다.

 

양극화 문제. 결국 돈 많이 버는 놈을 적대시 한다.

 

그러나 자신이 많이 벌면 그렇지 않다. 보통 이런 주장을 하는 아이들이 다니는 회사는 노조가 없는 회사이다. 노조가 있다고 하더라도 별 힘을 못쓰는 회사가 대부분이다. 이것은 경험이기 때문에 반증이 있다면 뒤집어 질 수는 있다.

 

위의 예와 같이 2)의 경우에는 별다른 이의를 제기하지는 않을 것이다. 1)의 경우라도 회사가 지불능력이 되지도 않는데 무리한 요구를 노조가 했다고까지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를 비판하는 친구는 그 회사를 다니지 않으니깐. 사실 심정적으로만 이야기하는 것이니깐.

 

사장이 임금을 많이준다면 욕할 문제는 아닐 건데, 노조가 임금인상을 요구하니깐 그 노조 탓을 하고 있다. 회사가 많이 주면 개념이 있고, 노조가 요구하면 개념이 없는 것인가. 그러면 노조는 임금인상을 자제하여야 하는가. 친구의 생각은 그럴 것이다. 다시말하면 그렇게 열심히 일하지도 않는데, 돈 갉아먹는 벌레처럼 임금이나 요구하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다.

 

물론 자신도 그만한 임금을 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노조가 임금인상을 요구하고, 사회적으로 높은 임금수준을 유지한다고 해서 그 친구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주지 않는다. 아니 간접적인 피해도 주지 않는다. 반복해서 이야기 하건데, 뭔가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다.

 

그 뭔가가 바로 자신의 상태와 관련된 문제이다.

 

노조가 연대를 하고, 사회적 요구를 하는 노조로 거듭난다고 해도 그러한 친구들이 노조에 호의적일까? 아니라고 본다. 젖소에게 딸기를 먹인다고 딸기우유가 나오는 것이 아니다. 젖소가 생산하는 우유의 본질적 색은 흰색이다. 뭘 먹여도 바뀌지 않는다.

 

결국 자신도 공사직원과 비슷한 수준에 도달해야만이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 곰곰히 생각해보자. 웃기고 자빠진 것은 자신이 노동자라는 사실을, 프롤레타리아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데 문제가 있다. 회사의 입장에서 생각해보자는 말. 지겹다. 그래서 회사가 임금을 덜 주게 되면 그 덜 주게된 임금은 다 어디로 가는가. 그건 기업의 속성을 모르고 하는 말이다.

 

상대적 박탈감.

 

물론 과도한 임금인상이 양극화의 문제나 기업 내부적인 지불능력을 흔드는 문제 등의 우려를 낳을 수도 있다. 조금 다듬어서 표현하면 개별기업마다 임금수준이 편차가 심하고, 이에 따른 상대적인 박탈감이 그 원인이다. 또한 이러한 원인은 경험적으로  IMF 외환위기를 통해 기업위기를 학습한 결과이다. 

 

그 이외에도 많은 이유가 있다. 그러한 박탈감의 문제를 노조의 임금인상 자체를 무력화하는 논리로 접근해서는 안된다. 그것은 노사가 알아서 할 일이다. 임금까지도 여론에 따라, 국민의 사회적 감정에 따라 책정해야 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XX공사가 초봉을 4,100만원을 받든, 조종사들이 억대 연봉을 받든지 간에 임금수준을 결정하는 것은 노사다. 회사가 어렵다고 해서 그 친구가 그 회사를 도와줄 것도 아니다. 만약 그 친구가 사재를 털어서 그 회사를 도울 정도의 또라이라면 나는 그 친구의 이야기에 아무런 토도 달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회사가 어렵게 되면 노조와 협의를 하든 대립을 하든 그들이 결정할 문제이다. 그러나 그것이 한 산업의 문제와 깊이 결부되어 있다면 정부가 개입할 수도 있지만 그 폭은 굉장히 한정적이어야 한다. 임금결정을 국가가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미 국가가 개입하여 임금구조를 복잡하게 만들지 않았는가. 임금가이드라인(wage guideline).

 

문제는 임금구조의 변화, 동일노동 동일임금의 적용, 그리고 직장에서의 차별 철폐 등이 핵심적인 문제로 등장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논의의 바탕에는 사회 내의 저소득층의 문제, 소외된 사회적 약자의 사회안전망과 관련된 논의로 이어질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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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항 그리고 강유원

요즘에 김규항의 글을 읽었다. 그이의 블로그(http://gyuhang.net/)에서 본 글들이 묶어져 나왔다.

"나는 왜 불온한가".

 

김규항. 글 잘 쓰고 나름대로 성찰하는 지식인이다.

 

그이의 글 '진리는 쉽다'라는 글에서는 추기(追記)로 다음과 같이 적어놓았다.

 

"하방(下放)을 기억한다. 하방은 중국에서 1942년 모택동의 연안문예강화 이후 바로 지식인들의 그런 희한한 행태를 뜯어고치기 위해 일정 기간 동안 상산하향(上山下鄕), 말하자면 산간벽지와 북방의 광활한 황무지에 보내 노동하게 한 일이다. 오늘 한국에서, 우리는 하방을 기억한다.(22쪽)"

 

갑자기 아오지가 생각난다. 그리고 일제때의 민족주의자이자 국제주의자인 '박영'이 떠오른다. 박영의 형제(근만, 근수)들도 항일 혁명운동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중 박근수는 '하이루펑(소비에트' 전투에도 참가할 만큼 열성적인 운동가였다. 그러나 그는 1960년대 말 문화혁명때 '하방'을 당하고 결국 투옥돼 사망한다.

 

(자세한 것은 http://www.hani.com/kisa/section-002001000/2005/08/002001000200508081913546.html

 

김규항의 뜻은 무언지 알지만, 하방의 기준이 무엇인지를 논하기 이전에 왜 하방을 이야기 해야 하는지, 그리고 그런 상황을 피하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하는지를 논해야 할 것이다. 인세수입으로 일정한 생활이 가능한 진보적 지식인들이 생각해야 할 것은 다름아닌 그런 방안이다. 하방이 원래 가졌던 의미를 담은 새로운 운동. 이것을 내놓아야 한다. 무작정 하방이 어쩌고 저쩌고 하는 것은 글쓰기의 똥폼잡기가 아닌가 싶다. 이런 문장이 마음에 걸려 김규항을 멀리하게 될까봐 걱정이다. 사실 오바지만.

 

여튼 나는 이런 하방의 논리가 만약 자본주의가 더욱 강고하게 자리잡게 될 때, 아니면 옛날 우리들이 처했던 독재시절(이상호기자 말대로라면 지금은 삼성독재지뭐~)같은 시기로 돌아가게 될 때, 적들이 나를 하방보낼 것이 무섭다. 너무나 짜증나고 무섭다. 내가 아무리 공병대 출신이라고 해도.

 

(사실 하방이 나는 경제논리에 입각한 것이라고 본다. 1980년대 다시 하방이 도입된 것을 보면 1960년대의 하방도 그러한 내용을 담고 있었으리라고 본다. 결국 정신개조는 스스로 하는 것이지 국가 동원논리로 해결해서는 안된다. 그건 세뇌다. 좀 엇나가는 이야기지만 세뇌는 영어로 brainwashing이다. 뇌를 씻으면 이미 그 사람은 죽은 사람이다.) 

 

이런 불편한 심정이 강유원의 사이트에서 조금 풀렸다. 강유원의 홈페이지(http://armarius.net/)에서 다음과 같은 토막글을 읽었다.

 

"앞으로 300년은 더 싸워야 할지도 모른다. 그러니 절망할 게 무어란 말인가?"

 

나는 '하방'보내기 보다는 300년 싸우는 것을 선택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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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인 이야기

유시민이 좀 뜨기 전에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나는 자유주의자의 양심상 진보주의가 탄압받는 건 볼 수가 없다.”

 

그가 예전에 맑시스트였는지는 모른다. 다만 그가 예전에 쓴 책에서 맑시즘에 호의적이었다는 것은 안다. 그래서 내가 어릴 적에는 그가 맑시스트인 줄 알았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스스로가 '불온한 자유주의자'라고 하였다.

 

맑스주의 경제학에 대한 자신의 주장은 거의 포기한 것 같았다. "유시민"이라는 진보적 이미지만은 남아있었던 것 같았다. 실망한 바는 없었다. 잘 몰라서 그랬을 것이다. 그는 테레비 토론에서 사회자와 논객 사이의 적당히 유영하는 강호의 무인같았다. 어쨋든 강호의 자유주의자라 하니 자유주의잔갑다 하고 생각한다.

 

그런 유시민이 나라의 녹봉받는 일을 하기 전까지는 예전에 자신이 가진 신념, 그리고 그 이후 연이어 계속된 공부들. 이런 것들로 인해 진보진영이 탄압받는 것을 참지 못했을 것이다. 고종석같은 진짜배기 자유주의자도 따옴표 같은 주장을 입에서 단내 날 정도로 하니 일단 여기서 그 진정성을 믿어 의심치 말자.

 

 

“민주노동당을 찍는 건 사표다.”

 

그가 정치를 시작하면서 그의 수사적 행태가 더욱 빛나기 시작했다. 다시말하면 개혁당에서 열린우리당이라는 집권당에 진입하기 시계열적으로 보면 더욱 그랬다. 그의 빽바지가 "바리케이트", "화염병"으로 그리고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 때에는 구국의 눈물을 흘렸다. 찔찔거리며 말이다. 나쁜 뜻은 아니니 오해 말기를. 줄줄 운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탄핵에 대해 각자의 생각이 다를 수는 있다. 그러나 그이가 대통령에게 들이댄 "왕의 귀환" 등의 패러디 사진을 액자에 박아서 대통령에게 보여주는 장면. 이 장면을 보면서 내가 얼굴이 화끈거렸다. 김어준씨가 정치인중에 유시민만이 유일하게 대통령 출마를 고려하지 않는다는 단언을 했다는 말을 생각해보면서 한 생각이 스쳐갔다.

 

차라리 스스로의 정치적 목표를 분명히 하는 것이 낫다는 생각을 했다. 강준만의 말대로 '후안무치'를 최고지도자의 소양으로 든다면 그이도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다는 생각이다. 여하간 무슨 똥개마냥 감옥나온 형님께 두부대신 액자를 갖다바치는 일은 조금 오바라고 생각했다. 아부라고 보면 정확할지도 모르겠다. 아마도 대통령도 인터넷 정도는 할 수 있을 것인데. 또 액자는 어디다 걸어두고. 내가 상관할 바는 아니지만.

 

민주노동당 사표논쟁. 위에 말한 유시민의 행태는 급기야 자유주의자의 양심과 무관하게 정치공학적인 계산과 언술을 무기로 '선거는 무조건 이겨야 한다'는 깃발을 들기 시작한다. 호영남에서는 구걸하고, 약자의 약점은 가장 적절히 이용하는 전술. 대선에서도, 총선에서도, 지방선거에서도. 나는 열린우리당이 잘 했으면 좋겠다. 그러나 지금 상황에서 어느 당이라도 영국의 노동당 꼴 안나리라는 보장은 없다. 할 수 있는 한, 그들은 목숨걸고 거짓말을 하든지 자신의 정치생명을 걸어야 했다. 그러나 결국 민주노동당에 대한 이념공세가 차라리 고마울 껄, 이게 뭔가. 그 표는 사표다. 진보정당이 거대정당에 눌려 '표'마저 쓰레기로 전락해버리는 상황. 이건 반칙이다.

 

 

나와 친구들과의 이야기

 

이야기가 길었다. 이런 이야기가 나온 것은 굵은 따옴표를 친 유시민의 두가지 발언을 두고 친구들과의 논쟁이 있었기 때문이다. 대체적으로 유시민을 좋아하는 사람이 많았다. 그래서 설명이 길고, 또한 대답또한 길었다. 물론 나는 듣기만 했다. 내가 내린 결론은 이거다.

 

"니네들 참 인생 힘들게 산다. 두 가지 끼워다 붙인다고 고생하는 구나."

 

두 개가 어떤 연관관계가 있는지, 자세하게 알 수는 없다. 그러나 사람은 변한다. 정치는 사람을 변하게 한다. 그들은 자신의 강함을 내공으로 표현하지 않는다. 오직 세치 혀로 조진다. 이게 정치다. 집단을 벗어날 수 없는 사무라이가 있는 반면, 집단을 자유자재로 바꾸는 사무라이도 있다. 그러나 사무라이는 사무라이다. 이게 정치인이다.

 

세치 혀 끝에서 녹는 정치적 수사. 논리를 떠나서 설득력은 없다. 그러나 각종 지지자들은 이들의 언술과 수사를 신주받들어 모시듯하고, 술자리를 어디든 써먹지 않는 곳이 없다. 급기야 응용문제에 달하면 자신의 모자람을 인정하지 못하고 별로 맞지도 않는 이야기를 억지로 갖다붙인다. 쇠와 플라스틱을 용접하면 당연히 안붙는다. 결국 떨어지기 마련이다. 오히려 용접부위는 더욱 지저분해지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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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李)형에게

간만에 메일 한 통 쓴다.

 

시험준비하느라 고생이 많다. 그러나 어짜피 행님이 선택한 길이니 힘차게 가기를 바란다.

밤이 늦게되면 가끔 잠을 이루지 못해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들으면서 잠이 오기를 청한다. 오늘도 그렇다. 그런데 늘상 책을 읽다보면, 사회과학 책을 제외하고 주로 인터뷰나 신변잡기적인 이야기를 읽게 될 때 뭣모르게 다가오는 공허함이 있다.

 

특히 그 글의 주인공(실존인물)과 그의 친구들 사이에 범접할 수 없는 돈독함 같은 것 말야. 김규항의 글에서도, 조영남의 인터뷰에서도, 김민기의 글에서도, 그 외 주인공과 정신적 교감을 함께 나누는 이들이 너무나 부러우면서도 거부반응이 생긴다.

 

30대 초에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하는 지는 몰라도 지식이나 견문, 사유의 깊이에 있어서 그들을 따라가기에는 너무 모자라다. 그러나 이건 문제가 아냐. 문제는 그런 그들의 관계가 짓이겨지고, 다져져서 고운 맛을 내기만 하는 것이 아닌 설익은 풋과일 내도 난다는 말이다. 조영남이 김민기에게 "넌 나의 새색시같은 친구"라고 했을 때 더욱 그랬다.

 

이런 공허함이 내가 집중적으로 책을 들고 있던 시기에 더욱 심해지기 시작한 거 같다. 교만해진 것일까. 세상과 사람들을 너무 얕잡아 본 걸까. 계속 자극, 자극을 떠들었지만 나에게 돌아오는 자극은 줄어들고 내가 자극할 대상만 늘어난다. 그러면서 그들은 점점 그 자극에 무통의 반응을 느끼면서 시원찮아하고. 또 실망하고.

 

내 스스로 너무 많은 길을 가버리면 결국 잊어버리는 사람이 많아진다. 그래서 때로는 느리게 가기도 한다. 그런데 그런 것을 내가 별로 인정하지 않더라. 몸은 멈춰있어도 생각은 뻗치니 모순된 생각과 행동이 계속 무리지어 나오게 된다. 내 속에 내가 있는 것을 보는 것은 관계가 아니고 성찰에 가까우나 내 밖에 있는 나와 다른 사람, 특히 행님의 마음이 서로 톱니바퀴 처럼 맞으면 때로는 더 큰 기쁨과 성찰뒤에 느끼는 쾌감이 있다. 그러나 그게 시간이 지나면 멈출까 두렵고, 그것을 쉽게 인정해버릴 것 같은 내가 무섭다.

 

한 발 한 발, 왔다. 그리고 지금은 갈래길에 있다. 어딜가도 관계없다. 돌아오는 길은 하나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돌아오는 길에서 만나기 보다는 합쳐지는 길에서 만나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오늘은 그냥 이렇다. 내가.

 

그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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