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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 대한 짧은 소회

1. 제주에 가보니 제주의 절경은 애초부터 관심이 없었고 다만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 내 삶의 일정한 자극이 필요했다.

2. 적잖은 에너지는 충전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그 시간동안 누군가와 함께가는 여행이 사육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행은 자유로운 정신으로 가는 것이다. 특히 신경림이 그랬던가 누가 그랬던가, 패키지 여행은 '사육'이라고 했는데 그게 절실하게 느껴진다.

3. 특히 한라산을 오를 때에는 별 생각없이 갔다가 쓰레기만 줍고 왔다. 그래서 한라산에 대해서는 별 감흥은 없다. 한라산에 오르는 사람에 대해서 왜 산에 가는지 궁금할 따름이다. 산은 그곳에 있기 때문에 오르는 것이 아니라 '성찰'하고 '겸손'함을 배우러 가는 곳이다. 신성한 곳이라는 말이다. 그래서 자주 갈 필요는 없다. 자주 가는 사람은 결국 평소 성찰도 잘 하지 않고 겸손하지 않다고 볼 수 있다.

4. 제주는 넓기 때문에 섬이라고 보기 어려운 정도다. 따라서 차가 있어야 전체를 잘 조망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시간이 되거나 혹은 돈이 있는 사람 둘 중 하나의 조건만 성립되면 된다. 따라서 자전거나 인라인을타고 제주를 돌거나 아니면 렌트카나 자기 차가 있어야 한다. 신혼여행을 오는 사람은 이 두가지 조건에 모두 갖춰진 사람들이다.

5. 자리돔물회, 한치물회는 별로 맛이 없었다. 갈치회 또한 그리 탐탁지는 않았고 다만 갈치조림에 밥을 쓱싹 비벼먹는 정도만 했다. 그냥 동네에 파는 갈치조림에 불과했다. 두사람에 5만원이다. 제주의 먹거리에 이 정도에 불과하니 조금 실망이고, 또한 똥돼진지 흑돼진지도 그게 진짜 똥을 먹는지, 검은지는 확인을 안해봐서 '그저 괜찮네'정도의 자위만 하고 왔다.

6. 비행기 안 - 저녁 비행기의 스튜어디스가 이쁘고 아침시간에 나오는 스튜어디스는 아줌마인 거 같았다. 그냥 그렇다고.

7. 제주에 가면 돌담을 많이 보게 되는데 나중에 질린다.

8. 이중섭 미술관에 갔는데 은지화 몇 장과 원본 그림 몇 개, 자필 편지를 제외하고는 거의 복사본이었다. 별로 볼게 없었다. 설명이 없었다면 입장료 1000원이 아까웠다. 전시관 2층에 동료 화가들이 그림 몇 점을 남겨두었고, 전시관 앞쪽에는 생가가 있는데 아직도 사람이 살고있다. 이중섭의 자식들은 조선을 그리 탐탁하게 여기지 않는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9. 제주에는 세가지가 많다. 그 중 마지막 여자가 많은지는 확인하지 못했다. 아쉽다. 바람이 많이 불어 낚시를 못한 게 좀 아쉽다.

10. 4.3 항쟁을 알리는 표지는 별로 없고, 특히 도로이름이 5.16도로, 1100고지도로 등 불쾌한 도로나 표지가 맘에 들지 않았다. 그러나 제주 사람들은 지나치게 순수하고 맑다. 장사꾼 빼고.

2005년 6월 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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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에서

서해

부두 노동자였던 이브 몽탕과 캬바레를 전전하던 그리스인 조르주 무스타키. 그의 노래가 귓전을 때리면서 나는 서해로 향하는 차를 타고 있다. 하늘은 내가 한 동안 본 적이 없는 청량함으로 덧칠되어 있고, 흰색 물감으로 살짝 터치한 것처럼 구름은 새털모양의 긴 깃털을 흩날리고 있었다.

서울에서 서해까지는 약 3시간 가량 걸린다. 그러나 서해안 고속도로를 탈 때까지는 그러저럭 즐길만하게 갈 수는 있지만 서해에 들어갈 때부터는 어디가 어딘지 지도를 보고서도 알 수가 없었다. 오직 여기저기 붙어있는 '대하축제'의 긴 현수막과 새우모양의 표지물을 제외하고는 이정표에 의존하는 것이 필수다.

일단 목적은 대하를 구경하고, 여유가 된다면 새우를 먹어보는 것이 현재의 목표다. 전자는 달성해도 후자는 좀 어려울 듯. 그래도 안면도까지 진입에는 성공한다. 예상했던 것보다는 많이 막히지는 않았다.

충청도는 그 산과 물의 형색이 가히 남해나 동해를 능가한다. 특히나 바다와 산, 그리고 군데군데 놓여진 호수들이 이 때까지 보지 못한 절경들과 어우러져 눈(目)의 미학적 관점을 한층 업그레이드시키는 것이다. 설악산에는 벌써 7부 능선까지 단풍이 들었다고 하지만 충청도의 이런 날씨와 기온에는 아직 단풍은 때가 조금 이른 것 같았다. 그래도 보색의 대비적 환상을 불러일으키는 푸르름과 발그스레한 단풍잎들의 조화도 그러저럭 보아줄 만은 하다.

안면도에는 그 지명들이 특색이 있고, 순우리말의 지명이 많다. 그래서 더욱더 아름답게 느껴졌다. 동해가 망망대해처럼 느껴진다면, 서해는 어머니의 가슴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어머니의 향기가 문득 기억에서 흩어져 코끝으로 스며들어온다.

너무나 고운 모래밭을 걷노라면, 발가락 사이로 밀려드는 바닷물과 모래의 까실함이 함께 나의 기분을 더욱 촉촉하게 적신다. 이런 모래는 과연 어디서부터 부서져서 먼저알처럼 촘촘히 이 모래밭에 뿌려졌을까? 그건 우리가 생각치도 못하는 몇 만겁의 역사가 우리를 지탱하는 건 아닐까.

차를 타고 백사장이 아닌 갯펄로 가봤다. 새만금을 가보고는 싶었지만 이미 너무 많이 와버린 상태라 어쩔 수 없었다. 그러나 군데군데 검은 갯펄의 보드랍고 미끈한 감촉은 수많은 생명체를 보듬어 줄만한 자격이 있었다. 그러나 인간은 그러하지 못하다. 콘크리트로 무장된 딱딱한 무정만이 존재한다.

아름다움이라는 건 그냥 그대로의 모습이다. 어떻게 바뀌는 것도, 형태를 변형하거나 합성되거나 유기적으로 결합한다고 하더라도 본질은 있는 그대로 두는 것이 아름답다.

'그냥 두는 것'은 곧 변화하는 것을 의미한다.
모든 것은 양면의 실체를 가지기 때문이다. 양면이란 자연이 그냥 그대로 있는 것 같지만 내부에는 보이지 않는 '무수한 변화가 있는 것'을 말한다. 마치 빛이 입자와 파동으로 구성된 것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보이는 것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그냥 그대로 두어야 하는 것을 인간의 거친 쇠조각으로 긁어대고 박아대면 결국 모든 생명체의 변화는 정지된다.
그것이 그대로 둠과 무수한 변화의 변증적 합일의 상태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말로만 변화를 얘기하고, 무수한 생명체의 아름다움을 박제화 시키려는 것일까?

2003.10.10 19:1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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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대교를 건너며

늦은 시간. 어쩔 수 없이 나는 삼각지에서 내려서 용산까지 걸어내려 왔다. 버스가 없었다. 그래서 용산에서 한참을 걸어 '한강대교'를 건너게 되었다. 물론 옵션으로 '한강철교'인가는 몰라도 연속으로 다리 두개를 건넜다.

용산을 지나면서 길모퉁이를 돌아가기전에 보면, '정육점'이 있다. 붉은 불빛에 쾡한 눈을 가진 아주머니들이 호객행위를 하고 '관심있는 분'들은 골목으로 들어간다.

억지로 길을 피해 돌아간다. 길 사이마다 보이는 붉은, 차라리 선분홍에 가까운 충혈된 불빛들. 한여인과 눈이 마주친다. 잠시 움찔. 그러다 눈꼬리를 재빠르게 올리면 겸연쩍은 듯 사라졌다. 그들은 결국 영혼을 파는 노동자들이다. 그래서 이 땅에서 그들은 보호받지 못하는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여하간 노래를 흥얼대면서 걸어가는 것. 그것만큼 자유는 없다. 저멀리서 말끔하게 차려입은 양아치풍의 아저씨가 택시를 세운다. 그리고 택시는 '부웅'하고 떠난다. 약 1초 뒤에 뒤에서는 이런 소리가 들린다.

"여보! 여보. 아이구. 여보오...."

강의 중앙에 이르자 건설노동자들이 자정을 넘긴 시간에도 착암기로, 용접기로 다리를 수리하고 있었다. 그들을 보면서 감사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가슴이 뭉클해졌다. 대교 중앙 교각을 사이에 업클로즈되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그들의 노동이 너무나 소중하다는 걸 다시 느낀다. 기계음과 금속성의 철근 절단 소리는 함께 나의 노래를 디베이스하기 보다는 조화를 이루게 한다. 강산에의 노래를 정신을 맑게해!

노량진에 도착할 무렵, 상도터널을 지나야 한다는 걸 알았다. 터널을 지나는 건 그리 달갑지 않은 일이다. 공사한 흔적들이 널려있고, 커다린 교회가 얇은 언덕 위로 동네슈퍼와 헐거워진 어느 집 지붕위에 군림하고 있다. 이 곳을 빠져나가야 되는데. 어떻게?

택시를 탄다. 고작 5천원 뿐이다. 나는 그에게 물었다.

"00동까지 가면 얼마죠?"
"만원 안짝입니다."
"예......"

일단 탄 것이라 눈을 부릅뜨고 5천원 한도 안에 내려야 했다. 작년만 되었어도 사정을 말하고, 그냥 떨이로 가자고 했을껀데 이제는 그런게 조금 부끄럽다. 아니 많이 부끄럽다.
5천원이 된 곳. 그리고 나는 걸어걸어서 아주 조금 아는 친구의 집에 하루를 머문다. 내가 있을 곳은 어디지?(두리번*^^*)

그러면서 들려오는 한 구절...

"네 갈 길을 가라! 남이야 뭐라든!" - K.Marx

2003.09.29 12:3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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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에 대하여


손은 인간의 철학과 역사를 반영한다. 특히 손은 신분을 나누는 철저한 기준이 되지만, 오히려 그것을 은폐하는 포장지로 이용되기도 한다. 달리 말하면 손가락에 끼워진 사치스런 광물들 때문이다.

손은 운명을 표시하는 지표로, 쉽게 말하면 사기치기에 딱좋은 신체부위 중에 하나이다. 관상이야 근래에 뜯어고치는 인간과 현대의 각종 노폐물들이 인간의 표정을 찌푸리게 만들지만, 그것보다 손의 피부는 강한 편이라 그렇게 문제될 바는 아니다.

그래서 손으로 사기를 치는 인간과 손에 그어진 몇 줄에 자신을 운명을 내맡기는 인간도 더러있다. 물론 손금봐준다는 명목으로 여성과 잘된 '꾼'도 있을 수 있다. 조심해야 되겠지만.

여하간 손이라는 건 인간에게 너무나 중요한 기관이며, 이 기관은 결국 머리속을 모든 반응과 과정을 나타내주는 안테나와 같다. 그러나 우리는 역사 속에서 이런 머리와 손, 손노동이 지적노동에서 분리되는 것을 목도하고 있다.

창조적 노동이 통제된 노동으로, 특히 근대와 현대를 거쳐 테일러주의가 '시간동작'을 연구하면서 점점 인간을 손 자체가 하나의 독립된 기관으로 머리는 손을 지배하기 보다는 손의 저항을 막는데 급급하게 되었다.

"삶의 조건들은 맑스가 <자본>에서 묘사했듯이 노동자들은 머리가 아니라 <손>으로 환원하는 기계의 소외 효과처럼 지적인 발전을 불가능하게(권현정, 맑스주의 페미니즘 현재성, 105 쪽)"만들었다. 그래서 많은 노동자들은 손가락이 짤려나간채 속수무책으로 오직 산재보상만 바라보는 신세가 되었다.

다시 생각해 본다. 많은 사람들의 손을 보며, 할머니의, 할아버지의 고목나무같은 손을 보면서 나는 생각한다. 짤려나간 노동자의 손을 보면서, 어머니 비린내와 기름때 묻은 손을 생각하면서 나는 그것이 단순한 역사가 아닌 역사를 바꾸는 계기가 되는 기관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과거부터 지금까지 언제든지, 곡괭이와 낫을 들게하고, 또한 총을 들게한다. 그리고 세상은 바뀌어 왔고, 앞으로 세상은 바뀌어 왔다. 그래서 자본주의라는 오야붕의 보이지 않는 손은 결국 보이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보이지 않는 손은 거짓이고, 결국 살아있는 노동자, 농민, 영세상인, 그리고 모든 민중의 손이 바로 진실일 뿐이다.

2005. 1.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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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어준

딴지일보 총수. 무슨 총수야. 혼자할 때도 총수였는데...

 

그는 배울 점과 느끼는 점이 다르고, 배우지 말아야 할 점이 있으나 배우지 말아야 하는 점에서 공감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솔직히 배우지 말아야 할 사실과 논리 속에는 우리 마음 속에 이미 자리잡은 행동과 관습들이 이미 녹아있다. 그래서 오히려 내가 위선에 가깝다는 점을 느낀다.

 

다른 것보다 그의 인터뷰에서 느끼는 것은 그의 딴지는 딴지를 위해 존재하는 딴지가 아니라는 점이다. 자신 스스로가 딴지가 되어 사회의 갑갑한 부분에 대해 화염병을 들고 뛴다. 던지기고 하고 때로는 심지를 뽑기도 하지만 결국 불을 붙이고 돌아오는 근성에서 많은 것을 배운다. 좋다. 마초의 혐의. 그 따위는 비판받아야 하고, 다만 인격적으로 밟지는 말아야 한다고 본다. 그러나 사실 마초. 그것도 현실의 나다.

 

그의 인식의 활로가 열려 있는 것은 바로 이 대목 아닐까?

 

그의 말... 

 

"제가 배낭여행 한 50개국을 했는데.. 근데 여행을 한 열 개 나라 정도까지 할 때까진 가장 먼저 그 나라의 다른 점들이 보였죠.. 예를 들어서, 버스를 타면 어떤 나라는 토큰을 내고, 어떤 나라는 현금을 내고 그런 작은 차이도 처음엔 다 신기하죠. 동전크기만 달라도 신기해서 수집을 하고. 근데 3~40개국을 넘어서는 어느 시점부터는 같은 점이 보이기 시작해요. 버스를 타면 돈 낸다, 다 똑같단 말이죠. 그니까 현상은 다 사라지고 본질만 남은 거죠. 그리고는 사람 사는 데는 다 통하기 마련인 규칙만 남는데, 그 규칙대로만 살면 돼, 나머지는 다 껍데기야 라는 그런 통찰, 살아오시면서 그런 본질에 대한 통찰을 위해 노력하셨던 거 같은데.."

 

우리는 사사건건, 지랄을 하고 있다.

 

뱀발: 그의 말 하나더..우리는 자신에게 속고 있다는 사실. 경기도지사 후보 열땅의 진대제와의 이너뷰에서.. 두발 자유화에 대한 질문, 대가리를 무제한 자기 마음대로 하는 것은 심한 경우에 인정하기 어렵지 않으냐라는 진대제의 답변에 대해...

 

총 : 심한 건 어느 정도죠? 무슨 색깔을 해야 심한 건가요?
진 : 무슨 그.. 초록색으로 물들이는 것은 저는 좀 보기 안 좋더라고요.

총 : 초록색이 싫은 건 진후보님 취향이고, 그건 그 학생이 결정할 문제 아닌가요?
진 : 예. 근데 저 보는 관점에서 얘기하라는 겁니까 아니면...

 

2006. 5.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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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춘

일단 기록만 해둔다. 그는 내가 국민학교 6학년부터 꾸준히 들어왔던 사람이고, 또한 그의 삶을 잘 알고 있으며 그의 음악의 지하세계와 지상을 비교적 잘 안다.

 

이제는 그의 지하와 지상은 구분이 없다. 지상에서 지하. 결국 과거에 선택할 수 없었던 점에 비추어 보면, 지금도 별반 다를 것이 없다. 다만 우리는 항상 그 통로에 있다는 것. 그래서 아직도 민주주의는 빛을 발하기 힘들다. 그늘진 표정을 상기해야 한다.

 

그의 말..

 

"할 얘기가 별로 없어요. 스스로 비장해지지도 말고 스스로 감격하지도 말고 그냥 이렇게 여러분들을 만나고 싶었습니다."

 

반성하게 된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도 반성하라. 객관을 유지하고 자신의 감정과 위치를 오버해서 가상화하는 것. 이런 점에서 정태춘은 점점 낮은 곳으로 가는, 그렇지만 어둡지 않은 사람. 그게 와닿는다.

 

뱀발: 그는 평택 대추리에서 포크레인 밑에서 장렬히 경찰들에게 끌려갔다.

        그의 투쟁은 끝나지 않는다.

        그의 노래를 지킨 것과 같이 그는 그의 고향을 지킬 것이기 때문이다.

 

        mms://ohmyvod.ohmynews.com/ohmytv/vod/3800/iris0602_060315_2.wmv

 

2006. 5.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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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환

시인 김정환. 그는 동네 아저씨고 임옥상과 친하다. 그가 예전에 프레시안의 한 꼭지를 맡아 글을 쓴 적이 있다. 그는 임옥상의 인상묘사를 "인디언"으로 묘사했다. 그건 예사 친분이 아니고는 힘들듯하다. 사실 실제로 임옥상을 보면 그렇다.

 

소맥을 좋아하고 친근하면서 때로는 작두 끝, 마지막 날로 발톱을 깎는 섬세함이 있다. 그래서 좋다. 배울 점이 무궁하다.

 

그의 말.

 

"술은 정신과 연관되므로 비싼 술이 맛있을 수가 없다."

 

그렇다. 그에게 술이라는 건 정신을 지탱하는 에너지이자 박카스다. 예전에 전순옥 선생님과 함께 '참터'행사에서 김정환 선생을 만났는데, 여전히 소맥을 좋아하시는데 내가 제조한 소맥은 너무 쓰다고 싫다 하셨다. 그래도 잘만 드시더니만.

 

뱀발: 글들을 수정할 지 모른다. 내 정신 속에 있는 글들을 기억에서 꺼내 날잡아서 스크랩한다는 것. 어렵다.

 

2006. 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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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병수

짧게. 외롭다. 그러나 이 사회가 그의 열정을 북돋아 준다. 자본주의가, 파괴되는 환경이, 소외받는 사람이, 민중이....그는 수술을 했고, 회복 중에 있으면서 작품을 한다.

 

그의 작품은 운동권 찌라시의 내용을 담아냈지만, 찌라시의 가벼움과 다르다. 구본주가 살아있다면 어떤 평가를 했을까. 나는 구본주의 정신이 뭔가 무디게, 그렇지만 결을 따라, 한올한올 그의 근육에서 뽑아낸 실로 만든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그의 말..

 

"...본회에서 미국의 콜린 파월이 짐바브웨이와 아프리카 여러 국가에게 GMO(유전자조작식품) 옥수수를 왜 받지 않냐고 물었었죠. 이에 짐바브웨이 대통령은 죽으면 죽었지 너희들의 유전자 실험 대상이 될 수는 없다고 말했답니다. 그 때 NGO는 모두 기립해서 미국에 극렬한 비난을 퍼부었어요. 그렇게 퇴장 당한 후 허탈해 하고 있었는데 밖에서 최병수 화백이 100마리 펭귄을 깎고 있었어요. 어찌나 통쾌하던지..."

 

그런 사람이다. 최병수를 볼 때, 그를 이해하는 여자 한사람이 있어야 한다는 것, 그리고 그가 아픈 것은 자본주의의 저주가 아니라 오래된 피로여야 한다는 것.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의 작품이 항상 사회가 모순을 담고 있다면 영원할 것이라는 것. 이상.

 

뱀발: 최병수의 작품 중 일부는 여기에서 볼 수 있고, 그의 생각도 읽을 수 있다.

        http://cast.jinbo.net/news/view.php?board=news&id=31161

        아직의 그이의 책은 사보지 못했다. <목수, 화가에게 말 걸다>

 

2006. 5.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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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상수

영화감독.

 

처녀들의 저녁식사. 그리고 바람난 가족....윤여정이 나오고.

일류 마이너리티를 찾아낸 감독이자, 진실한 표현이 때로는  파격적이지만 보수적일 수도 있다는 느낌을 교묘히 정리하는...쉽지않은 감독. 그의 말.

 

"아버지 쪽 식구들이 쫘악 있어야. 할아버지, 할머니, 고모, 삼촌 이렇게 대가족 형태로 쫘악 있어야, 소위 한국에서 가부장제의 파워를 갖게 되는 거지, 그냥 띡 혼자 있는 아버지는 보통 가부장의 권위가 이미 없다. 그런 얘기를 들었고.."

 

임상수는 위의 말 같은 가족에서 태어나지 않아 군대같은 학교생활, 엄한 규율의 군대생활, 예비군, 그리고 도제시스템의 충무로 구조하에서 나름대로 반항을 즐기며 영화를 만든다.

 

배울 점이 있다.

 

뱀발: 그의 인터뷰는 딴지일보를 참고하시라. 검색가능.

 

2006. 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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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석

 

"자신의 발언을 자신의 발 밑에 조회해보는 일은 누구에게나 힘든 일일까?....(아주 많이 중략)....자신이 실천할 수 있는 것 너머를 이야기하지 않는 절제는 공적 발언을 업으로 삼는 사람들 모두에게 긴요한 덕목이 되어야 할 것 같다." <글쓰기의 무서움> 중에서...

 

고종석..그는 지금 나의 코드에 가장 맞다. 진보로 치장된 자들에 대해 자유로운 비판은 스스로의 실천을 예정하지 않는 글쓰기가 전제되지 않으면 안된다. 그래서 요즘은 뼈저리게 그것을 느낀다.
 

뱀발: '자유의 무늬'는 읽으면 고종석이 가진 생각을 가장 착실하게 발견하고 습득할 수 있다. 가령 장애인들의 보행이 우리나라의 경우, 유독 눈에 띄게 적다는 점을 들면서, 그것이 장애인 수가 적어서가 아니라 모두 집에 박혀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 점. 이에 대한 논거로 우리나라가 교통사고율 세계 1위라는 것을 든 점. 그 많은 장애인은 어디로? 이런 논리다.

 

2006. 5.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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