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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에 대하여


손은 인간의 철학과 역사를 반영한다. 특히 손은 신분을 나누는 철저한 기준이 되지만, 오히려 그것을 은폐하는 포장지로 이용되기도 한다. 달리 말하면 손가락에 끼워진 사치스런 광물들 때문이다.

손은 운명을 표시하는 지표로, 쉽게 말하면 사기치기에 딱좋은 신체부위 중에 하나이다. 관상이야 근래에 뜯어고치는 인간과 현대의 각종 노폐물들이 인간의 표정을 찌푸리게 만들지만, 그것보다 손의 피부는 강한 편이라 그렇게 문제될 바는 아니다.

그래서 손으로 사기를 치는 인간과 손에 그어진 몇 줄에 자신을 운명을 내맡기는 인간도 더러있다. 물론 손금봐준다는 명목으로 여성과 잘된 '꾼'도 있을 수 있다. 조심해야 되겠지만.

여하간 손이라는 건 인간에게 너무나 중요한 기관이며, 이 기관은 결국 머리속을 모든 반응과 과정을 나타내주는 안테나와 같다. 그러나 우리는 역사 속에서 이런 머리와 손, 손노동이 지적노동에서 분리되는 것을 목도하고 있다.

창조적 노동이 통제된 노동으로, 특히 근대와 현대를 거쳐 테일러주의가 '시간동작'을 연구하면서 점점 인간을 손 자체가 하나의 독립된 기관으로 머리는 손을 지배하기 보다는 손의 저항을 막는데 급급하게 되었다.

"삶의 조건들은 맑스가 <자본>에서 묘사했듯이 노동자들은 머리가 아니라 <손>으로 환원하는 기계의 소외 효과처럼 지적인 발전을 불가능하게(권현정, 맑스주의 페미니즘 현재성, 105 쪽)"만들었다. 그래서 많은 노동자들은 손가락이 짤려나간채 속수무책으로 오직 산재보상만 바라보는 신세가 되었다.

다시 생각해 본다. 많은 사람들의 손을 보며, 할머니의, 할아버지의 고목나무같은 손을 보면서 나는 생각한다. 짤려나간 노동자의 손을 보면서, 어머니 비린내와 기름때 묻은 손을 생각하면서 나는 그것이 단순한 역사가 아닌 역사를 바꾸는 계기가 되는 기관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과거부터 지금까지 언제든지, 곡괭이와 낫을 들게하고, 또한 총을 들게한다. 그리고 세상은 바뀌어 왔고, 앞으로 세상은 바뀌어 왔다. 그래서 자본주의라는 오야붕의 보이지 않는 손은 결국 보이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보이지 않는 손은 거짓이고, 결국 살아있는 노동자, 농민, 영세상인, 그리고 모든 민중의 손이 바로 진실일 뿐이다.

2005. 1.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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