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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돌이....

새 학기가 시작되면서, 내 나름대로 재미난 실험을 하나 하려고 한다.

 

내가 수업 들어가는 학급의 아이들이 나를 부를 때, "000선생님"이 아니라 "차돌이"라고 별칭을 부르기로 하는 것이다.

 

첫 수업 시간에 "차이는 차별이 아니다"라는 주제로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단지 '차이'일 뿐인 것을 '차별'하는, 일상의 사례들을 말해 보는 것이다.

그리고, 교실에서 학생과 교사 사이에도 단지 '차이'인 것이 '차별'로 나타나는 경우는 없는가를 생각해 보는 것이다.

 

교사 : 학생 = 나이많음 : 나이적음 = 남성(여성) : 여성(남성) = 이성애(동성애) : 동성애(이성애) = 장애(비장애) : 비장애(장애) = (교과를)가르친다 : 배운다.....등등

 

교사에게는 이 사회가 부여한 다양한 권력이 내재되어 있다. 그것은 현실로 드러난다. 학생들은 이러한 권력 관계(교사와 학생 사이의 권력 관계)가 자연스레 체득되어 있기에, 교사에게 알아서 '복종'한다....

 

이걸 어떻게 극복할 수 없을까? 무엇이든 이야기할 수 있고 어떤 것이든 차별받지 않는 자유로운 공간이어야 할 교실에서 학생과 교사 사이의 권력 관계를 어떻게 극복해야 할 것인가...

 

아이들과 호칭 부르기를 해 보았다.

 

1. "홍길동 선생님"

2. "홍길동 선생"

3. "홍길동"

4. "차돌이(차돌아)"

 

아이들이 각각의 호칭을 부른 뒤, 느낀 바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아이들은 1 보다는 4에서 교사와의 심리적 거리가 훨씬 줄어든다고 이야기한다.

 

아이들이 교실에서 자신의 욕구를 자연스럽게 '이야기'하지 못하는 것이 교사와 학생 사이의 권력 관계가 내재화되어 있기 때문이라면, 그러한 틀거리부터 바꾸어 보는 것도 의미있지 않을까?

 

그래서, 일단, 수업시간 한 시간을 할애해서 활동 수업을 하며 나에 대한 호칭을 "차돌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그리고 서로의 느낌을 다시 이야기해보며 서로에게 어떤 의미로 느껴지는 지 확인해 보기로 했다.

 

언어는 의식의 반영이다. 역으로 언어는 의식을 형성한다.

일상의 언어에서 일탈을 시도해 본다. 물론, 말 한마디 바뀐다고 확 바뀔 것이라는 기대는 하지 않는다.....교실의 일탈을 계속 꿈꿔 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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