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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은, 근황.

정식으로 학생회장 직에서 물러난 지 이제 일주일이 지난 셈이다.

 

그리고 나의 현실은 -_- 정말로(!!) 하는 일 하나 없이 놀고 먹는 백수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했다;;

 

더 많은 얘기를 듣고 싶다면,

 



어디서부터 얘기를 풀어나가야 할까.

 

심지어 나조차도 어디가 시작이고 어디가 끝인지 알 수 없는, 엉켜 있는 상황이다.

 

자기정리인 셈 치고 간단하게 말하자면, 난 운동이 하고 싶었고, 집안의 반대에 (당연히도) 부딪혔으며, 나는 거기서 무릎을 꿇었다.

 

하지만 실제로는 훨씬 더 복잡한 일들이다....

 

 

 

첫째, 내가 운동이 하고 싶었다고 말하는 건, 진짜인지 거짓인지 알 길이 없다. 새빨간 거짓말은 당연히 아니다. 아직도 나의 이성은 그렇게 쓰레기처럼 방구석에 늘어붙어 썩어들어가느니 어서 빨리 거리로 나서라고 명령하고 있다. 그러나 썩어들어감을 감수하고 있는 나의 육체는 다르게 말한다.

 

이제 그만, 더는 힘들다고.

 

수많은 좌절과 어긋남이 있었지만, 그것 자체가 힘들었던 것은 아니다. 그것을 예상치 못했다면 나는 관념적이었다는, 뭣도 몰랐다는 비난을 받아도 할 말이 없겠지.

 

나를 좀먹어 들어간 가장 큰 적은 '무력감'이라는 이름의, 거대하다기보단 미세하고 우글거리는 벌레 떼였던 셈이다. 이 모든 것들이 마치 손가락 사이로 흘러 내려가는 모래알처럼, 막을 수도 없이 폭주하고 있다는 그 무력감은 나를 미치게 한다.

 

머리가 아니라, 그 안에 들어있는 뇌 자체를 직접 조여오는 듯한 느낌으로 대변되는 그 압박감 속에서 나는 결국 지쳐 버리고 만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운동이 싫어졌느냐, 그것도 아니다. 나를 지치게 만든 요인 자체가 운동에 대한, 해방에 대한 나 자신의 주체할 수 없는 절박감에서 태어난 것인데 어떻게 그것이 싫어질 수 있겠는가? 나는 뛰쳐 나가고 싶다. 무언가를 만들어내고 무언가를 파괴해 나가고 싶다. 무력감의 수렁 속에서 벗어나고 싶다.

 

....그러나 세상은 역시 그만큼 만만하지 않은 셈이다.

 

 

 

둘째, 집안의 반대에 부딪혔다는 것. 어찌보면 이 바닥에서 굉~장히 상투적인 것이지만, 나의 경우엔 확실히 복잡하다(하긴, 안 복잡한 사람이 어딨겠냐마는).

 

내가 좌파가 된 것은 어찌 보면 집안의 영향이 크다. 부모님이 빨갱이였냐고? 아니다. 그럴 리가 있나. 부모님의 정치적 성향은 이 문제에서 아무런 상관이 없다. 문제는 내게 있어 언제나 부모님이란 억압의 화신이었다는 점이다.

 

굳이 나 자신을 정신분석학적으로 파헤치고 절개하고 싶지는 않지만, 그 점을 거부할 수는 없다. 나의 해방은 결국 이 년놈들을 뛰어넘어야만 이루어질 것이다. 봉건성, 편견, 그들만의 당위, 억지와 폭력 속에서 나는 이들을 깨부수던지, 뛰어넘던지 해야만 했다.

 

물론 나는 그것을 이루지 못했다. 훌륭한 패배자인 셈이다.

 

굳이 변명을 하자면... 내게는 형이 있다. 이 빌어먹을 놈의 집구석에서 유일하게 한 가족이라는 감정을 느낄 수 있는 형. 그 형에게 이 놈의 집구석은 '집구석'이 아니고, 부모님은 '그 빌어먹을 년놈들'이 당연히도 아니다. 어쨌든 형은 장남이고, 또 원체 나보다는 막나가는 사람이 아니니까 말이다.

 

나 혼자 몸이라면 어떻게든 했을 지도 모르겠다. 버려진다는 공포심은 동지들과 함께 떨쳐내고. 하지만 나 때문에 형이 곤란해지는 것은 참을 수 없다.

 

... 그렇다. 어디까지나 변명인 셈이다. 최후의 방법을 쓰지 못한 것에 대한 변명일 뿐, 극단적이지 않게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지혜와 기교가 내게 없었다는 것은 오로지 인정하고 갈 수밖에 없는 셈이다.

 

 

 

무릎을 꿇었다는 것도 애매한 셈이다. 아버지는 내게 강압적으로 '이제 모든 것을 즉시 때려치우고 미래를 설계하라'고 '명령'했고, 나는 '예'라고 대답했지만, 여전히 나는 고시 준비를 하거나 아르바이트를 알아 보는 대신 방바닥만 긁고 있다.

 

이건 뭐랄까, 내 육체의 관성 비슷한 것인 듯 하다. 지금까지 나의 몸과 마음이 하나가 되어 원하는 것, 옳다는 것을 행하던 생활을 벗어던지고, 이제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움직여야 한다는 현실을 내 몸은 거부하고 있는 셈이다. 안 그래도 가뜩이나 정신도 혼란스러운데, 참 나.

 

결국 내게 있어 현재의 생활을 청산하고 '무언가'를 하는 것은 눈물의 루비콘 강인 셈이다. 현재 내가 겪고 있는 혼란과 갈등, 아픔과 무력감을 전부 가슴의 지하굴에 매장시켜 놓고 나의 과거 3년을 전격적으로 부정하겠다는 하나의 선인 것이다. 나는 그 선을 넘지 못하고 있다. 도저히 넘지 못하겠다.

 

 

 

나의 현재는 저 세 가지 복잡한 지점들이 서로 뒤엉켜 있는 셈이다. 여기서 타래를 풀려고 하면 저기서 엉키고, 저기서 풀어보려고 하면 여기가 또 말썽이다.

 

도저히 풀리지 않는 이 타래를 정말로 매장시키고, 눈물도 양심도 없는 새 생활을 시작하자. 그러다 보면 익숙해질 것이고, 매장의 흉터는 아물 것이다. 이렇게 생각해 본 것도 수십번이다. 하지만 그 매장의 시도 자체가 타래에 엉켜있다는 것을 깨닫고 다시 나는 멈춰 설 수밖에 없다.

 

내가 가지고 있는, 신체적 고통에 대한 유별난 공포감만 아니었다면 벌써 자살을 시도해도 백 번은 시도했을 법도 하다. 더 이상 어느 방향으로도 나아가지 못하는 삶이라는 것이 도대체 삶이긴 하단 말인가.

 

 

 

결국 나는, 이 블로그에도 완연히 드러나는 것이지만, 나의 좌파적 양심을 내가 일평생에 걸쳐 유지해 나갈 수 있을만큼으로 조절하지 못했다. 나는 80년대의 청년들이 그러했듯이(역시 쌍팔년도 감성인가), 보다 더 많은 것을 말했고 보다 더 많은 것을 믿었다. 그리고 그 좌절 앞에 역시 똑같이 무릎꿇고 있다.

 

나약한 내가 일평생에 걸쳐 유지해 나갈 수 있을만큼의 좌파적 양심이라는, 그 선을 사실 몰랐던 것은 아니다. 사실 그랬기에 지난 3년간 나는 이리저리 교묘하게 선을 넘지 않도록 피해 왔다. 신데렐라라는 비아냥까지 들어가면서도 꿋꿋이 집을 들락거렸고, 조직의 유혹도 끝까지 뿌리쳐보려고 했다(결국 넘어갔지만!). 뭣보다도 학생회장을 맡는다는 것은 정말 계획에 없었던 일이다.

 

그러나 나는 내 자신에게 묻고 싶었다. 대체 그 선은 어떤 머릿속에서 나온 것이냐고. 자기부정, 자기극복이라는 용광로를 거치지 않고 얌전하게 가능한 선 앞에서 내려앉는 조그만 새가 될 것이냐고. 내가 원하는 것, 내가 할 수 있는 것에 미리 선을 긋는 것은 치졸한 자기방어일 뿐이라고. 그리고 나는 뛰어들었다.

 

한 가지 분명한 건 난 아직도 그 자문을 당연하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와 똑같은 정도로 분명한 건 내가 뛰어들기 전에 생각했던 선이 뛰어듬을 통해서 옳은 것으로 증명되었다는 사실이다.

 

이 선에 대해서 신랄하게 언급한 바 있는 B급 좌파 김규항 씨는, 80년대의 운동권들이 이것을 지키지 못했기에 90년대의 우경화 바람에 너무나도 옹졸하게 편승했다고 비난했다. 그러나 나는 새로운 것을 알았다. 그 선을 넘고 말고는 개인적인 오류의 문제,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이렇게 표현해도 된다면) 운명적인 문제라는 것을 말이다.

 

나의 선을 확실히 알고 있었음에도 나는 왜 그것을 넘어가 나 자신을 이토록 피곤하게 만들었단 말인가. 그것은 결국 나의 이성의 명령이었다. 선 바로 앞에 서서 선 너머를 바라볼 때, 그 너머에서 너무나도 절박하고 아름다운 피의 꽃이 피어나는 것을 바라볼 때 나는 그 유혹을 견디지 못하고 '옳음'이라는 이성의 명령을 따라 꽃을 따러 가 버린 셈이다. 이것이 나의 선택의 문제란 말인가. 차라리 그 피의 꽃을 처음부터 보지 못했다면 모를까, 그것을 본 한 인간이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었단 말인가.

 

누군가는 아마도 담담하게 그것이 지식인의 숙명이라 얘기할 지 모른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이것이 숙명이라면 그건 너무 가혹하다.

 

 

 

나의 근황이 앞으로 어떻게 결론지어질지는 나도 모른다. 그걸 알면 이런 글을 쓰지도 않았으리라. 다만 나는 이 글을 통해서 충분히 나 자신을 정리해서 바라볼 수 있었고, 그건 앞으로 나의 선택에 무언가 영향을 미칠 것이 틀림없다.

 

김규항 씨는 자신이 B급 좌파라고 했나. 김규항 씨처럼 날카로운 말솜씨로 칼럼을 쓰거나 하지도 못한 채 그냥 아무도 알 수 없는 골방에서 혼자 썩어가고 혼자 고뇌하는 나는 B급은커녕 C급이라야 옳겠다.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나는 좌파다.

 

그래, C급이라도 좌파로 살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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