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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1965년의 출판 이후 '무시무시한 정신 쇠약'에까지 이르는 깊은 불안을 나타낸다. "내가 정치에서 행한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정치에 대한 일종의 순수 사유이다." 당시에 우리는 그를 바로 이렇게 이해했다. 그리고 바로 이 대문에 우리는 결코 알튀세르주의자였던 적이 없다.
- 4. 루이 알튀세르와 마주침의 신비 中
내기를 걸어야 한다! 바디우는 이 파스칼적 명령을 자기 입장에서 다시 가져온다. 즉, "공산주의 정치에 내기를 걸어야" 한다고. 왜냐하면 "당신은 공산주의 정치를 결코 자본에서 연역해낼 수 없기" 때문이다. 내기는 모든 참여의 철학적 형태이다. 그것은 실증적 지식의 독단적 확실성과 현세적이고 노쇠한 냉소적 회의주의를 역류해, 진리라는 공백의 자리에서 파스칼의 숨은 신 같은 존재와 불확실한 관계를 맺기 때문이다. ... "파스칼의 내기는 세계의 가치들이 제한적이라는 데 만족해 버리는 회의주의와 무관하며, 세계 안에서 진정하고 충족적인 가치를 발견햇다고 믿는 독단주의와도 무관하다. 왜냐하면 이들의 정립에는 내기가 강제적으로 배제되기 때문이다. 바로 이 때문에 회의주의와 독단주의는 동일시될 수 있다. 양자 모두 살아남기에 충분할 정도의 확실성과 진리를 소유하고 있는 한에서."
실제로 혁명적 사건에의 충실성은 언제나 테르미도르의 위협에, 어제에도 있었고 오늘에도 있는 테르미도르주의자들의 위협에 직면해 있다. 사랑에서의 테르미도르가 사랑을 냉각시키듯이, 정치에서의 테르미도르도 그렇다. 즉, 그토록 많은 항복의 기회가 있다! 목을 숙이고 등을 굽히라는 수많은 유혹이 있다. 피로 때문이든 신중함 때문이든 그토록 많은 체념과 타협의 구실이 잇다! 여기에는 좋거나 나쁜 합리적 근거도 잇다. 가령 최소의 악을 선택함으로써 (이는 곧 최악으로의 지름길이 될 것이다) 최악의 정치는 만들지 않기 위해, 최악의 사태를 막기 위해, 혹은 매우 간단히 '책임 있음'을 보여주기 위해. 그런데 정치에 대한 책임성은 무엇을 가지고 어떤 단위의 시간으로 측정되어야 하는가?
- 5. 알랭 바디우와 사건의 기적 中
※ 강조는 인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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