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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대포 정권 해체하라!!

전에 진보블로그에서 어떤 분이 "전두환 정권이 최루탄 정권이었다면, 현 정권은 물대포 정권"이라고 표현하신 걸 봤다. 보자마자 무릎을 딱 쳤다. 너무나도 정확한 표현이다. 전두환 정권이 최루탄과 백골단의 몽둥이로 민주화를 요구하는 민중들을 짓밟았다면, 노무현 정권은 물대포와 123중대의 방패날로 민중세상을 요구하는 민중들을 진압하고 있다. 진압의 도구와 정세적 구호만 달라졌을 뿐, 이 둘은 본질적으로 똑같다.

 

최루탄과 몽둥이가 그랬듯이, 물대포와 방패날은 자신의 피를 더 이상 빨리지 않겠다고 일어선 사람들에 대한 무자비한 탄압이자 얌전히 있으라는 협박이다. 자신의 삶에서 우러나오는 분노를 표출하기 위해 거리를 달리는 거대한 들불을 막기 위해, 그 사람들의 발을 멈추기 위해 최루탄과 물대포는 사용된다. 그리고 잠시 멈춘 그들을 짓밟고 다시는 기어오르지 못하게 하기 위해 휘둘러지는 것이 몽둥이와 방패날이다.

 

이 물대포 정권이 이렇게까지 해서 얻으려는 것은 무엇이란 말인가. 그것은 민중의 피다. 산 자의 피를 마시지 않고는 한 순간이라도 살아 있을 수 없는 자본주의라는 이름의 흡혈귀의 욕구다.

 

이 땅에 비정규직을 한 사람이라도 늘리고, 거대 농업자본의 쌀을 한 톨이라도 더 수입하고, 이 땅의 대학을 하나라도 더 자본의 손에 넘겨주어야, 그들에게는 한 방울의 피라도 더 떨어지는 것이다. 그런 피로 자본과 국가라는 이름의 흡혈귀들은 무럭무럭 자란다.

 

몸 전체를 가릴 수 있는 방패를 든 전경들 뒤에서, 그들의 전투를 후방지원하는 물대포가 발사된다. 높은 곳에서 추이를 지켜보는 지휘자는 병사들의 사기를 드높이고 효율적인 작전 수행을 위해 끊임없이 확성기로 명령을 내린다. 심지어 방송차는 적군에 대한 회유방송을 통한 심리전까지 수행한다. 이에 대해 민중들은 쇠파이프와 죽창, 그리고 자신의 온몸으로 맞선다. 오늘날 이 땅에서 너무나도 자주 볼 수 있는 이러한 장면들 속에서 고대 로마의 스파르타쿠스 전쟁의 오마주를 느끼는 것은 나뿐인가?

 

그렇다. 일전에도 언급했듯이 정치는 전쟁의 최소이다. 왜냐하면 전쟁이 정치의 연장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최소한의 전쟁은 거리에서 그 본질을 드러낸다. 이 나라의 수도에서 전투경찰이라는 이름의 병사들과 민중이라는 이름의 노예들이 벌이는 격투는 하나의 전쟁이며, 이 땅의 내전이다.

 

따라서 물대포는 그냥 물대포일 수 없다. 그것은 민중들의 삶에 전쟁을 선포하는 흡혈귀 정권의 무기이며, 그러한 전쟁상황을 확고히 보여주는 하나의 표상이다. 이 표상을 거리에서 직접 마주치는 민중들은 그것을 통해 이러한 전쟁상황의 본질을 전체로서 납득한다.

 

하지만, 이라크전에서도 그랬듯이, 현대의 전쟁은 미디어 전쟁이다. 비단 공식적인 언론매체 뿐만이 아니라, 모든 종류의 담론들이 거쳐가는 통로이자 국가장치로서의 미디어는, 현재 이 땅의 전쟁을 어떻게 비춰주고 있는가. 그 속에서 전쟁의 본질은 은폐되고, 거리 위에 아직 서지 않은 더 많은 민중들은 철저히 기만당한다.

 

우리가 내놓을 수 있는 답은 단 하나다. 적들이 정교한 기만의 장치를 통해 진실을 은폐할 때, 우리는 담백하고 명백한 진실의 표상을 광장에 내놓는 방법밖에 가지고 있지 않다. 맑스가 적들의 논리를 인정하고 그것을 끝까지 밀고 나감으로써 적들의 논리를 파산시켰듯이, 우리는 적들의 물대포를 인정하고 그것을 거리에 나오게 함으로써 마침내 물대포 정권을 해체시켜야만 한다.

 

전쟁은 선포되었다. 이제 남는 것은 이기는 자와 지는 자 뿐이다. 표상을 공개하고, 그것을 통해 진실을 폭로하는 것, 그것을 실현할 수 있는 우리의 도구는 단 하나뿐이다. 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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