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올바름 또는 불관용?
<미네르바 성냥갑> 2권 중에서
예전에 나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억압받는 소수들의 권리를 보호하고 모든 형태의 인종 차별에 반대하기 위해 미국에서 탄생한 <정치적 올바름>이 새로운 근본주의로 전환되려 하고 있다고. 모든 근본주의는 오직 단 한 가지의 진리만이 제시될 수 있을 뿐이라고 가정하고, 다른 모든 것은 거기에서 벗어나는 것으로 간주한다. 따라서 꼭 불관용적인 것은 아니지만, 텍스트의<올바른> 해석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사람을 자신들의 공동체에서 추방함으로써 분명 불관용으로 될 위험이 있다.
내 친구의 미국의 어느 대학 교수는 강의 쉬는 시간에 밖에서 담배를 피우는데, 얼마전 담배를 피우지 않는 몇몇 학생들에 의해 다음 같은 이유로 고발되었다고 한다. 밖에서 흡연 학생들과 대화를 나누는 것은 그들과 특권적 관계를 맺는다는 것을 의미하고, 그것은 비흡연 학생들에게 불리하다는 것이다.이 특권적 관계는 <기회 균등>의 규칙을 위반하는 것이고, 따라서 그의 행동은 비난받아 마땅한 것이라는 것. 이 경우 문제되는 것은, 사전에 소외된 또는 잠재적으로 소외될 수 있는 소수에 대한 존중이 아니라 불이익을 당하는 소수로 전락할 위험에 처한 다수의 자기 방어이다.
이렇게, 각 개인을 존중하고자 하는 생각이 누군가에 대해서는 관용적이지 않은 위험한 상황을 창출할 수도 있다.
어느 영문학 교수는 셰익스피어의 <오셀로>에 대해 강의하지 말라는 권고를 받을 수 있다. 질투심 많은 살인자 흑인의 모습이 비서방 학생들의 감정을 상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베니스 상인>에 대해 말하지 말라는 권고를 받을 수도 있는데, 대중적인 반유대주의 혐의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명백한 이유 때문이다. (비록 샤일록이 고상한 인물일지라도.) 심지어 아리스토텔레스를 강의하지 못할 수도 있다. 어느 아프리카 종족 (그 후손들이 그 대학에 다니고 있다면)의 신화와 철학을 간과한다는 의미를 함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 나 도곤 신화 (도곤은 아프리카 의 한 종족) 에 대한 가르침이 모두 유용하고 정당하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불행히도<정치적 올바름>은 오늘날 아리스토텔레스를 가르치는 자를 비난하고, 도곤 신화를 가르치는 자를 높게 평가하고 있다. 그것은 또 다른 형태의 광신주의와 근본주의를 대변한다. 다시 말해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의 합리성을 구현하였고, 도곤 신화는 단지 야만적인 정신상태의 표현이었다고 가르치는 것과 똑 같은 것이다.
중학교와 마찬가지로 대학은 당연히 모든 전망을 가르치기 위한 공간이 되어야 한다. 단지 코란을 배제한다는 이유만으로 누군가 성서에 대해 말하는 것을 금지시키는 것은 , 다른 의견들에 대한 존중으로 위장된 형태의 불관용이다.
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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