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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전에도 없는 짜증나는 말 '국격'

정말 찾아보니 국립국어원 표준대사전에도 '국격'이라는 말이 없다.

이명박 정권들어 새로 만든 말인가 모르겠는데, 이만큼 짜증나는 말이 또 없다.

 

이놈들은 사전에도 없는 말을 어디서 가지고 온 것일까? 

'인격'을 지키기도 힘든 판에 웬 짜증나는 국가유기체론의 준동이냐.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912091809485&code=990339

 

[이대근칼럼]버려야 할 것 - 국격·곡격·국역·구격
 이대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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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까지만 해도 국격은 소수만이 쓰던 예외적이고 특수한 용어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 들어 사용 빈도가 부쩍 늘더니 요즘은 이 걸 빼고는 말을 못할 정도로 대유행이다. G20 정상회의 주최, 외교 강화, 기부, 관광산업, 공적개발지원(ODA) 확대 모두 국격을 위해 필요한 일이라고 한다. 국격은 국회 의장대 도입, 아프가니스탄 파병, 법질서 확립의 이유가 되기도 한다. 정부에게는 바람직한 국정의 표상이 다. 정부는 이미 ‘국격 업그레이드’를 위한 국가브랜드위원회라는 국가 기구를 운영 중이고 대통령은 내년 부처별 업무보고 때 국격 향상안을 내라는 지시를 했다. 정부의 용산 참사 방치, 인권침해도 국격을 손상한다는 이유로 비판받는다. 국격은 이렇게 방어와 공격은 물론 여야가 상대를 깎아내리는 데도 요긴한 만능의 도구로 쓰인다. 그리고 어느 새 이 단어가 풍기는 낯섦과 어색함은 사라지고 ‘국민’이 지켜야 할 새로운 규범이자, 누구나 존중해야 할 기준이 되어 가고 있다. 그 덕에 자기 주장과 정책을 정당화하고, 자기 제안의 설득력을 높이고자 할 때 쓰는 권위 있는 말이 되기도 했지만, 남용으로 상투어처럼 되기도 했다. 

세련된 포장의 국가주의, 국격

국격은 사람에게 인격이 있듯이 국가도 하나의 인격체나 다름없다는 믿음이 만들어낸 말이다. 따라서 국격은 국가를 다른 어떤 것의 반영물·대리자가 아니라 스스로 유지하고 강화해야 하는 자기 고유의 목적을 지닌 독자적인 실체로 여긴다. 이 유기체적 국가관은 시민을 전체를 위한 일부로 간주하고 자아실현 역시 오직 국가를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하는 권위주의적, 전체주의적 국가관과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에게는 낯설지 않은 국가관이다. 한국인에게 국가는 모태신앙이다. 태초에 말씀이 있었듯이 한국에는 이미 국가가 있었다. 태어나기 전부터 존재했고, 태어나서도 잊을까 가족·학교·군대·언론이 끊임없이 환기시켜 줘야 하는 절대적인 그 무엇이다. 이것이 바로 국격이 빠르게 한국인의 언어습관을 지배하게 된 배경이다. 나라를 잃었던 역사적 기억의 반영이라고 이해해도, 박정희 군사집단의 국가폭력 경험이 있었음을 고려하면, 정말 특별한 정서가 아닐 수 없다. 민주화 이후 시민사회의 성장에도 불구하고 강한 국가에 대한 이 낭만주의적 열정은 아직 뜨겁다. 

물론 국격이 획일주의의 낡은 가치에만 의존하는 것은 아니다. 브랜드위원회가 배려·다문화·기여를 국격 향상의 과제에 포함한 점이 그렇듯 성숙한 사회를 위한 성찰도 담고 있다. 문제는 성숙한 사회를 바라는 시민의 욕망조차 국가의 명예·국가 브랜드·국격 향상의 수단으로 여기는, 한국인의 정신세계에 뿌리 박힌 국가주의적 사고이다. 그런 사고는 점차 업그레이드되어 조국 근대화니 국익이니 했던 단순 투박함을 벗고 국격이란 세련된 옷을 입은 채 국가주의를 날것으로 드러내지 않는 방식으로 국가 담론을 효과적으로 확산시키고 있다. 그리고 ‘나는 국가(국격)를 위해 무엇을 했나’라고, ‘국민’을 죄인으로 만듦으로써 국가주의를 공고하게 재생산한다. 사실 국격을 국가의 품격이라고 우아하게 해석하는 것만으로도 국가는 한국인의 가슴을 적시는 주제가 될 수 있다.

한 번 생각해 보자. 내년 이명박 정부의 목표대로 G20 회의를 성공적으로 개최해 국격이 높아지면 우리의 삶이 달라질까. 그렇지 않아도 시장 만능으로 힘들어진 시민은 부자와 기득권을 위한 국가 개입으로 허리가 휘어질 지경이다. 시장과 국가 모두 한 편만 드는 불공정 게임조차 한국인들은 국가를 위해 불가피한 것으로 믿고, 오랫동안 잘도 참아 왔지만, 앞으로도 그럴 수는 없다. 국가는 시민 의사의 총체 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자유로운 ‘시민’만 남겨 놓자

국가의 목적을 이행하는 ‘국민’이라는 제복을 벗어야 한다. 이 칼럼을 쓰던 중 ‘한글문서’에서 국격에 대해 맞춤법 검사를 해봤더니 ‘철자가 잘못 되었습니다’라는 알림이 나왔다. 국어사전에 없는 신조어였기 때문이다. 대체해야 할 단어가 제시되었는데 곡격·국역·구격 세 가지였다. 대체할 수 없는 것들이다. 다 버리자. 국가도 버리고, 국격도 버리자. 자유로운 ‘시민’만 남겨 놓자. 나의 삶과 행복을 고민하는 나만을 남겨 놓고 다 버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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