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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결 부분(HYPHEN)을 해체하기 : 맑스주의-페미니즘 그룹 1-5에 관한 레포트 2

** 맑스주의 페미니즘 : “분리된 영역들”을 넘어서기 **

 

 

2년 전에 아주 흥미로운 원고가 맑스주의-페미니즘 “전위 운동 단체” 사이에서 회람되기 시작했다. 그 원고는 Gayle Rubin의 “여성의 교환”(The Traffic in Women)이었는데, 우리가 우리 고유의 순수한 맑스주의-페미니즘 방법론이라 부를 수 있었던 분석 양식에 이르는 길을 제시하고 있었다. 내가 루빈의 논문을 찬양하기 위해 선택한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 생각하기 때문에 루빈의 논문은 맑스주의-페미니즘 이론 성장의 한 지표였다. 그 논문은 『자본』의 각 권에서 확실하게 여성을 위치시키고자 하는, 또는 “개인”을 낱낱이 파헤쳐지는 (그리고 억압 받는) 존재로 꾸밈없이 묘사함으로써 그 개인을 정치화시키려는 우리의 열망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이전에 우리가 성취할 수 있었던 것보다 좀 더 풍부하고 좀 더 완전한 분석적 접근의 시작을 알리는 전조가 되었다.

 

Rubin은 “섹스-젠더(sex-gender)의 정치학”을 제안하면서, 섹슈얼리티와 젠더, 그리고 이 두 가지가 재생산되는 친족-가족 구조들이 “그 자체 사회적 생산물이라는” 점, 이런 것들이 역사적으로 결정된 관계들로, 다시 말해서 물질적 생산, 부, 교환, 권력과 지배뿐만 아니라 감정과 감성 모두를 직접적으로 아우르는 관계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점을 우리에게 진지하게 제시하였다. 다음으로 이러한 것을 통해 다음과 같은 좀 더 분석적인 통찰을 할 수 있었다. 그러한 통찰은 “생산”과 “재생산”, 노동과 가족이 달과 태양 또는 부엌과 가게처럼 멀리 떨어져 있기는커녕, 실제로 직접적인 관계를 가지고 있는 양식들, 즉 서로 반향되고 동일한 사회적, 신체적 그리고 심리적 공간들 속에서 자주 발생하는 양식들이다. 이러한 점은 강조할 필요가 있는데, 왜냐하면 우리들 대다수가 여전히 “분리된 영역들”(생산, “공적인 삶”, 사무실 등의 남성 세계로부터 떨어져 나온 “재생산”, “사적인 삶”, 가정 등의 “여성의 장소”)이라는 모델에 집착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금 이러한 (377) 분리된 영역이라는 모델이 현실을 왜곡하고 있으며, 그 모델이 어느 모로 보나 “남자”(male)와 “여자”(female)라는 자체의 의미만큼이나 동일한 의미의 이데올로기 구성물임을 알아가고 있다. 재생산과 친족 관계, 또는 가족은 역사적으로 결정된 자신만의 고유한 생산물, 물질적 기술, 조직 방식 그리고 관력 관계를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재생산과 친족 관계 그 자체는 필연적으로 사회의 생산관계 그리고 국가와 필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그것들은 모든 시기마다 자신의 관계를 재형성한다. 이러한 이론의 진전(나는 이러한 용어가 아주 거창한 용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이 가지고 있는 하나의 함축적 의미는 가부장제를 분석하고 정치경제학(이 정치경제학이 자본주의, 전 자본주의 또는 사회주의 경제학이건 간에)을 분석하는 이 두 가지의 일이 결코 분리될 수 없다는 점이다. 맑스주의-페미니즘 분석 양식을 발전시키는 바로 그러한 과정은 필연적으로 맑스주의 변증법을 심화시킬 것이며 세계를 바라보고 반영하는 분석 방식을 풍부하게 할 것이다.

 

이러한 맑스주의-페미니즘 진영에서 자칭 나의 역할은 이러한 과정이 이미 어떻게 어떤 영역에서 시작되었는지에 대한 나의 생각을 당신과 공유하는 것이다. 나는 맑스주의-페미니즘 이론과 방법론이 더 이상 단순한 희망(또는 “불행한 결혼”)이 결코 되지 않을 것이라는 커다란 확신을 가지고 있다. 우리들 자신만의 토론 그룹뿐만 우리의 저작 활동 속에서 우리는 그러한 이론을 진지하게 정치적이고도 지적인 기획으로 만들고자 서로를 북돋았다. 우리가 이러한 지점에 서 있음을 보았을 때, 나에게는 우리가 이미 네 가지 비판적인 관계들을 분석하기 시작한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이런 관계들 속에서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 생산과 재생산 사이의 역동적 상호연관성이 구체적이고도 역사적으로 상세한 방식으로 표면에 떠오르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 관계들은 다음과 같다 :

 

(1) 친족 관계 또는 가족, 그리고 계급 구조. 나는 가족과 친족 체계 둘 다 가족 바깥에 있는 사회적 관계들을 반영하고 그 관계들을 재형성하는 데 보탬이 되는 다양한 방식들을 맘에 두고 있다.

 

(2) 재생산 수단들(특히 섹슈얼리티와 아이 출산)에 대한 통제와 남자 권력(male power) 사이의 관계. 이것은 아이 출산과 섹슈얼리티의 물질적 조건과 기술들에 대한 통제가 자부장적 지배와 자본주의/제국주의 지배의 중요한 수단이며, 따라서 사회주의 페미니즘 투쟁의 중요한 대상이라는 사실에 대한 우리의 이해가 점점 커져 가고 있음을 나타낸다.

 

(378) (3) 가부장적, 또는 남자 지상주의자, 이데올로기와 국가, 국가의 형태와 그 합법성 사이의 관계. 엥겔스가 보여 주었던 것처럼, 가부장제와 국가 조직 형태 사이의 일치를 보여 주는 것만으로는 불충분하다. 우리는 가부장제가 어떻게 국가 권력을 승인하였는지 알아가기 시작하고 있는 중이다. 이러한 것은 고대와 현대 부르주아 국가들을 정당화하는 주요한 것으로서 “이중적 노동 기준”(double standard), 여성혐오주의자들이 말하는 타락의 금기, 모성 숭배와 같은 그러한 지배적인 반여성적 이데올로기 기능들을 수반하고 있다.

 

(4) 이러한 모든 것과 여성의 의식 사이 그리고 여성의 의식과 혁명적 변화 사이의 관계. 우리가 여성의 실제적 조건들을 이해하면 할수록, 물론 우리는 여성이 그러한 조건들을 변형시키기 위해 그리고 그 내부의 혁명적 운동들을 변환시키기 위해 행동하는 특수한 방식들을 점점 더 이해하게 될 것이다.

 

여기서는 이러한 모든 관계들을 분석하거나 또는 그러한 관계들을 어떠한 식으로든 상세하게 묘사할 시간이 없다. 내가 앞으로 하고자 하는 것은 우리를 처음의 두 가지 영역으로 이끌어 나갔던 최근 몇몇 지적 작업의 예들을 제시하는 것이며 따라서 세 번째와 네 번째 영역에 관한 짤막한 몇몇 생각들을 제공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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