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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6/01/01
    생(生)
    곰탱이
  2. 2016/01/01
    지혜
    곰탱이
  3. 2016/01/01
    동지(同志)
    곰탱이
  4. 2016/01/01
    사랑 = 물자체(Thing Itself)
    곰탱이

생(生)

역사소설 <<혁명>> 제2권 내용 중 눈에 띄는 대목들 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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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에게 자신의 생애를 한꺼번에 털어놓는 것은 어리석다. 단 하루만 지나도 전혀 다른 이야기가 떠오른다. 삶을 한 줄로 꿰는 것은, 그 사람의 복잡다단함을 한두 문장으로 줄이는 것만큼이나 한심하다. 나 정도전을 누구라고 단정 짓는 말들이 많지만, 언제든 나는 그 말들의 바깥에서 내가 지닌 가장 소중한 것들을 보여 줄 수 있다.

 

내가 이야기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일관되게 펼쳐진 회고담을 의심할 뿐이다. 이 이야기에서 저 이야기로의 건너뜀, 무관함과 유관함, 생략과 확장의 순간을 나는 아낀다. 한 인간의 다양함을 설명하기 위해선 이 각각의 이야기들을 빠짐없이 판 위로 올려야 한다. 정도전이란 인간을 하나의 정신, 하나의 목소리로만 취한다면 이야기들 중 대다수는 사라질 것이다.

 

나는 특히 나 자신에 관한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부끄러움은 오로지 나에게로 향하는 법. 나이가 들수록 더 자주, 더 많이 부끄럽다. 내가 저지른 잘못들이 병풍 그림자처럼 깔려 오는 탓이다. 사과하고 싶지만 상대가 이미 곁에 없거나, 있다 해도 그 일을 기억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232~23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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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

역사소설 <<혁명>> 제2권 내용 중 눈에 띄는 대목들 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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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에는 능선을 탔다. 한 달 전 산불이 난 탓에 검은 재가 그득했다. 불바람을 피하지 못한 토끼며 노루며 멧돼지들의 시체가 나뒹굴었다. 일흔 살을 넘긴, 삼옹(森翁)으로 통하는 늙은이만 능선을 바삐 오갔다. 그가 과연 능선에서 무엇을 하는지 아는 사람이 없었다. 점심 때 황소를 잃고 곡을 하는 농부의 집에서 나오다가 삼옹을 발건하고 손목을 쥐었다.

 

"매일 능선에 가서 뭘 하오?"

 

삼옹이 천으로 덮인 지게를 고쳐 메곤 답했다.

 

"궁금하면 따르십시오."

 

비탈로 접어들자마자 검은 재들이 풀풀 날리며 신발과 바지를 더럽혔다. 삼옹은 무거운 지게를 지고도 사뿐사뿐 걸음을 옮겼다. 재가 전혀 흩날리지 않았다. 능선에 오르니 어제까지 삼옹이 심어 놓은 어린 나무들이 보였다. 홀로 이곳까지 와서 나무를 심은 것이다. 삼옹이 지게를 내리고 천을 걷었다. 오늘 심을 어린 나무들이 가득 담겨 있었다. 바위 밑에 숨겨 둔 삽과 괭이를 가져와선 어린 나무 한 묶음과 함께 내밀었다.

 

그렇게 반나절을 삼옹을 따라 허리를 숙인 채 나무만 심었다. 삼옹은 때때로 사라졌다가 나타났다. 물지게를 지고 계곡까지 내려갔다가 돌아온 것이다. 방금 심은 나무에 물을 그득 부어 주려고 열 번도 넘게 비탈을 오르내렸다. 준비해 간 나무를 모두 심은 뒤에 내가 물었다.

 

"그대 땅이오?"

 

"아닙니다. 여긴 농사도 짓지 못하니, 누가 가지려고 탐을 낼 속이 아니지요."

 

"한데 왜 나무를 가져와서 심는 게요?"

 

"움직이는 나무들이 좋아서입니다. 불이 난 후론 능선이 너무 고요합니다."

 

"나무들이 움직인다고 했소? 나무들이 어떻게 움직인다는 게요? 움직이지 못하기에 불이 나도 달아나지 못하고 모조리 불타 버린 게 아니오?"

 

삼옹은 하산길에 나를 데리고 잠시 참나무 숲으로 갔다. 불길이 미치지 않은 숲은 그림자가 짙고 시원했다. 삼옹이 턱을 들며 말했다.

 

"잘 보십시오. 나무들이 얼마나 신나게 움직이는지."

 

산바람이 불어 내렸다. 가지가 흔들리면서 잎이 덩달아 춤을 추었다. 어린 나무들은 줄기까지 휘청대기도 했다. 내가 따져 물었다.

 

"바람이 움직이는 것이지 않소? 나무는 다만 흔들릴 뿐이고."

 

"바람도 움직이긴 하지요. 하지만 나무가 움직이지 않았다면 지금처럼 바람을 만나 춤출 기회가 없었을 겁니다. 사람이나 들짐승들은 대부분 좌우로 움직이지만 나무는 위아래로 움직입니다. 이 어린 나무가 어떻게 저와 같이 크고 긴 나무로 자라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가 관심을 가지고 자세히 살피지 않아서 몰랐을 뿐이지, 나무는 매일매일 움직입니다. 우선 하늘을 향하여 쑥쑥 올라가지요. 줄기를 곧게 뻗고, 또한 그 줄기에서 가지를 내보냅니다."

 

"아래로 움직인다는 건 무슨 말이오?"

 

"저 땅속에서 나무가 하는 일을 떠올려 보십시오. 나무의 뿌리는 깊은 곳을 향하여 파고들어 갑니다. 뿌리가 깊이 내려갈수록 줄기는 높이 솟구치는 법이지요. 이래도 나무는 움직이지 않는다고 주장하시겠습니까?"

 

솔직히 잘못을 인정했다.

 

"내 생각이 짧았소. 한데 나무의 줄기와 가지가 허공으로 올라가는 것이야 눈대중으로 살피며 즐길 수 있으나, 그 뿌리가 땅으로 파고든다는 것은 흙을 덜어 내지 않는 이상 알기 어렵지 않소? 아래로 향하는 움직임은 어떻게 즐긴다는 게요?"

 

"눈으로 꼬 봐야만 즐기는 건 아닙니다. 줄기의 굵기와 길이, 또 가지의 벌어진 꼴과 잎의 모양을 세세히 살피며, 뿌리가 얼마나 넒은 땅을 얼마나 깊이 파고들었는지 상상하는 재미가 쏠쏠하지요. 위가 아름다우면 아래가 튼튼해야 합니다. 아래가 건강하지 않고는 햇빛이 아무리 좋아도 나무는 썩어 부러지고 맙니다."

 

삼옹이 서둘러 숲을 내려왔다. 나는 그의 빈 지게를 쳐다보며, 뿌리를 백성에 빗대어 보았다. 보이지 않는다고 없는 것이 아니며, 보이지 않는다고 즐길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이 문장을 되뇌며 농부의 집으로 삼옹과 함께 들어갔다. 곡소리가 어느새 노랫가락으로 바뀌었다.

 

(69~7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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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지(同志)

역사소설 <<혁명>> 제2권 내용 중 또 눈에 띄는 대목들 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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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소리에 잠을 깼다. 옆집 늙은 황소가 간밤에 죽었다. 늙은 농부는 쓰러진 황소 옆에서 울음을 그치지 않았다. 수십 년 정이 들면 사람이 짐승보다 낫다는 말도 있어 참고 넘기려 했다. 점심까지 곡이 이어졌기에 옆집으로 갔다. 방 한 칸, 부엌 한 칸이 전부인 농부는 부엌에서 밥을 짓고 소를 키웠다. 여자의 흔적은 어디에도 없었다. 혼인을 했는데 사별한 것인지 아내가 집을 나간 것인지 혹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혼자 살았는지는 그때그때 말이 달랐다. 지남침은 모자람만 못하니 그만 슬픔을 거두라고 권했다. 농부가 울음을 삼키곤 물었다.

 

"부모 친척의 상(喪)을 제외하고 생명붙이를 위해 하루종일 운 적이 있습니까?"

 

"없소."

 

"왜구들이 침탈하여 많은 이들이 죽거나 끌려갔습니다. 그때 혹시 울지 않았습니까?"

 

"울지 않았소."

 

"흉년이 들어 또 많은 이들이 굶어 죽은 해를 기억하시지요? 그때 혹시 울지 않았습니까?"

 

"울지 않았소."

 

"어찌 그럴 수가 있습니까?" 뒤이어 돌림병 때문에 열두 마을의 주민들이 몰살한 적도 있습니다. 그때 혹시 울지 않았습니까?"

 

"울지 않았소."

 

"그렇다면 내가 우는 것을 말릴 자격이 없습니다."

 

"울어 보지 않았다고 어찌 이치를 따지지 못한단 말이오? 울음에 이르지 않더라고 알고 행해야 하는 일이 이 세상엔 가득하오."

 

"슬픔을 느끼지 않고 이치만 따지기 때문에 백성이 정치가를 믿지 못하는 겁니다. 왜구에게 어느 날 갑자기 죽임을 당하는 일, 흉년이 들고 돌림병이 도는 일, 또 수십 년을 함께 산 황소가 갑자기 숨을 거둔 일, 이 불행들을 어떤 이치로 명쾌하게 설명하시렵니까? 우는 것 외엔 답이 없는 일도 꽤 많습니다."

 

비로소 그 농부가 땅만 갈고 곡식만 심는 이가 아니란 것을 깨달았다.

 

노을이 깔리자, 곡소리가 멈추고 노랫가락이 흘러나왔다. 농부의 선창에 이어 수많은 목소리가 소리를 받았다. 집 안은 물론 마당과 길까지 마을 사람들이 모두 모여 <소 모는 소리>를 부르는 중이었다.

 

[이랴이랴 워디워디 이랴이랴이랴

가자 가자 어서 가자 쉬지 말고 어서 가자.

이 밭 갈아 옥토 삼고 씨앗 심어 길러 보세.

이 곡식을 거둬들여 부모 봉양 다하고서

자식 놈들 입고 먹여 이 한세상 살고 지고

이랴이랴 워디 이래이 쯔쯔쯔쯔 이랴

가자 가자 어서 가자 쉬지 말고 어서 가자.]

 

노래가 끝난 후 마을 사람들에게 빠짐없이 고깃국이 나눠졌다. 구경꾼인 내게도 국 사발이 왔다. 새벽에 죽은 황소를 끓여 만든 것이다. 뒤이어 탁주도 한 사발씩 돌았다. 농부에게 물었다.

 

"종일 곡을 하기에 황소를 양지바른 언덕에 묻겠거니 여겼는데, 마을 사람들 모두 불러들여 함께 노래하며 먹고 마시는 까닭이 무엇이오?"

 

농부가 한심하다는 듯 헛웃음과 함께 답했다.

 

"언덕에 묻으면 나만 황소를 기억하지만, 이렇게 나눠 먹고 즐기면 마을 사람 모두 우리 집 황소 덕분에 배를 채운 밤을 잊지 않을 겁니다. 여기선 누구나 이렇게 삽니다."

 

술이 한 순배 돌 때마다 마을 사람들은 저마다 황소에 얽힌 이야기를 한 토막씩 꺼냈다. 온갖 황소들이 이야기판에 출몰했다. 사냥 나온 왕을 구하고 정오품 벼슬을 받은 황소, 늑대 울음을 우는 황소, 발이 여섯 개, 일곱 개, 여덟 개인 황소, 공자님 말씀에 귀 기울이지만 맹자님 말씀엔 고개 저으며 뒷발을 차 대는 황소, 풀 대신 흙만 먹는 황소, 10년 황소였다가 죽을 땐 암소로 변한 황소, 반대로 암소였다가 황소로 변한 황소, 말보다 더 빨리 달리는 황소, 뿔로 바위를 부순 황소, 손바닥 하나에 쏙 들어가는 황소, 나라님 계신 궁궐보다 더 거대하게 자란 황소.

 

농부는 황소에 관한 이야기를 들으며 함께 웃고 마시고 노래하다가 손등으로 눈물을 훔쳤다. 그 모든 항소를 합쳐도 오늘 죽은 황소에는 미치지 못한다고 했다. 농부의 황소는 보름달이 뜨면 긴 울음을 먼저 울었고, 농부가 빈 손으로 나오면 다시 울어 술병을 챙기도록 했으며, 등에 탄 농부가 아무리 빨리 가자 채근해도 그윽한 풍광을 충분히 즐기기 전에는 걸음을 떼지 않았고, 취한 농부가 길을 찾지 못해도 스스로 적당한 때를 택하여 돌아왔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1000리를 하룻밤에 달리는 명마(名馬)를 칭송하지만, 그 밤 10리밖에 못 가더라도 농부에게 넉넉한 여유와 즐거움을 선물하니 이 황소야말로 명우(名牛)라는 이야기다. 말을 탔다면 놓쳤을 세상의 묘(妙)한 구석을 느린 황소 덕분에 만끽한 셈이다. 농부의 젖은 눈은 순하디순한 황소의 눈을 닮았다. 즐거우면서도 음란하지 않고 슬프면서도 마음 상하지 않는 시집을 읽는 기분이 이와 같을까.

 

(65~6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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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 물자체(Thing Itself)

역사소설 <<혁명>> 제2권 내용 중에서 눈에 띄는 대목들 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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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는 사랑에 관한 시가 왜 그리 많을까. 모르기 때문이다. 이것이야말로 사랑이라고 가두는 순간, 다른 사랑의 풍광들이 메뚜기처럼 달려든다. 모순, 극단의 단어들이 모두 사랑을 설명하며 쏠린다. 가장 따뜻한데 차갑고 가장 부드러운데 날카롭다. 가장 기쁜데 슬프고 가장 은밀한데 또 누구나 안다. 다르게 시작하고 다르게 끝난다. 그러나 또한 되새기면 그 다름에는 비슷함이 어려 있다. 국경도 넘고 종교도 넘고 예의범절도 넘고 생사도 넘는다. 모든 것이 사랑 탓이다. 사랑보다 더 근사한 핑계는 없다.

 

(4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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