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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16/01/20
    소리
    곰탱이
  2. 2016/01/20
    참 문장
    곰탱이
  3. 2016/01/20
    물자체(Ding an sich, Thing itself)
    곰탱이
  4. 2016/01/20
    질투와 사랑
    곰탱이
  5. 2016/01/20
    황홀함.
    곰탱이
  6. 2016/01/20
    코스모폴리탄(세게사적 개인)
    곰탱이

소리

계속 같은 책(<<열하광인>>)에서 발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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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장 아끼는 소리는, 어떤 이들은 그것도 소리냐고 비웃지만 분명 내 귀에는 똑똑히 들리는 소리는, 글자를 쓰는 붓 소리다. 점을 찍을 때 획을 내리그을 때 둥글게 감아 올릴 때 붓이 내는 소리는 모두 다르다. 서책을 펴 먼저 서체부터 살핀다. 글자 위로 붓이, 그 붓을 잡은 손이, 그 손을 바라보는 눈이 하나가 되어 움직인다. 필사의 즐거움은 단순히 멋지고 아름다운 글을 옮겨 적는 데 머무르지 않는다. 나는 글자의 의미를 새기기에 앞서 종이를 메워 나가는 붓 소리를 듣는다. 비 그친 하늘을 낮게 나는 제비처럼 날렵한 소리도 있고 바위로 누르는 무거운 소리도 있다. 이덕무처럼 작디작지만 맵시 있는 소리도 있고 박지원처럼 호방하고 거칠지만 짚을 건 다 짚는 소리도 있다. 그 소리를 하나하나 되살리며 붓을 놀린다. 어떤 놈은 전혀 다르다. 방금 쓴 글자를 그어 버리고 다시 벼루에 먹을 찍는다. 눈을 감고 허공에 글자를 쓴다. 손목에 힘을 빼고 두 어깨를 가지런하게 맞추고 들숨과 날숨을 조절하면서 쓰고 또 쓰다 보면 까마득한 어둠 속에서 소리가 들려온다. 그리고 글자를 적어 내려간 지은이의 심정까지 잡힌다. 밤을 꼬박 새워 필사를 해도 지치지 않는 까닭은 새로운 소리에 휩싸이기 때문이다. 오래전 지은이가 만든 소리를 내 서책에 옮겨 오는 작업은 거문고를 뜯고 폭포 속에서 소리를 가다듬는 일과 다르지 않다.

 

(168~16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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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문장

계속해서 같은 책(<<열하광인 1>>)에서 발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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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하>>가 부러웠던 것은 문장과 문장이 걸쇠로 단닪히 이어졌을 뿐만 아니라 가장 멀리 가장 높이 혹은 가장 색다르게 다음 문장으로 넘어간다는 점이다. 완벽하려면 보폭을 좁게 하고 호탕하려면 틈이 생기더라도 보폭을 멀리 두라 했건만, 이 서책은 보폭이 넓되 틈도 없다. <<열하>>를 읽기 전에는 나름대로 내 문장에 자신이 있었다. 명문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이야기를 전달하는 데는 충분하다 여겼다. 그러나 이 책은 문장에 대한 내 생각을 온통 흔들어 버렸다. 문장은 단순히 글자들의 합이 아니었다. 문장은 지은이의 뜻을 전달하는 수단이 아니었다. 문장은 즐겨 외우며 내 삶에 적용시키는 거울이 아니었다. 문장은 놀라운 변신 그 자체였다. 나무가 그냥 서 있을 대는 나무였지만, 강으로 첨벙 뛰어들자 배가 되었고 구르니 바퀴가 되었으며 타오르니 횃불이 되었다. 잠시도 쉬지 않고 변신의 극한을 보여 주는 문장이야말로 참 문장이다. 이 책은 그런 문장들로 넘쳐났고 나는 그 앞에서 내 문장을 잊었다.

 

(15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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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자체(Ding an sich, Thing itself)

같은 책(<<열하광인 1>>)에서 계속 발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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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란 거창할 필요가 없으며, 도는 털끝만한 차이로도 나뉘는 법이니, 말로써 도를 표현할 수 있다면 부서진 기와나 벽돌인들 어찌 버리겠는가.

- 박지원, <공작관문고자서>

 

(12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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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투와 사랑

같은 책(<<열하광인 1>>)에서 계속 발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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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열하>>가 미웠다.

 

나 혼자 읽을 때는 이런 생각을 단 한 순간도 한 적이 없지만, 그녀가 온통 책에만 빠져, 나를 무시하고, 나와 운우지락을 나눌 때처럼 흥분할 때, 책이야말로 만만치 않은 연적(戀敵)이었다. 단 둘이 있을 때는 책 대신 나만 보라 말할 수도 없다. 책을 질투하는 사내가 세상에 어디 있는가. 이런 내 마음이 때론 우습고 때론 한심했다. 더욱 비참한 사실은 이 책이야말로 너무 멋지고 사랑스러워, 내가 여자라도 매혹당하리라는 것이다. 그녀는 하루에도 몇 번씩 틈만 나면 책과 사귀었다. 깨끗하게 멀찍이 두고 조심스럽게 한 장 한 장 넘기는 식이 아니라 연모하는 사내 대하듯 그 책에 자신의 감정을 옮겼다. 겉표지에 입 맞추고 손바닥으로 쓸고 글자 하나하나를 검지로 만지며 내려가고 옆구리에 끼거나 젖가슴에 댄 채 잠들고 머리맡에 두었다가 새벽잠에서 깨자마자 냄새 맡고 여백에는 검지로 도장 찍는 흉내를 내며, 이 책과 영원히 함께 머무를게요 맹세했다. 그 책에 비하자면 나와의 사랑은 드문드문 헐거웠다. 그녀와 나 사이에 책이 낀 것이 아니라 그녀와 책 사이에 내가 불청객처럼 찾아드는 격이다. 내가 슬쩍 책을 서안 밑으로 두기라도 하면 그녀는 냉큼 책을 찾아서 품에 안고 아이처럼 웃었다.

 

"이 책을 만나기 전에는 분명 저는 살았겠죠. 한데 기억이 전혀 나지 않아요. 제 삶의 첫자리엔 이 책이 놓였고, 그때부터 전 비로소 숨 쉬고 걷고 밥 먹기 시작하였답니다."

 

내가 들은 가장 아름다운 사랑 고백이었다.

 

(109~1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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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홀함.

계속해서 <<열하광인 1>>에서 발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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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공철은 <<열하>>의 몇몇 편을 분전태사지(粉牋太史紙)에 승두세자로 옮겨 비단에 싸 두었다고 했었다. 비단으로 싸기엔 너무 뜨겁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뜨거움을 식히고자 고래 열두 마리를 비단에 수놓았다며 웃었다. 우리는 책이 토하는 불꽃이 얼마나 찬란하고 섬뜩하며 긴 여운을 남기는지를 다투어 떠들어댔다. 단어 단어를 외우며 내 흉터가 더 짙고 크다 주장했고 문장 문장을 읊으며 내 살이 더 빨리 지글지글 타들어 갔노라 외쳤다. 남공철이 외우며 읊을 때 내 몸에 옮겨 붙은 불똥과 내가 읊고 외울 때 남공철 몸에 가 닿은 장작불이 더 큰 책을 만들었다. 사람들은 그 책을 인생이라고도 했고 깨달음이라고도 했다. 우리에게는 그저 책이었다. 책보다 더 황홀한 이름은 없었다.

 

(9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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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모폴리탄(세게사적 개인)

이번에는 <<열하광인 1>>(김탁환 지음, 민음사)에서 발췌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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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하>>를 읽던 순간이 서책을 넘기듯 차례차례 떠올랐다. 

 

순간은 여럿이지만 놀라움은 결국 하나다. 아무리 설명해도 이 책을 읽어 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지족하고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난폭하다. 스스로 활활 타올라 읽는 사람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까지 단숨에 삼키는 책이여!

 

긴 여정만큼이나 여행의 기록도 다양한 크기와 두께로 나뉘었다. 처음에는 여정을 따라 각 편을 차례차례 독파하려 했지만 이내 시간순으로 읽는 것이 무의미해졌다. 이 책은 위에서 아래로 흘러내리는 계곡물처럼 질서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 책은 혼돈을 일으키는 불꽃이다. 어느 대목을 읽든지 처음에는 뜻밖의 온기에 휘감겨 허리를 숙이고 콧잔등을 책에 댄다. 그러나 곧 두 눈과 열 손가락과 단 하나의 심장의 타들어 가듯 뜨거워진다. 허리를 젖히며 고개를 치켜들고 긴 숨을 몰아쉰다. 이것은 다르다. 지금까지 읽어 온 적당히 단정하고 감당할 만큼만 느낌을 담은 책이 아니다. 이 책은 읽는 이에게 어떤 배려도 하지 않고 성난 사자처럼 단숨에 목덜미를 깨문다. 그 참혹한 상흔을 입기 전과 입은 후가 어찌 같을 수 있으리.

 

책을 읽다가 문득 고개를 드니, 세상이 너무 평온하다. 평온한 세상을 살다가 이 책을 집으니 육중한 바위가 뼈마디마디를 찍어 누룬다. 불호령이 쏟아진다. 세상이 얼마나 혼돈에 휩싸였는데 감히 정리하려고 드느냐. 이미 정리되었다고 주장하는 이들부터 의심하고 침 뱉고 돌 던져라.

 

이 책에 담긴 사람, 사건, 사물 어느 것 하나도 지금까지 조선에서 의논한 적이 없다. 책을 덮으면 계속 자족을 이어 갈 수 있다. 그러나 각 편의 한 귀퉁이 몇 글자만 눈에 넣더라도 자족은 부끄러움으로 바뀐다. 열하까지 다녀오는 동안 보고 듣고 만지고 핥은 것들을 책에서 배우는 순간순간마다 가슴에 구멍이 뻥뻥 뚫린다. 답답함이 사라진 자리에 끝모를 허허로움이 밀려든다. 내 곁에는 아무도 없다. 있는 사람이라곤 책을 읽는 나 자신뿐이다. 지금까지 책을 읽는 내가 이렇듯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외로워 보였던 적이 없다. 슬퍼 보였던 적이 없다.

 

이 책은 거대한 파도처럼 혼돈을 만들어 나를 흔든다. 하늘과 땅의 광분을 멈추기 위해 눈을 질끈 감고 책을 덮지만 고요는 순간이다. 그 다음 대목을 읽지 않고는 잠도 오지 않고 밥도 먹을 수 없다. 책장 구석에 그 책을 쑤셔 넣고 도성 밖을 배회해도 혼돈에 끌리는 마음을 다독이기 힘들다. 행여 위로가 있을까 혼돈을 가라앉히는 비법이 있을까 읽고 또 읽지만, 이 책은 철저하게 혼돈만 이어간다. 그 혼돈은 쇠종처럼 무겁다가도 깃털처럼 가볍다. 웃음 한 송이를 꽃처럼 피워 문다. 각 편 말리에 닿아서 여백을 우두커니 보고 있노라면, 책이 묻는다. 이 다음 혼돈은 네 몫이야. 어떻게 할래?

 

그 물음이 무서워 다시 책을 펼친다. 악순환이다. 업보다. 시작도 끝도 없고 옳고 그름도 없다. 내 손에 잡힌 책과 그 책을 읽는 나만 있을 뿐이다. 그 사이엔 아무 것도 없다. 이것은 여행을 기록한 책이자 여행을 부추기는 책이다. 책이 다시 묻는다. 넌 이미 알고 있지? 나는 글자나 문장이 아니야. 서책이 아니야. 너와 나 사이에 정말 아무 것도 없다면, 너는 곧 나고 나는 곧 너야. 그러니 내 속으로 들어와. 한 글자 한 글자를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디며 여행을 시작해. 그것이 이 책을 읽는 네가 짊어질 몫이야. 넌 이미 알고 있지? 혼돈 여행은 벌써 시작되었다는 것을. 어차피 여기까지 왔으니 웃어. 웃으면서 가자고. 비유가 아니라 정말 책이 사람이 되는 건 웃긴 일이니까.

 

(83~8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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