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그녀는 왜 신나할까?

View Comments

출근투쟁 이틀째인 그녀.

그나마 어린이집 안으로 들어는 갔는데,

샘은 퇴직상태니 청소도 하지말라. 일지도 쓰지말라.기타등등 하루종일 구박을 받고 있다가

저녁에 노조 사무실에 들린 그녀의 얼굴은 생기로 가득하다.

 

....이상하다? 원래 그런사람인가? 혹시 캔디?....

 

그녀와의 대화속에서 생기의 원인을 추적해 본 결과 그 이유는,

그녀가 11개월 동안 근무하면서 처음으로 사람대접을 받고 있다고 느끼기 때문인것 같다.

 

인턴이라는 이유로 받았던 모든 허접한 대우와 

모두가 정직원인 상황에서 오로지 혼자만 인턴이어서 오는 고립감..

 

그러나

그녀는 이 싸움을 시작하면서 드디어 그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듣기 시작했으며,

실존하는 한.사.람.으로 보기 시작했음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자신의 어려움을 나누기 위해 함께하는 사람이 있다는 걸 확인했다.

 

그녀의 말이 경력증명서에 1년이라도 채울 수 있도록 해주었다면 자기도 모든 상황을 그냥 받아들이고  나갔었을것 같다고 한다.

 

사람이, 사람으로 취급받으면서 살고 싶다는 아주 기본적인 욕구마저도 채워주지않는 이 이상한 사회에서는 순한 사람이 순하게 살기가 힘들다.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한다는 아주 지혜로운 예언이 있는데..

왜 마지막까지 사람을 몰아가는 걸까.

..조금만 더 쳐다오. 시퍼렇게 날이 설때까지..라는 무시무시한 협박도 있는데 말이다.

 

이 싸움이 오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래서 그녀의 생기의 오래도록 지속되었으면 좋겠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05/02/23 00:47 2005/02/23 00:47

2 Comments (+add yours?)

트랙백1 Tracbacks (+view to the desc.)

도와주세요~한양대 부속 한양어린이집의 사기고용, 부당해고

View Comments

한양대 보육교사교육원 에서 공부하고 졸업한 보육교사를 부설 어린이집에 채용해서 11개월

(왜 11개월인지는 설명안해도 아시겠지요?)간 일회용 밴드처럼 사용하고,

바로 잘라버린 사건이 있었답니다.

근데 그게 이번만이 아니라는 군요.

 

아마도 지속적으로 이런 방법으로 운영비를 아끼신 모양인데..

해도 너무 하더군요.

그 선생님은 말이 인턴이지 정규교사와 동일한 일을 하셨고, 또 정교사 채용을 약속(물론 이런거는 문서로 안하지요..더구나..앞으로 계획이 있는 상황에서는..)을 받고 이제 담임을 맡을거라는 기대에 부풀어있었는데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었을것 같습니다.

 

그 선생님은 앞으로 출근투쟁을 한신답니다.

 

샛별같은 두눈으로 왜 우리 선생님이 추운데 밖에 서있어야 하는지 물어보는 아이들에게 한양대어린이집에서는 과연 어떤 대답을 해줄런지..기대됩니다.

 

속상하지만..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http://cce.hanyang.ac.kr/로 접속해서 항의 글 남기는 것뿐..

 

도와주세요~

 

-------------------------------------------------------------------

한양대 부속 한양어린이집의 사기고용, 부당해고에 대해 항의 시위합시다..


한양대 부속 한양어린이집에 근무하고 있는 000조합원이 체불임금도 못 받은 채 근무한 지 11개월 만에 쫓겨났습니다.


그 선생님은 한양대부설 보육교사교육원 출신으로 인턴교사로 고용돼 다음해에는 정교사로 채용하겠다는 얘기를 듣고 근무했다고 합니다.
별도의 계약서 작성이나 이런 거 없이. 그러나 처음 구두 계약시 얘기한 월급 90만원도 64만8천원만 주었고, 그 선생님은 지난 1년간 7세반 부담임하면서 다른 교사들과 마찬가지로 차량운행도 하고 오후 당직도 하고 연장근무도 하고 그랬답니다.

이번 일을 계기로 그동안 비일비재하게 있었던 어린이집의 인턴교사 고용에 대한 문제 제기와 퇴직금과 경력 수당을 주지 않으려는 시설들의 불법 고용에 대해 우리 조합원들이 항의를 합시다.

 

1. 사이버 항의시위
방법: http://cce.hanyang.ac.kr/에 들어가셔서  커뮤니케이션을 클릭하고 Q&A클릭, 글쓰기를 누르면 로그인 창이 뜨는데 거기에 guest라고 치시고 글 쓰시면 됩니다.

 

2. 한양어린이집 보육교사 부당해고 철회와 인턴제 폐지를 위한 결의대회

일시 : 2월 22일 오후 3시~
장소 : 한양대학교 사회교육원 앞

 

3. 출근 투쟁 - 부당해고 되신 선생님은 매일 출근투쟁을 합니다.
21일부터 출근 투쟁에 보육노조도 함께 합니다.

                                                                    
                            출처:전국보육노조 http://kcwu.nodong.org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05/02/21 02:58 2005/02/21 02:58

3 Comments (+add yours?)

트랙백1 Tracbacks (+view to the desc.)

누군가 그렇게 말했는데..

View Comments

* 이 글은 산오리님의 [선생 같지 않은 선생...] 에 관련된 글입니다.

예전에 누군가 그렇게 말했다. TV는 사랑을 싣고를 보면서..

 

왜 저런 사람만 찾냐? 어릴때 성추행한 놈. 나한테 몹쓸짓 한 놈. (앗-그러고 보니 다 놈이네. 그냥 성별을 제외하고 싹아지없는 인간 인칭대명사라고 봐주셔요~)

그런 놈들을 찾아서 사과받는 프로그램도 하나 만들지...

 

그 얘기 들으면서

나도 꼭 찾고 싶은 고등학교때 영어선생님이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고3 학력고사(이것이 바로 세대를 가르는 언어)끝나고 널널하게 학교 다니던 시절

교문에서 잡혀서 따귀한대 신나게 맞게 나가 떨어졌었는데.

이상한건 그때건 지금이건..내가 왜 맞았는지 모르겠더라 말입니다.

 

그래서 함 찾아서.

그때 나 왜때렸냐고 한번 묻고 싶더군요. 꽃다운 열아홉 그 처녀를 말이지요.

 

그래서인지,

내가 아이를 돌보는 일을 하게 되면서.

늘 다시 뒤돌아보게 됩니다.

 

나보다 매우 작은 권력을 가진 학생. 아이라는 존재에 대해

나는 내가 가진 권력을 얼마나 무자비하게 행사하는지..가끔 섬뜩하게 느낄때가 있습니다.

그렇게 자라는 아이들이 다시 권력을 가지게 될때 또 어떤 사회가 될지도 무섭구요.

 

참. 우리 아이의 교실에서 이루어진 사건을 보고 쓰신 글이었지요.

 

다음날 아침 끓어오르는 마음을 삭히며 어린이집에서 그 선생님을 대면했습니다.

그러다가 그 맑간- 내 마음속의 지옥과는 아무 상관없는 - 선생님의 얼굴을 보면서.

그 사람이 자신이 행한 행위의 의미를, 파장을, 아이들의 미래를 알까?

그런 생각이 났습니다.

 

자신이 하는 일의 파장을 모르는 무식한 어른들은 수없이 많습니다.

그러나 그게 아이를 돌보는 사람일때 그 평가는 매우 가혹해지지요.

너희 중에 죄없는 사람이 돌로 저 여인을 내리치라는 누군가의 말도 생각났구요.

그리고 모르는 사람에게 잘못했다고 뒤통수를 내려치는 짓은 못하겠다는 생각도 났습니다.

 

속은 여전히 부글거리고 있습니다만.

난 이제까지 그 일에 대해 아무런 행동도 할 수 없었습니다.

부모는 약자이기 때문이지요. 행여나 내가 문제제기를 하면 우리 아이가 부당한 대우를 받지 않을까 하는 우려-산오리님의 아버지의 봉투같은 거겠지요.-때문에요.

 

장고 끝에 결심은 했습니다.

 

우리 아이의 문제만이 아니고 그 선생님이 돌보는 20명 아이의 문제이며, 또 그 선생님이 그 일을 계속하시는 한 일년에 20명씩 정년까지 계속 이어질 아이들의 문제이니까요.

 

월요일에 원장님 면담을 잡아 놓았습니다.

선생님에게 넌지시 이야기할수도 있겠지만,

그것이 그 교사 한사람의 문제가 아닌 원의 풍토라면 원장님께 이야기하는게 맞을것 같아서요.

 

여전히 마음은 무겁습니다.

그러나 조금씩 뒤로가다보면, 작은 일에 조차 분노할 수 없게 될까봐요..

열 많은 엄마한테서 태어난 우리 아이에겐 좀 미안하지만요..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05/02/05 01:25 2005/02/05 01:25

댓글1 Comments (+add yours?)

트랙백0 Tracbacks (+view to the desc.)

집단체벌.. 그 기억..

View Comments

녹취를 풀면서..

 

그 상황이 전혀 낮설지 않다는 생각을 합니다.

마치 아무일도 아니라는 듯, 늘 일어나는 일이라는 듯한 아이의 말투.

그 상황에서 애써 태연한듯 이야기했지만 부글거리는 속을 진정시킬 수 없었던 나는 

그 상황이  전혀 낮설지 않다는 것이 너무나 두렵습니다.

 

학창시절

종종 없어지던 누군가의 귀중한 물건 혹은 돈.

범인색출을 위해 우리는 종례가 끝나고도 집에 돌아가지 못하고.

책상위에 모두 올라앉아 두 손을 들고 누군가 범인이 자수하기를 기다리곤 했었습니다.

선생님은 볼일보다가 한 삼십분에 한번씩 들어와서 " 범인은 조용히 눈을떠라.."뭐 이러곤 하셨지요.

그러면 혹여 눈을 잘못떠서 범인으로 오해받기 싫어서 두 눈을 더 꼭 감았구요.

 

알수 없는 도둑 넘(친구가 아닌) 때문에 내가 이 벌을 서야한다는 성질남.

그리고 팔이 점점 더 아파지면서 누구가는 큰소리로 "야 좀 가져간 놈 나와라"소리치기도 하고.. 서로 결백을 입증하기 위해 그 소리에 더 크게 동의하고...

 

그리고 그 상황의 부당함에 대해 별로 열받지 않았던 나..

 

무려 삼십년 전 나의 초등학교 교실에서 있었던 그 일이

지금 2005년 내 아이의  6세반 교실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시간은 삼십년이 지났지만.

우리 아이들의 교실은 박제된 그대로인 모양입니다.

 

그게 가장 무섭습니다.

 



아이가 선생님한테 맞았다고 해서 그 이야기를 듣다가 너무하다 싶어서 녹음을 시작했다. 앞부분은 녹음을 위해 이미 한 말을 다시 시켜서 좀 짜증스러워한다.

------------------------------------------------------------------

(모: 뭐가 깨졌는데..)


자: 맞히는거 작은거고 색깔있는거야 납작하고 색깔 있는거야. 근데 그거 통을 깨트렸어. 누가

모: 누가?

자: 나두 몰라 진짜 애는. 진짜 애는 몰라. 진짜로는 누가 깨뜨렸는지 몰라.

모: 그런데 그게 깨졌어? 그래서?


........(이전 이야기와 상관없는 부러진 친구의 머리띠에 대한 이야기...).........


모: 엄마는 왜 손바닥을 맞았냐고 물어보는 건데 딴소리만 하고 있네. 그래서 그 부셔진 선생님이 그 상자곽을 발견했어?

자: 아니 누가 했는지는 발견 못했어.

모: 그래서 수미가 다영이가 그랬어요 그랬어?

자: 아니 다영이가 울었어요.

모: 다영이는 왜 울었어?

자: 다영이요? 왜 울었냐면요. 어~자기가 한 것도 아닌데 했다고 해서 막 울었어요.

모: 그래서 선생님은 뭐라고 했어?

자: 너 때매, 혼날 때 너 때매 어 아무쓸데 없이 울게 된 거라고 했어요.

모: 수미 한테?

자: 응

모: 그런데 선생님이 맴매는 왜 했냐니까

자: 왜냐면 그릇 부러뜨린 거 때문에 한거라니까.

모: 아..“누가 부러뜨렸어” 그러구 물어봤어?

자: 어 근데 첫 번째로 말했는데 또 안말해서 한대씩 맞기루 했구. 또 안말해서 두 대씩 맞게 됬구 또 안말해서 세대씩 맞게 됬어. 세대밖에 못맞았어.

모: 세대맞구 누가 했다고 얘기했어? 아무두 말안했어?

자: 아니 마지막으루 다영이가 앞에 나와서 자기 때문이라구 했어요

모: 자기가 했대 다영이가?

자: 어 근데 아니. 내가 잘못들은거야.

모: 니가 잘못들은거야?

자: 어

모: 마지막에 세 번이나 맞았는데 친구들중에서 내가 그랬어요 하는 친구가 없었어?

자: 아니 나왔다 다시 들어가서. 자꾸 두 번째 자기가 한것도 아닌데 나오고 또 들어가고  또 나오고..

모: 다영이가?

자: 아니 은솔이

모: 은솔이가 자기가 했대?

자: 아니 앉았다가 들어가구 앉았다가 또 들어가구..(웃음)

모: 은솔이 장난친거지?

자: 엉

모: 그러니까 결국은 선생님이 맴매를 세 번이나 했는데 아무도 누가 했는지 모르네.

자: 맞어

모: 아무두 누가 했는지 몰랐네

자: 맞어

모: 뭘로 때렸어 선생님이?

자: 모냐면? 아까 말한 거 여기 종이에다 대고 줄 딱 긋고 안에 숫자 있는 거

모: 자?

자: 어 자.

모: 그걸루 니 손바닥 때릴 때도 그걸루 때려? 선생님이?

자: 아니 친구들 다 마찬가지야.

모: 모든 친구들 때릴 때는 그걸루 때려?

자: 어 방울반 말구 다른 반도 마찬가지구

모: 다른 반도?

자: 어

......................(사이 다른 놀이).........


모: 오늘말구 너 또 방울반 친구들 손바닥 맞아본 적 있냐?

자: 맞은 적 맞지요. 은솔은 맨날 맨날 맞았어요.

모: 은솔이는 왜 맨날 맞어?

자: 맨날 장난만 치잖아요.

.............(은솔이 장난에 대한 얘기).......

 

/30분 뒤  식사시간 이모에게 다시 설명하는 말

 

모: 오늘 흥준이 맴매했대.

이모: 왜?

자: 내가 아까 뭐라고 했지?

모: 뭔지는 모르는데 뭘 담는 통이라고 했어

자: 맞아 통인데 응 수미가 다영이가 했다고 했어.

이모: 누가 했는데 사실은

자: 아무도 몰라 거짓말만 알게 된거야. 그래서 어떻게 됬는지 알아? 그래서 한대씩 맞다가 마지막에 세대맞고 다영이가 울었어. 다영이가 한것도 아닌데 그래서 선생님이 수미한테 뭐라고 했는지 알아요? 뭐라그랬냐면요. 맴매하면서 어~ 너 때매 아무 일도 안했는데 그냥 울게 된거라고 말했어요.

이모: 선생님이 수미 한테 다영이가 한 것도 아닌데 너가 그렇게 말해서 (아니 내가 아니라) 그래 수미한테 다영이가 운다고 그렇게 말했어?

자: 그러는 바람에 운거야 다영이 어 . 근데 난 안울었어.

이모: 어디 맞었어

자: 애들 다 맞았을 때 손바닥 이렇게 딱 피고

한번 안말해서 한번맞았고. 두 번째도 안말해서 두 번맞구 또 안말해서 세 번맞었어.

이모: 그런데도 결국은 몰랐어

자: 그런데도 몰랐어.

이모: 저절로 깨졌나보다

자: 아니야 누군가가 했을꺼야.

-------------------------------------(모든 이름과 반명은 가명입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05/02/02 01:41 2005/02/02 01:41

댓글0 Comments (+add yours?)

2 Tracbacks (+view to the desc.)

나? 냉정한 엄마.그리고 못된 딸년.

View Comments

모성본능..그거 사실 아닌거 같다.

사회과학적 진실뭐 이런거 다 떠나서 나만봐도.

 

난 냉정한 엄마다.

내가 너무 중요해서 아들보다 내가 더 중요할 때가 많다.

 

나도 아침에 쭌이 밥먹이려고 애쓴다.

여섯살되서 저 혼자 밥먹기로 약속했는데.어느 순가 무의식적으로 밥 떠먹이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쭌이가. "엄마 왜 밥 먹여줘요. 혼자먹기로 했잖아요."한다. 물론 지 혼자 먹을 의사도 없으면서.

근데 내가 왜 밥을 떠먹이나 생각해보면.

밥먹는게 느리 넘이. 게다가 많이 도 먹는 넘이.어린이집에 가면 제대로 못먹을 것이 분명하기에 아침이라도 든든이 먹여야한다는 생각이 있다. 그리고 그 행동에는 같이사는 친정엄마 눈치보기도 있다.

사실은  바쁜 아침시간에 삼십분씩 늘어져서 밥먹는 꼴을 못보겠기 때문이기도 하다.

 

많은 경우, 내가 아이에게 무언가를 강요하는 경우가 그렇다.

아이를 '위한' 마음과 내 생각을 '관철'시키려는 경우, 나의 불편을 줄이려는 이유가 공존한다.

그래서 뭐가 진실인지 나 조차도 헷갈릴때가 많다.

 

난 나쁜 딸이다.

칠순이 너머 팔순이 다되어가는 엄마한테 뻑하면 신경질이다.

나가면 성격좋다는 얘기도 듣곤 하는데 엄마한테는 그게 안된다.

왜그러는지 잘모르겠는데.. 엄마가 내 얘기를 두번만 연속해서 못알아들으면 짜증이 난다.

그래도 엄마는 그 짜증을 잘도 받아낸다.

어느 순간.

왜 나한테 신경질내냐? 고 반항할 때가 있긴 하지만.-그럴땐 진짜 뻘쭘하다. 이유를 댈 수 없으니까..

 

우리 쭌이도 그런다.

가끔 지 할머니한테 하는 꼴을 보면. 민망하다. 내가 하는 꼴을 보고 배운듯 싶어서.

 

하루는 할머니가 쭌이에게 넌 왜 할머니한테만 그렇게 화내냐 ? 하고 물으니까

쭌이 말한다. "할머니는 나한테 화 안내잖아"

허걱.

 

냉정하고 논리적인 지 애미는

합당하지 않은 화에 대해서는 받아주지 않았었다.

그래서 쭌이는 화를 잘 참는다. 나중에 병될까봐 걱정스러울 정도로.

 

가끔은 쭌이에게 외할머니가 있어서 참 다행스럽다는 생각이 든다.

모성의 신화를 몸소 실천하고 있는 외할머니가 냉정한 엄마가 채워주지 못하는 구석들을 채워주고 있으니까. 근데 그렇게 살아온 우리 엄마가 행복했는지 어떤지는 안물어봤다.

 

애 키우는 일은 정말 어렵다. 어떻게 해도 정답은 없으니까.

그래서 내가 찾아낸 내 마음을 위로하는 말은 이거다. "다 지복이지"

 

'아이는 길을 묻는 손님이다'라는 제목의 책이 있다.

부모의 역할은 그저 내게 길을 묻는 이에게 친절히 길을 알려주는 것이라는 메시지의.

그래서 과도한 책임감과 아이에 대한 소유의식을 좀 버려야 한다는 뭐 그런 내용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그러나 늘 망설이고 헷갈린다. 부모의 역할과 한계에 대해서는...

 

오늘밤 우리 쭌이가 잠들면서 한마디 한다.

"엄마 늦게까지 컴퓨터 하지 말고 자세요" 크으..역할이 전도된것 같은 모자관계.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05/01/24 01:33 2005/01/24 01:33

2 Comments (+add yours?)

트랙백0 Tracbacks (+view to the desc.)

어디선가 우연히 만나게 될때..

View Comments

아주 우연한 장소에서 우연히 누군가를 만날때

아주 반갑거나 아주 불편하거나 하다.

 

오늘 그랬다.

아주 우연한 장소에서 그러니까 내가 스믈네살이었던 때

탁아소에서 돌보던 아이의 엄마를 만났다.

그 아이는 고3이 되었다고 한다.

 

영화예매 시간이 10분밖에 안남아

서둘러 인사하고 명함 주고받고 급히 일어서려는데

 

미지 엄마가 말한다.

선생님들이 너무 잘해주셔서..

미지 학교가서 반항 많이 했어요..

다들 자기한테 그렇게 해줄거라고 생각했었나봐요.

 

짧은 말끝에 어..예.. 대답하고 서둘러 일어서 헤어졌다.

 

여러가지 생각이 난다.

 

아이를 키우는데서 최선은 없나보다.

그 아이는 자기가 받은 사랑이 항상적이지 않다는 것에 화가 났었을까?

언제 한번 만나보고 싶다.

 

미지 엄마는 미지 학교보내면서 속썩을때 마다

그 생각을 했겠지?

선생님들이 너무 예뻐해서 ...그렇게 원망하면서..

그러니 십년도 더 지나 첫만남에 그 이야기가 젤 먼저 튀어나왔겠지..

 

쭌이를 키우면서도 그렇다.

난 최선을 다해준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이 그 아이에게 최선인지 누가 알랴..

 

작년엔 몇몇이 모여 돌봄에 대한 공부를 했다.

요즘은 몇몇이 모이 아동인권 공부를 한다.

그때 그 어린 선생이었던 내가 했던 실수들이 자꾸만 떠오른다.

어른인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정말로 그 아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최대한 눈을 열고 귀를 열고 찾아내는 것 뿐인듯 싶다.

 

아이 키우는 일 참 어렵고 힘들다.

내 아이건 남의 아이건.

그리고 두려운 일이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05/01/23 04:34 2005/01/23 04:34

댓글0 Comments (+add yours?)

트랙백0 Tracbacks (+view to the desc.)

빈민탁아에서 보육노조건설까지

View Comments

  내가 본 탁아운동의 역사

-빈민탁아에서 보육노조 건설까지-


 

1990년은 내가 학교를 졸업하던 해였습니다.

그리고 그해 3월9일에는 다섯 살, 네 살 먹은 혜영이 용철이 남매가 연기에 질식해 죽은 바로 그 사건이 있었습니다. 부모님은 파출부와 경비로 일을 나가야 했기에 아이들은 잠긴 방안에 있었습니다.


진로를 고민하며 찾아간 지역사회탁아소연합회 남영동 사무실에는 최선희 선배가 있었습니다. 이제 막 졸업한 새내기가 탁아활동을 하겠다는 포부를 밝혔을 때. 선배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영광도 없고, 사회적 주목도 없으며, 오랜 헌신만이 있는 이 일을 할 수 있겠냐고 물었습니다. 그렇게 나는 부천 오정동에서 탁아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엄마에게 일할 권리를! 아이들에게 보호 교육받을 권리를!


부천에 단 세 개뿐인, 동네에 단 하나뿐인 탁아소에서 하루 12시간을 일하면서 아이들을 돌보고, 엄마들을 만나며, 어린 내가 무슨 생각을 했었는지 잘 기억나지 않습니다. 다만 내가 돌보는 아이들이 행복하기를, 그 아이들의 부모들이 맘 편히 일할 수 있기를 바랐던 것 같습니다.

그때 선배들은 탁아법 제정을 위해 치열하게 준비했고, 탁아소 막내인 나 역시 부천 역에서 엄마들과 함께 피 세일을 하고, 서명을 받고 했습니다. 그렇게 여러 사람의 꿈이 모여진 탁아법안은 정부의 책임성을 삭제당한 채 1991년 민자당에 의해 날치기 통과되었습니다.

이제 제도적 공간으로 들어 온 탁아는 보육이라는 이름으로 옷을 갈아입고, 정부의 여성인력활용이라는 정책적 필요에 따라 민간시장에 맡겨진 채 지금까지 오고 있습니다.


보육의 질은 보육교사의 질을 넘을 수 없다!


마구 양산되던 보육시설은 수익성 있는 여성부업 정도로 인식되어 방송은 앞다투어 보육시설 운영의 투자성에 대해 홍보하였고, 많은 여성들은 단기과정을 통해 보육교사로 양성되었습니다.

1997년 한국보육교사회로 전환한 우리의  슬로건은 보육의 공공성 확보! 영유아보육법을 개정! 보육의 질 향상! 이었습니다.

이제 어린이집은 아이를 맡기는(탁아) 곳이 아니라 보호하고 교육(보육)하는 곳이라고 불립니다. 때문에 보육교사들은 이름에 걸 맞는 다양한 프로그램들을 제공해야만 합니다. 그러나 동네마다 어린이집 놀이방 간판이 즐비하지만, 여전히 언론에서는 아이를 맡길 곳이 없다는 부모들의 인터뷰가 나옵니다. 대부분이 영세한 민간자본으로 운영되는 보육사업은 여전히 보육교사들에게 직업적 헌신을 강요하고 있고, 보육교사들의 노동시간은 내가 일하던 때인 10여 년 전보다 겨우 2시간 정도 줄어들어 하루 10시간을 육박합니다.


행복하게 자랄 권리! 행복하게 일할 권리!


2004년 1월 영유아보육법이 개정되었습니다. 법 제정에 걸린 시간보다 더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러나 보육교사의 현실은 전혀 나아지지 않은 것 같습니다. 보육교사의 질 관리를 위해 양성과정을 강화하겠다고는 하나, 보육교사의 처우는 별다른 고려의 대상이 못되는 모양입니다. 여전히 조금만 더 참아보라고 합니다. 그러나 무엇을 위해 참아야 하는지 좀 헷갈립니다.

이제는 보육의 질은 보육교사의 질을 넘을 수 없다는 말에 많은 분들이 동의합니다. 그러나 보육교사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는 그들이 배우고 있는 교과 과정뿐 아니라, 그들이 재충전을 할 수 있는 시간, 그들에 대한 사회적 인정, 그들이 하는 일에 대한 정당한 보상이 따라야 한다는 것에 대해서는 아직 잘 모르는 것 같습니다.

2001년부터 시작한 조직논의 끝에 우리는 작년 한해를 보육노조 건설에 올인했습니다.

그리고 2005년 1월 행복하게 자랄 아이들의 권리와 행복하게 일할 보육교사와 부모들의 권리를 모두 담아 전국보육노조가 출범하였습니다.


다시 혜영이와 용철이를 생각하며


지금 내 아이 또래였을 혜영이와 용철이를 생각합니다.

살아있다면 성년이 되어갈 그 아이들의 아까운 죽음과 탁아운동 선배들의 노력을 기억합니다. 처음 남영동사무실에서 내 앞에 놓여있던 삶의 불확실성에 두려워하던 스믈 넷 젊은 나의 모습을 기억합니다.

그리고 앞으로 우리 앞에 놓여질 새로운 길에 대해 생각합니다.

이제는 든든한 짝이 옆에 버티고 있고, 우리는 새로운 과제를 받아 안을 것입니다.


[우리네아이들]의 첫 제호가 [함께 가는 길]이었습니다.

우리네아이들을 위해 함께 가는 길에 더 많이 이들과 손잡을 수 있을거란 희망찬 기대를 가져봅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05/01/22 03:52 2005/01/22 03:52

3 Comments (+add yours?)

트랙백0 Tracbacks (+view to the desc.)

관계맺기..우리가 아이들에게 배워야 할것들...

View Comments

아이들과의 관계맺기와 성인과의 관계맺기에서는 늘 좀 다른 점을 발견하곤한다.
아이들과는 관계맺기는 뭔가 좀 쉬운듯 싶기도 하고, 매듭이 생겨도 잘 풀리기곤 한다.
그런데 성인들과의 관계에서는 한번 생긴 매듭을 풀기가 몹시도 힘들다.

 

암튼,
문제의식은 거기에서 출발했다.

관계맺기에 관심이 많은 구성원들과 함께했던 모임에서
우린 이 문제의식에 대해 이야기했다.

 

갈등이 발생했을때,
그 대상이 아이들인 경우 심각한 문제가 안되는데 성인들과의 갈등은 해결하기 힘든가..하는.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나는
나와 관계맺는 대상이 아이들이기에 갈등이 발생해도 나의 태도가 좀더 성숙(?)하고
여유있으며,좀더 교육적 관점에서 접근하기때문이 아닐까?하고 생각했었다.

 

진행되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모임 리더이신 선생님이 메모지에 몇가지 단어를 적었다.

 

-기대..

-용서..

-헌신적 관계..

-완전한 신뢰..

-겉과 속이 같음..

-열려있다..

 

뭐 이런 단어들이었다.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은 이 단어들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 미루어짐작하실 수 있으실런지...

.



(그날 이야기 되었던 내용의 전부를 올곧이 옮기지 못하는게 무쟈게 아쉽다.)

 

성인들은 상대방에 대한 나의 기대가 무너졌을때, 분노하거나, 서운해 하거나, 상대방에 대해 포기하거나 하기 쉽다.
그러나 아이들은 상대방에 대한 나의 기대가 충족되지 않았을때에도 상대방에게 분노하거나 그로 인해 상대방에 대한 기대를 접지 않고..여전히 새로운 기대로 대한다.

 

성인들은 마음으로 부터 용서하는 것에 익숙치 않다. 용서보다는 냉담에 차라리 더 익숙한것 같다.
그러나 아이들은 쉽게 용서한다. 방금 치고받고 쌈하던 친구와도 시간이 좀 흐르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놀이에 열중한다. 좀 전에 자신을 야단치던, 그래서 자신을 몹시도 서운하게 했던 선생님에게도 좀 지나면 다시 맑게진 얼굴로 미소지으며 달려온다.

 

성인들은 타인과의 관계맺기에서
맘 속으로 이해득실을 따지기도하고(더러는 그게 드러나보이기도 해서 민망해지기도한다),
때론 뭔가 손해본다는 생각이 들면 관계맺기에 멈짓해하기도 한다.
그러나 아이들의 세계에선 이득을 고려하여 맺는 관계는 없다. 아이들은 관계맺는 사람에 대해 온몸을 던져 애정을 보낸다. 아이들은.. 타인과의 관계에서 매우 헌신적이다. 아이들은 타인과의 관계맺기에서 완전한 신뢰를 보여준다.


성인들처럼 상대방이 나에게 거짓을 보여주는지, 혹은 나를 이용하려고 하는지 기타등등 골치아픈 의심을 하지 않는다.

 

아이들은 성인들처럼 싫어도 좋은척 한다거나, 자신의 이익을 위해 관계를 포장하지 못한다.
아이들은 겉과 속이 같다.

 

아이들은 열려있다. 늘 상대방을 받아들일 수 있는 상태이다.
성인들은 어떠한가? 타인을 완전히 받아들이기엔 너무나 많은 규정과 '나'가 있지 않은가.

 

다시 생각해 보면,
아이들과의 관계맺기가 성인과의 관계맺기와 질적으로 다른것은.
관계맺는 대상이 아이냐 성인이냐에 따라 나의 태도가 달라졌기 때문이 아니라.
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타인과 관계맺기를 하는 매우 훌륭한 자질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모임 리더선생님의 마지막 질문은

"성인들도 아이들과 같은 관계맺기를 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이 질문에 대한 누군가의 대답은

 

"있다. 언제냐면 그건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에서이다." 였다.

 

우리는 아이에서 성인으로 자라면서 진실한 관계맺기의 방식을 아주 잊은건 아니었다.
그저 '사랑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잊고 있었고, '사랑의 대상'을 매우 한정지어 놓았던 것 같다.

 

근데 난 결론이 아주 자연스럽게 '사랑'으로 넘어간 것에 대해 쫌 석연치 않았다.

 

왤까?

사방천지에 넘처나는 '사랑'의 담론에 질려서?
혹은 그 퇴색된 '사랑'의 의미들의 너덜한 모습이 떠올라서?
아님 그 상식적 대답이 허무해서?

 

그러나
그것을 지칭하는 단어가 '사랑'이면 어떻고 '아침'이면 어떠냐.
각자의 맘 속에 소망하는 그 어떤 감정의 실체는 존재하는 것을..

 

함께한 모임성원들에게 감사의 마음이 넘처나는 하루였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05/01/12 03:53 2005/01/12 03:53

댓글0 Comments (+add yours?)

트랙백0 Tracbacks (+view to the desc.)

모로가도 서울만 가면되나?

View Comments

아이를 키우는 일은 사회 공동의 책임이며,

한 가정의 몫으로 남겨져서는 안되며, 보육정책이 좀더 국가적 책임성을 가지고 가야한다고 설득하기 위해 우린 출산율 저하와 세대재생산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이런 이유들을 들이 대면서 나는 항상 ..이건 아닌데 하면서 뒷꼭지가 땡긴다.

 

이런 껄적지근한 느낌 뒤에는

과연 보육정책이 잘 완성되면 출산율의 저하가 변화할것인가? 하는 의문이 자리하고 있다.

세째아이, 낳기만 하면 정부에서 키워줍니다! 라는 구호가 가임 여성 1명당 평균 출생아 수 1.17명인 현실을 변화시킬 수 있을까?  아이 하나 낳을 때 마다 격려금을 준다고 해서 과연 출산율이 높아질까 하는 의문.

 

작년에 일본에서 온 교수의 강의를 들을 기회가있었는데..우리보다 보육제도가 잘 정비된 일본 역시 출산율1.32으로 급격한 인구감소의 문제를 가지고 있고, 출산율을 높이는 것이 보육제도의 문제로 해결될 수 없다고 그 분은 생각한다고 했다. 그리고 여러가지 원인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물론 출산율에 영향을 끼치는 것이 직접적인 육아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 말고도 여성의 사회 진출의 어려움이나,  육아에 대한 사회의 가치평가 등의 다양한 요인이 함께 작용하리라  추측되긴 한다.

 

또 다른 측면의 우려는 

우리가 보육의 문제를 아동의 권리로 접근하지 않고,

출산율이나 세대재생산으로 접근했을때 우리는 이후 몇 가지 문제에 봉착하게 될 것이란 점이다.



세대재생산이라는 목표를 가지고 완성된 보육제도 속에서 보육의 목표는 훌륭한 미래 시민의 양성이다. 그러니 당연히 보육시설에 다니는 아이들의 '현재'는 준비된 시민으로서 자랄 준비를 하기 위한  '준비기'가 될 것이다.  세대재생산이라는 목표는 우리 아이들의 '현재'를 미래를 위해 희생하도록 만들며, 그렇게 우리는 보육의 내용까지도 양보하게 될 것이다.

 

또 하나의 우려는

이러저러한 과정을 거쳐 다행이도 출산율이 다시 높아지고 나면 그 이후는 어떻게 될까? 하는 점이다.

우리의 출산정책은 태어날 아동과 아이를 임신할 여성의 의사와는 아무 상관없이 이루어져 왔다.

 

격세지감이지만.

내가 어릴때만 해도 '둘만낳아잘키우자!' '잘키운 딸하나 열아들 안부럽다!' 등등의 구호들이 있었고. 실제로 정부에서는 현행법상 불법인 낙태를 묵인하며 출산율 저하를 위한 피임 정도로 여기고 있었고-이건 낙태에 대한 여성의 권리에 대한 관점과는 별개의 지점이다.-정관수술을 하면 수술비도 지원해 주고..기타등등의 정책을 통해 출산율을 조절하여 왔다.

 

다시 본론으로,

우리가 출산율을 보육정책의 국가적 책임성의 근거로 들이 댄다면,

그런데 어쩌다 인구밀도가 다시 높아지는 상황이 된다면  그때는 보육정책이 다시 후퇴할 수 밖에 없다. 이미 목표를 달성했음으로..

 

2003년 프랑스보다 낮은 우리나라의 출산율에 의한 쇼크로 

정부는 출산율을 높이기 위한 다양한 정책을 마련해서 내 놓고 있다.

보육정책 역시 이에 발맞추어 영아보육을 활성화 방안, 두 아이를 보육시설에 보내는 경우 보육료를 지원등의 제도를 정비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도, 그 호들갑스런 언론도,

보육시설에서 지내고 있는 아이들의 삶에 대해서는 별다른 반응이 없다.

20명의 아이들이, 한명의 어른과, 1인당 0.8평의 공간에서, 하루 8시간 이상을

지내야 하는 현실에서는 아무도 이야기 하지 않는다.

 

아니,

누군가 목청껏 떠들어도, 

이 아이들의 실제의 삶은, 시설 운영의 현실적 어려움과 보육 예산의 부족 등을 이유로 항상 뒤로 밀린다.

 

그 아이가 부유한 부모를 만났든지, 가난한 부모를 만났든지,

그 아이가 특별한 도움이 필요한 아이인지 아닌지를 떠나서,

이 사회에 때어난 아이들 모두는 보호받고 교육받을 권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그 아이가 다음세대의 노동력이어서가 아니라.

그 아이가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가지게 되는 권리이기 때문이다.

 

나는.

보육의 국가적 책임성에 대해 설명할 더 이상의 근사한 논리를 갖고 있지 못하다.

 

그래서.. 가끔은 ... 지금 뭘 해야 하는건지도 모르겠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04/12/12 02:29 2004/12/12 02:29

댓글1 Comments (+add yours?)

트랙백0 Tracbacks (+view to the desc.)

하나씩 그 존재를 느끼면 아름답죠.

View Comments

* 이 글은 jineeya님의 [일명 스노우캣 놀이] 에 관련된 글입니다.

이 넘들은 우리 쭌이의 애장품이었답니다.

 

집앞 슈퍼에 가면 꼬맹이들을 꼬시는 자잘한 것들이 많은데 그 중 쭌이 꼿친것이 바로 이넘들이었는데

계란보다 작은 계란모양의 초콜렛이었는데 매일 한개씩 구입해서는

초콜렛은 바둑이 한테 던져주고

그 안에 들어있는 조립장난감은 할머니에게 만들라고 조르고..

결국 눈이 안좋은 할머니는 포기하고..

그 넘들은 내가 퇴근하기만을 기다리고 있죠.

 

매일 밤.

하나씩 조립하는 노동을 해야했었는데

중국제품이었는데 어찌그리 종류도 다양한지 별로 겹치는 것도 없이 매일 매일 쌓여가다가

결국은 그렇게 모여진것들이 급기야는 커다란 통에 하나가득 차게 되었고.

 

쭌이의 장난감으로 집이 발디딜 틈 없어진 어느날

동생들가져다 주자고 꼬셔서는 어느 모임에 가져갔는데

결국 아무도 그걸 안챙겨가서는 다시 집으로 가져와야하는 불상사가 발생했을때

jineeya가 구조해 간 거랍니다.

 

무더기로 있을 때는 버려져야할 쓰레기로 보이더니만

넘들의 독사진을 보니 나름대로 아름답네요.

 

언젠가 보육교사들과 모임을 하면서 그런 이야기를 했는데..

정말, 진짜, 정이 안가는 애가 있다. 그럴때 죄책감을 막 느낀다. 나의 교사로서의 자질에 대한 고민까지도 든다. 이런 상황 어쩌면 좋을까???

 

이 말에 경력 10년차 샘이 이런 얘기를 했어요.

그 아이를 아주 자세히 관찰해라, 어떤 모습이든.

음식을 먹는 모습이라면.. 어떻게 씹는지. 숫가락질은 어떻게 하는지. 또 표정은 어떤지.

맛없는 음식을 먹을때의 표정과 눈빛까지도.

그렇게 자세히 그 아이를 보면, 사랑하게 된다...잘 기억나지는 않지만.. 그런 이야기였죠.

 

우리가 무언가를 아주 자세히 들여다 본다면. 그 존재의 느낌과 통하고.

그러면 그 존재의 가치가 느껴질것이고.. 어느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어질것 같긴 하죠?

 

아~~ 그럼 세상도 평화로워질것 같은데...................................................................

 

오늘도 하나 조립했습니다.

작은 새가 들어있는 새집이었는데 불량이어서 만능테이프로 붙여서 겨우 모양을 유지했지요.

 

다시 모으기 시작했으니 조만간 또 한통이 차겠네요.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04/11/26 00:39 2004/11/26 00:39

3 Comments (+add yours?)

트랙백0 Tracbacks (+view to the desc.)

Newer Entries Older Entri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