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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프트웨어를 판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어제 강남훈 교수님과 채만수 선생님 간의 좌담을 지켜볼 기회가 있었는데,

강남훈 교수님 견해를 내 이해수준에서 정리하면, 버전이 상품이며, 버전의 생산에는 새로운 노동력의 투입이 요구되므로,  따라서 정보상품은 가치를 지니고, 결국 정보상품화에 의해 채만수선생님께서 지적하듯 자본주의 모순이 극대화되어 막바지로 가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채만수 선생님에 따르면, 정보상품은 각 카피를 의미한다. MS 오피스라면 그 오피스한 한 카피카피가 정보 상품으로 봐야 하고, 그 상품의 생산은 카피 이외의 노동력 투입이 없어, 정보상품은 가치가 없다. 다만 독점 기업의 이윤은 가치 없는 상품을 팔아서 다른 분야로부터 가치를 이전받는 것이고, 따라서 생산력과 생산관계간의 모순은 점차 심화되어 자본주의 모순은 더욱 격화되고 자본주의는 그 막바지에 도달한 것이다.

 

채만수 선생님은, 정보상품이 일반 상품과의 차이는 일반상품은 자본주의적 소유제도 이전에도 존재할 수 있으나 정보상품은 지적재산권제도 이전에는 존재할 수 없는 것인데, 지적재산권제도라는 제도를 통해 비로소 상품이 된다는 점에 특징이 있다고 보시는 듯했다.

 

내가 보기에는 채만수선생님은 정보상품을 카피로 규정하고, 그 카피는 소프트웨어의 독점배타적 권리를 인정하는 제도하에서만 상품화될 수 있고, 지적재산권은 정보상품의 처분권을 제약한다고 보고 계신 듯하다. 하지만 그 카피의 본질이란 무엇일까. 나는 의문이 든다.

 

어제 내가 계속 의문스러운 점이 있었는데, 정보상품이 카피인지, 버전인지는 떠나, 실제로 시장에서 거래되는 대상은 무엇인가 라는 점이다. 만약 실제로 거래되는 대상을 명확하게 하여 그것을 상품이라고 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참고로 자본론에서는 상품을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우리의 외부에 있는 하나의 대상이며, 그 속성들에 의해 인간의 온갖 욕망을 충족시켜주는 물건이다. 그 욕망의 성질이 어떠한가, 그것이 예를 들어 胃로부터 생겨나든가 또는 공상으로부터 생겨나는가는 전해 문제가 되지 않는다"

 

맑스는 얼마나 엄밀하게 규정한 것일까?

나는 이 문제를 법학적인 관점에서 설명해 보고 싶다.

 

일반적인 상품거래에서는 우리가 물건을 사고 판다고 관념하지만, 법적인 의미에서 더 엄밀하게 말하자면, 그 물건의 소유권을 이전하는 행위이다. 그래서, 맑스는 상품을 "물건"이라고 했지만, 법적으로 보면 거래의 대상은 소유권이고, 따라서, 소유권 아닌 다른 권리, 예컨대, 임차권 등도 거래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본다. 임차권이 가치로서의 상품인가와는 별개로.

일반적 상품과 정보상품 (MS 도스, 아래아한글, 포토샵, 페인트샵 등의 프로그램이나 OS)의 차이는 무엇인가?

 

우선 일반적 상품은 물리적 관리나 지배가 가능하지만, 소프트웨어는 물리적 관리나 지배가 가능하지 않다.  즉, 일반적 상품은 물리적으로 지배가능하기 때문에 무형적이건 유형적이건 법률상 물건이지만, 소프트웨어는 물건이 아니다.  종래의 사적 소유권의 대상은 물건이며, 물건이 아닌 것은 소유권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  소유권은 어떤 '물건'을 배타적으로 사용, 수익, 처분할 권리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는 굳이 맑스주의경제학인가, 부르주아 경제학인가의 차이 이전의 문제라고 본다. 두 경제학에서 공히 자본주의적 '소유'의 관념을 이렇게 정의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소프트웨어를 비롯한 정보나 지식은 물건이 아니므로, 본질적으로 누군가 '소유' 할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그 자체로 상품이 될 수는 없다. 지적재산권제도를 고안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을 터이다. 그럼 지적재산권은 무엇인가? 지적재산권은 정보나 지식을 독점, 배타적으로 '이용'할 권리이다.  마치 뉴튼의 만유인력의 법칙이나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원리를 누군가가 '소유'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소프트웨어를 비롯한 정보나 지식은 본질적으로 누군가 '소유' 할 수 없는 것이다.  소프트웨어 저작권이라는 것도, 소프트웨어를 이용한 권리가 저작권자에게 독점배타적으로 귀속된다는 것, 그래서 그 소프트웨어는 저작권자만이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지, 소프트웨어를 저작권자가 '소유'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여기서 '이용'은 다시 복제하거나 배포하는 행위를 의미한다.

 

그렇다면, MS가 오피스의 카피를 판매하는 행위는 무엇인가? 오피스는 물건이 아니므로 본질적으로 '소유'의 대상이 아니며, 그 카피 또한 마찬가지이다. 그 카피를 하나의 상품으로 볼 것인가?

나는 카피는 물건이 아니기 때문에 카피를 상품이라고 보는 것은 엄밀하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만약 CD에 담긴 오피스 한 카피를 사게 되면, CD에 대한 소유권은 CD구입자에게 귀속되지만, CD에 담긴 오피스에 대한 소유권까지 그에게 가는 것은 아니다. 이는 자본가가 소유권을 넘길 의사가 없기 때문이 아니라, 오피스 프로그램자체가 본질적으로 소유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그는 CD라는 물건과 CD에 담긴 오피스 프로그램의 일정한 이용권을 취득하게 되는 것이다.

 

맑스가 상품을 규정하면서 '물건'이라는 말을 쓴 것이 반드시 물리적으로 관리가능한 대상이라는 의미로 쓴 것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나는 소유권이나 그 밖에 제도가 만들어낸 권리아아닌 이상은 상품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현실에서는 카피를 거래의 단위로 삼고 있다.  그렇다면 거래되는 것은 지식인가 지식을 이용할 권리인가? 나는 오피스 한 카피를 산다는 것은 그 카피에 대한 소유권을 취득하는 행위가 아니라, 그 카피를 이용할 권리를 취득하는 행위라고 본다. 그렇다면 거래의 대상이 되는 것은 '오피스를 제한된 목적에서 이용할 권리'가 거래의 대상이 된다.  마치 강남훈 선생님께서 다리를 짓고, 다리 통행료를 받는 것에 비유한 것과 일치한다.  결국 거래되는 것은 오피스 2000이라는 버전의 사용권이며, 오피스 자체가 아니다.

 

채만수선생님께서는 지적재산권이 소비자가 구입한 오피스 카피의 처분권을 제한한다고 말씀하셨는데, 오피스가 소유의 대상이 될 수 없는한, 지적재산권에 의해 제한되는 것은 오피스를 이용할 권리 범위이다. 결론적으로 소프트웨어가 지적재산권에 의해 비로소 상품화되었다고 하는 점에서 일반상품과 다르다는 판단은 타당하지만, 그것은 소프트웨어의 처분권이 지적재산권에 의해 제한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소프트웨어를 독점적으로 이용할 권리가' 지적재산권에 의해 창조되었기 때문에, 그 지분적 일부인 카피의 상품화가 가능하다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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