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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재산권 침해죄 친고죄 조항 폐지마라

특허법, 의장법, 온라인디지털컨텐츠산업발전법, 컴퓨터프로그램보호법, 저작권법.

다섯개 법에는 권리침해죄를 친고죄로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열린우리당 정성호 의원등이 친고죄 규정을 삭제하고 비친고죄화하는 개정안을 발의하였다.  11월쯤 상정될 것 같다.

여러 가지로 답답한 생각이 든다.

 

 

친고죄로 규정된 것은 몇가지 이유가 있다.

사적 이익의 보호를 주된 법익으로 하기 때문에 형사소추에 있어서도 권리자에게 일정한

권리를 주고 있는 것이다.

또한 지적재산권침해죄는 재산죄이지만, 절도나 사기와 같은 형법상 일반 재산범죄와는 다른 특성이 있다.  절도나 사기는 전통적으로 반사회적이거나 반윤리적인 범죄, 즉 자연범이라고 할 수 있으나, 지적재산권침해죄는 산업발전이나 문화발전이라는 국가정책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법 위반행위를 처벌하는 이른바 법정범이다.

우리들 대부분은 남의 물건을 직접 훔치는 행위에 대해서는 큰 죄의식을 느끼지만, 컴퓨터소프트웨어를 복제하여 사용할 때는 별다른 죄의식을 느끼지 않는다. 만약 소규모 소프트웨어업체가 적당한 가격에 양질의 소프트웨어를 판매하는 경우에는 다소 미안한 느낌이 있지만, 반윤리적이라고까지 느끼지는 않는다. 불법복제 단속을 강조하는 쪽에서는 같은 도둑질인데 왜 달리보냐고 주장하겠지만, 우리의 역사적, 문화적 전통속에서 아직까지 지적재산권에 대한 침해행위를 반윤리적이고 반사회적인 행위로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것은 나의 주장이 아니라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현실이다.  따라서, 친고죄 규정을 버리고 비친고죄로 하여 이를 형사처벌 위주의 처벌 일변도로 지적정보산업을 살려보겠다는 것은 현재로서는 넌센스라고 할 수밖에 없다. 일률적으로 형사처벌하겠다는 것은 국민을 때려 가르치겠다는 것으로밖에는 들리지 않는다.

또한가지 생각이 드는 것은 소프트웨어 카피 하나 하나는 절도죄의 객체가 되는 물건하고는 차원이 다르다는 것이다.  절도죄의 객체인 특정한 물건은 훔쳐가면 주인에게 남는 것은 아무것도 없지만, 소프트웨어 한 카피를 복제한다고 해도 저작권자에게는 여전히 소프트웨어를 스스로 처분하고 사용할 수 있는 권리가 남아있다.  이는 지적재산권을 특정한 동산인 물건에 대한 소유권과 같이 볼 수 없음을 의미한다.  소프트웨어의 복제는 물건의 도둑질이라기 보다는 일정한 토지에 대한 무단 점유사용과 같이 보아야 한다.  토지소유권을 생각해 보자.  내 땅에 누군가 들어와서 놀고 있다. 아니면 채소를 가꿔 심어 먹고 있다.  난 그냥 내버려 둔다. 지금 내가 그 땅을 가지고 돈 벌 생각이 없어서 일 수도 있고, 내 땅이 누군가에 의해 유용하게 활용되고 있다면 그것 자체가 뿌듯하여서 그렇수도 있고.

그런데, 갑자기 경찰서에서 경찰이 나와서 내 땅에서 놀던 사람을 잡아간다. 왜냐면 내 토지소유권을 침해했다는 이유로 말이다. 난 언제고 내가 그 땅을 전부 사용할 양이면, 그들보고 그만 놀고 나가라고 할 참이었는데, 아직은 그럴 생각이 없는데...내가 경찰서 가서 그들이 내 땅에서 놀아도 난 괜찮다고 말해도 경찰은 사건을 검사에게 송치하고 검사는 공소제기하고 판사는 유죄를 때린다. 헉.

 

남의 땅을 사용하는 것이 주거침입에 이른 정도가 아니라면, 또 타인의 토지 경계를 인식불가능하게 담장이나 철조망 등을 파괴한 것이 아니라면 형법에서도 남의 땅을 점유 사용했다는 것만으로 처벌되지 않는다. 다만 소유자는 민법상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을 뿐.

심지어 우리나라 대법원 판례는 남의 땅을 무단 점유하여 채소를 심으면 채소는 심은 사람의 소유가 된다고 판시하고 있는데, 이는 일반적으로 점유사용할 권리없이 그 토지에 무엇인가를 부합시킨 경우 (즉, 나무를 심은 경우, 건물 아닌 공작물을 설치한 경우) 그 토지 소유자의 소유권에 자동귀속된다는 이론과 배치됨에도, 오랫동안 대법원의 입장이 되어 왔다.  채소는 단기간에 재배가 완료되므로, 토지를 방치한 소유자보다는 토지를 활용해서 농사지은 이를 보호해 주려는 배려가 깔려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절대적인 토지 소유권도 이런식으로 제한하면서, 필요한 사람의 토지 사용을 정당화해주는 전통이 있다.

지적재산권에 대한 관념도 불분명한 사회에서 친고죄를 비친고죄로 바꿔 권리자의 의사에 불구하고 무조건 처벌하겠다는 것은 아무래도 한심스러운 일이다. 전통이나 문화, 인권 따위는 전혀 고려하지 않는 무뇌아적 상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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