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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마다 달라

 

어느 날은 골프공이 잘 맞아, 난 타고난 골프 천재인가 보다 생각한다. 그러다 그 다음에 자신감을 갖고 연습장을 찾아가 골프채를 휘둘러 보면 여지 없이 빗맞는다. 같은 연습장, 같은 골프클럽인데 뭐가 잘못된지도 모르겠고, 잘 풀리지 않은 채, 난 역시 안되나 보나 하며 집으로 돌아간다. 

어느 날은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할 지 정리가 된 것 같아, 난 타고난 철학자인가 생각한다. 그러다 며칠 지나면 다시 미궁 속에 빠져든다. 상황이 조금만 달라져도 정리된 생각을 응용하는 게 쉽지 않다.  심지어 정리한 생각이 무엇이었는지도 잘 생각나지 않는다. 

골프가 안되는 근본적인 원인은 체력이 약하고 유연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있다. 

하루하루 갈팡질팡 하는 것에는 근본적인 원인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기도 어렵다. 역시 어렵다는 골프따위보다 산다는 것이 훨씬 더 어려운 일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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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곳에서 받은 편지

케냐에 사는 친구(?- 그곳에서 우연히 만난 교민인 '홍교관님')에게서 사진 한장을 받았다.

 

세렝게티에 갔다가 지난 주에 찍은 사진이라며,

 

바오밥나무 사진 한장을 보내주었는데.

 

그곳 인터넷 사정을 뻔히 아는 나는 너무 반갑고 고마울 따름이다.

 

오늘은 5시간을 내리 계속된 거짓말의 향연 때문에 더 지친 탓인지, 

 

마치 이 곳 서울에서는 어디에도 없을 것만 같은

 

평화와 휴식의 공간을 만난 것 같은 느낌까지 든다.

 

 

600년에서 800년쯤 된 나무라는데,

 

세월의 고통을 전부 땅속 깊은 곳에 묻지는 못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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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오랜만에 들른 내집 앞에서

아.. 너무 오랜만이다.

내 집이지만, 오랫동안 방치해 둔 탓에 쾌쾌한 냄새가 구석구석 베어있는 것 같고,

쌓인 먼지가 금새 날려 콧구멍, 목구멍을 가득 채울 것만 같다.

꼭 청소를 해야 다음에 와서 잠자리를 틀고 쉴 수 있을 것 같아,

몇자 괜히 끄적여 본다.

블로그를 오랜만에 들여다 보면서도 오래 방치한 흙벽돌집 생각이 난다는 것이 신기하다.

나의 문학적 감수성은 아직 살아있는 것인가?^^;

지금은 오후 2시 40분쯤 되었다.

늘 1시와 2시 사이에 졸다가, 문뜩 옛친구들의 블로그를 들여다 보았다.

잠이나 쫓아볼 요량으로.

그러다 내 블로그는 어찌되었나 싶어 들어와 봤다.

블로그 만든지 4년이나 되었는데, 글은 40개도 못된다. 흐...

이제라도 가끔씩 끄적여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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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리만자로 등정기 03-마차메 게이트에서 마차메 캠프까지

마차메 게이트(해발 1600)에서 마차메 캠프(해발 2980)까지 18 km

 

마차메 게이트에서 등록을 마치고 포터들의 짐 무게 체크가 끝난 후

12시가 다 된 시간에 출발했다.

가이드인 딕손은 우선 요리사인 로빈과 올라가고 있으라고 했다.

자신이 곧 뒤따라가겠다고.

 

무슨 이유인지 정확히 몰랐지만, 남아서 처리할 일이 있어보였다.

 

로빈과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로빈은 "폴리폴리" 걸으라고 했다.

폴리폴리는 동부아프리카 원주민의 언어인 스왈리아어로, 천천히 천천히 라는 뜻이다.

킬리만자로는 높은 산이다. 마차메 게이트는 해발 1600m이고, 정상인 우후루 피크는 5895m이니, 4000m 이상 걸어올라가야 한다.

험난한 산행은 아니지만 자칫 고도 적응에 실패하면 정상까지 가기 어렵다.

정상까지 무사히 가는 방법은 충분히 물을 마시면서 천천히 걷는 것이다.

물을 충분히 마셔 혈액순환을 도와 산소부족 상태를 완화하는 것.

그리고 천천히 걸으면서 고도 변화에 따른 산소량 저하에 적응해 가는 것이 중요한 듯 했다.

계약할 때부터 아담이 내게 주의를 준 사항이었다.

로빈도 나에게 충고했다.

 

내가 마실 물 1.5 리터와 몇 가지 소지품만을 가방에 맨 나는 로빈의 충고대로 "폴리폴리'걸었다.

요리사인 로빈은 커다란 배낭과 휘발류통을 짊어지고 나를 따랐다. 로빈은 마실 물을 가지고 가지 못했다. 생수를 살 돈도 없을 뿐 아니라, 물까지 지고 갈 여력이 되지 않는 것 같았다.

내 발걸음 속도에 맞춰 천천히 걷는 그가 매우 힘겨워 보였다.

그는 친절한 말투로 나에게 몇가지 스왈리아어를 가르쳐 주기도 하고 몇 가지 나무 이름을 가르쳐 주기도 했다.

난 물을 마시면서도 그가 계속 신경 쓰였다. 물이 많지 않아서 걱정 스럽긴 했지만 그와 나눠 마시는 쪽을 택했다. 그는 내가 준 물을 벌컥벌컥 들이키고 매우 고마워했다.

 

등산로는 비교적 잘 닦여있다. 지리산 정도는 되는 듯하다. 물론 지리산보다 완만하고 걷기 편했다.

우림지역을 지나고 있었다. 따라서 이따금 진흙길을 걸어야 했다.

2시간쯤 로빈과 걸었던 것 같다.

로빈은 그곳에서 점심을 먹을 것이라고 했다.

한쪽 나무에 걸터 앉으라고 했다.

로빈은 길 건너편에서 짐을 약간 풀어 내 점심을 준비했다.

(가장 왼쪽에서 로빈이 내 점심을 준비하고 있고 그 옆의 둘은 포터인 에반스와 압둘라)

 

로빈이 내 점심을 가져다 주었다.

접시에 빵과 과일 음료가 놓여져 있었다. 과일을 칼로 썰고 빵은 버터를 발라주었다.

놀라운 것은 접시가 가벼운 플라스틱이 아닌 무거운 도자기 접시라는 사실.

왜 이 무거운 접시를 산에 가지고 가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들의 서비스라는 것은 어리석음의 결과라기보다는 아마 1960년대 중반 독립할 때까지

그들을 지배했던 백인들의 명령 사항이 관행처럼 굳어진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헤밍웨이의 '킬리만자로의 눈'을 보아도 흑인들은 '주인님'의 명령에 복종하는 노예로 그려지고 있으니..

그들은 여전히 대부분의 백인 관광객들을 위한 서비스를 지금도 하고 있다.

  (산에서의 내 첫 점심)

 

난 점심을 보고 무척 감격했고 한편으로는 마음이 불편했다.

배가 고팠으므로 이런 저런 생각과 동시에 먹기 시작했다.

그런데 맞은편에 있는 세 총각은 나에게 잘라주고 남은 나머지 오렌지를 먹을 뿐 아무것도 먹지 않는 것이 아닌가.

예상은 했지만, 아무 것도 먹지 않고 기다리는 저들을 보면서 음식을 다 먹을 수는 없었다.

절반쯤 먹은 뒤 로빈에게 접시를 돌려주었다.

 

로빈이 짐을 다시 꾸린 후 우리는 다시 출발했다.

압둘라와 에반스는 빠른 걸음으로 앞서 갔다. 저녁 캠프사이트에 먼저 도착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로빈과 가는 동안 다른 등산객들을 위한 많은 포터들이 어떤 이는 어깨에 쌀자루같은 짐을 메고, 어떤 이는 배낭을 메고 우리를 앞질러 갔다.

어떤 이는 짐이 너무 무거워 땀을 뻘뻘 흘리면서 느린 걸음을 재촉했는데,

킬리만자로 등반이 비인간적인 산행이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누군가의 여가를 위해,  너무 여러 사람이 고생하고 있었다. 물론 그들에게 일자리 없는 탄자니아에서 매우 훌륭한 고용의 기회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세계 각국에서 몰려든 등산객들은 나를 앞질러 성큼성큼 올라갔다.

대부분의 등산객은 백인이었다. 70여명 정도 마차메 게이트에서 같은 날 출발했던 것 같은데, 그 중 3명의 일본 여자와 나를 제외하면 전부 백인이었다.

간혹 노인들도 눈에 들어왔다.

난 추위에 약한 편이고 벌레 물리는 것도 두려워 봄가을용 얇은 긴팔 등산티를 입었는데,

다른 등산객은 나씨티나 짧은 소매, 반바지 등 여름 옷을 입었다.

 

 

곧 온다던 딕손은 3시가 넘도록 오지 않았다. 난 내심 불안했다. 가이드가 오지 않는 것은 아닐까...

로빈에게 왜 딕손이 오지 않는지 물었다. 딕손은 공원의 허가를 기다리고 있단다.

허가를 받으면 곧 따라올 것이라고 했다.

4시 30분쯤 되어 우림지역을 벗어났을 때 딕손이 나타났다.

안심이 되었다.  딕손은 30분 정도만 가면 그 날의 캠프사이트인 마차메 캠프에 도착할 것이라고 했다.

그의 말대로 5시쯤 마차메 캠프에 도착했다.

마차메 캠프는 해발 2980m이고, 마차메 게이트로부터는 약 18 km거리에 있다.

마차메 게이트로부터 마차메 캠프까지의 길은 완만한 오르막길이다.

해발 3000m에 도착한 사실 그 자체가 기뻤다.

내가 가장 높이 올라간 곳은 한라산 정상이었기 때문에,

그날 딕손은 새로운 기록을 세웠다며 축하해 주었다.

아무런 고산병 증세를 느끼지 못했다.  다행이었다.

 

마차메 캠프에 도착하자 딕손은 캠프 사무실에 도착 사실을 등록해야 한다고 했다.

큰 노트에 이름과 주소, 직업, 가이드와 여행사 이름, 여권번호, 전체 일정 등을 기록하게 되어 있다. 이 등록절차는 마차메 게이트부터 모든 캠프와 하산 후 마웨카 게이트에서도 동일하게 거치게 된다.

 

녹색 건물은 캠프 사무소, 옆은 등산객들이 캠프에 도착해서 등록하고 있는 모습이다.

 

등록할 무렵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1~2월은 건기라서 등산하기 가장 좋은 계절이다. 특히 2월의 경우 덜 춥기 때문에 등산하기 가장 좋다고 했다. 난 1월 26일부터 등산을 시작했다. 그런데도, 매 저녁 때마다 비가 한 차례씩 내렸고, 구름이 낀 지역을 지날 때는 간혹 비가 내렸다. 우비는 필수 준비물!

 

위 캠프 사무소 뒷쪽으로 넓은 캠프 사이트가 있었다. 먼저 도착한 포터들이 텐트를 설치해 두었고, 요리사들이 음식하는 냄새가 이곳저곳에서 흘러나왔다.

 

딕손과 나는 등록을 마친 뒤 잠시 비가 거친 틈을 타서 텐트가 있는 곳을 갔다. 녹색 텐트는 내 가 잘 텐트이고, 노란색 텐트는 나의 일행 4명이 자고, 요리사가 음식을 만드는 텐트이다. 그 텐트의 크기는 2인이 겨우 들어갈 것 같은 내 텐트보다 약간 더 컸을 따름이다.

텐트가 있는 곳에 오자마자 딕손은 내 텐트 안에 침낭과 침낭 매트를 깔아 내 잠자리를 보아주었다. 비가 한차례 내린 뒤인데다 저녁때가 되었으므로 금새 추워졌고, 난 바로 텐트안에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잠시후 포터 에반스가 씻을 물이라면서 작은 빨간색 플라스틱 세숫대야에 끓인 물을 담아다 주었다. 자신들은 마실 물로 넉넉치 않은데, 더운 물을 씻으라고 갖다주니 말을 잃을 정도였다.

난 그 물을 아껴 세수하고 발닦고, 손수건을 적셔 몸의 구석구석 땀을 닦아낸 후 옷을 갈아입었다. 점점 추워졌으므로, 가져간 내복을 입고 그 위에 다시 걷옷을 껴입었다.

 

다 씻고나자 다시 에반스가 왔다. 테이블보를 가져와 텐트 바닥에 깐 뒤, 인스턴트 홍차와 커피, 코코아, 우유가루, 설탕, 뜨거운 물이 가득 든 보온병, 컵, 스푼을 하나하나 그 위에 내려놓은 후, 따뜻하게 데운 팝콘 한 접시를 갖다준다. 딕손이 따라와서는 뜨거운 차와 팝콘으로 일단 몸을 데우라고 일러준다. 그리곤 두루말이 휴지 1통을 주면서 쓰라고 건넨다.

에반스가 갖다준 컵 역시 도자기 컵이었다.

 

30분쯤 후에 저녁을 갖다주었다.

저녁은 스프, 소고기+야채 소스와 밥, 과일이다.

스프와 소스는 맛있었다. 밥은 탄자니아 쌀로 지은 것이었다. 탄자니아 쌀은 70년대쯤까지 우리나라에서 먹던 품종인데, 밥알이 길죽하고 끈기가 없다. 한마디로 밥알이 날라다닌다. 입맛에 맞지 않았으나, 첫날은 고산병 증세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 잘 먹을 수 있었다.

 

저녁을 먹는 동안 계속 비가 장마비 내리듯 흠뻑 내렸다. 침낭 위에 방심하고 앉아있다보니, 비가 바닥에서 텐트안으로 스미고 있었다. 텐트 주변에 고랑을 파 놓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미 침낭이 상당히 젖었다. 나는 밖으로 나가 딕손에게 비가 들어온다고 말하고 텐트 주변에 고랑을 파야겠다고 말했다. 딕손은 캠프 사무실에 가서 쇠스랑을 빌려와 그 비를 다 맞으며 텐트 주변에 물길을 만들어 주었다. 난 우비를 입고 있었기 때문에 내가 하겠다고 자청했으나, 딕손은 말도 안된다는 듯이 웃으며 계속 물고를 만들 뿐이었다.

 

어쨌거나  침낭은 상당히 젖었고 날씨는 추웠다. 입김이 보였다. 제대로 잘 수 있을지 의심스러웠다.

 

자려고 누웠는데, 고산 지대에서는 왜 그리 화장실에 자주가고 싶은지 화장실에 가려고 텐트 밖으로 나와보니 한참 가까워진 하늘에는 촘촘히 박힌 별들이 빛나고 있었다.

헤드랜턴이 없으면 걷기 어려울 만큼 캄캄한 데도, 우후루 피크의 눈은 무서울 정도로 하얗게 선명한 위용을 자랑하고 있었다.

화장실은 꽤 쓸만했다. 문이 없었지만,  뱀이 또아리를 틀듯 닫힘 구조를 하고 있어서 인기척을 하면 누군가 내 중대사를 방해하는 일은 방지할 수 있었다. 화장실 바닥은 우리나라 재래식 화장실과 같이 구멍이 하나 뚫려있는데  그 구멍이 거의 정사각형에 가까운데다 가로세로가 채 30 센티미터가 되지 않아 적중률이 약간 떨어지는 문제점은 있었다.^^;

 

밤에는 너무 추웠다. 겨울 모자를 꺼내 머리에 쓰고 있는 옷은 다 꺼내서 덮었지만 추워서 제대로 잠을 이룰 수 없었다. 가수면 상태로 밤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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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리만자로 등정기 02 - 모시에서 마랑구 게이트까지.

 

셔틀버스가 아루샤를 출발해 모시로 향했다.

난 조금 긴장해 있었다. 아루샤에서 같이 버스에 탔던 한국분도 내렸고, 이제 정말 혼자서 모든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아담을 소개받기는 했지만, 아담과 비용협상도 해야 했고, 정말 아담이 믿을 만한 사람일지에 대한 불안감도 있었다.

 

아담과의 협상을 염두에 두고, 내 옆에 앉은 영국인 여자에게 킬리만자로 등정비용이 얼마나 드는지 물었다.

모시에 산다는 그녀는 1000달러 정도 한다고 대답한다.

자기가 아는 여행사를 소개시켜 줄 수 있단다.

나는 내 가이드가 버스 정류장에서 기다리고 있다고 대답했다.

 

아루샤에서 모시까지의 길도 제법 쓸만하다.

중간에 킬리만자로 공항으로 가는 길이 있어서인지

중간 중간 움푹 패인 곳이 있기는 했지만 기대했던 것보다는 좋았다.

1시30분이나 2시간 쯤 걸렸던 것 같다.

아루샤에 볼래 오후 1시 도착예정이었던 버스가 3시쯤 도착했기 때문에,

모시에 도착한 시간도 5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모시는 탄자니아의 4-5번째쯤 되는 큰 도시지만, 3층 이상의 건물을 찾아보기는 어려웠다.

버스에서 내리면서 문밖으로 내다보니, 30대 중반쯤 되어보이는 키 작은 흑인이 버스 안을 탐색하고 있었다. 그는 나를 보고, '당신이 아마 내가 찾는 그 사람인 것 같군'이라는 눈빛으로 내게 인사했다. 그는 내가 'Yang이냐고 물었다. 나는 당신이 아담이냐고 물었다.

그리고 서로 악수를 나눴다.

 

아담은 내 배낭을 찾아 자기 차에 실었다. 난 아담에게 호텔을 예약해 두었냐고 물었다. 예약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는 'KEYS Hotel'로 갈 거라고 했다. 방은 있을 거라고.

숙박비가 얼마냐고 물었다. 30달러란다. 난 비싸다고 했다. 난 화장실, 침대, 뜨거운 물만 있으면 족하다고 했다. 다른 더 싼 곳은 없냐고 물었다. 그는 다른 곳도 있다고 했다. 옆에 있는 건물을 가리키면서 10달러라고 했다. 약간 헐음해 보였다. 난 앞으로 5박6일 등정일정과 아직 감기기운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문뜩 떠올리며 돈을 좀 들여 편히 자야 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에 그냥 키즈 호텔로 가자고 했다.

 

호텔은 2층 건물이었다. 오래된 건물인 듯했지만 깨끗한 느낌이었다.

방은 트윈룸이었다. 아담과 나는 방에 앉아서 비용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했다.

우선 등산 루트를 결정해야 한다. 루트는 7개쯤 된다.

마랑구 루트는 가장 대중적인 루트이다. 비교적 쉽기 때문에 코카콜라 루트라는 별명이 있다. 마랑구 루트는 4박5일 또는 5박6일로 등정하며, 산장에서 잠을 자게 된다.

마차메 루트는 마랑구 루트보다는 어렵지만, 경치가 좋아서 인기가 많은 루트이다. 마차메는 5박6일 또는 6박 7일로 등반한다. 나는 홍교관님의 추천도 있고 해서 마차메 루트로 5박6일로 가겠다고 했다. 내 체격 조건을 가능할까 물었더니 아담은 가능하다고 했다.  포기할 생각말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가능하다고 했다. 그리고 산과 싸우지 말고 자신과 싸우라고, 그리고 산을 존중하라고 그럼 다 된다고 따뜻한 조언도 했다. 믿음이 갔다.

 

 

루트와 일정이 결정되자, 그는 1050달러를 불렀다. 나는 비싸다고 했다.

그는 국립공원에 내야 하는 돈만 600달러가 넘는다고 항변했다.

국립공원 입장료는 하루에 60달러, 캠핑비 하루에 50달러, 구조료 20달러를 내야 한다고. 그리고 가이드 1명, 포터 2명, 쿡크 1명을 고용해야 한다고...더구나 나는 혼자 등반하는 것인만큼 비용이 비쌀 수밖에 없다고 설득하려 했다. 의심스러우면 국립공원 비용을 내가 직접 지불해도 좋다고 했다.

나는 그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전형적으로 돈 많이 받으려는 구라쯤으로 생각하고 나도 약간 구라를 섞어 이야기했다.

900달러를 불렀던 여행사가 있었다고... 홍교관님이 특별히 소개하셔서 당신을 선택한 것인데.. 그 정도는 지불하기 힘들다고.. 어찌어찌하여 900달러에 계약했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국립공원 입장료가 하루 60달러, 캠핑비가 50달러, 구조료 20달러는 정말이었다. 5박 6일이니까 총 630달러(60*6+50*5+20)를 국립공원에 내고 그 영수증은 나중에 내가 우연한 기회에 볼 수 있었다.

나와 가이드 1명, 포터 2명, 쿡크 1명이 따라간 것도 사실이었다. 물론 나중에 포터 1명은 3일째 아파서 산을 내려갔다고 했다. 아파서 내려간 것인지 더이상 짐의 무게를 체크하지 않으니까 남아있을 이유가 없어서 내려간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산 입구와 첫날 캠프 사이트에서는 한 포터가 나르는 짐의 무게가 20킬로그램이 넘지 않도록 체크했으나 그 후로는 체크하는 것을 보지 못했다.)

 

그는 계약 즉시 900달러를 지불해 달라고 했다. 그 돈으로 빨리 음식물도 사고 준비를 해야 한다고. 난 약간 불안했다. 이 녀석이 들고 튀면 끝이었다. 난 아담의 사무실이 어딘지도 모르고 오직 그의 전화번호만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홍교관님이 소개시켜 준 사람이었고, 홍교관님은 아담과 또한번의 등반계획을 논의 중이었기 때문에, 난 그냥 믿기로 했다.  기분좋게 등반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난 900달러를 현금으로 지불했다.

 

아담은 다음날부터 자신은 다른 등반일정이 있다고 했다. 자기와 3년 정도 같이 일했던 다른 가이드가 나와 함께 등산할 거라고 했다. 그 가이드와 1시간쯤 후에 와서 내 준비물을 체크할 것이니, 내 준비물을 한쪽 침대에 모두 꺼내 놓으라고 말했다.

 

난 씻고 그들이 오기를 기다렸다. 아담은 내 가이드가 될 딕손(Dickson)이라는 친구를 데려왔다. 아담보다 어려보였다. 아담은 딕손이 자기의 어시스턴트 가이드로 3년을 일했기 때문에 경험도 많고 매우 훌륭한 가이드라고 추켜세웠다. 딕손은 수줍어 하는 듯보였다.

난 딕손과 악수하고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준비물은 거의 다 되었다. 그러나 겨울 등산용 모자와 목도리가 빈약하다면서 아담은 자기 것을 무료로 빌려주겠다고 했다. 또, 침낭 밑에 까는 매트도 필요한데 10달러라고 했다. 난 비싸다고 투털거렸다. 약간 실갱이를 했지만 어쩔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지불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저녁을 먹으러 시내로 나갔다. 아담은 1시간 후에 다시 호텔로 날 데려다 주겠다면서 이탈리안 식당 앞에 날 내려주었다. 식당에 들어가 메뉴를 보니 음식값은 4달러 안팎이었다. 다만 내가 탄자니아 실링으로 표시된 음식가격을 착각하고 40달러 쯤으로 보아 넘 비싸다는 생각에 거리로 나와 다른 음식점을 찾았다. 거리를 돌아다니니까, 여행사 삐끼들이 달라붙었다. 나는 이미 계약은 끝났지만, 내가 한 계약이 적당한 가격인지 궁금해서 그들과 가격 흥정을 해 보았다. 4인 그룹에 끼는 조건으로 하면 800달러 정도까지 가능할 듯보였다. 내가 바가지를 쓴 것은 아니구나 싶었다. 난 혼자 등반하는 것이니까. 

 

아담이 날 다시 데릴러 왔을 때 난 삐끼들에 둘러싸여 있었다. 아담은 약간 불편한 기색이었다. 아담과의 계약 금액보다 더 싼 비용을 제시받은 후라서 약간 기분이 좋지 않았지만 어짜피 계약한 거 기분좋게 등산하는 편이 좋을 것 같아, 밝은 표정을 지어가면서 아담을 안심시켰다. 아담은 침낭 매트를 5불만 지불해도 좋다고 자진해서 깎아주었다.^^

 

호텔로 돌아와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그러나 왠지 잠이 잘 오지 않았다.

텔레비젼을 보기도 했으나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낯선 곳에 혼자 와 있다는 사실과 다음날 등산한다는 것에서 오는 두려움, 기대, 그리고 덤비는 모기들 때문에 말라리아에 걸리는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까지...뒤범벅이 되어 선잠을 잘 수밖에 없었다. 30달러라는 방값이 아까웠다.

 

아침 9시 30분에 출발할 예정이었다. 그들은 8시 30분까지 와서 내가 일어났는지 확인을 해 주겠다고 했다.  난 6시쯤 일찍 일어나 짐을 꾸리고 7시쯤 호텔 1층에서 아침식사까지 마친 후 그들을 기다렸는데, 아담은 9시 10분쯤이나 되어서야 딕손과, 또다른 한명과 함께 왔다. 난 준비가 다 되었고 즉시 출발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그들은 9시 30분까지 오겠다며 뭔가 준비할 것이 있는 듯 다시 갔다. 10시는 다 되어서야 딕손과 아까 그 한명이 왔다. 포터 2명(압둘라, 에반스)과 쿡크 1명(로빈)도 차에 타고 있었다. 그들과 간단한 인사를 나눴다.

난 딕손에게 약간 불평을 했다. 두번씩이나 늦었다는 점에 대해 항의했다. (사실 이 때 항의를 해야 하는지, 한다면 어느 수준에서 해야 하는지 고민되었다. 항의하지 않으면 남은 일정 내내 불친절할 수 있다는 생각에 어쭙지 않게 약간 화를 내는 수준에서 항의했다) 딕손은 수줍은 듯, 미안한 듯 약간 미소를 지어보일 뿐 아무말이 없었다. 미안해서 할 말을 잃은 순한 사람의 표정으로. 난 더 이상 화를 내지 않기로 했다.

 

딕손은 나에게 물을 준비해야 한다고 했다. 내가 오늘 하루에 마실 물은 내가 준비해야 한다고.

난 내가 충분히 많은 돈을 지불했는데도, 내가 물을 사야한다는 것 때문에 또다시 불평을 했지만 소용없었다. 슈퍼마켓에 들러 물과 사탕종류를 좀 샀다. 물은 1.5리터 정도 샀는데,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아담의 말에 따르면 하루에 3리터 정도를 마시는 것이 좋다고 한다. 고산병 예방을 위해서.

 

딕손과 차를 타고 마차메 게이트로 갔다. 40분 정도 모시에서 달렸던 것 같다. 도착한 시간은 11시가 못된 시간. 많은 등산객들과 포터들이 입구에서 등반준비를 하고 있었다. 우선 공원 사무실에 등록을 해야 한다. 비용도 지불해야 하고. 나는 줄을 서서 등록을 했다. 

 

공원 사무실 앞에서 등록하려고 기다리는 사람들

 

 

마차메 게이트

 

 

 

 

우리팀. 왼쪽부터, 압둘라(포터), 딕손(가이드), 에반스(포터), 로빈(요리사).

마차메 게이트에서 짐을 꾸리고 있는 모습.



공원 사무실 앞에서 등록하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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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리만자로 등정기1- 인천에서 모시까지

너무 거창한 제목일까...

 

킬리만자로 트렉킹을 다녀왔다.

 

떠나기 전에 몇몇 아프리카 배낭여행객들의 글을 보았는데, 시도 했다가 실패한 이야기들 뿐이어서 사뭇 긴장했다. 준비를 해서 나이로비로 일단 떠났지만 나이로비에 머무는 며칠 동안 가야할 것인지 계속 망설였다. 나이로비에 사는 교민분들도 계속 말렸다. 위험한 산이다, 죽을 수도 있다, 엄청 춥다, 고산병 무시할 수 없다, 더군다나 지금 감기기운도 있는데... 그런 몸으로 어딜...

 

그래도 비행기 뜰 날짜와 그 때까지 할 일이 없다는 사실 때문에 난 그냥 킬리만자로 가기로 했다. 대신 몸이 많이 않좋아지면, 적당한 때 포기해야 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결국 나이로비에서 몇가지 장비를 더 사거나 빌린 다음 탄자니아로 가는 셔틀에 올라탔다. 그리고 포기할 시점을 놓쳐 결국 우후루 피크까지 가고 말았다.

 

모시에 도착할 때까지.

 

떠나기전에 킬리만자로 트렉킹 프로그램이 있는 한국 여행사를 몇개 물색해 보았다. 한국 여행사들은 항공권까지 팩키지로 하지 않으면 아예 계약할 수가 없었다.  나이로비에 며칠 머물러야 하는 일정 때문에 난 케냐항공사의 자리를 이미 예약한 상태였고, 그래서 한국 여행사와의 계약은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비용도 사실 너무 비쌌다.).

 

한국 여행사들이 주선하는 다국적 배낭여행 프로그램은 생각보다 비싸거나 일정이 잘 맞지 않았다.

 

그래서 탄자니아 모시(킬리만자로가 있는 도시)에 있는 여행사 몇 곳을 이메일로 접촉했다.  여러 차례 디스카운트를 시도했으나 결국 모두 4명 그룹을 기준으로 1인당 1000달러 이상을 요구했다.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룹에 끼면 700달러 정도면 되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떤 여행사 사이트에서 보았던 정보를 떠올리면서 400달러면 된다고 들었다면서 억지를 부려보았는데, 그들은 모두 국립공원에 내야 하는 돈만 600달러쯤 된다면서, 국립공원에 직접 비용을 지불할 거면, 400달러에 해 주겠다는 반응이었다.

 

그래서 계속 디스카운트를 요구하다가 시간이 부족해 교섭을 마무리짓지 못하고 그냥 나이로비행 비행기에 올랐다. 나이로비에서 계속 연락을 해서 가격을 낮춰볼 참이었다.

그런데, 나이로비는 인터넷 쓰는 것이 원활하지 않았다. 인터넷 까페가 드문드문 있지만 속도도 엄청느리고 (7kb/sec), 일찍 문을 닫아버리기 때문에 다른 일정이 있었던 나는 쉽게 이메일 박스를 열어 보고 적절한 교섭을 하기 어려웠다. 전화를 사용할 수도 있지만, 전화비도 엄청 비싼데다, 짧은 영어로 전화를 통해 가격을 깎는 것은 부담스러워 시도하지 않았다.

 한 차례 메일을 더 보냈을 뿐이었다.

 

나이로비에서 며칠 머물러야 할 일이 있었기 때문에, 한국 교민이 운영하는 게스트하우스 "만나식당"에 묶었다. 이곳에서 나이로비에서 여행사를 하시는 교민을 만나서 킬리만자로 트렉킹 비용을 여쭤봤는데, 혼자 등정하는 경우 1300달러 정도 든다고 말씀하셨다. 역시 내 예상을 넘는 비용이었다. 물론 나이로비-모시까지의 셔틀비용, 등반 전후 하루씩 모시에서의 이틀 숙박비용까지 포함한 비용이므로 그리 비싸다고 할 것은 아니었다. 다만, 나이로비까지 가서 한국인 여행사와 계약하여 무난하고 안전하게 다녀오는 것이 그닥 흥미롭지 않아서, 여쭤보기만 하고 계약은 하지 않았다.

 

(그 여행사는 "사랑아프리카" 이다. 김충환 사장님은 아프리카 배낭여행갔다가 아프리카가 좋아서 눌러 앉으신 점잖은 분이었다. 전화: 0722-526474/0733-765617, sopamasai@hotmail.com 현지 여행사와 직접 계약하는 것에 위험부담을 느끼시는 분들은 사랑아프리카를 통해 다녀오는 것도 방법이다.

 

탄자니아 아루샤에도 한국인 여행사가 있다.  "나누리 사파리" (255) 754-756724, nanuri_safari@hotmail.com, http://www.nanurisafari.com 

 

전화번호를 적어가면 위급 상황에서 한국인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나도 아루샤에서 나누리사파리 사장님의 도움을 받은 일이 있다.)

 

내가 묶었던 그 근처에 있는 "뉴서울가든"이라는 한국 식당에 가게 되었는데(이 곳에도 나중에 알았지만 게스트하우스가 있다), 그곳에서 손님으로 오신 홍교관님을 만나게 되었다.

이 분은 나이로비에서 "홍베이커리"(전화: 0720-766184)라는 빵+음식점을 하고 계시는 분이다.

 

홍교관님은 킬리만자로 등정 경험이 있고, 마운틴 케냐에도 올랐던 분이었다.

나이로비에 11년 사시면서 탄자니아 여행 가이드로로 가끔 나가신다고..

킬리만자로에 대해, 몹시 춥지만 초보자도 얼마든지 올라갈 수 있는 산이라고 용기를 주셨다.

그리고 그분이 함께 등산했던 가이드 "아담(Adam)"의 연락처를 알려주셨다.

비용은 1000달러쯤 생각해야 할 것이라는 조언과 함께.

 

홍교관님은 오리털 잠바와 두꺼운 침낭이 필수라고 말씀하셨다.

내가 준비한 것은 일반적인 겨울 등산용품 정도였다. 여름 등산 바지와 티셔츠 한벌, 겨울 등산 바지와 티셔츠, 바람막이 기능이 있는 내피, 고어텍스 잠바, 일반 내복 2벌, 등산양말 두켤레 정도. 나머지는 계약한 여행사에서 빌릴 생각이었다.

 

그런데 뉴서울가든 사장님께서 좋은 침낭이 있다며 그 자리에서 빌려주셨다.

홍교관님의 도움으로 나이로비 구호물자 시장에 들러 오리털 잠바와 겨울 등산용 모자와 스카프를 구입했다. 홍교관님으로부터 헤드랜턴을 빌렸다.

홍교관님께서 스틱도 필수인데, 산 입구에서 파는 것을 사면 될 것이라고 가르쳐주셨다.

 

 

그리고 그 다음날 25일 탄자니아 모시로 가는 셔틀 버스를 탔다.

나이로비에서 킬리만자로로 가려면, 나이로비 시내에서 탄자니아 모시로 가는 셔틀 버스를 타야 한다. (물론 나이로비 버스터미널에서 나망가 국경까지 가는 버스를 이용할 수도 있지만, 일반 버스는 현지인들이 이용하기 때문에 현금을 소지한 외국인에게는 위험할 수도 있다는 교민들의 조언 때문에 나는 한 호텔에서 운영하는 셔틀버스를 이용했다.) 탄자니아 아루샤에 있는 임팔라(Impala) 호텔 셔틀버스를 이용했다. 이 버스는 나이로비에 있는 Silver Springs Hotel에서 출발한다. 미리 예약하면 1000 케냐실링(약 14-5불 정도)이고, 예약하지 않으면 1200 케냐실링이다. 모시까지 가려면 8시에 출발하는 버스를 타야 한다. 하루에 한번 뿐이다. 아루샤까지 가는 버스는 오후 1시쯤에도 한차례 더 있는 듯했다.

 

전날 예약하고(예약할 때 돈을 전부 내고 티켓을 받는다), 떠나는 날 아침에 7시 40분경까지 실버스프링스 호텔에 있는 임팔라 호텔 셔틀버스 사무실에 갔다. 8시가 좀 넘어서 버스가 왔다.

30인승 정도의 중형 버스였다. 큰 짐은 버스 위에 올려 싣고 일부는 버스 뒷칸에 싣는다.

버스에 올랐다. 내 옆은 영국에서 온 젊은 여자가 앉았다. 지금 모시에 살고 있다고 했다. 영국인의 영어발음은 참 알아듣기 힘들었다.^^;;

같이 버스에 타게 된 한국분이 계셨고, 그 분이 옆쪽으로 와서 앉으셔서 그 분과 내내 대화하면서 아루샤까지 갔다. 그 분은 아루샤에서 내리셨고, 나는 아루샤의 임팔라 호텔에서 내려 다시 모시로 가는 연계 버스로 갈아타고 모시에 도착. 아담이 날 기다리고 있었다.

홍교관님께서 아담에게 전화를 해 주셨고, 내가 도착하는 시간에 맞춰 버스정류장에 나와 준 것이다.

 

나이로비에서 모시까지 가는 길은 비교적 잘 포장이 되어 있었다. 나이로비 시내의 도로 사정이 좋지 않아서, 국경을 넘는 일이 매우 걱정이 되었는데, 생각보다는 도로 사정이 좋았다.

나이로비 시내를 벗어나자 광활한 평원이 끝없이 펼쳐졌다. 키 작은 나무들이 그 평원에 띄엄띄엄 여유롭게 흩어져 서 있었고, 간혹 야생동물의 무리가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었다.

소나 양을 치는 마사이족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나망가 국경까지 4시간쯤 달렸던 것 같다. 실버스프링스 호텔을 출발한 셔틀은 고객의 요청이 있으면 나이로비 공항을 들르는 것 같았다. 나이로비 공항을 들렀기 때문인지, 아니면 버스 승객이 중간중간 화장실을 호소한 덕분인지...(화장실 가고 싶다고 하면 중간에 아무데나 서서 기다려 주곤했다.) 예상보다 1시간 정도 늦는 것 같았다. 나망가 국경에서 출국신고 하고 (출국 신고 할 때 이민국 직원은 '안녕하세요'라며 한국말로 인사해 주어 무척 반가웠다.) 다시 셔틀을 타고 국경을 넘어 탄자니아쪽에서 비자를 받고(50달러)  동시에 입국신고까지 한 후 셔틀버스에 올라 아루샤로 향했다. 비자받는 데서는 20여분 정도 기다렸던 듯...)

 

자기가 가고 싶은 호텔을 이야기 하면 셔틀은 중간 중간 사람들을 하나씩 내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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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성곡미술관에 다녀왔다.

어제 새벽에 눈이 펑펑 내렸다.

늦게 일어나, 하루를 점심때부터 시작했건만..

쌓인 눈을 보고 있으면 싱숭생숭한데 할 일은 없고.

아무리 궁리해도 재미난 것은 생각나지 않아서.. 

성곡미술관에 가봤다.

늦어서 하마터면 못들어갈 뻔했다.

5시 30분까지 입장인데, 늑장부리다 겨우 10분전에 도착...

 

나 이런 거 블로그에 올리는 사람 아닌데.. 쭈뼛쭈뼛...

뭐 다른 사람들도 태어날 때부터 멋진 사진 찍는 것도 아닐터..

그냥 한번 해 보자. 너무 심심하잖아. 오늘은...

 



    

알랭 플래셔 작품전.

올해는 한불수교 120주년이라고

왠만한 전시관마다 프랑스 작품전하는 것 같다.


 

 

그림인가, 사진인가하다가 포샵처리 엄청한 사진으로 결론지었는데,

디지털 조작없는 그냥 아날로그 사진이라네..

프로젝터를 이용해 영화장면을 쏘고 그걸 다시 사진에 담았다나 보다.

그의 전시작품을 몰래 몰래 낱장으로도 찍었는데, 이 작품들 모두 유리틀에

끼워 놓아, 매 사진마다 내 그림자가 들어가거나 조명이 반사되어 제대로

내가 찍은 사진으로는 좀체 작품의 본 모습을 알기 어렵다.

내가 또다른 작품을 만든게지. ㅋㅋ

알랭 플래셔가 그랬듯이 말이다. 물론 작품의 수준을 논외로 하면..

그래서 난 그 사진들은 나만 보기로 한다.


 

실버호일 자화상인데....난 각각 다른 이름이 붙여져

있어서, 작가가 자기랑 친한 사람 두상을 따서 만들었거니..

했다. 나도 이 자랑 친하면 여기 얼굴 형을 떠서 붙일 수 있겠구나 했는데...

모두 다 제 두상 이란다. 그냥 이름만 달리 붙인거라네...

 


 

이 작품의 제목은 게임의 규칙이다.

그냥 축구하는 장면 사진 같다.

이건 어떻게 찍었을까?

축구장에 기차길을 만들었을 것 같지는 않은데..

흠....

실제 작품은 이 사진과는 좀 다르다.

유리에 비친 조명에 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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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 초상의 상품화-퍼블리시티권

네트워커 10월호에 기고한 글...

뭐 그럴듯한 내용은 없지만 오랫동안 비워 둔 이곳이 곰팡이라도 피는 것 같아서

그냥 올려본다.

 

 

 

영화 ‘친구’는 부산에 거점을 둔 조직폭력배 칠성파의 이야기를 다뤘다가 대박을 냈지만 그 제작진들은 곤욕을 겪기도 했다. 감독의 친구이며 당시 교도소에 수감 중이었던 칠성파 부두목과의 사이에 흥행수입을 둘러싼 분쟁을 겪고 그 재판이 아직도 계속 중이다. 칠성파 부두목이 자신의 이야기를 영화화한 만큼 흥행수입의 일정 부분을 나눠달라고 감독을 협박하여 제작사로부터 돈을 뜯어내려고 했다는 내용이 마치 기정사실인양 보도되기도 했는데, 복잡한 사실관계 탓에 아직 최종적으로 법원의 판단이 내려진 것은 아니다.

이 코너에서 갑자기 영화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칠성파의 요구가 최근 논의되는 퍼블리시티권을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퍼블리시티권(the right of publicity)이란 성명이나 초상 등을 상업적으로 이용할 권리를 말한다. 실제하는 인물의 모습이나 성명에 관한 권리는 전통적으로 비경제적인 초상권의 보호대상이었다. 그러던 것이 실제 인물의 경제적 가치, 즉 상품선전력 내지는 고객흡인력 등에 착안하게 되면서 저명한 인물이 자신의 캐릭터에 대한 상업적 가치를 통제할 수 있는 권리의 개념이 등장하게 된 것이다. 퍼블리시티권은 미국 판례법에서 인정되고 있는 개념이며, 우리나라의 경우 법적 근거가 없어 그 인정 여부에 관해 논란이 있다.

 



 퍼블리시티권을 인정한다면 초상을 침해당한 사람이 구할 수 있는 손해배상의 범위가 달라진다. 초상권은 인격권의 한 내용에 불과해서 손해배상은 위자료 청구에 국한된다. 그 초상이 인격권을 침해하는 방식으로 사용된 결과 얼마나 큰 정신적 손해를 받았는가가 손해액 산정의 근거가 된다. 반면 퍼블리시티권은 초상을 상업적으로 이용할 권리인 만큼 그러한 권리를 침해한 경우에는 그 침해행위로 이득한 액수가 손해액으로 인정될 수 있게 된다.

퍼블리시티권의 법제화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가 벌어들이는 상금이 엄청나다고 하지만 그가 나이키 골프 의류에 ‘우즈’라는 이름을 빌려주고 벌어들이는 수익에는 비할 수 없다는 이야기를 들곤 한다.

최근 한류열풍과 중국, 동남아시아에서 한국 연예인들의 초상권 침해가 빈번하게 일어나는 것을 계기로 국내에서는 퍼블리시티권을 법제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고개를 들고 있다. 퍼블리시티권과 관련한 소송도 국내에서 몇 차례 있었다. 배우 이영애씨가 계약기간이 끝났는데도 계속 자신의 모습을 내보내 광고한 화장품 회사를 상대로 퍼블리시티권 침해를 이유로 하여 손해배상을 청구하였다가 승소한 사건이 있었다. 그러나 이 사건은 전형적인 퍼블리시티권 사례로 보기는 어려운 면이 있다.

더 전형적인 사례는 속옷 브랜드인 ‘제임스 딘’ 사건이다. 유명한 미국의 영화배우 제임스 딘은 죽어서도 그 유명세 탓에 편할 날이 없는 것 같다. 제임스 딘의 상속인인 아버지는 1988년 제임스 딘의 고모와 고종 사촌에게 제임스 딘의 초상 및 성명, 퍼블리시티권을 양도하였고, 현재는 이러한 재산을 기본재산으로 하는 ‘제임스딘재단’이 설립되어 그 재단이 제임스 딘에 관한 퍼블리시티권을 행사하고 있다.

한편 우리나라에서 ‘제임스 딘’에 대한 상표권은 개그맨 주병진씨에게 있다. 즉, 주병진씨가 특허청에 지정등록한 의류, 화장품, 신발 등에 대해서는 ‘제임스 딘’이라는 표장을 넣어 상표를 사용할 권리가 그에게만 있다는 뜻이다. 만일 다른 사람이 그의 허락없이 의류나 화장품에 제임스 딘이라는 표장을 넣어 상표로 사용했다가는 상표권 침해로 민형사상 책임을 지게 된다.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란 말인가?

제임스딘재단은 주병진씨가 설립한 주식회사 좋은 사람들과 주식회사 신안 어패럴을 상대로 퍼블리시티권의 침해를 주장하면서 더 이상 제임스 딘을 속옷 등의 상표로 사용하지 말 것을 청구했다. 결론은 피고 승소. 서울고등법원은 원고가 주장하는 권리는 법률에 규정이 없어 인정할 수 없다고 보았다. 제3자에 대하여 어떤 이익의 침해를 이유로 그 행위를 금지시킬 수 있는 권리는 법률에 근거가 없는 이상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이것을 물권법정주의라고 한다). 불문법 국가인 미국이 판례로 인정한다고 하여 성문법국가인 우리나라에서 법률적 근거 없이 퍼블리시티권을 인정하기 어렵다는 것.

이 판결 이후에 법제화에 대한 주장이 본격화되는 듯하다. 지난 6월달 박찬숙 의원(한나라당·문화관광위) 주최로 퍼블리시티권 법제화를 위한 공청회가 열렸다. 박찬숙 의원은 “문화생산국, 문화선진국을 꿈꾸는 우리나라에서 퍼블리티권의 도입은 늦었지만 반드시 추진해야 할 문화정책”이라며 “비단 한류스타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휴대폰·음반·자동차 등 영역을 가리지 않고 도용당하고 있는 우리 산업의 보호망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박 의원은 주장은 그리 설득력있어 보이지는 않는다. 우리나라에서 퍼블리시티권을 입법화한다고 해도 한류스타가 중국이나 동남아시아에서 퍼블리시티권 침해를 주장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다. 중국이나 동남아시아 법원은 자국법에 따라 판결할 뿐이므로 자국법과 판례가 퍼블리시티권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그만이다. 반면 국내에서는 제임스딘과 같은 외국유명인들에게 퍼블리시티권의 침해를 이유로 손해배상 해 주어야할 일이 빈번하게 일어날 수도 있다. 손익계산서를 뽑아봐도 한류열풍에 애국심과 민족감정을 대강 버무려 외치는 법제화 주장이 장사가 될 일인지는 의문이다. 뿐만 아니라 퍼블리시티권이 법률로서 규정할 수 있을만큼 명확한 권리인가도 문제이다.

미국 판례법상 인정되고 있는 퍼블리시티권은 초상이나 성명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특정인의 얼굴이나 외모, 특이한 행동거지를 사진이나 그림을 통하여 허락없이 묘사하거나 그와 비슷하게 모방하는 것도 퍼블리시티권의 침해가 될 수 있다. 즉, 함부로 유명인을 모방한 ‘개인기’를 선보였다간 퍼블리시티권의 침해가 될 수도 있고 배칠수씨는 배철수씨의 맘먹기에 따라 밥그릇을 잃을 수도 있을 것이다. 미국에서는 영화감독이자 배우인 우디 알렌이 원고가 된 유명한 사건이 있다. 비디오 테이프 대여체인점을 영업으로 하는 피고가 자신들의 고객카드를 선전하기 위하여 우디 알렌과 매우 닮은 사람을 광고에 등장시켜 알렌의 독특한 몸짓을 하게 하였는데, 법원은 이것이 알렌의 퍼블리시티권을 침해하였다고 판시했다.

어떤 배우가 특정한 역할이나 배역을 단골로 함으로써 그 배역하면 곧 그 배우를 연상하여 인식할 수 있는 정도가 되었다면 그 배역이나 역할을 모방하는 것이 퍼블리시티권의 침해가 될 수 있다. 비록 기각되기는 했지만 일련의 드라큘라 시리즈 영화에서 드라큘라백작의 역할을 맡은 바 있는 배우의 드라큘라연기를 모방한 것이 그 배우의 퍼블리시티권 침해가 아닌가 문제된 예가 있었다.

퍼블리시티권을 개념상 인정할 수 있다고 해도 그 범위는 이렇듯 광범위할 뿐 아니라 국내에서는 이론적 검토가 충분히 이루어지지도 않은 상태이다. 더구나 민사상 불법행위로 규율해야 할 사항을 창작자의 권리를 보호하는 저작권법 개정을 통해 입법하려는 것은 법체계를 무시하고 손 쉬운 길을 찾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공평의 원칙에 비추어 보면 누군가의 초상을 이유로 많은 돈을 벌었을 때는 그 돈을 나누어 가질 필요가 있기는 하다. 그러나, 돈이 된다고 하면 무엇이나 한 사람에게 독점적 권리를 인정해도 좋은가, 그것이 우리 모두의 문화와 산업의 발전을 위해 긍정적인 것인가에 대한 진지한 검토가 법제화에 앞서 이루어져야 할 것 같다.

우리가 길을 걷다보면 반드시 공로(公路)로만 걷는 것이 아니다. 길로 사용되고 있어서 공로로 착각하지만 사유지인 경우도 있고 꼭 도로가 아니더라도 남의 마당이나 주차장을 지나다닐 때도 많다. 그 때마다 남의 땅이라고 해서 돌아가야 한다면 삶이 얼마나 팍팍할 것인가. 다행히 우리 형법은 자기 땅이라고 해도 길로 사용하던 곳을 막으면 처벌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재산권이 아무리 중요한 권리라고 해도 한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수인해야 할 부담의 범위라는 것이 있음을 그 형법규정은 잘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영화 ‘친구’의 흥행이 ‘친구’의 실화에 힘입었다면 공평의 원칙상 흥행수입을 좀 나눠줄 수도 있겠으나, 이런 문제는 법이 아닌 친구간의 우정 정도로 해결할 수도 있는 사회를 기대한다면 나는 지금의 계속된 재판을 설명할 수 없는 비현실주의자가 될 뿐인가, 아니면 사람들이 누구나 꿈꾸는 평범한 소망을 간직한 보통사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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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약연구개발조약에 관하여

 음... 약간 구라가 섞여 있음을 먼저 고백한다.

시민과학에 기고한 글인데, 사실 써놓고 며칠 동안 묵히면서 망설이다 보냈다.

원고 달라고 하니 어쩔 수 없이...

여기 올리는 건? 포스팅하라니... 어쩔 수 없이..^^

 

 

지난 2001년, 2002년은 한국의 백혈병 환자들에게 잊지 못할 해가 될 것이다. 백혈병 환자들에게 기적의 신약인 글리벡이라는 의약품이 개발이 되었지만, 이를 복용하기 위해서는 한달에 수백만원이라는 높은 약가를 부담해야만 했다. 백혈병 환자들은 글리벡을 생산하고 있는 노바티스를 상대로 목숨을 건 투쟁을 벌여야만 했다. 결국 얼마간의 약가를 낮추고 정부로부터 보험적용을 받아내는 데 성공했지만 높은 약가의 근본적인 문제였던 특허제도를 변화시킬 수는 없었다. 의약품 접근권과 충돌하는 특허제도의 문제점을 제기하고 대안적인 의약품 연구개발 제도를 제안하고 있는 단체가 있다. 미국 시민단체인 '기술에대한소비자프로젝트'(CPTech)는 최근 특허제도의 대안으로서 의약연구개발조약(Medical R&D Treaty)(안)을 제안했다.


현재 특허권 옹호론의 핵심적 근거는 강력한 인센티브가 있어야만 기술발전을 꾀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특허권의 지나친 확대와 강화가 가져온 폐해는 극복되어야 한다는 데에는 이견이 있을 수 없다. 그렇다면 대안적인 인센티브 제도는 어떠해야 하는가? 이 연구개발조약안은 하나의 아이디어가 될 수 있다. 이 안은 특허권에 의한 독점적 연구개발 체제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적인 연구개발 보상제도이다.

이 조약안에 따르면 조약에 가입한 회원국은 매년 일정 규모 이상의 의약연구개발비를 지출해야 한다. 이렇게 출연된 재원으로 개발된 기술과 지식은 특허권과 저작권의 보호대상에서 제외된다. 이를 위해 각 국은 특허법을 개정해야 한다. 저작권의 경우 이용허락을 하도록 강제하는 방식을 통해 자유사용이 가능할 것이다. 따라서 누구나 그러한 지식과 기술을 이용하여 카피의약품을 만들어 낼 수 있게 된다. 시장에는 여러 카피의약품이 경쟁관계에 놓이고 시장가격은 하락할 것이며, 의약품 접근권이 확대될 것이다. 나아가, 보건문제 해결에는 중요하면서도 그 동안 투자는 소홀히 하였던 분야로의 투자를 촉진하기 위한 방법도 포함하고 있다.




첫째, 이 조약에 가입한 회원국들은 일정한 의약연구개발(Qualified Medical Research and Development; QMRD) 분야에 대한 재정지원을 해야 한다. 이 QMRD 영역이란 생의약 연구, 생의약 데이터베이스와 연구 툴의 개발, 의약품, 백신, 의료진단 도구의 개발, 이러한 제품의 의학적 평가, 민간요법의 보존과 확산 등을 말한다.

둘째, 위의 의무이행에 관한 최소한의 투자수준을 정하고 있다. 각 회원국마다 정해진 투자수준 이상으로 의약연구개발 투자를 해야 한다. 이 최저투자수준을 정하는 방법은 두 가지가 현재 제안되어 있는 상태인데, 그 중 하나는 세계은행이 소득에 따라 나눈 국가군별로 정하는 방법이다. 고소득국가는 GDP의 0.15%, 중상소득 국가는 0.1%, 중저소득 국가는 0.05%, 저소득 국가는 0%이다. 최저투자수준을 정하는 나머지 한 방법은 일인당 국민소득에 따라 정하는 방법인데, 1인당 국민소득이 300에서 999달러까지는 GDP의 0.01%, 1000에서 4,999달러까지는 GDP의 0.05%, 5,000에서 9,999달러까지는 0.1%, 10,000 달러에서 19,999달러까지는 0.15%, 20,000달러 이상이면 GDP의 0.2%로 한다. 이 수치는 의약품 개발에 소요된 비용통계를 기초로 한 것이다. 참고로 세계은행이 2000년에 발표한 통계자료에 의하면 국민소득 2만달러이상인 국가에서 의약품 소비율은 국민소득의 1.16%, 1만달러이상은 1.24%, 5천에서 9천달러인 경우 1.51%, 1천에서 5천달러까지는 1.37%이었다. 따라서 이 조약안에서 말하는 R&D투자비용은 국민소득이 1만달러이상인 국가의 경우 현재 의약품 지출액의 10%정도에 해당하는 규모임을 알 수 있다. 미국의 경우 1년에 600억 달러가 된다고 한다.

셋째, 조약안은 우선적 의약연구 대상(Priority Medical Research)을 규정한다. 나아가 그 중에서도 우선적인 연구개발 목표를 매 2년마다 정하여 추진하도록 한다. 우선적인 의약연구 영역은 (가) 백신 개발, (나) 연구개발이 소홀한 질병 분야, (다) 전지구적인 전염병, (라) 데이터베이스, 연구 툴, 기타 공공재, (마) 보건제도 및 적합한 기술, (바) 민간요법의 보존 및 확산, (사) 기타 적절한 우선적 연구 등이다. 우선적인 의약연구 대상 선정 등은 이 조약에 따라 설치될 의약혁신이사회(Council on Medical Innovation; CMI)가 우선의약연구개발위원회(Committee on Priority Medical Research and Development)를 구성하여 이 위원회로 하여금 하게 한다.

또한 이 우선연구 대상에는 일정 액수 이상의 지원금(최저지원금)을 규정하고 있는데, 그 산정 방식은 앞서 본 최저투자수준과 유사하다. 의약품혁신이사회는 2년에 한번씩 최소지원금 수준을 검토하여 변경할 수 있다.

넷째, 투자 의무 이행방법은 각 회원국의 재량에 맡긴다. 조약안에서 제시하고 있는 적합한 투자 방법에는 ①공공영역의 재정지원, ②세제혜택, ③인도적 기부, ④영리, 비영리단체에 의한 출연, ⑤투자 동기를 불러일으킬 만큼의 관련 의약품의 국가 구매, ⑥혁신 포상이나 기타 혁신 인센티브의 제공 등을 규정하고 있다.

다섯째, 우선연구대상(priority research), 공유(公有)적 연구(open research) 등 조약에서 정한 일정한 분야에 투자한 국가는 그 투자액의 일정 비율에 해당하는 특별신용(special credit)을 취득할 수 있으며, 이 신용은 각 회원국이 부담하는 최저투자수준에 충당할 수 있고(즉 특별신용에 상응하는 금액만큼의 투자의무를 면한다는 뜻), 국가간에 거래도 할 수 있다. 예를 들면, A 국가가 우선연구대상인 에이즈 백신 개발에 1백만달러를 지출한 경우, A국은 그 50% 즉 50만달러의 특별 신용을 획득하게 된다. 그런데 B라는 국가가 자국의 최저투자수준에 50만달러정도 미달하게 된 경우 A국가의 신용을 50만달러를 주고 구입하여 조약에 따른 의무이행에 갈음할 수 있게 된다. 다만, 조약은 특별신용을 구입하여 충당할 수 있는 최저투자수준의 일정 비율 (예컨대 1/3)을 정한다. 제임스 러브는 이러한 방식은 이산화탄소 방출에 관한 교토의정서에서 아이디어를 따왔다고 설명한다. 그는 이런 방식이 각 국가로 하여금 지금까지는 제대로 투자되지 않았던 영역에 투자를 하게 하는 인센티브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여섯째, 각 회원국은 이 조약에 따른 연구성과에 대해서는 특허권을 부여하지 않도록 특허법을 개정해야 한다. 이 조약상 의무준수를 위해 각 국가가 공적 자금을 출연하여 얻은 성과를 누군가 가져다가 약간만 변형하여 특허권을 취득하는 사태를 막을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컴퓨터프로그램에 관한 그누라이선스와 같이 변형물에 대해서도 독점권을 부정하는 것이다. 또한 연구목적을 위한 사용을 특허권의 예외로 인정하여 허용하도록 특허법을 개정하는 것도 회원국의 의무가 된다.


이 조약안에 대한 반응은 극명하게 갈리고 있다. 미국의 거대 제약회사들은 이 조약의 문제점을 파헤쳐 내기 위해 안달이고 부시행정부는 부정적이다. 심지어 세계보건기구가 지난해 이 조약안에 대해 검토하는 회의를 가졌을 때 미 정부는 이 회의에 정부관계자가 참여하지 못하게 했을 뿐만 아니라 이 회의에 참석하는 경우 해고당할 것이라고 경고했다고 한다.


각 국 정부가 많은 공적 자금을 투자해서 그 성과를 아무나 자유롭게 쓰자고 한다면 각 회원국별로 의무 투자액도 서로 다른데, 각 국가들이 과연 이 조약에 동의하게 될까? 더구나 더 많은 의무를 부담하게 될 선진국들이, 제약자본의 지지 속에서 정권을 유지하고 있는 선진국 정부들이 움직이게 될 것인가?

제임스 러브는 우선 실현가능성에 대해 낙관적이다. 선진국의 경우 개도국이나 후진국보다 많은 투자를 해야 하지만, 지금까지 투자하지 않던 저개발국가의 투자를 끌어냄으로써 의약개발비의 공동부담을 이뤄낼 수 있기 때문에 결국 전세계적인 투자규모는 늘리면서 선진국은 현재 투자규모보다 더 적은 의무만 부담하게 된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이 조약이 체결되면 가장 이득을 볼 국가가 미국이라고 설명한다. 또한 미국의 경우 지나치게 높은 약가 때문에, 노동자들의 보험금을 지불하는 회사들의 부담이 큰 상태이기 때문에 제약회사를 제외한 다른 제조업체의 경우 이 조약에 대해 상당히 긍정적일 수 있다고 한다.


조약안에 의하면 이 조약에 의해 창설될 운영기구에서 각 국의 의무 이행 수준을 감시하고 평가하지만 각 회원국은 연구개발 정책에 대해 독자적으로 결정하며 돈을 중앙에서 모아 분산하는 일은 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각 국가가 이 조약에 동의하여 가입한다고 해도 그 의무를 강제할 수 있는 방법은 있을까? 조약이 체결된다고 해도 실효성이 없으면 그만이다. 세계보건기구 내에서 이 조약안을 검토한 전문가들도 이 문제를 우려한다. 이 문제와 관련, 제임스 러브와 함께 이 조약안을 초안한 팀 허버드(Tim Hubbard) 박사는 의무가 엄격하게 준수되지 못할 위험이 있음을 시인한다. 그러나 그는 보건분야의 연구개발 지원의 중요성에 대한 전세계적 인식이 존재하고 국제적으로 약속한 사항을 이행하라는 국내적 압력이 존재한다는 점에 기대를 걸고 있다고 한다. 일례로 휴먼게놈프로젝트를 든다. 각 국 정부는 휴먼게놈프로젝트 뿐만 아니라 다른 국제적으로 공유되는 보건 연구 프로젝트에 투자하는 것으로 비춰지고자 하는 바램이 있다는 것이다. 또한 의무이행에 관한 평가의 공개와 각 국의 투자규모에 대한 상대 평가를 공표함으로써 상당히 여론에 영향을 끼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트립스협정 등 기존 조약에 위배되는 문제는 없을 것인가? 위배된다면 기존 조약과의 관계는 어떻게 가져갈 것인가? 이 조약에 따라 연구된 결과에 대해서는 트립스협정의 위반을 문제삼지 않도록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나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조약을 체결한 국가들 간에 문제삼을 수 없을 뿐이라는 것이며 조약 비체결국가와의 사이에서는 여전히 트립스협정 위반의 문제가 남는다. 이는 장기적으로 이 조약에 가입한 국가가 늘어남으로써 해결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제임스 러브는 낙관한다. 그러나, 여전히 여러 가지 국제법상 문제가 복잡하게 제기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 조약안은 실현가능성, 실현된다고 해도 체결 후의 각 국의 이행가능성 등 아직 해명되고 보완되어야 할 문제들이 많아 보인다. 그러나 이 조약안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많다. 특허 이외의 새로운 연구개발 인센티브 제도에 대한 상상력이 그 첫 번째이다. 또한 트립스협정에 의해 점차 강화되는 의약품 기술의 독점과 이로 인한 의약품 접근권의 제약은 결국 국제적인 수준에서의 투쟁에 의해서만 궁극적으로 극복이 가능하다고 볼 때 이 조약안은 국제적 수준에서 그 최전방의 전선으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그 투쟁의 과정에서 보다 세련된 안을 마련할 수 있을 지 모른다.

이 조약의 제안자들은 이 조약이 체결되어 운영기구가 설립될 때까지는 세계보건기구가 이 조약체결의 사무국 역할을 맡아야 한다고 보고 있다. 따라서 세계보건기구는 전문가들을 중심으로 이 조약안에 관한 논의를 하고 있는 중이다. 세계보건기구가 어떤 결론을 낼 것인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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