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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표의 시간을 찾아서..

늦게 집에 들어가게 되면 씻고 자기 바쁜데, 요즘 가끔 소리바다를 헤매게 된다.

 

며칠 일만 하다보면 심한 갈증(?)을 느끼는데, 그럴 땐 영화를 보거나 음악을 듣거나 하다못해 TV드라마라도 봐줘야 한다.  영화는 시간내서 가야 하니 귀찮아서 잘 안 보게 되고 음악을 듣는 것이 가장 간편한 해결책이다.

 

얼마전 김진표의 시간을 찾아서란 노래를 듣게 됐다. 본래 이적의 노래를 찾다가 우연찮게 듣게 되었는데, 그 가사가 참 재미있다.

 

" 시간은 도대체 어디에 살고 있을까.

 

  넌 매일아침 달리기만 하잖아.

 

  혹시 나 몰래 햇볕드는 창가에 쉬고 있지 않을까~"

 

지금도 시간은 달리고 있다.

내가 쉴 때도 일을 생각하며 자주 불안해 지는 이유는 아마 시간이 달리고 있었기 때문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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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같이 우울한 날엔 뭘해야 하지..

며칠전 땜질한 아래쪽 어금니가 욱신 거린다.

한번 땜질 했다가 계속 통증이 있어서 벗겨내고 며칠 간 신경안정제를 넣어두었었다.

 

의사선생님왈, "신경안정제를 넣어 둔 상태에서도 통증이 있으면 신경치료를 하고 이를 씌워야 한다".  위생사언니가 덧붙인 말, "신경치료는 7회 정도 2-3일 간격으로 해야 하고 신경치료 한 후에는 이를 절반정도 깍아내고, 가운데 기둥을 박은 후 이를 폭 씌운다"

 

적어도 9번 이상 병원을 들락거릴 생각과, 생니를 반쯤 깍아내야 내고 더구나 기둥까지 박으면 얼마나 아플까 하는 생각에 난 질려버렸다.  그 전에도 이미 거의 석달동안 일주일에 두세번씩 치과를 들락거렸기 때문에 더 이상은 다니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좀 아팠는데도, 거의 안 아팠던 척하고 신경안정제 넣은지 2주만에 다시 땜질하고 끝냈다.

 

그랬더니 오늘 유난히 그 어금니가 욱신 거린다.  마치 우울한 하루의 대미를 장식할 양으로... 후후..

 

한동안 가물다 어제 비가 내리더니, 오랜만에 비가 내려서 그런지 하루 종일 우울한 기분이었다. 오늘도 여전히 흐린 날씨여서 그런지 그 우울한 기분이 오늘까지 연장.

 

즐거운 일이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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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허권 보호가 성장과 발전의 필수?

왜 특허권을 보호해야 하나?

 

얼마전 국회에서 특허법개정을 위한 공청회에 참석했을 때 특허청쪽 발표자로 나왔던 한 사무관은 "우리나라도 이제 특허권자의 이익과 국가이익이 같은 방향인 시대가 도래하였다고 할 수 있으며 앞으로 이러한 경향은 더욱 커질 것"이라고 힘주어 이야기 했다. "지금은 지식기반 경제시대로서 지식과 정보에 앞서지 않는다면 살아남기 어려운 시대가 되었다"고도 이야기 했다.

 

사실 지식과 정보의 중요성을 주의적으로 강조한 정도의 뒷표현은 그냥 받아들일 수 있는 수준이라고 생각했다. 기가 막힌 것은 국익과 특허권자의 이익이 일치한다고 본 점이었다. 우리나라 특허청에 등록된 쓸만한 특허는 아마 대부분 외국 다국적 기업의 것일텐데.. 특허권자의 이익과 국익이 일치한다? 국가의 이익이 자본의 이익과 일치한다고 하면 큰 맥락에서 맞다고도 할 수 있으려나? 이렇게 되면 물론 국가의 이익이 민중의 이익과는 전혀 다른 것이 되겠지.

이런 도식을 계속 밀고 나가면 국가는 민중의 적?!^^

 

오늘 재미있는 기사를 읽었는데, Asia Times에 특허권 보호가 산업발전에 필요한 것인가에 의문을 제기하는 내용이 들어있었다.  재미있는 내용이라서 기록을 남겨두고 싶었다.

http://www.atimes.com/atimes/Global_Economy/FJ15Dj01.html



 

특허권이 보호되어야 한다는 사람들은 이것이 성장과 투자에 있어서 필수적이기 때문이라고 대답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선진국에서는 그 국가들이 산업화 및 고성장단계에 있을 때는 특허권 보호를 도외시했다.  발전해 놓고 보니까, 이제막 산업화과정에 있는 국가들에 의한 지식 정보의 활용을 차단하기 위해서 지적재산권을 뒤늦게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정말 기술개발과 이용을 확대하기 위해 진정 특허권의 강력한 보호는 필요한 것인가 의문이 제기된다. 그런 보호없이도 이미 기술개발과 혁신이 이루어져 발전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지적재산권은 후발주자들의 혁신을 억제하기 위한 수단이라는 성격이 더 강한 것은 아닌가?

 

"Reclaiming Development" (Ha-Joon Chang and Ilene Grabel)라는 책에 따르면, 지적재산권이 기술이전에 기여했거나, 외국인투자의 촉진에 기여했다는 증거는 없다고 한다. 실제로 스위스의 경험은 그 반대라고 한다.  특허법이 없기 때문에 이 나라가 외국 투자자들에게 매력적이라는 것이다.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등이 세계지적재산권기구에 제출한 제안서 (Development Proposal)에서는 발전정도에 상관없이 일률적인 높은 수준의 지적재산권보호는 불평등하다고 주장했다. 기술 흡수력이 있는 개도국마저도 지적재산권으로 인해, 외국의 투자와 라이센싱을 통해 기술을 도입할 수 없게 된다고 한다.

 

{여기서 잠시, 지난 10월 4일 세계지적재산권기구(WIPO)총회는 브라질, 아르헨티나 등이 제출한 소위 WIPO의 “발전제안(the Development Proposal)”을 채택했다.  이 제안은 WIPO가 지재권전반에 대한 국제조약 등의 성안시에 개발도상국의 이익과 필요에 대하여 보다 관심을 갖고 접근하기를 요구하는 내용이다.  제안문안에서 개발도상국들은 WIPO가 UN의 전문기구로서 지재권의 보호라는 목표에만 치중할 것이 아니라 UN의 전반적인 발전목표에 부합하는 역할을 해 줄 것을 요구했고,  이 제안에 대해 오백여 과학자, 경제학자, 법률가 그리고 소비자운동가 등이 지지성명을 낸 적이 있다.}

 

우리나라는 지적재산권 보호를 강화하는 것이 국익에 도움이 되고, 그 근거로 지적재산권 보호를 강화해야 기술개발이 촉진된다는 주장을 하곤 한다. 그러나, 지적재산권을 강화함으로써 기술혁신을 가져올 수 있다기 보다는 우리나라 자본들과 경쟁관계에 있는 개도국 자본이 성장하지 못하도록 막기 위해서 지적재산권이 강화될 필요가 있다고 말하는 것이 더욱 솔직하지 않을까?

물론 나는 그런 관점에서조차 우리에게 지적재산권을 마구 강화하기만 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고 보지는 않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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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프트웨어를 판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어제 강남훈 교수님과 채만수 선생님 간의 좌담을 지켜볼 기회가 있었는데,

강남훈 교수님 견해를 내 이해수준에서 정리하면, 버전이 상품이며, 버전의 생산에는 새로운 노동력의 투입이 요구되므로,  따라서 정보상품은 가치를 지니고, 결국 정보상품화에 의해 채만수선생님께서 지적하듯 자본주의 모순이 극대화되어 막바지로 가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채만수 선생님에 따르면, 정보상품은 각 카피를 의미한다. MS 오피스라면 그 오피스한 한 카피카피가 정보 상품으로 봐야 하고, 그 상품의 생산은 카피 이외의 노동력 투입이 없어, 정보상품은 가치가 없다. 다만 독점 기업의 이윤은 가치 없는 상품을 팔아서 다른 분야로부터 가치를 이전받는 것이고, 따라서 생산력과 생산관계간의 모순은 점차 심화되어 자본주의 모순은 더욱 격화되고 자본주의는 그 막바지에 도달한 것이다.

 

채만수 선생님은, 정보상품이 일반 상품과의 차이는 일반상품은 자본주의적 소유제도 이전에도 존재할 수 있으나 정보상품은 지적재산권제도 이전에는 존재할 수 없는 것인데, 지적재산권제도라는 제도를 통해 비로소 상품이 된다는 점에 특징이 있다고 보시는 듯했다.

 

내가 보기에는 채만수선생님은 정보상품을 카피로 규정하고, 그 카피는 소프트웨어의 독점배타적 권리를 인정하는 제도하에서만 상품화될 수 있고, 지적재산권은 정보상품의 처분권을 제약한다고 보고 계신 듯하다. 하지만 그 카피의 본질이란 무엇일까. 나는 의문이 든다.

 

어제 내가 계속 의문스러운 점이 있었는데, 정보상품이 카피인지, 버전인지는 떠나, 실제로 시장에서 거래되는 대상은 무엇인가 라는 점이다. 만약 실제로 거래되는 대상을 명확하게 하여 그것을 상품이라고 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참고로 자본론에서는 상품을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우리의 외부에 있는 하나의 대상이며, 그 속성들에 의해 인간의 온갖 욕망을 충족시켜주는 물건이다. 그 욕망의 성질이 어떠한가, 그것이 예를 들어 胃로부터 생겨나든가 또는 공상으로부터 생겨나는가는 전해 문제가 되지 않는다"

 

맑스는 얼마나 엄밀하게 규정한 것일까?

나는 이 문제를 법학적인 관점에서 설명해 보고 싶다.

 

일반적인 상품거래에서는 우리가 물건을 사고 판다고 관념하지만, 법적인 의미에서 더 엄밀하게 말하자면, 그 물건의 소유권을 이전하는 행위이다. 그래서, 맑스는 상품을 "물건"이라고 했지만, 법적으로 보면 거래의 대상은 소유권이고, 따라서, 소유권 아닌 다른 권리, 예컨대, 임차권 등도 거래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본다. 임차권이 가치로서의 상품인가와는 별개로.

일반적 상품과 정보상품 (MS 도스, 아래아한글, 포토샵, 페인트샵 등의 프로그램이나 OS)의 차이는 무엇인가?

 

우선 일반적 상품은 물리적 관리나 지배가 가능하지만, 소프트웨어는 물리적 관리나 지배가 가능하지 않다.  즉, 일반적 상품은 물리적으로 지배가능하기 때문에 무형적이건 유형적이건 법률상 물건이지만, 소프트웨어는 물건이 아니다.  종래의 사적 소유권의 대상은 물건이며, 물건이 아닌 것은 소유권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  소유권은 어떤 '물건'을 배타적으로 사용, 수익, 처분할 권리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는 굳이 맑스주의경제학인가, 부르주아 경제학인가의 차이 이전의 문제라고 본다. 두 경제학에서 공히 자본주의적 '소유'의 관념을 이렇게 정의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소프트웨어를 비롯한 정보나 지식은 물건이 아니므로, 본질적으로 누군가 '소유' 할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그 자체로 상품이 될 수는 없다. 지적재산권제도를 고안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을 터이다. 그럼 지적재산권은 무엇인가? 지적재산권은 정보나 지식을 독점, 배타적으로 '이용'할 권리이다.  마치 뉴튼의 만유인력의 법칙이나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원리를 누군가가 '소유'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소프트웨어를 비롯한 정보나 지식은 본질적으로 누군가 '소유' 할 수 없는 것이다.  소프트웨어 저작권이라는 것도, 소프트웨어를 이용한 권리가 저작권자에게 독점배타적으로 귀속된다는 것, 그래서 그 소프트웨어는 저작권자만이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지, 소프트웨어를 저작권자가 '소유'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여기서 '이용'은 다시 복제하거나 배포하는 행위를 의미한다.

 

그렇다면, MS가 오피스의 카피를 판매하는 행위는 무엇인가? 오피스는 물건이 아니므로 본질적으로 '소유'의 대상이 아니며, 그 카피 또한 마찬가지이다. 그 카피를 하나의 상품으로 볼 것인가?

나는 카피는 물건이 아니기 때문에 카피를 상품이라고 보는 것은 엄밀하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만약 CD에 담긴 오피스 한 카피를 사게 되면, CD에 대한 소유권은 CD구입자에게 귀속되지만, CD에 담긴 오피스에 대한 소유권까지 그에게 가는 것은 아니다. 이는 자본가가 소유권을 넘길 의사가 없기 때문이 아니라, 오피스 프로그램자체가 본질적으로 소유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그는 CD라는 물건과 CD에 담긴 오피스 프로그램의 일정한 이용권을 취득하게 되는 것이다.

 

맑스가 상품을 규정하면서 '물건'이라는 말을 쓴 것이 반드시 물리적으로 관리가능한 대상이라는 의미로 쓴 것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나는 소유권이나 그 밖에 제도가 만들어낸 권리아아닌 이상은 상품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현실에서는 카피를 거래의 단위로 삼고 있다.  그렇다면 거래되는 것은 지식인가 지식을 이용할 권리인가? 나는 오피스 한 카피를 산다는 것은 그 카피에 대한 소유권을 취득하는 행위가 아니라, 그 카피를 이용할 권리를 취득하는 행위라고 본다. 그렇다면 거래의 대상이 되는 것은 '오피스를 제한된 목적에서 이용할 권리'가 거래의 대상이 된다.  마치 강남훈 선생님께서 다리를 짓고, 다리 통행료를 받는 것에 비유한 것과 일치한다.  결국 거래되는 것은 오피스 2000이라는 버전의 사용권이며, 오피스 자체가 아니다.

 

채만수선생님께서는 지적재산권이 소비자가 구입한 오피스 카피의 처분권을 제한한다고 말씀하셨는데, 오피스가 소유의 대상이 될 수 없는한, 지적재산권에 의해 제한되는 것은 오피스를 이용할 권리 범위이다. 결론적으로 소프트웨어가 지적재산권에 의해 비로소 상품화되었다고 하는 점에서 일반상품과 다르다는 판단은 타당하지만, 그것은 소프트웨어의 처분권이 지적재산권에 의해 제한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소프트웨어를 독점적으로 이용할 권리가' 지적재산권에 의해 창조되었기 때문에, 그 지분적 일부인 카피의 상품화가 가능하다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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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도서관대회에 다녀와서

어제 부산 광안리에 갔었다.

광안대교가 그 골격에 붙어있는 조명으로 빛나던 해변을 옆에 끼고

회를 안주로 소주를 기울였다.

 

사실은 광안리에 가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고,

전국도서관대회가 부산 광안리에서 멀지 않은  BEXCO에서 있었고,

그 후 저녁먹으러 광안리까지 갔던 거였다.

 

전국도서관대회?

 

난 처음 이 표제를 접하고 전국에 있는 도서관들이 육중한 몸체를 이끌고 부산에 모이나?

그런 상상을 했다. 마치 서울이고 대구고 곳곳에 세워진 도서관 건물들이 어기적어기적 모여드는 모습이 번뜩 떠올랐었다.

 

실제 가보니, 도서관이 아니라 도서관에서 일하는 사람들, 도서관을 고민하는 사람들의

대규모 워크샵 같은 행사였다. 주제별로 세미나를 하고 이런 저런 전시도 하고.

 

내가 있는 정보공유연대는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 (KISTI)와 공동으로 학술분야에서의

오픈액세스를 주세로 한 워크샵을 개최했다. 거기서 정보공유라이선스를 주로 소개하고 다른 영역보다도 학술분야에서 우선 정보공유라이선스 보급을 통해 지식과 정보의 편리한 이용과 확대재생산을 도모할 수 있음을 강조하는 자리였다.

 

학술분야에서 저작권으로 인해 논문의 활용에 많은 장애가 있다고 한다. 특히 미국의 경우 과학자집단을 중심으로 오픈액세스에 대한 관심이 높다.  그럴만도 한데, 학술논문의 출판 과정에서 저작권이 출판자본에게 넘어가서 논문작성자 조차도 자기가 쓴 글을 자기 홈페이지에 업로드 조차 할 수 없는 어처구니 없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연구자들 스스로 누구나 접근하여 무료로 검색할 수 있는 논문저장소를 만들고, 오픈엑세스 라이선스를 채택하여 논문을 발표하는 등의 자발적 운동이 전개되고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저작권에 대한 관념이 부족해서, 학술논문에 대한 저작권의 권리관계가 분명하게 처리되고 있지 못한 상황이다. 또한 출판자본이 학술지 출판에 개입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학회가 학술지를 출판하며 저작권도 학회가 가지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문제는 학회가 유료  DB에 논문을 제공하면서 동시에 저작권을 넘기는 경우이다. 이런 경우 현행 저작권법하에서는 돈을 내지 않고는 논문작성자마저도 자기 논문을 검색할 수 없고 원칙적으로 자기 홈페이지에 업로드할 수 없다.

 

학술논문은 그 자체로 상업적 이윤을 목적으로 작성되는 저작물이 아니라 학술연구자 자신의 연구 성과를 널리 알리고 많이 인용됨으로써 명예를 얻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따라서 학술저작물은 대개 널리 이용될 것을 목적으로 작성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본래 저작자의 의도에 반하여 그 이용이 저작권에 의해 저해되는 상황이 벌어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우리나라에서도 정보공유라이선스가 학술계에서 더 많이 알려지고 채택되어 학술논문이 널리 읽힐 수 있기를 바란다.

 

 

 

                      

이 글은 정보공유라이선스: 영리,개작허용이 적용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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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재산권 침해죄 친고죄 조항 폐지마라2

어제 급히 약속시간에 맞춰 나가느라 얼렁뚱땅 마무리를 지어버렸는데..

 

친고죄 폐지할 것인가에서 판단의 전제는 고소가 없는 경우에 처벌할 필요가 있을 것인가가 이다.

 

지금의 지적재산권 보호 수준이 부족해서 그런 경우에도 처벌함으로써 국민에게 겁을 주어 불법복제를 아예 엄두도 내지 못하게 하겠다는 것이 폐지하려는 쪽 의도다.  음반사 쪽에서는 친고죄 조항 폐지 않고는 못살겠다고 항변하고 다니는 것 같다.  조금 반대의 취지의 말이라도 할라치면 '뭐 저런게 있냐"는 투로 대응한다고 들었다. 그들은  소리바다를 통해 엠피쓰리화일이 마구 복제되고 전송되는 현실에 울화가 치밀어 오르는 것이다. '남의 것을 훔쳐가고도 저리 뻔뻔할 수 있다니..' 아마도 이렇게 생각하겠지..

 

그렇지만 먼저 토지를 예로 들어 기했던 것처럼, 친고죄로 규정한 것은 나름대로 이유가 있는 것이고 권리자에게 아무런 형사소추권한을 주지 않을 때 어처구니 없는 불합리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음반사든 어디든 누구나 한번쯤 고민해 보아야 할 일이다.  지적재산권의 보호를 무조건 철폐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지금의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쌀이나 산소나 물까지 팔고사는 세상에서, 유독 지적 산물과 정보재만을 창작자나 개발자의 의사를 무시하고 마구 써버리자고 이야기하는 것도 넌센스이기는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다만. 무조건 지적재산권을 침해하면 감옥으로 보내는 것과 지적재산권을 무시하는 것 사이에 많은 옵션이 있을 수 있고, 그 옵션들 가운데는 더 합리적인 것이 있을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그래서 그 옵션들 사이에서 더 합리적이고 인간의 삶을 더 풍요롭고 윤택하게 할만한 것을 찾아내야 하는데, 이런 과정은 지금 보다 더 많은 관심과 노력을 필요로 한다.

 

고소가 없는 경우에 일률적으로 처벌할 것인가, 그 처벌이 필요한가는 그 판단에 앞서 몇가지 이익형량을 필요로 한다. 

 

첫번째는 그렇게 하면 권리자에게 어떠한 이익이 있는가 이다. 아무래도 덮어두고 하는 복제에 심리적 위축을 느낄 것이다. 이것이 불법복제율을 잠시나마 떨어뜨릴 수는 있을 것 같다.

 

두번째 고려할 요소는 처벌함으로써 잃게 될 이익이다. 이는 저작물 등을 사용하는 제3자가 좀더 표현의 자유나 영업의 자유가 위축될 수밖에 없다는 것, 그래서 오히려 문화나 산업발전을 저해할 수도 있다는 점이 그것이다. 이러한 자유는 저작권 등의 권리범위가 명확하지 않은 경우에는 권리범위 밖에서까지 크게 제한당할 수 있다는 점에서 심각할 수 있다.

 

세번째는 권리자가 얻게 될 이익이 권리자 이외의 자가 자신의 자유를 위축당하는 불이익보다 커야만 국가가 처벌하는 것이 정당화될 수 있다. 권리자는 고소만 하면 현행법하에서도 형사처벌을 요구할 수 있는데, 그 고소절차를 간소화하는 대가로 국민들은 권리범위 이상으로 자신의 자유를 제한당한다는 것은 나로서는 정당치 않다는 생각이다.

 

네번째는, 그 이익이 크더라도 그와 같은 효과를 거둘, 친고죄 폐지 이외의 다른 대안은 없는가 이다. 가령 지적재산권을 보호하기 위해 형사처벌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침해를 줄일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는 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것이다. 소프트웨어의 구입 가격을 낮추거나 구입 이외의 사용가능한 서비스가 다양화된다거나 등등..

소프트웨어 값이 지금처럼 비싸다면 사람들은 처벌의 가능성을 인식하면서도 그 위험을 무릅쓰고 복제해서 쓰려고 할 것이다. 이는 너무나 명백하게 상상할 수 있는 것인데, 이를 고려하면서도 처벌을 택한다면 이는 국민들을 온통 범죄인으로 몰아가겠다는 것이나 마찬가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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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재산권 침해죄 친고죄 조항 폐지마라

특허법, 의장법, 온라인디지털컨텐츠산업발전법, 컴퓨터프로그램보호법, 저작권법.

다섯개 법에는 권리침해죄를 친고죄로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열린우리당 정성호 의원등이 친고죄 규정을 삭제하고 비친고죄화하는 개정안을 발의하였다.  11월쯤 상정될 것 같다.

여러 가지로 답답한 생각이 든다.

 

 

친고죄로 규정된 것은 몇가지 이유가 있다.

사적 이익의 보호를 주된 법익으로 하기 때문에 형사소추에 있어서도 권리자에게 일정한

권리를 주고 있는 것이다.

또한 지적재산권침해죄는 재산죄이지만, 절도나 사기와 같은 형법상 일반 재산범죄와는 다른 특성이 있다.  절도나 사기는 전통적으로 반사회적이거나 반윤리적인 범죄, 즉 자연범이라고 할 수 있으나, 지적재산권침해죄는 산업발전이나 문화발전이라는 국가정책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법 위반행위를 처벌하는 이른바 법정범이다.

우리들 대부분은 남의 물건을 직접 훔치는 행위에 대해서는 큰 죄의식을 느끼지만, 컴퓨터소프트웨어를 복제하여 사용할 때는 별다른 죄의식을 느끼지 않는다. 만약 소규모 소프트웨어업체가 적당한 가격에 양질의 소프트웨어를 판매하는 경우에는 다소 미안한 느낌이 있지만, 반윤리적이라고까지 느끼지는 않는다. 불법복제 단속을 강조하는 쪽에서는 같은 도둑질인데 왜 달리보냐고 주장하겠지만, 우리의 역사적, 문화적 전통속에서 아직까지 지적재산권에 대한 침해행위를 반윤리적이고 반사회적인 행위로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것은 나의 주장이 아니라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현실이다.  따라서, 친고죄 규정을 버리고 비친고죄로 하여 이를 형사처벌 위주의 처벌 일변도로 지적정보산업을 살려보겠다는 것은 현재로서는 넌센스라고 할 수밖에 없다. 일률적으로 형사처벌하겠다는 것은 국민을 때려 가르치겠다는 것으로밖에는 들리지 않는다.

또한가지 생각이 드는 것은 소프트웨어 카피 하나 하나는 절도죄의 객체가 되는 물건하고는 차원이 다르다는 것이다.  절도죄의 객체인 특정한 물건은 훔쳐가면 주인에게 남는 것은 아무것도 없지만, 소프트웨어 한 카피를 복제한다고 해도 저작권자에게는 여전히 소프트웨어를 스스로 처분하고 사용할 수 있는 권리가 남아있다.  이는 지적재산권을 특정한 동산인 물건에 대한 소유권과 같이 볼 수 없음을 의미한다.  소프트웨어의 복제는 물건의 도둑질이라기 보다는 일정한 토지에 대한 무단 점유사용과 같이 보아야 한다.  토지소유권을 생각해 보자.  내 땅에 누군가 들어와서 놀고 있다. 아니면 채소를 가꿔 심어 먹고 있다.  난 그냥 내버려 둔다. 지금 내가 그 땅을 가지고 돈 벌 생각이 없어서 일 수도 있고, 내 땅이 누군가에 의해 유용하게 활용되고 있다면 그것 자체가 뿌듯하여서 그렇수도 있고.

그런데, 갑자기 경찰서에서 경찰이 나와서 내 땅에서 놀던 사람을 잡아간다. 왜냐면 내 토지소유권을 침해했다는 이유로 말이다. 난 언제고 내가 그 땅을 전부 사용할 양이면, 그들보고 그만 놀고 나가라고 할 참이었는데, 아직은 그럴 생각이 없는데...내가 경찰서 가서 그들이 내 땅에서 놀아도 난 괜찮다고 말해도 경찰은 사건을 검사에게 송치하고 검사는 공소제기하고 판사는 유죄를 때린다. 헉.

 

남의 땅을 사용하는 것이 주거침입에 이른 정도가 아니라면, 또 타인의 토지 경계를 인식불가능하게 담장이나 철조망 등을 파괴한 것이 아니라면 형법에서도 남의 땅을 점유 사용했다는 것만으로 처벌되지 않는다. 다만 소유자는 민법상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을 뿐.

심지어 우리나라 대법원 판례는 남의 땅을 무단 점유하여 채소를 심으면 채소는 심은 사람의 소유가 된다고 판시하고 있는데, 이는 일반적으로 점유사용할 권리없이 그 토지에 무엇인가를 부합시킨 경우 (즉, 나무를 심은 경우, 건물 아닌 공작물을 설치한 경우) 그 토지 소유자의 소유권에 자동귀속된다는 이론과 배치됨에도, 오랫동안 대법원의 입장이 되어 왔다.  채소는 단기간에 재배가 완료되므로, 토지를 방치한 소유자보다는 토지를 활용해서 농사지은 이를 보호해 주려는 배려가 깔려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절대적인 토지 소유권도 이런식으로 제한하면서, 필요한 사람의 토지 사용을 정당화해주는 전통이 있다.

지적재산권에 대한 관념도 불분명한 사회에서 친고죄를 비친고죄로 바꿔 권리자의 의사에 불구하고 무조건 처벌하겠다는 것은 아무래도 한심스러운 일이다. 전통이나 문화, 인권 따위는 전혀 고려하지 않는 무뇌아적 상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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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만들다~

하하.. 나도 문명인이 된 기분이다. 오늘 드뎌 블로그를 만들었다.

 

한동안 세상사에 무심하게 살다보니, 그 기간이 3년 정도의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인데도, 남들이 가지고 누리는 몇가지 것들에 대해 낯설음을 심하게 느낄 때가 있다. 

 

그 중 하나가 칼라에 오케스트라같은 화음을 내는 카메라달린 핸드폰.

내가 쓰는 핸드폰은 플립형 모노크롬에 삐리리하는 기계음이 약간 신경질적으로 울리는 6년쯤 된 모델이다. 친구들은 내 핸드폰을 무척 신기하게 쳐다본다.  그 녀석들 중에 몇몇은 분명 내가 이 날씬한 화이트 플립형 폰을 샀을 때 한주먹으로 쥐기 힘든 까만 무기(Weapon)대용 핸드폰을 갖고 있었을텐데....

사진을 찍어대는 친구들을 보면 어린애처럼 카메라폰을 갖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로 하지만

지금쓰는 것을 버리는데 이상한 죄책감이 든다.  환경을 생각하는 천사가 가끔 한쪽 머리위에서 깜빡깜빡..  또 큰 불편함도 없다. 고장날 때까지 그냥 쓸 생각이다. 친구들은 바꾸라고들 하지만...

 

메신저는 3년전쯤부터 무척 대중적이 된 걸로 기억한다. 난 최신 기술이나 뭐 이런데 관심이 없고, 일하다보면 메신저 갖고 놀 짬도 없다는 생각에 써 본 일이 없었는데, 내가 한 3년쯤 잠적했던 사이 사람들에게 메신저는 일상이 되어 버렸다. 오히려 한물 간 느낌까지.. 술자리에 나갔을 때 근무시간에 서로 다른 직장에 다니는 친구들끼리 메신저로 주고 받은 이야기를 꺼냈을 때 무척 놀랍고 한편으로는 소외감마저 들었다. 그래도 난 메신저를 안쓴다. 왜냐면 알기가 귀찮아서..또 큰 불편도 없고.

 

또하나 낯선 것은 블로그였다. 블로그가 뭔지 몰랐다.  하는 일이 생기다보니, 블로그는 모르면 불편한 부분이 되었다.  업무상 통화를 하는데, 상대방이 블로그 이야기를 꺼내는 거다. 헥헥...난 모르는데. 모르는 말이 나오자 난 당황했고, 그 전후로 그것과 관련된 이야기는 전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참 답답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만들었다.

본래 일과 관련없으면 굳이 하려고 하지 않는 게으름과 안달복달하며 여유없게 사는  내게 칼라 핸드폰과 메신저는 그렇다쳐도 블로그는 외면하기 어렵게 되어버렸다. 핸드폰과 메신저는 게으름쪽에 무게가 실리는데, 블로그는 안달복달쪽에 무게가 실리기 때문에...쩝.

그런데 만들고 나니가, 마치 나도 문명인이 된 것 같아 즐겁다. 심하게는 어떤 희열까지 느껴지는 것 같다. 무슨 증상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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