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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약간 구라가 섞여 있음을 먼저 고백한다.
시민과학에 기고한 글인데, 사실 써놓고 며칠 동안 묵히면서 망설이다 보냈다.
원고 달라고 하니 어쩔 수 없이...
여기 올리는 건? 포스팅하라니... 어쩔 수 없이..^^
지난 2001년, 2002년은 한국의 백혈병 환자들에게 잊지 못할 해가 될 것이다. 백혈병 환자들에게 기적의 신약인 글리벡이라는 의약품이 개발이 되었지만, 이를 복용하기 위해서는 한달에 수백만원이라는 높은 약가를 부담해야만 했다. 백혈병 환자들은 글리벡을 생산하고 있는 노바티스를 상대로 목숨을 건 투쟁을 벌여야만 했다. 결국 얼마간의 약가를 낮추고 정부로부터 보험적용을 받아내는 데 성공했지만 높은 약가의 근본적인 문제였던 특허제도를 변화시킬 수는 없었다. 의약품 접근권과 충돌하는 특허제도의 문제점을 제기하고 대안적인 의약품 연구개발 제도를 제안하고 있는 단체가 있다. 미국 시민단체인 '기술에대한소비자프로젝트'(CPTech)는 최근 특허제도의 대안으로서 의약연구개발조약(Medical R&D Treaty)(안)을 제안했다.
현재 특허권 옹호론의 핵심적 근거는 강력한 인센티브가 있어야만 기술발전을 꾀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특허권의 지나친 확대와 강화가 가져온 폐해는 극복되어야 한다는 데에는 이견이 있을 수 없다. 그렇다면 대안적인 인센티브 제도는 어떠해야 하는가? 이 연구개발조약안은 하나의 아이디어가 될 수 있다. 이 안은 특허권에 의한 독점적 연구개발 체제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적인 연구개발 보상제도이다.
이 조약안에 따르면 조약에 가입한 회원국은 매년 일정 규모 이상의 의약연구개발비를 지출해야 한다. 이렇게 출연된 재원으로 개발된 기술과 지식은 특허권과 저작권의 보호대상에서 제외된다. 이를 위해 각 국은 특허법을 개정해야 한다. 저작권의 경우 이용허락을 하도록 강제하는 방식을 통해 자유사용이 가능할 것이다. 따라서 누구나 그러한 지식과 기술을 이용하여 카피의약품을 만들어 낼 수 있게 된다. 시장에는 여러 카피의약품이 경쟁관계에 놓이고 시장가격은 하락할 것이며, 의약품 접근권이 확대될 것이다. 나아가, 보건문제 해결에는 중요하면서도 그 동안 투자는 소홀히 하였던 분야로의 투자를 촉진하기 위한 방법도 포함하고 있다.
첫째, 이 조약에 가입한 회원국들은 일정한 의약연구개발(Qualified Medical Research and Development; QMRD) 분야에 대한 재정지원을 해야 한다. 이 QMRD 영역이란 생의약 연구, 생의약 데이터베이스와 연구 툴의 개발, 의약품, 백신, 의료진단 도구의 개발, 이러한 제품의 의학적 평가, 민간요법의 보존과 확산 등을 말한다.
둘째, 위의 의무이행에 관한 최소한의 투자수준을 정하고 있다. 각 회원국마다 정해진 투자수준 이상으로 의약연구개발 투자를 해야 한다. 이 최저투자수준을 정하는 방법은 두 가지가 현재 제안되어 있는 상태인데, 그 중 하나는 세계은행이 소득에 따라 나눈 국가군별로 정하는 방법이다. 고소득국가는 GDP의 0.15%, 중상소득 국가는 0.1%, 중저소득 국가는 0.05%, 저소득 국가는 0%이다. 최저투자수준을 정하는 나머지 한 방법은 일인당 국민소득에 따라 정하는 방법인데, 1인당 국민소득이 300에서 999달러까지는 GDP의 0.01%, 1000에서 4,999달러까지는 GDP의 0.05%, 5,000에서 9,999달러까지는 0.1%, 10,000 달러에서 19,999달러까지는 0.15%, 20,000달러 이상이면 GDP의 0.2%로 한다. 이 수치는 의약품 개발에 소요된 비용통계를 기초로 한 것이다. 참고로 세계은행이 2000년에 발표한 통계자료에 의하면 국민소득 2만달러이상인 국가에서 의약품 소비율은 국민소득의 1.16%, 1만달러이상은 1.24%, 5천에서 9천달러인 경우 1.51%, 1천에서 5천달러까지는 1.37%이었다. 따라서 이 조약안에서 말하는 R&D투자비용은 국민소득이 1만달러이상인 국가의 경우 현재 의약품 지출액의 10%정도에 해당하는 규모임을 알 수 있다. 미국의 경우 1년에 600억 달러가 된다고 한다.
셋째, 조약안은 우선적 의약연구 대상(Priority Medical Research)을 규정한다. 나아가 그 중에서도 우선적인 연구개발 목표를 매 2년마다 정하여 추진하도록 한다. 우선적인 의약연구 영역은 (가) 백신 개발, (나) 연구개발이 소홀한 질병 분야, (다) 전지구적인 전염병, (라) 데이터베이스, 연구 툴, 기타 공공재, (마) 보건제도 및 적합한 기술, (바) 민간요법의 보존 및 확산, (사) 기타 적절한 우선적 연구 등이다. 우선적인 의약연구 대상 선정 등은 이 조약에 따라 설치될 의약혁신이사회(Council on Medical Innovation; CMI)가 우선의약연구개발위원회(Committee on Priority Medical Research and Development)를 구성하여 이 위원회로 하여금 하게 한다.
또한 이 우선연구 대상에는 일정 액수 이상의 지원금(최저지원금)을 규정하고 있는데, 그 산정 방식은 앞서 본 최저투자수준과 유사하다. 의약품혁신이사회는 2년에 한번씩 최소지원금 수준을 검토하여 변경할 수 있다.
넷째, 투자 의무 이행방법은 각 회원국의 재량에 맡긴다. 조약안에서 제시하고 있는 적합한 투자 방법에는 ①공공영역의 재정지원, ②세제혜택, ③인도적 기부, ④영리, 비영리단체에 의한 출연, ⑤투자 동기를 불러일으킬 만큼의 관련 의약품의 국가 구매, ⑥혁신 포상이나 기타 혁신 인센티브의 제공 등을 규정하고 있다.
다섯째, 우선연구대상(priority research), 공유(公有)적 연구(open research) 등 조약에서 정한 일정한 분야에 투자한 국가는 그 투자액의 일정 비율에 해당하는 특별신용(special credit)을 취득할 수 있으며, 이 신용은 각 회원국이 부담하는 최저투자수준에 충당할 수 있고(즉 특별신용에 상응하는 금액만큼의 투자의무를 면한다는 뜻), 국가간에 거래도 할 수 있다. 예를 들면, A 국가가 우선연구대상인 에이즈 백신 개발에 1백만달러를 지출한 경우, A국은 그 50% 즉 50만달러의 특별 신용을 획득하게 된다. 그런데 B라는 국가가 자국의 최저투자수준에 50만달러정도 미달하게 된 경우 A국가의 신용을 50만달러를 주고 구입하여 조약에 따른 의무이행에 갈음할 수 있게 된다. 다만, 조약은 특별신용을 구입하여 충당할 수 있는 최저투자수준의 일정 비율 (예컨대 1/3)을 정한다. 제임스 러브는 이러한 방식은 이산화탄소 방출에 관한 교토의정서에서 아이디어를 따왔다고 설명한다. 그는 이런 방식이 각 국가로 하여금 지금까지는 제대로 투자되지 않았던 영역에 투자를 하게 하는 인센티브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여섯째, 각 회원국은 이 조약에 따른 연구성과에 대해서는 특허권을 부여하지 않도록 특허법을 개정해야 한다. 이 조약상 의무준수를 위해 각 국가가 공적 자금을 출연하여 얻은 성과를 누군가 가져다가 약간만 변형하여 특허권을 취득하는 사태를 막을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컴퓨터프로그램에 관한 그누라이선스와 같이 변형물에 대해서도 독점권을 부정하는 것이다. 또한 연구목적을 위한 사용을 특허권의 예외로 인정하여 허용하도록 특허법을 개정하는 것도 회원국의 의무가 된다.
이 조약안에 대한 반응은 극명하게 갈리고 있다. 미국의 거대 제약회사들은 이 조약의 문제점을 파헤쳐 내기 위해 안달이고 부시행정부는 부정적이다. 심지어 세계보건기구가 지난해 이 조약안에 대해 검토하는 회의를 가졌을 때 미 정부는 이 회의에 정부관계자가 참여하지 못하게 했을 뿐만 아니라 이 회의에 참석하는 경우 해고당할 것이라고 경고했다고 한다.
각 국 정부가 많은 공적 자금을 투자해서 그 성과를 아무나 자유롭게 쓰자고 한다면 각 회원국별로 의무 투자액도 서로 다른데, 각 국가들이 과연 이 조약에 동의하게 될까? 더구나 더 많은 의무를 부담하게 될 선진국들이, 제약자본의 지지 속에서 정권을 유지하고 있는 선진국 정부들이 움직이게 될 것인가?
제임스 러브는 우선 실현가능성에 대해 낙관적이다. 선진국의 경우 개도국이나 후진국보다 많은 투자를 해야 하지만, 지금까지 투자하지 않던 저개발국가의 투자를 끌어냄으로써 의약개발비의 공동부담을 이뤄낼 수 있기 때문에 결국 전세계적인 투자규모는 늘리면서 선진국은 현재 투자규모보다 더 적은 의무만 부담하게 된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이 조약이 체결되면 가장 이득을 볼 국가가 미국이라고 설명한다. 또한 미국의 경우 지나치게 높은 약가 때문에, 노동자들의 보험금을 지불하는 회사들의 부담이 큰 상태이기 때문에 제약회사를 제외한 다른 제조업체의 경우 이 조약에 대해 상당히 긍정적일 수 있다고 한다.
조약안에 의하면 이 조약에 의해 창설될 운영기구에서 각 국의 의무 이행 수준을 감시하고 평가하지만 각 회원국은 연구개발 정책에 대해 독자적으로 결정하며 돈을 중앙에서 모아 분산하는 일은 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각 국가가 이 조약에 동의하여 가입한다고 해도 그 의무를 강제할 수 있는 방법은 있을까? 조약이 체결된다고 해도 실효성이 없으면 그만이다. 세계보건기구 내에서 이 조약안을 검토한 전문가들도 이 문제를 우려한다. 이 문제와 관련, 제임스 러브와 함께 이 조약안을 초안한 팀 허버드(Tim Hubbard) 박사는 의무가 엄격하게 준수되지 못할 위험이 있음을 시인한다. 그러나 그는 보건분야의 연구개발 지원의 중요성에 대한 전세계적 인식이 존재하고 국제적으로 약속한 사항을 이행하라는 국내적 압력이 존재한다는 점에 기대를 걸고 있다고 한다. 일례로 휴먼게놈프로젝트를 든다. 각 국 정부는 휴먼게놈프로젝트 뿐만 아니라 다른 국제적으로 공유되는 보건 연구 프로젝트에 투자하는 것으로 비춰지고자 하는 바램이 있다는 것이다. 또한 의무이행에 관한 평가의 공개와 각 국의 투자규모에 대한 상대 평가를 공표함으로써 상당히 여론에 영향을 끼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트립스협정 등 기존 조약에 위배되는 문제는 없을 것인가? 위배된다면 기존 조약과의 관계는 어떻게 가져갈 것인가? 이 조약에 따라 연구된 결과에 대해서는 트립스협정의 위반을 문제삼지 않도록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나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조약을 체결한 국가들 간에 문제삼을 수 없을 뿐이라는 것이며 조약 비체결국가와의 사이에서는 여전히 트립스협정 위반의 문제가 남는다. 이는 장기적으로 이 조약에 가입한 국가가 늘어남으로써 해결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제임스 러브는 낙관한다. 그러나, 여전히 여러 가지 국제법상 문제가 복잡하게 제기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 조약안은 실현가능성, 실현된다고 해도 체결 후의 각 국의 이행가능성 등 아직 해명되고 보완되어야 할 문제들이 많아 보인다. 그러나 이 조약안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많다. 특허 이외의 새로운 연구개발 인센티브 제도에 대한 상상력이 그 첫 번째이다. 또한 트립스협정에 의해 점차 강화되는 의약품 기술의 독점과 이로 인한 의약품 접근권의 제약은 결국 국제적인 수준에서의 투쟁에 의해서만 궁극적으로 극복이 가능하다고 볼 때 이 조약안은 국제적 수준에서 그 최전방의 전선으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그 투쟁의 과정에서 보다 세련된 안을 마련할 수 있을 지 모른다.
이 조약의 제안자들은 이 조약이 체결되어 운영기구가 설립될 때까지는 세계보건기구가 이 조약체결의 사무국 역할을 맡아야 한다고 보고 있다. 따라서 세계보건기구는 전문가들을 중심으로 이 조약안에 관한 논의를 하고 있는 중이다. 세계보건기구가 어떤 결론을 낼 것인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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