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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판으로 추락하는 블로그

'테크 토크'라는 대담 프로그램(http://www.soriweb.com/tech2/?p=17)의 참여자가 블로그 마케팅에 대해 '폭로'한 것을 뒤늦게 알게 됐다. 국내의 유명 블로거라고 하는 사람들 가운데 꽤 많은 사람이 이른바 '블로그 마케팅' 회사에 소속되어 있다는 것이다. 기업의 돈을 받고 자신의 블로그에 홍보성 글을 쓰는 것이 마케팅 회사들이 이들에게 바라는 것이다. 심지어 일부 블로거는 없는 사실을 지어내 씀으로써 기업 홍보에 나선다고 이 참여자는 말했다.

 

이 사람이 자세한 내막을 소개하지 않았기 때문에, 믿을만한 내용인지 아닌지 판단할 근거는 별로 없다. 하지만 만약 이 사람의 주장대로 이른바 블로거들이 기업한테 돈을 받은 사실을 숨긴 채 자신이 자발적으로 글을 쓰는 것처럼 행세하고 있다면 이건 사기나 다름없는 행위다.

 

블로거들이 직접 특정 회사 제품을 써보고 평가하는 내용은 '실제 사용자의 이야기'라는 형식 때문에 일단 믿고 들어갈 여지가 있는데, 이 점을 악용한 것이 바로 이른바 블로그 마케팅이다. 이런 행위에 비하면 공짜로 책을 얻었다는 사실을 숨기고 쓰는 인터넷서점 독자 서평은 애교로 봐줘야 하나 싶다. (내가 쓴 관련 글: 인터넷서점 독자 서평(?)) 블로그로 돈 버는 것을 탓할 생각은 없지만 돈을 벌려면 떳떳하게 벌어야지 사기에 가까운 짓을 해서 버는 것은 곤란하지 않은가?

 

이런 이야기가 흘러나오는 상황은 다음과 같은 말을 무의미한 것으로 만들고 마는 것 같다.

 

블로그는 자기관여적이고, 자기투사적인 주관성이 깊이 내재된 글을 쓴다는 점에서 '개인적인 공간'이지만, 기존의 저널리즘의 객관성이 표상하는 가짜 담론(그 당파성의 기만)을 깨뜨리는 미디어적 의미, 대안적인 의미를 동시에 내포하는 점에서, 그리고 새로운 웹 콘텐츠의 생산 소비 유통방식을 생성하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공적이다. (출처: http://minoci.net/616)

 

사실 블로그에 큰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지나치다고 생각하지만, 블로그가 사적인 공간인 동시에 공적인 공간이라는 건 맞는 말이다. 그런데 이 공간이 대안 미디어로 자리잡기도 전에 '기만적인 싸구려 광고판'으로 추락해 가려는 것 같다.

 

이젠 정말 블로그 글도 섣불리 믿으면 안될 때가 됐다.

2008/10/01 17:20 2008/10/01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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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번역할 때의 심리 변화

책을 번역하는 사람의 심리 변화라는 제목으로 어떤 이가 다음과 같이 썼다. 흥미있지만, 나와는 조금 다른 면이 있다. 아마도 내가 전문 번역가가 아니어서 그럴지 모르겠다. (원문은 http://blog.aladdin.co.kr/kellyin/2279311)

 

1. 어떤 책의 번역 의뢰를 받았을 때 : 두근두근 기대가 된다. 특히 내가 관심있던 분야나 좋아하는 작가의 책이면 더욱 그렇다. 정말 잘 해보리라 마음먹는다. *--- 이건 나도 마찬가지다. 정말 잘 해보리라 마음먹는다.

 

2. 1/4 정도 번역했을 때 : 신나게 번역한다. 이런 표현이 좋을까, 저런 표현이 좋을까 고민 또 고민하며 워드 파일 여는 것이 즐겁다. *--- 나는 신나게 번역할 수가 없다. 악전고투한다. 이렇게 번역해도 될지 고민 또 고민을 하긴 마찬가지다. 아직 어떤 식으로 번역할지, 어떤 표현을 쓸지 확정하지 못하고,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본다. 책 한권을 번역하려면 처음부터 끝까지 나름대로 일관된 문체 또는 표현 방식을 확립해야 하는데, 이 단계에서는 보통 이것이 정해지지 않는다. 그래서 이 때가 가장 힘든 단계다.

 

3. 2/4 정도 번역했을 때 : 원서를 펴는 것이 지겨워지기 시작한다. 슬슬 의무감으로 번역을 하는 빈도가 늘어난다. 표현을 두고 고민하는 사치 따위는 벌써 쓰레기통에 버린지 오래;  *--- 표현을 두고 고민하는 일이 많이 줄기는 나도 마찬가지다. 어찌됐든지 이 단계에서는 통일적인 표현 방식을 정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슬슬 번역의 속도가 붙고 책 내용에 익숙해지면서 번역 작업도 쉬워진다. 그래서 재미를 조금 느끼기도 한다.

 

4. 3/4 정도 번역했을 때 : 책을 찢어버리고 싶다 -_-;;;;;;; *--- 나는 이 단계에서 후회가 마구 밀려온다. 내가 번역 실력이 없음을 절감한다. 다시는 번역 안한다고 다짐한다.

 

5. 번역을 마무리할 때 : 데드라인이 다가오면서 따따블로 스트레스가 쌓이기 시작, 원서만 보면 속이 울렁거린다 -_- 점점 끝으로 갈수록 광속 (날림?) 번역이 된다; *--- 점점 날림 번역이 되어가는 것은 나도 비슷하다. 한편으로는 이 엉터리 번역을 어떻게 손볼까, 막막해한다. 이제 와서 어쩌겠느냐는 자포자기 상태에 접어든다. 원문의 뜻을 뒤바꾸는 짓만 하지 않으면 되는 것 아니냐고 스스로를 합리화한다. 어떤 핑계를 만들어서 마감을 늦출까, 아니면 이 괴로움을 빨리 끝내기 위해 그냥 대충 마무리할까, 선택의 기로에서 고민한다.

 

6. 편집자의 수정본을 다시 검토할 때 : 될대로 되라...왠만하면 그쪽에서 수정한 대로 넘긴다. 좋은게 좋은거지. -_- *--- 두가지로 나뉜다. 엉터리 편집자를 만난 때라면 열을 잔뜩 받는다. 이런 부분을 손봐달라는 이유는 도대체 뭔가, 독해력이 있는 편집자인가, 또는 왜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함부로 번역문에 손을 대냐, 뭐 이런 심정이 된다. 그리고는 편집자가 혹시라도 표시하지도 않고 바꿔놓았을 부분을 이 잡듯이 뒤져 원래대로 고치거나 새롭게 손본다. 꼼꼼하고 책의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편집자를 만난 때라면, 미안한 생각, 부끄러운 생각이 마구 든다. 내가 어떻게 이런 실수를 했을까, 정말 쪽팔린다, 이런 심정이 된다. 믿을만한 편집자이니, 왠만하면 저쪽에서 하자는 대로 따라주자는 마음도 들게 된다. 하지만 이렇게 꼼꼼하고 훌륭한 편집자를 만나는 일은 많지 않다. 보통은 엉터리까지는 아니더라도 뭔가 나와 맞지 않는 편집자를 만나기 십상이다.

 

7. 역자 후기를 쓸 때 : 슬슬 겁이 나기 시작한다. 오역이 많으면 어떡하지, 문장이 이상하면 어떡하지. 좀 더 꼼꼼히 할걸...하고 후회한다 ㅠㅠ 하지만 이미 버스는 떠난 후. *--- 나는 역자 후기를 쓸 때는 이미 지칠대로 지친 상태다. 훌륭한 편집자의 요구에 부응하려고 열심히 손을 본 뒤이거나 엉터리 편집자와 씨름하느라고 녹초가 된 때이기 때문이다.

 

8. 출판된 책을 받아볼 때 : 엄청 고생한건 몽땅 잊어버리고 무지 뿌듯하고 자랑스럽다. 표지고 본문이고 쓱쓱 쓰다듬어본다. 어서 빨리 다음 책을 번역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햄토리 챗바퀴도 아니고...바보다...) *--- 상품 출고 직전의 품질 검사원처럼 어디 잘못된 부분이 없나 곳곳을 훑어본다. 뿌듯함이나 자랑스러움 따위는 자리잡을 틈도 없이, 책을 던져버린다. 다시는 들여다보고 싶지 않다. 딱 한사람(내 딸 아이)에게 내 이름으로 책이 나왔다고 은근히 자랑한다.^^ 그럼 그 사람은 책 표지 따위에 대해 간단하게 촌평을 한다. 가끔은 책 내용을 물어봐 나를 난감하게 만든다. (초등학생이 이해할 수 있게 책 내용을 설명해줄 능력은 내게 애초부터 없다.) 책 나눠줄 사람들 명단을 뽑아보면서, 다시는 번역을 하지 말아야지 하고 굳게 다짐한다. 하지만 이 다짐은 몇달이 못간다. 몇달이 지나면 이미 내가 번역하고 싶은 책이 생기거나, 번역할만한 책을 찾아봐달라는 출판사의 요청을 받아서 책을 뒤지고 있다. 그리고 또 조금 지나면 지겨운 번역의 챗바퀴가 다시 시작될 것이다.

2008/09/18 18:52 2008/09/18 1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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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년만에 찾은 서점 풍경

한국에 돌아와서 처음으로 서점을 구경했다. 1년만에 구경하는 사람으로서는 가장 눈에 띄는 것이 값싼 책들의 등장이다. 5천원-6천원 정도 하는 문고판 형태의 책들이 이것저것 보였다. 심지어 1만원에 팔리던 책이 문고판 형태로 다시 편집되어 4500원에 팔리고 있었다. 경기가 나빠서 그런지, 아니면 사람들이 책을 사지 않아서 그런지 모르겠으나, 아무튼 책 값이 싸지는 현상은 나쁠 것이 없다. 책을 호화롭게 만들어서 값을 올리는 건 권할 일이 못된다.

 

이것저것 둘러본 책 가운데 단연 관심이 가는 책은 마키아벨리의 <군주론>(까치글방, 8000원)이었다. 강정인 교수가 1994년에 영어 번역본을 처음 중역했고 2003년에 개정판을 냈는데, 이탈리아어를 할 줄 아는 마키아벨리 연구자(김경희)가 참여해서 이탈리아어 원본을 바탕으로 다시 고쳤다. 지난 5월에 출판됐으니 철 지난 이야기지만, 출판사는 “최초의 군주론 원전 번역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최초인지 여부를 나는 모르겠으나 만약 사실이라면, 한편으로는 부끄러운 일이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늦게라도 나온 게 다행스럽기도 하다.

 

역자 후기에 설명된 내용으로만 판단하자면, 이 <군주론> 번역작업은 고전 번역의 모범적인 작업 형태가 아닐까 싶다. 마키아벨리에 관심이 많은 정치학자가 (비록 영어본 중역이지만) 번역을 하고 아마도 그 밑에서 공부했을 후배 학자들이 여러명 참여해서 고치고 다듬고, 결국은 이탈리아어를 할 줄 아는 마키아벨리 연구자가 이탈리아어 원본과 비교해서 또 손을 봤다. 그 과정이 대략 15년이다. 고전을 번역하는 것은 아니지만, 몇달만에 뚝딱 번역을 마쳐야 하고 그나마도 다시 손볼 기회를 얻지 못하는 나같은 '비전문가' 번역자로서는 생각하기도 어려운 일이다.

 

자신의 전공 분야를 연구하고 공부하는 데 그치지 않고, 번역이라는 결과물로 연결시키는 이들이 점점 많아지려면 이런 작업을 하는 이들을 좀더 격려해주며 그 공로를 인정해줘야 한다. 그래야 변변한 보상을 기대하기 어렵고 고되기만한 번역 작업에 좀더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기울이게 될 것이다.

 

이와 다른, 웃기는 이야기 한가지. 서점에서 확인한 묘한 현상 하나는, 연예인이나 다름없는 학자인 프랑스의 베르나르 앙리 레비가 화려하게 등장했다는 사실이다. 30년 전에 쓴 그의 첫번째 책 재번역본과 지난해 나온 책 번역본이 서가에 나란히 진열되어 있었는데, 웃긴 것은 지난해 나온 책의 제목이다. '그럼에도 나는 좌파다'. 처음에 이 제목을 보고 나는 내 눈을 의심했다. 혹시 저자가 내가 아는 레비와 동명이인인가 싶었다. 레비가 좌파라니, 지나가는 소도 웃을 일이다. 혹시나 해서 뒤져보니 역시나다. 원 제목을 한국말로 하면 '나자빠진 거대한 시체'라고 한다. 영어판 제목은 '좌파의 유산' 쯤이라고 한다. (역자후기에 나와있는데 정확하게 기억이 안난다) 이런 제목이 대륙을 건너와서 '나는 좌파다'로 바뀐 것이다. 독자들에게 웃음을 선사하려는 게 아니라면, 제목을 이렇게 바꿔치기 하는 건 곤란하다.

 

인터넷 서점에 올라있는 출판사 제공 책 소개 정보를 보니, 레비가 요즘 '좌파'들과 놀고 싶기는 한가보다. 세월이 워낙 험난하고 최소한의 사회적 가치나 이상조차 자본의 발 아래 짓밟히는 시절이니, 레비가 좌파들과 놀고 싶은 마음까지는 이해할 수도 있다. 하지만 데리다와 비슷해지고 싶어한다면 착각이다. 데리다는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강하게 현실에 개입하고 발언했는데, 죽기 직전에는 권위있는 좌파 매체 <르몽드디플로마티크>의 초대를 받아 어느땐가 새로운 세상이 열릴 것이다는 유언과 같은 연설문을 남김으로써 '전통적인 좌파'들에게도 어떤 영감을 줬다. 레비도 비슷해지고 싶어하는지 모르겠으나, 하고 싶다고 아무나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물론 열심히 하면 언젠가 좌파들이 불러줄지도 모를 일이니, 노력하는 것까지 나무랄 것은 없겠다.

2008/09/18 16:14 2008/09/18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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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 진보 진영의 글을 번역해 공개하는 걸 주 목적으로 하지만 요즘은 잡글이 더 많습니다. marish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