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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방법이 없다.. 정권퇴진을 위해 기도할 것" - 12월 24일 오후 9시 성탄전야미사 봉헌 예정

 

-우리에게 평화는 4대강 사업 중단
- 12월 24일 오후 9시 성탄전야미사 봉헌 예정
 
2010년 12월 14일 (화) 17:41:36 정현진 기자 regina@nahnews.net
 

매 주 월요일마다 열리는 4대강 사업 반대를 촉구하는 월요 전국사제 시국기도회가 두 번째로 열린 12월 13일 오후 7시 30분 국회의사당 앞. 33명의 사제와 200여 명의 신자들이 빼곡하게 둘러서서 미사를 봉헌했다. 함세웅 신부의 주례로 드린 이날 미사에는 여느 때보다 많은 이들이 함께 했다.
 

   
▲ 사진/김용길 기자

이날 미사에서 강론을 맡은 김영식 신부(안동교구)는 “이 미사를 드리는 이유는 우리의 꼴을 알자는 것이다. 지금 현재, 우리가 살아온 과거를 바탕에 두고 우리의 꼴이 어떠한가, 다시 한 번 들여다 보자는 것이다. 우리의 꼴을 알기 전에 각자의 꼴을 알아야 하며, 그러한 화두를 이 미사를 통해 던지고 있다.”고 말문을 연 뒤, 지난 주 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 발표한 성명서를 읽어나갔다.

   
▲ 사진/김용길 기자

이날 미사 중에는 4대강 사업 예산 날치기와 더불어 강행 통과된 ‘친수구역법’에 대해 김영희 변호사의 설명이 있었다. 김 변호사에 따르면 친수구역법은 “4대강 공사에 대해 심사를 거치지 않고 편법으로 돈을 쓰기 위해, 수자원공사에 사업을 맡기려고 만든 법이다. 우리가 매일 내는 세금을 예산의 형태로 쓰려면 국회에서 심의, 의결, 예비타당성 심사 등의 과정을 거치고 또 감시해야 한다. 그러나 4대강 사업에 들어가는 돈의 상당부분, 즉 16개 보 중에서 15개에 대한 비용을 수자원공사가 지출하도록 했다. 수자원공사는 공기업이지만 예산처럼 절차를 거치지 않고 사업비로 쓸 수 있기 때문이다.”라면서 “더 큰 문제는 정부가 이익이 나지 않는 4대강 사업을 수자원공사에 억지로 맡기는 과정에서 만든 이 법으로 수자원공사는 4대강 사업으로 얻는 손실을 메우기 위해 강개발을 통해 이익을 얻게 되었다. 그렇다면 녹색사업, 강 살리기라는 허울도 소용없이 강은 더욱 파괴될 것이다. 이 법의 폐지에 관심을 갖고 도와달라.”라고 호소했다.

이어서 충남 태안에서 온 지요하 씨는 “이 4대강 사업을 막기위해 애쓰는 모든 이들에게 고맙고 애처로운 마음을 갖고 있다. 그 마음으로 4대강 사업 반대를 위한 이 대열에 끝까지 함께 할 것이다.”라고 말해 참가자들의 환호를 받았다. 

   
▲ 사진/김용길 기자

끝으로 사제단 대표인 전종훈 신부는 모든 이들에게 평화의 인사를 전하고, “우리에게 평화는 4대강 사업을 중단시키는 것”이라고 하면서, “착잡하다. 이런 날이 오리라고 예상했지만 이렇게 올 줄 몰랐다. 그동안 이 자리에서 미사를 드렸던 가장 큰 이유는 정기국회 개회 중에 어떻게 해서든 4대강 예산을 삭감함으로써 중단시키는 길을 열어보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다음 주부터는 보다 근원적인 문제에 대해 묻겠다. 더 이상 방법이 없다. 이 정권을 퇴출시키지 않고서는 우리의 요구가 결코 이뤄지지 않을 것이다. 논의를 거쳐 정권퇴진이라는 큰 틀을 갖고 기도할 것이다.”라고 의지를 밝혔다.

앞으로 월요 시국기도회는 같은 장소, 같은 시간에 계속 이어질 것이며, 12월 24일 성탄전야에는 오후 9시에 비정규직 문제로 고통받는 이들을 위한 성탄전야미사를 봉헌할 계획이다.

   
▲ 봄눈별씨가 인디언 플룻을 연주했다. 두물머리 미사에서 농민들은 흥겨운 플룻연주를 듣고 싶어했지만 결국, 동료들의 슬픈 울음소리만 들어야 했다고 전했다.(사진/김용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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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실현하려고 통장을 개설했다..희망 하나 가지고..

 예수살이 공동체 금요미사에 갔다가 받아온 책자에서 민들레국수집 으로 알려진 서영남님 기사를 읽었다. 민들레국수집을 차린후에 아이들을 위한 공부방을 만드셨는데 통장에 만원넣은거 부터 시작해서 이루셨다고 한다. 희망과 신념 하나로 시작해서 이루어진 소망.. 나도 이루어 보겠다는 생각에서  부랴부랴 통장 개설하고 만원 입금 시켰다.  약간은 두리뭉실했고 시간이 좀 지나서 하겠다는 내 계획이 빨라졌다.  사실 통장 개설하기 전부터 변화가 있었다.  쓰고남은 잔돈은 저금통에 무조건 넣었다. 한마음한몸운동의 하루 100원 모으기 짝통운동을 에서 먹는거 줄이기로 확대가 된 것이다. 사실 주전부리 싫어하지는 않지만 즐기지는 않는다. 허나 아침 점심을 든든하게 안먹으면 5.6시부터 엄청 배가 고프다 ㅠㅠ 6시가 지나면 분식집 가서 한끼를 먹으려는 욕망이 강했고, 밥을 사먹기도 했는데.. 마인드가 바뀌었다.

 

이 돈을 내가 아닌 타인을 위해 쓰자.. 하는것.. 그 마인드가 머리속에 꽉 차면 배도 덜 고파지고 찌게에 쌀밥을 먹으려던 행동이 간단한걸로 요기하는것으로 바뀐다. 어제는  근처 포장마차에서 '떡도그'와 오뎅국물을 먹었다. 떡이여서 그런가.. 든든했다.. 오뎅국물은 따뜻했다. (뭐 늘 궁상맞게 먹자는 주의는 아니다.. 곧 집에 갈 상황에서 배고프다고 한끼를 먹는건 솔직히 쓸때없는 지출 아닌가.. 집에가서 맛있는 음식을 보면 유혹당하고 먹게될꺼고 과식이 될꺼고... ㅋㅋ) 아무튼 남을 위해 쓰는건 낭비를 막게한다.. 결국엔 내가 더 많이 받게된다. 받기위해 시도한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2011년도에는 사무실겸 카페테리아를  차리려고 한다.. 서오릉에 있는 사찰카페 '다륜'에서 얻은 아이디어 이다. 물론 그곳은  카페와 사무실이 함께있지 않다. 그곳을 벤치마킹 하려는 이유는 다른 사찰카페들은 외부에 카페가 있는데 이곳은 사찰안에 카페가 있다. 한쪽에 부처님상이 있어서 부처님도 뵙고 절도 할수있다. 차값은 바리스타분에게 드리는게 아니라 보시함에 넣는다. 보시함에 넣는 차값은 불교발전기금으로 쓰인다. 보시함 옆에는 잔돈도 놓여있어 알아서 거실러서 갈수있다.

 

나도 보시함을 만들꺼다. 그 돈의 대다수는 돕고있는 시민모임에 쓰이게 할것이다.  그곳을 도우면서 서러운일 많이 겪었다. 서명을 받을때는 "이거 아직 안급한데..." "이거 여기랑 안어울리는데.." 심지어 기자회견에 사람 좀 보내줄 수 없냐고 요청했을때는 "운동의 방향이 달라서 안되겠어요"라는 소리까지 들었다. 전화 끊고나서 심장이 찔린거 같았다.. 내가 울었다는거 그사람은 모른다. 내 서러움은 쓸때없는게 아니였다. 얘기들으신 분들은 같이 분노해주었으니까. 안급하고 안어울리고 운동의 방향이 다르다는 사람들.. 다 친일문제에 관심있고 조중동 반대하고 정권 반대하는 사람들이었다.. 오죽하면 같이 분노해주신 분이 이런말을 하셨을까 "운동의 방향이 다르면 뉴라이트냐?"

 

 "인터넷에 그거 다 써버려 "라는 소리까지 들었고  그 단체에 전화해서 따지려고 했으나 참았다. 그때는 분노를 싹히느냐고 힘들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잘했다.  내 보잘것 없는 계획에 태클을 걸고 무시할 사람 분명 있을테니까.. 하지만 그때 서러움 분노를  겪었기에 난 참을 수 있다. 미약한 계획을 세우고 통장을 만들면서 지금은 관계가 끊어진 사람이  생각났다. "언니 그사람이  좋은소리 . 희망적인 소리 한적 있어요? 늘 우울하고 당장이라도 자살할 거 같은 눈빛을 하잖아요.. "  그랬다 그사람  정말 그랬다 객관적인것을 들이밀어도 부정적이고 허탈하게 만드는 소리만 했다. 남 잘되는 꼴을 못보는 사람도 아닌데 이상하게 늘 그랬다. 

 

그 사람이 했던 말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말이 있다 " 난 지금 죽어도 여한이 없어.." 훗날에야 알았다. 그건 꿈이없는 젊은사람 입에서만 나올 수 있는 소리 라는것을. 혹시나 이글을 보고 그사람이 또 힘빠지는 소리를 한다면 나는 말할거다 "난 지금 죽어도 여한이 없다는 80대 할배나 하는 소리는 안해" 라고.  꿈이 여러개면 최종적으로 하나만 정하라는글을 읽은적이 있다. 그중에 제일을 정하면 나머지는 알아서 따라온다고 한다.  이제 열었으니 따라올 것이다. 만원이나 들었지않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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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맷값 1백만 원, 중풍 걸린 세상” -국회 앞 월요 전국사제시국기도회

 

2010년 12월 07일 (화) 07:43:06 고동주 기자 godongsori@nahnews.net
 

12월 6일 오후 7시 30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월요 전국사제시국기도회’가 봉헌됐다. 이는 지난 11월 8일부터 29일까지 매일미사를 봉헌하고 나서 매주 월요일 미사로 전환한 후 첫 미사다.

 

   
▲ 저녁이 되어 기온이 급격히 떨어졌으나 130여 명의 신자와 시민, 20여 명의 사제가 월요사제시국기도회에 참여했다. (사진/ 정현진 기자)

정의구현전국사제단 대표 전종훈 신부는 “매주 월요일 미사로 변경하면서 월요일 미사는 우리 요구가 관철될 때까지 이 자리에서 끝까지 하겠다”며 결의를 밝혔다. 사제단은 미사의 지향을 “참다운 민주정부의 수립과 분단체제의 극복을 위해, 더욱 근본적으로는 생명과 평화를 주춧돌로 삼는 ‘새 하늘 새 땅’을 위하여”로 삼고 있다.

사제단 총무 김인국 신부는 강론에서 세상이 모두 중풍에 걸려 있다며 중풍 환자를 고치신 예수처럼 그리스도인도 세상을 치유하는데 앞장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신부는 “한의학에서는 중풍을 불인(不仁)이라고도 한다”며 세상이 어질지 못하고 기가 막혀서 중풍에 걸렸다고 한탄했다.

지난 10월 초 재벌가 2세 최철원 씨가 야구방망이로 노동자를 폭행하고 한 대에 1백만 원을 맷값으로 지급한 사건에 대해 김인국 신부는 “사람들이 모두 중풍병자다. 육신은 멀쩡할지 모르지만 속은 완전히 마비가 됐다”며 탄식했다. 이어 “남과 북도 모두 마비가 됐다”며 “이 자리(기도회)에 모이신 분들이 주물러주고 풀어줘야 한다”고 신앙인의 책임을 상기시켰다.

미사 때마다 독특한 ‘평화의 인사’를 하는 문정현 신부는 이날 “여러분은 평화를 어디에서 찾을 것입니까?”라고 물으며 “정부는 4대강 사업을 중단하라! 국회는 4대강 예산을 삭감하라! 모든 민주시민은 궐기하라! 에서 평화를 구합시다”라고 구호를 외쳤다.


(엄광현/김정은 부부가수의 노래 공연 공연을 통해 미사에 참여한
신자/시민들이 추위를 녹일 수 있었다. 촬영/편집 고동주 기자)

 

   
평화를 외치다! 문 신부는 이날 4대강 사업 중단하는 데서 평화를 찾을 수 있다며 '평화의 인사'를 구호를 외쳤다. (사진/ 정현진 기자)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nahnew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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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방송 PBC특강, 4대강 언급 부분 삭제된 채 방영

 

-정홍규 신부, 삭제된 원고에서 정 추기경에게 생명평화미사 참여 호소.. 사목자들의 문제 지적
 
2010년 12월 06일 (월) 10:48:42 한상봉 기자 isu@nahnews.net
 

지난 12월 2일 본방송이 나간 평화방송 TV 'PBC 특강' 정홍규 신부의 '평화 생태 이야기'란 강연이 당초 정홍규 신부가 준비한 강연 내용 중 4대강 문제와 관련된 부분이 대폭 삭제된 채 녹화가 진행됐고, 녹화 내용 중에서도 일부가 삭제된 채 방영된 것으로 밝혀졌다.

당일 방영된 프로그램은 영천 산자연학교 교장인 정홍규 신부(대구대교구)의 생태 문제 관련한 강의였으며, 이 내용은 12월 2일 본방송을 시작해 오는 7일까지 방영될 예정이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에서 입수한 당일 방송 원고에서 정홍규 신부는 "4대강은 사회적 공감대를 얻기는커녕 오히려 "집단적 광기"가 판을 치고 있다"고 안타까워하며, "전혀 맞지도 않은 개념인 녹색성장이라는 용어에 우리 국민이 헷갈리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4대강과 관련해 정부가 농경지 리모델링 운운하며 황당한 단어를 급조해 국민을 속인다는 것이다.

한편 두물머리에서 260일이 넘도록 봉헌되고 있는 생명평화미사를 소개하며, "저는 우리 정추기경님이 미사에 두 번도 아닌 한 번만 오시면 참 좋겠습니다. 평화를 이룩하려면 피조물을 보호하라는 이 메시지에 정추기경님 힘을 주시면 사목자들이 얼마나 신명이 나겠습니까?"라고 제안했다. 이어 정 신부는 대구의 한 성서학교에서 경험한 사례를 들어 "주교님들이 4대강에 대한 반대성명을 했다고 하니까 그 말을 들은 한 교우가 쓸데없는 짓을! 이렇게 냉소하였습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요? 평신도의 잘못이 아닙니다. 사목자들이 우리 평신도에게 신앙과 사회적 영역을 통합한 총체적 삶으로 신앙을 가르치기 않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정홍규 신부는 본래 원고에서 사목자들이 주교단의 지침을 따르지 않는 상황 역시 이렇게 꼬집었다.

"우리 사목자들이 교황님의 메시지나 주교단의 지침서를 따르지 않는다면 평신도들이 우리 신부님의 사목적 방침을 따르겠습니까? 그동안 우리 영성이 너무 구원보속중심에 치우쳐져 있었습니다. 이제는 창조와 축복중심으로 균형을 잡고 우리교회의 은사가 다양성을 갖고, 풍요로워 지고, 우리교회가 생태적 정의를 실현함으로써 예언자적인 소명과 더 나은 미래를 다음세대에게 물려주어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이 부분은 전국의 사제들이 4대강 사업 반대운동을 하게 된 배경과 호소를 담은 내용과 더불어 삭제된 채 방영되지 못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에서 담당 피디에게 사실확인을 요구한 결과 담당 피디는 "녹화과정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서는 외부에 알릴 수 없게 되어 있다"고 답변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nahnews.net>

 

정홍규 신부 PBC특강 강의초록(전문)
"평화 생태 이야기-거울"
 


*방송에서 제외된 부분은 붉은 글씨로 표시하였습니다. --편집자

20세기에서 21세기로 넘어갈 즈음에 1950년대 우리 인류에게 큰 그림 혹은 화두. 요사이 말로 하면 하이컨셉을 주신 분이 계십니다. 북경원인을 발견하였으며 예수회 소속의 신학자이면서 고생물학자인 테이야르 드 샤르댕 신부님입니다. 신부님은 처음으로 서로 치고 받고 싸우는 과학과 종교를 화해시켰습니다. 그리고 분리된 물질과 정신을 하나로 통합한 위대한 신학자입니다.

20세기의 위대한 저서라면 테이야르 드 샤르댕 신부님의 <인간현상>입니다. 오늘 저는 샤르댕 신부님의 그 저서에 나오는 말씀으로 이 강의를 시작하고 싶습니다. "첫 인류가 그 자신이 처음으로 거울에 비친 그 자신을 알았을 때 전 세계가 앞으로 나아갔다" 고 말했습니다.

이 말은 저는 이렇게 이해합니다.
자신에 대해서 거울 앞에서 두 번 생각하고 성찰하고 회개했을 때 그 자신을 새로운 차원으로 성장 혹은 발전, 진화시킬 수 있습니다. 한 개인뿐만 아니라 공동체의 발전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새로운 생활양식에 대한 진정한 시각의 변화가 없다면 우리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베네딕토 16세 교황님의 말씀에 공감합니다. 지금이 바로 거울을 봐야 할 때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의 우리 현실은 앞으로 나아갈 수 없고, 뒤돌아 가기에는 너무 멀리 와 버렸습니다. 사회의 모든 에너지가 정체되어 있는 상태입니다. 참으로 위기의 시대이며 단순한 경제 위기나 환경위기가 아닌 교황 베네딕토 16세께서 지적하신 도덕적 위기입니다.

그러나 이 위기는 또한 창조할 기회, 더 큰 깨달음으로 진화할 기회이며 우리 의식이 한차원 높아질 기회입니다. 미래 세대의 책임 있는 종으로써 자신을 발견할 수 있는 기회이며 그리하여 새로운 관계로 발전할 수 있는 기회입니다. 20년 전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은 생태계의 위기라는 표현을 하시고 지금 베네딕토 16세 교황님은 환경의 황폐화라는 용어를 사용하시는데 지금이 인간과 자연이 의식적으로 화해할 수 있는 도전의 기회입니다.

환경의 황폐화가 우리를 절망과 체념으로 몰아가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창조계획을 위한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이때 샤르댕 신부님이 말씀하신 거울의 의미가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1990년에서 2010년 사이의 가톨릭 환경운동을 성찰하고자 합니다.

2010년 올해는 저에게 아주 의미있는 해입니다. 제가 대구에서 푸른평화 운동을 한 지가 20년이 되는 해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내년이면 서품 30년이 됩니다만 저는 사제생활을 거의 대부분을 가톨릭 환경운동에 투신하였습니다. 1990년 그러니까 한국교회에서 가톨릭 환경운동이 태동할 무렵인데 서울대교구에는 하늘 땅 물 벗이 있었고 그 중심에는 이재돈 신부님이 활동하였습니다. 그리고 원주교구의 김승오 신부님이 우리밀운동으로 가톨릭 환경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었던 1990년대였습니다.

교구는 달랐지만 큰 생명운동이라는 꿈이 같았으며 자발적으로 저희 세 신부들은 1992년 5월 전국환경사제모임을 발족하여 교구별로 순회하면서 지역의 환경문제를 함께 풀어가는 연대활동을 신나게 전개하였습니다. 광주교구의 영광반핵운동의 박재완 신부님과 이영선 신부님 그리고 부산교구의 조욱종 신부과 더불어 새로운 에너지운동을 일으켰습니다. 전국환경사제모임은 오늘날 천주교 창조보전 전국 모임의 초석이 되고 그 범위가 확대되었습니다. 1990년대에는 참으로 아름다운 연대였고 사목자들의 동행이었습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까지 강조하신 연대, 함께 하는 것 즉 연대야 바로 또 하나의 연대를 낳은 힘이 아니겠습니까?

우리는 80년대는 민주화, 그다음엔 90년대부터는 생명이라는 화두로 교구를 넘어서 정의-평화-창조보전 큰 그림으로 활동하였습니다. 그 결과 우리는 한 가지 큰 성과를 얻었습니다. 특히 김수환 추기경님의 전폭적인 도움으로 우리밀운동과 우리농촌살리기를 통한 환경운동은 1995년 추계주교회의에서 매년 7월 셋째 주일을 우리 농촌주일로 제정하는 계기를 만들었습니다. 농촌주일은 참으로 감사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 당시에 돌아가신 박석희 주교님이 우리농촌을 위한 기도문을 만들어 주셨음을 기억합니다. 우리 베네딕토 16세 교황님은 올해 신년도 메시지에서 광활한 농촌지역의 황폐화를 지적하시면서 소농중심으로 농촌 개발 전략을 마련하라 촉구하고 계십니다. 올해 가톨릭 환경상을 일산본당의 우리농 운동에 준 것은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4대강 문제는 농경지가 대부분 사라지는 것이 기가 막힙니다. 옥토중의 옥토가 사라집니다. 농사의 중요성을 모르기 때문에 저런 정신나간 짓을 한다고 봅니다.

저는 잊을 수 없는 추억이 하나 있습니다. 1998년 10월 영월본당에서 촛불을 들고 강뚝을 행진하면서 정의구현사제단, 전국환경사제모임, 각 교구정의평화위원회, 수도자와 평신도는 물론 전국의 모든 뜻있는 시민단체와 예술가들이 함께 동강살리기를 이룬 것입니다. 사회 민주화운동이 생태적 정의로 확대된 사건입니다. 동강은 가능하였는데 왜 새만금은 이렇게 되었을까요?

2003년 새만금살리기를 위한 문규현 신부님의 삼보일배를 지금의 4대강과 같은 전폭적 지지를 보낸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2003년 새만금의 사건은 결국 2010년 4대강으로 이어지는 결과를 낳았다고 저는 봅니다. 교황 베네딕토 16세의 회칙 <진리안에 사랑>에는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모든 경제적 결정은 도덕적 결과를 가진다" 저는 이 말씀으로 새만금이나 4대강이 얼마나 도덕적이지 않음을 알 수가 있지 않습니까?

동강보다 메가톤급 규모로 기도도 하고 미사도 하고 순례도 하고 주교님 성명서도 발표하고 명동미사와 전국적으로 4대강을 보전하자고 하였는데 왜 되지 않을까요? 1998년은 동강은 살게 되었는데 2010년은 4대강은 불가능할까요? 그 사이에 어떤 일이 벌어졌기에 세계환경에 대한 의식과 정보는 더욱 높아졌는데 (웰빙과 로하스, 지구온난화, 북극곰의 눈물등) 동강살리기는 사회적 공감대를 얻을 만큼 집단적 각성이 이루어졌던 반면에 4대강은 사회적 공감대를 얻기는커녕 오히려 "집단적 광기"가 판을 치고 있습니다.

전혀 맞지도 않은 개념인 녹색성장이라는 용어에 우리 국민이 헷갈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 농경지 리모델링 운운하며 황당한 단어를 급조해가며 국민을 속이는 것입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지금의 우리의 현실은 개발 개발하여 부를 창출하자는 마음의 상태를 반영합니다. 지금도 4대강이 공사가 돌아가는 이유는 개발 집단적인 의식이 돌아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지금까지 우리가 노력한 것과 실제로 우리가 행동하는 것 사이에 간격이 더욱 넓어지고 있습니다. 인식은 아주 높아졌는데 그 실천은 더욱 교묘하게 배운 사람일수록 인식과 괴리가 벌어졌습니다.


제가 사는 동네 벌이 사라집니다. 벌과 같은 곤충은 자꾸 사라져 농업과 과수에 부담을 주고 있습니다. 농약과 더위 때문에 곤충이 없어지니까 씨앗의 전파, 곤충통제, 수정의 부족으로 영양소의 재생이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올해는 UN이 정한 생물 다양성의 해입니다. 우리가 매일 쏟아내는 독성 때문에 종의 대량 전멸이 예상되지 않습니까? 파괴는 한 순간이지만 회복은 참으로 더디지 않습니까?

곰보배추는 천식과 비염에 좋습니다.
와송은 위 치료에 좋습니다.
주목껍질에서 추출되는 태솔은 암 치료에 좋습니다.
중요한 혈액 응고제가 투구 게에서 발견됩니다. 생명의 다양성이 줄게되면 어디에서 약재를 구합니까?

올 여름에 비가 그렇게 많이 와도 골짜기에 물이 적습니다. 물이 부족해지고 석유가 고갈되고 있습니다. 지금의 소비주의는 지구를 3개정도 가져도 못자랄 지경입니다. 에너지 상황과 기후변화등 더 나빠졌는데 우리의 소비는 더욱 과소비로 늘어났습니다.

이렇게 소비하면 우리가 지구를 혹사하고 있습니다. 가난한 사람이 TV광고 소비 생활양식을 보면 분노와 폭력이 일어날 것입니다. 석유는 대체할 수 있지만 식량을 대체할 수는 없습니다. 식량증산보다 인구증가가 더 높으면 미래는 아주 불안정해집니다. 자원전쟁이 일어날 것입니다.

올 봄에 너무 따뜻하다가 눈이 오는 바람에 자두, 복숭화, 사과와 배가 어쩔 줄 몰라 했습니다. 지난 여름 폭염과 폭우는 우리가 예측할 수가 없습니다. 역설적이게도 올해는 그렇게 덥더니만 서리가 일찍 내렸습니다. 더우면서 빙하가 옵니다. 지구적인 기후변화는 구제역과 광우병은 우리 인류가 한번도 겪어보지 못한 전염병입니다. 기후위기는 생태계와 농업에 치명적 파괴력을 일으킵니다.

교황님은 환경난민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시면서 환경의 황폐화가 절박함을 간절하게 호소하십니다. 우리 현실은 빈부 격차, 양극화로 더욱 어려워지고 젊은이에게 선택과 기회는 축소되고, 먹고 생존하는 문제로 인해 환경위기는 이제 들어도 무감각하게 되고 말았습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최근 10년 동안 우리가 삶의 의미를 돈과 성공에 걸었다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공정심 즉 사회정의라든가 돈 되나 안 되나에 따라 우리 모두가 식별력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회칙 <생명의 복음> 83항 지적대로 우리가 물질에 대한 관상적 시각보다 당장에 돈이 된다 안 된다 식의 시각으로 떨어졌기 때문입니다. 말하자면 강의 아름다움보다도 경제적인 가치로 환산하는 물질주의로 우리모두가 집단적 광기로 자연을 제일 만만하게 대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교육으로는 국영수 선행학습 등으로 지구과학이나 우주교육은 설 자리가 없어져 더욱 경쟁으로, 경제적으로는 더욱 개발 의식에 떨어졌습니다. 그렇지않고서는 이렇게 10년만에 변할 수 있겠습니까? 교황님은 생명을 고마움으로 아름다움으로 창조주의 모상으로 느끼는 관상적인 시각으로 보라고 초대하시지만 우리 모두는 돈 되나 안 되나 맹목적으로 달려갑니다. 우리 경제모델에 대한 성찰과 문화적 쇄신이 참으로 필요한 시대입니다.

저는 생태 평화, 자연 평화, 환경 평화운동을 예언자적인 소명이라고 자각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지금부터 20년 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께서 가톨릭 역사상 처음으로 생태교서를 1990년 1월 1일날 평화의 메시지로 발표하였습니다. <창조주와 함께하는 평화, 창조물과 함께 하는 평화>라는 이름으로 말입니다. 환경문제와 종교적인 측면을 아주 신중하게 결합한 생태윤리에 대한 체계적이고 탁월한 교회문헌입니다. 환경운동이 신앙운동과 별개의 것이 아니라 신앙인의 본질적인 소명임을 일깨웠습니다. 저는 그 메시지가 사목의 큰 그림이 되었고 하이컨셉이 되었습니다.

지금 우리의 사목자들은 환경운동을 정부에서 추진하는 사회운동쯤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는 대구교구에서 4개강을 위한 생명 평화미사를 준비하면서 지금까지 한 10번째 미사를 하였습니다. 미사장소를 구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왜나하면 본당신부님들이 이 미사를 달갑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어떤 신부님들은 왜 미사를 두물머리에서 낙동강 현장에서 하느냐? 미사가 무슨 데모의 수단이냐, 하고 반대를 합니다. 이런 태도야말로 하느님의 에너지를 장롱속에 가두는 아주 폐쇄적인 사고방식이 아닐 수 없습니다.

교회 안에서도 상호이해가 부족하고 생태정의가 상실되어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환경문제와 구원문제를 별개의 것으로 간주하는 태도는 신학적 무지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오늘도 두물머리에서 매일 미사를 봉헌합니다. 벌써 260번이 넘었습니다. 주교님들도 두물머리에서 미사를 하셨는데 그 미사가 데모미사입니까? 저는 우리 정추기경님이 미사에 두 번도 아닌 한 번만 오시면 참 좋겠습니다. 평화를 이룩하려면 피조물을 보호하라는 이 메시지에 정추기경님 힘을 주시면 사목자들이 얼마나 신명이 나겠습니까?

대구의 한 성서학교에서 한 교우가 이런 말을 들었다고 하였습니다. 주교님들이 4대강에 대한 반대성명을 했다고 하니까 그 말을 들은 한 교우가 쓸데없는 짓을! 이렇게 냉소하였습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요? 평신도의 잘못이 아닙니다. 사목자들이 우리 평신도에게 신앙과 사회적 영역을 통합한 총체적 삶으로 신앙을 가르치기 않았기 때문입니다.
교황 베네딕도 16세의 말씀입니다. "우리 모두는 환경을 보호하고 돌볼 책임이 있습니다. 그 생태적 책임엔 경계가 없습니다."

이런 속담이 하나 있습니다. "여우는 많은 것을 알고 있지만 고슴도치는 큰 것을 알고 있다." 지금 우리 교회는 큰 그림이 필요합니다. 하이컨셉말입니다. 그것은 교황 베네딕도 16세께서 주신 컨셉 즉 "평화 생태학"이라는 용어입니다. 평화와 피조물간의 관계가 평화의 시작입니다. 자연의 평화 없이 우리 인류의 평화가 없다는 말씀입니다.

지금까지 우리의 신앙살이에서 마음의 평화, 영혼의 평화, 가정의 평화라는 말은 있었지만 평화와 창조주, 평화와 창조물과 연결시키는 교회의 작업은 아주 드물었기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말씀을 드리면 교황님의 메시지의 핵심은 "녹색평화"입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너무 적색평화, 구원구원, 죄와 원죄, 세상은 죄요 고통이요 보속과 두려움에 치중하여 우리의 영성생활이 오로지 개인영혼구령, 부정적이고 소극적이고 세계에 닫혀있는 태도였지 않았습니까?

교황님은 이 메시지에서 창조물에 통한 명상, 창조물을 통한 평화, 자연을 통한 창조주와 일치를 강조하였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는 인간과 인간간의 화해, 인간과 하느님과 화해를 강조하였지만 이제 한걸음 더 나아가 창조물과의 화해 즉 제 3의 명상, 제 3의 기도의 영역으로 확대되고 포용된 것입니다. 자연의 평화 없이 세계평화는 없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영성은 더 확대되고 포용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창조물을 아우러는 영성, 창조물까지 확대하는 선교지평이야말로 우리의 교회을 풍요롭게 하고 다양하게 그리고 공정하게 할 것입니다.

이번 2010년 환경에 대한 주교단의 지침서의 표현대로 하자면 지금까지 우리의 신앙살이가 너무 인간중심 선교, 인간중심주의 윤리에 치중되어있다는 지적입니다. 구원의 방주 안에 창조물을 담으라는 것입니다. 올해 신년도 평화의 메시지에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창조주와 함께하는 평화, 창조물과 함께 하는 평화> 메시지 이후에 20년 만에 다시 특히 교황 베네딕도 16세께서는 더 명확하게 평화를 이루려면 창조물을 보호하라는 것입니다. 창조물을 보호하라! 얼마나 단호한 말씀입니까? 그리고 저는 그동안 교황청에서 나온 회칙과 문헌 그리고 보고서를 공부하였지만 이렇게 교황님께서 다급하게 절박하게 호소한 메시지는 처음 읽어 봅니다. 그만큼 이 행성전체의 위기가 절박하다는 것입니다.

교황 베네딕토 16세께서는 " 지구온난화는 하느님의 뜻을 거스르는 것이라 지적한 후 환경보호에 참여하는 것은 물론 10억 가톨릭신자들이 모두 환경주의자가 되어야 한다" 고 호소하였습니다. 우리 사목자들이 교황님의 메시지나 주교단의 지침서를 따르지 않는다면 평신도들이 우리 신부님의 사목적 방침을 따르겠습니까? 그동안 우리 영성이 너무 구원보속중심에 치우쳐져 있었습니다. 이제는 창조와 축복중심으로 균형을 잡고 우리교회의 은사가 다양성을 갖고, 풍요로워 지고, 우리교회가 생태적 정의를 실현함으로써 예언자적인 소명과 더 나은 미래를 다음세대에게 물려주어야 되지 않겠습니까?

제가 한번은 1990년부터 2010년까지의 각 교구에서 새해마다 교구장이 발표하는 새해 지침서를 전부 분석해 보면 거의 비슷하게 인간구원, 태아구원, 가정사목, 노인사목, 청소년사목에만 국한되어있음을 보고 저는 아주 놀랐습니다. '생명 31'도 보면 생명컨셉이 인간으로만 한정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생명관이 잘못되었다는 것이 아닙니다. 생명관이 좁다는 것입니다. 생명관을 넓히자는 것입니다. 하느님이 창조하신 전 우주를 포용하자는 것입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께서는 생태적 고백이나 생태적 회개를 강조하였습니다. 교황님은 1979년에 특히 성 프란치스꼬를 생태운동의 주보성인으로 뽑으셨습니다. 프란치스꼬 성인은 길가의 지렁이도 함부로 하지 않았습니다. 나무를 자를 때도 연민의 정을 가졌습니다. 태양을 형님, 땅을 어머니라고, 물을 자매라고 노래하였습니다. 부처님이 왜 숲속에 뜨거운 물을 붓지 말라고 하였겠습니까? 돈보스꼬 성인은 교육은 "마음을 쓰는 일"이라고 말하였습니다. 마음을 쓰는 것이 사랑입니다. 마음씀을 예를 들면 우리조상에게는 까치밥 마음이 있습니다. 경북 청도는 감으로 아주 유명합니다. 감나무마다 까치를 위한 식사, 까치를 위한 밥을 위해서 감을 감나무에 서너 개씩 남겨 둡니다. 우리 조상들은 까치를 위해서 마음을 주었습니다. 이것이 생태윤리입니다. 창조물에게 마음을 쓰는 일 이것이 창조물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일입니다.

우리 조상들은 콩 세알 마음이 있습니다. 구약성경의 노아는 방주에 모든 생명체를 쌍으로 실었습니다. 피조물에게 마음을 쓰는 것입니다. 프란치스꼬 성인은 님을 사람에게만 아니라 사물에게도 님을 붙쳤습니다. 햇님과 달님, 그렇습니다. 이 시대의 참으로 필요한 영성은 님을 확대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비가 더럽게 온다고 내뱉습니다. 그러나 우리 신앙인은 비님이 오신다고 감사드립니다. 이것은 영성의 차이이며 감성의 큰 차이입니다.

최근에 봉은사 땅밝기 사건이나 동화사 동영상 사건은 우리 사회의 종교가 얼마나 포용의 영성이 부족한 가를 알 수 있습니다. 단군상을 부수고, 불교문화의 관광자원을 배척하고, 사찰에 들어가 우상숭배를 타파를 기도하는 종교적 광기는 집단적 광기 못지않게 참으로 무서운 것입니다. 중세 1400년 경 마녀사냥이 그렇습니다. 이것은 잘못된 신앙입니다.

우리 천주교는 어떻습니까? 본당마다 너무 배타적입니다. 서로 다름을 포용하지 않습니다. 전임신부가 한 사목적 작업을 후임신부가 하루아침에 부수어버립니다. 가톨릭이 보편적이라고 하면서 사제끼리 수도자끼리 평신도끼리 얼마나 배척하고 차별하고 유아기적 신심에 사로잡혀 각 본당마다 신앙의 자원을 소모하고 있습니까? 하느님의 온 창조계를 포용하는, 인간을 포함한 온 창조물의 상호 미션으로 연대지평을 넓히는 사목자들의 전환적 발상의 리더쉽이 필요한 시대입니다.

우리 가톨릭은 조직력이 강하며 소통이 한 번 불이 붙으면 잠재력이 강합니다. 신부님의 한 말씀은 공동체적인 의식의 잠재력이 메가톤급입니다.

우리 인간에게는 집단적 광기(예 중세 마녀사냥과 이스터섬)로 떨어질 수도 있지만 집단적 각성( 칠레 광부들이 지하 700m에서 캐낸)의 잠재력도 있습니다. 우리 인간 안에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신비에 싸인 베일에 가린 우주와 같은 커다란 각성이 있습니다. 이 역사적 위기의 시대에 이러한 각성을 일깨워는 신부님의 역할이야말로 생명평화의 힘이 된다고 확신합니다.
이 말씀을 드릴 수 있도록 기회를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nahnew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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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부모 가정 정부지원금 끊겨

[서울신문] "한부모도 서러운데 쥐꼬리만한 지원금까지 주지않다니 이 추운 겨울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막막합니다." 초등학교 4학년 딸과 유치원 다니는 다섯살짜리 아들을 둔 A(35·여·전주시 서신동)씨가 3일 관할 구청에 따지듯 하소연한 내용이다. A씨는 5년 전 남편과 사별한 뒤 제과점에서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꾸려가고 있다.
 

전국 10만여 가구에 달하는 한부모 가정들이 자녀양육비와 교육비를 제때 지급받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여성가족부가 복권기금으로 운용하는 한부모 가정 지원 예산을 일선 지방자치단체에 내려보내지 않아서 생긴 일이다.

●일부 시·군은 두달째 지급 못해

3일 여성가족부와 전국 지자체에 따르면 상당수 시·군·구들이 지난달 20일 한부모가족지원법에 따라 지급해야 할 한부모 가정 양육비(매월 1인당 5만원)와 교육비(고교 수업료 실비)를 주지 못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지난 6월말 기준으로 지원대상은 모두 10만 1830가구다.

충북도의 경우 12개 시·군 가운데 청주시, 충주시, 영동군은 지난 10월부터, 나머지 9개 시군은 11월부터 한부모 가정 양육비를 지급하지 못하고 있다. 부산시는 매월 9000여명의 한부모 가정에게 지급하는 양육비를 지난달에 예산 부족으로 일시 중단했다. 부산시는 올해 60억원의 예산이 필요하나 54억 5000만원밖에 확보하지 못해 5억 5000만원이 부족한 상태다.

전북 전주시도 지난달 3000여 가구의 한부모 가정에게 지급해야 할 양육비와 교육비를 한 푼도 주지 못해 구청마다 문의전화가 잇따르고 있다. 익산시는 매달 지급하는 2600여만원의 양육비를 지난 9월부터 시비로 우선 지원하고 있지만 11월에 주어야 할 6000여만원의 교육비는 지급하지 못해 시 담당자가 일선 학교에 일일이 전화를 걸어 양해를 구하고 있다. 한부모 가정 지원금 지급이 늦어지는 것은 관련부처가 예산을 확보하지 못해서다. 이 지원금은 국비 80%, 시·도비 10%, 시·군비 10%로 짜여져 있다.

●여가부 "이혼 늘고 대상 확대 탓"

주무부처인 여가부가 11,12월 두달동안 전국 지자체에 지원해야 할 관련 예산은 136억원. 하지만 10월 말 현재 32억원만 확보된 상태다. 여가부는 "최근 이혼율이 높아지면서 한부모 가정이 늘어난 데다 올해부터 지원대상이 만 10세까지에서 12세까지로 확대돼 예산증가 요인이 생겼다."면서"기획재정부에 추가로 104억원을 신청해 놓은 상태"라고 해명했다.

전주 임송학·서울 이재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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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한부모 가정은 더이상 애를 못낳으니 끊겠다는 거지?? 다문화는 죽어라고 지원해주면서 이건 끊잖아..다문화가정은 애 팡팡 낳잖아.. 그 애들 노예로 쓰기도 쉽지.. ... 여성이 결혼, 출산 안하려는거 분명히 알고있을꺼다..다 알면서도 계속 안해주는 것일꺼다..여성이 살기쉬운 사회로 가면 고학력 늘어나고, 전문직, 고소득직으로 갈테니까..그러면 지들에게 불리하겠지.. 어떻해서든지 여성을 그져 애낳고 그져 남자 옆에만 있는 변방의 사람으로 놔두고만 싶을 테니까.. 벌써부터 지원, 할인 끊긴사람 있다한다..-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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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 원했던 이봉창, 왜 일왕에 폭탄 던졌나

…판사가 제시한 압수 증거품은 70개가 넘었다. 명함, 안경, 김구가 사준 손목시계, 트렁크 열쇠고리, 수첩…, 압수 증거품 가운데 유난히 눈길을 끈 것은 체포 당시 이봉창이 소지하고 있던 사진이다. 사진은 모두 8장인데, 그 가운데 5장이 여자 사진이었다. '누구 사진일까? 가족사진? 총각이니까 사랑하는 애인 하나쯤은 있었겠지…' 그러나 의외였다. 친구에게 받은 여자 사진을 제외하면 모두 유곽에서 받은 창녀 사진이었다. -책속에서

 

 

1932년 1월 8일, 일왕에게 폭탄을 던져 일본의 간담을 서늘케 하고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던, 그리하여 조선 독립운동의 도화선이 되었던 '동경의거'의 주범 이봉창을 체포했을 당시 그의 소지품에서 나온 몇 장의 여자 사진들.

 

세 장은 임시정부가 있는 상해에서 이봉창이 상대했던 창녀들 사진이고 나머지 한 장은 동경의거를 계획하고 상해를 떠나 오사카에 머물던 이봉창이 의거를 결행하던 무렵에 상대한 수루라는 여곽의 수(壽)라는 이름의 일본 창기이다.

 

'혹시 일본 놈들이 이봉창의 이미지를 깎아내리기 위해 일부러 꾸민 것은 아닐까?'

 

<기노시타 쇼조, 천황에게 폭탄을 던지다>(너머북스)의 저자 배경식은 이봉창의 재판기록과 상신서 등을 읽던 중 이런 의심을 한다. 독립운동의 영웅인 이봉창이 의거 당시 지녔던 소지품이라 보기엔 아무래도 미심쩍기 때문이었으리라. 저자의 이런 의문은 이 책을 쓰는 계기가 된다.

 

친일적인, 너무나 친일적인 모던보이 이봉창

 

 

  
백범기념관(전시관2층)에서 만난 이봉창
ⓒ 김현자
이봉창

 

같은 독립운동가라지만, 안중근이나 안창호에 비해 이봉창은 내게 낯설었다. 그들에 비해 독립군으로서의 비중도 당연히 낮았다.(내게는) 이런 이봉창에 대해 알고 싶다는 생각이 깊어진 것은 지난해 10월, 백범 기념관에서 활짝 웃고 있던 그의 사진을 보고나서부터다.

 

 

'한인 애국단 입단서'를 가슴에 걸고, 고르지 않은 이빨을 사심 없이 드러내놓고 활짝 웃고 있는 그의 웃음은 한마디로 충격이었다.

 

'죽음을 앞두고 어떻게 저런 웃음이? 나라의 독립이 소중하고 절박하기로서니 죽음을 작정한 인간이 어떻게 저렇게 웃을 수 있는 걸까? 이봉창은 대체 어떤 사람일까? 어떻게 자랐으며 어떤 계기로 일왕에게 폭탄을 던지게 되었을까? 보통 용기로는 힘든 일인데.'

 

사진에는 상해에서 김구와 헤어지면서 마지막으로 찍었다는 설명이 붙어 있었다. 제국의 상징인 일왕을 제거함으로써 우리 민족의 독립의지와 자존을 세상에 알리겠다는 두 사람의 마지막 만남. 그 비장함은 오죽했으랴. 생각이 여기에 머무는 순간 이봉창의 웃음에서 죽음까지 초월한 비장함만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후 시시때때로 이봉창의 죽음을 초월한 웃음이 자꾸 떠올랐다. 그에 대해 좀 더 알고 싶어졌다. 하지만 백범 기념관에서 만난 것과 비슷한 기록들 뿐. 그 후 까마득하게 잊고 있다가 1년 만인 지난 10월, 이 책이 출판되었기에 푹 빠져 읽고 더욱 강하게 기억하게 되었다.

 

사실, 몇 페이지 넘기지 않아 애국자 이봉창에 대한 나의 기대는 산산이 부서졌다. 이 책에서 만나는 이봉창은 너무 의외였다. 정말 이랬을까 싶은 마음이 자꾸 들 정도였다.

 

3·1운동 당시 이봉창은 무라타 약국의 점원으로 일하고 있었다. 이봉창이 3·1운동에 대해 언급한 것은 1932년 9월 16일에 있었던 첫 공판 때뿐이다. 일본인 관선 변호사가 "그것을 듣고 어떤 소감을 가졌는가?"라고 묻자 "아무것도 의식하지 못했다"고 답변했다. 이처럼 이봉창은 3·1운동에 대해 알고는 있었지만 무엇 때문에 그러한 운동이 일어났는지 알지 못했으며, 직접 참여하지 않고 방관자로 지켜보기만 했다.-책속에서

 

3·1운동에 대한 그의 무관심을 보면 독립운동의 영웅이 어찌 이럴 수 있나 싶다. 의식이 조금이라도 있는 인간이라면 전국적으로 일어난 3·1운동을 계기로 마땅히 조국 독립의지로 활활 불타올라야 하건만. 3·1운동 당시 이봉창의 나이 19세(그는 1901년생이다). 그럼에도 글쎄? 눈치코치조차 없는 인간이 아닌가!

 

그런데 이봉창을 좀 더 깊이 알면 어느 정도는 이해가 된다. 그의 부친은 '일본의 조선 식민지화'가 호재가 되어 부자가 되었다. 여자와 술, 도박을 좋아한 나머지 급기야 몰락하고 이봉창은 가난한 노동자의 길을 간다. 하지만 일본인들과 자주 어울렸으며 여자와 술, 도박을 좋아한 부친처럼 이것들을 즐기는 등 향락적인 모던보이로 살아간다.

 

일본 친구들의 도움과 유창하게 구사할 수 있는 일본어 덕분에 그는 일본인 회사에 취직, 조선인들과 월등하게 비교되는 급료를 받는다. 그래도 늘 부끄러운 것은 조선인으로 태어났다는 사실이었다. 사고방식이 이 정도니 일본의 조선인에 대한 차별정책이 불만스럽지만 그런 일본이 원수가 아니라 일본인이 되어 대접받고 싶다는 열망이 가득할 뿐이었다.

 

때문에 친일적인, 너무나 친일적인 그는 진정한 황국신민이 되어 차별도 받지 않고 떳떳하고 자랑스럽게 살고 싶어 한다. 그리하여 일본으로 건너가 조선인들과는 일절 단절, 심지어는 함께 간 조카딸마저 외면하면서 일본인 '기노시타 쇼조'로 철저하게 살기도 한다. 일본인이 되고 싶은 열망이 대단했다고 밖에 볼 수 없는 대목이다.

 

일왕을 보는 것만으로도 황송한 이봉창, 왜?

 

천황즉위식은 평소에 천황 얼굴을 한 번도 보지 못한 일반 백성들에게는 평생 한번 밖에 볼 수 없는 굉장한 구경거리였다. 고쿄에서 도쿄로 가는 천황 행렬을 보기 위해 10만이 넘는 인파가 몰렸고, 교토역에서 고쇼까지의 행렬에는 무려 60만의 인파가 몰렸다고 한다. 이때 이봉창의 나이는 스물일곱이었다.…이봉창은 천황의 얼굴을 봐야만 제대로 된 진짜 일본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비록 자신이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가난한 노동자이지만 돈을 빌려서라도 반드시 천황의 얼굴을 보겠다고 다짐한다. -책속에서

 

그리하여 그는 평소 친하게 지내던 일본인 두 명과 함께 일왕의 행렬을 보려고 다니던 직장까지 접고 오사카를 떠난다. 이때가 1928년 11월. 이런 그는 1932년 1월 8일 일왕을 향해 폭탄을 던진다. 일왕의 행렬을 보는 것을 백성의 의무이자 영광으로 생각한 이봉창이 일왕을 향해 폭탄을 던지게 된 사연에는 어떤 비밀이 숨어 있을까?

 

 

  
<기노시타 쇼조, 천황에게 폭탄을 던지다>
ⓒ 김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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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모두 4부. 오직 일본인이 되고 싶었던 일제강점기의 모던보이 이봉창이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황송해 마지 않던 일왕을 향해 폭탄을 던질 수밖에 없는 이유들을 파헤친다.

 

저자는 이봉창의 상신서나 재판기록을 읽으며 품었던 의문을 풀면서 독립운동의 영웅인 이봉창에 앞선, 식민지시대의 청년인 인간 이봉창을 우리에게 데려온다.

 

 

 

이제까지 우리에게 알려진 이봉창은 김구 선생의 <도왜실기>를 통한 일방적인 기록을 통해서다. 저자는 이봉창의 옥중수기인 상신서나 당시의 재판기록과 관련 자료들을 근거로 이봉창의 출생과 성장, 향락적이고 소비적인 모던보이 이봉창, 김구와의 만남과 동경 의거 등에 대해 순차적으로, 하지만 긴박감 있게 들려준다.

 

책에는 이봉창의 옥중수기인 상신서가 실려 있다. 최근 몇 년 전까지 일반인들에게 공개되지 않던 그에 대한 재판기록과 상신서이다. 상신서를 통해 만나는 일제강점기 우리의 독립의지와 당시의 상황, 이봉창이 기술한 김구 선생의 면모, 이봉창의 마음속 고뇌, 일본의 당시 풍경 등이 잘 드러나 있다. 혹자들에게 흥미로운 기록이 되리라.

 

지난해 백범기념관에서 이봉창을 처음 만난 이후 죽음을 초월한 웃음이 시시때때로 떠올랐던 것처럼, 이 책을 읽고 난후, 책을 통해 만난 '인간 이봉창'의 면면이 마치 가슴에 폭탄이 던져진 것과 같은 충격과 파장으로 자꾸 생각난다. 그리하여 만나는 사람마다 붙잡고 인간 이봉창을 만날 것을 권하곤 한다. 책을 읽을 또 다른 사람들도 아마 나처럼 그러리라.

 

"…평가를 위해 제대로 따져봐야 할 것은 임시정부 OO를 역임했다는 경력이 아니라, 임시정부 OO로서 실제로 어떤 일을 했는가, 즉 과정에 대한 꼼꼼한 관찰이다. '결과'보다는 '과정'에 초점을 맞춘 역사가 서술될 때 비로소 영웅과 지사의 인간적인 면모와 삶의 진실을 드러낼 수 있다. 그것이야말로 살아있는 독립운동사이고 인간의 역사이다. 그래서 나는 '영웅 신화'가 아닌 삶을 고민하는 인간의 역사로서 독립 운동사를 쓰고 싶었고, 이봉창은 그러한 나의 문제의식을 충분히 보여줄 수 있는 인물이라고 생각했다."-저자의 말 중에서

 

덧붙이는 글 | <기노시타 쇼조, 천황에게 폭탄을 던지다>(배경식지음/너머북스/2008.10.18/13000)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012094

 

 

다른 의사님들 보다 더 가깝게 느껴지고.. 멋지고 매력있으신분.. 나만 이렇게 느낀게 아니더군일제시대때도 꾸밀 줄 아는 모던보이투쟁가 가 있었는데..지금은 구질한 투쟁가 남자들만 득실댄다..ㅜㅠ 나가서 전단지 좀 돌려보시구랴.. 사람들 잘 받아가는지?? 누가 그러던디.. 아는 운동권 오빠가좀 생겼었는데..전단지 돌리면 다 받더라는... ㅠㅠ 감성과 매력을 파는 시대가 왔는데.. 이미 맨 앞자리도 1에서2로 바뀐지 오래인데.. 구질한 아저씨들은 여전히 배고픈 모습을 무기로 시민에게 다가간다..걱정된다.. 아가 들 울릴까봐-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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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 연말 클럽파뤼 어떠시긔

 

니들이 고생이 많다!

 Ver 2010

 

2009년 11월7일  삼국을 위한 위로공연

 

2010년 2탄으로 돌아왔긔 ㅋ

 

월간좃선으로 인해 심하게 스트레스 받고 있는 요즘!

 

삼국회원들을 위해 올연말 클럽퐈뤼~!를 제안해보긔

 

공연기획은 홍대앞네트워크에서 제안해주셨긔

 

일년에 한번 놀때도 있어야 하는거 아니겠긔????ㅋㅋㅋㅋㅋ

 

 

공연방식은 홍대 인디밴드 4팀 와 공연후 함께 뒷풀이하는

 

하우스파티형식으로 제안해주셨긔~!!

 

입장료는 1만원~5천원정도로 생각하긔

(대관료및밴드섭외비)

 

삼국님들의 의견을 여쭤보긔

 

1. 하자

2.안하자

 

한다면날짜는??

(공연을 하려면 지금 대관을 해야한다고 하긔)

12월23일

12월24일

12월29일

12월30일

12월31일

 

전... 24일을 추천합니돠 ㅋ

 

 

 

 

 

 

섭외예정인 밴드 국카스텐,시베리안허스키,폰부스,넘버원코리안

(추가및 변경가능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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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니들이고생이많다 사진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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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는 영역을 넓혀야 하고  세상과 소통해야 한다.. 시대를 읽을 줄 알고 다가갈 줄 알아야 한다 어짜피 포스터는 홍대 전역에 붙여질것이고.. 굳이 삼국 아니여도 공연 관심있는 젊은이들  올것이다.. 요즘 젊은애들 예전처럼 시대에 대한 비판이 없어 라면서 한탄하기 보다  변해버린 세상을 이젠 인정하고 그들과 가까워지려는 노력을 좀 했으면 좋겠다.. 아직도 좌파, 우파 nl/pl(사실 나도 짜증난다.. 그놈의 계열타령-_-)이 생소한 애들에게 쌍팔년도 투쟁가요로만 다가가는짓 하고있는데..내가 다 손발 오그라든다 진짜..

내 소원은 삼국공연에서 델리스파이스 보는것이다..ㅠㅠ 노인구국결사대 를 불러주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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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회원들이 뿔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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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 소울드레서 쇄골앓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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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도현 교토에서 '강제연행' 박물관 재건 콘서트

11월 27일 일본 교토(京都)회관에서 윤도현 밴드(이하 YB) 콘서트가 열린다. 한국가수가 일본 내에서 공연을 하면 상당한 수익을 내기 위해 대개 도쿄에서 하기 마련인데 YB는 도쿄가 아닌 쿄토에서 콘서트를 개최한다. 게다가 고즈넉한 교토의 분위기와 YB같은 락밴드는 좀처럼 어울리지 않게만 느껴진다. 그런데 왜 굳이 쿄토를 선택했을까?

윤도현밴드의 교토 콘서트 포스터.



YB의 이번 콘서트는 일본 교토에 있는 탄바(丹波) 망간기념관 재건을 위한 자선 콘서트다. 탄바 망간기념관은 일본 ‘탄바(丹波)’라는 지역에 있는 기념관이다. 이곳은 1900년대, 약 100년 동안 1만5000~2만개의 갱도가 만들어질 정도로 망간이 다량 매장되어 있는 일본 제1의 망간 광산지였다. 산업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메이지시대에 채광이 시작되었고 제2차 세계대전 발발 후 대량으로 채굴됐다. 철을 단단하게 하기 위해 사용되는 망간은 철에 보통 3~8%정도 섞는데 총이나 대포를 만들 때는 25~35%까지 섞는다. 망간 함유율이 낮으면 대포를 쏜 후 화력으로 포신이 녹아버리기 때문이다.

망간기념관 외관.



당시 단기간 내에 필요한 망간을 채굴하기 위해 주로 조선인과 중국인이 강제동원되었다. 강제 동원으로 단파지역으로 온 한국인 중에는 한국에서 끌려온 사람들도 있었지만 일본 내에 거주하고 있던 사람들도 상당수였다고 전해진다. 약 3000명이 가혹한 채굴 노동을 강요당했고 그곳에서 일하던 사람들은 전쟁 후에도 후유증인 진폐증으로 고통 받았다. 진폐증은 직업병의 하나로 공장 등에서 발생한 먼지가 폐에 끼어 폐섬유증이 생기면서 호흡 기능에 장애를 일으키는 병이다. 숨이 차고 심장 기능 장애를 일으키며 체력이 빨리 소모되고 식욕 부진이 동반하기도 한다.

망간기념관을 찾은 사람들.



‘탄바 망간기념관’의 초대관장인 고(故)이정호씨 역시 이 진폐증으로 고통 받았다. 경제적으로나 신체적으로나 어려운 환경 속에서 1989년에 탄바 망간기념관은 개관했다. 그것은 일제에 강제 노동을 강요당하는 등 기본적 인권조차 박탈당하면서 비참하게 살아왔지만 억압한 가해자와 억압받은 피해자가 있었다는 역사만큼은 잊지 말고 전해 나가야 할 것이라는 고인의 강한 의지가 있었기 때문에 이루어 질 수 있었던 것이다. 고(故)이정호씨가 세상을 뜬 후 그의 아들 이용식씨가 그 뜻을 물려받아 16년 동안 운영해왔다. 개관 초기에는 기부금을 받기도 했지만 운영비에 보태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매년 500만~600만 엔 정도의 적자를 감당하지 못해 2009년 5월 31일에 결국 폐관하게 되었다. 개관한지 딱 20년째 되는 해였다.

망간기념관에 대해 기념관 관계자가 설명하고 있다.



일본 전국의 약 5000 개의 역사기념관과 박물관 가운데 탄바 망간기념관은 전쟁피해자가 직접 세운 유일한 ‘강제연행’ 기념관이다. 독일과 달리 일본에는 ‘전쟁에 의한 가해’의 역사가 남겨진 박물관 혹은 기념관이 한 곳도 없다. 그렇기 때문에 탄바 망간기념관의 폐관은 더욱 안타깝다.

2008년 말 폐관 소식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면서 기념관을 지키려는 일부의 노력이 있었으나 널리 확산되지 못했다. 그러나 재일동포들 사이에서는 ‘우리’의 역사를 지키려는 노력을 해 왔으며 올해 5월 ‘탄바 망간기념관 재건위원회(이하 재건위원회)’를 발족하게 됐다. 그들의 기념관 재건과 운영 이념은 다음과 같이 건설적이고 미래지향적인 한일관계에 기반을 두고 있다.

하나, 일본의 식민지 지배와 전쟁에 의한 가해의 역사를 남기고 전해간다.
하나, 재일동포와 피차별부락(被差別部落) 사람들이 겪은 피해의 역사를 남기고 전해간다.
하나, 역사를 직시하고 바르게 대응하여 일본과 한반도 사람들 간의 진정한 화해와 우호를 구축한다.


탄바 망간기념관을 재건하기 위해서는 지금 당장 1000만 엔이 필요하다. 이에 YB는 흔쾌히 공연을 수락했고 일본 교토에서 공연을 하게 됐다. 그리고 이날 공연의 수익금 전부를 재건위원회에 기증하기로 결정했다.

수십 년 동안 일본과 한국에서 차별 받아온 재일동포들이 외롭게 ‘우리’의 역사를 지켜 나가고 있다. 그런 그들에게 우리는 미안함과 고마움을 느끼곤 한다. 이젠 우리가 말할 차례다.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해서 미안하다고. 그리고 이젠 외롭지 않을 거라고.

일본에서/박성철/인터넷 경향신문 대학생기자 (웹場 baram.kh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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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조선>을 패러디한 <월간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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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소울드레서 30m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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