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게시물에서 찾기2010/11

29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10/11/30
    박노해 “진보도 후지고 매력 없으면 지는 겁니다”
    ♨성애의혁명
  2. 2010/11/29
    이원진&류금덕-시작되는연인들을위해Live
    ♨성애의혁명
  3. 2010/11/28
    웨스트라이프,Westlife.-.Seasons.In.The.Sun.Live
    ♨성애의혁명
  4. 2010/11/28
    시대유감-서태지 게릴라 콘서트
    ♨성애의혁명
  5. 2010/11/27
    지금 딱 진보정당들의 모습이다.. 이노래가 예언했다 진짜
    ♨성애의혁명
  6. 2010/11/27
    삼국 연말 클럽파뤼 어떠시긔
    ♨성애의혁명
  7. 2010/11/27
    삼국회원들이 뿔났습니다.!!
    ♨성애의혁명
  8. 2010/11/25
    윤도현 교토에서 '강제연행' 박물관 재건 콘서트
    ♨성애의혁명
  9. 2010/11/25
    명품 가방 들고 시위 나선 공산주의자
    ♨성애의혁명
  10. 2010/11/24
    <월간조선>을 패러디한 <월간삼국>
    ♨성애의혁명

박노해 “진보도 후지고 매력 없으면 지는 겁니다”

 

[한겨레가 만난 사람] 12년 만에 새 시집 낸 박노해씨
98년 특사뒤 2~3년간 시 못쓰고 고뇌의 삶
5000여편 중 300여편, 젊은층 겨냥 시집 내
“실패한 혁명가가 발로 쓴 목숨 건 희망찾기”
 
 
한겨레 이인우 기자 메일보내기 김경호 기자기자블로그
 
 
» 직접 만나본 박노해는 긍지가 높은 사람이었다. 청년 박기평은 더욱 그러했으리라. 사형선고를 받고 ‘영광입니다’라고 말한 기개에 감동해 그 학생운동가(김병곤)를 찾아가 교유를 청한 것도 ‘노동자’인 그였다. 노해(노동해방)란 필명을 지은 것도, 노동자가 직접 시를 쓰고 시집을 낸다는 발상도 그의 것이었다. 스스로 혁명가의 길로 나아간 자생적 사회주의자였던 그는 지식인 지인들이 어려운 원서를 번역해 주며 사회과학 이론을 소개해 준 것에 깊이 감사하면서도 ‘누가 박노해를 키웠다’는 식으로 말해지는 세태에 대해 가벼운 혐오감을 표시했다. 김경호 기자 jijae@hani.co.kr
 
‘노동자 시인’ 박노해가 12년 만에 대중들과 만나고 있다. 그의 새 시집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느린걸음 펴냄)는 의식 있는 젊은이들 사이에 입소문을 타고 조용히 베스트셀러가 되고 있다. 지난달에는 세계 곳곳의 분쟁과 재난 현장에서 평화활동을 펼치며 찍은 사진 전시회 ‘나 거기에 그들처럼’을 열었다. 관람객은 거의 대부분 젊은 청년과 여성들이었다.

304편의 시를 수록한 새 시집은 <노동의 새벽>과 함께 박노해를 이야기할 때마다 빠짐없이 언급될 것 같다. 그만큼 박노해의 ‘문학성’과 ‘사상’의 핵심을 가득 담고 있다. ‘들어라 스무 살에// 혁명가가 살지 않는 가슴은/ 젊음이 아니다’와 같은 아포리즘은 시대정신을 찾아 방황하는 젊은이들에게 강한 흡인력을 지닐 듯하다. ‘삶은 기적이다/ 인간은 신비이다/ 희망은 불멸이다// 그대, 희미한 불빛만 살아 있다면//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라는 표제시는 삶의 의미를 좇는 모든 세대의 화두가 됨직하다. 그에 대한 다양한 평가에도 불구하고 박노해는 여전히 탁월한 시인이었다.

하지만 12년 만에 사상가의 면모까지 갖추고 나타나 ‘새로운 진보’와 ‘희망의 인간’을 외치는 그와 나누고 싶은 대화가 어디 문학뿐이겠는가. 스스로를 ‘실패한 혁명가’라고 말하는 그에게 기자는 묻고 싶었다. ‘당신에게 진보는 무엇이고, 당신이 도달하고자 하는 인간의 땅은 어디입니까?’

인터뷰/이인우 기획위원 iwlee21@hani.co.kr

-새 시집을 내기까지 5000여편을 쓰셨다고요. 어떻게 그렇게 많이 쓸 수가 있단 말입니까?(웃음)

“쌓인 게 많아서 그런 거겠죠(웃음). 1998년 특사로 석방돼 나온 처음에는 시가 써지질 않더라고요. 그래도 매일 독백 같은 뭔가를 꾸준히 썼습니다. 수행하듯이. 시를 찾아 몸부림하기보다 시대를 끌어안고 고뇌하면서 2~3년이 지나니까 조금씩 시가 나오더군요. 그때부터는 하루도 시를 쓰지 않은 적이 없습니다.”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를 자평하신다면?

“이 시집은 역사상 초유의 시집입니다. 이 시집의 시공간은 넓고도 깊습니다. 단순히 여행자로서가 아니라, 실패한 혁명가가 인간다운 삶의 길 찾기를 위해 발로 쓴 21세기 지구시대 유랑의 시입니다. 사랑의 순례의 시이자, 목숨 건 희망 찾기의 시입니다. 국경을 넘어 인류 전체의 삶의 문제를 끌어안고 두 발로 직접 현장을 뛰며 지구마을 민초들과 가슴으로 통한 이런 시의 지평은 역사상 일찍이 없었을 것입니다. 제가 겪은 모든 한국의 경험을 세계와 소통하며 평화나눔의 실천 속에서 낳은 이 시집에 큰 자부심을 가집니다. 시의 수준은 각자 보기 나름이겠지만요.”

 

-좋은 시가 참 많던데요, 수준도 상당히 높습니다.(웃음)

“가슴이 살아 있군요.”

-처음부터 젊은이들을 주 독자로 겨냥해서 편집한 것입니까?

“네, 저는 철저하게 젊은이들만을 바라봅니다. ‘젊은이’라는 것은 생물학적 나이가 아니죠. 10대라도 겉늙은 친구가 있는가 하면, 나이가 들어도 가슴에 시가 살아 있고, 탐험가가, 반항아가, 혁명가가 살아 있다면 그 사람은 젊은 사람이죠. 나이 들수록 기품이 있고 향기가 나는 사람, 그가 젊은이입니다. 5000편의 시에서 300여편을 추려낸 편집자도 제가 아니라 20~30대 젊은이들입니다.”

-시집에 통상 붙는 서문이나 발문, 평문 같은 것이 전혀 없더군요.

“서문은 하도 하고 싶은 말이 많아서 안 썼습니다. 그 말들은 2014년 내지 2015년쯤에 출간할 예정인 책에 담을 생각입니다. 삶의 총체적 진보를 지향하는 새로운 진보에 대한 책인데요. 지금 몇 천 페이지가 넘는 분량을 500여쪽 정도로 줄이려고 다듬는 중입니다. 발문은 써 줄 사람이 없어서 안 실었구요.”

-이제 ‘혁명가 박노해’에 대해 얘기해 볼까요? 스스로를 ‘실패한 혁명가’라고 규정하시던데, 무엇을 실패했다는 건가요?

군사독재 시절에 우리는 사회주의 혁명을 이야기했죠. 사회주의가 인간 해방의 지름길이라고. 거의 대부분이 공감했어요. 그런데 사회주의 체제가 제가 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사노맹) 사건으로 붙잡혀 사형을 구형받던 날 무너졌습니다. 대안으로 생각했던 체제의 붕괴를 저는 결국 현실로 받아들였습니다. 혁명가라면 다른 진실이 현실로 나타났을 때 정직하게 인정해야 합니다. 물론 숱한 변절자들이 있었죠. 그렇게 변절한 분들 때문에 가장 큰 피해를 본 것이 접니다.”

-소련이나 동유럽 사회주의의 실패가 곧 한국 혁명가 박노해의 실패는 아니지 않았습니까?

“그 어법은 잘못된 것입니다. 우리는 사회주의 진영 자체를 일체로 생각하지 않았습니까? 나만은 실패의 대오에서 빠진다는 말은 성립되지 않습니다. 사회주의 체제를 희망이라고, 대안체제라고 생각했던 저에게 사회주의 체제의 실패는 회피하기 어려운 현실이었습니다.”

-사회주의가 가진 인간 중심의 가치는 여전히 인류의 이상이 아니겠습니까?

“돈이 중심이라는 의미의 자본주의라는 말에 모멸감을 느끼지 않는 사람은 영혼을 점검해 봐야 합니다. 저는 사회주의가 표방하는 가치와 정신만은 영원히 가져갈 것입니다. 그런데 전 이제 ‘주의자’가 아닙니다. ‘위주자’가 되자고 합니다. 한 가지 주의로 갈 수 있을 만큼 사회가, 인생이, 삶이 간단하지 않습니다. 고정된 이념의 틀로서만 사회주의를 얘기한다면, 나는 생태주의, 여성주의, 영성주의자입니다. 전통과 아날로그와 농촌과 작은 공동체들의 삶의 원칙과 도덕가치 같은 존경할 만한 권위를 존중한다는 점에서는 오히려 진정한 보수이기도 합니다.”

-왜 그런 자신의 생각을, 사상을 좀더 적극적으로 펼치지 않나요?

“제가 12년 동안 침묵했던 것은 편승하고 싶지 않아서입니다. 과거를 팔아 오늘을 살고 싶지 않았습니다. 신자유주의와 이명박 대통령을 조지기만 하면 진보가 되는 세상입니다. 그런 기득권을 누리며 민주정부 10년 동안 안주한 진보의 결과가 과연 무엇인지 반문합니다.”

-‘실패한 혁명가 박노해’가 희망하는 혁명, 대안의 진보는 무엇인가요?

“이 인터뷰에서 그 모든 얘기가 가능할까요? 오해받기 딱 좋겠죠.”

-2014년쯤에 나온다는 책에 박노해의 사상이 집대성되는 건가요?

“그것이 제가 살아남아 있는 이유이고, 많은 옛 동지와 저를 믿고 신뢰했던 분들에게 제가 갚아야 할 역사적 부채라고 생각합니다. 지난 12년 동안 침묵하고 절필한 이유도 실패한 혁명가로서 책임을 지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 책에 그 답을 담을 겁니다. 지금으로선 내가 살아내지 않은, 경험하지 않은 진리는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진리실험을 하고 나서 이야기할 겁니다.”

-그래도 조금 구체적인 설명을 해주십시오.

“약간 다른 이야기인데, 감옥에서부터 구상해 오고 10여년째 준비해오고 있는 생태적이고도 문화적이고, 영성적이면서도 글로벌한 마을을 만들 구상을 하고 있습니다. 내년쯤이 될까요? 삶의 총체적 대안을 마을 규모로 구현해볼 생각입니다. 문화적으로 아름다운가, 영적인가, 글로벌한가, 자율성과 개인의 다양성이 활짝 살아 있는가, 자급자족하는가, 보편으로 적용할 수 있는 모델인가, 이런 걸 기준으로 보고 있습니다.”

-지켜보겠습니다. ‘박노해식 진보’가 어렴풋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새로운 진보는 ‘삶의 총체적 진보’이고, 영혼을 가진 인간으로서의 ‘영적 진보’이고, 사회구조악을 직시하는 사회과학적 진보이고, 자연친화적이고 대지에 뿌리박은 생태적 진보이고, 지구시대를 살아갈 글로벌 진보입니다. 지구 차원에서 가난한 이웃들과 연대하며 문화적 폭을 넓혀가는 것이 또한 최고의 남북통일 준비이기도 합니다.”

-독자들을 위해 좀더 쉽게 풀어주신다면?

그런 진보를, 생각을 품어내지 못하면 낡고 후진 것이고, 후지면 지는 것입니다. 촛불집회 때 젊은이들을 만나보니 하나같이 ‘이명박 한참 후졌어요’라고 해요. 하도 많이 듣다보니 나중에는 시처럼 들리더군요. ‘후지면 지는 거다, 적을 타도시킬 수 없는 시대에는 낙후시켜라!’ 진보도 마찬가지입니다. 후지고 매력 없으면 지는 겁니다.”

-‘영적인 진보’를 얘기하셨는데요, 박 시인의 사상은 종교적 색채도 띠는 것 같습니다.

“성직자 시스템의 기성 종교, 즉 예수 물산회사나 부처 물산회사는 다 망할 겁니다. 예수가 부처가 종교를 만들었습니까? 저는 어떤 종교도 거부하지만, 예수나 붓다 같은 분들은 제 선배님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제가 준비하고 있는 책이 출간되면 진보든 보수든 기존 이념 진영과 종교는 물론이고 그 어떤 자잘한 기득권이라도 가진 사람들에게 저는 ‘공공의 적’이 될 것 같습니다. 학교도, 심지어 노동자들에게도요. 저는 젊은이들에게 말합니다. 일자리 기대하지 말라고. 헛된 희망에 매달리지 말고 반쯤 농사짓고 반쯤 예술하며 살아가자고요.”

-(기대한다고 해야 할지, 위험하다고 말해야 할지 잠시 숨을 골랐다.) 박 시인이 이끌고 있는 ‘나눔문화’의 회원이 얼마나 됩니까?

“2000여명입니다. 기존의 진보 패러다임으로는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죠. 어떤 어젠다에 대해서도 열심히 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진정성 있는 사람들과 몇 백 년 가는 숲을 만들어 가고자 합니다.”

-제가 박노해를 만난다고 하니 입을 삐죽 내미는 친구들이 있더군요. 진보진영에서조차 박 시인을 무시하는 경향이 꽤 있다는 걸 아시지요?

“제가 답할 사안은 아닌 것 같습니다. 명문대 나온 지식인들은 절대로 모르겠죠… 언젠가 삶이 판단해주지 않을까요? 제발 그렇게 자신이 진보라고 생각하면서 십년, 이십년 끝까지 가주기만 한다면 제가 오히려 고마워해야 하겠지요.”

-진보, 보수를 떠나 한국 지식인사회의 ‘엘리트주의’를 지적하는 건가요?

“종합적인 거 아닐까요? 현실 사회주의에 대해서 정직하게 (실패했다는) 선언을 하니까 이념적으로 변절이라고 하는 분들도 있을 것이고, 또 제가 만만하잖아요? 무슨 학연이 있습니까, 연줄이 있습니까? 저와 함께 사노맹을 했던 서울대 출신들에게는 어떤 비판도 나오지 않잖아요?”

-어떤 젊은이들에게 박 시인은 상업화된 체 게바라 이미지처럼 낭만적 우상으로 비치고 있지는 않을까요?

“전혀 그렇게 생각 안 합니다. 두 번의 사진전을 열었는데, 사인을 해드리면서 많은 얘기를 나누는데, 오히려 386 세대들에게 그런 경향이 있지, 젊은이들은 그렇지 않았어요. 그들은 (저에 대해) 두려움도 없고, 경외감도 없어요. 있는 그대로 저를 바라봅니다.” 그러면서 그는 작가와의 대화를 통해 만난 젊은 세대의 그에 대한 ‘평’을 이렇게 전했다. “이것이 진리다, 이것이 옳다, 이렇게 살아라 하고 얘기하는 사람은 많지만, 나와 같이 살자, 진리를 살자고 하는 사람은 처음이었다고요. 아마도 시대의 어른들이 가시면서 텅 빈 마음의 공허, 세상에 믿을 곳 없다는 마음이 있어서가 아닐까요?”

-마지막 질문입니다. 박노해는 누구입니까? 사상의 전파자? 영구 혁명가? 글로벌평화운동가? 위대한 시인? 어떤 얼굴이 가장 박노해다울까요?

“저는 한번도 무엇이 되겠다는 생각은 없었습니다. 시인이 되기 위해 시를 쓴 것이 아니고 사진작가가 되기 위해 사진을 찍은 것도 아닙니다. 현장에서 너무 절실하고 너무 필요하니까 시를 쓰고 카메라를 들었을 뿐이죠.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가장 훌륭한 계획자는 자신이 아니라 하늘인 것 같습니다. 믿음을 잃어버리면 사람이 계획을 하게 되는데, 큰 역사와 삶 속에서 작은 계획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계획은 아주 한정되게 세우고 원칙을 지키면서 사랑과 영혼이 부르는 대로 가다보면 시인이 되기도 하고 사진작가가 되기도 하고 또 그 무엇이 되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저는 내일이 없는 사람입니다. 내일이 없기 때문에 매 순간을 불사르면서 살고 있고, 후회도 없습니다. 사형 구형을 받았을 때도, 마지막으로 시원한 맥주나 한잔 마시고, 잠깐 기도하고 생각을 정리할 수 있는 시간만 주어진다면 후회 없이 죽을 수 있겠다는 마음이었습니다. 지금도 그런 마음엔 변함이 없습니다.”

10월22일 저녁,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문득 생각이 났다. 나에게도 박노해는 한 시대의 상징이자 아이콘이었다는 사실을. 그러자 누구를 향한 것인지 모를 연민이 밀려들었다. 급속한 세상의 변화 속에 내던져진 박노해는 그런 자신의 존재를 지나치게 의식하지 않으면 안 되었고, 한때 그와 같은 방향을 바라보던 사람들은 그런 그를 지나치게 백안시한 건 아니었는지…. 이제 박노해는 새로운 진보의 전파자로서 부지런히 스스로를 ‘만들어’ 가는 중인 듯했다. 저렇게 스스로를 가열차게 단련하다가, 추종자들을 이끌고 영성의 바다로 나가는 ‘박해받는 예언자’가 되는 건 아닌지 걱정 아닌 걱정이 들 정도로. 어느 쪽이 되든 그가 진심으로 희망을 말하고, 인간을 말하고, 사랑을 말하는 한, 우리 사회가 그를 한 시대의 자산으로 소중하게 키워 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아끼고 가꾼다는 것은 사랑과 함께 비판과 감시로 동행하는 것이니, 한때 우리의 눈물이자 희망이었던 ‘노동의 새벽’의 시인도 아주 먼 바다로 나가지는 않지 않겠는가.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446443.html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이원진&류금덕-시작되는연인들을위해Live

세상에 이곡을 라이브로 듣다니 ㅠㅠ 눈물날뻔

근데 기분이 이상하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웨스트라이프,Westlife.-.Seasons.In.The.Sun.Live

 

 

 

 

 

season in the sun



Goodbye to you my trusted friend
We've known each other since we were nine or ten
Together we've climbed hills and trees
Learned of love and abc'
Skinned our hearts and skinned our knees


잘있어, 나의 가장 친한 친구야..

우린 9살인가 10살때부터 친구였었지

언덕과 숲을 함께 뛰놀며

사랑과 글을 배웠지

마음을 다치기도 하고 무릎도 다치면서 말야





Goodbye my friend it's hard to die  
When all the birds are singing in the sky  
Now that spring is in the air
Pretty girls are everywhere
Think of me and I'll be there


잘있어 내 친구야 죽기엔 너무도 힘들어

새들의 노래가 하늘을 가득채우는 지금,

이제 봄 기운은 하늘에 가득하고

어딜가나 예쁜 소녀들이 보이지

네가 내 생각을 하면 내가 찾게갈께





We had joy we had fun we had seasons in the sun
But the hills that we climbed were just seasons out of time


우린 즐겁고 재밋는시간들을 보냈어 그 태양빛 찬란한 계절을.

그러나 우리가 놀던 언덕은 시간에 바래져 가는구나





Goodbye Papa please pray for me
I was the black sheep of the family
You tried to teach me right from wrong
Too much wine and too much song
Wonder how I got along


잘있어요 아빠 절 위해 기도해 주세요

전 가족 중에 문제아였죠

아빤 절 잘못된 길에서 옳은 길로 가르치려 하셨죠.

너무도 많은 술과 너무도 많은 노래들

나는 어떻게 살아온 걸까요?





Goodbye papa it's hard to die
When all the birds are singing in the sky
Now that the spring is in the air
Little children everywhere
When you see them I'll be there


잘있어요 아빠, 죽기엔 너무도 힘드네요.

새들의 노래가 하늘을 가득채우는 지금,

이제 봄 기운은 하늘에 가득하고

어딜가나 어린아이들이 뛰놀지요.

아빠가 그 아이들을 볼때면 제가 그 곳에 있을 거에요.




We had joy we had fun we had seasons in the sun
But the wine and the song like the seasons have all gone


우린 정말 즐거웠지요, 그 태양빛 찬란한 계절을.

그러나 그 술과 노래처럼 그 시간들도 모두 가버렷네요.




We had joy we had fun we had seasons in the sun
But the wine and the song like the seasons have all gone


우린 즐거운 시간을 보냈죠, 태양빛 가득하던 그 계절을

그리나 와인과 노래 처럼 그 시간들도 모두 가버렸네요.





Goodbye Michelle my little one
You gave me love and helped me find the sun
And every time that I was down
You would always come around
And get my feet back on the ground


안녕, 나의 사랑하는 미셸

당신은 나에게 사랑을 줬고 내가 다시 빛을 볼 수 있게 도와줬었지.

내가 지쳐 쓰러졌을때면 항상

당신은 언제나 내 주위에 있었고

나를 다시 일어날 수 있게 해줬어.





Goodbye Michelle it's hard to die
When all the birds are singing in the sky
Now that the spring is in the air
With the flowers everywhere
I wish that we could both be there


안녕 미셀 죽기엔 너무도 힘든 시간이야

새들의 노래가 하늘을 가득채우는 지금,

이제 봄 기운은 하늘에 가득하고

어디에나 꽃들은 만개했어.

우리도 그곳에 함께 있으면 좋을텐데




We had joy we had fun we had seasons in the sun
But the wine and the song like the seasons have all gone


우린 즐거운 시간을 보냈었잖아, 태양빛 가득하던 그 계절을

그리나 와인과 노래 처럼 그 시간들도 모두 가버렸네




We had joy we had fun we had seasons in the sun
But the wine and the song like the seasons have all gone


우린 즐거운 시간을 보냈었잖아, 태양빛 가득하던 그 계절을

그리나 와인과 노래 처럼 그 시간들도 모두 가버렸네요.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시대유감-서태지 게릴라 콘서트

왜 기다려 왔잖아 모든 삶을 포기하는 소리를 이 세상이 모두 미쳐버릴 일이 벌어질 것 같네 거 짜식들 되게 시끄럽게 구네 그렇게 거만하기만 한 주제에 거짓된 너의 가식때문에 너의 얼굴 가죽은 꿈틀거리고 나이 든 유식한 어른들은 예쁜 인형을 들고 거리를 헤메 다니네 모두가 은근히 바라고 있는 그런 날이 오늘 바로 올 것만 같아 검게 물든 입술 (정직한 사람들의 시대는 갔어) 숱한 가식속에서 (오늘은 아우성을 들을 수 있어) 왜 기다려 왔잖아 모든 삶을 포기하는 소리를 이 세상이 모두 미쳐버릴 일이 벌어질 것 같네 부러져버린 너의 그런 날개로 (너는 얼마나 날아갈 수 있다) 생각하나 모두를 뒤집어 새로운 세상이 오기를 바라네 너의 심장은 태워버리고 너의 그 날카로운 발톱들은 감추고 돌이킬 수 없는 과거와 모두 다 잘못 되어 가고 있는데 검게 물든 입술 정직한 사람들의 시대는 갔어 숱한 가식 속에서 오늘은 아우성을 들을 수 있어 왜 기다려 왔잖아 모든 삶을 포기하는 소리를 이 세상이 모두 미쳐버릴 일이 벌어질 것 같네 바로 오늘이 두개의 달이 떠오르는 밤이야 네 가슴에 맺힌 한을 풀 수 있기를 오늘이야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지금 딱 진보정당들의 모습이다.. 이노래가 예언했다 진짜

 

 

서태지와 아이들 .. 난 노래만 좋아했지..와~~ 지금봐도 춤과 라이브가 ㅎㄷㄷ 이다

 

결코 시간이 멈추어 질 순 없다 Yo
무엇을 망설이나 되는 것은 단지 하나뿐인데

바로 지금이 그대에게 유일한 순간이며
바로 여기가 단지 그대에게 유일한 장소이다

환상 속엔 그대가 있다
모든 것이 이제 다 무너지고 있어도

환상 속엔 아직 그대가 있다
지금 자신의 내 모습은 진짜가 아니라고 말한다

단지 그것뿐인가 그대가 바라는 그것은
아무도 그대에게 관심을 두지 않는다

하나 둘 셋 Let′s go 그대는 새로워야 한다
아름다운 모습으로 바꾸고 새롭게 도전하자

그대의 환상 그대는 마음만 대단하다
그 마음은 위험하다

자신은 오직 꼭 잘될 거라고 큰 소리로 말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 그대가 살고 있는 모습은 무엇일까

환상 속엔 그대가 있다
모든 것이 이제 다 무너지고 있어도

환상 속엔 아직 그대가 있다
지금 자신의 내 모습은 진짜가 아니라고 말한다

세상은 Yo 빨리 돌아가고 있다
시간은 그대를 위해 멈추어 기다리지 않는다

사람들은 그대의 머리 위로 뛰어 다니고
그대는 방 한구석에 앉아 쉽게 인생을 얘기하려 한다

환상 속엔 그대가 있다
모든 것이 이제 다 무너지고 있어도

환상 속엔 아직 그대가 있다
지금 자신의 내 모습은 진짜가 아니라고 말한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삼국 연말 클럽파뤼 어떠시긔

 

니들이 고생이 많다!

 Ver 2010

 

2009년 11월7일  삼국을 위한 위로공연

 

2010년 2탄으로 돌아왔긔 ㅋ

 

월간좃선으로 인해 심하게 스트레스 받고 있는 요즘!

 

삼국회원들을 위해 올연말 클럽퐈뤼~!를 제안해보긔

 

공연기획은 홍대앞네트워크에서 제안해주셨긔

 

일년에 한번 놀때도 있어야 하는거 아니겠긔????ㅋㅋㅋㅋㅋ

 

 

공연방식은 홍대 인디밴드 4팀 와 공연후 함께 뒷풀이하는

 

하우스파티형식으로 제안해주셨긔~!!

 

입장료는 1만원~5천원정도로 생각하긔

(대관료및밴드섭외비)

 

삼국님들의 의견을 여쭤보긔

 

1. 하자

2.안하자

 

한다면날짜는??

(공연을 하려면 지금 대관을 해야한다고 하긔)

12월23일

12월24일

12월29일

12월30일

12월31일

 

전... 24일을 추천합니돠 ㅋ

 

 

 

 

 

 

섭외예정인 밴드 국카스텐,시베리안허스키,폰부스,넘버원코리안

(추가및 변경가능함)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2009년 니들이고생이많다 사진有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진보는 영역을 넓혀야 하고  세상과 소통해야 한다.. 시대를 읽을 줄 알고 다가갈 줄 알아야 한다 어짜피 포스터는 홍대 전역에 붙여질것이고.. 굳이 삼국 아니여도 공연 관심있는 젊은이들  올것이다.. 요즘 젊은애들 예전처럼 시대에 대한 비판이 없어 라면서 한탄하기 보다  변해버린 세상을 이젠 인정하고 그들과 가까워지려는 노력을 좀 했으면 좋겠다.. 아직도 좌파, 우파 nl/pl(사실 나도 짜증난다.. 그놈의 계열타령-_-)이 생소한 애들에게 쌍팔년도 투쟁가요로만 다가가는짓 하고있는데..내가 다 손발 오그라든다 진짜..

내 소원은 삼국공연에서 델리스파이스 보는것이다..ㅠㅠ 노인구국결사대 를 불러주면 얼마나 좋을까?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삼국회원들이 뿔났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디자인- 소울드레서 쇄골앓이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윤도현 교토에서 '강제연행' 박물관 재건 콘서트

11월 27일 일본 교토(京都)회관에서 윤도현 밴드(이하 YB) 콘서트가 열린다. 한국가수가 일본 내에서 공연을 하면 상당한 수익을 내기 위해 대개 도쿄에서 하기 마련인데 YB는 도쿄가 아닌 쿄토에서 콘서트를 개최한다. 게다가 고즈넉한 교토의 분위기와 YB같은 락밴드는 좀처럼 어울리지 않게만 느껴진다. 그런데 왜 굳이 쿄토를 선택했을까?

윤도현밴드의 교토 콘서트 포스터.



YB의 이번 콘서트는 일본 교토에 있는 탄바(丹波) 망간기념관 재건을 위한 자선 콘서트다. 탄바 망간기념관은 일본 ‘탄바(丹波)’라는 지역에 있는 기념관이다. 이곳은 1900년대, 약 100년 동안 1만5000~2만개의 갱도가 만들어질 정도로 망간이 다량 매장되어 있는 일본 제1의 망간 광산지였다. 산업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메이지시대에 채광이 시작되었고 제2차 세계대전 발발 후 대량으로 채굴됐다. 철을 단단하게 하기 위해 사용되는 망간은 철에 보통 3~8%정도 섞는데 총이나 대포를 만들 때는 25~35%까지 섞는다. 망간 함유율이 낮으면 대포를 쏜 후 화력으로 포신이 녹아버리기 때문이다.

망간기념관 외관.



당시 단기간 내에 필요한 망간을 채굴하기 위해 주로 조선인과 중국인이 강제동원되었다. 강제 동원으로 단파지역으로 온 한국인 중에는 한국에서 끌려온 사람들도 있었지만 일본 내에 거주하고 있던 사람들도 상당수였다고 전해진다. 약 3000명이 가혹한 채굴 노동을 강요당했고 그곳에서 일하던 사람들은 전쟁 후에도 후유증인 진폐증으로 고통 받았다. 진폐증은 직업병의 하나로 공장 등에서 발생한 먼지가 폐에 끼어 폐섬유증이 생기면서 호흡 기능에 장애를 일으키는 병이다. 숨이 차고 심장 기능 장애를 일으키며 체력이 빨리 소모되고 식욕 부진이 동반하기도 한다.

망간기념관을 찾은 사람들.



‘탄바 망간기념관’의 초대관장인 고(故)이정호씨 역시 이 진폐증으로 고통 받았다. 경제적으로나 신체적으로나 어려운 환경 속에서 1989년에 탄바 망간기념관은 개관했다. 그것은 일제에 강제 노동을 강요당하는 등 기본적 인권조차 박탈당하면서 비참하게 살아왔지만 억압한 가해자와 억압받은 피해자가 있었다는 역사만큼은 잊지 말고 전해 나가야 할 것이라는 고인의 강한 의지가 있었기 때문에 이루어 질 수 있었던 것이다. 고(故)이정호씨가 세상을 뜬 후 그의 아들 이용식씨가 그 뜻을 물려받아 16년 동안 운영해왔다. 개관 초기에는 기부금을 받기도 했지만 운영비에 보태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매년 500만~600만 엔 정도의 적자를 감당하지 못해 2009년 5월 31일에 결국 폐관하게 되었다. 개관한지 딱 20년째 되는 해였다.

망간기념관에 대해 기념관 관계자가 설명하고 있다.



일본 전국의 약 5000 개의 역사기념관과 박물관 가운데 탄바 망간기념관은 전쟁피해자가 직접 세운 유일한 ‘강제연행’ 기념관이다. 독일과 달리 일본에는 ‘전쟁에 의한 가해’의 역사가 남겨진 박물관 혹은 기념관이 한 곳도 없다. 그렇기 때문에 탄바 망간기념관의 폐관은 더욱 안타깝다.

2008년 말 폐관 소식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면서 기념관을 지키려는 일부의 노력이 있었으나 널리 확산되지 못했다. 그러나 재일동포들 사이에서는 ‘우리’의 역사를 지키려는 노력을 해 왔으며 올해 5월 ‘탄바 망간기념관 재건위원회(이하 재건위원회)’를 발족하게 됐다. 그들의 기념관 재건과 운영 이념은 다음과 같이 건설적이고 미래지향적인 한일관계에 기반을 두고 있다.

하나, 일본의 식민지 지배와 전쟁에 의한 가해의 역사를 남기고 전해간다.
하나, 재일동포와 피차별부락(被差別部落) 사람들이 겪은 피해의 역사를 남기고 전해간다.
하나, 역사를 직시하고 바르게 대응하여 일본과 한반도 사람들 간의 진정한 화해와 우호를 구축한다.


탄바 망간기념관을 재건하기 위해서는 지금 당장 1000만 엔이 필요하다. 이에 YB는 흔쾌히 공연을 수락했고 일본 교토에서 공연을 하게 됐다. 그리고 이날 공연의 수익금 전부를 재건위원회에 기증하기로 결정했다.

수십 년 동안 일본과 한국에서 차별 받아온 재일동포들이 외롭게 ‘우리’의 역사를 지켜 나가고 있다. 그런 그들에게 우리는 미안함과 고마움을 느끼곤 한다. 이젠 우리가 말할 차례다.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해서 미안하다고. 그리고 이젠 외롭지 않을 거라고.

일본에서/박성철/인터넷 경향신문 대학생기자 (웹場 baram.khan.co.kr)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명품 가방 들고 시위 나선 공산주의자


사용자 삽입 이미지1968년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열린 여성공산주의자들의 시위 현장.이브 생 로랑의 꽃무늬 치마를 입고 보석장신구로 치장한 아가씨가 시위행렬 속에서 단연 두드러졌다. 다음날 신문에 대서특필된 이 여성은 훗날 세계적인 명품 브랜드 프라다의 수석 디자이너가 된 미우치아 프라다였다.

《프라다 이야기》는 1978년 파산 직전의 가업인 '프라다 상점'을 물려받은 미우치아 프라다가 비(非)전공자 디자이너라는 한계를 극복하고 세계적인 패션 기업을 일궈낸 과정을 들려주는 평전이다.

저자에 따르면 미우치아 프라다의 성공 비결은 기존의 틀에 얽매이지 않는 창조적 도전과 휴머니즘이다. 그는 대학 시절,공산주의자는 화려한 옷을 입으면 안 된다는 고정관념을 깨고 명품을 걸친 채 시위에 참여했다. 패션업계에 진출한 뒤에는 명품 가방은 최고급 가죽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아무도 패션 소재로 사용하지 않았던 낙하산 천으로 가방을 만들어 세계 여성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의류 쪽으로 사업 영역을 넓힌 뒤에도 그의 도전은 계속됐다. 화려하고 아름다운 옷이 대세였던 당시 그는 "옷은 남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표현하기 위해 입는 것"이라며 단순하고 편한 옷을 선보였다. 패션업계 전문가들은 혹평했지만 여성들은 '편하지만 결코 촌스럽지 않은' 프라다의 옷을 선택했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운명의 파트너 베르텔리와의 만남과 사랑,둘이서 이룬 명품 신화의 창조과정과 열정도 책에 담겨 있다.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

http://www.hankyung.com/news/app/newsview.php?aid=2010072134711

 

아직까지도 배고프고 불쌍한 모습으로 시위에 참여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위에글 에 나오는 1968년도에나 존재했던 .. 사치라고 말했던 그 사상 말이다. 거리에 왜 나오는가?? 나와 우리의 메세지를 시민들에게 전달하려고 나오는 것은 아닌가?? 그럴려면 어떻게 해서든지 우리를 보게 만들어야 하는데.. 그 배고픈 코스프레의 투쟁 얼마나 흥행했나?  현실은 너무나 신기해서 좀 쳐다보고 말거나, 아예 관심 없거나 ,무서워 하는게 대다수 였다..밖에서 당신들의 투쟁을 시민들 옆에서 지켜본 그 결과는 그랬다.. 그런 현실은 모른체 세상을 바꾸겠다고하니.... 시민들을 사로잡을 마케팅은 없이..나가서 무작정 '투쟁'만 외치니.....68년도에도 얼마나 시민들이 구질한 모습에 짜증냈으면 저 마케팅이 통했겠나??(진보슈퍼맨,꼴통 아저씨 이글보고 또 그러겠지..그럼 명품입고 나가서 투쟁해야 하냐고.....너 외모지상주의자 냐고....보수꼴통들만 왜곡하는게 아니야.. 남의뜻을).. 그래..그런식으로 또 나한테 자본주의, 노빠 라고 비난을 한다면.. 남들이 보지도, 듣지도 않을 투쟁 할바엔... , 나 명품하나 대여해서 집회 가렵니다..됐어요??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월간조선>을 패러디한 <월간삼국>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디자인-소울드레서 30mm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