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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믹리뷰]일중독에 걸린 대한민국

Book Review |일중독에 걸린 대한민국


일중독 벗어나기
강수돌 지음/메이데이/2007년 2월/242쪽/1만2000원

 

‘한국인은 근면하다’는 평가가 과연 좋기만 한 것일까.
저자는 이 질문에 고개를 가로젓는다. 저자는 알맹이가 빠진 삶에서
빨리 탈출해야 한다고 말한다.

 

1998년 10월, 30대 씨티은행 명동 지점장이 유서를 남기고 자살했다. 성공가도를 줄기차게 달리던 그의 유서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나는 은행만을 위해 일한 결과 너무 많은 것을 잃었다. … 사랑하는 당신, 그리고 아들들아, 미안하다, 미안하다. 하지만 아빠는 최선을 다했다. 바보 같은 아빠의 삶을 살지 마라. 서로 배려하는 마음으로 살기를 바란다.’

 

입사 7년 만에 성실과 능력을 인정받아 방배 지점장으로, 그리고 불과 몇 개월 만에 명동 지점장이 된 그는 더 높은 성과를 내기 위하여 아예 개인생활과 가정을 포기해버렸다고 한다. 죽기 직전 몇 개월 동안에는 몸이 너무나 괴롭고 아파서 밤에 잠도 못 이룰 만큼 열심히 살았지만 그가 세상에 남긴 것은 ‘과로자살’이라는 충격파였다.

한국 사람들은 일을 많이 한다. OECD 국가 중 단연 최고다. 중동에 건설 붐이 일었을 때 수많은 한국인들이 오일 달러를 벌기 위해 중동으로 떠났다. 아직도 중동에 가면 ‘코리안 넘버 원’이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인터넷에 보면 ‘세상에서 일본인을 게을러 보이게 하는 유일한 민족은 한민족뿐이다’라는 글도 있다. 애국심을 고취시키고 민족의 우수성을 알리는 글들 대부분은 한국인의 근면성과 성실성에 관한 글들이 많다. 일단 이런 글들을 보면 일순간 뿌듯함을 느낀다. 그리고 그것을 세계적인 자랑거리로 여긴다. 하지만 이것이 과연 뿌듯하기만 한 것일까. 정말 세계적인 자랑거리인가?

 

《일중독 벗어나기》를 쓴 고려대 경영학부 강수돌 교수는 이 질문에 고개를 가로젓는다. 이유는 공허하다는 것이다. 아침만 되면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어른들은 어른대로 학교와 일터로 달려나가고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아침부터 밤까지 하루 종일 바쁘게 돌아가는 우리의 삶을 보면 뭔가 중요한 것이 빠져 있다는 것이다. 우리 삶의 알맹이가 그것이다.

변태가 아닌 이상, 우리는 몸이 편하고 마음이 편한 것을 원한다. 행복을 추구한다는 말이다. 오죽하면 헌법에 행복추구권이 당당하게 올라와 있겠는가. 그런데 우리는 지금 어떻게 행복을 추구하는가? 대부분 열심히 일해 돈을 많이 벌어서 아니면 높은 자리에 올라서서다.

그렇지만 이것은 미래에 행복을 추구하는 것으로, 쉽게 말하면 내일 행복을 위해 ‘오늘 열심히 일하자’라는 것이다. 어디 개인에게만 그런가. 국가도 그랬다. 1960년대에 구호는 이랬다. ‘대망의 70년대를 바라보며 열심히 일하자.’ 1970년대가 되자, ‘대망의 80년대를 바라보며 열심히 일하자.’ 1980년대가 되자, 숫자만 바뀐 구호가 다시 반복됐다. ‘대망의 1990년대를 바라보며 열심히 일하자.’ 그러다 무슨 일이 일어났나. 저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1997년에 ‘대망(大亡)’했다. 하지만 어느 정도 정리가 되자 또 구호들이 나왔다. 2만달러 시대…, 3만달러 시대….

 

환상적인 미래는 한 마디로 행복을 내일로 미루는 것이다. 저자는 이러한 현상이 어린 아이부터 어른까지, 개인에서 국가까지 만연되어 있는 오늘날의 우리나라에 ‘일중독(workaddiction) 집단 불감증’이라는 진단을 내린다.

 

여기서 일중독은 워커홀릭(workholic)과 다른 개념이다. 워커홀릭은 일을 너무나 즐기는 통에 다른 모든 것을 잊고 일에만 몰입하는 것이다. 반면 일중독은 ‘일이 사람들의 삶에서 지배적 비중을 차지하면서 자기 일은 물론 다른 사람들과도 병적 관계를 형성하게 되고, 또 갈수록 더 많은 일이나 더 높은 성과를 내야 만족할 수 있으며, 나아가 그 일을 중단하는 경우엔 견디기 어려운 불안감과 상실감을 느끼게 되는 병적 현상’이다.

 

실제로 조사를 보면, 한국 사회의 일중독은 심각한 수준이다. 주5일제가 확산되고 근로기준법에 의하여 노동시간 단축이 이뤄졌지만, 실 노동시간은 줄어들지 않았다. 한국의 직장인들은 OECD 주요 22개국의 평균보다 무려 40%나 더 많이 일하고 있다.

 

이로 인해 직장인의 70%가 스트레스성 정신신체 증상을 경험하고 있다고 한다. 저자가 조사한 ‘일에 대한 태도’를 한국, 미국, 일본, 독일과 비교해보면, 일중독이 더 명확하게 보인다. 자신의 삶에서 무엇이 중요한가? 한국에서는 만족스런 일자리가 1위였다. 반면 일본과 독일은 가족과의 시간을 1순위로 꼽았다. 일중독에 빠지고 싶은지의 질문에 독일은 6%가 ‘그렇다’고 대답한 반면 한국은 23%가 ‘그렇다’고 대답했다.

일중독과 관련된 기타 질문들 즉 ‘잔업 증가에 대한 태도’, ‘생활에 침해되더라도 열심히’ 등에도 한국이 단연 1위를 나타내고 있다.

 

열심히 살아서 행복하다면 얼마나 좋은가. 문제는 열심히 살긴 하는데 행복하진 않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것을 문제로 인식하지 않고 있다. 저자는 매일 과로사로 사람이 죽고, 매 시간 산재사고가 10건씩 발생하는 데도 이상하다고 느끼지 않고 무감각하게 일에 매몰된 ‘집단 불감증’이 우리 사회에 끼치는 심각한 해악을 우리 스스로 바꿔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한다.

 

일에 대한 강박관념, 노동에 대한 과잉 경도성 등을 건강한 방식으로 극복해내지 못하면, 그것들이 개인의 삶을 망가뜨리고 가족을 붕괴시키고, 결국엔 사회의 건강성을 해치는 주범이 되기 때문이다.

일중독에서 벗어나 ‘오늘’ 행복하려면, 개인적 차원의 노력과 사회적 차원의 노력이 병행되어야 한다. 우선 개인은 자신이 일중독자임을 인정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가족이나 이웃, 동료들, 상사들도 건강한 모습으로 함께 나서야 한다. 저자는 특히 가족 구성원이나 회사 동료들이 문제의식을 함께 공유하고 문제해결의 동지가 되는 것이 중요함을 강조한다. 사회적으로는 일중독을 객관적으로 조장하는 사회 구조를 바꿔야 한다. 이것은 지나친 성과주의에 기초한 관리 구조와 기업 문화, 생활 문화와 삶의 패턴 등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것이다.

 

결국 개인과 사회가 가치관을 바꾸고 구조적 변화를 함께 추구해야만 일중독에서 벗어날 수 있다. 일중독에 대해서 인지하고 이것을 극복하는 과정을 통해 일과 삶의 가치, 행복, 가족 등 우리 삶을 구성하는 다양한 인자에 대해 숙고하는 시간이 우리 사회에 필요하다. 저자는 “오늘 행복을 내일로 미루지 말라!”고 말한다. 여기에 한 가지 질문을 더 추가하자.

 

“행복하십니까?”

 

권춘오 네오넷코리아 편집장 www.summary.co.kr

 

[02월20일제34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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